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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어제 날씨가 꽤나 쌀쌀했습니다. 때 아닌 눈에다 황사까지 몰려오는 바람에 더더욱 집에만 박혀있도록 말이죠. 동장군이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인가 봅니다. 꽃샘추위 … 가만히 이 말을 들여다보니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 생각 없이 꽃샘추위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 말을 머릿속에서 음미해보니 입 속에 맴맴 돌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에 잎이 다 떨어져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그 황량했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와 어여쁜 꽃이 피어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동장군의 심술이라는 말이겠지요. 단지 계절의 변화일 뿐이지만 그것 하나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름을 붙여준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여느 때처럼 똑같이 오는 꽃샘추위이겠지만 며칠 전에 본 텔레비전 소식에 따르면, 미국도 이상 저온이라고 하고, 유럽도 봄인데도 예전보다 춥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긴 지난 겨울만해도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리 추웠던 일이나, 전라도에 징글맞게 내리던 눈이나 모두 그런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고 저떻고 하건 간에 봄은 또 찾아왔습니다.


개구리도 놀라 뛴다는 경칩이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났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저도 놀라 집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렇게 뛰쳐나가본 세상은 봄내음이 물큰하게 풍겨왔습니다. 집 앞을 오가며 보았던 목련에도, 가끔 밭에 나가 보던 버들강아지에도,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내 마음에도 봄은 잊지 않고 귓가를 간질이며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낙엽만 굴러도 재밌다고 깔깔 웃는다는 소녀들의 마음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아침에 눈을 떠 창밖에 허연 햇살만 바라봐도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오늘은 심심하게 지내고 있던 때 드디어 밭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더욱 울렁이며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개학해서 학교 가는 아이의 맘이 이럴까요? 아니면 소풍 가기 전날 아이의 맘이 이럴까요? 아무튼 이제 새로운 한 해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겨우내 얼마나 근질근질했는지 모릅니다. 가을에는 낙엽이 지고, 산의 색이 누렇게 변하고, 밭의 작물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보며 어찌나 쓸쓸했는지 모릅니다. 벌써 세 번이나 겪은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그렇습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짧은 인생이지만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접하는 계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면서 겪었던 그것과는 다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때를 알게 되고, 그에 맞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를 자연의 흐름에 맞추게 됩니다. 그러면서 철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을 정의하며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고서 ‘내가 다 알아’ 하면서 남의 사정을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수도 있습니다. 내 얘기를 남에게 하는 것은 충고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 받고 따스하게 안겨보고자 하는 것일 겁니다. 헌데 요즘 세상은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런지 쉽게 그런 말을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바지를 걷어 올려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에는 털들이 새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오면서 순풍순풍 빠졌던 털들, 그래서 마누라에게 적지 않은 핀잔을 들었던 털들이 봄을 맞아 새롭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피부에 눌려 힘겨워 하는 털들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봄은 영어로 ‘SPRING’이지요. 그 말 그대로 처음 세상을 접한 털들은 꼬불꼬불합니다. 이것들이 언제 자라서 쭉쭉 펴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참고로 제 털은 직모에 가까워서 웬만한 털들은 다 곧게 자랍니다.). 이 털들을 보면서 논어에 ‘가까운 몸에서 이치를 알게 된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여름에는 ‘아, 덥다’ 겨울에는 ‘아, 춥다’고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봄에는 ‘……’ 무엇이 자연스러울까요? 설마 이런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제 참말로 봄인가 봅니다. 거리를 나서면 마음이 술렁술렁 두근두근 하는 것이 봄바람 난 처녀 같고, 지나간 옛 사람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고, 길을 가다보면 동네 개들도 봄바람에 여기저기서 붙어있고, 도무지 겨울처럼 뜨끈한 방구석에서 엉덩이 지지며 앉아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고 하는데, 다들 올 한 해의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이렇게 얘기하지만 저는 별 계획이 없습니다. 우리집 가훈이 ‘오늘만 같아라’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것이 올 해 계획이라고 얘기하기도 낯간지럽잖아요. 그래도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계획이라면 계획인 것이 있기는 합니다.

입춘은 벌써 예저녁에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무 계획이 없으시다면, 이달 음력 2월이 가기 전에 세우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마침 보름이라 달이 휘영청 둥글게 빛나고 있네요. 2세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오늘이 참 날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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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뭄! 말로만 들어봤지 몸소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도시생활을 할 때는 구질구질하게 비오는 날보다는 화창한 날씨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원하게 비가 내리길 바라고 있다.


올 해 유독 비가 안 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때에 맞춰 비가 오지 않는 일은 빈번하였다. 그런데 작년, 재작년 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을 더 걱정했다. 그때 농사를 지은 밭은 축축하다 못해 질척거리는 땅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것보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헌데 지금은 거꾸로 이다.


지금 농사짓는 땅은 작년 가을 공사장에서 나온 흙을 갖다 부은 곳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황토이다. 아무런 거름기도 없고, 그렇다고 물이 잘 빠지는 것도 아니고 물을 잘 머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물이 잘 안 빠져서 질척거리고 비가 안 오면 말라서 쩍쩍 갈라지고 만다. 흙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흙의 떼알구조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떼알구조는 물을 잘 머금으면서 물이 잘 빠지는 흙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이 잘 빠져서 질척거리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도 겉은 말라보여도 속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흙이 바로 떼알구조를 가진 흙이다. 이렇게 흙의 떼알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로 흙 살리기의 핵심이다. 흙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흙 속에 미생물도 많이 살고, 흙을 기반으로 하는 생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갈 때 흙이 살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흙을 살리기 위해서는 미생물이나 생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양분이 풍부해야 한다. 그런 양분은 우리가 아는 퇴비나 액비 같은 거름과 특약처방을 하듯이 주는 미생물재제들이 만들어 준다. 그런데 화학비료는 흙을 살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물을 키우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화학비료를 오래주면 흙이 척박해지는 것이다. 또 화학비료를 남용하면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항생제처럼 화학비료도 오남용을 하면 큰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퇴비 같은 거름은 한약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은 꼭 작물을 잘 키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의 흙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 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썼던 것이지만 거기에는 이런 깊은 철학이 숨어있다. 과학의 힘이 대단하고 편리하고 효과가 빠르기는 하지만 철학이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의 힘을 맹신하고 사용하는 것은 이런 것처럼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그런데 지금 농사짓는 땅은 살아있지 않은 곳이다. 지난 번 봄장마처럼 한바탕 비가 쏟아진 후에는 비다운 비가 한 번 오지 않았다. 그저 겉흙이나 살짝 적셔주는 정도의 비만 몇 번 오고 말았다. 세종실록에 세종대왕이 내리는 비의 양만 측정하지 말고 얼마나 깊이 물이 스며들었는지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겉흙만 적시는 비는 농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세종대왕의 혜안이 빛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흙이 습기를 머금지 못하고 말라서 쩍쩍 갈라질 정도가 되면 그 딱딱함은 갑옷과도 같다. 그렇게 되면 새싹이 나오기 힘들어진다. 콩이나 감자같이 큼직큼직한 놈들은 그만큼 힘이 세서 어떻게든 뚫고 나오기는 하지만 뚫고 나오는데 힘을 다 쓰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그리고 뚫고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자라는 데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때를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큰 놈들이 이 정도인데 작은 놈들은 오죽하랴. 작은 놈들은 거의 절반치기이다. 겉흙이 너무 단단해서 갈라진 틈새로나 나오지 딱딱한 곳으로는 전혀 나오고 있지 못하다.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힘겹고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호미로 탁탁 쳐서 단단한 흙을 깨보고도 했는데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오늘은 보다 못해서 물을 주기로 했다. 거름기도 부족하고 풀이나 부엽토로 습기를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도 듣고 해서 급한 대로 물을 주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강하게 키운다는 방침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도 애써 못 본 척 했는데, 오늘은 그런 말을 들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조루로 물을 퍼다 뿌려주니 나와 있는 싹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힘없이 흐늘흐늘 거리던 놈들이 물을 주고 나니 대번에 고개를 바짝 쳐들고 생기를 되찾는다. 땅도 물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갈 들린 사람처럼 꿀꺽꿀꺽 소리를 내면서 물을 받아먹는다. 신기하게도 땅이 물을 받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단단하던 흙도 물을 머금을 수록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면 싹들이 다시 힘을 내서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집에 돌아갈 시간은 촉박해 오고 물을 줘야하는 놈들은 잔뜩 남아 있는데 도무지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다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놈들인데 어느 놈은 주고 어느 놈은 안 줄 수 없지 않은가. 처음에는 걸어서 오가며 물을 퍼다 날랐는데 시간이 촉박해져서 나중에는 뛰어서 오갔다. 덕분에 옷은 젖었지만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놈들에게 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뛰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줬는데도 아직도 다 주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급하니까 약한 놈들부터 주기로 했다. 작은 씨앗들이 많이 힘겨워 하니 그 놈들부터 주고, 어제 심고 무심히 돌아섰던 애호박과 오이에게도 물을 주었다. 이놈들 뿌리를 보니 바싹 말라있고 잎도 축 쳐져있던 것이 물을 주고 나니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었다.


작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하게 키우는 것도 좋은데 내가 너무 방치했구나 하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내가 아직은 초보라서 그렇다. 이거 먹고 기운내.' 하며 힘을 북돋워주었다. 자유스러움을 보장해 준다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인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자유만 강조한다거나 의무만 강조하는 것 또한 중도를 벗어난 것임을 뼈저리게 배웠다. 작물을 키우는 것도 이런데 사람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적당함' 이라는 말이 얼핏 들으면 그만큼 무책임할 수도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자세히 살피고 물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흙이 살아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직 흙은 살아있지 못하고, 작물들은 힘겨워 하고 있다. 씨를 뿌린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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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왔다



석장골을 떠나 안산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가만히 앉아서 작년 한 해를 돌아보니 꿈결같이 지난 일들이 스쳐간다. 지난 해, 참으로 많다면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석장골로 내려간 일부터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던 일, 그리고 평생을 같이 할 반려자와 하나 된 일까지 남들이 몇 년에 걸쳐서 겪게 될 일을 불과 1년 새에 모두 경험하였다.


그 중에서 석장골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 일은 지금 나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석장골로 가게 된 것은, 그곳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어느 분이 제의해서였다. 그런데 그 분이 맡고 있던 일이 너무 커져서 그 계획은 유보가 되었고, 나도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솔직히 그 분의 사정 때문이라기 보다는 준비 안 된 귀농을 강행했던 나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결심도 하고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려가서 살아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귀농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골에서 홀로 생활하는 즐거움을 맛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살아야 한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괴롭더라도 어울리지 않고는 살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도를 닦는 수도자이면 모를까, 아니 수도자라도 그들을 뒷받침하고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홀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제 다시 세간으로 돌아왔으니 여기저기 부딪치고 더욱 성장할 준비를 해야겠다.


이제 계절도 바야흐로 다시 봄이 찾아왔다. 거리에는 봄내음이 가득하고,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몇 일 전 차가웠던 바람조차 이제는 포근하게 느껴진다. 산과 들에는 겨우내 숨죽였던 나무들이 새 잎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얼었던 땅을 조금씩 비집고 초록의 풀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봄은 비단 식물에게만 온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봄이 왔음을 알고 부지런히 한 해 살이를 채비한다. 까치는 여기저기서 나뭇가지를 옮겨다 새 집을 짓느라 정신없고, 개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情이 동하여 交接 중이다. 팔자 좋은 어떤 개들은 이도 저도 귀찮은지 길바닥에 누워 스르르 낮잠을 즐긴다. 성큼 다가온 봄에 어리둥절한 산새는 갈 길을 잃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날아들어 옆 밭 이씨 아저씨께 잡히고 만다.


저 멀리 남녘에서는 벌써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남도여행 중에 보았던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봄갈이를 마치고 씨를 뿌리려 하고,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푸르른 보리싹은 드디어 위로 위로 쑥쑥 자랄 차비를 마쳤을 것이다.


안산 밭에도 봄이 다가와 언 땅이 녹아 발 밑에서 질척거리고, 나무마다 새순이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우스에서는 고추들이 자라고 있으며, 조금 있으면 밭을 갈고 구획을 나눠 봄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올 한 해 농사는 어떨지 상상해 본다.


앞으로 한 달 후면 산은 언제 그랬냐는듯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을 터이고, 안산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쉴 틈 없이 시간이 지나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농부 수업과 공부를 하며, 안산 밭에서 낮에는 땀 흘리며 밭을 갈고 밤에는 글공부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겠지.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고, 때를 놓치면 하루가 아니라 한 해를 놓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처음으로 꼬아 본 새끼줄을 보면서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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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




나도 모르는 새 입맛이 길들여져서 가끔씩 외식을 생각할 때가 있다.

삼겹살 같은 음식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음식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술자리나 모임이 있어서 가게 되면 흔히 먹게 되는 것들이 바로 '고기'이다.

그런 자리에 나가보면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고기를 먹자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집에서도 그런 고영양가 음식을 먹고 있다.

계란은 예사이고, 가끔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햄이며 즉석식품 종류들이며 다양한 고단백질, 고지방 음식을 먹고 있다.

그만큼 삶이 풍족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삶은 풍족해졌는데 반하여 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집에서도 먹는 음식을 밖에 나와서까지 또 찾아서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우리는 못 먹고 사는가?' 또, '이 정도의 음식들이면 충분함을 넘어서 과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은 던져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풍족함을 넘어서 과한 음식을 "낭비"하고 있다.

몸에서는 필요한 영양분을 넘어 공급되는 영양분들이 지방으로 살로 축적되어 비만이나 똥배로 나타나고 있다.

장차 거기에 따른 각종 성인병이며 질병들이 우리 몸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언론에서는 이야기 하지만, 당장 내 입에 들어오는 음식은 맛있고 몸은 편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무관심한 만큼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사는데 얼마만큼의 음식이 필요할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성철스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성철스님은 밥에 반찬으로 김치와 김과 콩자반 만을 드셨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아니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산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못 산다.' 라고 하시는 분들 등등 다양한 반응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철스님은 수행자의 길을 선택한 분으로 맛있는 음식, 쾌락을 주는 음식에 대한 절제를 수행의 덕목으로 삼았기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의 문제를 떠나서 어떻게 먹는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 비만인 자식을 두고 있지만 아이가 원한다고 햄이며 군것질거리며 맛난 음식을 주는 것이 과연 잘하고 있는 짓인지.

내 몸이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 입맛에 맞다고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막 먹는 것이 과연 잘하고 있는 짓인지.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가 남긴 음식물이 쓰레기로 매립되고 있을 때 지구 어느 편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맛없다며 아니면 배부르다며 함부로 음식을 남길 수 있는지.

이외에도 우리가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볼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밥상머리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아이는 자라서도 반듯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밥상머리 교육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육을 전적으로 학교와 학원에만 맡겨둔 채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대다수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이가 잘못이라도 하면 밥상머리교육을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먼저 살피기 보다는 학교 선생님이 어떠네, 학원이 어떠네, 어울리는 친구가 어떠네 하면서 밖에서만 원인을 찾고 그에 책임을 전가한다.

밥상머리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상다리가 부러질만한 음식이 없어서 된다.

밥과 김치와 김, 된장찌게만 있어도 이 음식들이 어떻게 여기에 올라와 내 입에 들어가는지 잠깐 생각만 해도 충분하다.

종교가 있는 분들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정말 음식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는 기도면 충분하다.

그러한 모습을 아이가 보고 배우는 것이고, 아이가 밥을 흘리거나 소중히 여기지 않을때는 가만히 타일러 주기라도 하는 것이 밥상머리교육이다.

그 과정이야말로 음식에 대한 소중함은 물론 가족에 대해서도 배우고 사회와 자연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먹음직스러운 보기 좋은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두시간은 걸린다는 사실을 안다.

요즘 같은 맞벌이 시대에 그렇게 시간을 쪼개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가급적 조리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하고, 남자라고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아내를, 어머니와 함께 일을 분담하여 밥상 차리고 치우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방법은 각자 가정 사정에 따라서 생각해보면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밥상은 정도에 지나치다.

사람이 꼭 활동하는데 꼭 필요한 양을, 꼭 필요한 영양소를 넘어 과해진지 오래이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밥상을 포만감을 느낄 정도가 아닌 적당한 양으로, 가족 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꾸릴 수 있다면 그 가정은 참 행복할 것이다.

우리 집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라는 말은 핑계이다.

돈 많은 집일수록 외식을 하는 빈도가 더 높고, 식구들끼리 얼굴 마주하고 밥 못먹기가 더 쉽다.

가능한 돈으로 알뜰히 직접 조리해서 밥상을 차려 먹는 속에 건강이 있고, 가정의 평화가 있고, 마음의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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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마늘심기)


어제 가을한마당 행사를 무사히 성대하게 마친 후라 하루의 꿀맛같은 휴일이 주어졌다. 일요일에 행사를 하면 월요일에 하루 쉬는 인드라망이 너무 좋다.


노곤한 몸을 방바닥에 뉘이고 내일은 텃밭에 가서 무엇을 해야하나 궁리를 했다. '콩도 털어야겠고, 팥도 털어야겠고, 마늘도 심어야하는데...' 이건 도저히 혼자서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그냥 무식하게 소처럼 일할까 하다가 안철환 선생님 곁에서 텃밭을 하면서 배운 잡기 중에 한가지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 놀러오라고 한 후 일 도움받기!" 내일 모일 수 있는 사람을 손꼽아 보기 시작했다. '누가 있을까...문정이 형님, 학교 선배 형수, 수옥누나...' 대충 이 세명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래서 전화를 돌렸다. 예상했던 것처럼 다들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이제 한시름 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Wake up~ Wake up~!!!"

시계가 울기 시작한다. 왠만한 소음에도 잠에서 좀처럼 깨지 않는 나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시계이다. 실상사에서 새벽에 울려대는 종소리 보다 더 시끄러운 놈이지. 그래도 가끔은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알람시간을 훨씬 넘겨버리는 적도 있다.

자면 아직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어 버리니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눈 비비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또 베토벤이 되었다. 머리를 4 ~5달에 한 번 자르다 보니 3달 정도 지나면 자고나면 베토벤이 된다. 어쩔땐 전인권... 그런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혼자 낄낄대기도 하니 나쁘지만은 않다.


10시에 신도림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적어도 9시 반에는 집에서 나와야했다.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옥금이는 옆에서 굼뜨다고 자기 먼저 출발하겠다고 난리다. 다 시간계산해서 알맞게 움직이는 건데 왜 그리 바쁘다고 성화인지...


역시 예상대로 10시 정각에 신도림에 도착했다. 신도림역에는 문정형님이 아들 민규를 데리고 와 있고, 선배 형수도 빨간 등산복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듬직한 원숭이, 아니 수옥누나는 가리봉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1호선으로 이동. 가리봉역에서 이상없이 모두가 모였다. 이제 안양으로 향한다.


안양에서는 재래시장에 들려서 종자용 마늘을 사야했다. 내 것 한 접과 안철환 선생님 것 한 접, 총 두 접이 필요했다.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온 재래시장, 멀리서부터 재래시장 냄새가 팍팍 풍겨온다. 어릴 때는 엄마를 따라 재래시장에 자주 가곤 했다. 그렇게 따라가면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어머니가 시장갈 일만 생기면 꼭 따라붙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재래시장을 보면 그 아련한 기억들이 솟아난다.

 

별로 헤메지 않고 마늘을 전문으로 파는 아주머니를 찾아냈다. 한 접에 만팔천원이라기에 두 접을 사니 천원빼서 삼만오천원에 하자고 은근슬쩍 다리를 놓아보았다. 그랬더니 올해는 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미안하다며 삼만육천원 그대로 받으시는 것이 아닌가. 좀 서운하긴 했지만 어쩌랴 그냥 계산을 하고 안산텃밭으로 향했다.


안산으로 가는 길은 고운 단풍길이었다. 이번 주가 단풍의 절정인듯 터질듯 부풀어오른 단풍들이 색을 뽐내고 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곱고 곱기만 하다. 형수는 수리산 밑자락 수암이라는 동네가 마음에 드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다.

내가 봐도 그 동네는 참 보기가 좋다. 텃밭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알록달록 물이 들어 너무 예쁘다. 긴 터널을 지나 텃밭에 딱 도달하니 별천지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알록달록은 물론 허연 억새들이 군데군데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 거기에 텃밭의 푸르름이 더해지니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사람들에게 콩을 터는 작업에 대해서 알려주고 나는 팥을 베러 밭으로 향했다. 팥은 이제 잎은 다 말라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이고, 어떤 깍지들은 곧 터질 듯이 위태로워 보인다. 조심 또 조심하며 팥을 베어 차곡차곡 갑바 위에 얹고 등에 둘러메고 나서려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성숙 누님이 도착하셨다. 성숙 누님과 함께 나누어 들고 가벼이 원두막으로 올라와보니 사람들은 이제 얼추 콩을 다 털어간다.


조금 남아 있는 콩을 함께 털고 키질을 하려는데 안철환 선생님도 도착하셨다. 선생님은 오늘 사람들이 온다는 말에 막걸리와 두부, 김치, 오징어 같은 안주거리를 함께 들고 오셨다. 일은 무슨 일, 이제 일은 뒷전이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안철환 선생님의 유쾌함과 해박함은 이 자리에서도 만개를 했다. 다른 분들도 모두들 유쾌하게 한잔씩 걸치며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옥금 어머니도 어느새인가 도착하셔서 싸오신 과일이며 오징어, 막걸리를 풀어놓으신다. 다들 옥금 어머니의 젊음에 놀라는 눈치. 참 문정형님과 안철환 선생님은 서로 동갑이란다. 같은 나이인데 참 다르네.


술판을 접는 일이 아쉬워 꼼지락 거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네시가 가까워졌다. 이제 해가 짧아져서 더 꾸물거리다가는 마늘을 심기는 커녕 그냥 짐싸고 집에 가게 생겼다. 안철환 선생님도 해야할 일이 있으신지라 서로 아쉬운 마음을 접은채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늘을 심는다. 심는 깊이는 마늘만큼. 한 5cm 간격으로, 줄간격은 10cm. 처음엔 심는 방법에 대해서 그냥 이야기만 듣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꼬챙이를 들고 대충 쑥쑥 찔러서 마늘을 그 구멍에 쏙 집어넣고 흙으로 덮기...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뭔가 미식쩍기는 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중간에 안철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심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니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어떻게 심으시는지 보고 가는 김에 퇴비도 가져와야 겠다. '허 세상에 그렇게 하는 것이였구나!' 아직 초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뭐 이러면서 배우는 것이겠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이거 내년에 안 자라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도 떠오른다. 하지만 곧이어 '안 되면 그만이지, 다른 거 심자' 라는 마음으로 다시 편안해진다. 그리고선 마늘에게 두통 가득 퍼온 퇴비를 듬뿍 나누어주었다.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가을에 엄청 먹어대듯이 마늘도 겨울을 나려면 듬뿍 먹어야 한다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계절의 흐름에 맞춰서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일을 마치니 해가 뉘엿뉘엿 서산 마루에 걸려있다. 시간 배분을 이렇게 딱 맞춰서 하다니, 참 다행이다. 오늘 일을 다 마치지 못했으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다음주는 거의 일주일동안 실상사에 내려가 있어야하니 말이다. 농사는 진짜 하늘이 짓기에 때를 놓치면 반은 실패한 거라고 봐야한다.


옥금 어머니는 와서 일 안하겠다고 하셔놓고 또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으셨나보다. 배추도 손수 묶어주고 마늘 심는 것도 거들고 콩도 키질로 싹 골라내시고 혼자 제일 바쁘게 일하셨다. 젊은 나이인데 벌써 관절 쪽이 안 좋다고 하시는데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완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인데...


마음 속에 담긴 짐을 다 부려놓아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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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열무

 

 


산은 온통 물들어 불이 나고 있는듯 하다. 미세한 바람에도 온몸을 털어버릴듯 나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더니 밤새 비를 뿌리다가 지금은 뿌연 안개비만 내리고 있다. 비가 오면 가지 않으려 했으나, 일주일 넘게 비워둔 밭이 자꾸 눈에 밟혀서 배추들이 잘 있는지 도무지 궁금해서 그냥 누워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밭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배추들을 찾았다. 몸집은 그때에 비해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속은 튼실하게 차고 있는 것이 든든하다. 약도 치지 않고 거름도 진짜 부실했는데, 이 정도로 건강하게 커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자식, 사람 물큰하게 만든다. 내년에도 또 만나면 그때는 거름 듬뿍 줄거다. 진짜로 제대로 한 번 키워보겠다.


무들은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팔뚝만한 크기면 좋겠지만, 그저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다. 그래도 속이 꽉꽉 차서 동그랗게 생긴 것이 정말 예쁘다. 얼굴에 부비며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귀여운 아이 같다. 옥금 어머니 말로는 이 무로는 동치미 담그면 정말 맛있겠다고 하신다.


참. 옥금이 어머니는 저번에 함께 오셨던 이후로 이것 저것 조금씩 가져다 먹는 재미때문인지 뭣때문인지, 이제는 먼저 언제 밭에 가냐고 묻곤 하신다. 집 안에만 계시다가 운동도 조금씩 할 수 있고 해먹는 재미도 있고, 그렇게 해먹으면 사다 먹는 것보다 맛도 있으니 나 같아도 슬슬 따라다닐 거다. 그렇게만 따지면 일석 몇조인지 모르겠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함께 오는 것이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함께 다니면서 은근히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해서... 더 뭐랄까...하여간 그렇다.


이제 밭을 대충 둘러보고 하우스로 향했다. 10일도 넘게 널어놓은 팥인지라 적당히 말라 있었다. 허나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마르긴 말랐으되 눅눅해서 한번에 터트리기가 힘이 들었다. 지난 주에 지리산에 가서 도리깨질의 요령을 터득하고 왔는데 도리깨질을 할 수 없는 여건이 애석할 뿐이다. 도리깨질도 금방 배우는 걸 보면 나도 은근히 눈치 하나는 빠른 편인것 같다.


하여간 그래서 할 수 없이 옥금이 어머니랑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팥을 깠다. 옥금이 어머니가 결혼해서 살아오신 이야기, 힘들었던 시절, 그걸 이겨내고 지금에 이른 사연, 이야기가 한 번 터지자 술술술 나오신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팥이 맛있어도 그렇지. 콩은 안 그랬는데 팥은 죄 벌레먹은 것 투성이다. 심한 것은 깍지의 반절이나 먹어치웠네. 너무 오래 널어놔도 안 되는 것이 있나보다. 옥금 어머니도 좀 속이 상하신지 '팥은 조금만 놔둬도 벌레가 다 먹는다'면서 한소리 하신다.


그렇게 얼추 팥을 다 털자 안철환 선생님이 오신다. 난 인사만 드리고 팥줄기를 밭으로 날랐다. 옥금이 어머니는 서둘러서 키질을 하시고 혹 벌레먹은 팥이 있나 골라내신다. 털때는 많아 보였는데 막상 터니 두 됫박쯤 될려나 조금은 망실이지만 그래도 뿌듯해서 정말 좋다.


팥을 털어낸 줄기대는 내년 거름으로 써볼 요량으로 쌓아놓은 풀더미에 얹어주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쉬~~~ 매번 밭에 오면 이 퇴�더미에 오줌을 싸주고 잘 덮어놓는다. 그래야 내년에 만날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볼 수 있을거라 믿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어서 최후의 한방울까지 짜낸 다음 그렇게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열무들이 눈에 띄었다.


'참 키가 작네 이걸 도대체 먹을 수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를 쑥 뽑아 보았다. 그랬더니 왠걸 손가락 두세개만한 굵기의 열무가 달려나온다. '오호 이정도면 왠만큼 먹을 수 있겠는걸. 이거나 솎아줘야겠다' 고 마음먹은 후 주저앉아서 열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확보하고 자랄 수 있도록,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나씩 하나씩 솎아주었다.


다 솎아주고 나니까 양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그렇다고 한 트럭 채울 정도는 아니지만 김치를 담그면 두식구 정도는 충분히 한 두세달 먹을 양이다. 뜻밖의 수확을 거두고 다시 하우스로 올랐다.


안철환 선생님은 어제 귀농본부 모꼬지를 다녀와서 아직도 술이 안 깬다고 하시면서 솥뚜껑을 거꾸로 걸어놓고 파전을 할 준비를 하신다. 옥금이 어머니는 눈치보다 먼저 가신다고 집으로 가신다. 나도 안철환 선생님을 도와 파전을 부칠 준비를 하는데 대야미 형님께서 오신다. 알고보니 오늘 벼를 베기로 약속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오니 무슨 벼는 벼냐고 하시면서 대야미 형님께서 그냥 앉아서 노가리나 까자고 하신다. 그러자 한 노가리 하시는 안철환 선생님은 어제도 밤새도록 이야기했는데 또 해야한다면서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나게 풀어놓으신다. 참 이야기 재밌게 많이 하신다.


막걸리를 한 잔 두잔 기울이면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밤에 보는 밭은 또 다른 느낌이다. 차분하고 가라앉은 뭐랄까 죽음과도 같은 고요랄까?


다들 불콰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들뜬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향했다. 지리산에서 정화해온 나의 정신과 육체가 이렇게 하루만에 다시 술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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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수확! 수확~


어제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까지 그 여파가 남아 있다. 그래도 하늘만 잔뜩 흐렸지 더이상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서울은 장마가 끝났는데도 장마 기간동안 비가 얼마 안 와서인지 마지막 남은 빗방울을 쥐어짜는듯 하다.


장마가 오기 전 밭에 난 풀들을 어느 정도 잡아줘서인지 이제 풀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는다. 풀들이 작물들이 어느 정도 컸기에 힘겨루기에서 밀리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얼마나 자랐는지 한번 슥 둘러보았다. 오이꽃 뒤로 앙증맞은 오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방향으로나 막 자라는 걸 옥수수를 붙들고 자라라고 잡아주었더니 이제는 옥수수를 타고 신나게 오르고 있다. 보랏빛의 작은 꽃망울이 진 무는 씨앗을 맺는지 이상한 주머니가 생기기 시작했다. 옥수수는 이제 반 정도가 수염이 바싹 마른 것이 따 먹어도 좋다고 한다. 호박은 꽃은 많이 피고 졌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토란들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다. 콩나물콩들은 좋은 땅 나쁜 땅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라고 있다.

고추는 성장이 안 좋은 놈들도 있지만 나름데로 하나둘씩 고추를 매달기 시작했다. 어느 놈들은 굵은 녹색 줄기 사이사이로 나무같은 갈색을 띄기 시작한다. 들깨가 눈에 띄게 많이 자랐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밑에 난 작은 잎들과 줄기를 다 제거해 주었다. 가지가 예쁜 보랏빛 꽃망울을 터트렸다. 색깔도 진한 보랏빛으로 변한 것이 아주 건강해 보인다. 파들은 좋은 향기를 내뿜으며 이제 하늘을 향해 곧추 섯다. 고구마는 도대체 어디까지 자랄 것인가? 빈땅으로 고구마가 마구 뻗쳐 있다. 수수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위로 자랄 준비를 마쳤다. 팥들도 완전히 자리를 잡고 무성해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클로버인 줄로만 알고 뽑아버린 후 단 두개만 남은 땅콩도 콩나물콩에 뒤질세라 서둘러 자라고 있다. 그런데 한 놈은 콩나물콩의 기세에 완전 눌려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 시작은 작은 규모였는데 종자가 이것 저것 생기는 데로 밭을 개간하고 심었더니 이제 규모가 제법 된다. 이제 가을이 오면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을텐데 그럼 엄청난 규모의 농사가 되겠다.


물론 아직은 텃밭 수준이지만 이 텃밭을 통해서 많은 걸 얻고 있다. 어떤 것이 싹인지도 몰라서 보이는데로 뽑아버렸던 처음의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왠만한 것은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그나마 초보의 티를 벗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작은 텃밭에서도 이렇게 풍성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또 흙을 가까이서 바라보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사계절에 맞추어 자연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매번 밭에 갈때마다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 쌓아두었던 풀들이 마르면서 이제 절반쯤으로 줄어들었다. 한번 뒤집어 보니 온갖 곤충들이 돌아다닌다. 집에서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가 함께 넣어두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몇 일 보관하면 냄새에다 날벌레들이 끼어서 집안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밖에 둘 수도 없다. 밭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내년말에는 옥금이 꼬셔서 안산밭 근처로 이사를 올까? 그럼 결혼도 해야하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을 되뇌이며 오늘도 정성으로 밭을 돌본다.



후기 


밭에 다녀오면 그 날 저녁상은 풍성해집니다. 오늘은 밭에서 따온 옥수수 6개를 쪄 먹었습니다. 아무 간도 하지 않고 그냥 찜통에 물만 넣고 쪘는데도 맛이 기가 막힙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옥금이의 평이니 믿을만 한 것 같습니다. 호박잎도 따와서 옥수수와 함께 쪄서 저녁식사로 먹었습니다. 좀 더 쪄야 하는지 아님 생명력이 강해서 그런지 조금 억세더군요. 밥은 전달에 수확한 강낭콩을 넣은 콩밥이었습니다. 구수한 강낭콩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상에 빠질 수 없는 된장찌게에는 먼저 큰 고추 몇 개와 대파 한 뿌리를 함께 넣고 끓였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맛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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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쫘아아악" 하며 하늘을 째는 듯 천둥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비가 내립니다. 그동안 밤낮으로 무더위에 시달렸는데 빗소리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 지난 월요일이 입추였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이 비는 가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봄에 이번 여름은 기록적인 무더위가 있을 거라고 떠들어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떠든 것보다는 덥지 않았습니다. 에어컨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예년과 비슷한 더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들 피서는 다녀오셨는지요? 오늘은 식물들이 무더운 여름을 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도 아닌 식물들도 피서(避暑)를 한답니다. 식물들이 피서를 한다는 말에 '아니 발도 없는 식물들이 무슨 피서냐?' 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식물은 동물들과 다르게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우리들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식물들도 우리랑 다른 방법으로 피서를 한다는 겁니다.


  다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이 없지요. 식물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대신 동물들이 갖지 못한  광합성을 통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무심히 바라보면 녹색식물일 뿐이지만 우리처럼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는 식물은 그렇게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능력을 선택한 대신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식물은 동물과 질적인 차이만 있을 뿐 동물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저도 농사를 지으면서 식물들을 접해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물들의 피서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름은 태양이 높이 오래 떠있기에 더운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산으로 들로 피서를 떠납니다. 그런데 식물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 저기 나다니지 못하는지라 다른 방법으로 태양을 피합니다. 식물들은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태양을 피하는 법'에 대한 자기들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오가며 주의 깊게 관찰하신 분들은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먼저 호박이나 해바라기처럼 잎이 넓은 것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넓적한 잎을 아래로 축 늘어뜨립니다. 뜨거운 물에 데치기라도 한 것처럼 축축 늘어지지요. 그 모습을 보면 ‘너희도 이 뜨거운 태양에 참 힘든가 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고 수수나 옥수수 같이 잎이 길고 큰 종류들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더위를 피합니다. 참, 고추도 그런 방법으로 더위를 피하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식물이 잎을 늘어트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또 토란 같은 경우는 혼나서 풀 죽은 아이처럼 고개를 좀 더 숙여서 빛을 받는 면적을 줄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방법으로 여름을 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콩과 식물들이 그런데 그 식물들은 하늘을 향해서 잎을 바짝 치켜 올립니다. 꼭 벌 받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이 두 가지 방식이 기본적으로 식물이 피서를 하는 방법입니다. 이외에도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여름을 나는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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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우연히 도시농부학교 3기 수업을 청강했습니다. 그날 주제는 ‘절기력과 한 해 농사’였습니다. 그날 강의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떠오른 것이 있어서 글을 올릴까 합니다.


절기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지는 않기에 순서대로 외울 수는 없지만, 일기예보라든지 달력을 흘끗 볼 때마다 눈에 들어와서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벌써 우수가 지나 조금 있으면 춘분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과학시간에 배운 지식으로 춘분과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사실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숨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가 잊어먹었다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절기가 생기는 원인은 다들 아시다시피 하늘에 떠 있는 해 때문입니다. 해는 지구를 따라 1년에 약 360°를 돕니다. 물론 이것은 지구를 중심으로 봤을 때 그러하고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은 갈릴레이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지구는 붙박이로 박혀 있고 해가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생각합시다.


만약 이 해가 지구의 적도를 따라서 돈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마 절기에 대한 설명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겁니다. 해가 지구의 적도를 따라서 일정하게 돈다면 지구의 복사열은 어디나 똑같을 것이고, 골치 아프게 절기가 생기지도 않고 날씨도 1년 내내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봄여름가을겨울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그때그때마다 날씨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봄과 가을 정도만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일은 바로 지구의 자전축이 과학시간에 배운 것이 사실이라면 23.5°만큼 기울어져 있기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아래 그림처럼 하지 때는 해가 가장 높은 위치에 오고, 동지 때는 해가 가장 낮은 위치에 오기에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에 차이가 생깁니다. 그 차이가 바로 날씨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럼 그림을 한 번 보실까요.

 

 

천구의 적도․남극․북극은 지구의 적도․남극․북극을 연장한 것이니 그리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은 춘분점, 하지점, 추분점, 동지점과 23.5°만 보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학교 다니면서 한 번씩 들어보셨을 이야기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도대체 이것과 음양이 무슨 상관인지 말하려고 뜸을 들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음양과 절기, 다시 말하면 지구와 태양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음양이라고 하면 주역이라든지 점집, 철학관, 동양철학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걸 굳이 이런 단어에 대입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학이라고 봅니다. 서양에 서양식 자연과학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우리식의 자연과학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에야 서양 과학이 최고가 되어 과학이 아니면 말을 말라는 식으로 나오지만, 그런 걸 몰랐을 때도 우리는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활과 경험에서 나온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정말로 음양이 서양 과학에 밀려 저 어두운 지하 깊숙이 습기가 가득 찬 퀴퀴한 골방에 갇힌 채 추상화되어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연관도 갖지 못한 채 점치는 사람들만 보는 그런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재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의 삶과 너무 밀접하고 그만큼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편하고 편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고 따지시기도 할 겁니다. 물론 서양에서 발전한 자연과학, 특히 과학기술 때문인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가 무어냐에 대해서는 함께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하고 편리하고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래서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는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중얼중얼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늘어놓았습니다. 이제 음양과 절기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먼저 아래 그림을 보십시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감 잡으셨을 겁니다. 위에서 보신 그림은 우리가 흔히 보는 태극기에 나오는 태극문양입니다. 그 태극문양에 절기를 배치한 그림입니다. 태극문양은 하나의 운동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만약 태극문양이 원을 절반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라면 죽어 있는 상태를 뜻할 겁니다. 하지만 태극은 정적으로 굳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날씨도 그것과 똑같지요. 하루는 밤과 낮의 구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이 변하면서 시시각각 끊임없이 기온이 변하고 바람이 변하고 습도가 변합니다. 뭐하나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직은 세세하게 들어갈 단계는 아니니 다시 음양과 절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빨간 것은 양陽을, 파란 것은 음陰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쉽게 알 수 있듯이 양의 기운은 봄과 여름에 배치되어 있고, 음의 기운은 가을과 겨울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음과 양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그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지 않은 상태일 때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의 자전축은 기울어져 있기에 날씨, 다시 말하면 절기는 태극처럼 운동을 합니다. 이는 태극이 그렇기에 절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절기가 그렇기에 태극이 그런 것입니다. 태극이니 음양이니 하는 것들은 자연의 변화 현상에서 항상 그러한 사실을 뽑아서 하나의 상징 부호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태극이니 음양이니 하는 말에 겁먹을 필요 없으십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변화만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도통하시면 굳이 철학관을 찾거나 예배당을 찾지 않으셔도 그냥 그렇게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럼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만큼 음과 양이 서로의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으로는 동지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한과 대한이 가장 추운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쪽 용어로는 여기餘氣라 하여 남은 기운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수, 경칩 절기가 와도 꽃샘추위를 조심해야 함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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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이지만 이것저것 수확하려니 참 바쁩니다.
봄도 만만치 않게 일이 많지만 가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잎채소들이야 그냥 수확하면 끝이지만 잡곡 종류는 수확해서 손질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올해는 고추도 말리고,
들깨도 털어서 키질해서 물로 조루질해서 말리고,
팥도 도리깨질로 털어서 골랐고,
콩은 아직 밭에서 더 말리고 있는 중이고,
수수도 목을 베서 걸어 말리고 있고,
고구마도 한나절 캐서 저장해 놓고,
또 뭐가 있지... 아무튼 뒷손이 더 많이 가고 어렵습니다.
키질을 잘못하면 농사지은 공이 날아가니 조심해야하고,
관리를 소홀히하면 어느틈에 벌레가 달려들어서 다 먹어버리고,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애를 쓰며 일을 하면서 이걸 시장에서 사다 먹으면 돈으로는 얼마일까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웃음이 납니다.
그 가치와 이 가치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아무튼 덕분에 시장가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쌀 팔고, 김장 해놓고, 연탄 들여놓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올 겨울 식량은 이번에 봉은사 가서 마련해놓으려고 합니다.
몇 년 텃밭농사를 지어보니 역시 농사의 백미는 벼농사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벼농사도 짓고 다른 여러 잡곡농사도 지어서 곡식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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