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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니시진 소학교 동네에 있던 폐교된 소학교. 내부 모습이 궁금했는데 한 달에 몇 번 여는 카페의 날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36년 개교했다고 하니 무려 90년 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네. 2026. 9. 9.
쿠모코시雲越 가문 주택 군마현群馬県 미나카미마치みなかみ町 후지와라藤原 소재 지붕 가운데 보이는 창은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이다. 일본 집은 거실에 실내 화로인 이로리를 설치하기에 이런 연기 통로가 없으면 집 안 가득 연기가 차 버리기에 이런 구조가 필요하다. 지붕 위의 이렇게 풀이 자라는 걸 '시바무네芝棟'라고 한다. 잔디를 떼서 마룻대에 얹은 것으로, 잔디에서 풀 등이 자라며 그 뿌리가 뻗어 지붕의 재료를 꾹꾹 눌러주는 효과를 통해 비나 바람에 마룻대가 상하는 걸 막아준다고 한다. 이 지역 사투리로는 '쿠레구시'라고 한다는데, '쿠레'는 잔디, '구시'는 마룻대를 뜻한다. 이 지역에서는 지붕은 40년에 1번 정도 교체하는데, 잔디는 그 사이 2~3번 정도 교체한다고. 시바무네 왼쪽에는 연기가.. 2026. 9. 9.
호류지 금당벽화 화재 사건 장장 9년에 걸쳐 호류지의 금당 벽화를 모사하는 작업을 하던 중, 작업을 서두르고자 한겨울에도 별다른 난방기구 없이 추위에 떨며 작업하다가 전기 방석에서 불이 나서 호류지 금당 벽화가 크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1949년 1월 26일. 그로 인하여 이듬해 일본에서는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 사회는 참 꼼꼼하다 하는 데에는 다 원인이 된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 아래는 당시 호류지의 담당자였던 사에키 죠우인佐伯定胤이 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2026. 9. 9.
근세 농민 생활사 -4. 농민의 통제 4. 농민의 통제 (1) 토지와 농민의 결합 농민의 도망과 막부의 대응검지는 토지를 측량해 공조의 기초를 정하는 이외에, 농민을 그 토지에 결부시킬 목젹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앞에서 기술했다. 토지와 농민이 결부되어야 비로소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민이 그 경지를 버리고 가는 일은 허락되지 않고, 만약 도망가면 다시 끌어오고, 돌아오지 않으면 대체 백성(跡百姓)을 양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전국 말기, 전란 때문에 경지를 버리고 가재를 버리고서 유랑하던 농민을 다시 끌어오는, 이른바 환주책還住策이 강구되었다. 퇴전退転 백성이 환주했을 때에는 차전차미借銭借米를 면제하든지, 쌀을 빌려주든지 하는 혜택을 주어 이것을 권장했다. 호우죠우北条 씨의 경우는 결락자欠落者의 행방을 조사해 그 소환.. 2026. 9. 7.
X세대가 중년이 되었단 증거 이제 자기가 끼인 세대로 가장 힘들다는 징징거림이 나오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5328589 2026. 9. 6.
된장국 놓는 위치도 다른 관서와 관동 지방 이렇게나 서로 다른 나라이다. 칸사이와 칸토우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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