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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와 농부권

국제 규정이 농부의 씨앗에 영향을 주는 방법



Peasant Seeds Network

Réseau Semences Paysannes (Peasant Seeds Network) is a French network made up of over 50 farmer and national organic agriculture organisations, as well as specialistes, artisans, farmers, seed-producers and nurseries, and associations for the development and conservation of cultivated biodiversity.

Contact: Réseau Semences Paysannes
Cazalens 81 600 Brens France - Phone: 33 (0)5 63 41 72 86 contact@semencespaysannes.org www.semencespaysannes.org





들어가며


농부 품종의 르네상스는 농생태학의 경작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반 대중만이 아니라 일부 전업농의 인식 기반에 동반되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수십 년 동안 생산성 위주의 농업 정책이 시행된 결과 독점적인 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품종의 창출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해 온, 어렵고 적대적이기도 한 경제적이고 규제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자와 식물의 생식기관을 둘러싼 엄청나게 복잡한 그물망이 얽혀, 농민을 법령, 법률, 지침 및 협약에 옭아맸다. 농민은 자신의 농지에서 재배된 식물의 종자를 생산, 증식, 이용, 교환, 판매할 수 있는 권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규정 속에서 그들의 말을 거부한다. 시장이 세계화되고 산업의 집중이 강화되며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먹을거리 산업을 독점하는 한편, 산업국의 숨막히는 규정이 개발도상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국제 규정은 농부 종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먹을거리 주권의 기초인 자신의 종자에 대한 농부권을 위협하는 건 무엇인가? 이 보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다루는 복잡한 질문은 다양한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일부 공통점은 한 장에서 다른 장으로 발전시켰다. 각 장은 따로따로 읽을 수 있지만, 법률이란 구속복의 미묘함은 다른 장들에서 제시된 쟁점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분석은 주로 유럽연합의 상황에 중점을 두었지만, 활용된 사례의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취한 것으로, 특히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에서 제약이 가장 엄격한 경우가 많았다.


이 보고서는 도구로서 고안되었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아직 변화할 수 있다는 게 유럽 농민종자 네트워크(European Farmer Seeds Network)의 내부 토론 결과이다. 농부 품종과 마찬가지로, 이 보고서는 균질하거나 안정적이지는 않다. 이 보고서는 농민, 텃밭농부, 종묘 노동자, 전문 종자 생산자, 생계활동에서 농부 품종을 다루는 사람들(제빵업자, 요리사), 연구자, 공원 직원이나 소비자 단체 동인지에 관계없이, 농부 종자의 참가자와 이용자 모임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 제시된 기술적, 법적 질문은 때로는 어려운 문제라 우리가 다룰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보고서가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이 문제를 명확히 하고, 종자 규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도록 이끌며,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종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용권을 되찾기 위해 행동에 나서게 하기를 희망한다. 





목차


1장  농부의 종자와 품종이란 무엇인가?

2장  선발 기술과 규정의 진화

3장  농부 품종을 제거하는 데 종사하는 인증 체계

4장  지적재산권: 재생산의 독점

5장  농부 품종과 유전자원 보존을 위한 국제 체계

6장  농부 종자에 대한 집단의 권리

7장  유럽의 법적 구조의 변경

8장  아프리카 농민에게 부과되는 규제





1장 농민의 종자와 품종이란 무엇인가?


수십 년 전 거의 모든 종자는 "농부의 종자" 범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텃밭이나 농지에서 그것을 재배하는 남성과 여성에 의해 선발, 보존, 증식 및 교환 등을 통해 갈무리되고, 고르고, 유지 또는 강화된 품종의 종자였다. 새로운 작물을 다시 파종하기 위해 자신의 수확물 가운데 일부를 이용할 재배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발상은 너무 생뚱맞았다. 


이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특정 국가의 품종이 차츰 사라지는 걸 보았고, 종자*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이용을 제한하는 상업적 규정에 따라 생산 및 관리되었다. 


*종자: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종자는 곡물, 번식용 나뭇가지, 덩이줄기, 뿌리, 덩이뿌리 또는 식물이든지 식물의번식에 사용하려고 선택된 식물의 기관이다. "종자"라는 단어는 넓은 식물의 실재를 표시하는데, 이 용어의 의미가 좁아져 식물 "번식을 위한 물질"의 상업적 교환을 통제하려는 규제에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법적으로, 종자는 품종에 속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 




농부 품종의 개념 


농부 품종은 몇 가지에서 상업적 품종과 구별된다.


-기원

농부 품종은 주기적으로 증식되고, 선발로 육종되며, 주어진 지역에서 다시 파종된다. 이는 그것이 다른 지방이나 국가들로 이동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생성 및 갱신 방법

농부 품종은 기존 품종의 기초와 농민의 손이 닿는(따라서 생명공학*은 제외됨) 생산 방법에 적합한 조건의 농지나 텃밭에서 생성된다. 품종은 지역의 진화, 새로운 환경 및 경작법에 대한 선택과 적응을 통해, 때로는 집단선발*을 통해 재생산된다. 어떤 때는 인공의 교배육종을 통해 생성되고, 때로는 개체군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특성을 선발해 생성된다. 이러한 갱신 과정은 실제로는 매우 현대적일 수도 있는 "비공식적" 종자 교환, "지역적" 또는 "전통적" 사회 구조 및 지식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예를 들어, 농생태학의 관점에서) 


-유전적 구조

농부 품종은 유전적으로 독특한 식물 개체군, 농민의 선발법으로 인한 산물로 구성된다. 개체군 안의 식물과 후생적인* 유연성의 교배는 이질성을 창출해, 자연적으로 농부 품종에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반면 상업적 품종의 유전적 다양성과 변이성은 매우 빈약하다. 그들의 동질성(순종*, F1 잡종* 등)은 그들을 질병, 해충, 기후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고 취약해지도록 만들곤 한다. 


-역사의 무게

농부 품종에는 역사가 있다. 때로는 오랜 역사가 있기도 하다. 종자와 지식은 그들의 특질과 이용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간직한 전통으로 교환되고 전달된다. 이 역사와 전통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새로운 농법과 새로운 농부 품종의 창출 또는 진화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영양가와 맛

생산자의 자가소비를 위해 가장 많이 선택되고 생산되는 농부 품종의 특질은 뛰어난 기준을 준수한다. 이는 주로이윤과 기계화, 운송, 슈퍼마켓 선반에서 장기간 전시되는 등의 산업형 생산방식에 적응하도록 선발된 상업적 품종과는 다른 경우이다. 




상업용 품종은 재생산이 어렵다

농부 품종은 항상 여러 경작 주기에 걸쳐 농민이 생산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육종의 산물이지만, 상업용 종자는 주로 농민의 손이 미치지 않는 방법을 이용한 단일한 유전적 견본, 산업이나 연구소에서 선발된 복제물과 잡종 계통의 산물이다. 상업용 품종은 더 이상 농민의 수확물을 이용해 재생산할 수 없으며, 그 대신 농민이 육종가가 보유하고 있는* 원래의 구매품으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가도록 강요한다. 다시 말해, 농부가 상업용 종자를 사용해 심은 수확물에서 얻은 종자로 다시 파종하여 수확한 식물은 처음의 것과 동일한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농지에서 상업용 품종의 이러한 "경향"은 딴꽃가루받이 종의 F1 잡종과 직접적 관련이 있고, 2세대나 3세대 자식성 식물의 우량 품종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특정한 보존 선발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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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토종 벼를 보전하기 위한 운동을 참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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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밀 소비자로서, 국수와 만두, 빵 및 여러 반죽을 만드는 데 밀을 이용한다. 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밀은 신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인 약 4600년 전 중국 북부 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연구에 의하면그 당시에는 맛이 별로 없었다. 초기에 밀은 기아를 막기 위해 재배한 작물로서, 요리의 기쁨보단 절망의 작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최초 농민들은 주로 조를 재배했다. 가뭄에 강한 이 작은 씨앗의 곡물은 1만15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며, 미국에선 새의 모이로 이용되었다. 역사 기록과 초기 요리법에 기반하여, 연구자들은 수천 년 뒤인 당나라(618-907년) 시대에 밀이 조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밀의 장점은 명백하다. 요리의 다양성 말고도, 밀은 더 빨리 자라며 조보다 꾸준히 더 많은 수확량을 올린다. 하지만 고대의 농민들은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역사 기록에서 보면, 적어도 당나라 때까지 밀은 일반적으로 조와 똑같은 방식인 죽으로 소비되었다. 그 곡물은 찌거나 통밀로 조리되어 거칠고 입맛에 안 맞는 요리로 만들어졌다. 여러 초기의 저술가들이 밀죽은 "야만인과 농민을 위한" 음식이라고 언급했는데, 아마 극단적인 시기에만 소비되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농민들은 왜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을까? 

그 답을 추적하기 위하여, 나는 2014년 박사 학위논문을 쓰면서 중국 북부의 여러 지역에서 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여러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고고학자는 발굴현장에서 곡물의 유물을 찾아 이를 추론했는데,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소비할 수 있었는지만을 밝혀냈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를 해결하는 더 직접적인 방법을 알아냈다.인간 유골의 동위원소를 조사하는 것이다. (동위원소는 탄소처럼 원자량이 약간 다른 요소이다. 어떤 동위원소는 방사성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붕괴되지만, 다른 동위원소는 안정적이다.) 뼈부터 치아의 발견되는 모든 탄소와 질소의 여러 안정된 동위원소의 비율은 고대인의 식단에 대한  강력한 정보를 전달한다.  

조와 밀 같은 다양한 식물은 서로 다른 화학 경로를 이용해 자라기에, 토양에서 독특한 비율의 안정적인 탄소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차이점은 이른바 C3와 C4 식물로 구별된다.) 우리가 먹는 것이기에, 그것들의 특정한 비율의 탄소가 인간의 유골에 통합되어 몇 세기가 지난 뒤에도 검파될 수 있다.

 특히 조는 중국 북부에서 재배된 유일한 주요 C4 작물이라서, 사람들이 주로 조를 먹다가 C3 작물인 밀 같은 다른 걸로 주식을 바꾸면 상대적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발표된 보고서들을 조사하여 나는 약 9000년 전인 신석기 시대 중반부터 서기 220년 동한 왕조가 망한 뒤까지 약 1200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수집했다. 장소는 북서부인 간쑤성부터 동부인 산둥성에 이르는 현대의 8개의 성에 흩어져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이 거대한 데이터 세트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들 광대한 연구 지역에 걸쳐 있는 집단이 모두 동시에 독점적이던 조 기반의 식단에서 더 혼합된 식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이야기이다. 이처럼 광대한 지리적 구역에서 요리법이 갑자기,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바뀌려면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갈망했다는 것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영상은 고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작물화된 곡식이 7000년에서 3500년 전 어떤 경로로 확산되었는지 보여준다. Javier Ventura/Washington University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약 4200년 전 발생했던 완신세 사건 3이라 부르는 주요한 기후변화이다. 당시 대륙들의 기후는 춥고 건조해졌다. 예를 들어 지중해 동부와 서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강우량이 1/3에서 절반으로 감소하여 사해의 수위가 45m 감소했다. 이러한 "대가뭄"이 전 세계 작물 생산에 혼란을 야기해 메소포타미아부터 인더스 계곡까지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고, 중국의 중앙 평원에서는 신석기 문화가 붕괴되었다. 

이에 더해, 신석기 말기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시기였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작물 수확량이 변동됨에 따라, 중국 북부의 신석기 농민들은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라 가정하는 건 합리적이다.

밀은 실제로는 조보다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에 역사의 건조한 시기에는 좋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밀은 조와 다른 계절에 교대로 파종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밀은 조를 수확한 뒤에 파종할 수있다. 그해에 조 농사가 망해도 농민들은 아직 구황을 위해 밀을 재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중국 북부의 사람들이 밀을 재배하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에는 많은 교훈이 있다. 기후변화는 극단적 날씨부터 해안선 변화까지 항상 예기치 않은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 사례에서, 중국 북부에서 일어난 완신세 사건 3의 여파는 결국 맛이었다. 오늘날 중국 북부의 사람들은 국수와 만두, 빵 등을 즐긴다. 하지만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늘 그런 건 아니다. 

단 하나의 작물에만 주로 의존하는 대규모 단작은 늘 끔찍한 발상이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생각해보라. 19세기 중반 감자의 치명적 역병이 발생해, 감자에만 의존하던 이 나라에서 약 100만 명이 사망했다. 



1840년대 감자 기근 시기의 아일랜드처럼 먹을거리 공급 문제는 기아와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British Library/Flickr


그러나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과 세계 여러 지역의 많은 대규모 농장들은 그들이 의존하는 작물의 숫자가 위험할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식물 종 -아마 수십에서 수백만 종- 을 식용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약 200종만 재배되며 단 3가지(옥수수, 밀, 벼)가 인류의 열량 대부분을 구성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100년 전에 재배되던 작물의 75%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조를 포함한 토종 작물을 되살려 지역의 농업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농민들은 더 다양한 농업 체계로 나아가고자 했으며, 이것이 파괴적이었던 사건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 고고학과 역사 자료에 의하면, 밀과 벼, 콩, 귀리, 메밀 및 보리도 재배했는데 밀이 더 선호되었다. 

한 가지 완벽한 작물은 없다. 다양성을 높이는 일이 기후가 요동치는 시기에 살아남기 위한 열쇠이다. 우리는 여전히 인위적인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한편, 실용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장래의 먹을거리 스트레스를 막기 위하여, 더 많은 농민들이 편안한곳을 벗어나 요리의 기반을 확장해 갈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https://www.sapiens.org/archaeology/chinese-fa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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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종자회사를 설립한 현재 고등학교 2학년 고바야시 히로시小林宙 씨가 목표로 하는 것은(촬영:우메타니 히데지梅谷 秀次)



15세란 나이에 종자회사를 시작한 고등학생이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고바야시 히로시 씨는 현재 16세인 고등학교 2학년이다. 회사의 이름은 "카쿠케이鶴頸 종묘 유통 프로모션"이다. 토종 채소를 주로 하는 씨앗과 모종 및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토종 채소를 판매하고 있다. 

교토 명물 센마이즈케千枚漬け의 재료인 쇼고인(聖護院) 순무, 도쿄의 네리마(練馬) 무, 가나자와(金沢) 야채의 킨지소(金時草), 가고시마의 사쿠라지마(桜島) 무, 맛이 좋다고 알려진 야마가타의 단콩(だだちゃ豆) 등이다. 최근 먹을거리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토종 채소의 상표는 원래 현지의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오던 토종 작물이다. 이밖에도 전국에는 다양한 토종 채소와 곡식이 있다. 



유소년기부터 씨앗과 식물에 흥미가 있었다 


한편 우리가 평소 슈퍼마켓이나 청과점에서 구입하는 것은 종자회사가 씨앗을 관리해 판매하는 F1 종자라고 부르는 1대의 교배종이다. 농가는 매년 씨앗을 구입해야 하는데, 재배와 수확이 편해서 쇼와 시기 후반에 대부분의 산지에서 토종 작물을 대체해 갔다. 예를 들어,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의 미우라(三浦) 무는 1979년의 태풍 20호로 큰 피해를 입은 일을 계기로 F1 종자인 아오쿠비(青首) 무가 급속히 보급되어 재배가 쇠퇴했다.

F1 종자에 밀려 멸종위기에 처한 토종 작물을 지키려고 맞서는 사람들은 전국에 많이 있다. 하지만 쇠퇴를 막을 수 없다. 이제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며 회사를 설립한 것이 고바야시 씨이다. 

인터넷 등으로 전국의 종자회사에서 매입한 씨앗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다녔던 그림책 카페와 농업서 센터 이외에도 꽃집과 커피가게 등 10곳 정도의 가게에서 위탁판매를 하고 있다. 가게의 판매 공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봉지는 작게 만들고, 1봉지에 200엔 정도로 책정하고 있다. 대량으로 판매되는 것은 도쿄도 이외에전국에서 열리는 먹을거리 행사에 참가한 때이다.  



일은 주로 주말에 한다. 사진 왼쪽은 부 활동 친구인 아베 준야阿部純也 씨(촬영: 우메타니 히데지)



평일에는 학업이 바빠서 일하는 것은 주말이다. 세세한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씨앗 봉지 만들기는 2명의 여동생과 학교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이 젊은이는 왜 종묘, 게다가 토종에 특화된 회사를 시작하려고 생각한 걸까? 

고바야시 씨는 유소년기부터 씨앗과 식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최초의 계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학교에서 기르던 나팔꽃에서 씨앗을 받아, 다시 심어 보았는데 훌륭히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자른 것은 잎이 별로 무성하지 않고 줄기도 비실거려 꽃이 너무 작게 피었던 일이다. 한편 유치원에 다닐 때 마당에 묻은 도토리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지만 싹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호기심이 일어 채소 모종을구매해 키우게 되었다. 



자신이 모르는 씨앗이 있다는 걸 알고 꿈속에서


어느날, 인테리아 매장의 씨앗 판매대에서 모종으로는 팔지 않는 채소의 씨앗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채소와 씨앗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도쿄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에서 고서를 구하고, 전문적인 책을 모으는 농문협의 농업서 센터에도 다니기 시작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인터넷에도 자신이 모르는 씨앗이 많다는 걸 알고, 더 모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씨앗 중에서 토종 채소도 있었다. 그것들의 씨앗은 재배되고 있는 지역의 종묘상에 가야지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 중 아버지의 출신지인 나가노현이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는 니가타현에 귀성할 때마다 근처의 종묘상을 돌아다녔다. 나가노현이나 니가타현에는 종묘상이 많았다. 



종묘상이 폐업하고 있는 실태를 알다


중학생이 되어 부모에게서 "간토우関東의 당일치기 거리라면 혼자서 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간토우의 종묘상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숙박해도 좋다"는 말을 듣는다. 여름방학 등 장기 휴가 때1주일 정도 잠만 자는 민박이나, 베낭여행객이 묵는 숙소 등에서 숙박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고바야시 씨는 민박에서 현지의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 등을 배웠다고 한다. "씨앗으로 재배한 것을 그 지역의 식문화 안에서 어떻게 먹는지를 아는 일도 중요하다. 직접 씨앗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씨앗을 선발하고 재배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어떤 맛을 맛있다고 생각하는지 체감하고 싶었다"고 고바야시 씨는 설명한다. 

각지를 다니면서 종묘상이 점점 폐업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 종묘협회라는 업계 단체에서 탈회하는 사람이 많다"고 고바야시 씨가 말하여 협회의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2018년도에는 27명이나 탈회했다. 

"그러고 나서 종묘상에 있는 자료를 보고 '이 씨앗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 씨앗을 받는 사람이 사망해서 취급하지 않아요'라는 답을 가는 곳마다 들었다."는 고바야시 씨. 실정을 알게 되며 씨앗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2018년, 고등학교 합격이 결정되고 곧바로 회사를 설립한 것은 토종 작물의 씨앗을 전국구에 유통시키는 일이 '일본 전체에서 씨앗을 수집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을 넘어 씨앗의 수요를 창출하고, 전국 규모로 유통시켜서 보존해 나간다"는 것을 사훈으로 삼았다. 



창업하려고 아버지에게 기획서를 제출


창업을 하려고 고바야시 씨는 우선 아버지의 이해를 구하고자 기획서를 정리했다. 서류를 작성한 것은 고바야시 집안에는 용돈 제도가 없어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설명하여 돈을 받아 구입한 다음 영수증을 제출하는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놀라면서도 회사 형태로 하면 책임도 가지니 좋고 경험도 된다며 인정해주었다. 

부모는 직장인이고 친척은 교원 중심이라 씨앗 회사를 설립하는 절차에 대해 상세한 어른이 주변에 없다. 고바야시 씨는 인터넷과 법률 관계의 서적 등에서 조사하고, 종묘상에도 상담했다. 

"중학생이 약속을 잡으려면 거절 당할 수 있죠. 직접 사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회사에 가려고, 사장이 일본 종묘협회의 이사인 사이타마현의 노하라野原 종묘를 방문했습니다. 판매하는 씨앗을 봉지에 적은 정보와 사진의 판권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신세를 졌습니다." 



많은 사람에 힘입어 사업이 확장되어 가다


10대의 고바야시 씨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얻고 있다. 가장 지지해주는 부모는 그때그때 도움을 주었다. 재배에 대한 상세한 것은 농문협의 서적이고, 가르쳐 준 것은 어머니이다. 동료에게 군마현 이세사키시伊勢崎市에 있는 밭을 빌리고, 개업 신고를 위해 동행해 준 것은 아버지이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에게 이끌려 갔던 먹을거리 행사에서는 농문협에 아는 사람이 생겼다. 당시 그 협회가 발행하고 있던 <노라노라のらのら>라는 어린이 농업 잡지에서 취재를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잡지의 기획으로 도쿄도에 사는 채종 명인에게서 씨앗을 받는 법을 배웠다. 

"그분은 직장인입니다. 회사의 옥상에 있는 텃밭에서 공원에 떨어진 낙엽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유기 재배를 하고 있었죠. 도시에 살아도 직접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바야시 씨는 말한다. 

중학교 과제인 직장 체험에서도 농문협에 편집보조를 하게 해 달라고 했다. 친해진 편집자에게 밭에서 채소를 너무 많이 수확했다고 하자 '판매하러 놀러와요'라는 말을 듣고, 행사에서 판매한 적도 있다. 가게를 돕고 나서 농문협의 책을 받아 채소를 채워 왔던 종이상자에 이번에는 원하는 책을 채워 돌아갔다. 그리고 채소와 씨앗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앞으로 지금의 회사는 '부업'으로 할 예정


창업하고 아직 2년째라 씨앗의 판매만으로는 이익이 그다지 오르지 않는다. 이세사키시의 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판매하는 행사 및 강사와 집필 등으로 운영비를 얻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씨앗의 미래: 내가 15세에 씨앗 회사를 창업한 이유>라는 책도 출간했다. 자기 월급은 필요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적자는 나지 않는 정도이다. 주식회사는 아니고 개인사업자이기에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고바야시 씨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씨앗을 취급한다. (촬영: 우메타니 히데지)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 않냐고 묻자, 앞으로 농업법인화하여 밭을 임대할 생각이기에 기업이 바람직하다는 고바야시 씨. "씨앗이 사라져 가는 것은 농가의 부업으로 씨앗을 받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 채종 기술을 계승하는 사람을 늘리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조금을 받으면서 운영하는 방법은 어렵다고 한다. "하기 시작하면 제한이 없기에, 사용목적을 한정하는 보조금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협찬해 주는 분에게 기부를 받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 등 사업을 응원해 달라고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익보다 씨앗을 유통시키는 일이 중요


카쿠케이 종묘 유토 프로모션은 지금도, 앞으로도 부업으로 할 예정이라 한다. "좋아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면 실패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도 안 되기 때문에 그만두는 사태를 피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이익보다, 씨앗을 유통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바야시 씨. 위탁판매하는 것도 씨앗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씨가 그렇게 해서 씨앗을 지키려는 것은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유명한 이야기로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일어나, 국민의 20% 이상이 굶어죽고, 대량으로 미국에 이민을 간 일이 있다. 그것은 단일 품종의 감자에 식량을 의존하고 있던 것이 원인이었다. 

지금은 기후변화가 심해 기존의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워지는 지역도 있다. 다양한 씨앗이 있다면 더위에 강한 것 등을 교배시킬 수 있다. 토종 작물을 지키는 일은 채소와 곡식을 백업해 놓는 것과 같다.  


다만, 토종 작물 중에는 기후와 토양이 변하면 독특한 모양과 맛을 잃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오사카의 텐노지天王寺 순무는 에도시대 나가노에 있는 노자와野沢 온천 마을의 켄메이지健命寺 주지 스님이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재배하니 줄기만 무성해져 노자와 나물(菜)이 되었다. 

전국구에서 씨앗을 유통시키면 특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냐 묻자, "지키는 일은 종자회사와 숙련된 채종인들이 하고 계신다. 나는 새로운 토종 채소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채소가 생기면 매우 재미있고, 마을의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명쾌히 대답했다. 



씨앗의 보존은 지역의 식물화와 역사를 지키는 일


씨앗을 지켜서 채소와 곡식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지역의 식문화를 지키는 일이며, 계승되어 온 역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식량 위기를 막기 위함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당연하게 먹어 오던 걸 먹을 수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바야시 씨처럼 젊은 세대가 새로운 발상으로, 씨앗을 지키는 활동에 참여한다면 채소의 미래는 변할지도 모른다. 

헤이세이平成 30년 동안,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 수집과 정보 교환의 수단이 다양해졌다. 세계화의 진행으로 사회의 구조도 크게 변화했다. 지금, 세상은 새로운 발상, 새로운 재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이와 경력에 관게없이 미래를 구축하려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익을 올리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사회가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의외로 우리의 미래는 밝은지도 모른다. 


https://toyokeizai.net/articles/-/31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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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라고 총칭하는 식물체의 다양성을 본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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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자기 밭을 자랑하는 과테말라 Pacux의 이장 돈 크리스토발 씨의 모습이다. 


이 밭에서 토종 과실수와 함께 세 자매로 알려진 옥수수, 호박, 덩굴콩을 재배한단다. 


요즘 서구에서는 이런 agroforestry의 방식을 forest garden이라 부르면서 유행이라면서? 



아무튼 이 분이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재배해 물려받았다는 옥수수 씨앗을 보관하는 방법을 보면, 어쩜 이리도 한국의 토종 씨앗 농민들과 똑같은지 모르겠다. 농민들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 사는 모습만 봐도 뜻이 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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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1966-1967년 토종 옥수수를 CIMMYT에 기증한 멕시코 모렐로스Morelos에 살고 있던 가족을 찾아갔다. 그들은 아직도 토종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을까?


https://www.cimmyt.org/news/tracing-maize-landraces-50-years-later/


옥수수는 멕시코에서 단순한 작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옥수수는 먹을거리, 사료, 원자재를 제공하는 한편, 세대를 뛰어넘어 멕시코 사람들의 과거와 연결시키는 혈통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매혹적인 옥수수의 다양성은 옥수수 원산지의 중심이라는 그 문화적, 생물학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농민이 몇 세대를 이어 재배하고 선발해 온 토종 옥수수는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식적인 작물 개량 없이 이러한 다양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문화유산과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고 세대 교체가 발생하면서 토종 옥수수의 경작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질 수 있다. 


이탈리아 고등학술연구의 Sant’Anna School 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Denisse McLean-Rodríguez와 국제 옥수수밀연구소(CIMMYT)의 연구진은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인 모렐로스에서 지난 50년 동안 토종 옥수수의 보존과 폐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새로운 연구를 맡았다.


이 연구는 1966-1967년 연구 보조였던 Ángel Kato가 수집하여 국제 밀옥수수연구소의 옥수수 생식질 은행에 저장된 93가지 토종 옥수수 표본에 기초한다. 연구진은 표본들을 기증한 모렐로스에 사는 66가족들을 추적해, 그들이 자신의 토종을 폐기하거나 보존한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박사 과정 Denisse McLean-Rodríguez(왼쪽)가 토종 보존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기 위해 모렐로스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민 Roque Juarez Ramirez 씨를 인터뷰한다. (사진: E. Orchardson/CIMMYT)





토종의 폐기를 추적


6개의 사례에서, 연구진은 국제 옥수수밀연구소에 표본을 기증한 원래의 농민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에서, 연구진은 그들의 가족 구성원을 인터뷰했다. 가장 흔한 건 아들이나 딸, 또는 그렇지 않으면 그 손자와형제 자매, 조카나 미망인이었다. 


연구에서는 가족들 안에서 토종 옥수수 재배가 크게 감소했다는 게 드러났다. 66가족 가운데 13가족만 아직도 1966-1967년과 똑같은 옥수수 씨앗을 재배하고 있었고, 현재의 사회적, 경제적, 물리적 환경이 토종 재배에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폐기하는 이유는 옥수수 재배 기술의 변화, 옥수수와 기타 작물에 대한 시장의 변동, 정책의 변화, 문화적 선호의변동, 도시화, 기후변화 등이다. 


McLean-Rodríguez는 "농민들의 농지에서 토종의 연속성과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들에 관하여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토종이 현재 재배되고 있는 맥락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또 우리의 연구는 국제 옥수수밀연구소의 생식질 은행 같은 시설들에서 하는 현지외보존의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게 해주었다."




Juarez와 Oliveros의 손자가 가족의 토종 옥수수인 maíz colorado(왼쪽)와 Ancho maize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E. Orchardson/CIMMYT)




옥수수의 생물다양성 보전


토종 옥수수는 농민의 농지에서 "현지내"보존되거나 생식질 은행이나 지역사회 종자은행 같은 보호되는 공간에서 "현지외"보존될 수 있다. 


McLean-Rodríguez는 "이러한 보존 전략들은 상호보완적이지요."라고 설명했다. "현지외보존은 농지에서 보존하는 걸 위협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대비해 토종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편, 현지내 재배는 옥수수의 다양성을 계속해서 생성시키는 과정을 가능하게 해 돌연변이가 출현하거나 잠재적으로 이로운 새로운 형질이 진화하도록 만들어요."


지난 50년에 걸쳐 농민의 농지에서 토종이 상실된 일은 현지외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제 밀옥수수연구소의 옥수수 생식질 은행은 194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옥수수 2만8000가지 표본과 88개국에서 수집한 야생 근연종을 보유하고 있다. 생식질 은행에 저장된 종자는 위기나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되며, 육종과 연구에 이용될 수있다. 토종에서 발견된 형질들은 기후변화, 새로운 병해충, 영양부족 같은 세계의 가장 시급한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품종에 도입될 수 있다.


McLean-Rodríguez는 자신이 했던 연구결과 가운데 뿌듯했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토종을 잃어버린 가족의 대부분은 국제 밀옥수수연구소 생식질 은행에서 자신의 옥수수 표본을 되돌려 받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가치 때문에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생산적 가치에 더 관심이 있었죠. 생식질 은행에서 자신의 옥수수를 돌려받으면 매우 행복해 했는데, 돌려받은 종자가 앞으로도 계속 재배되는지 조사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Ventura Oliveros Garcia 씨가 1966-1967년 국제 밀옥수수연구소의 생식질 은행에 종자를 기증한 옥수수 농민이었던 아버지 Santos Oliveros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E. Orchardson/CIMMYT)





가족의 전통


이 연구에 참여한 가족 가운데 하나는 농민 Roque Juarez Ramirez와 자신의 아버지가 모렐로스의 기증 농민 가운데 하나인 그의 아내 Ventura Oliveros Garcia 씨였다. "난 아버지의 이름(Santos Oliveros)을 듣고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Oliveros는 자신에게 연락이 온 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항상 옥수수 농민이었고, 당시에는 다른 어떤 것도 재배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마을 공동부지(ejido)에 옥수수를 심었고, 항상 많은 옥수수자루를 수확할 수 있었죠. 아버지는 arribeño 또는 marceño라고 부르는 토종 옥수수를 심었는데, 그건 늘 3월에 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Juarez 씨는 옥수수 농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난 (옥수수 농사의) 중요성이 작지 않고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이십 명 살리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우린 내 가족을 돌보는 것 말고도 먹고 마시는 온 나라의 사람들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우리 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죠."


옥수수로 만드는 멕시코의 달콤한 음료수 champurrado를 한 잔 채우고, 가족의 주식인 옥수수 표본 -maíz colorado와 Ancho - 을 보여주었다. Oliveros 씨는 그녀에게 옥수수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한다. "옥수수는 내 가족과 나에게 너무 중요해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음식의 주요 원료이기 때문이죠. 우린 옥수수로 포졸레pozole, 또르띠야tortilla, 타말레tamale, 아톨atole, 퀘사디아quesadilla, 피카다picada 같은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요."

  

Juarez와 Oliveros 씨 가족은 남편의 가족에게 얻은 다른 토종 Ancho 종자로 Oliveros 아버지에게 얻은 Ancho 종자를 대체했다. 토종 Ancho는 포졸레를 만드는 데 이용되며, 가족이 거주하는 토토라판Totolapan을 포함해 모렐로스의 일부 지자체에서 계속해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1966-1967년 수집품에 있는 Pepitilla 같은 다른 토종들은 50년 뒤에 추적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발견했다. 




Maíz colorado(왼쪽) 또는 붉은 옥수수는 가족의 식사에서 중요하다. 가족의 Ancho 옥수수(오른쪽)은 특징으로 넓고 평평한 낟알이 있고, 포졸레 스튜의 주요 재료이다. (사진: E. Orchardson/CIMMYT)




이 연구는 농사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흔히 토종이 폐기된다는 걸 보여준다. 늙은 농민들은 토종을 바꾸거나 대체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토종에 애착을 가지고 계속해서 재배한다. 젊은 세대가 농사관리를 넘겨 받으면 이들 토종이 폐기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농민들은 아직도 토종의 문화와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다. "옥수수는 중요한전통적, 문화적 상징을 갖으며, 우리 경제의 근본입니다."라고  Roque와 Ventura 씨의 아들 Isaac Juarez Oliveros 씨는 말한다. "난 내가 열다섯 스무살 때부터 (토종 옥수수)를 심어 왔어요. 부모님에게서 옥수수 종자를 얻었죠. 난 전통이 여러 세대를 이어 내려왔기 때문에 계속 토종 옥수수를 재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족의 아들 Isaac Juarez Oliveros 씨가 수확한 옥수수를 판매하고 소비하고자 저장하고 말리는 창고 밖에 서 있다. (사진: E. Orchardson/CIMMYT)





미래세대를 위한 유산


세계의 식량안보는 옥수수 같은 핵심 주식 작물의 높은 유전적 생물다양성의 유지에 달려 있다. 토종을 폐기하는원인을 이해하면, 토종의 보존 전략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개량 옥수수와 기타 상업용 작물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창출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토종의 보전과 확산을 위한 생태적 지위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게다가 유전자원의 관리는 농지와 생식질 은행 모두에서 필수적이다. 이는 특히 더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개발도상국에서 그러하다. 


Oliveros 씨에게 그것은 가족의 유산이다. "내 가족의 옥수수와 아버지의 기억이 계속 살아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내 가족의 씨앗이) 보존되는 일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어요."  


"토종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전 세계에 귀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연구의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젊은 농민들에게 토종 옥수수의 재배를 장려하는 게 중요할 겁니다. 현재 세대의 농민들이 지닌 보존 잠재력을 활용하는 일은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기회입니다."





<멕시코 모렐로스에서 지난 50년 동안에 이루어진 토종 옥수수의 폐기: 다층적 관점을 활용한 추적 연구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460-019-099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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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닭'이라 하면 품종은 상관없이 그냥 교외의 가든에서 풀어서 키우며 다 자란 닭을 가리키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부에서 인정한 토종닭 품종이 38종, 그걸 기반으로 개량한 닭의 품종까지 합하면 100종 정도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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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노풀로스Antonopoulos 형제는 유럽에서 식물의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그리스에서 농사 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오르고스Yiorgos(왼쪽)와 안토니스 안토노풀로스Antonis Antonopoulos가 딜로포Dilofo가 내려다보이는언덕에 서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그리스 정부가 인증한 유기농업 농가 목록에서 안토니스 안토노풀로스 씨는 일련번호 1번이다. 

안토니스와 그의 동생 이오르고스 현상을 만든 것은 그들의 모델 농장이 그리스에서 유기농 방식을 개척한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른 농부들이 버린 토종 밀과 보리를 유기농으로 재배해 상업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데 있다.  

그들은 토종 곡물로 만든 그들의 유기농 밀가루를 전문 상점과 빵집에 몇 년 동안 상품화하여 배송했다.

2년 전, 딜로포에 있는 그들의 마을에서 육종된 두줄 밀에서 유래한 제아Zea 밀가루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그 이름의 시조가 된 얇게 썬 빵덩어리의 주요 성분이 되었다.  

제아의 상업적 성공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대의 곡물이 부활하게 만들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요"라고 자신의 연간 매출이나 재배면적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오르고스가 말했다.  "그 지역의 누구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걸로 충분해요." 

이러한 성공은 그리스가 천연의 유전자은행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양한 지형과 미기후를 지닌 그리스 열도는 오늘날 유럽에서 식물의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아, 약 6000가지 야생 식물 종이나 아종 및 수천 가지 작물이 분기하는 진화 경로가 있다. 

이 방대한 유전적 목록을 상실하면, 과학자와 농민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 안에서 지구를 먹여살리려는 투쟁의 소중한 자원을 잃을 수 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토종 농사는 유기농으로 이루어지며, 형제는 경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중년에 접어든 형제는 평생 40여 가지 품종의 토종 곡식을 실험하여, 그들의 조상이 수천 년 동안 해오던 것처럼 이듬해 더 나은 수확량이 나오는 작물을 심고자 해마다 최고의 작물을 직접 선발했다. 

"모든 씨앗은 그 지역의 미기후에 적응합니다. ... 결국 나는 가장 생산적인 곡식은 우리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지역의 품종이란 사실을 발견했죠."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적응 덕분에 지역의 품종은 잘 자라게 하려고 화학비료, 농약 등이 필요하지 않기에, 토종 농사는 유기농으로, 그리고 경제성이 있다고 정의된다. 

"나는 가장 적은 비용이 들고, 다른 농민의 농사일보다 1/3 정도만 한다"고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내가하는 유일한 일은 관개이다." 

그러나 그의 동료인 안토노풀로스는 시류를 따르는 데 실패했다. 

"[사람들은 나의 사례를] 이해하지 못한다. 초기에 그들은 나를 마을의 바보라고 손가락질했다. 결과가 드러나기까지 약 20년 걸렸다. 그때까지 나는 미친놈이었다. 내가 커피가게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쳐다보았다."

오늘날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그리스의 곡창지대인 테살리아Thessaly 평야의 남동쪽 모퉁이를 형성하는 커피빛깔 흙의 띠로 감싸인 마을인 딜로포의 외곽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다. 

아킬레스가 자란 작은 마을인 프티아Phthia로 호머 그리스에 알려진 완만한 언덕이 그 위로 솟아 있다. 

이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젊은 영웅이 지금은 안토노풀로스가 6가지 토종 밀, 보리, 귀리 및 여러 가지 토종 콩과 완두, 조 등을 재배하고 있는 물결 치는 평야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신화의 족보는 그들의 신비감을 더한다.   


결백의 상실

1960년대 기계화된 농사가 그리스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농기업이 만든 실험실에서 육종된 다수확 교잡종 씨앗이 함께 나타났다. 

이들은 점차 토종을 밀어냈고, 1981년 그리스가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가입했을 때 공동농업정책은 보조금으로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했다.  

농기업은 도처에서 생물다양성을 소멸시켜 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서 6000가지 이상의 식물 종을 재배해 왔지만 현재는 단 9가지가 세계의 식량 생산 가운데 2/3를 차지한다고 한다.  

1980년대 식량농업기구는 산업화된 농사가 근절시키고 있는 품종을 보존하고자 유전자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니코스 스타브로풀로스Nikos Stavropoulos와 소규모 생물학자 모임은 30만 유로(33만9천 달러)의 예산으로 그리스의 유전자 은행을 설립했다. 이는 원래 약속된 금액의 1/10이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토종을 씨앗 봉지에 넣어 달라고 요청하고자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가 자신의 밭을 살펴본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그리스의 유전자 은행은 수천 가지 토종 씨앗에 거처를 제공하지만, 그 생식력은 저온저장에서 10-50년 정도 유지된다. 누군가가 적어도 30년에 한 번 정도 재배하지 않으면 그들 또한 죽을 것이다. 

"국가는 유전적 다양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 비밀리에 나는 유기농 재배자들에게 씨앗을 나누어주기 시작해 그걸 전파하고 보존하려 했죠."라고 스타브로풀로스는 말한다.  

저장된 씨앗에는 더 많은 취약성이 있다. 

"재배되지 않고 유전자 은행에만 저장된 오래된 토종은 더 이상 변화하는 기후 조건과 새로운 병해충에 적응할 수 없어요"라고 스위스 프릭Frick에 있는 유기농업 연구소에서 식물 육종을 담당하는 모니카 메스머는 말한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유기농업이 7배 증가하여 전 세계에서 7000만 헥타르를 차지한다. 그것은 전체 농경지의 1.4%에 불과하지만, 유기농 인증기관의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러한 측정치는 과소평가된 것일 수 있다. 세계 농장의 90%는 가족 소유이며, 적어도 1/3은 유기농으로 등록하지 않고 생태적 원리에 따르고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사 모델은 점차 세계의 농경지를 점령해 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95%의 농장은 5헥타르 미만인데 그들이 전 세계 농지의 20%만 운영하며 그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느리다. 2009년 그리스는 토종과 그 재배자를 기록하도록 하는유럽연합의 지침을 채택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현재 정확히는 4가지(하나는 테스피아이Thespiai 양파)이지만 새로운 국가의 등록부에 3가지 지역의 곡식을 보존한다고 등록되어 있다. 

이는 농장에서 곡식을 농사짓고, 유전자 은행 및 다른 농민과 곡식을 공유하도록 한다. 결국, 교잡종에 지불되던 공동농업정책의 보조금이 이 분야까지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농장에 자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토종 보조금 프로그램은 그리스에서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함의 

식량안보만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교잡종의 산업형 농업과 토종의 유기농업은 환경에 대해 크게 다른 함의를 지닌다. 

유기농 토종 농사는 자급형이다. 

"[2차 세계] 전쟁 이전에 오랫동안 재배하던 밀 품종들은 많은 뿌리를 뻗어 잡초에게 공간을 남기지 않는 그러한 뿌리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제초제가 필요 없었다."고 안토노풀로스 형제에게 조언을 하는 농학자 일리아스 칸타로스는 말한다. 

"만약 밀을 파종한 다음 콩을 심으면, 그들이 뿌리에서 질소를 고정시켜서 다음 작물은 앞그루가 남긴 질소를 받게 된다. 이것이 [인공적인] 비료가 없던 시기의 전통적인 농법이었다." 

수확한 다음 농지에 남아 있는 그루터기에 방목한 소가 거름을 추가로 제공했다. 

유기농 농장은 부수적으로 환경에 혜택을 가져온다.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약 450가지 야생종 식물과 동물이 이른바 생태계 서비스 -병해충의 방제, 수분, 수질 정화, 분해와 양분의 순환, 토양 형성, 산소 생성 및 서식지 제공 등- 를 위해서 일부러 길러지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이러한 서비스에 필수적"이기도 한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리되지 않는 종들"을 장려하고 허용하게 한다. 다른 말로, 그것은 풍부한 생태계이다.  

형재의 농장은 생물다양성의 사례이다. 그들은 무화과, 사과, 배를 섞어서 심고,  야생 생물이 마실 연못을 팠다. 하늘에선 벌과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농지 주변에선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들고양이가 어스름이 질 때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합니다."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교잡종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여러 종의 장점이 결합되어 수확량을 높이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잘 자라게 하려면 화학적 복합 양분과 농약만이 아니라 이를 살포할 트랙터의 기름도 필요하다.

이러한 화학적 복합물이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이외에도, 제초제는 그들의 힘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 23년 전 최초로 대대적으로 몬산토의 라운드업 제초제가 사용되었을 때에는엄청난 효과를 나타냈다. 오늘날 43가지 식물이 그에 대한 면역을 개발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특별히 설계된 칼퀴로 사이갈이 김매기를 하여 싹이 튼 작물을 잡초가 뒤덮지 못하게 하고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또한 인간의 건강에도 문제가 된다.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암 환자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법원에서 열린 일련의 소송에서 승리하여 그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20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630억 달러에 몬산토를 인수한 바이엘은 이 논란으로 바이엘의 주식 가치 가운데 약 40%인 340억 달러를 날리게 되었다. 지난 4월, 주주들은 "법적, 평판적 비용(legal and reputational costs)"을 언급하며 회사의 경영진에게 불신임 투표안을 내놓았다.

가장 악명 높은 건, 일벌이 꿀을 따러 가서 벌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군집이 영양부족과 질병으로 죽는 현상인 군집붕괴 장애에 살충제가 중요한 역할을 비난이다. 이로 인해 과수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인력으로 수분을 하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 

"우린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질병을 일으키고, 수로를 오염시키며, 대기 중으로 탄소를 추가하고, 종들을 근절시킨다."고 스웨덴 농업과학 대학의 경영학 교수 코스타스 카란티니니스Kostas Karantininis는 이야기한다. "이것들은 공공의 재화이기에 청구서를 발행할 수 없다." 

환경 비용은 대차대조표에서 빠져 있는 한편, 농기업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 산업의가치는 2024년 2500억 달러로 상승할 전망이다

토종 씨앗과 달리 특허를 받고 소유자가 있으며 매년 구매해야 하는 교잡종 씨앗은 또 다른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실험실의 씨앗은 한 번의 작물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 뒤 그들은 불임이 되거나 그들이 유래된 DNA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의 특성만 나타낼 것이다."라고 칸타로스Kantaros는 말한다. 이는 그 씨앗이 인위적으로 DNA를 결합시켜 자연환경에서 단일한 유기체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그들의 진화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산업은 공동으로 작용하는 국제적 규제 없이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시장은 정부의 개입 없이 공공 재화에 대한 대가를 청구할 수 없으며, 이는 초국가적 문제이기 때문에 단일한 정부가 혼자 행동할 수 없다. 이는 지구 차원의 문제이며 지구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관행농업의 진화 

산업형 농사는 세계의 농지 대부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농업을 고치려는 모든 시도는 대량 생산을 다루어야 한다.

그것이 정밀 농업을 통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코스타스 크라바스Kostas Kravas는 악시오스Axios강 삼각주의 할라스트라Halastra에서 130헥타르의 벼농사 -그리스의 기준에서 대농- 를 짓는다. 3년 전, 그는 새로운 농기계 계통에 투자했다. 디지털 방식으로 통제되는 비료와 살충제 살포기를 끄는 자율주행 트랙터이다.  

이 살포기는 더 많은 양분과 살충제를 필요로 하는 부분에는 더 많이 뿌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는 덜 뿌리는 "변동 기술"을 이용한다. 크라바스는 매주 목요일에 USB 저장장치로 농기계에 명령을 내린다. 그 자료는 자신의 농장에 위성사진으로 접근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생성한다. 

"정밀 농업과 관행농업의 차이는 15-20% 정도 더 많은 수확량과 20%의 비용 절감입니다"라고 크라바스는 말한다. "이는 관행농업의 진화이며, 필요한 부분에만 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농사가 자연적 순환에 더 가까워지도록 합니다." 2년이 지나면 크라바스는 자신의 투자를 메우고 35-40%의 더 많은 이윤을 남길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며 일부 농민들은 비옥한 토지를 이용해 태양광 발전을 하고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안토노풀로스와 마찬가지로 크라바스도 번쩍이는 새로운 농기계를 장만하며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듬해 내 사촌 가운데 일부는 500헥타르의 농지를 정밀 농업으로 돌렸죠."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할라스트라는 정밀 농업 농민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크라바스는 자신의 토지 가운데 일부를 유기농업으로 유지하지만, 정밀하지 않은 농장보다 더욱 환경친화적인 집약적 정밀 농업이란 자신의 상표를 옹호한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토양에서 뽑아낸 18가지 양분의 대부분을 복원시켰죠."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생분해성 농약 덕분에 자신의 농장에 물새가 돌아왔다고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농민이 크라바스처럼 진보적인 건 아니며, 중대한 재투자를 감당할 능력도 없다. 그리스의 농민들은 과세와 세계적 경쟁에 짓눌려 기록적인 숫자로 직업을 떠나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리스가 경제 생산의 1/4을 잃은 2007-2017년 사이 약 31만5천 명의 사람들이 농민이 되어 약 1/3이 탈농했다.


그건 소비자에 관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선 지속가능한 소비가 필요해요"라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우린 무언가에 대한 진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소비를 줄이겠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지속가능하게 재배한 먹을거리와 식사를 향한 소비자 운동은 쇠퇴하고 있다. 세계의 유기농 먹을거리 시장은 새천년 초기에 180억 달러 상승한 970억 달러 이상의 가치이다. 생산자의 수익이 중요하여, 이것이 같은 기간 공식적 숫자가 20만에서 290만까지 증가한 이유이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좋은 예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곡물 농민은 자신의 관행적으로 재배된 밀을 킬로그램당 0.17달러에 판매하여, 킬로그램당 0.78달러에 소매된다. 안토노풀로스 형제는 직접 정선, 제분, 상표화에 투자해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킬로그램당 5달러에 판매한다. 

유기농으로 재배된 토종 곡식은 헥타르당 최고 곡물 1.2-1.7톤을 수확하는 반면, 화학적으로 보조되는 교잡종 곡물은 헥타라등 5톤을 수확한다. 안토노풀로스는 낮은 생산비와 더 높은 소매 가격으로 낮은 생산량을 상쇄시키고 있다. 

상업적 성공을 극대화시킨 건 자신의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상표화한 것이다.

"잉여는 가치사슬을 설정해 위험을 감수한 사람에게 간다."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있는 커피의 가치는 단 4%이다. 커피콩을 재배한 농민은 그 커피 한 잔의 가격 가운데 약 1/1000을 번다. 생산자가 가치사슬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농민이 기업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으며, 그 체계에 도전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경제 위기에 많은 젊은 그리스 농민들이 수출용 상표로 소규모 고품질 농산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부티크boutique 산업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여전히 질보다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먹을거리의 대부분이 저렴하게 생산되어 저렴하게 팔려, 이것이 생산자의 수익을 쥐어짜고 있다. "작물은 점차 생존할 수 없게 되고 있어요."라고 크란티니니스는 말한다. 

한 가지 답은 규모의 경제를 증대하여 현재보다 규모가 더 큰 농장의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용과 환경 부담을 줄이고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정밀 농업이다. 

세 번째는 아직도 농기업에게서 독립되기를 원하는 몽상적이고 자립적이며 반항적인 소수의 농민에게만 매력적인 유기농 토종 농사이다.

"지역의 품종은 농민을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만들죠."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오늘날 농업은 정확히 정반대의 경향으로 나가고 있어요. [기업은] 이윤이 나오기에 당신이 심는 걸 통제하길 바랍니다. 보조금을 받는 씨앗은 매년 판매되고 …  나중에 농민은 완벽히 통제됩니다. 예전엔 10헥타르만 있어도 왕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헥타르, 아니 100헥타르를 가져도 충분하지 않아요."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제아 밀을 수확하고 있다. 제아 밀의 상업적 성공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대의 곡물을 부활시켰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https://www.aljazeera.com/indepth/features/greece-rebel-organic-farm-grain-1906101005580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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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 2미터까지도 자란다. 보통 5마디 정도였다. 



토양에 유기물을 추가하거나, 타감작용을 이용해 풀을 억제하는 효과가 좋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다 자랐을 때 베거나 밟아 눕히거나 꺾어 버린 다음 그 땅에 그대로 농사지을 수 있다. 이미 미국 쪽에서는 널리 알려진 농법이다.

농사,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농사, 돈이 많이 든다면 많이 들고 적게 든다면 적게 듭니다.




Red Fife(적관밀). 적관밀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토종 작물의 작명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데가 있다.

영어로 fife는 원래 피리 종류의 악기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빨갛고 피리 닮은 이삭이 달리는 밀이란 뜻이겠다. 과연 이삭이 길쭉하고, 익으면서 빨간색이 짙어지는 특성이 나타난다. 

제때 심은 건 이삭이 익음때로 들어섰는데, 늦게 심은 건 이제야 수정이 된 눈치이다. 얼마 안 남은 기간 부지런을 떨어야 씨앗이 영글겠다. 

토종 벼과작물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키가 크다. 옆에 서니 내 허리 위로 올라온다. 대략 120-130cm 정도. 마디는 좀 덜 큰 건 3마디 제대로 큰 건 4마디이다. 호밀보다 1마디 적은데, 그만큼 키 차이가 난다. 

서구의 밀 품종과 한국의 밀 품종이 보이는 특성의 차이를 발견했다. 서구의 밀 품종은 키는 크더라도 보통 까락이 없는 게 많다. 그런데 한국의 토종 밀 품종은 키는 좀 작은데 까락이 있는 게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밌는 차이점이다.






남도 참밀. 토종 씨앗계의 대부 장흥의 이영동 선생님이 보존해 온 토종 밀이다. 

키는 서구의 밀에 비해 크지 않다. 허리춤 정도 오니 대략 1미터 남짓. 이삭이 굵고 실하다. 맛도 달큰하니 좋아서 앉은뱅이밀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까락이 무성하다.









화이트 소노라 밀. 
네, 그렇습니다. 이 밀이 바로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 냈다고 평가 받는 노먼 볼로그 박사가 육종한 소노라 64호의 부모 계통입니다.

옆에 서 보니 어깨 가까이 올라옵니다. 대략 150-160cm 정도의 큰 키입니다. 서양의 것은 사람만 큰 게 아니라 작물도 큽니다. 왜죠? 레드 피페라고 하는 적관밀보다 이삭이 더 크고 실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것이 나중에 쓰러짐 때문에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큰 단점이었죠. 그래서 일본의 왜성 밀인 농림 10호와 교배시켜서 만든 것이 바로 녹색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소노라 64호입니다. 그리고 그 농림 10호는 조선의 앉은뱅이밀이 부모 계통이었다고 중얼중얼... 

미국 슬로푸드 홈페이지에 이 밀을 소개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s://www.slowfoodusa.org/ark-item/white-sonora-wheat

소노라라는 이름은 이 밀이 재배되던 지역의 이름입니다. 멕시코 북부에 있는 소노라라는 곳이지요. 지도에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개의 품종인 치와와도 있고, 현대자동차의 투싼도 보이고 그럽니다. 그리고 화이트는 이삭이나 알곡이 흰빛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겁니다. 예전에 저는 서구는 우리랑 다르게 새로운 품종에 주로 사람 이름을 붙이는구나 했는데 개뿔 아니었습니다. 우리랑 비슷하게 그 작물의 특징이나 주요 재배지를 가지고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개인의 소유권, 재산권 개념이 발달하면서 육종하건 발견한 사람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아주 재미난 밀을 여러 가지 보고 배운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호라산(또는 후라산) 밀.

이란 북서부에 있는 호라산 또는 후라산이라 하는 지역에서 고대부터 재배되던 밀이라고 합니다. '산'이라고 해서 거기 무슨 산악지대에서 재배하던 건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쪽 단어였어요.

아무튼 이 밀이 아주 엣날 그때와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직계 후손이라고 하네요.

세력이 엄청 강합니다. 앞서 보았던 남도 참밀과 비교하여 그보다 더 억세 보입니다. 많이 달리는 편은 아니지만, 달려 있는 이삭은 엄청 실합니다. 

이게 최근 미국 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가 봅니다. 판매도 되고 그러네요.



이상. 길위에서 님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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