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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허리가 굽었다. 자식 낳고 힘든 농사일에 허리가 굽었다. 그 허리는 살아 생전 다시는 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그 세월을 이기며 살아간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택배기사를 기다린다. 자식들에게 보낼 먹거리를 한상자 가득 담아 쟁여놓고 택배기사를 기다린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를 택배기사인 줄 아셨다고 한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염색하시다 손님의 방문에 그대로 달려나오셨다. 씨앗도 주시고 음료수까지 챙겨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감까지 손에 쥐어주신다. 정말 고마운 마음씨.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씨앗을 주신다. 평생 밑지지 않고 고생하며 길러오신 씨앗을 내어주신다. 할머니들이 사라지면 씨앗도 사라진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작은 우주도 사라진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씨앗은 살아 있다. 씨앗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숨을 쉰다.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





그녀는 흐뭇하다. 자식처럼 귀하게 길러온 씨앗 칭찬에, 그녀는 흐뭇하다. 할머니의 얼굴에 소녀 같은 미소가 머문다.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





마당에 들깨향이 가득하다. 햇볕에 잘 말린 들깨는 방앗간에서 고소한 들기름이 될 것이다. 그 기름은 금쪽같은 내 자식새끼 입으로 들어갈 것이고... /곡성군 





가을은 일이 많다. 이것저것 수확하고 털어서 잘 갈무리해야 한겨울 추위를 날 수 있다. 게으름을 부릴 생각일랑 말고 몸을 놀려야 한다. 때를 놓칠까 부지런히 콩을 터는 할머니.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곡식에게 가을볕은 너무나 소중하다. 가을볕 한줌에 곡식이 알차게 영근다. 정말 귀한 햇볕이다.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불청객의 방문에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쉰다. 날이 갈수록 허리는 아프고 잠시 쉴 동안이라도 담벼락에 몸을 맡긴다.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섬진강 가에 있는 이 마을은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오늘은 마을 초입에서 공사까지 하고 있다. 우리의 여정은 예상치 못한 일 투성이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안개보다 높이 자리한 마을에는 이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밭에 자라고 있는 무잎 위로 살짝 서리가 내렸다. /곡성군






할머니의 보물상자에는 보물이 한가득 들었다. 꺼내도 꺼내도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뒤웅박, 씨오쟁이에서 가방으로 바뀌었지만, 한땀 한땀 직접 꼬매 만든 씨주머니에서는 그녀의 정성이 느껴진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당연히 씨주머니에는 씨앗이 들었다. 씨주머니마다 서로 다른 씨앗이 담겨 있다. 상추씨.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평생 부쳐온 자신의 밭 앞에 섰다. 이제는 늙어 힘이 없어 쪼끔만 한다며 다 늙은 것 사진 찍어 뭐하냐고 하신다.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농부는 작은 공간도 허투루 버려두는 법이 없다. 마늘을 심고 고랑에는 상추씨를 흩뿌려 놓았다. 이대로 겨울을 나고 봄부터 뜯어 먹는 맛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10월 말이지만 꽃이 피었다. 부추꽃이 활짝 피었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햇빛이 내리쬔다. 겨울 채비에 맘이 바빠진다. 불청객의 방문에 무심한 듯 바삐 손을 놀려 키질을 한다. 키에선 팥들이 천둥을 친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그 색과 얼룩이 마치 꿩을 닮았다고 하여 꿩동부라고 한다. 장끼보다는 까투리와 닮았다. 토종 씨앗의 이름은 자연을 닮았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집마다 장맛이 다른 건, 손맛도 손맛이지만 장독대가 달라 그럴 수도 있으리라.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호박을 잘라서 말린다. 이렇게 말려 놓은 호박은 겨울 내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된다. 시장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도시민과는 사뭇 다른 겨울 채비.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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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산업현황 비교



 
1. 국내 산업현황
1) 생산동향
○ '07년 현재 우리나라 채소의 종자 생산량은 총 1,905톤으로 이중 82.6%가 채종단가문제로 해외에서 채종, 도입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금후에도 계속될 전망
○작물별로는 배추, 참외를 제외하고는 국내 채종량보다 해외 채종량이 더 많고, 그 외 작물은 80% 이상을 해외에서 채종하고 있음
 
2) 수출입 동향

○ 우리나라의 채소종자 수입량('07)은 총 1,868톤이며, 수입액은 38,004천불임
○ 종자 수입액 중 순수입액은 18% 내외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채종단가를 낮추기 위한 해외 채종 수입액임
○ 채소 종자 순수입 대상국은 일본, 중국, 이태리,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등이며 그중 금액비율은 일본이 전체의 48%를 차지

- 중국(22%), 이태리(8), 네덜란드(5), 뉴질랜드(4), 미국(3)
○ 채소 종자 해외 채종 수입 대상국은 일본, 중국, 이태리, 뉴질랜드, 일본,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으며 그중 일본이 전체(금액대비)의 45%를 차지
○ 우리나라의 채소 종자 수출량은 '07년 총 314톤이며, 수출액은 20,741천불이며, 고추, 무, 양배추가 전체 수출액의 71% 이상 차지
- 수출시장 점유율은 일본 > 중국 > 미국> 인도네시아 > 인도 순
- 인도는 주로 무, 양배추를, 일본은 무, 배추를, 중국은 배추, 고추, 양배추, 무를 우리나라로부터 수입
○ 한국의 채소종자 수출?입 현황
- 한국의 채소종자 수출 현황(2007)

대상국

점유율(%)

주요 품목

일 본

22.6무, 배추, 수박, 고추

중 국

17.0고추, 양배추, 배추, 당근

미 국

15.3고추, 수박, 배추, 무

인도네시아

10.3고추, 배추, 양배추, 무, 수박

기 타

34.8-
※ 자료 : 한국종자협회
 
- 한국의 채소종자 수입 현황(2007)

대상국

점유율(%)

주요 품목

일 본

48.5양파, 토마토, 호박, 파, 당근, 무

중 국

22.1고추, 호박, 무, 오이, 수박, 배추

이태리

8.0무, 양배추, 당근, 양파

네덜란드

4.9단고추, 고추, 양배추, 양파, 토마토

뉴질랜드

4.2무, 양배추, 배추

기 타

12.3-
※ 자료 : 한국종자협회
 
2. 국외 산업현황
1) 주요국 종자 시장('07)
○ 전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약 300억$ 내외로 이 가운데 약 50%가 미국,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대만이 차지
○ 주요국가의 종자 수출량은 미국, 칠레, 일본, 중국 순이며, 수입량은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순임
○ 주로 미국, 칠레는 작물종자 수?출입이 대부분이고, 중국, 일본, 한국은 원예종자가 대부분을 차지
○ 주요국 종자 시장 규모('07)

국 가

시장(백만$)

미 국

5,700

중 국

4,500

일 본

2,500

인 도

1,000

한 국

400

대 만

300
 
○ 세계 종자 교역량 추이(단위 : 백만$)
 
 



국가별 기술 수준


1. 경쟁국과의 기술 수준
1) 한 국

○ 채소품종 개발 수준

- 미국, 일본, 화란 등 종자개발 선진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나 우리의 목표 시장인 중국, 동남아, 남미보다는 매우 앞서는 수준
  · 마커 개발 등 생명공학기법을 활용한 품종개발 미흡 
  · 유전자원 정보망 구축 및 탐색 등 활용기술 미흡
- 국내 재배면적이 많은 배추, 무, 고추 등 세계적 경쟁력 확보
  · 무, 배추, 양배추 : 자가불화합성 및 웅성불임성 이용
  · 고추 : 웅성불임성 이용 일대교잡종 육성 기술
○ 채소 육종기반 기술 수준
- 병충해 저항성 조기검정기술
  · 고추 역병세균성점무늬병수박 탄저병덩굴마름병 등 주요 병해에 대한 조기 검정 기술 확립
 
2) 경쟁국과의 기술수준 비교

구 분

기 술 수 준

우리나라

일본, 미국

육종기반
기      술

· 병충해 저항성 조기검정기술

· 종간교잡 기술

· 약배양 및 배 배양 기술

· 식물체 재분화 기술

· 조기선발 Molecular Marker 탐색

· 유전자원 평가, 보존 및 정보관리

육종기술

· 내병성 육종

· 원형질체 융합 기술

· 품질육종

· 돌연변이 육종

· 분자 유전, 육종

채      종
종자처리
종자관리
기      술

· 자가불화성 검정 및 활용기술

· 웅성불임성 검정 및 활용기술

· 펠레팅, 코팅, 프라이밍 등
  종자처리 및 종자가공기술

△~○

· 종자전염 병, 해충 검정 및 방제기술

· 종자유전 순도검정 및 종자세 검사기술

· 품목별 채소 종자저장기술

△ : 중하위 ○ : 중상위 ◎ : 선진 기술
 
○ 종간교잡 : 감자, 호박, 고추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
○ 약배양 및 배 배양 기술
- 배추, 고추, 호박 등 일부 작물에서는 개발완료(효율 증진 필요)
○ 식물체 재분화 기술 : 고추, 감자, 박, 배추 등 상당히 진전
○ 내병성, 조기선발용 Molecular Marker 탐색
- 고추, 수박, 배추 등 일부 작물에서 개발되어 있음(미국, 유럽 등에서 추진)
○ 국내 종자산업은 무, 배추, 고추 등 배추과와 가지과 채소종자는 육종기술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고, 종자산업법의 제정 등으로 발전의 토대는 형성



당면 현안

1. 생산현장 문제
1) 국내 종자 시장 규모 및 기술 수준
○ 국내 채소 종자시장은 '06년 현재 약 1,800억원 정도의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영세한 군소 회사들이 많아 종자생산기반이 취약함
- 소수업체를 제외하고는 자본, 인력, 매출액 등이 소규모여서 산업으로서의 국제 경쟁력이 낮은 상태
○ IMF 관리체제 이후 외국 종자기업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고, 종자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크게 변화
○ 육종기술 측면에서는 무, 배추, 고추 등 일부 작목의 경쟁력이 세계 수준에 도달해 있으나, 생명공학 기술 등을 무기로 한 거대 다국적 종자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열위에 있음
 
2) 채소종자 자급 수준

○ 대부분 채소 종자는 100% 자급

- 자급률(%) : 고추, 배추, 수박, 참외 등 100, 당근, 호박, 토마토 98
○ 수출용 채소종자(파프리카, 백침계오이 등)는 100% 수입
- 수입국의 채소 소비 기호성의 차이
○ 극조생종 양파, 토마토 등은 육종기술 수준 미흡과 품질경쟁력 취약으로 대부분 수입
○ 채종단가 상승 및 개화기 장마 등 기후여건으로 남미, 중국 등에서 채종
- 남반구는 반대 계절 활용, 일조량 많아 충실 종자 생산량 많음
 
3) 금후 종자 시장 추세
○ 종자의 수요는 농작물 재배면적 및 생산량, 품종과 깊은 연관
○ 향후 채소 생산량이 증가하는 만큼 종자의 수요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임
- 작물 재배형태와 재배기술의 변화(대형화 온실, 촉성 및 억제재배)
- 작물의 재배방법 크게 변화(직파에서 이식, 포트육묘 개발)
○ 일부 채소류 품종이 최근 고급, 다양화하는 추세이고, 신선채소류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이들 품종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
 
2. 정책분야
1) 신품종 증식?보급의 문제점
○ 개발된 신품종을 소비자 및 재배농가에 보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초기 상품화 및 시장진입이 어려움
- 신품종의 보급체계는 기본식물 → 원원종 → 원종 → 보급종의 4단계를 거쳐 대량 증식시키고, 각 단계별로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함이 바람직하나
⇒ 벼, 보리, 콩, 옥수수, 감자 및 6대 과종을 제외하고는 증식 및 보증체계 구축이 미흡(예 딸기, 마늘 등)
 
2) 종자 유통의 문제점
○ 품종보호 침해조사 체계가 없어 품종보호권의 행사가 어려움
- 복제 의심 품종에 대한 침해조사 또는 감정을 해주는 절차 등이 없어 육종가의 권리보호가 미흡
⇒ 제도상 품종보호권을 인정받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복제품종이 만연하는 문제점 발생
○ 육묘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미흡
⇒ 육묘업도 종자산업법에서는 종자업의 범위에 포함되나, 대부분의 업체가 종자업 등록을 하지 않고 있음
 
3) 종자 수출상의 문제점
○ 종자 수출확대를 위한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접근이나 지원 정책이 미흡
- 종자 수출확대를 위한 수출시장 수요조사, 수출 전용 품종 개발, 현지화 전략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미비
- 영세한 자본과 부족한 인적 인프라로 해외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간 종자회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미흡
○ 수출품목 및 수출지역 다변화 미흡
- 고추, 무, 양배추, 배추 종자가 수출의 80% 차지
 
3. FTA 추진에 따른 문제점
1) 경쟁력 분석 품목에 대한 견해
○ 대 일본
- 무 외에는 경쟁 우위 작목이 없으며, 여타 작목들은 기호가 서로 맞지 않거나 경쟁력 열위에 있음. FTA 체결시 시금치, 무, 양파, 파 와 당근 등 일부 과채류의 종자 수입 확대가 예상됨
○ 대 중국
- 현재 수입관세가 없으므로 FTA 체결해도 급격한 무역량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 무, 배추, 고추 등 대부분의 작목이 경쟁력 우위에 있으나 중국도 환금성 작물인 채소의 품종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어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품종의 질적 성능강화에 노력
○ 대 미국
- FTA 체결시 무 종자가 수입이 확대될 것이며, 그 외 당근, 양배추가 소량 수입이 예상되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임
 


대응방안

 
1. 생산현장 분야
1) 첨단생명공학기술의 조기 접목을 통한 품종육성 강화

○ 생명공학기술의 전통 육종에 조기 접목
○ 해외시장조사 강화 및 품종보호제도 등 제도 정착
○ 첨단생명공학기술을 기존 육종기술에 조기 접목시키기 위해 생명공학 연구체제 강화

- 유용유전자 및 육종효율 증진을 위한 분자 육종기술 개발
- 분자 표지 관련 연구, 목적 유전자의 발현 기작 연구
○ BT기술을 활용한 형질전환품종 개발 본격 추진
- 농약사용량 및 노동력 경감, 기능성 물질생산 등으로 부가가치 창출
  · 제초제 저항성 마늘, 매운맛 강화 고추 등
- 농업인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품종개발 및 조기실용화
○ GMO에 대한 잠재적 위해성을 감안하여 개발단계부터 안전성확보
- GMO 판별기술 실용화, GMO환경 위해성 평가지침 적용
○ 생명공학 실용화 기술 개발
- Genome 분야의 연구 결과를 활용한 유용유전자 개발
  · 내병성, 품질 관련, 환경적응성, 환경친화형 유전자
  · 웅성불임성, 자가불화합성, apomixis 유전자 등
- DNA marker를 이용한 선발효율 증진
  · 야생종에서의 유전자 도입
  · 선발이 곤란한 질적형질에 대한 간접 선발
  · 내병충성 저항성 유전자 연관 marker 개발 등
 
2) 채소종자 자급률 향상 방안
○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부 채소류(조생양파, 시금치, 토마토, 오이, 착색단고추, 딸기 등) 품종육성 중점추진
○ 국가육종기관의 연구인력(분자 육종 전문가 등 : 육종 연한 단축) 보강 및 민간업체와 협력강화
⇒ 일부 품종만 실용화되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 및 민간업체와 유기적인 협력강화 필요
○ 민간종자업체 신품종개발 활성화와 전문화를 위한 지원
- 우량종자개발비, 종자수매자금 등 정책자금 융자지원
- 회사별 전담품목을 자율결정토록 하고 전문화업체를 우선 지원
- 몇 개의 소규모 회사들이 consortium을 구성하여 육종에 필요한 선발 표지인자를 개발하여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종자 품질향상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기자재를 공동 사용토록 지원
⇒ 품목별 전문화와 개인육종가 발굴·지원 강화 필요
 
3) 원예육종기술센터 발족·운영
○ 원예작물 분자표지 개발, 육종재료 특성검정 등 민간 품종개발 지원
○ 주요 원예작물 육종재료 병저항성 검정 지원
○ 지역적응시험 대행과 육종재료 및 시험교배종 검정 대행
○ 각종 검정 키트 수집 평가 및 보급
 
4) 민간육종이 어려운 중요작물에 지속적으로 투자
○ 품목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참여가 어려운 마늘, 딸기 등의 품종 개발 투자 강화
 
2. 정책지원 분야
1) 효율적인 신품종 육성을 위한 종자산업 주체별 역할 분담
○ 휴면이 짧은 2기작 품종(대지, 추백, 추동, 추강, 추영, 고운)을 사용
○ 정부기관과 민간종묘업체간의 역할분담 및 전문화 추진
○ 수입의존도가 높은 종자의 품종개발 활성화
○ 중앙정부 : 법, 제도정비, 정책개발, 유통체계 확립 및 연구개발 투자 및 종자 관련 기관 기능 조정
○ 국공립연구기관 : 초기반 기술개발(유전자원수집, 새로운 육종기술 등)과 민간참여가 저조한 내병성 품종개발 집중
- 새로운 유전자원의 수집 및 평가 : 관련 민간업체에 제공 
- 마커 개발, 형질 전환기술 등 생명공학기술, MS 이용 채종기술, 펠레팅 코팅 등 종자처리 및 가공 기술 등 
- 국외 경쟁력 저위인 소면적 재배 원예작물 품종 육성
○ 대학 : 기초 및 응용기술 개발, 인력육성과 육종방법 개발
○ 민간종묘업체 : 상업성이 높은 품목 위주로 전문화
- 대면적 재배 작물, 수출 경쟁력 높은 품목 및 수입 대체용 품종 육성
- 전략육성 필요 품목(양파, 토마토 등)은 국가기관과 공동연구를 추진, 유전자원 및 육종 기술을 공유
○ 개인육종가 : 틈새시장을 공략 할 수 있는 품목육성
- 개인육종가 지원 시스템 구축 :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 및 지원 확대
- 육종관련 정보, 기술, 유전자원 등 제공, 개발상품의 상품화 지원
- 국가, 종자업체의 품종개발이 미흡한 특수채소 분야에 역량집중
 
2) 수출산업으로 육성
○ 목표시장 지향적 수출 중장기 전략 수립
○ 해외시장조사 강화 및 수출업체 적극 육성
○ 중국, 동남아시아 등 목표시장 지향적 중장기 전략 수립
- 목표시장 선정을 위한 제반 자료수집 및 품목별 경쟁력 분석
- 국가별 전략 작목 및 수출유망 품목 발굴 집중 육성
  · (1순위) 중국, 인도, 인니, 홍콩, (2순위) 일본, 기타 아시아지역
  · 배추·무·고추·수박·오이 등 채소류를 주력품목으로 육성 
- 민간업체 중심으로 추진하되 고부가가치 품목은 정부와 공동육성
  · 수출 종자의 현지 적응시험을 위해 민간업체의 해외 농장을 활용
○ 종자수출 확대를 위한 수출업체의 적극 육성 및 해외시장 조사 강화
- 수출업체의 경영전략, 마케팅 능력 배양 및 수출수매자금 지원 
- 군소업체 육성 품종 수출을 위한 수출대행 체제 구축
- 해외시장조사 확대 및 수집정보 공유를 위한 정보망 구축
  · 종자회사 의견 수렴, 정부차원의 기본 계획 수립 및 조사단파견
- 해외시장개척과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한 홍보 강화
  · 국제 원예박람회, 종자박람회 등 적극 참가 및 지원
○ 중·장기 차원의 고품질 품종 및 품질관리 기술개발
- 해외시장의 품목별 특성을 고려한 육종 목표 및 기술개발계획 수립
- 첨단기술을 이용한 가공종자 개발 등 종자의 부가가치 향상
  · 미생물 코팅, 펠레팅 등 종자 처리 및 가공기술 개발
 
3. 기술 개발?보급 분야
1) 연구개발 목표

연구과제

1단계('06~‘08)2단계('09~'11)3단계('12~‘15)
○ 유전자원
활용 강화
- 국내외 유용 유전자원 수집, AVRDC 유전자원 도입- 유전자원 수집, 평가, 선발- 유전자원 선발 및 고정, 육종 재료로 활용

○ 복합내병성 계 통 및 기능성 소재 육성 개발

- 신 육종소재 수집 및 확보- 신품종 육성을 위한조합 작성 및 선발- 육종재료 공동 평가및 선발, 보급
○ 채소작물이용 형질 특성평가- 수박, 무, 고추, 배추 등 주요 채소 유전자원에 대한 내병충성품질 및 기능성 검정 및 자원제공- 참외, 멜론, 오이, 상추 등 주요 채소 유전자 원에 대한 내병충성, 품질 및 기능성 평가 및 자원제공- 토마토, 양파, 당근, 호박 등 주요 채소 유전자원에 대한 내 병충성, 품질 및 기 능성 평가 및 자원 제공
○ 주요형질 특성 보유자원도입- 수박, 무, 고추, 배추 참외, 멜론, 오이, 상추, 토마토, 양파, 당근, 호박 등 주요 채소 유전자원 도입
- 러시아, 불가리아 등
- 수박, 무, 고추, 배추참외, 멜론, 오이, 상추, 토마토, 양파, 당근, 호박 등 주요 채소 유전자원 도입
- 러시아, 키르기즈스탄
- 수박, 무, 고추, 배추참외, 멜론, 오이, 상추, 토마토, 양파, 당근, 호박 등 주요 채소 유전자원 도입
- 유럽, 남미 등
○ DB 구축 및 정보 제공- 유전자원 특성정보, 기초 정보 DB구축- 유전자원 특성정보 및 기초 정보 DB구축지속
- 민간 육종가와 정 네트워크 구축
- 유전자원 특성정보 및 기초 정보 DB구축지속
- 민간 육종가와 정보 네트워크 구축 및 정보 공유
○ 분자표지 개발을 위한 고밀도 표준유전자지 도 작성- 고밀도 유전자 지도 작성- 분자표지 대량 발굴을 위한 기술개발유전자지도를 이용한 분자표지 발굴

○ 분자표지개발 및 품종개발

-내병성 분자 표지를 이용한품종개발 착수

- 복잡유전자에 대한 분자표지

- 주요 채소 작목 신품종 집중개발
 
2) 연구추진 계획

연구과제

중기(2006~2010)

장기(2011~2015)

○ 품종육성 

○ 채종기술

○ 종자관리

· 유전자원 수집, 이용기술 개발
· 우량특성 유전자원 창출 연구
· 종자 생리 연구 
· 품목별 채종방법 개발
· 채종포 안정생산 기술 개발
· 프라이밍, 펠레팅등 전처리기술
· 무병종자 생산기술 개발

· 육종 효율증진 기술개발
· 기호성 높은 품종 육성
· 종자 생리 연구
· 품목별 채종방법 확립
· 채종포 안정생산 종합관리 기술
· 분자유전학적 순도검정 및 우량
  종자 선별 기술 개발

 
3) 주요 연구내용
○육종 소재 개발
- 유전자원 탐색 및 D/B화
  · 유전자원의 수집 및 보존, 수집자원의 유용특성 정밀 분석
  · 기능성 신소재 개발
  · 분석에 기초한 육종 소재 선발
- 유용유전자
  · 채소 유용유전자 탐색체계 확립
  · EST분석을 통한 생리, 생화학적 특성 구명
- 프로모터
  · 목표 기관 특이 발현 프로모터 개발
○ 유전분석
- 채소작물 주요 형질에 대한 유전분석
  · 유전분석용 조합 육성 및 유전분석
  · 목표형질 도입 중간모본 육성
- 분자유전
  · 분자표지를 이용한 후대분석
  · 유전자지도 작성을 위한 genome 분석
  · 분석 및 조기선발용 분자표지 개발
- 정밀분석용 재료 양성
· homozygous DH line 육성
○ 생명공학 기법을 이용한 품종육성
- 형질전환
  · 고효율 채소 형질전환 체계 확립
  · 실용적인 유용유전자 도입
  · 주요 채소 품종의 형질전환율 제고
 
4) 기대효과
○기술적 측면
- 품종육성 기술은 2015년 세계 최고수준, 재배생산 기술은 2010년 중위권, 2015년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
- 채소종자, 신선채소 생산, 가공품 등의 분야에서 기술 및 제품의 수출국으로 위상의 개선
○ 경제적 측면
- 채소산업의 비중을 향상시켜 국가경제를 뒷받침
- 생산비 절감 및 노동시간 절감으로 경쟁력 있는 채소 산업 육성
- 수급균형과 경쟁력을 갖춘 안정된 농가소득 작물로 자리 매김
- 수출국 기호에 맞는 다양한 품종의 개발 및 수출확대 및 외국품종 대응 국산화율 증가로 로열티 부담 경감
○ 사회적 측면
- 채소 생산에서 환경 부하를 최소화하여 국민건강 보전 및 환경 보전적 산업으로 육성
- 고품질의 기능성 채소류의 생산으로 고부가가치의 안전성 높은 식품산업의 기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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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ana Shiva - Lessons of Fighting Hegemonies in Food and Seed for 30 Years from TV Multiversity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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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인구, 특히 개발도상국의 인구가 성장하며 작물 수확량을 수요에 맞추기 위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Clark은 아시아 각지의 농민과 소비자가 직면한 문제와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지 살펴본다.

4500평의 Naryana Reddy 씨의 농장은 중앙 인도 외곽의 Kothapally 마을에 있다. 그는 자기 가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식량 생산이 더 빨랐던 전형적인 아시아 지역의 소농이다. Reddy 씨가 농장을 물려받았을 때 그가 부양할 가족은 4명이었다. 현재 그의 가족은 7명이지만, 더 나은 물 관리,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여 그는 일 년에 일모작이 아닌 이모작을 하고, 작물 수확량을 2배로 올리고 있다. 

지난 40년에 걸쳐 세계 인구는 80%까지 성장했지만, FAO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전에 먹던 것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식량을 구할 만큼 식량 생산이 그를 앞질렀다.

FAO는 인구 성장이 감속하고 2050년에는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라 예측하지만, 그때까지 아직 25억 명이 더 늘어날 것이고 그 60%가 아시아에서 살 것이다. 

1970년대 엄청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잘 알려진 "녹색혁명" 덕이다.

농업 생명공학 응용을 위한 국제 업무의 임원인 Clive James는 "역사 분석을 뒤져 보면 과학이 농업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한다. 

"사람들은 녹색혁명의 건설자 노만 볼로그를 잊어 버렸다.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잘 받아들여 수확량을 높이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10억 명을 굶주림에서 구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녹색혁명"은 인구 증가율보다 작물 수확량을 높였는데, 1980년대부터 작물 수확량의 증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1990년대 식량 생산 증가율이 인구 성장률보다 아래로 떨어졌다.

농민의 식량 생산 능력을 떨어뜨리는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기후변화는 작물 수확량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국제 식량정책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대한 몇몇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2050년까지 작물 수확량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 한다.

반건조 열대 지역에 대한 국제 작물연구소의 William Dar는 "기후변화가 물 부족과 높아지는 기온이란 문제를 불러온다"고 한다. 

"오늘날 모델은 이미 작물 수확량의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는 2050년까지 9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생산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육류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세계의 수자원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앞으로 40년 동안 육류 수요는 2배로 늘어날 것인데, 육류 1kg에 밀 1kg을 생산하는 것보다 8배나 많은 물이 들어간다.

인구 성장으로 농지는 점점 부족해질 것이고,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할 것이다.

도시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비싸다는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Mohammed Mohasin 씨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외곽의 빈민가에 산다.

그는 시골에선 거의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더 나은 삶을 찾아서 700만의 거대한 도시로 이주했다.

다른 많은 방글라데시인과 비교하여, 이 두 아이의 아버지는 안정된 일자리가 있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에도 그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양철 지붕의 시궁창에 그대로 노출된 그의 좁은 집에서 왜 자신이 점심을 거르는지 설명한다.

"식량 가격이 올랐을 때 나는 처음으로 더 값싼 식량을 찾으려 노력하고 하루 세끼를 두끼만 먹어서 우리의 지출을 줄였다."

아시아 전역의 도시 빈민 대부분처럼 Mohasin 씨도 자기 수입의 약 90% 식량을 사고 집을 빌리는 데 쓴다. 2008년 식량 가격이 폭등하여 그는 여기를 떠나야 했다.

세계은행은  식량 가격이 올라가서 온 세계에서 1억 명이 추가로 기아에 빠질 것이라 추산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식량 가격이 앞으로 20년 안에 다시 2배 이상 오를 것이라 예상한다.

농촌의 빈민은 빈땅이나 숲과 강에서 식량을 구할 기회나 있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세계 시장의 성쇠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학원의 Cai Jianming 교수는 도시 농지를 개발하여 중국의 도시들이 자신의 지방자치제 경계 안에서 채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중국 남부에서 우린 옥상의 공간을 활용하지만, 북부에서는 시장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짧은 도심지 주변의 공간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먹을거리를 기를 수 있는 가정의 발코니를 활용한 수직 농장은 베이징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종종 대부분이 기근이 식량 부족 때문에 아니라 잘못된 경영으로 인한 것이란 사실을 지적한다. 

1996년 FAO는 세계의 모든 이가 하루 2700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한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70억으로 추정되는 세계의 인구 가운데 10억은 비만에 시달리는 한편, 10억은 영양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 기술대학에서 비전통적인 안정보장을 위한 센터에 있는 Paul Teng 교수는 식량 생산과 분배, 소비 체계에서 일어나는 손실을 연구하여, 그것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 전에 50%나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그는 "다시 말해, 우리가 그 손실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우린 더욱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잠재적 식량 결손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점에서, 최근 영국의 옥스팜에서 나온 보고서는 간단한 질문을 제기한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미래의 식량 수요에 대한 답이냐, 아니면 우리의 부숴진 식량 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답이냐?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 작물과 환경과학의 수장 Bas Bouman은 앞으로 40년 동안 아시아에서 벼의 생산량을 2배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녹색혁명 시기 이후 만들어진 현재의 벼 품종을 보면, 그것의 잠재적 수확량은 3000평에 8~10톤이다. 그런데 이곳 필리핀의 평균 수확량은 3.7톤이다. 주요한 벼 수출국인 태국에서 평균 수확량은 3000평에 3.5톤이다. 이 두 나라에서 새로운 종자 품종 없이 더 나은 관리만으로 수확량을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다."

더 나은 물 관리와 조작된 작물의 조합은 생명공학 농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답이다.

필리핀 Los Banos 대학의 작물과학 교수 Ted Mendoza 씨는 점적 관개와 집수, 사이짓기, 유기 퇴비가 어떻게 유전자조작된 씨앗이나 살충제 없이 동등하게 인상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옥스팜의 보고서는 전통적인 농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들이닥칠 위험의 빛에 "위태로운 낭만'이라고 제안하지만, Mendoza 씨는 위기의 존재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그는 현재의 공포는 농민이 그걸 사서 수확량을 높이도록 하려고 하는 상업적 화학비료, 농약, 종자의 수혜자인 농산업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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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설립된 몬산토는 유명한 화학회사였습니다. 큰 전쟁을 거치며 한몫을 단단히 쥐고, 1960년대부터는 농업을 핵심사업으로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녹색혁명의 시기였지요. 이 회사는 1980년대부터는 생명공학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몬산토는 여러 종자회사들을 합병하면서 거대한 종자회사로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허권으로 다양한 종자를 농민의 손에서 회사의 보관소와 연구실로 빼앗아 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식량 공급을 좌지우지하는 큰손이 되었습니다. 1년에 12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연구에 투입하고 있는 몬산토. 일개 농부의 힘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오늘도 농민들은 몬산토의 씨앗을 사서 심고, 몬산토의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리고, 몬산토의 비료를 구입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이른바 'Big Six'라 불리는 다국적 화학회사가 수많은 종자회사를 합병했습니다. 그 여섯은 몬산토, 듀폰, 신젠타, 바이에르, 다우, 바스프입니다. 이들 가운데 지배자는 단연 몬산토입니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한국.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 거의 모든 종자회사가 이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현재 한국 자본의 종묘회사 가운데 큰 규모인 것은 단 하나가 남아 있지만, 자본은 국경을 따지지 않으니 뭐 그렇습니다. 몬산토는 바로 그때 우리나라에 진출했습니다. 뭐 눈에 잘 띄지 않는 농업 분야라 그런데, 몬산토코리아의 매출액은 2007년 기준으로 약 456억에 달합니다. 매출 2위의 약 66억과 비교하면 그 영향력이 확 피부로 다가옵니다. 

구제금융 이전 한국에는 네 개의 큰 종묘회사가 있었습니다. 서울종묘, 중앙종묘, 청원종묘, 흥농종묘가 그것입니다. 98년 중앙종묘와 흥농종묘가 멕시코의 종자회사 세미니스에 매각됩니다. 그리고 신젠타가 서울종묘를 인수합니다. 마지막 청원종묘는 일본계인 사카다 종자회사로 매각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소한 종묘회사들이 영세한 중소기업으로 전락을 합니다. 그런데 그 멕시코의 세미니스가, 한국의 가장 크고 유망한 종묘회사를 인수한 그곳이 몬산토에게 매각되는 겁니다.


1996~2008년 사이 '빅 식스'가 합병해 온 종자회사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자료는 미시간 주립대학의 필립 하워드 교수가 만든 것입니다. 



그림 설명은 파란 원은 종자회사, 빨간 원은 제약이나 화학회사입니다. 회색 실선은 완전한 소유권, 점선은 부분적인 소유권을 뜻합니다. 아무튼 이 그림을 통해서도 몬산토의 어머어마한 영향력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몬산토는 198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속도로 종자회사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개발한 유전자조작 생물을 활용해 세계의 식량 공급을 좌지우지합니다. 지금도 독립적인 여러 종자회사를 파트너쉽이란 명목으로 지배하고 있지요.

이러한 빅 식스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하나 이상의 협약을 맺어 공동으로 특허권을 나누어 갖는 등의 방법으로 공생하고 있습니다. 몬산토야 말할 것도 없고, 다우는 바이에르와, 신젠타는 다우 몬산토 듀폰과, 바스프는 다우와 몬산토와 이어져 있죠.


이 결과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식량을 지배하고, 결국 식량을 지배하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씨앗을 지키지 못하면, 농사의 미래는 어두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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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확과 해충 저항성만이 아니라, 지지자들은 유전자조작 식품이 유통기한도 더 길고 영양가치도 좋다고 한다.  

By MIKE SSEGAWA  (email the author

Posted  Wednesday, May 25 2011 at 00:00


우간다에서 농민들은 유전자조작 종자의 도입은 토종 종자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그것의 사용을 강력하게 거절했다. 지난주 Mukono의 Colline호텔에서 열린 Pelum Uganda가 주최한 농민단체의 모임에서, 유전자조작 생물은 우간다나 아프리카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들은 유전자조작 작물이 민간의 종자 소유권에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의 안전과 영향을 둘러싼 크나큰 불확실성 때문에 우려한다. 

그러나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유전자조작 생물을 풀어주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동향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유전자조작 생물의 옹호자들은 돈이 많은 기업들이다. “토종 종자의 보호와 보존은 식량안보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입니다”라고 농민이 공동성명을 읽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 생물을 강요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상업적 이익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간다의 프로 생물다양성 보존활동가 Robert Tumwesigye 씨는 우간다에서 GMO의 시험은 황급히 이루어졌고 과학기술을 이끄는 법의 부재는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유전자조작 생물은 식량안보에 대한 헛된 기대를 가지고 왔다”고 Tumwesigye는 주장한다. “그것의 도입은 황급하고 무턱대고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현장 시험이 법적 체계 이전에 시작되어서 문제가 일어나도 어떠한 보호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유전자조작 생물 용호자들은 유전자조작 작물의 이익, 특히 다수확, 제초제 내성, 해충과 질병 저항성 같은 이익을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 특성에는 식품 생산을 위한 유통기한을 늘리고 수분 보유량을 더 좋게 하는 영양의 증대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조작 생물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국제생물안전성 협약에서 독일 과학자연맹을 대표하는 Econexus의 Ricarda Steinbrecher 박사는 건강과 환경, 식량안보에 대한 유전자조작 생물의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녀는 농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와 운동가의 대표자와의 모임에서 지난 15년 동안 유전자조작 생물의 개발자는 주로 국제적 수준에서 생물안전성 규제를 열심히 약화시켜온 다국적 기업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생물안전성을 위한 아프리카 센터의 연구자 Haidee Swanby는 유전자조작 생물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다국적 기업의 목적은 증식에 대한 권리를 장악하여, 몇 대에 걸쳐서 수확한 종자를 다시 심는 행위를 막아 소농이 종자 생산자에게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Swanby 씨는 개발 프로젝트란 탈을 쓰고 유전자조작 생물을 도입하려는 문산토, 신젠타, 바이엘과 같은 다국적 기업을 비난했다. 

“지난날 우리는 Comesa, SADC, EAC와 같은 아프리카의 시장공동체에 지역 전체의 생물안정성 법안을 제정하고자 지역적 접근을 추진하는 미국 국제개발처의 많은 노력을 보아왔다. 이러한 생물안정성 법안은 환경과 인간 건강의 보호를 보장하기보다는 유전자조작 생물을 위한 개방을 목표로 한다.” 그녀는 “법안이 실시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유전자조작 생물이 식량 원조로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전자조작 작물의 환경과 식량안보에 대한 위험을 지적하는 Steinbrecher 박사는 “농업에 유전자조작은 필요없다. 혁신적인 농법과 결합된 육종은 향후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더 좋은 준비이다. 예를 들어 육종은 이미 가뭄에 강한 옥수수, 비타민A가 풍부한 수수나 홍수에 강한 벼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유기농법과 같은 생태농업의 방법은 어떤 농화학적 투입재 없이도 수확량을 두배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건강의 위험요소

그녀는 “유전자조작을 둘러싼 많은 불확실성이 있고, 그것은 더 많거나 새로운 알러지, 독성, 안티-영양소의 생산을 포함한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사료 시험을 통하여, 유전자조작 생물을 먹은 동물의 건강에 명백한 부정적 효과가 발견되었다.” 특히 간, 췌장, 신장 기능에 장애가 있었다. 많은 사례에서, 유전자조작 생물을 먹인 동물들은 염증과 궤양 같은 위장과 소화기관의 문제가 생기고 위장과 소화기관의 내벽이 지나치게 커졌다. 그녀는 추가로 혈액검사에서는 면역반응과 적혈구 수치의 감소가 드러났고, 동물은 체중변화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선택의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에 대한 영향을 감시할 수 있도록 유전자조작 식품에 딱지를 붙일 명백한 필요가 있다.”

유간다는 지금까지 Serere와 Kasese에서 Bt 목화, Kawanda에서 바나나, Kasese의 Wema에 옥수수, Namulonge에서 카사바를 유전자조작 생물로 시험하고 있으며, Namulonge 연구소에서 벼와 고구마의 특성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러한 시험에 쓰이는 작물은 그것의 사용을 규제할 법적 체계가 없기에 시험이 끝난 뒤 시장에 풀 수 없다. 그러나 유전자조작 생물과 관련된 법안을 몇몇 나라에서 통과시키려 추진한다. Tumwesigye 씨는 “임박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유전자조작 생물을 도입하기 전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민들은 다국적 기업이 여러 나라에 유전자조작을 도입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키려 후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케냐, 남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이집트의 의회는 생명공학 법안을 통과시켰고, 뒤의 세 나라는 이미 유전자조작 작물을 상업적으로 기르고 있다.

그러나 BT 목화가 건겅에 해롭다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Steinbrecher 박사에 따르면, 인도에서 다섯 곳의 마을을 조사했고 의사들은 BT 목화에 노출되거나 들이마신 농민에게서 특히 피부병, 가려움, 눈병, 상기도 증상을 발견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유전자조작 목화 생산에 관하여, 그녀는 4~5년에 걸쳐 유전자조작 목화를 재배하는 농민은 노린재와 깍지벌레 같은 값비싼 농약의 집중적인 사용이 필요한 이차적인 해충이나 작물의 손실을 불러오는 심각한 문제에 부닥친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 제3세계 네트워크의 변호사 Lee Aruelo 씨는 유전자조작 생물을 관리하는 국제적인 보충협약을 강조했다. 그녀는 “보충협약의 정신은 예방적인 접근이다. 그것은 유전자조작 생물이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대상과 다르고 과학적 불확실성을 갖는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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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0일, 날씨는 맑지만 바람이 강해 춥다. 먼저 어제 날이 저물어 보지 못한 성읍 2리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도 중산간이니 기대할 만하다. 차를 타고 오르는 길은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도 곧 확장공사를 한다고 하니,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참 좋은데...

 

성읍 2리는 올라가보니 목장 지대였다. 농사는 그리 많이 짓지 않고 말을 키우는 곳이 많았다.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별장 식으로 지은 듯한 집도 꽤 보였다. 그래도 차에서 내려 이 마을을 한참 돌다가 다시 표선 쪽으로 내려갔다. 다음 목적지는 제주민속촌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참 많이 왔다.   

제주의 전통 뗏목, 테우.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이런 배가 오히려 뒤집히는 일이 없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빗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이렇게 받아서 썼다.

 

 

눌. 뭍에서 낟가리라 부르는 것과 같다. 바람이 많은 곳답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로 매달아 놓았다. 

 

 

제주의 옛 민가. 옥수수를 주루룩 달아놓았는데, 제주에서 옥수수를 이렇게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조 같은 씨앗을 심은 뒤에는 이 섬피를 끌고 다니며 흙으로 덮었다.

 

제주의 장독대. 제주의 장독은 그 색도 독특하다. 흙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제주의 부엌. 역시 굴뚝이 따로 없다. 벽은 그을음으로 검게 그을렸다. 메주를 저렇게 달아놓으면 그건 괜찮았을려나? 

 

 

세간이 참 단촐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이 돌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맷돌. 

 

 

김칫독을 묻어 놓은 곳도 아닐 테고,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그 옛날 라이터나 성냥이 없을 때 썼다는 불씨를 보관하는 도구.

 

 

이것도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은자의 집, 상여. 

 

 

벼를 훑어서 털던 그네. 

 

제주의 보습. 밭에 돌이 많아서 그런가 뭍의 것보다 좁다. 

 

남태. 씨앗을 심고 흙을 다지는 용도로 쓰던 것.

 

 

표선 민속촌을 구경하고 세화1리 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 여름 제주에서 토종 조사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고옥화(76)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한다. 일단 집 앞 담장에 있던 나팔꽃의 씨앗을 채집했다. 고옥화 할머니께는 제주의 옛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지금은 피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는데, 옛날에는 피쌀이라 하여 송당이나 성읍에서 많이 했다. 피쌀은 3번을 방아 찧어서 체로 고르는데, 맛이 좋다. 포근하니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데, 먹고 나면 배가 일찍 꺼진다. '송당 목장'에서 아직도 피를 가는 것 같다. 습기가 많은 데는 피, 어느 정도 있는 데는 산듸, 없는 데는 조나 고구마를 심었다. 여름에는 한 달에 한 번 돗거름(돼지거름)을 냈다. 보리에 돗거름을 섞어서 뿌리고, 말이나 소로 밟는다. 사람이 있냐 없냐, 거름이 있냐 없냐에 따라 씨를 심는 법이 달라졌다. 거름이 없으면 그냥 쫙쫙 뿌리고, 있으면 하나로 섞어서 들고 뿌렸다.

그 아들 분께서 같이 자리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42세인데도 어렸을 적에 하루 두 끼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제사 때나 쌀밥을 먹을 정도였고, 겨울에는 보리범벅이나 메밀범벅을 자주 먹었다. 좋은 메밀쌀은 제사 때 쓰고, 후진 것으로 두 번 세 번 갈아서 고구마범벅에 넣는데, 그러면 색이 거무티티해진다. 고구마절간은 뱃때기라고 불렀다.

따뜻한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드리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냥 기사식당 같은 곳이었는데 다른 어느 곳보다 인심도 후하고 맛있으며 값도 쌌다. 나중에 제주를 다시 찾으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계속 표선면 일대를 누비고 다녔으나 별로 소득은 없었다. 아니 전혀 없다. 그래서 아까 들은 송당 목장으로 피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송당 목장을 지도에서 찾아 산으로 올랐다. 조금 헤매다가 송당 목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송당 목장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

 

목장 사무실을 찾아가 관계자 분을 만났다. 피는 사료로 쓰려고 심고 있는데, 현재 반장님이 집에 씨를 보관하고 있어 이곳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고 하여, 우리가 피를 찾는 목적을 말씀드리고 주소와 발송비 명목으로 비용을 드리고 왔다. 이 피는 이후 집으로 돌아갔을 때  틀림없이 배달되었다.

이제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은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하여 여기저기 많이 다니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한 달에 걸친 기간이 마지막이라니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참 시간이 빠르기도 하다.

 

 송당 목장은 전체 넓이가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이 드넓은 초지에서 말과 소가 다니며 한가로이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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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6일.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비행기로 제주에 왔다. 이번 조사에는 안철환 선생님이 합류해 모두 4명이 되었다. 공항에 내려 차를 빌리고, 시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아끼고자 앞으로 어디를 돌지 미리 지도를 통해 둘러보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황사평에 단지 무를 찾으러 갔다. 전화 연결이 되는 듯하였으나 갑자기 끊어졌다. 이로써 두 번째 실패. 도대체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걸까?

어쩌랴, 할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일정 안에만 만나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저 남쪽, 제주시의 반대편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로 이동했다.

 

 안덕면으로 가는 길에 만난 햇살. 구름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 뭔가 앞날에 서광을 비추는듯...

 

 

모텔에 들어서니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두고 쉬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첫날이기도 하고, 이미 1차에서 열심히 수집한 탓이기도 하다. 근처의 중앙식당을 소개받아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도 이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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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1일. 날씨가 흐리고 공기가 차갑다. 바람도 좀 분다. 남쪽나라 제주도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안 되겠다. 일단 옷부터 단단히 챙겨 입어야지.

 

8시 40분 어음리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 전 봉성리를 지났으나 거기는 별 거 없었다. 봉성리는 다들 큰 읍내로 출퇴근을 하시는가 보다.

 

결국은 찾은 어음리... 어음 2리 3129번지에서 일단 보리콩을 구했다. 뭍과 다르게 보리콩이란, 보리를 거둘 때 거두는 콩인지, 보리를 심을 때 심는 콩인지 잠시 헷갈린다. 뭐였더라???

 

 

 

이렇게 보리콩만 얻고 끝날 줄 알았다. 집이 워낙 정결하고, 뭐 알아볼 수도 없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 없는 곳이란 걸 금방 깨달았다. 집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수확의 흔적들... 아래에 보이는 콩가리도 그렇다. 높이 쌓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사시면서 이런 콩가리를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더 달라붙어 말을 걸었다. 역시나 할머니에게서는 이것저것 있는 곳이 있으니 가자며 곳간으로 이끄셨다.누가 알았을까? 이곳에서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종자의 거의 절반을 다 보았다.

 

 

씨앗을 꺼내 보여주시는 양혜옥(74) 할머니. 평생 농사만 지으신 할머니이신지라 사람이 찾아오는 일도, 사진을 찍는 일도 어색하시기만 하다. 그냥 할머니... 그냥 할머니시다.

그렇다고 할머니만 이런저런 씨앗을 보여주신 건 아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낯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농사를 다 보여주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낯선 사람...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 씨앗을 보여달라고 채근하는 것이라 느낄 만도 한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보여주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마운지 이번 일을 통해서 새삼 절실히 깨닫는다.

 

 

계속 농사짓는 씨앗을 꺼내 보여주시는 강형준(74) 할아버지. 늦더라도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본 오이의 모습도 심상치 않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이것도 토종이라고 하신다. 물론 꼭 집어 토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지만, 여름에 더울 때 생채를 해 먹는다며 짤막한 것이 외이고, 길쭉한 것이 오이라며 우리에게 차이를 꼭 집어서 설명해 주신다. 아, 그래도 이렇게 봐서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걸 어쩌랴? 일단 사진에 한 방 남겼다.

 

 

다음 더 재밌는 일이 남았다. 이건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내 평생 처음 갔지만 정말 큰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건이다.

정말이지 난 이걸 통해 제주도의 반은 다 돌아봤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이 집에서 개발시리를 배운 일이다.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짓는 이야기로 넘어갔고, 곳간에 보관하고 있는 곡식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조 이야기를 했는데, 검은흐린조를 심고 거두어서 먹는다고...

그래서 묻다 보니 답답하다 하시며 씨를 하려고 남긴 이삭을 들고 나오신다.

아~! 그래서 검은흐린조구나! 이게 검은개발시리조구나~!

 

 

시리는 ~처럼, ~같다는 뜻의 우리말이란다. 요즘은 이런 말도 안 쓰고 그런데 안완식 박사님이 넌지시 일러주셨다. 그러면 개발 닮은 조라는 뜻이라고 풀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개발이다. 개발 닮았다. 우리네 조상은 풀이름을 그 생김이나 특성을 닮은 한마디로 지었다는 것이 새삼 생각난다. 뭐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어음리에서 만난 토종 농가. 결국은 맛과 습관으로 계속 토종 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많은 토종으로 농사짓는 집을 만나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시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씨앗을 받아 놓으신 거며, 농기구며, 집짐승으로 보면 정말 제대로 찾아온 듯하다. 어디를 가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날지 모르겠다.

여기서 그동안 보지도 못했던 대파니, 산두(밭벼)의 메벼와 찰벼니, 두줄보리(맥주보리), 메밀, 들깨, 시불콩(세벌콩) 두 가지, 백편두, 제비콩을 얻었다.

 

 

 

 

오늘은 씨를 조사하고 얻는 것을 그쳤지만,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농사짓는 법을 하나하나 꼼꼼히 듣고 싶다. 그날이 올까? 굳이 내가 아니여도 좋은데... 꼭 다시 찾아가 뵙고 싶다.

 

 

다음 집을 찾으러 나가다 배추를 씻는 아주머니가 계신 걸 보고 차에서 내려 언제나 그렇듯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마침 아저씨도 계셔 슥 나오셔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네 집에 아쉽게 토종은 없으니, 혹시 모르니까 저쪽 할머니 집으로 가보자며 우리를 이끄신다. 오고 보니 아까 바로 그 집 바로 밑에 집이다.

이곳은 어음리 3039번지 이문자(84) 할머니 댁이다. 이제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듯하셨는데, 집 안은 깔끔하지만 집 밖은 미처 손이 다 가지 못한 느낌이다. 

 

이문자 할머니. 얼굴과 달리 고운 손을 보며 젊으셨을 땐 참 곱지 않으셨을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시집 와서 계속 심었다는 고추를 꺼내 보여주셨다. 크기가 무척 작다. 이제와서 고추를 보니 맵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더운 나라 고추일수록 크기가 작던데 크기는 작으면서 무지 매울 걸 보면 매운 정도가 응축이라도 되는 걸까? 할머니는 고추를 음력 3월이면 심는다고 하신다. 나는 씨로 심으면서 곡우 무렵에 심으니 그럼 음력 5월쯤일 텐데,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지 빠르긴 참 빠르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오래사신 만큼 집 안에도 오래된 물건들이 꽤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화로다. 변택호라고 써 놓은 화로는 내 기억 속의 그것과 달리 옹기 종류였다. 겉에는 페인트를 칠한 것인지, 아님 제주의 옹기가 원래 이런 색인 것인지 참 오묘했다. 아직도 불을 담아 쓰셔서 그런지 반질반질하게 보존상태가 참 좋다. 뭐든지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뽀얗게 먼지가 앉다가 스러져 사라지는 법.

 

예전에 제주 허벅 전시회에 갔을 때 느꼈던 제주 특유의 옹기가 생각났다. 제주는 흙이 달라 그런지 옹기도 참 별나다. 

 

 

이제 어음리를 뜰 시간이 왔다. 또 다른 곳에 있을 토종을 만나러 가야 한다. 안완식 박사님은 못내 아쉬우신지 나중이라도 여기를 꼭 다시 한 번 들르고 싶다고 하신다. 박사님의 그 바람을 일단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나섰다. 아니 근데 나가다 보니 나중에 또 오더라도 이곳은 한 번 들러야겠다는 곳이 보였다. 다시 차에서 내려 그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어음리 2963번지 부창(70) 할아버지 댁. 더 많은 걸 기대했으나 할아버지께서 알고 계신 것만 꺼내서 보여주었다. 검은콩(쥐눈이콩)은 보통 것보다 크고 눈도 검다. 올해는 드물게 심었는데, 아무튼 많이 달린다고 하신다. 밥에 섞어 먹기도 하고, 그냥 갈아 콩국도 먹고 하는데, 콩나물은 안 된다. 6~7월쯤 늦게 심어도 빨리 익어서 좋다고 한다. 그 다음 백천이란 콩이다. 주남에 있던 것인데, 이건 그렇게 많지 않다. 이걸로 콩나물을 길러 먹는단다. 마지막으로 열 몇 살 때부터 심던 줄콩까지 얻었다.

 

부창 할아버지 댁의 맞은편 집. 형식은 제주의 옛날 집인데, 사람은 살지 않았다. 농막 정도로 쓰고 있었는데, 태극기를 꽂아 놓은 모습이 신기해 한 장 찍었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까?

 

 

이제는 진짜 어음리를 떴다. 토종이 엄청났던 그 집. 아마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최고가 아닐까 한다. 역시 두 내외분이 함께 농사를 지으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남자나 여자 혼자 살면 그렇게까지 가지고 있기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음으로 찾은 동네는 애월읍 납읍리라는 곳이다. 요즘 제주 올레길 걷는 것이 사람들에게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올레길을 제대로된 동네 골목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옛 올레. 사실 제주에서도 이제 이런 곳은 흔하지 않다. 차가 드나들기 좋게 시멘트로 바른 길이 더 많고 이런 길은 어쩌다 마주칠 뿐이다. 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떠오른다. 좁고 긴 구불거리는 골목, 그 옆으로 늘어선 낮은 담장. 이 길의 반대편에 있던 막다른 집에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살았다면 이 길은 사라졌을 게다.

 

 

그 올레의 한쪽에 있는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가 얼마나 마당을 예쁘게 가꾸셨는지 모른다. 문 앞에 다가가 조심스레 사람을 찾으니 한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이야기를 들으니 원래 이 집 주인은 방 안에 계신 할머니인데,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거동이 편하지 않으시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가 100세나 되셨다고 한다. 대신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양계생(96)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었을 집. 자식들은 다 뭍으로 나가 살고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할머니마저 이곳을 떠나시면 집도 스러질 날이 오겠다. 앞에 분홍색 바가지를 올려놓은 곳이 물구덕에 물을 길어와 등에 져 나른 뒤 올려 놓는 곳이다. 땅에 내려놓다가 깨질 우려도 있고 힘도 더 드니 이런 구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이곳을 물팡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엌에는 큰 물항아리를 두고 일상용수로 썼다.

 

언뜻 보기에도 여기저기 씨앗이 널려 있었다. 당뇨에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하는 염주, 강낭 또는 태주부루기라고 불렀다는 옥수수, 차나룩(찰벼)이라 부르는 산디, 강낭깨라는 제주식 이름의 해바라기, 보리, 결명자 씨앗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력이나 설명은 할머니께서 방 안에 누워계셔 듣지 못했다. 그건 아쉽지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방 안으로 남자 셋이 불쑥 들어가 휘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몸조리 잘하시라 밖에서 이야기만 드리고 집을 나왔다.

 

다음으로 간 집은 납읍리 1825번지의 양찬기(81) 할아버지 댁이다. 이 집에 오기 전 바로 앞집을 들렀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 집도 참 오래되어 보이는 번듯한 집이었다. 대문 바로 옆에 창고에 옛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한 장 찍었다.

 

멍석이 엄청 많은 걸 보니 농사 규모가 꽤 크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 보았다. 천장에는 쟁기도 보인다. 꺼내 내려놓고 싶었지만 이것도 주인이 계시지 않아 구경만 하고 말았다.

 

 

아무튼 그래서 찾은 집이 양찬기 할아버지 댁이다. 안완식 박사님께서는 이곳에 와서도 예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옛날부터 심던 배추 없어요?" 아니 그랬더니 여기서도 그게 있다며 따라오라신다. 할아버지를 따라 광으로 들어가니 선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제 홀로 남으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씨앗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 뭐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할머니가 보통 이 부근에 씨를 놓고 썼다며 뒤적이신다. 안타깝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대가 끊길지 모를 씨앗을 가져가 보존하고 퍼트릴 테니 다행이다.

이 배추는 옛날에는 국도 끓여 먹고 김장도 해 먹던 것이란다. 100년쯤 됐을 것이라 기억하시는데, 자기 할아버지 때부터 심었던 기억이 난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심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는데, 그건 정확하지 않으니 일단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것으로 기록. 그것 말고 시금치와 무 씨앗도 얻었다. 사람은 가도 씨앗은 남았다. 이 씨앗도 지금에서 시간이 더 가면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우리가 가져가 보존할 수 있을 게다.

 

양찬기 할아버지 댁의 광에 있는 곳. 할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이곳에서 이런저런 씨앗이 많이도 나왔을 텐데...

 

 

이제 차를 타고 납읍리를 떠나 상가리로 향했다. 상가리에 들어서니 커다란 폭낭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에서도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한참 뒤로 물러나 찍었는데도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다. 이 나이의 나이는 놀라지 마시라. 무려 1000살을 추정하고 있단다. 1000살. 이 어마어마한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냈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자체로 신이라 할 수밖에...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무가 1000년을...

 

 

 

이 나무를 감상하고 앉아 있을 시간은 없어 사진에만 담고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이곳 1768번지 김창생(80)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호박 하나를 얻고, 그 집 골목에 있던 피마자의 씨를 채집하고, 돌고 돌았으나 별 다른 것은 더 없었다. 상가리에서는 나무 구경 하나 잘했다. 1000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상가리에서 장전리로 가는 길에 허름한 집에 들렀다. 할머니께서 마침 어딜 다녀오셔 만날 수 있었다. 보관하고 계신 많은 씨를 보여주셨는데 특이한 것은 없어 수집하지는 않았다. 이곳을 나와 거문덕이라는 곳에 올라가다 피마자 하나를 수집했을 뿐.

 

 

상가리를 떠나 장전리로 접어들었다. 꾸물거리던 날씨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날씨도 꾸물거리고 어음리 이후에는 마땅한 곳도 없고 지친다. 일단 차를 세우고 오줌이나 싸면서 쉬려고 내렸다. 그런데 밭에 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게 또 심상치 않은 것인가 보다. 안완식 박사님이 얼른 이 무밭 주인이 누구인지 주변 좀 수소문해 보라고 하신다. 박사님께서 기다리던 것을 만났나 보다.

 

 심상치 않은 크기의 무. 옛날 제주의 단지무라는 것이 있었다. 오강단지처럼 짧고 불룩한 생김인데, 제주 사람은 그걸 먹었단다. 지금은 사라져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다니다 그걸 만나면 그 복원작업을 한결 손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찾은 집이 장전리 전 이장을 하셨던 양성진 아저씨의 집이다. 농진청에도 몇 번 오간 적이 있다며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수소문해 주셨다. 장전 197번지에 사는 강창하란 사람을 찾으라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일러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서 찾아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 인간 네비게이션의 실수. 그래서 유수암리라는 곳까지 올라갈 뻔했다. 유수암리는 이따 들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왜 벌써 왔을까나. 다시 내려가 처음부터 짚어 나갔다.

근사하게 지은 양옥집을 가지신 강창하 씨 댁에 도착해 말씀드리니, 단지무는 아니고 장에서 사다가 심은 것인데 남은 씨가 감귤밭에 있다며 함께 가자신다. 감귤밭에 도착해 씨를 찾아오시는 동안 피마자와 들깨 씨를 채집했다. 이 들깨는 키가 2~2.5m는 되는 것이 뭘 먹고 이리 큰지 모르겠다. 율무도 있길래 얼른 씨를 챙겼다.

남은 무 씨를 들고 나오셨는데, 영광무라는 종류였다. 영광무... 이후 일정에서 자꾸 만날 이름인지 이때는 몰랐다. 이 무가 사진에 있는 것보다 더 불룩해져서 자꾸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장전리에서 볼일을 다 마치고, 아까 가려고 했던 유수암리로 향했다. 부슬비는 계속 내리고 사기는 떨어지고 해가 넘어갈 시간도 다가오고... 이제 오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수암리는 생각보다 작은 동네였다. 중산간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별로 살지 않았다. 그나마 감귤이 집하장이 많아 더 그랬을지 모른다. 이곳에는 제주에서는 흔하지 않은 샘이 콸콸 나오는 곳이었다. 날이 을씨년스러워 그런가 맑은 날 보면 예쁘고 시원했을 샘이, 시커멓고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무섭다. 물은 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뭐든 다 그렇지만 물이 성을 낼 때 보면 엄청 무섭다.

유수암리에서는 1939번지에서 강인자(67) 할머니를 만나 집 앞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던 수수와 꼭두서니를 얻었다. 이것 말고는 다른 건 다 사다 먹거나 심는다고 하신다. 이 일대만 해도 감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이후 소길리로 갔다가 더 이상 다니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시고 차를 돌렸다. 소길리에 가서도 별 게 없었다. 비만 내리고... 해안 쪽으로 내려가 숙소를 잡고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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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의 땅, 제주도 

 

 

2008년 12월 19일, 이틀의 휴식 뒤에 다시 제주도를 향하다. 8시 30분 공항으로 출발하여 9시 5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11시 30분이 이륙할 예정이다. 김포공항은 태어나서 세 번째 와 보았다. 비행기는 가까이에서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저런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경이롭다.

 

간단하게 제주에 도착해 렌트카를 알아보았다. 비용은 어디나 정가제라 더 깎거나 할 수 없다. 유명한 관광지답다. 에누리가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가제가 더 편할 수도 있다. 최소한 바가지 썼다는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렌트카를 타고 먼저 대정읍으로 이동해 대정 여성농민회 분들을 만나기로 했다. 조사에 앞서 제주도의 사정을 미리 파악하고자 해서이다. 도로를 타고 달리는 데 기분이 이상하다. 늘 보던 풍경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에 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제주도는 참으로 다르다. 이 묘한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여성농민회에서 두 분이 나오셨다. 김정임, 원정순 선생님이 그분들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제주도의 농업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듣고, 어떻게 다니는 것이 좋을지 상의했다. 그분들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는 해안으로는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홑짓기를 한다고 한다. 토종은 아마 중산간에 아직 살고 계신 할머니들에게 있을 것이란다.

대정읍은 주로 감자와 마늘, 조생 양파가 많고, 안덕면은 감자, 서귀포시 중문에서는 지난 여름에 독새기콩을 찾았다고 한다. 남원읍과 효선면, 성산읍은 밀감 과수원이 많고, 구좌읍은 당근과 만생 양파, 조천읍은 감자와 마늘이 많다. 제주시와 애월읍, 한림읍은 양파와 양배추, 마지막으로 한경면. 이러한 식으로 다니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계획은 이렇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다음으로 그럼 어느 지역의 어느 곳을 볼지 대충 정했다.

한경면 - 청수, 저지, 낙천, 산양, 조수

한림읍 - 상명, 명월, 상대, 동명

애월읍 - 낙읍, 상가, 어음, 장전, 고성

조천읍 - 와음, 선흘

성산읍 - 수산, 난산

효선면 - 가시, 성읍

남원읍 - 수망, 의귀, 한남

구좌읍 - 덕천 송당

 

이렇게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로 향했다.

 

김정임 선생님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무릉2리 좌기동이라는 곳이다. 햇살이 따땃하니 참 좋다. 겨울에도 이렇게 춥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도 바닷가니 추울 거라 생각하며 내복까지 껴 입었는데 오늘 일정이 끝나면 당장 벗어야겠다.

 

 

좌기동에서 본 제주도의 전통 대문. 빗장을 다 열어 놓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말로만 듣던 대문을 보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대문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말도 점차 사라지고 있듯이 문화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이곳에 사시는 박성은(70) 할머니를 가장 먼저 만났다. 이제 몸이 불편해서 농사고 물질이고 암것도 못하고 집에 드러누워 있으시단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난 분이라 따로 적어 놓았다. 부추를 '세우리', 앵두를 '은냉', 메밀을 '모물', 서로는 '삼촌'이라고 부른다.

 

 

박성은 할머니. 지금은 지팡이에 의존하며 다니시지만, 젊은 시절에는 누구 못지않는 한 집의 기둥이셨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동네에 있는 정미소를 찾았다. 이 정미소는 서귀포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를 자부하며 벽에는 현판까지 내걸어 놓았다. 산남이라고 하는 말이 서귀포 지역을 뜻하고, 제남은 제주도 남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정미소를 운영한 지는 50년 이상 되었는데, 이 근방의 다른 정미소는 대부분 그 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인근에서 온갖 종류의 곡식류가 모이는 곳. 덕분에 헤매지 않고 다양한 곡식을 보고 수집할 수 있었다.

 

 

정미소는 좌기동 1156-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마침 외출중이셔서 김기선(75) 할머니를 만났다. 

 

정미소 안의 김기선 할머니. 아직도 건강하시다. 정미소 곳곳에 쌓여 있는 곡식 먼지와 그 특유의 눅은내가 이곳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모두 여섯 가지를 수집했다. 덕수에서 사왔다는 메밀, 영락리에서 온 차지고 맛있다는 검은흐린조(검은 개발시리), 이것을 옛날에는 육지조라고 불렀다고 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낭댕이(줄기)가 벌겋고 끝에 가닥이 세 개란다. 이 의문은 이후의 조사 과정에서 확실하게 풀린다.

다음은 주냉이(지네) 보리(두줄보리, 호주맥), 이건 낭댕이가 빨갛고 이삭이 길딱한데, 수확이 적다. 키가 커서 박한 데 심는다고 한다. 보성, 서광, 신평에서 사온다고 한다. 또 신도에서 사온 굵은 메주콩, 조수에서 사온 된장 담그는 푸린독새기콩과 원래 제주도 것인 노란 개발시리조를 구했다. 이 노란 개발시리조는 키가 크고 가닥이 세 개가 아니라고 한다. 낭댕이도 노랗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마구 튀어나온다. 들리는 대로 받아서 적기는 적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김정임 선생님이 옆에서 열심히 통역(?)을 해주신 덕분에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 내일부터는 우리만 다녀야 하는데 걱정이다. 제주말은 외국어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미소 안에 걸린 칠판. 거래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다. 주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개성 있는 칠판.

 

푸린독새기콩. 달걀처럼 생긴 푸른 콩이란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걸로 메주를 쑤어 된장을 담가 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맛있나? 아니면 다른 콩이 없어서?

 

이건 굵은 메주콩이다. 하지만 육지의 그것에 비하면 그리 굵은 편은 아니다.

 

 

이제 수고하신 김정임 선생님과 헤어져 우리끼리만 제주도를 돌아다닐 시간이 되었다. 바쁜 농사일로 함께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 하시는 걸 보내드리고 차에 올랐다. 멀리 가지는 않고 일단 좌기동 일대를 다 돌아볼 참이다.

한참을 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여기서도 사람 만나기가 귀한 일이로구나.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는 아직 날이 따뜻해서 날만 좋으면 지금도 밭으로 일을 나가거나 남의 밭에 놉으로 나간다니 더 그렇다. 따뜻한 것도 이럴 때는 좋지 않구나.

 

한참을 다니다가 어느 집의 마당에서 만난 고구마 절간. 다카하시 노보루의 기록에도 제주도와 관련하여 이 고구마 절간이 많이 나온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나중에 꼭 확인해 봐야지. 처음 기록에서 이걸 보고 고구마 잘라 말린 것이라 번역을 했는데, 더 적당한 말이 있을 것이다. 

 

 

겨우 한 집에 들어가 할머니를 만났다. 좌기동 변정자(67) 할머니 댁에 들어가 토종을 찾는다고 설명을 드리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이제 그런 건 없다고 하신다. 마당 한쪽에 놓여 있던 호박만 하나 얻어서 나왔다. 할머니 얘기를 들으니 예전에는 밀감 한 그루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참 귀한 과일이었는데 이제는 겨울이면 지천에 널린 것이 밀감이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변정자 할머니 댁에서 얻은 호박. 제주도의 호박은 대체로 납짝하고 골이 깊은 것이 특징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5시를 훌쩍 넘었다. 5시를 넘으면서부터는 날이 많이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남쪽이라고 해도 해가 넘어가면 추워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오늘은 제주도의 이색적인 풍광에 얼떨떨하다. 현대를 사는 내가 이 정도인데,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제주도가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였던 까닭을 알겠다. 요즘은 다들 외국으로 나가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참 신기했을 거다.

 

이렇게 하루를 끝마치나 했는데 좌기동 임춘후(69) 할머니 댁에서 많은 걸 얻었다. 검은 덩굴콩, 검은 돔비(동부), 준저리콩, 제비콩, 까만콩, 기침에 좋고 씨를 갈아 막걸리에 타 먹으면 관절에도 좋다는 하늘타리, 결명자, 유채를 얻었다. 날도 춥고 낯선 풍광과 말씨와 사람에 얼이 빠져 있어 제대로 기록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날이 어두워져 사진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아쉬울 뿐이다. 내일은 좀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제주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5시 40분 조사를 마치고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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