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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 깊어가는 가을

 

 

 

 



추분이 지나면 가을은 점점 짙어져 본색을 드러낸다. 단풍본색이다.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되면 아무리 온난화라 해도 날을 추워지기 마련이다. 아직도 한낮의 날 씨는 조금만 일하면 땀을 흘리게 하여 가을 날씨라 하기에 좀 그러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찬바람의 기세를 보면 역시 가을임에 틀림없다.
한로가 되면 제비와 기러기가 교체를 한다. 추분에 내려가지 못한 제비들은 마지막 채비를 차려 강남 가고 북에서는 기러기가 내려온다. 본격적인 추위가 느껴지는 계 절을 바쁘게 오가는 철새들이 알려준다.
논과 밭에서는 오곡백과를 거두느라 바쁜 철이다. 벼를 거둔 논에서는 미꾸라지를 낚아 추어탕을 해 먹는다. 추어탕의 추鰍자가 가을을 뜻하는 것을 보면 추어탕은 분 명 가을 음식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으니 남자들의 정기를 돋우는 추어탕을 먹어주어야 가을이 가을다운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추어탕을 아무 때나 먹으니 추어탕도 계절을 잊고 남자들도 계절을 잊은 것 같다.

어제는 일찍 심은 밭벼를 수확하고 오늘은 논을 만든 회원이 드디어 첫 수확을 했다. 나의 논은 아니지만 내가 구한 종자로 뭉텅이 직파법을 적용한 첫 논이라 나도 적 잖이 흥분이 되는 것 같았다. 첫 수확이라 기분도 좋았겠지만 올해 날씨가 벼에는 아주 좋아 풍년이 들어 더욱 기분이 업up 되었다. 밭벼는 알곡을 세어보니 한 이삭 가지에 150알이 달렸고 논벼 중 녹토미(파란쌀)는 130알이 달렸다. 이 정도면 확실히 잘 된 것으로 보인다.
들깨도 수확했는데, 영농일지를 뒤져보니 6월 29일 모종을 정식했다. 밀 수확한 곳에다 심었는데 밑거름은 하나도 주질 않고 웃거름으로 풀만으로 만든 퇴비를 주었는 데 예상 외로 알곡이 많이 달렸다. 탈곡을 해 봐야 알겠지만 공짜 농사를 진 것 같아 기분도 좋고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풀도 딱 한번 매주었다.
밭벼, 콩, 서리태, 팥, 갓끈동부, 수수, 옥수수, 고구마, 오이 등 여름 곡식들은 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경에 심었다. 늦게 심어 크질 않아 수량은 적을지 모르나 쓰러질 염려가 없고, 장맛비를 맞기 때문에 발아 속도도 빠르고 초기 생육이 좋아 풀에 대한 경쟁력이 높다. 늦게 심었으니 남들은 벌써 수확했거나 수확할 날을 손꼽 고 있는 것들이 나는 이제야 익어가고 있다. “이러다 된 서리 내렸는데도 안 익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로가 되면 이제 밀, 보리를 심어야 한다. 따뜻한 남쪽에서는 좀 더 늦게 심어도 되지만 중부 지방에선 적어도 10월 중순 전에 심는 게 좋다. 온난화 때문에 늦게 심 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온난화라는 게 무조건 따뜻해지는 날씨라기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올 초봄, 아직 동장군 세력들이 남 아있을 때인데도 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서리가 물러갈 곡우도 지나고 입하도 지났는데 별안간 늦서리가 들이닥쳐 여름 작물들이 냉해를 입기도 했으니 마음을 놓을 일 이 아니다.
밀, 보리는 겨울이 오기 전에 세치 정도는 자라 있어야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다. 어린 싹 상태에서 찬바람을 맞으면 얼어 죽을 수 있다. 아직 베지 않은 벼가 있으면 사이짓기로 벼 사이에 심어도 된다. 매년 이렇게 해오고 있는데 풀이 훨씬 덜 하다. 작년부터 밀을 뭉텅이 직파로 심었는데 그 기세가 아주 좋아 풀을 두 번 밖에 매질 않았다. 벼 사이에 괭이로 골을 낸 다음 밀을 30알정도 씩 뭉텅이 넣은 다음 흙이 아닌 퇴비로 피복을 했다.
사이짓기로 파종하는 것이라 밑거름 넣기도 힘들고, 흙으로 피복한 다음 또 거름을 넣어주려니 이중 일인 것 같아 꾀를 낸다고 흙이 아닌 퇴비를 덮어준 것이다. 당연 히 완숙된 퇴비였다. 한 구멍에 한 주먹씩 넣어주었다. 그것으로 밑거름은 끝이다. 봄에 춘분 즈음에서 오줌으로 1차 웃거름 주고 곡우 지나 2차 오줌 웃거름 준 게 다 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밀 뿌리에 서릿발이 서질 않은 것이었다. 보리밟기를 해주지 않아도 된 것이다.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뿌리 밑에서 서릿발이 서 흙 이 들어 올려지는데 따뜻한 봄기운에 서릿발이 녹아 없어지면 빈 공간이 되어 뿌리가 말라 죽는다. 그래서 밟기를 꼭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서릿발이 안 섰으니 보리 밟기 일이 없어진 것이다.
추측컨대 지난 겨울엔 눈도, 비도 별로 오질 않아 가문 겨울이어서 흙에 물기가 별로 없으니 서릿발도 당연히 서질 않았을 것이거나, 더불어 흙 대신 퇴비로 덮은 바람 에 보온이 잘 되어 서릿발이 서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한로는 또한 씨앗 갈무리하는 철이다. 벼를 비롯한 곡식들을 수확해 갈무리하고, 고추, 오이, 호박 등 여름 과채류들도 씨앗을 받고 고구마도 캐어서 먹을 것은 먹고 씨 할 것도 잘 갈무리해두어야 한다.
벼를 씨로 쓸 것은 조금 일찍 거둔다. 아직 줄기에 푸른 기가 있을 때, 알곡이 덜 영글었다 싶을 때 베었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잘 말랐다 싶으면 탈곡을 하는데 도리깨나 탈곡기 같이 알곡을 강타하는 것들로 탈곡하지 말고 홀태 같은 것으로 훑어주어야 좋다. 콤바인 같은 기계도 당연히 좋지 않다. 씨앗이 타격을 받으면 병에도 약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씨를 건강하게 받아야 자랄 때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 양이 작으면 손으로 훑어 주어도 된다.
조, 수수, 옥수수 같이 양이 적은 것은 이삭 채 거두어 잘 말린 다음 처마 밑이나 벽에 걸어두었다가 이듬해 파종할 무렵 꺼내어 털어서 씨로 쓰면 된다.
고구마는 종자로 쓸 것은 상강 전에 캐는 게 좋다. 서리를 맞으면 잘 썩어서 종자로 쓸 수가 없다. 물론 먹는 데에는 이상이 없지만 보관이 오래가질 않으니 먹기 위한 것이라도 상강 전에 캘수록 좋다.
오이, 가지, 호박의 채종은 좋은 열매를 찍어두었다가 무를 때까지 놔둔다. 물러 터져도 괜찮지만 열매가 터지면 씨앗 줍기도 힘드니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열매를 손으로 만져보아 물렁물렁할 때면 된다. 과육의 영양이 씨앗으로 몰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속을 파고 씨앗부분을 훑어서 물에 담그면 씨만 물에 가라앉는다. 쭉정 이 씨와 찌꺼기들은 가벼워 물에 뜨므로 조리로 일러 건져낸다. 가라앉은 씨를 걸러내 말리면 된다.
오이씨는 젤 형태로 껍질이 붙어 있는데 손으로 떼기가 아주 힘들다.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면 절로 벗겨지므로 힘들여 애 쓸 필요가 없다.
고추는 씨앗을 채종하기가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좋은 포기와 열매를 골라 배를 가르고 씨를 꺼낸 다음 햇빛에 잘 말리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고추와 함께 태양초로 말린 다음 채취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영양이 씨에 몰리기 때문이다. 말리다가 고추와 함께 곰팡이가 피거나 병에 걸릴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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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본격적 수확철

 

 

 

 


추분은 춘분처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때이며 춘분과 달리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때이다. 춘분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면서 기온이 영상의 날씨로 돌아서는 것과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추분에는 반대로 영하의 기온으로 돌아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아직 여름 더위가 남아있기 때문인데 춘분 때보다 대략 10도 정도 기온이 높다.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농사에는 기온보다 해의 길이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식물들은 기온보다 해의 길고 짧음에 더 영향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원래 사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보는데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은 해의 길이보다 기온에 더 민감해졌다. 단열을 우선시 하는 아파트 문화, 에어콘, 난방기 등의 발달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온에 더 민감해지면 오히려 자연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기온 온난화 현상이 날로 뚜렷해져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식물들의 생리 활동은 이어져 간다. 그것은 식물들에게는 기온보다 해의 장단(長短)이 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의 길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기온이기 때문에 온난화로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온난화로 추분이 되었음에도 여름 기운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곡식들은 추분의 때를 알고서 알곡들을 익혀 가고 있다. 해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여름 같아도 마음은 급하다.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씨앗을 맺고 알곡을 튼실히 해야 함을 변함없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시 추분은 추분인 것이다.

추분이 되면 하늘의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으며 겨울 준비를 한다. 가끔 태풍이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날씨는 물이 말라 건조해진다.
들녘의 곡식들도 겨울 준비에 바쁘다. 본격적인 수확철이 다가온 것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니 덩달아 농부들도 바쁘다.
이른 벼 수확하랴, 고추 따서 말리랴, 미리미리 익어 터지는 녹두 팥 따랴, 고구마 줄거리, 호박고지 깻잎 등 묵나물 만들랴 정신없는 가을 농번기가 온 것이다. 얼마 전 잠깐 찾아온 농한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마음이 급해지는 철이다.
논에 심은 자광미는 반은 벌써 익고 반은 아직 이삭이 푸르다. 분명 같은 자광미를 심었는데 확연히 다르다. 일찍 익은 벼는 키도 작고 아직 푸른 벼는 키가 훤출하다. 곰곰 생각해봤더니 하나는 김포에서 얻어온 자광미고 다른 하나는 남쪽 장흥에서 얻어 온 자광미다. 사진을 찍어 토종 박사님께 여쭈었더니 같은 자광미인데 하나는 이른벼, 조생종 같다고 하셨다. 이른벼와 늦벼가 조그만 논에 같이 있으니 그 놈들 보는 맛이 영 껄떡지근하다. 이른 놈을 보면 빨리 거두어야 할 것 같고 늦은 놈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 벼농사 처음 해보는 논 주인인 우리 농장 회원 왈 “저렇게 예쁜 놈을 어떻게 베지요?” 한다.
밭에서 며칠 전 짧은 틈을 내 전어를 구어 먹었다. 우리 농장의 한 회원이 한 턱 내는 자리였다. 전어는 세 번째 먹어 보는데 이제야 그 맛을 알겠다. 처음엔 그렇게 가시 많은 생선이 무에 맛있다고 난리인가 했다. 두 번째는 그럭저럭 소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세 번째는 “이 야, 이 맛이네!” 했다. 그냥 가시도 마구 씹어 먹고 대가리도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전어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더니 그 뜻을 이제야 알겠네요.”
“며느리 친정 집 가면 전어 구워 먹는다는 말도 있어요.”
“하하......”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로 지나면 대충 바쁜 밭일이 끝나 여자들이 잠깐 한가해진 틈을 타 친정집으로 휴가를 가곤 하는데 하필 이 때가 전어철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친정집 간 며느리 자기 빼고 전어 먹을까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려는데, 집에서는 며느리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먹어치우려 했을 것 같다. 아무튼 옛사람들의 풍자와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맛과 얘기다.

추분 즈음에는 보통 추석이 있지만 올해는 추석이 빨라 추분 즈음하니 중양절이 가깝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양의 숫자인 9가 겹쳤다 해서 중양(重陽)이다. 양의 숫자가 겹치는 날을 우리는 길하게 보았다. 따뜻한 양의 기운이 이중으로 들어 있어서다. 그래서 1월 1일은 설날이요, 3월 3일은 삼짇날로 중삼절(重三節), 5월 5일은 단오날로 중오절(重五節), 7월 7일은 칠석날, 그리고 9월 9일 중양절이다.
삼짇날 제비가 강남에서 왔다가 중양절에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지막 양의 계절이 물러가니 제비도 물러가는 것이리라.
올해처럼 추석이 이른 날에는 가난한 농가에선 차례상에 올릴 햇곡식이 없어 중양절에 익은 햇곡식으로 다시 차례를 올리기도 했다. 이를 중구차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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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제비 강남 가는 가을





처서도 지나고 백로가 왔는데도 모기도 그대로 있고 풀도 풀 죽을 기세가 뚜렷하지 않다. 확실히 온난화 징후가 곳곳에 뚜렷한 것 같다. 백로인 오늘, 이 글 쓰고 있는 지금 밤 10시 30분 집 실내 온도가 26도나 된다. 당연히 모기향도 피어 놓고 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뜨거운 여름날 그대로다. 한낮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갔다. 물론 온도가 여름 같다고 하나 전체적인 기운은 분명 가을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올해 가을 배추 농사는 시작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씨도 잘 못 산데다 요령 피워 만든 상토에도 문제가 심각했다. 몇 년 전 당한 적이 있어 어느 종묘 씨앗은 사지 말아야지 한 결심도 세월 따라 희미해진 상태에서 지나던 길에 종묘상이 있기에 들어간 곳이 하필 그 종묘상이었다. 설마 또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샀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대로 발아가 반도 되지 않았다. 혹시 흙에 문제가 있을지 몰라 단골로 가던 종묘상에 가서 조금 비싼 씨앗을 사다 또 심었다. 역시 씨앗의 문제였다. 발아가 거의 100% 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발아는 잘 되었는데 이번엔 자라질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흙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연 흙 채취해오기 힘들어 올 봄 얻어온 경량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피트모스라는 이끼가 탄화된 수입 가짜 흙이 강산성이라더니 그게 문제인가보다 하고 석회를 섞어 다시 씨앗을 넣었는데 별 차이가 없다.
나와 몇몇 사람만이 잘 자란 것을 골라 겨우 모종을 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회원들에게는 결국 시장 가서 모종을 사다 주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이제는 벌레들이 마구 달려든다. 거세미에서부터 톡톡이 청벌레 귀뚜라미 등 예년보다 더 다양해졌다. 특히 거세미는 봄 여름에 극성인데 가을까지 극성인 것을 보면 확실히 온난화 영향인 것 같다.
회원들 밭을 곰곰이 보니, 게으름 피우느라 풀밭을 매지 않고 부직포로 덮은 밭이 피해가 덜하다. 부직포가 방어막 역할을 한 것이다. 주변 밭이 잡초로 뒤덮인 곳은 피해가 크다. 자료를 뒤져보니 주변 풀밭에 거세미 나방이 새끼를 낳아 그리로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배추는 가뭄을 잘 타는지라 마르지 말라고 풀 깔기를 회원들에게 많이 권하는데 이번엔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 거세미가 알을 까놓은 풀을 거두어 깐 셈이 되어 버렸다. 풀을 쉽게 죽이기 위해 부직포를 덮은 밭은 풀도 쉽게 죽인데다 거세미 피해도 예방을 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다만 부직포로 덮었어도 바로 옆의 밭이 풀밭이라면 효과가 별로 없다. 그 밭에 알을 깐 거세미가 잔뜩 달려들기 때문이다.

백로가 되면 제비가 강남 갈 채비를 서두른다. 그런데 요즘은 제비가 없다.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오질 않으니 강남으로 떠날 제비도 없다. 이래저래 강남은 제비한테도 좋은 세상인가보다. 올 여름 제주도에 토종 찾으러 방문했다가 실컷 제비를 만나고 왔다. 그렇게 많은 제비를 어릴 때 보고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참으로 제비란 놈은 미끈하게 잘도 생겼다는 감탄을 자아낼 만 했다. 물 찬 제비 같다는 등, 제비족이라는 등의 표현들이 다 제비가 잘 생겼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게다.
제비가 강남 간다는 것은 이제 날씨가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들고 말 그대로 하얀 이슬(白露)이 내려 추운 날씨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로인 오늘 아침, 아직 하얀 이슬이 내릴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아직 여름 같은 게 참 날씨 변덕 심하다 싶었다.
그래도 자연의 이치는 여전하다. 가을의 햇볕 받아 벼 이삭도 잘 익고 있고 밭 열매 채소들도 열매를 잘 달고 있다. 기온도 중요하지만 역시 날씨의 관건은 해의 길이(長日, 短日)에 달린 것 같다.
백로가 되면 이제 농사도 점차 한가해진다. 백중에 호미를 씻어 남정네들이 휴식을 취한다면 여인네들은 백로에 호미를 씻어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한다. 휴가를 가는 것이다.

올해는 추석이 빨리 찾아온다. 보통 추분 근방에 오는 적이 많은데 올해는 백로와 추분 중간에 추석이 있다.
추석秋夕은 순 우리말로 한가위다. 추석보다는 한가위라는 말이 더 정겹다. 명절 중에 순 토종 명절은 유일하게 추석뿐이다. 그러니 더더욱 한가위라는 토종 우리말을 썼으면 한다. 한가위는 말 그대로 하면 한 가운데라는 뜻이다. 대개 보름이 가운데에 있으니 제일 큰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야 말로 제일 한 가운데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가위만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었다. 일종의 추수 감사절인데 아직 본격적인 추수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추수 감사절이 11월 중순 쯤 일요일인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너무도 많이 난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추수 감사절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쯤 되면 대충 다 수확하고 한해 농사를 마무리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한가위 때 차례 상에는 풋 곡식이 올라간다. 덜 익은 벼 중에서도 잘 된 놈을 골라 손으로 훑어 차례 상에 올리고 송편도 만든다. 콩도 풋 익은 것을 골라 송편 속을 한다. 그러니까 뭐든지 풋것을 갖고 상을 차린다. 왜 그럴까? 별로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농사를 지으며 느낀 추측은 있다. 나는 이 추측을 거의 확신하지만 말이다.
우선 풋것으로 조상님께 바치는 것은 제일 좋은 것을 바치는 것이다. 곡식으로 약을 쓰려면 풋것으로 해야 한다. 풋것의 기운이 맑고 힘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풋것이 좋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비유를 들면 영계인 셈이다. 조상님께 폐계를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풋것을 실제로 먹는 것은 죽은 조상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조상 핑계대고 오랜만에 몸보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참 지혜롭기도 하다. 사실 명절이나 제사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몸보신하는 날이다. 그리고 자주 보지 못하는 일가친척도 불러들여 함께 나눠 먹고 서로 간에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날이다. 더불어 마을 축제도 열면서 마을 공동체를 더욱 돈독히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명절이나 제사는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끈질기게 그 문화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 나는 이왕 하는 것이면 좋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쳐갔으면 생각해 봤다. 요즘이야 맛난 것도 많고 영양도 넘치는 게 차라리 문제이니 힘들게 제사상 차리지 말고 서로 음식을 해 온다든가, 그것도 되도록 간단하게 해서, 남자들도 설거지 하는 등,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가족 공동체를 돈독히 하는 자리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자리를 통해 우리네 전통문화를 확인하고 공부하는 자리가 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제사는 조상님이 돌아가신 전날 지내는 것이라는 오해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간지력을 공부하기 전에는......
원래 하루의 시작은 자시(子時)다.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를 이른다. 자정(子正)이라 함은 그래서 밤 12시가 되는 것이다. 낮 12시를 정오(正午)라 하는 것도 오시인 낮 11시에서 1시의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돌아가신 날 자시가 되면 조상이 오신다고 하여 자시에 지내는 것인데 그게 밤 11시가 되다보니 전날 지낸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통행금지가 있던 옛날엔 밤 11시에 제사를 지내면 집에 돌아가기가 힘들어 시간을 더 당겨 지내게 되어 결국 제사는 전날 지낸다는 완전히 잘못된 착각이 생긴 것이다. 이미 조상님이 왔을 때는 제사상도 물려지고 후손들은 잠만 자고 있을테니 조상님이 참으로 난감한 꼴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풋것을 거둬 감사절을 지내는 결정적인 이유로 생각되는 것은 풋것으로 종자를 거둔다는 사실이다. 다 말라버린 곡식으로는 당연히 종자로 쓸 수 없을 것이며 적당히 익은 것도 종자로 쓰기에는 최선이 아니다. 후숙(後熟)시키는 과정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덜 익었지만 잘 생긴 포기를 거둬 곡식은 아직 털지 말고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푸른 포기의 남은 영양이 씨앗으로 몰리면서 씨앗의 후숙이 고르게 잘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보약이 되는 풋것을 거둬 조상과 인간도 함께 먹고 더불어 후손도 먹을 수 있도록 종자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보름달은 수확을 상징하고 가장 큰 보름달인 한가위야 말로 최고의 수확철이니 더욱 기운 찬 종자를 거둘 수 있는 철인 것이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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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가을 문턱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더위

 

 

요즘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가을이 곧 들어 닥칠까봐 뙤약볕이 마지막 기세를 뽐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거스를 수가 없는가 보다. 가을이 불볕더위 몰래 어느새 우리 주변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직 말복도 남아있는데 어디에 가을이 들어와 있다는 말인가, 황당한 소리 하고 있네....

 

그제는 하루 종일 땀으로 온몸을 적셔가며 풀매고 집에 들어왔는데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밭에서 온종일 여름 기운과 싸우고 왔더니 어느새 저녁이 되자 집에는 가을 손님이 들어앉아 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가을이 저녁에만 온 것은 아니다. 너무 뜨거워 원두막에 잠깐 피하고 있으면 거기에도 가을이 앉아 있다. 한낮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풀 매고 있 중에도 잠깐잠깐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스쳐지나간다. 하긴 밤에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울고 있는 걸 보면 가을이 오긴 분명히 온 것 같다.

 

게으른 농부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늘상 하던대로 9시나 10시쯤 밭에 나가 일을 하던 버릇대로 뜨거운 한여름에도 그 시간에 나가 풀을 맸더니 난생 처음 복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워낙 감기를 모르고 산 사람인지라 한여름 감기에 자못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이틀을 그렇게 일하고 다음날 서울 나가 오랜만에 에어컨 바람을 온종일 쐬었더니 곧바로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콧물이 질질 나고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는 어질어질한데 더위는 탈진 상태로 몰고 갔다. 약이라고는 참으로 싫어하는 성미라, 속으로 이게 더위 먹어 생긴 감기이니 감기를 다스릴 게 아니라 더위를 다스려야 겠다 생각하고 밭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있는 익모초를 한 바구니 따다가 믹서에 갈아먹었다. 쓴 것을 썩 기피하질 않았는데 “이야!~, 세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니.” 온몸을 부르르 떨며 꿀꺽꿀꺽 삼켜야 하는 게 익모초다. 그렇게 두 컵 먹고 복감기를 내 쫓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먼 북녘에서 찾아온 가을 한 자락을 맡아보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매번 입(立)자 들어가는 절기를 겪을 때마다 옛조상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탄복하곤 하지만 아마 그 중에서도 입추가 제일 역동적이고 반가운 절기인 것 같다. 반가운 존재로 치면 봄을 가져오는 입춘이 제일이지만 역동성으로 치자면 가을이 들어섰는데 말복이 기다리고 있는 입추가 제일이다.

  

입추가 되면 햇빛은 따갑지만 장마철 무더위처럼 후텁지근하지는 않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여름 기운 때문이다. 그래서 말복이 지나면 서서히 가을의 찬 기운이 온누리에 퍼져간다.

 

하지만 입추 이후 따가운 가을 햇빛이 곡식을 익게 한다. 장마철 다 자라지 못한 곡식과 벼는 마지막 힘을 내어 마저 자라다 때가 되면 밑바닥에서 이삭을 밀어 올린다. 말하자면 몸체 성장을 끝내고 생식 성장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드는 셈이다. 그래서 입추 이후에는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쨍할수록 좋지만 약간의 비가 오는 것도 좋다. 못 다한 성장을 마치기 위해서다. 그리고 처서가 들면 몸 속에 숨겨둔 이삭이 밖으로 드러난다. 바야흐로 이삭이 패는 것이다.

 

이 시기에 꼭 마지막 풀매기를 해주어야 한다. 장마 전에 잡아둔 풀이 장마 기간 동안 또 자라나 있다. 이 때 풀을 잡아주지 못하면 그동안 고생이 도로 나무아미타불이 된다. 온 힘을 다해 이삭을 패 올리기 때문에 흙 속의 기운이 충분해야 한다. 풀만 매지 말고 마지막 이삭 거름을 주면 좋다.

 

풀은 소만(5월 하순 경) 때부터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소만 망종, 곧 장마 전에 잡아주어야 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장마 전 잡지 못한 풀은 장마 기간 잠깐 비 그친 틈을 이용해서라도 잡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마 전에 잡았더라도 장마기간 동안 또 풀이 올라오기 때문에 입추 근방에서 또 잡아주어야 한다. 이삭과 열매가 맺으려면 흙 속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야 하므로 풀만 매주지 말고 웃거름도 줄수록 좋다.

  

입추 때 해야 할 중요한 농작업은 역시 김장 농사 준비다. 우선 밭부터 준비하고 거름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모종을 키울 준비도 해야 한다. 나는 이번에 배추를 모종 반 직파 반 할 계획이다. 앞으로 가급적 모든 걸 직파 재배로 전환할 계획이다. 과도기로 이번만 모종과 직파를 병행하기로 했다.

 

장마가 지나니 고추마다 탄저병이 극성이다. 주말농사 회원이 5평에 몇 포기 심은 고추에도 탄저병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직파한 내 고추는 아직 멀쩡하다. 장마 때 시들음병이 1/3 쯤 왔는데 어느새 말짱하다. 탄저는 커녕 역병도 없다. 지주도 박지 않고 끈도 띄우지 않았는데 폭우에 반 채 안되게 쓰러졌다. 반 이상은 멀쩡하지 버티어 서 있다.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하지만 수확량은 예상대로 적다. 많이 달면 쓰러질까봐 스스로 양을 조절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추 하나하나는 참으로 실하게 생겼다. 곁순도 별로 나질 않아 순지르기도 하지 않았다. 신문으로 피복하고 구멍 뚫어 10알씩 파종한 다음 발아하지 않은 곳에는 따로 모종을 내서 빵구를 떼웠다. 하지만 아주 어린 놈을 뿌리 다치지 않게 옮겨 심었기 때문에 원뿌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그놈들도 뽑아 보면 직근이 튼실하게 힘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직파한 이후 한 일이라고는 빵구 떼우고 풀 두 번 매주고 고랑 피복한 것밖에 없다. 지주나 끈은커녕 매년 해주던 5~6번의 목초액 살포, 곁순 제거는 전혀 해주질 않았다. 지금 이글 쓰고 나면 마지막 풀매기와 쓰러진 놈 세우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들깨와 고구마 빼고는 모두 다 직파를 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늦게 심은 탓도 있지만 성장 속도가 좀 느리긴 하다. 그러나 이도 얼마 안있어 따라 잡을 것이다. 그래서 배추도 직파를 하여 튼튼하게 키워서 벌레에 스스로 버티게 해 볼 요량이다. 배추도 모종을 옮겨 심고 나면 꼭 3~5번의 목초액을 주어야 했다. 직파를 하면 모종 몸살도 않고, 또 밀식해서 솎아 뽑아 먹는 재미도 있다.

  

입추 때 찾아오는 명절은 음력 7월 7석과 7월 15일의 백중절이다. 칠월칠석이면 비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서 얘기한 입추 때 잠깐 오는 비일수록 좋다. 입추인 오늘이 칠월칠석인데 비올 기세는 전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비보다는 역시 맑은 날일수록 좋다.

 

입추 때 맑으면 풍년이 들고, 비가 조금만 오면 길하고 많이 오면 흉년 든다고 했다. 맑으면 역시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 잘 자라고 익으니 당연히 풍년이 들고 약간 오면 무더운 여름 기운을 적셔주어 덜 자란 놈들에게도 좋지만 김장 농사 준비에도 좋고 많이 오면 벼가 익질 못하니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백중절은 농부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이다. 단오와 함께 마을 축제로 단오가 벼농사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라면 백중은 벼농사 마무리를 알리는 명절이다. 백중의 다른 이름으로는 호미씻이, 머슴생일, 등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논 피사리를 끝내고 힘든 일 마쳤으니 호미는 씻어 걸어둔다, 머슴이 힘든 일 끝냈으니 격려차 잔치 상을 차려준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벼는 말복 즈음에서 마지막 피사리를 끝낸다. 그리고 처서가 지나면 이삭이 팬다. 대개 백중은 말 복 이후 처서 전에 오는데 이때가 되면 힘든 논농사는 마무리 하고 밭에서는 먹을 것들이 많이 나올 철이다. 여름 과채류들인 고추, 오이, 호박, 수박, 참외, 그리고 일찍 심은 옥수수 등 먹을 게 많으니 이래저래 잔치 벌이기도 딱 맞는 철이다.

 

하여튼 대표적인 마을 잔치인 단오와 백중은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경 공동체 축제이며 농경 문화의 꽃이라 할만 한데 기계 농사가 보편화되고 그에 따라 두레 문화가 퇴색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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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 고온다습한 무더위의 절정


올해는 마른 장마라 하지만 적당히 내릴 비는 내린 것 같다. 다만 열대야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것이 이번 더위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열대야가 일찍 찾아오니 또 사람들은 온난화를 걱정한다. 과일나무 북방한계선이 북상하고 동백나무, 차나무가 중부지방에도 월동을 하는 등 심상치 않은 온난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도 또한 자연스런 현상 중에 하나이겠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와 사람 살기에 큰 지장을 가져올 수 있다. 올 봄, 때 아니게 여름 날씨처럼 더운 날이 일찍 오는가 싶더니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늦서리가 5월까지 내려 농부의 마음을 당혹스럽게 한 것도 기후 변동의 징후일 것 같은 우려를 갖게 했다.


다만 안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김석기 씨의 올 초 무자년 날씨 예측을 보며 온난화라 하지 않아도 옛 조상들은 이런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온난화 불안감을 위안하고자 한다.


“무자년은 땅과 하늘에 화기火氣가 강한 해입니다. 천간의 무戊라는 기운과 지지의 자子라는 기운이 모두 화기火氣를 불러옵니다. 그런 만큼 무자년의 기상은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고, 기상 변화가 심해 예측하기 어려운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온도가 높은 만큼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칠 수도 있고, 증발량이 많아 게릴라성 호우 또는 폭설이 잦을지도 모릅니다.”(08년 2월 4일)


이 예측이 있고 나서 숭례문에 불이 나질 않나, 올 해 상반기 내내 촛불로 밤하늘이 밝혀진 것을 보며 그것 참 신통하다 했다. 농담으로 거리에 돗자리 깔아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얘기 나온 김에 잠깐 옆으로 새면, 작년 대선 다음날 한 천문학자가 전혀 정치와 무관하게 주목할만한 천문현상으로 화성이 가장 지구에 근접해 밤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다 했다. 화성(火星)은 글자 그대로 화(火) 기운을 대표하는 불의 별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서양에서도 mars라 하여 동양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신이며 장군의 별이다. 이 별이 가장 근접하여 빛나고 있다니 아무리 봐도 이번 대통령은 화성의 기운을 받은 사람일 것 같아 영 찜찜했다.


아무튼 올 봄 여름처럼 무덥다가 늦게 서리가 내려 고추 같은 여름 작물에 냉해를 입히더니 대서가 지나야 찾아오는 열대야가 소서 때부터 들이닥쳐 여름을 더 힘들게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삼복(三伏) 더위라 한다. 그런데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절기력도 아닌 간지력(60갑자력)이다. 갑자력 10간(干) 중 경(庚) 일이 하지 이후 세 번째 오는 날을 초복, 네 번 째 오는 날을 중복이라 하고 말복은 입추 이후 첫 번째 오는 경일이다. 경(庚)은 오행 중에 금(金)으로 가을을 뜻한다. 말하자면 해는 하지를 지나 가을로 가고 있는데 지구는 복사열로 달궈져 화기운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니까 가을 기운인 경(庚)이 아직 땅에 강하게 남아있는 화 기운이 무서워 숨는다(伏)는 뜻이다.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 붙어 있어 개고기를 먹는 개 복자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숨을 복(伏)자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옛날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충재(蟲災)를 예방코자 개를 잡아 먹었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복날엔 딱히 먹을 고기가 없다. 돼지고기는 여름에 먹어 탈만 나지 않으면 본전이라는 말처럼 잘 상하기 때문에 먹는 것을 꺼렸고, 소고기도 여름엔 풀만 먹었기 때문에 맛이 없어 잡아먹질 않았다. 소고기는 겨울에 콩 깍지와 볏짚 같은 곡물을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요즘엔 옥수수로 만든 곡물 사료를 먹여 항상 맛있게 소고기를 만들고 있지만, 거친 풀을 먹는 소에게 고운 옥수수 사료를 먹여 반추위가 제대로 작동하질 못해 소가 괴롭다고 한다. 반추위에 고운 사료가 들어가 반추가 잘 되질 않으면서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풀 먹을 때 중성 상태이던 반추위가 산성 상태가 되어 새로운 변종 대장균이 발생되었다. 요즘 O-157 대장균이 발생해 리콜 사태가 미국에서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벼는 복날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벼의 꽃대가 하지 지나 초복이 되면 밑둥에서 올라오기 시작해 한 살, 중복 쯤에는 중간쯤 올라와 두 살, 말복 지나면 세 살 먹어 곧 이삭을 패 올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벼와 같은 과(科)인 피가 벼 옆에 딱 붙어서 함께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 놈은 벼와 아주 비슷하게 생겨 농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고 농부도 그놈의 뛰어난 위장술 때문에 가까이 가서 알아 볼 수 있다. 이 놈이 벼와 함께 복날마다 따라서 나이를 먹으니 복날 즈음에 농부는 이놈들 피사리하느라 뙤약볕에 논바닥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반나절만 지내다 보면 절로 진이 빠지니 몸보신을 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딱히 몸보신할 고기가 주변엔 없다. 개 말고.


개는 농경 사회에서는 제일 귀찮은 가축이다. 소는 일도 잘하고 돼지는 거름도 잘 만들고 닭은 달걀도 잘 낳아 참 소중한 가축들인데 개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짓는 일밖에 없다. 먹는 것도 사람하고 똑 같아 부잣집 아니면 똥 밖에 먹일 게 없으니 서민들 집에는 이름도 없는 똥개밖에 없다. 짓는 일도 요즘 같이 인심이 흉흉한 시절엔 중요한 일이겠지만 옆집 숟가락 숫자도 다 아는 공동체 사회에서 개가 짓는 일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뭐든지 좋지 않은 것에는 꼭 개 자를 붙였다. 개떡, 개복숭아, 개xx, 등등.... 우리 마을 아저씨 중에 풀 이름을 잘 아는 분이 있는데 어느 날 별로 예쁘지도 않은 귀찮은 풀이 있어 아저씨에게 무슨 풀인지 여쭤보니 곰곰이 보시다가 하는 말, “개풀이지!” 하고 자리를 피하신다.


그러나 유목, 목축 사회에서 개는 가장 소중한 가축이다. 소나 양을 지켜주고 몰고 다니는 뛰어난 일꾼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를 우리가 개장국으로 잡아먹으니 질겁을 할 수밖에...


더위가 찾아오는 하지 무렵을 서양에도 개날(dog day)이라 했다. 이집트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꼭 떠오르는 별이 있는데 그게 큰개자리 별의 1등성인 시리우스라는 별이다. 이 별이 떠오르면 나일강이 범람한다 하여 이 별이 뜨는 날을 개날(dog day)이라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에서 이 별 이름 또한 천랑성(天狼星)이라 하여 개와 같은 늑대 랑(狼)자를 썼다.

 
대서에는 아직 잡지 못한 풀과 마지막 전쟁을 치르는 철이다. 매년 반드시 장마 전에 꼭 풀을 잡아야지 해 놓고서는 꼭 놓치고 만다. 올해도 소만 망종 때부터 올라오는 풀들을 보면서 “올해는 기어코 너희들을 제압하리라!” 해놓고선 한 이틀 밭을 비웠더니 또 놓치고 말았다. 급한대로 풀에 약한 벼밭은 다 맸고, 들깨밭은 장마 초에 심었는데 벌써 풀과 함께 자라고 있다. 그래도 들깨는 모종을 심은 거라 아직 풀에 치이고 있지는 않아 여유가 좀 있다. 반면 직파한 서리태, 메주콩, 수수는 위태롭다. 콩은 그래도 아슬아슬 풀 속에서 버티고 있지만 수수가 영 괴롭다. 어제부터 수수밭을 매기 시작했는데 꼭 수수를 닮은 피들이 주변에 같이 올라와 햇갈리게 하여 더 신경쓰게 만든다. 지금도 빨리 이 글을 마치고 수수밭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마지막 풀도 아직 잡지 못했는데 가을 김장 농사 준비에 벌써 마음만 바쁘다. 며칠 전 배추밭으로 쓰려고 방치한 풀밭에 오줌을 잔뜩 뿌리고 부직포를 덮으려 했으나 급한 마음에 부직포만 덮어버렸다.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게 똑 같다. 좀 늦더라도 오줌을 뿌려 둘 것을..... 나중에 밑거름을 따로 하다보면 미리 해 두지 않아 몇 배의 힘을 들여야 하니 늘 같은 후회를 하곤 한다. 올해는 배추도 직파할 것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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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끝없는 고온다습의 시작



이제 본격적인 여름철이다.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 찾아오는 철이다. 요즘처럼 마른 장마라 해도 날은 습하고 덥다. 일도 많고 날은 무더워 건강을 최대한 주의할 때다. 다행스러운 것은 보리 고개를 지나 이제는 먹을거리가 풍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망종, 하지 때 수확한 밀, 보리도 창고에 가득하고 밭에서는 늦봄, 초여름에 심은 과일 채소들이 먹을 만큼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밀, 보리는 겨울을 나는 작물로 대표적인 음(陰)한 음식들이다. 뜨거운 양의 계절인 여름에 먹으면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양식들이 소서 때가 되면 맛이 아주 좋을 때다. 게다가 밭에서 나는 각종 채소 과일들이 농부의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때는 결코 놀고먹는 때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년 중 제일 바쁜 농번기다. 하지 무렵에 모를 낸 논에는 본격적으로 피가 자라 피살이를 해야 하고, 밭에도 무섭게 풀이 자라기 때문에 한눈 팔 틈이 없다. 하지 무렵 벼를 모내고 나서 바로 심는 콩, 팥, 조, 수수 등 곡식들은 소서 때가 되면 풀을 매주어야 한다.

6월 초 아직 거두지 않은 밀밭 사이에 서리태를 심었다. 이 씨앗은 경북 청송에 가서 구해온 이른바 귀족서리태라는 콩이다. 여느 서리태와 달리 쭉정이도 적고 메주콩처럼 단정하게 자라고 감자 그루작(후작後作)으로 심을 수 있는 콩이다. 맛도 비린내가 적어 뛰어난 편이다. 그런데 작년에 똑 같이 밀 사이에 심은 메주콩에 비해 새 피해가 컸다. 반은 넘게 쪼아 먹었다. 흙 속에 들어간 콩 씨앗을 먹는 게 아니라 싹이 난 떡잎을 쪼아 먹는다. 그러니까 비 예보를 잘 들었다가 비 오기 직전에 심어 빨리 속잎까지 발아되도록 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장마 때 심는 것이다. 그루작으로 잘 되는 것이면 더 좋다. 경험적으로 볼 때 비를 한번 맞는 것 갖고는 부족하다. 파종하고 바로 비 맞고 3~5일 지나 한 번 더 비를 맞아야 좋다. 이번엔 특히 밭벼와 옥수수, 동부의 파종이 정확히 그 일정에 들어맞았다. 이 녀석들을 파종하고는 바로 비가 오더니 한 3일 후쯤 또 비를 맞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싹을 내밀지 않았는데 오후의 비를 맞고나서 다음날 가보니 일제히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루작으로 메주콩을 요번엔 밀 수확하고 나서 그 자리에 심었다. 사이짓기를 못한 것이다. 혹시나 또 새들이 먹어버릴까 우려되어 내 나름대로 작전 짜기를 오줌에 버무린 톱밥으로 복토를 한 것이다. 살짝 흙으로 덮고 그 위로 한주먹 톱밥을 덮고 또 그 위에 풀 한줌으로 위장을 했다. 말로 하니 복잡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우선 딸깍이(귀농1호라는 풀 제초기)로 풀을 다 매고 나서 한 번에 괭이로 심을 구멍을 내고 또 한 번에 콩 씨앗을 구멍마다 세알씩 넣었다. 그리고 오줌에 버무린 톱밥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목발로 흙을 살짝 덮어주고는 그 위에다 톱밥을 덮고 또 괭이로 구멍 팔 때 사이사이에 준비해둔 마른 풀을 목발로 슬쩍 덮어준다. 사실 딸깍이로 풀 매는 데 시간이 제일 많이 걸렸지 구멍파고 파종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순식간에 해 치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파종했더니 다음날 비가 장맛비가 내렸고 4일 뒤에 또 비가 내렸다. 속성 발아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파종 후 일주일 뒤에 가보니 빠른 것은 속잎까지 발아가 되고 있었다. 새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다행히 서리태에 비해서는 훨씬 덜했는데 대략 20%는 떡잎을 잘라먹은 것 같았다. 잠깐 옆밭에서 들깨 모종을 심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콩밭을 서성이는 게 보였다. 가보니 그새 또 콩 떡잎을 잘라먹은 것 같다. 산란기인 5월이 지나면 덜 먹는다 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구는 6월이 되면 산에 먹을 게 많아 밭의 콩을 덜 먹는다고도 했지만 요즘엔 산이 우거져 먹을 것을 구하기가 옛날 같지 않아 여전히 콩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목초액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얼른 분무기에 목초액 100배로 희석한 물을 담아 가져와 싹들에 뿌려주었다. 다음에는 톱밥을 오줌으로만 버무리지 말고 목초액으로도 함께 버무리고, 뿐만 아니라 콩 씨앗도 목초액 희석한 물에 담갔다 심어야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다.

새가 잘라먹은 서리태 빈 자리에다가는 수수를 심고 완전히 삭은 거름으로 복토를 해주었는데 기대한대로 싹들이 아주 잘 올라왔다. 그래서 다음엔 아예 콩과 수수를 섞어서 심는 것도 궁리해보기로 했다. 목초액을 처리했을 경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안 먹지는 않을 것 같고, 같이 심은 수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절로 섞어짓기도 되니 땅의 효율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른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내 생각엔 늦봄, 초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때 가뭄이 와야 그것을 메우려 장마가 확실하게 올텐데 가물지 않으니 장마도 별로 힘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이상기후 현상이라 볼 만도 한데 무조건 이상기후라 하면 괜히 마음만 불안해져서 나는 별로 그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기후가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덜할 때도 있고 더할 때도 있는 법이니 호들갑 떨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마른 장마라 하지만 후덥지근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하도 더워 물 한번 쫙 끼얹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물이야 언제나 고마운 존재이지만 요맘 때 물은 더더욱 고마운 님이다.

소서 때 찾아오는 음력 명절로는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날이 있다. 말 그대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는 명절이다. 이 시절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는 피서 문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유두날은 우리말로 물맞이라고 한다.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고 유두음식을 먹으면 더위를 덜 타고 여름을 잘 날 수 있다 했다. 유두음식으로는 밀국수와 햇과일이 있다. 밀국수는 얼마 전 수확한 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니 자연히 제철 음식이다. 밭에서는 참외, 수박, 오이 등 막 맺히기 시작하니 햇과일도 풍부할 때다. 게다가 이치에 맞는 것이, 밀은 대표적인 음 기운의 음식이므로 뜨거운 여름에 먹기 좋고 과일 자체도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고 자라지만 그 속에는 찬 기운을 머금고 있으니 여름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릴 때 뜨거운 여름날 퇴계원에서 농사짓던 고모네 놀러 갔다 여름 햇살을 내리 쬔 수박을 밭에서 그냥 깨뜨려 먹었을 때 얼마나 시원했던지 참으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 그뿐이랴. 오이를 채 썰어 시원한 물에 먹던 오이 냉국, 또 오이를 소금에 절여 먹던 오이지, 부추와 함께 버무려 만든 오이소박이 등이 이 시절 여름을 잊게 해주는 제철음식들이었다. 참 이렇게 생각해보면 냉장고도 꼭 필요한 기계라 생각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냉장고 없으면 항상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냉장고 때문에 오히려 오래된 음식을 먹거나 철을 잊어버린 음식들을 먹게 된다.

내일 또 밭에 가서 마무리 못한 풀매기를 마저 해야 할 생각을 하니 좀 지겹기는 하지만 땀 흘린 후 먹을 막걸리를 생각하니 약간은 마음이 설레인다. 날이 밝으면 어서 풀매러 밭에 가야지...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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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 장마의 시작



하지에는 망종 때 못한 밀, 보리 수확과 마지막 모내기를 한다. 예전엔 “하지 전삼, 후삼”이라 해서 하지 근방에 마지막 모내기를 하곤 했다. 보통은 망종 전후해서 모내기를 하는데 장마 전 가뭄이 길어지면 하지 즈음해서 찾아오는 장마 직전에 모내기를 한 것이다. 만일 하지가 되었는데도 비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으면 대체 곡식으로 메밀을 심거나 조를 심기도 했다.


이래저래 하지가 되면 장마에 대비하랴 혹시라도 있을 가뭄에도 대비하랴 연 중 제일 바쁜 농번기철이다. 옛날엔 뽕잎 따다 누에도 치랴, 밭에서는 풀들이 힘차게 자라 풀도 매랴, 좀 지나면 감자도 수확하랴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다.


나도 어제 밀 수확하고 바로 마늘, 양파도 수확했다. 감자는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수확하기로 했다. 강원도에서는 하지에 수확한다고 하여 하지 감자라 하지만 여기서는 하지에 수확하기에는 감자가 아직 덜 영글었다. 물이 많이 필요한 때라 약간 장맛비를 맞추고 잠깐 비가 갠 사이에 캐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콩, 수수를 심지 못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은 진짜 콩밭에 가 있다.


옛날엔 보리를 많이 심었지만 지금은 보리를 찧을 데가 없어 대신에 밀을 몇 년째 심고 있다. 밀은 탈곡하면 바로 겉껍질이 벗겨져 현미처럼 먹을 수 있어 좋다. 방앗간에 가서 밀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정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무튀튀하고 푸석푸석하지만 구수한 맛이 아주 좋다. 전 부쳐 먹으면 더 좋다.


밀 사이에는 곡우 지나 뿌려 놓은 밭벼가 세치정도 자라있다. 이른바 사이짓기다. 일주일 전에는 밀 사이에 서리태를 심었다. 새들의 산란기인 5월이 지나면 새 피해가 덜 하다 하여 6월 초에 심은 것이다. 작년엔 5월말쯤 똑 같이 밀 사이에 심었다. 그런데 발아율이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작년이 더 좋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산란기가 지났다 해서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니 너무 방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 판단으로는 서리태 심고 비가 별로 오질 않아 발아가 늦은 탓도 크지 않았나 싶다. 최대한 발아 속도를 빨리 하여 떡잎에서 속잎까지 나오게 해야 할 것 같다. 떡잎까지는 잘라 먹지만 속잎이 나오면 이제는 새가 건들지 않기 때문이다. 밀을 거두고 난 자리에다가는 늦콩, 곧 그루콩을 직파할 계획이다. 이번엔 장맛비가 자주오니 발아 속도를 빨리 하는 전략에 지장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밭벼 사이짓기는 대성공이다. 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짓기가 아닌 맨 밭에 직파했을 때 비하면 거의 풀이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냥 직파하면 눈을 부라리고 무성한 풀 속에서 벼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가면 풀도 두세번 매주면 충분할 것 같다.


밀 사이에 콩과 벼를 심는 이른바 사이짓기는 전통농법이다. 그동안 전통농법을 찾아 취재도 다니고 실험도 하면서 최종적으로 얻은 결론이 사이짓기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이다. 특히 밀이나 벼 같은 경우는 점뿌림할 때 콩처럼 세알정도 넣는 정도가 아니라 30알 이상씩 듬뿍 넣는다. 그렇게 하면 너무 씨 낭비가 심한 것 아니냐 하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점뿌림하기 전에는 주로 줄뿌림을 했는데 오히려 씨가 반밖에 들지 않았다. 줄뿌림할 때는 씨 간격을 1센티미터 되게끔 뿌리다보니 더 씨가 많이 드는 반면 발아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러다 어느 지방에 가서 오래 농사지으신 한 어른신께 점뿌림해야 한다는 얘길 듣고 작년 가을에 밀을 그렇게 심었다. 그랬더니 씨도 적게 들거니와 발아율이 아주 좋았다.


점뿌림을 하면 발아율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보온이 잘된다. 발아하며 생기는 발아열이 옆에 붙은 씨의 발아를 촉진시켜주는 것이다. 엿기름 만들 때 보리나 밀 씨를 싹을 틔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싹틀 때의 그 온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놔두면 고온의 발아열로 밀 싹들이 망가질 수 있어 찬물을 계속 끼얹어주어야 할 정도다.


또 많은 씨를 점뿌림하면 서로 밀착되어 있다 보니 밑으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뿌리를 깊게 내리면 뿌리의 힘이 좋아 나중에 위로 싹을 밀어 올리는 힘도 좋아진다. 그러나 너무 많은 씨를 넣었기 때문에 나중에 솎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나도 밀싹이 무성하게 난 것을 보고 저러다 일일이 솎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보니 적당히 자기들끼리 균형을 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확하면서 보니 오히려 씨가 많이 들어간 포기들이 더 튼실하고 이삭도 많이 달렸음을 알 수 있었다.


밀 사이에 뿌린 밭벼도 마찬가지다. 마을 아저씨가 도와준다고 같이 파종했는데 나처럼 씨를 많이 넣지 않았다. 보통 오래 농사지은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도와주는 분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 놔두었더니 역시 내 예측대로 적게 넣은 쪽은 발아가 그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밀 사이만이 아니라 완두콩, 강낭콩 사이에도 밭벼 씨를 넣었다. 당연히 뭉텅이로 씨를 넣었더니 아주 발아가 잘되었다. 콩 밭 사이에 넣으니 거름도 아낄 수 있어 좋다. 사실 완두, 강낭콩은 아예 거름조차 넣질 않았다. 작년에 배추 심었던 곳이라 그리 했다. 그러나 밭벼는 웃거름을 줄 계획이다. 그러나 밑거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만 갖고도 나에게는 공짜 농사나 다름없다.
밀이나, 벼를 사이짓기 할 때도 밑거름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밭에 밀이든 벼든 곡식이 심겨져 있으니 밑거름을 전면 시비할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씨를 점뿌림으로 넣고는 거름으로 복토를 하는 것이다. 단 완전히 숙성되어 흙처럼 된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거름 피해가 없다. 그것으로 밑거름은 끝이다. 그리고 자랄 때 웃거름으로 오줌을 두 번 뿌려 준다. 거름을 밭 전면에 시비 하지 않고 과녁을 정해서 주니 거름 손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정리를 하면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의 장점은 풀을 덜 매고, 거름도 아끼며 땅을 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곡식이 항상 심어져 있으니 땅을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을 우리가 살려야 할 전통농법의 백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사이짓기에서는 꼭 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콩은 스스로 거름을 만드는 곡식이라 땅을 비옥하게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사의 성격을 가장 크게 결정짓는 기후의 특징은 장마다. 장마철을 어떻게 대비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한해 농사 전략의 최대 과제다. 장마가 우리 농사를 규정한 가장 큰 특징은 논과 곡식 농사다. 일 년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장맛비에 피해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잘 크는 것들이 벼와 곡식들이다. 그러나 채소들은 장마에 맥을 못 춘다. 고추 같은 경우는 장마 지나면 꼭 탄저병이 역병과 함께 찾아온다. 오이도 노균병 같은 게 찾아와 한꺼번에 몰살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을 나는 과실채소들이 다 그렇다. 그래서 장맛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설치한다. 도시 근교와 우리 시골을 볼썽사납게 만들고 있는 수많은 비닐하우스의 물결도 다 이 때문이다. 밥상에 채소가 그만큼 늘었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육식이 는 것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장맛비가 무서워 벼를 비닐하우스에다 재배하는 경우는 없다. 다른 곡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장맛비를 논에 가두어야 벼가 쑥쑥 큰다. 벼도 크지만 엄청난 비를 논에 가두니 홍수 피해도 막아준다. 일석 몇 조나 되는 효과다. 곡식 위주의 이런 농사는 그대로 우리 밥상에도 반영되어 곡식 위주로 고봉밥을 먹고 살았다.

하지 지나면 장마도 문제지만 무더운 더위도 문제다. 고온다습한 우리의 여름은 곡식을 잘 자라게 해 줄지는 몰라도 사람 건강에는 별로 좋은 환경이 못 된다. 식중독 같은 전염병이 좋아하는 환경인지라 먹을 것도 조심해야 하고 과로와 스트레스도 조심해야 할 때다. 기름 도 비싸진 요즘 돈 들여 힘 들여 놀러가기보다 흙냄새 풀냄새 물씬 나는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한 후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여름을 이기는 것도 좋은 피서법일 것 같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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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芒種)-풀과의 싸움이 시작되다



이제 풀이 지긋지긋해지는 때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다 먹을 것으로 보이던 놈들이 이제는 작물을 망치고 농부의 육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놈들로 변했다. 소리쟁이, 명아주, 비름, 질경이, 고들빼기, 둑새풀 등등... 그래도 향내 진한 꽃이 농부의 피로를 살짝 덜해준다. 찔레꽃의 향이 지나더니 밭 한 구석에 심은 떼죽나무 꽃이 만발하여 그 향이 망종이 다되도록 그칠 줄 모르게 진동을 했다.


5월 5일 입하 절기에 맞춰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날로 정한 것을 보면 그 분은 분명 절기나 농사를 알았던 듯하다. 입하가 지나면 만물이 어린이 자라듯 쑥쑥 커간다. 그에 맞춰 밭의 풀들도 힘차게 쑥쑥 자라 올라온다. 이 풀을 장마 전에 잡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장담하지 못한다. 힘들더라도 망종 근방에서는 모든 풀을 다 매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마 지나 한 번 더 매 주어야 풀 대책이 확실하게 설 수 있으니 망종 때쯤 풀을 다스리지 못하면 실농(失農) 가능성이 더 높아질 뿐이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유독 변덕이 심해 아직 장마가 오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온다. 우리 바람들이 농장의 막내 농부 김석기가 올해 무자년 날씨를 예측했듯이 기습 호우와 한파가 오락가락 한다더니 그 말 그대로다.(텃밭보급소, 도시경작, 14번 “무자년을 꼽으며” 참조) 이른 봄에는 여름날처럼 덥고 건조하여 여기저기서 산불이 나고, 곡우가 지났는데도 늦서리가 두 번이나 오질 않나, 입하 지나면 오기 마련인 가뭄 대신에 한여름 장마처럼 비가 자주 온다.


때늦은 한파에 냉해를 입고, 때 이른 잦은 비에 풀이 드세다. 강낭콩, 완두콩 밭 사이에 사이짓기로 밭벼를 심으려 풀 매러 갔더니 벌써 작물들을 위협할 만큼 풀들이 자라있다. 풀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랐다. 그나마 밀 사이의 풀은 훨씬 덜하다. 밀이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풀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진 때문이리라.


망종(芒種)은 까끄라기 망(芒)이 있는 작물을 거두거나 모내기 하는 철이다. 곧 밀, 보리와 같은 작물을 거두고 벼를 모내기 하는 철인 것이다.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고 밭 근처에는 어서어서 모내기 하라고 오동나무꽃, 이팝꽃, 찔레꽃, 떼죽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망종 근방에는 우리 겨레의 제일 큰 명절인 단오(端午)가 있다.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단오는 4대 명절(설날, 추석, 한식, 단오) 중에 유일하게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지 않는 마을 축제다. 대신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대표적인 마을 제사로는 강릉단오제가 제일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해와 달을 숭배하는 농경민족이었는데, 달을 숭배하는 잔치가 대보름이라면 해를 숭배하는 잔치가 바로 단오다. 홀수가 겹치는 날짜는 양의 기운이 승한 날인데 특히 음력으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이 더욱 양기가 배가는 되는 날이다. 이중에서 5월 5일이 제일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친 것이다. 곡물 중에서도 양기가 센 벼를 이 때 모내기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단오는 모내기를 위한 벼농사 축제라 할 수 있다. 단오를 기점으로 모내기를 시작하여 본격적인 여름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단오 전에 모내기를 끝내 단오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단오 때 잔치를 하고 이후 모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마을 두레 회의를 열어 벼 모내기 순서를 정한다. 두레 농악패도 조직하여 흥겨운 잔치를 만든다.


벼 모내기 두레는 철저히 이타적인 공동체 방식이다. 보통은 지주의 논을 제일 먼저 모내기 하고는 마을에서 모내기하기 제일 어려운 논부터 시작한다. 예컨대 몸 불편한 노약자, 과부 등의 논을 먼저 모를 낸다. 말하자면 내것, 네것 가리지 않고 마을의 모든 논을 내 논처럼 여기며 모를 내는 것이다.


반면 품앗이라는 공동체는 이기적인 방식이다. 내가 도움 받은 만큼 돌려준다. 노동력이 적은 사람에게 이틀 도움을 받았다면 노동력이 멀쩡한 사람은 하루만 도와주면 되는 식이다. 소를 빌려와 하루를 일을 해주었다면 건장한 총각의 노동력으로 3일은 일을 해주어야 되갚음이 된다. 그만큼 소의 노동력이 대단했던 것이리라. 두레는 주로 벼농사, 논농사에 적용이 되었다면 품앗이는 주로 밭농사에 적용되었다.


우리의 마을 공동체는 이렇게 일방적인 이타적 방식만을 추구한 게 아니라 이기적 방식도 적용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이타적이기만 해서도 안되고 이기적이기만 해서도 안되니 적절한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단오날에는 수리취떡이나 각종 백가지 나물을 해먹는다. 단오가 되면 이런 나물을 해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단오 즈음이면 꽃대가 올라오거나 쇠져서 나물을 먹을 수가 없다. 또한 단오가 지나면 덥고 습한 장마철이 오기 때문이 식중독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쓴 나물을 먹은 뜻도 있다.


단오 즈음이면 궁핍한 보리고개가 절정이다. 춘궁기의 마지막인 것이다. 단오가 지나면 밀, 보리도 수확할 수 있고 이른 봄에 심은 잎채소들도 먹을만큼 자라있다. 그럼 단오 전에는 무얼 먹고 살았을까? 작년 거두었던 식량도 바닥이 나고 묵나물, 김장김치도 동이 났다면 먹을 게 없으니 보리고개는 봄에 반드시 겪어야 할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였다. 그 높은 고개를 힘들게 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들나물, 산나물 들이었다. 시고, 쓰고 질기기만 한 나물들이다.


그런데 사시사철 항상 배부르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는 수확의 계절이라 그러지 않아도 먹을 게 많다. 많이 먹어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동면에서 깨어나 봄을 맞이하면 세상엔 먹을 게 하나도 없다. 지난 가을에 쟁여둔 광에도 먹을 게 떨어졌다. 그 때 먹는 게 바로 나물들이다. 요즘엔 웰빙식이다 해서 옛날 가난한 음식이 인기를 끄는 시절이 되었다. 그 가운데 곤두레 밥이라 하면 가난을 최고로 상징하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곤두레라는 산나물을 주재료로 하고 귀한 곡식 보리 몇 알, 그리고 나머지는 물과 된장 풀어 죽을 해 먹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봄에는 이런 시고 쓴 나물을 먹어주어야 무덥고 뜨거운 한여름을 이겨나갈 수 있다. 천고마비의 가을처럼 봄에도 배 터져라 먹는다면 과연 여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단오는 대단한 마을 잔치였다. 그 자체가 공동체였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지켜가는 가장 큰 잔치였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백성들의 공동체 문화가 보장되었지만 식민지 시대가 되자 일본 사람들은 이를 불안해했다. 지배의 관점에서 볼 때 백성들의 공동체는 저항의 기반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일제가 만주 전쟁을 일으키고는 조선을 전쟁의 전면적인 동원체제로 재편하면서 단오도 강제로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사라진 명절이 되고 말았는데 일 부지역, 곧 강릉과 같은 곳에서 단오 축제를 이어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망종은 까끄라기 곡식의 철이다. 거둘 것은 거두고 심을 것은 본격적으로 심는다. 벼에서부터 수수, 조, 기장, 콩, 옥수수, 고구마 등을 심는다. 급한 사람은 5월에 다 심었지만 새들의 공격에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철을 잊고 뭐든지 일찍 심는 게 대세가 되어버렸다. 철을 잊으면 작물도 덜 건강하게 자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밭벼 일부를 밀 사이에 심었지만 작년과 달리 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밀 사이를 뒤지며 볍씨를 까먹었다. 그래도 많이 사라나 싹이 나있다. 나머지는 새의 산란기를 피해 심으면 새 피해가 덜하다 하여 망종 즈음에 심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들은 다 심었는데 나마 늦게 심으려니 왠지 은근히 걱정이 인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 하루라도 빨리 풀을 매어 곡식들을 심으려 한다. 게으른 농부가 오히려 덜 손해를 본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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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小滿), 작은 여름날의 꿈



소만(小滿)은 점차(小) 만물이 생장하며 가득 찬다(滿)는 뜻이다. 곡우, 입하까지만 해도 산야에 연녹색의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신록이 힘차게 올라와 온 세상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곡우 비가 오고 나면 입하 지나 가뭄이 찾아온다. 이 가뭄은 마치 하지 이후 찾아오는 장마를 불러들이는 전야인 것 같다. 장마를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 비우기라고 할까? 비워야 채워지듯이 말이다.


가뭄이라고 하더라도 만물이 자랄 것은 다 자란다. 산 속 나무들도 새순이 어느새 신록으로 변하여 이제는 나무들의 개성들이 파랭이들로 다 가려져버린다. 온통 파랄뿐이다.


게으름 피우다 고추를 곡우 지나서야 겨우 직파했다. 제대로 한다면 청명 지나 바로 해야 하는데 날씨도 이상 저온이 지속되어 그 핑계로 하루 이틀 미뤘더니 그렇게 되었다. 늦었다고 마른 땅에 그냥 뿌릴 수 없어 마냥 비만 기다리다 곡우 이틀 뒤에 비 온다기에 이왕 늦은 것 비에 맞춰 심어야지 했다.


비는 잘 맞추었는데 비가 오고 나더니 늦서리가 찾아왔다. 보통 곡우 비는 서리를 가져가기 마련인데 이건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늦게 심은 것도 억울한데 서리까지 왔으니 참으로 하늘은 게으른 농부를 도와주질 않는다. 이번 늦서리는 일선 농가에 냉해를 많이 입혔다. 감자 싹도 동상을 입혔고 일찍 밭으로 나간 여름 작물 모종들도 피해를 입혔다. 나는 항상 텃밭 회원들에게 입하에 모종을 내라 하는데 이를 듣지 못한 신입 회원들이 시중에 벌써 나온 모종들을 보고는 조급증이 발동하여 피해를 보았다.


올 봄 날씨만큼 변덕스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사흘 전에는 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봄 잠바를 입고 있어도 으스스 했다. 다음날 괴산에서 농사짓는 선배를 만났더니 그곳엔 서리까지 내렸다고 한다. 이른 봄에는 여름 날씨처럼 더워 모종 내기를 서두르게 만들더니 게으름 덕에 냉해를 보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머쓱하게 만든다.


하여튼 그렇게 심은 고추가 추운 비를 맞고부터는 전혀 비가 오질 않았는데 스스로 싹을 틔웠다. 참으로 기특했다. 직파하여 스스로 싹을 틔운 놈을 보면 그 기운이 남다르다. 확실히 모종 키울 때 강제로 싹 틔운 놈하고는 색택이나 자태가 자못 다르다. 잡초와 같은 야생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봄 가뭄이 심하면 보리나 밀 이삭이 잘 익을지는 몰라도 감자나 마늘, 양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땅 속의 열매를 영글게 하려면 물이 아주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추나 상추 등 잎채소들도 물이 절실하다. 그런데 입하 이후 비가 자주 오면 상황은 역전된다. 이 시기에는 그냥 적당히 조금 오는 게 좋다. 며칠 전 일요일에 온 비는 그래서 아주 단비였다. 모든 갈증을 다 해갈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소만 다음날 오늘 아침 일기에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하더니 진짜로 하늘이 꾸물꾸물 거려 금방 비올 듯 했다. 진짜로 비가 오면 이 비는 귀찮은 비 일뿐이다. 저번 비로 충분하여 이젠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일손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만은 만물이 점차 생장하는 시기이므로 이에 농사도 발 맞춰 나가야 한다. 벼 모판에도 모들이 힘차게 힘을 받아 올라온다. 작년 가을에 심어둔 밀, 보리의 이삭도 익어가기 시작하고 이른 봄에 심어둔 잎채소들도 빠른 것은 솎아 먹을 정도가 되었다. 나물들도 봄에 꽃을 피운 것들은 열매를 매달아 익히고 있고, 여름 빨간 꽃들이 녹색의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불긋불긋 피워나기 시작한다. 밭 둘레에는 찔레가 꽃보다 먼저 진한 향내로 인사를 한다. 아침 저녁에는 찔레의 진동하는 향내로 취할 것만 같다. 오늘 밭에서 만난 한 회원은 밭에 일찍 도착했더니 찔레향이 차 안으로 막 쏟아져 들어오더라고 감탄을 연발한다. 찔레향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말이 참으로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벼 모내기는 망종 근방에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소만쯤이 되면 대부분 모를 낸다. 논에 나가보면 이앙기로 모들 내느라 정신이 없다. 옛날에 비해 모를 빨리 키우기도 하거니와 이앙기로 모내기 적당하게 어린 치묘(穉苗)를 모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천수답이 아니라 다들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내 논물을 담으니 물 걱정도 없어 일찍 모들을 낸다.


그러다보니 여러모로 벼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어려운 점이 생긴다. 비유하자면 미숙아를 일찍 젖 떼어 스스로 크라고 하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 유기농가에서는 옛날처럼 성묘(成苗)로 키워 모를 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묘로 모를 내면 건강한 모를 날씨도 충분히 따뜻할 때 모내기하게 되고 또 물도 깊게 될 수 있어 보온에도 유리하고 물을 이용한 제초에도 유리하다. 게다가 자운영을 녹비 작물로 재배할 때 늦게 모내기 하면 자운영씨가 절로 떨어져 가을에 따로 파종하지 않아도 될 것을 방금 코투리가 달린 것을 갈아엎어버리니 가을에 다시 씨를 사다 넣어주어야 한다. 자운영 씨를 매년 그렇게 사오는 돈이 자그마치 몇십억원어치나 된다고 한다.

 
소만 절기에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농작업에는 풀매기가 있다. 풀은 다른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해 더욱 힘차게 생장을 거듭한다. 이른 봄에 나온 잡초들은 벌써 씨를 맺기 시작한다. 꽃다지, 냉이, 소리쟁이, 명아주, 보리뱅이 등. 이 때 잡아주지 않으면 풀씨도 맺혀 내년에 더 많이 풀이 발생하기도 하거니와 장마 근방에 가서 잡아주려 하면 힘이 몇 배 더 든다.


풀매기와 함께 더불어 작물에게는 북주기를 꼭 해야 한다. 북주기는 풀제거와 함께 작물을 북돋아주는 효과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는 가뭄 예방 효과도 있다. 흙에는 무수한 모세관이 연결되어 있어 흙 속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건조를 촉진한다. 그런데 호미나 괭이로 북주기를 하면 이런 모세관을 끊어주어 건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주기는 일타삼피 효과, 그러니까 일석삼조 효과가 있는 셈이다. 열심히 북주기를 할 때다. 북주고 나서는 꼭 오줌 등으로 웃거름 주는 것을 잊지 말자.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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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점점 바빠지는 농번기



입하가 되니 이제 냉해에 대한 걱정이 가신다. 이번 곡우에도 영락없이 이상 기후가 찾아왔다. 곡우 전까지만 해도 여름 같은 더운 날씨가 계속 되더니 곡우 지나 내린 곡우 비로 추운 날씨가 닥치고는 영락없이 서리가 내렸다.


원래 곡우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인데 이번엔 거꾸로 마지막 서리를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4월말까지는 절대 냉해를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몇몇 성급한 회원들이 시중에서 고추, 토마토 모종을 갖다 심어 결국엔 피해를 봤다. 참으로 농사는 당해봐야 알고 실패가 참된 스승인 것 같다.


특히 설날이 입춘 뒤에 오는 해의 봄은 입하가 올 때까지 안심해선 안된다. 온난화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온난화란 무조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변덕 날씨가 심해진다고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마을 어르신이 일러주시기를 음력 3월 20일게 쯤 서리가 내리면 반드시 풍년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음력으로 3월 19일인가 20일 쯤에 서리가 내렸으니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올해도 풍년은 들 것 같다. 변덕 날씨만 잘 피하면 말이다. 이때 서리가 오면 활동하기 시작한 벌레들이 뒤통수 맞아 넉아웃되니 풍년들 수밖에....하긴 밀이 예년에 비해 튼실한 이삭을 패고 있어 조짐이 좋기는 하다.


입하가 되면 이젠 밭의 봄나물들, 그러니까 냉이, 씀바귀, 민들레 들은 이제 꽃도 피우고 씨를 맺고 있어 먹을 게 없다. 그렇지만 실망만 할 일이 아니다. 대신에 명아주, 비름, 질경이 들이 그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맛있는 풀이기도 하지만 작물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풀이기도 하다. 이때쯤 되면 봄에 심은 작물들은 이 풀들과 경쟁을 하며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바지런한 농부들은 그저 잡초만 매지 않고 이 풀들도 거두어 맛있는 저녁 나물 반찬을 준비한다.


사실 이때쯤이면 조금씩 먹을 게 많아진다. 시금치, 얼갈이, 열무 들도 솎아 겉절이 무치면 군침이 마구 돈다. 7, 8년 전쯤 상주에서 머우 한포기 얻어다 심은 게 얼마나 번졌는지 좀 따다 삶아서 쌈을 해먹었더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지금이 머우 쌈은 제일 맛이 좋을 때다. 적당히 쌉싸름하면서 그 뒷맛이 참 일품이다. 쌈장으로는 멸치국물에 양념을 다져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몇방울 떨어뜨려 그것으로 싸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농사를 짓고부터는 이놈들 맛에 익숙해져 점점 고기가 멀어진다. 고기는 먹을수록 고기 분해효소가 많아져 더욱 고기를 당기게 한다더니, 반대로 먹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분해효소가 줄어들어 당기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풀 맛의 진가를 맛보면 고기 맛은 진짜로 저리 가라다. 향기와 아삭한 맛, 그리고 남는 입안의 개운함, 어디 그뿐인가, 속편한 뱃속과 마지막 쾌변까지 선사해주니 여러모로 좋기만 하다.


그런데 이 풀들이 무조건 고마운 것은 아니다. 작물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때를 그냥 넘기면 작물은 반드시 잡초에 치여 힘을 쓰지 못한다. 열심히 풀을 매주어야 하는 것이다.


풀만 매주면 안된다. 호미로 흙을 긁으며 북도 주고 더불어 반드시 웃거름도 주어야 한다. 모든 작물은 이 작업, 곧 풀매고 북주고 웃거름 주는 작업을 두세번은 해주어야 한다. 농작업의 제일 중요한 기본 작업이라 보면 된다. 이 때 풀 매는 것을 어려운 말로 중경제초라 하는데 이런 말은 몰라도 농사짓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쨌든 풀을 한번 매주는 것은 거름 다섯 번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다. 북을 주는 것은 흙을 작물 포기 주변으로 모아주어 작물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표토를 긁어서 표토에 형성된 모세관을 끊어주기 때문에 그를 통해 날아가는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웃거름까지 마지막으로 주면 작물을 힘차게 자랄 일만 남았다.


요맘때가 되면 잡초만이 아니라 벌레들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린 잎과 줄기와 뿌리를 갉아먹는 놈들이 많아진다. 또 봄가뭄이 시작되기 때문에 벌레가 더한다. 작물의 액즙을 빨아먹어 갈증과 요기를 해결한다. 진딧물도 많아지고 배추잎 갉아먹는 무잎벌레, 고추모종 잘라먹는 거세미, 땅 속에는 굼벵이와 땅강아지가 많아져 뿌리와 줄기를 갉아 먹는다. 감자잎 좋아하는 28점 무당벌레도 많아져서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막 나타난다.


그러나 어쪄랴? 농약도 칠 수 없고, 유기농자재는 비싸고 참으로 대책이 잘 보이질 않는다. 천상 목초액이나 액비, 식초나 아니면 담배꽁초 우린 물, 우유, 요구르트 등이라도 써봐야지.


나도 여러 가지 써봤지만 제일 좋은 것은 이런 것을 안쓰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안써도 될 정도로 흙을 잘 가꾸면 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권하고 싶은 것은 로타리를 치지 않는 것이다. 섣부르게 무경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400평의 작은 밭이라 어렵지 않게 무경운을 실천하고 있지만 많은 평수에 그런 방식을 적용하기란 만만치 않다. 면적이 넓다면 쟁기질을 권하고 싶다. 쟁기질이든 무경운이든 제일 중요한 핵심은 흙의 떼알구조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흙 속과 표토와 지상부를 관통하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한 종이 우점하는 현상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로타리는 흙을 밀가루처럼 만들어 흙에 형성된 다양한 미생물 집, 지렁이 집, 물구멍, 공기구멍을 다 깨뜨려 균형이 깨진다. 생태계에서 균형이 깨지면 개체수가 많은 놈들이 우점한다. 초식들이 대표적이다. 초식벌레는 다 해충이다. 게다가 유기물을 함께 넣고 로터리를 치면 땅 속 벌레들은 신난다. 그 유기물을 먹으러 마구 달려드니 제 세상 만난 것이다.


며칠 전 봉화에 취재 가서 2천5백평을 무로터리, 무비닐로 농사짓는 선배를 만났다. 흙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병해충 별로 걱정하지 않고 농사짓고 있는 분이었다. 거름도 집에서 나오는 똥오줌과 음식물 등의 자가퇴비로 쓰고 있었다. 그런 흙에서는 병충해만이 아니라 마늘과 양파를 전혀 보온 대책을 취하지 않고 그냥 흙에 심었는데도 겨울을 거뜬히 넘겨 지금은 풍년을 기약하며 힘차게 자라고 있다. 살아있는 비옥한 흙은 추운 겨울의 동해도 막아주는 것이다.

 
입하가 되자 작년에 심은 밀이 본격적으로 이삭을 패고 있다. 나는 입하 전, 그러니까 4월말에 밀 사이에 골을 괭이로 타서 밭벼를 심었다. 이른바 사이짓기다. 골에다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볍씨 2~30알을 점뿌림하고는 완숙된 퇴비로 덮어주었다. 이때쯤이면 봄가뭄이 들어 씨앗이 발아하기 힘들다. 그러나 다 자란 밀 사이는 덜 건조하여 싹 나는 데 유리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은 밀 사이짓기로 밭벼를 직파하고 나머지 반은 200구 짜리 포트에다 모종을 길러 모를 냈는데, 역시 모종 낸 것보다 직파한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이번엔 방식을 바꿔 둘 다 직파를 하되 하나는 4월 말 밀 사이짓기로 직파하고 하나는 장마 직전에 밭에 풀매고 고랑 내어 그냥 심을 계획이다.


이번엔 이웃과 함께 30평 되는 논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종 볍씨를 뿌렸는데 역시 직파 점뿌림을 했다. 토종 벼는 사람 허리 이상으로 커서 꼭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직파를 해서 직근을 깊게 내리게 하여 지상부를 적게 크게 하면 쓰러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줄뿌림이나 흩어뿌림이 아닌 밀식으로 점뿌림을 하면 볍씨들이 서로 부대끼니 뿌리를 밑으로 깊게 내린다. 싹이 나면 한번 풀을 매주고 물을 댈 계획이다. 일종의 건답직파를 하고 무논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이 어느정도 차면 우렁이를 넣어 제초를 맡기려 한다. 제대로 계획대로 될지 자못 기대가 되는 실험이다.


이래저래 입하가 되니 농번기가 참으로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마음이 들떠있어 기분은 좋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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