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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전통농업 - 무군가Mugunga

 

 

 

화학비료 없이 수확량을 3배로

 

케냐 나이로비의 동쪽에 있는 마쿠에니Makueni 지역의 농민인 요하네스 무티스야Johannes Mutisya(54) 씨는 생활을 개선하고자 15년이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해 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터무니 없었다. 무티스야 씨는 풍작을 기대하며 옥수수와 콩을 심었지만 그 눈에 보인 것은 텅 비었을 뿐이었다.

 

“요즘은 그저 농사만 지을 뿐입니다. 비가 온 다음에는 풍작을 확신했던 20년 전과는 다릅니다.” 그는 바싹 말라서 딱딱해진 땅거죽을 지긋지긋하게 긁었다. 가뭄 등 기상이변의 영향도 작용하여 상황은 황량해졌다.

 

무티스야 씨가 직면한 상황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농사땅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생산도 저하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대륙과는 다르게 농업 생산성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량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생산고가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토양에 질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서 비료를 주는 양은 매우 적어, 다른 대륙의 나라에서 주는 비료 양에는 평균 10%, 중국에 비해서는 2%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화학비료의 가격이 비싼데다가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아주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농민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보조금을 주는 화학비료가 아프리카의 수확량을 높이는 열쇠가 된다고 지적하는 화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 맞은편에서는 오랫동안 화학비료를 사용하다가는 자칫하면 나빠지고 있는 위약한 농지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염려하는 화학자도 있다.

 

그런데 나이로비에 있는 세계 혼농임엄 센터(World Agroforestry Center)의 데니스 가리티Dennis Garrity 소장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현재 수확량을 3배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가리티 소장. 

 

그 비밀은 사막부터 열대우림까지 폭넓은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면서 아프리카 풍경의 상징이기도 한 아카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스와힐리족이 무군가Mgunga라고 부르는 알비다 아카시(Faidherbia albida)는 성장이 빠르고 옹골찬데다가 아프리카의 토양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하는 독특한 특성을 지녔다. 무군가는 애플-링-아카시apple-ring acacia와 아나 트리ana tree 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는데, 말라위에서 행한 연구에서 무군가의 잎이 우거진 아래에 옥수수를 심으면 수확량이 280%나 높아진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잠비아에서 행한 연구에서도, 비료 없이는 옥수수의 평균 수확량이 1.3t/㏊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군가 아래에서는 4.1t/㏊로 늘었다. 똑같이 비료 없이 심어 수확량이 늘어난 것은 서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잡곡, 에티오피아의 수수, 인도의 grand nut와 목화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게다가 조와 수수는 무군가에서 제공된 양분보다 많은 화학비료를 준다고 해도 그만큼 수확량이 늘지는 않았다.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무군가 나무. 

 

 

무군가는 기묘하게도 일반적인 나무와는 다른 기상 특성을 띤다. 우기의 전반에는 잠에 들듯이 질소를 풍부히 함유한 잎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때는 바로 농민들이 심은 씨앗이 질소를 흡수할 때이다.

 

“그리고 농민들이 작물을 심어서 기를 때에는 낙엽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작물과 햇빛을 놓고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건기가 시작하면 다시 잎이 나온다. 곧 다른 식물이 다 말랐을 때 그 잎과 꼬투리가 유기비료와 가축의 먹이가 됩니다. 거의 노동력도 들지 않고,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무군가는 공짜로 질소를 제공하여 값이 폭등한 화학비료를 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비료가 될 뿐만 아니라, 방풍림으로도 기능하고, 땔감과 건설용 목재도 제공하고, 우기의 침투성을 높여 토양침식도 막는다.

 

 

 

60년 전에 발견된 전통농업의 가치

 

국제 혼농임업 센터는 국제 농업연구 자문모임(Consultative Group on International Agricultural Research)이 지원한 열다섯 곳의 센터 가운데 하나이다. 2009년 8월 24일 제2회 세계 혼농임업 회의를 나이로비에서 개최하여, 1000명 이상의 전문가가 각국에서 모여 이 농장에서 기른 나무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이 나무에 관한 지식은 농민들에게 배운 것입니다”라고 데니스 가리티 소장은 말했다.

 

오랜 세월 아프리카에서 농민들이 쓰던 농법을 과학자들이 다시 발견했을 뿐이다. 과학자들이 사헬 지역의 농민이 수수와 조의 밭에 이 나무를 기르고 있는 모습을 약 60년 전에 관찰한 것에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전통농업은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수단, 에티오피아, 가나 북부, 나이지리아 북부, 카메룬 북부에서 아직도 행하고 있으며, 니제르에서도 480만㏊ 이상에서 행하고, 말라위와 탄자니아 남부의 고지대에 사는 50만 명의 농민들도 옥수수밭에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리고 무군가에 대한 연구는 60년 이상이나 되어, 나무의 역사, 생태와 실천에 관해 700종 이상의 과학 간행물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도입된 일은 적다. 특히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소수의 농민밖에 그 잠재력을 알지 못한다.

 

 



 

밭에 나무를 심는 것이 식량과 환경문제를 해결한다

 

“지금 우리는 보급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프리카 전역의 농장에 이 나무를 심도록 하고자 농민의 지식에다 과학 지식을 더하고 있습니다.”

 

제2회 세계 혼농임업 회의에서 무군가의 연구 성과가 발표된 일도 있고, 몇몇 나라가 그에 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잠비아와 말라위 두 나라의 농업국은 옥수수밭에 100그루/㏊의 무군가를 심도록 장려하여 생산을 늘리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가리티 소장은 무군가에 관한 지식이 더욱더 농민들에게 미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 생산 과제에 절망하고 있는 5000만 이상의 농민에게 이 나무의 특성을 적합, 보급하는 일에 우리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 일 말고도 숲이 벌채되는 것을 계속하여 막고, 뚝 떨어진 농장의 생산성을 역전시키는 것이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그린벨트 운동을 창설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도 연구기관과 대학이 혼농임업을 연구하여 그것을 소농에게 전하는 보급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식량안전 보장에 장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농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연구 성과를 전해야 한다고 혼농임업 회의에서 역설했다.

 

 

왕가리 마타이. 

 

“식량 안전에 연결되는 대규모 단작과 같은 지속적이지 않은 농업을 행하는 것으로 우리는 생태계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위약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식용작물을 기르도록 농민을 장려해야 합니다. 아프리카는 무군가 등의 '비료 나무'를 심는 지속적 농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와 세계의 농장에서 알맞은 장소에 알맞은 나무를 심는 일은 기후변동에 대응하고, 많은 사람을 먹이며, 환경을 보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짜로 유기질소를 주는 무군가가 그 사례입니다. 이미 아프리카에서는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많은 기존 사례가 있습니다”라고 가리티 소장도 말한다.

 

아킴 슈타이너Archim Steiner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사무국장도 무군가는 탄소배출시장에서 소농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계 혼농임업 센터와 UNEP는 농장에 나무를 늘리기 위한 금전적 동기를 농민에게 제공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탄소배출 표준안을 개발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변동회의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포함한 새로운 전략이 검토되었다.

 

 


 

인용문헌

(1) Jeremy Hance,Unique acacia tree could play vital role in turning around Africa's food crisis, mongabay.com,24Aug, 2009.

 (2) Communications Unit,Unique Acacia Tree Could Nourish Soils and Life in Africa, Worldagroforestry Press release,24Aug,2009.

 (3) Ochieng' Ogodo,Acacia tree can boost crops ― and more ― across Africa, Agriculture & Environment,27Aug,2009.

 (4) Ochieng' Ogodo,"Fertilizer Tree" May Revive African Farmlands,National Geographic News, Sep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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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세계 농업 유산인가?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기른 고대의 농법

 

이탈리아 남부의 바닷가에 펼쳐진 계단식 레몬밭,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장, 이란의 고대 지하 관개 수로, 러시아 극동의 전통적인 숲 경영법. 이러한 수많은 전통농법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바닷가에서는 물을 보전하고 그늘을 만드는 독특한 계단밭을 지닌 고대 농법이 레몬을 생산하고 있다. 사하라사막과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황량한 대지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 여러 군데이다. 이곳들은 고대의 지하 수로인 카나트qanat가 만든 것이다. 카나트는 중력으로만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지하수에서 물을 모아서 그 증발을 막는 방식으로 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왔다.

 

“매우 다양한 생물이 사는 오아시스와 채소밭을 만들고자 물을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악 지역에서 사막으로 끌어옵니다. 그것은 식량과 영양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사막 안에 생물다양성과 빼어난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문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FAO의 파르비즈 쿠하프칸Parviz Koohafkan 지역개발 과장이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앞에 말한 예는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관(FAO)이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GIAHS=Globally Important Agriculture Heritage Systems)’이라 부르는 것의 하나이다.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이란 FAO가 세계 환경 자금(Global Environment Fund)의 지원을 받아 2002년에 세운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가 목표로 한 곳은 페루, 칠레, 중국, 필리핀, 튀니지·모로코·알제리의 마그레브Maghreb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 특별히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24~26일에 걸쳐서는 로마의 FAO 본부에서 전통농업과 관련해 3일 동안 국제 포럼을 열어 5곳의 프로젝트 경험을 강론하고, 다음 단계를 향한 프로젝트도 검토했다. 최종적으로는 온 세계의 100~150 지역의 전통농업을 등록하고, 세계 농업 유산을 창설하자고 목표를 정했다. 2007~2014년에 걸쳐서는 그 모든 연구로 특정된 새로운 보호 방법을 현지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트기와 인터넷 등 언제나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고대 안데스와 페루에서 감자 농사를 짓던 법과 고대 중국의 논에서 행하던 농법, 이란의 방목 농법 및 튀니지·모로코·알제리에 있는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법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 고대 농법은 단지 환경 파괴를 막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몇 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을 먹이고 키우며, 지금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전통농법과 사막화 문제의 전문가 피에트로 라우레아노Pietro Laureano 씨는 환경 파괴를 막는 최선의 방법으로 전통농법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세 명 가운데 둘의 생활은 지금도 이러한 기술로 살고 있습니다. 고대의 것이라고 생각해 온 방법이 세계의 많은 인구를 길러 왔고, 국가도 이러한 방식으로 성립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언급했던 파르비즈 쿠하프칸 과장은 이란 출신으로 테헤란과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 공부한 박사인데, FAO에서 24년 동안 일한 전문가로서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서 가난한 사람의 75%는 농업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데, 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농법의 관리인입니다. 전통농업은 지금도 온 세계 200만 명의 식량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인류에게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온 인류가 틀림없이 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쿠하프칸 박사는 소농의 지지자로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이려면 소농은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는 주장에 이렇게 반론한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수히 도시로 나갔다고 해도, 아직까지 소농의 수는 줄지 않아 약 10억 명이나 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소농은 그 나라와 자기 지역의 식량 안전을 보장하려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노출된 전통 유산

 

하지만 지금 고대부터 이어진 문화와 기술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면 농업 전문가 중에는 칠레 남부의 칠로에Chiloe제도諸島가 세계에 감자를 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몇 세기나 어업과 숲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런 지역사회가 지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몇 세기나 오아시스의 주변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모로코에서는 국민의 36%가 최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인구압과 빈곤이 오아시스의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마그레브의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노레딘 나스르Noureddine Nasr 대표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버리고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나라들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라우레아노 씨도 고대의 물을 모으는 기술을 버리고 근대의 설비로 관정을 파고 대규모 농업을 시작했기에 많은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정은 오아시스를 파괴하면서 결국 고갈시켜 버렸다. 공업과 같은 근대의 농업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여 땅속의 지하수를 몽땅 퍼 올렸다. 그러면서 지하수에 소금물이 흘러 들어갔다. 염해를 받은 토양에는 화학비료가 필요해졌고, 그런 화학물질은 토양을 상하게 하여 빗물의 침투력을 더욱 떨어뜨렸다. 일찍이 풍족했던 토지가 사막으로 변했다. 이는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부터 북미까지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막화’라는 현상이다.

 

쿠하프칸 박사는 이것이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세워야 했던 이유라고 말한다.

 

“공업 개발, 오염, 기상이변, 농촌의 빈곤, 대규모 시장에서 소외되는 지역 경제, 도시로 유출되는 인구. 그러한 것들이 직면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세계화로 인류는 이러한 유산을 잃어버리겠죠. 현지 주민의 대부분은 그들이 바라던 진정한 생존 방법을 잃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잃었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학교에 진학하고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통농법을 유지하려면 전통농법의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지역사회를 격려하고, 특히 그 지역의 정부기관과 사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주민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보물을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이 가치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적 소농은 효율적

 

쿠하프칸 박사는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농업은 환경 파괴의 보루로만 여겨지고, 또 대기업과 근대 농업에 비해 소농은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이라는 통설을 부정한다.

 

“몇몇 대기업이 비효율적이듯이 소농이 비효율적인 분야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생산 체계를 한층 폭넓게 보면, 많은 소농이 대농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농이 가진 유일한 자원은 천연자원이나 인적 자원이기에, 그것을 유지하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자신의 유전자원을 다양화하고, 생산 체계와 수입원도 다각화합니다. 이 모든 것이 탄력성을 강화합니다. 이는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고, 자신이 근거로 하는 천연자원을 지속시키며, 그 결과로 생활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구온난화 가스의 방출과 토양과 물의 오염 등 집약화에 따른 온갖 외부성을 포함해, 생산 전체에서 사업과 비교한다면 가족농과 전통적인 농민들이 훨씬 잘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전통농업은 왜 비효율적이라 여겨졌을까? 박사는 바로 뒤틀린 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러한 농민들이 정부에게 어떠한 정책의 혜택도 얻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은 도시와 서비스업의 개발에만 중점을 두고, 농업과 농촌은 무시해 왔습니다. 농업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농촌 사회는 배려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자 1년에 약 3650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10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이런 체계 안에서 소농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나요? 이것은 완전히 뒤틀린 체계입니다.”

 

그리고 박사는 FAO 직원 안에 서양을 따라가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FAO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서양’과 ‘생산주의(productivist)’의 가치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관리직의 대부분은 서양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안전망과 사회적 가치,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찾아낸 농업 체계를 중시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좋다고 판명된 기술을 모방하여 개발도상국에 옮기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이라면 저기에서도 당연히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하지만 박사는 변화는 가능하고,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변화가 매우 느리지만 여러 가지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대의 전환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많은 사회 문제 및 환경 문제를 녹색혁명이 만들었다고 국제사회가 인식한 일입니다. 30년에 달한 녹색혁명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자원을 고갈시키고, 토양과 물도 오염시켰습니다. 녹색혁명의 발상에 입각한 조직과 정책이 아직까지도 우세하다고 하는 조직적인 과제는 있습니다만, 다행히 지금은 이러한 사고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2008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는 개발도상국의 성장 동력이 농업이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 성장으로 발전한 모든 나라가 그 농업 부문과 소규모 가족농 체계에 투자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 지속가능한 혹성을 바란다면 우리의 환경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도 자명합니다. 토지, 물, 유전자원에 투자해야 하고, 우리는 이러한 체계의 관리인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 관리인은 바로 농민입니다. 농민은 매우 많은 품종의 증식, 생산, 유지를 담당하는 관리인입니다. 기업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이걸 계속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농은 직면하고 있는 온갖 곤란에도 상관없이 지역 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는 더욱더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할은 특히 기상이변에 직면하여 한층 중요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정부와 과학자들은 이미 그들의 의견을 소농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또 소농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열심히 참가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주민과 농촌 여성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계 농촌포럼과 함께 우리는 ‘가족농을 위한 국제년’을 선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농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혹시 이것을 3, 4년 전에 이야기했다면 이상적인 일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현실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인용문헌

(1) Jeffrey Donovan, World: Experts Fight To Save Ancient Agricultural Systems, Radio Free Europe, Oct25, 2006.

 (2) Sabina Zaccaro, Saving Life on the Edges of the World, Inter Press Service, Oct26, 2006.

 (3) Jorge Chavez-Tafur, “The glassis half full” Interview Parviz Koohafkan, Farming Matters, Dec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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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통농법 2 - 밀파·솔라




황폐해졌던 멕시코


멕시코의 믹스테카Mixteca 지역은 강우량이 부족하고 토양침식도 심각한 산악 지대이다. 1980년대 그곳에서 멕시코의 캠퍼시노들은 수확을 늘리고자 화학 집약 농법을 도입하여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며 옥수수를 재배해 높은 수확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 수확이 확 떨어지고 토양도 피폐해졌다. 게다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실시되어 옥수수 값이 떨어져, 가난한 캠퍼시노는 화학 자재를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기계, 종자. 비료, 농약에 투자할 돈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토지는 농약과 화학비료, 토양침식 또는 사막화로 쓸모없어졌다.


국제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멕시코 문화의 선조가 거주하던 오악사카Oaxaca주州는 세계에서도 토양침식율이 가장 높아 토지의 83%가 농사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은 생산성과 나빠진 토양 때문에 수천 명이나 멕시코와 미국의 대도시로 좋은 생활을 구하여 그 토지를 버리고 갔다.


“캠퍼시노가 다른 일을 구하여 땅을 버리고 가는 일은 큰 변화입니다. 농촌에는 이미 늙은이밖에 없고, 세대를 이어서 선주민의 지역사회에 계승되어 오던 지식의 후계자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멕시코 농촌 전체의 전통과 지식을 잃어버리는 상황은 정말로 걱정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오악사카 티란통고Tilantongo에서 캠퍼시노의 우두머리인, 자연보호 활동가 헤수수 레온 산토스Jesús León Santos 씨이다. 그리고 그는 근대농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소농과 협동하는 고대의 전통농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황폐한 토지를 비옥한 토지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과테말라에서 도입된 유기농법


헤수수 씨는 당시를 떠올린다.


“멕시코 농촌의 지역사회 대부분은 땔감, 목재, 물 등의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자란 곳도 그렇고, 저도 가족과 지역사회가 직면한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런 자원 부족에 더하여 농촌 주민의 생활을 괴롭힌 것은 토양침식으로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낮은 수확과 가난한 경제에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근대농업에 거스르는 움직임이 도입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회·정치가 어지럽던 과테말라에서 오악사카주로 과테말라의 농민들이 난민이 되어 도망을 왔다. 그들은 10년 전부터 유기농법과 현지의 지식에 뿌리를 둔 농업 생산 체계를 개발한 상태였다.


“토양을 보전하며 수확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농민들이 국내의 위기 때문에 과테말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983년 멕시코에 있는 조직이 그들을 초대하여 그 무리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지적해 주었지요. 심각한 토양침식을 줄이고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개발된 농법으로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 훈련을 받은 한 사람입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하고 처음으로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농민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부모님의 토지에서 이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흥미를 가진 농민들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믹스테카 농민 종합개발센터(CEDICAM= Centro de Desarrollo Integral Campesino de la Mixteca)를 세웠습니다.”



농민을 구한 고대 농법


종합개발센터의 목적은 토양침식이 된 상태를 회복하여 풍부하고 생산적인 토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는데, 헤수수 씨는 그 일을 도운 것이 바로 고대의 기술인 밀파였다고 한다. 헤수수 씨와 센터는 ‘밀파 체계(milpa system)’라고 불리는 종합적 농업 체계의 개발을 중시했다.


“우리를 구한 하나는 옥수수, 콩, 호박, 허브 등의 다양한 작물을 섞어짓기하는 ‘밀파’였습니다. 모든 작물이 같은 밭에서 자랍니다. 이는 우리의 선조가 쓰던 고대의 체계로,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당시 가장 고도의 농업을 육성하던 체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멕시코와 중미의 많은 토착 지역사회에서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양분을 다 써 버리는 일도 없고, 병해충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몇 년이나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그 방법이 거의 잊혀져, 밭에 단 하나의 작물밖에 없는 단작 체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이 근대 기술로 대체되어 화학비료와 외부의 지식에 크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농촌 지역사회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헤수수 씨는 전통농법의 수확량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멕시코 북부의 시나로아Sinaloa의 단작을 하는 밭에서는 기계와 화학 자재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8t/㏊의 옥수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밀파는 이것만큼 생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캠퍼시노의 가족과 그 가축에게 1.8t/㏊의 옥수수를 줍니다. 별로 투자하지도 않는데 풋거름과 토종만을 써서, 콩, 호박과 그 토지에 심은 것 무엇이든 얻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판매할 수 있는 여분도 있을 것입니다.

토종은 몇 세대나 식량을 제공하며 현지의 기후에 적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배하는 데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 알지 못하는 유전자조작 종자를 대체하고 싶습니다. 이는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이러한 토종을 생산하고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좋은 맛을 주는 것 말고도 문화, 전통, 고대의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을 살려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수로 농법을 부활시키다


멕시코에서는 내린 빗물의 약 80%가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헤수수 씨가 쓴 방법도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이전부터 관개용으로 쓰던 고대의 기술이었다.


60×60㎝의 비탈 수로는 잠재적으로 360ℓ/m의 물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5㎞에서는 80만 ℓ의 집중 호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도랑은 빗물의 80%를 잡고 수로의 물은 토양에 스며들어, 그 결과 지하수가 다시 풍부해졌다. 이 지식도 이미 사라졌던 것인데, 지금은 현지 기관과 환경자연자원청(SEMARNAT= Secretaría del Medio Ambiente y Recursos Naturales) 등의 정부 기관에 널리 받아들여져 추진되고 있다. 헤수수 씨와 종합개발센터는 지역에서 몇 백 개의 비탈 수로를 만들려고 지금 현지의 캠퍼시노들과 협동하고 있다.


“멕시코의 선주민에게는 지속가능한 체계를 개발하는 지식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함께 조직적으로 일하는 단체를 꾸린 테퀴오Tequio라고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역사회는 공익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들은 몇 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몇 백 킬로미터의 관개용 수로를 건설하며, 환경을 개선해 왔습니다. 근대농법을 실시한 대다수는 선주민의 방식이 케케묵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실천은 자원을 조금만 쓰고 오염도 시키지 않는 농업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다


하지만 헤수수 씨가 이 전통농법을 쓰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 자재에 바탕한 체계에서 자연의 체계로 전환하는 일은 복잡합니다. 우리는 비료를 쓰던 것을 단번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화학비료를 줄이고, 풋거름을 늘리며, 조금씩 그 일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번에 생산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체계에서 다른 것으로 뿌리부터 개혁하라고 강요한다면, 생산량이 심각하게 떨어져 의기소침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개혁은 느긋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몇 년이나 걸립니다. 예전에 누군가 ‘왜 곧바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을 심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동료는 ‘우리가 오랜 세월 이용하는 자원의 대개는 성장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리고, 미래세대를 위하여 그것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멕시코와 세계 대부분의 마을은 우리와 비슷한 과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괴되어 버린 것을 재건하기 위한 시간은 아직 있지만, 지구온난화는 숲이 사라지는 것이 한 원인입니다. 그것이 지금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다시 나무를 심어 숲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농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정말로 도움이 된 것은,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몇 가족의 토지가 개선되는지를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가 한 것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경험이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사례가 설득한다’라는 구호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반은 사막 상태였던 땅을 주민과 미래세대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입니다.”



미래로 넘길 유산


믹스테카 농민종합센터는 1989년 이래 아홉 군데의 지역사회에서 몇 백의 농민을 조직했다. 소나무와 다른 토종 나무를 다시 심기 시작하여, 엘 프로그레소El Progreso에서는 모든 지역사회의 80%가 참가하여 100㏊의 나빠진 토지를 회복하고, 엘 카르멘El Carmen에서는 11년 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2003년 4만 그루, 2004년 7만 그루를 심었다. 과거 5년 동안 100만 그루 이상의 토종 나무를 심어 1000㏊가 숲으로 돌아왔다.


토양을 보전하고, 지하수를 다시 풍부하게 만들고자 언덕땅에는 등고선을 따라 도랑을 파고, 빗물로 파인 골짜기가 생기는 지역에는 흙을 막는 댐이 건설되었다. 또 몇 세대에서는 집에다 빗물을 모으기 위한 통도 마련했다. 통에는 건기에 쓰는 수량의 6배인 1,5000ℓ나 물을 모을 수 있다.


옥수수, 콩, 호박을 다시 옛날 방식으로 섞어짓기하여 옥수수를 단작하던 것이 다양화되고, 토종 옥수수가 보전·개량되며, 땅심을 좋게 하고자 현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부산물을 써서 지렁이똥을 포함해 유기 퇴비의 생산도 시작했다.


25년 이상에 걸친 헤수수 씨의 노력은 성공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인데, 지금 이 황폐했던 믹스테카의 현실은 크게 변했다. 지역의 25~30%밖에 경작할 수 없던 곳에서 지금은 토지의 80%를 경작하고 있다. 지역의 농업 생산은 50%나 올랐다. 이러한 개량의 모든 것이 믹스테카의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어 이주도 줄고 있다.


“지역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려고 싸운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지금 우리 믹스테카족은 의지, 기술, 지식이 있으면 파손된 천연자원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세계에 보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도 없는 채로 높은 수확을 올리려고 하여 대부분의 토지가 피폐해져 있다. 이 현상에 헤수수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자신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몇 세대 앞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에게는 이 혹성의 자원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지구와 지구에 있는 것 모두를 파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아이와 자손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돈벌이는 좋은 것입니다만,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는 편이 더 좋습니다.”


헤수수 씨는 2008년에 그 환경보호의 노력이 평가되어 골드만 환경보호상(Goldman Environmental Award)을 수상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Miguel A Altieri and Parviz Koohafkan, Enduring Farms: Climate Change, Smallholders and Traditional Farming Communities, Third World Network, 2008.

  (2) Paula Alvarado, 2008 Goldman Prize Winner Jesus Leon Santos on Bringing Desert Lands Back to Life, 26may.2008.

 (3) Jesús Ibarra, Ancient Farming Techniques to Save the Campo, Organic Consumers Association,14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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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전통농법 - 카멜로네스




홍수에도 왜인지 피해를 받지 않는 전통농법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해가 계속되면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덧붙여 홍수와 가뭄 등의 이상기상은 기후변동으로 더욱 그 빈도를 더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다. 아마존의 중심부에 있는 볼리비아 베니Beni군郡의 군도 트리니다드Trinidad1)는 가뭄과 홍수가 되풀이되는 냉엄한 환경이다.2) 볼리비아는 2006~2008년 계속해서 홍수 피해를 입고 있다. 2007년에는 35만 명이 재해를 입고, 2008년에도 또 4만 명이 가옥을 잃었다. 2007년과 2008년 두 해의 사망자는 100명을 넘는다. 특히 2008년에는 최소한 과거 50년 동안 최악의 범람이 일어났다. 홍수는 베니의 인구 가운데 1/4, 약 12만 명에게 영향을 주고, 2억 달러(1.19억 파운드) 이상의 피해를 가져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후변동에 순응하고 있는 지역의 한 예인 것이다.

 

 

 

 

볼리비아에 있는 옥스팜3)의 재해 리스크 삭감·적합 조정자인 로저 퀼로가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장 처음 시험적인 카멜로네스camellones가 건설된 것은 2007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2008년의 홍수를 이겨낸 유일한 구축물이 되었습니다. 곧 카멜로네스 체계로 지역사회의 생활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케네스 리 재단(Kenneth Lee foundation)의 오스카 사베드라Oscar Saavedra 대표도 말한다.


“어떤 시기에도 홍수에 대응하려면 언제 우기가 올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곧 수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듯이 엘니뇨와 라니냐의 주기가 힘과 빈도를 더한다고 해도, 홍수를 이겨내는 농법이 있다고 하면 극단적인 이상기상과 예측할 수 없는 호우에 가난한 사람들이 잘 대응하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하나의 해결책은 3000년 전 현지의 농민들이 썼던 오랫동안 잊힌 농법에서 오고 있다.


“우리의 카멜로네스 프로젝트가 보통은 어긋나 있는 것의 하나는, 지금 베니의 가난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일한 지역에서 프레콜롬비아 시대의 선주민 문화에서 개발된 기술과 똑같은 기술을 쓰고 있는 점입니다.”


사베드라 씨는 水文字의 복합된 체계를 개발하고자 6년 동안이나 자신의 밭에서 실험을 거듭해 왔다. 고대에도 지금도 지역사회는 가뭄과 그 뒤에 이어지는 정기적인 홍수라고 하는 똑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사베드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홍수는 훌륭한 문명의 개발과 번영의 기초였습니다. 베니의 고대 문화는 범람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장해가 아닌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건기와 우기 사이에 균형을 만들고, 자연에 도전하기보다 오히려 자연의 과정을 받아들여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홍수 지역의 해결책이 된다는 희망은 고고학 조사에서도 나왔다. 196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범람과 가뭄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프레잉카문명에서 개발된 고대 농업 체계의 베일을 벗겼다.4) 고대 문명은 광대한 토지 변동을 행하여 땅심과 생산성을 개량하는 농업 체계를 개발했다. 그리고 3000년 뒤 케네스 리 재단은 옥스팜에서 자금을 받아 이 고대의 관개 체계를 되살렸다.

 

 



홍수에서 작물을 보호하고, 식량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고대 농법


베니의 토지 대부분은 우기에는 몇 개월이나 물에 잠긴다. 아마존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로 물이 흘러가면서 영양물을 가져가 버리고, 작물을 재배하기 어렵게 하는 모래흙을 남긴다.


“우리는 흙이 매우 척박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의 흙은 죽어 있어 농업에는 좋지 않은,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라파엘 크레스포 오르티스 씨는 말한다. 처음 현지 주민들은 의심했다.


“어떻게 실행하면 좋을지 농업기술자마저 모르는 기술을 실시하도록 참가자들에게 부탁했을 때, 불신의 분위기가 생긴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로저 퀼로가 씨도 떠올린다. 이 카멜로네스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 프로젝트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였다. 하지만 결과를 자기의 눈으로 확인하여 지역 사회는 확신하게 되었다.


홍수 피해의 경감이 수많은 현재의 여성들이 카멜로네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저는 저의 구획에 쌀, 옥수수, 바나나, 양파를 심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이 몽땅 쓸어 갔습니다.” 트리니다드 근처의 푸에르토 알마센Puerto Almacen에서 세 아이의 어머니, 두니아 리베로 마야코Dunia Rivero Mayaco 씨(44세)는 설명한다.


“집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3개월이나 길거리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기에서 카멜로네스를 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두 번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이 불었을 때 카멜로네스의 모습.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운하는 완전한 채로 남아 있다.


2009년 7월 현재, 약 400가족이 트리니다드의 주변에 있는 다섯 지역에서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옥수수, 카사바, 쌀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아직 막 시작한 실험 단계이지만, 앞으로 전망이 있고 생산성도 높을 것이라 본다. 현지의 농민 예니 노자Yenny Noza 씨도 말한다.


“홍수가 나면 이전에는 대부분의 작물과 종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심는데, 물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습니다. 수확을 할 수 있고, 또 종자도 곧바로 심습니다.”


이바레Ibare 강을 배로 20분 정도 내려가는 코파카바나Copacabana 마을의 농민 마리아 살라스Maria Salas 씨도 말한다.


“홍수가 나도 카멜로네스가 우리를 구해 주겠지요. 홍수에 약한 바나나도 시들지 않을 수 있고, 레몬과 오렌지도 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확실히 우리의 선조가 어떻게 살았고, 세력을 뻗어 왔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카멜로네스를 구축하는 트렉터도 없었습니다만, 쭉 살아남았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카멜로네스 프로젝트가 행하고 있는 것은 프레콜롬비아 시대의 기원전 1000년~기원후 1400년이나 행해 왔던 전통농법의 모방이다. 이 프로젝트는 운하로 둘러싸 최고 2m나 되는 카멜로네스라는 둑을 구축하는 것에 바탕한다. 높은 두둑의 밭은 몇 사람인지의 채소 농사꾼이 건축한 높은 두둑과 비슷한데, 확실히 규모가 크다. 홍수의 물높이보다 높게 구축해서 카멜로네스는 종자와 작물이 쓸려 가는 것을 지킨다. 우기에 높은 두둑을 에워싼 둘레의 수로는 홍수가 난 물이 흘러들지만, 홍수가 지난 뒤의 갈수기에는 그 운하의 물이 관개용수가 되어 토양에 양분을 준다. 가난한 농민들은 홍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은혜라고 보도록 장려되고 있다. 요컨대 흘러넘치는 물을 이용하함으로써 홍수의 희생자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땅심을 지속하고, 물고기도 가져온 전통농법


하지만 전통농업이 뛰어난 점은 그것만이 아니라, 수확량도 높다는 점이다. 케네스 리 재단에 따르면, 베니에서 행하던 농법에서는 카사바를 약 15t/㏊만 수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멜로네스 농법에서는 1년에 최대 100t/㏊의 수확량이 달성되었다. 땅심이 개선되어 1년에 최대 세 작물을 재배할 수 있기에, 관행농업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생산할 수 있다. 또 베니에서는 2~3년 뒤에는 토지가 척박해져 버렸기에, 농민들은 농사를 지으려고 숲을 벌채하고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토지를 부대밭 방식 농업으로 개간했다. 그런데 전통농법은 가족의 식량 안전의 보장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변의 열대림을 벌채할 필요성도 줄인다.


그밖에도 전통농법에는 잠재적인 장점이 있다. 첫째는 높은 두둑을 둘러싼 주변은 수로이기에 물대기가 매우 쉽고, 한 번 체계가 구축되면 물 수요가 적다.

 

둘째는 운하에서 급성장한 타로페tarope라고 불리는 수생 식물이 물을 정화하고, 흙 위에 퍼지면 거름으로도 된다. 현지의 농민 오스카 페나란다Oscar Penaranda는 말한다.


“흙 위에 타로페를 퍼뜨리면 흙의 수분을 유지하고, 양분도 됩니다. 타로페는 거름이 되는 훌륭한 식물입니다.”


타로페는 6개월 뒤에는 10㎝의 비옥토를 만드는 것을 돕는다. 게다가 가축 먹이로도 쓰인다. 수로에서는 물고기도 풍부하게 자란다. 라파엘 크레스포 오르티스 씨는 말한다.

 

 

물에서 자라고 있는 타로페. 

 

“수로에는 갈수기에도 진흙 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있기에, 지역사회는 또 물고기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곧 세련된 고대 농법은 현명한 물 관리와 유기물의 재활용을 통하여, 비옥한 흙과 관개용수, 가축 먹이, 물고기를 가져오고, 그것은 또 먹을거리와 수입원이 되고 있다.



콜롬비아, 브라질로 퍼진 고대 농법


선조들이 쓰던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 방법은 기후변동의 방패가 되어 열대림의 벌채를 막고, 주민들의 식량 안전 보장을 높이며, 또한 좋은 식사마저 제공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딘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성들 안에서는 더욱 세찬 범람과 가문일 때 정말 성과가 있는지 시험 받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08년의 홍수는 최악이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큰 도전이 아직 남아 있다. 토마토와 채소밭의 생산물로 수입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일과 비교하여 카멜로네스에 시간과 땀을 흘리는 것으로 현지 사람들의 의문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볼리비아의 카멜로네스 프로젝트에서 얻은 교훈은, 그곳 이외의 재해를 입기 쉬운 지역에서도 큰 마중물이 되겠지요.”


퀼로가 씨는 믿고 있다. 그리고 사베드라 씨도 카멜로네스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에까지 퍼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등 베니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세계 각지에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세계 기아를 줄이고, 기후변동과 싸우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여러 장해에도 불구하고, 카멜로네스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1) James Painter, Bolivians look to ancient farming, BBC News,18 Aug,2009.

2) Bolivia: Reviving ancient indigenous knowledge 

3) 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 제2차 세계대전이었던 1942년, 영국 옥스퍼드의 주민들이 나치스 치하에서 고생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구호할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이후 활동 폭을 넓혀 전쟁이 끝난 뒤 벨기에 등에서 전쟁 난민 구호에 앞장서면서 국제적인 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4) New Agriculturist Reviving an ancient irrigation system in Bol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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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의 전통농법 - 퀘숭얼Quesungual




가뭄과 허리케인에도 왜인지 피해를 받지 않는 전통농법


1998년 허리케인 밋치Mitch는 중남미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마을과 도로와 다리가 파괴되고, 몇 천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가장 피해가 컸던 온두라스에서는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과 100만 곳 이상의 산사태로 농작물이 거의 괴멸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FAO의 이안 쉐리트Ian Sherrit 씨는 허리케인 밋치는 자연재해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이 관여된 재해입니다. 온두라스에서는 많은 숲이 계속하여 파괴되어 왔습니다. 국토의 80%가 언덕땅이기에, 토양이 나빠져 호우에 취약해졌습니다.”

 

 

 

 

온두라스의 수도 교외의 언덕땅에는 나무가 없는 산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저쪽에서는 농민들이 옥수수를 심으려고 숲을 불태우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허리케인의 피해가 컸던 까닭이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허리케인의 직격을 받았으면서도 예외적으로 수확이 줄지 않은 지역이 있다는 점이다. 온두라스 서부의 오지 렘피라Lempira주州가 바로 그곳이다. 이 땅에 사는 선주민 렌카Lenca족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한 것으로 알려진 부족인데, 거기에서는 고대부터 전통농법이 계승되어 1990년대 전반에 FAO가 시작한 프로젝트로 이 농법이 촉진되어 있었다. 렘피라주의 풍부한 수확은 이미 자취를 감춘 고대 농법의 가호로 산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 농법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허리케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전통농법을 부활시킨 지역은 1997년 엘니뇨의 심각한 가뭄에도 손실이 훨씬 적었다.


“가뭄을 일으키는 엘니뇨나 밋치와 같은 이상 기후는, 오히려 우리에게는 최고의 동료입니다. 전통농법을 하지 않던 사람은 생산물을 잃었지만, 실천한 사람은 많은 농산물을 손에 넣은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농업 전문가인 카를로스 제라야Carlos Zelaya 씨는 말한다. 전통농법을 받아들이는 지역이 엘니뇨를 겪은 뒤에 급증하고, 허리케인 밋치에도 토양침식과 작물 피해가 적다는 사실이 농민들에게서 보고되었기에, 허리케인의 해결책으로도 전통농법은 계속 퍼지고 있다.



생명이 되살아난 온두라스의 언덕


그런데 20년 전에는 부대밭 방식의 농업(slash-and-burn)으로 토양이 약해져 농민들은 물 부족과 수확량 감소로 고민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비르힐리오 리스Virgilio Reyes 씨는 이렇게 떠올린다.


“이전에는 이 지역 전체가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수확하기 전 몇 개월은 식량이 모자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언덕의 숲을 불태우면 처음 몇 년은 농사가 잘 됩니다만, 결국 모든 흙이 개울로 쓸려 내려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이제 신기술로 땅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비르힐리오 씨는 FAO가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다 0.8ha 정도의 농지에 1993년 전통농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용 식량과 땔감, 가축의 먹이를 자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농사땅으로 수익도 올리고 있다.


그럼 생태농업의 측면에서 전통농법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첫째는 생산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부대밭 농업에서는 생산력이 겨우 몇 년밖에 지속되지 않고 그 뒤 밭은 방치된다. 하지만 전통농법에서는 10~12년이나 생산이 지속된다. 흙의 질도 지속되는 바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좋아진다.

 

둘째는 전통적인 부대밭 농업과 비교하여 수확량이 많다는 점이다. 전통농법을 받아들인 농민들은 과거 10년 옥수수는 1200~2500㎏/㏊, 콩은 325~800㎏/㏊으로 수확이 배 이상 늘었다. 그 결과 자가 소비의 수요가 채워지고, 잉여 농산물을 판매할 여유도 생겼다. 농민들은 채소와 과실과 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고, 닭과 돼지도 샀다. 그리고 비료와 그밖에 투입 자재를 구입하는 조직도 결성하고, 지방 시장과 좋은 관계를 확립하며, 채소 텃밭을 시작하여 식생활도 개선되고 있다.


셋째는 토양과 수자원이 보전되는 것뿐만 아니라, 농촌의 삶도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심각하게 물이 부족한 계절을 고민하던 일도 줄고, 음용수의 수질도 좋아졌다. 전통농법의 면적은 7000㏊ 이상 되는데, 6000명의 농민이 전통농법을 받아들여 약 6만㏊의 2차림이 자연히 갱신되어 새, 곤충, 야생화도 나무와 함께 돌아왔다.


콜롬비아에 있는 국제 열대농업 센터(CIAT=Centro Internacional de Agricultura Tropical)에서 전통농법을 연구하는 아라셀리 카스트로Aracely Castro 씨는 폭넓은 이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만약 농민들에게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으면, 여러 가지를 언급하겠지요. 더욱 많은 물, 개선된 식량 안전 보장, 그들은 더 건강해지고, 아이들은 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또 그들은 그 천연자원을 특별히 관리하는 일조차 유의하고 있습니다.”

 

 

 

 

숲속에서 작물을 기르는 렌카족


이 전통농법은 퀘숭얼의 식물을 베어 덮는 혼농임업 체계(Quesungual Slash and Mulch Agroforestry System)로 유명하다. 퀘숭얼은 선주민의 말로서, 토양·식물·흐름을 뜻하며, 온두라스 남서부에 있는 선주민의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이 농법이 가장 처음에 특정된 마을의 이름을 존중하여 농법에 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생태적으로도 효율적인 농법에는 주요한 네 가지 원칙이 있다. 부대밭을 하지 않는다. 겉흙을 쭉 덮는다. 갈아엎지 않고 농사짓는다. 효율적인 거름을 쓴다.


예를 들면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생활도 좋아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비르힐리오 리스 씨는 해마다 햇빛이 비치도록 나뭇가지를 친다. 그리고 잎과 가지와 오래된 옥수수의 부산물은 흙을 덮는 데 쓴다. 그리고 쟁기질도 하지 않으며 불도 지르지 않는다. 곧, 중앙아메리카의 고지대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부대밭 방식의 이동 농업과는 대조적으로 농사땅을 준비하려고 언덕의 나무를 태우지 않고, 식용작물과 사료작물의 양분 경쟁을 막으며, 흙을 덮는 데 쓰려고 신중히 나뭇가지를 친다. 목재로 쓰면서 나온 부산물은 흙을 덮는 데 쓰인다. 그리고 첫해에는 개척하는 작물로 수수와 콩이 그 멀칭 안에서 자라도록 심어지고, 그 뒤에는 주작물로 옥수수 등을 기른다. 그 뒤에는 그늘이 지지 않도록 1년에 2~3번 나무나 떨기나무를 솎아베어 웃거름이 되는데, 거기에도 리타와 작물 부산물이 멀칭의 비료로 더해진다. 이는 곡식류를 숲속에서 재배해 온 렌카족의 노하우를 활용한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섞어짓기이다. 천연의 나무를 남기면서 콩, 옥수수, 수수, 조, 꼴, 부가가치가 있는 과실과 채소도 함께 심는다.

 

 

 

 

세 번째 특징은 갈아엎지 않고 재배하는 점이다. 변함없이 토양을 덮으면서 갈아엎지 않고, 거기에 작물을 곧뿌림(직파)하여 부대밭을 하지 않기에 2차림도 재생시켜 나간다. 마을을 둘러싼 밭은 급경사에 위치하여 있으며, 심각한 토양침식과 산사태를 가져오는 호우와 이따금 가뭄도 찾아오는데, 이 농법에서는 흙을 보호하여 보수력도 높고 토양도 개선시켜 나간다. 게다가 농민들이 농법을 확립·유지하는 데에 부대밭보다도 적은 노동력만 든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국제 열대농업 센터를 포함한 아홉 개 단체의 협회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이후, 지금 세계은행과 온두라스 정부는 유럽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이 가져온 몇 세기에 걸친 부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이 농법을 프로젝트 지역 이외에도 널리 퍼뜨리고 싶어 한다.



온두라스부터 니카라과, 아시아·아프리카로


국제 열대농업 센터는 퀘숭얼 농법이 온두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부터 비슷한 영역에서도 이 농법이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물과 식량 도전 프로그램(Challenge Program on Water and Food)’을 통하여 니카라과 북서부에도 2005년 이 체계를 시험적으로 도입해 보았다. 결과는 최고였다. 전통농법은 농민들에게 환영받아 실증 지역을 뛰어넘어 퍼져 부대밭 농법은 꽤 사라졌다. 그리고 콜롬비아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국제 열대농업 센터, 열대 토양의 생태와 지력(TSBF= Tropical Soil Biology and Fertility), 중미의 토양을 통합 경영하기 위한 협회(MIS= Consortium for the Integrated Management of Soils for Central America) 등의 연구자들은 ‘물·식량 도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이 신비한 전통농법의 비밀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는데, 최소한으로만 토양을 교란하는 점, 작물을 심은 부분만 웃거름을 주는 방식의 효율이 좋은 점 등 성공의 열쇠를 특정·정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평가를 바탕으로 국제 열대농업 센터와 FAO의 과학자들은 가뭄이 잘 드는 이외의 지역인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고지대에서도 이 농법을 쓸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CPWF 프로젝트는 이 심플하지만 유효한 체계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고지대에 퍼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아라셀리 카스트로 씨도 라오스와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고지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본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안데스의 열대 지역에서도 시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농민들이 기후변동에 대응하는 동시에 더 생태 효율적인 체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동과 물 부족의 고통을 아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한단 말입니까.”

 

 

 

 

개혁은 지역 사회에서부터


물론 도입할 때 배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옳은 나무를 고르고, 옳은 방식으로 그것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극복해야 할 문화적인 장벽도 있다. 예를 들면 밭을 덮어 놓는 것은 농사땅을 깔끔하지 않게 보이도록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화적으로 어려운 농민도 있을 것이다. 또 연구자들은 프로젝트를 보급하는 데에는 융자 등 지속가능한 개발을 향한 정부의 지원 정책에 더해, 사회 조직도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온두라스에서 전통농법은 외부에서 지도를 받아서가 아니라, 농민들이 주변의 방식을 모방하면서 급속히 퍼졌다. 예를 들면 니콜라스 메히자Nicolas Mejilla 씨는 기술적인 조언은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웃에게서 영감을 얻고, 나머지는 자기 스스로 해결했다.


렘피라 프로젝트의 기술 조언자로 있는 이안 쉐리트 씨는 개혁은 외부의 기술자가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내부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년 전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떠올린다.


“당시 이러한 사고방식을 이야기하면, 공산주의자가 광신적인 생태주의자가 되었다는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그렇지만 냉전 이후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도 이런 생각을 제도화하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Tom Gibb, Saving Honduras after Mitch, BBC News, 09Mar, 1999

 (2) Luis Alvarez Welchez,et.al,Unravelling the Mysteries of the Quesungual Slash and Mulch Agroforestry, 18th World Congress of Soil Science July 9-15, 2006.

 (3) Indigenous agroforestry: A bright spot in land management,Aug12, 2006. 

 (4) Ancient lesson in agroforestry - slash but don't burn,Nov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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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통농법 밀파Milpa1)·솔라solar 농법




세계에서 가장 앞선 농업 체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농업 체계’라고 FAO가 절찬한 것이 바로 밀파Milpa라는 농법이다. 아마도 밀파는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한 것 가운데에서도 가장 성공한 발명품의 하나일 것이다.2)


스페인 사람이 라틴아메리카에 새로운 식물이나 닭고기, 돼지, 양, 소 등의 가축을 들여왔는데, 밀파는 그 이전부터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에서 행하던 전통농법이다. 캠퍼시노Campesino란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이 모자란 농민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그 문화나 농업의 특성은 다양한 가축과 채소를 솔라solar라 불리는 텃밭과 함께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3)


지금도 마야족의 농민은 좁은 밭에서 부대밭 농업을 행하면서, 이 밀파 농법으로 필요한 식량을 자급한다.4) 높은이랑이나 둑 위에서 사이짓기하는 작물의 김매기나 수확을 손으로 하기에 그런 면만 보면 원시적이다.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도 수확량이 높다. 밀파의 옥수수밭에 필적할 만큼 생산적이고, 또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관리로 농촌이 필요한 물자를 제공


그럼 밀파는 생태농업적으로 보아 어떤 점이 우수할까?


첫째는 옥수수의 단작 재배와 비교하여 2ha 이하의 좁은 면적으로도 다양한 식용작물을 재배하여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밀파는 ‘세 자매’라고도 불리는 옥수수·리마콩·호박을 사이짓기하는 특징이 있다. 리마콩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흰 강낭콩이다. 그리고 피망 등의 채소나 색비름(amaranth), 약초, 퀘리테스(명아주과)라고 불리는 식용 풀을 함께 기른다.


옥수수, 콩, 호박을 사이짓기하여 콩과 식물의 질소 고정 능력으로 자연히 땅심이 개선되기에 화학비료는 넣지 않는다. 게다가 부대밭 농법의 돌려짓기는 식생이 자연스레 갱신되듯이, 2년 재배에 8년을 묵히는 기간이나 식생의 2차 재생을 고려한다. 묵히는 기간을 짧게 줄이지 않고 이 돌려짓기가 이어지는 한, 이 체계는 꾸준히 지속될 수 있다.


둘째는 병충해에 강한 점이다. 다양한 작물을 사이짓기하는 것으로 병충해의 생물적 방제력을 높여, 농약은 최저한도만 쓴다.


셋째는 지구온난화의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밀파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부산물이나 풀을 가금류나 소에게 먹이는데, 이를 사료로 주기에 제초제가 쓸데없다. 그런데 근대적인 사육우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가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Drymaria laxiflora Benth와 같은 풀은 소의 세포내강 안에서 사료의 발효 효율을 높여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의 발생을 줄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넷째는 양질의 식재료를 자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축류는 싼값으로 고품질의 단백질인 달걀이나 우유를 제공하고, 밀파로 재배한 작물은 영양학으로 보아도 균형 잡힌 좋은 음식이다. 단백질이나 니아신을 합성하는 데에는 아미노산의 리신이나 트로톱판을 빠뜨릴 수 없는데, 옥수수는 이를 결핍하고 있다. 그런데 콩에는 리신이나 트로톱판이 함유되어 있고, 호박은 비타민을 제공한다.


다섯째는 밀파가 자급용 식량이나 사료작물만이 아니라, 건설자재, 땔감, 양봉용 2차 식생이나 수렵하는 동물과, 농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재를 종합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밀파에서는 긴 휴한기가 있는데, 그 휴한지가 들새나 작은 포유류의 서식지가 되어 생물다양성을 보전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숲 관리와 함께 자급용 수렵에 좋은 생태계를 만든다.



2만 종의 옥수수를 보전


생태계만이 아니다. 밀파 농법은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에서도 농약이나 화학비료, 개량 품종을 쓰는 근대농업의 농지와 비교하여 매우 풍부하다. 예를 들면, 대개 옥수수는 15품종, 콩은 5품종, 호박은 3품종, 그리고 피망도 6품종 이상을 재배한다.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의 품종이 2만 이상이며, 멕시코 남부와 중앙부에서만도 약 5000종이 특정되어 있다. 오악사카Oaxaca의 어느 마을에서 연구자들은 17개의 다른 미환경微環境을 특정했는데, 거기에서는 26종의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었다.


캠퍼시노는 그 텃밭인 밀파·솔라가 자신의 생활을 성립시키는 자원이며, 민족의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에게 기원하며 감사해 왔다. 하지만 솔라는 생활의 장인 동시에 재미와 품종의 원산지, 실험의 장이었다. 캠퍼시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종자 선발이나 교환을 통해 고원의 저온 조건에서도 농업이 행해지는 품종을 포함하여, 고도나 토양 유형과 강우와 같은 환경의 차이에 대응하고자 근대적인 하이브리드 품종이나 GMO보다도 훨씬 건강하고 병충해에 강한 다양한 토종을 육종해 왔다.


옥수수의 고대 원종이라 하는 것은 멕시코부터 과테말라에 걸쳐서 자생하던 테오신트Teosinte인데, 이것도 몇 세기나 밀파를 통하여 캠퍼시노가 보전하여 왔다. 근대농업에서는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잃어버렸지만, 밀파에서는 그것을 지키고 있다. 곧 멕시코는 인종에서도, 식물 유전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보고인데, 밀파는 세계에서 귀중한 유전자원을 보존하여 온 농법임을 알 수 있다.



근대농업으로 위기에 직면한 밀파 농법


하지만 지금 밀파 농법은 위기에 방치되어 있다. 멕시코 정부는 과거 30년에 걸쳐 화학비료나 농약, 개량 품종 등 녹색혁명 기술에 따른 옥수수의 단작과 푸에블라 계획(Plan Puebla)을 추진했다. 멕시코 정부의 농업보조금(PROCAMPO)은 충분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옥수수를 단작으로 재배하는 농민에게만 준다. 그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도입된 근대농업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화학비료를 지나치게 주어 토양이 산성화되고, 지하수가 오염되었다. 제초제를 뿌려 콩이나 호박이 영향을 받고, 식용 풀도 말라 버렸다. 농약의 뿌려서 이전에는 풍부했던 매쿼이maguey 벌레, 물고기나 민물새우 등의 식용 곤충도 죽어 버렸다. 그리고 부시, 클린턴, 오바마 정권이 몬산토 사의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멕시코가 활용하도록 압력을 넣어, 토종 옥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현지의 환경 조건에 맞지 않는 다수확 옥수수 품종의 단작이 진행된 결과, 작물의 수확량이 떨어져 생산비가 폭등하여 수입이 줄었다. 그리고 지구화에 따른 옥수수 값의 하락이나 보조금 삭감도 농민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지금 멕시코의 농촌에 사는 1200만의 선주민들의 93%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남성은 농가외소득을 구하러 돈을 벌러 나가야만 하여 몇 백 만의 멕시코인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농촌에 남은 사람은 여성이나 아이, 노인뿐이고, 지금은 그들이 농사짓고 있다. 하지만 노동력이 줄면 전통 기술도 유지할 수 없다. 밀파 농법과 관련한 식물 품종의 지식도 잃어 가고 있다. 지금 멕시코는 옥수수를 자급할 수 없어 때로는 대량의 옥수수를 필요 이상으로 미국에서 수입해야만 한다. 밀파의 다양함으로 풍족하면서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던 것도 수입 옥수수나 정크푸드를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변했다.



전통농법의 부활과 지역 재생


그러나 밀파 농법을 다시 도입하여 옥수수의 단작으로 고갈된 토양을 수복하고, 더욱이 지속가능하게 환경에 우수한 농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밀파에서는 홍수의 위험을 줄이고, 수질을 개선하며, 토양침식을 막고, 기후를 제어하는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에 놓인 세계의 다른 지역의 사례도 된다. 그리고 밀파 농법으로 얻은 교훈은 현지의 입지조건에 알맞은 기술이 개발될 경우에만 캠퍼시노가 농업을 계속할 유인책을 갖고, 토종의 유전적인 다양성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지의 전통적인 지혜를 보전하고, 캠퍼시노가 자신의 유전자원을 관리하고, 지역 자급을 해 나가기 위해서도 전통적인 밀파를 부활시키는 데에 희망이 있다.

 

 

written by Yoshida Taro, translated by 김서방

 


1) 중앙아메리카에서 쓰던 작부체계. 유카탄반도 지역의 멕시코에서 가장 널리 형성되었다. 그 단어 밀파milpa는 멕시코어로 ‘들판’이란 뜻이고, 나와틀어의 ‘들판으로(milli<field>+pa<towards>)’라는 구에서 유래했다. 고대 마야인과 중앙아메리카인들의 경작 방법에 기반한 밀파 농사는 옥수수, 콩, 리마콩, 호박(squash)을 생산했다. 밀파의 주기는 농사를 짓는 2년과 묵히는 8년이다.

2)  Alexis Baden-Mayer & Ronnie Cummins, Thank Indigenous People for the Food We Eat, The Milpa Agroecosystem and Its 20,000 Varieties of Corn, Organic Consumers Association, Nov26, 2009.

3) Milpa-Solar Systems (Mexico), GIAHS, FAO.

4) "Milpa" Agroecosystems in Yucatan, Mexico, Agroe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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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의 효율성



효율적이지 않은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


복잡한 농업경제도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온난화 대책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바이오에탄올을 예로 보자.


미국의 농지에서는 3000평에서 약 6톤의 옥수수를 수확하고, 이를 가공하여 처리하면 1240ℓ의 에탄올을 얻는다. 하지만 원료인 옥수수를 심어 재배·수확하는 데에는 3000평에 약 1325ℓ의 화석연료가 들어간다. 옥수수를 부수고 가공·처리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든다. 92%의 물과 8%의 에탄올을 분리하는 데에는 최대 3단계의 증류 과정이 필요하고, 가솔린과 혼합하고자 99.8%의 순수한 에탄올을 제조하는 데에도 더욱 많은 처리나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에탄올을 제조하는 데에는 실제로 에탄올에 포함된 것보다도 약 70%나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왜 에탄올을 제조하면서 에탄올이 아니라 화석연료가 쓰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코넬대학 농업생명과학부의 데이비드 피멘텔David Pimentel은 말한다. 에탄올을 제조하고자 미국은 대기업에게 연간 약 10억 달러의 보조금을 주는데, 그것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에탄올 생산의 경제 분석에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는 점도 간과하기 일쑤다. 


“미국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는 곳에서는 잘 관리된 농지라도 12배나 빠르게 토양침식이 진행되고, 관개용 지하수도 자연히 함양되는 양보다 25%나 빠르게 퍼 올리고 있습니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환경은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옥수수의 약 70%가 가축이나 가금류의 사료가 되고 있기에, 옥수수가 에탄올 제조에 쓰인다면 옥수수 값이 오르고, 그에 따라서 고기·우유·달걀의 값도 오른다.


“에탄올 제조용 보조금을 위해 세금을 내는 것에 더해, 소비자는 시장에서도 꽤 비싼 식품비를 지불하게 됩니다.”


미국인들의 자동차는 평균 연간 1,6000km나 달린다. 가솔린과 섞지 않고, 순수하게 옥수수로 만든 에탄올만으로 달리게 하는 데에는 약 3220ℓ의 연료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7명의 미국인을 먹일 수 있는 4.4ha(13200평)의 농지가 요구된다. 미국에 있는 자동차 모두를 100% 에탄올 연료로 움직이는 데에는 미국 땅의 97%에 원료가 되는 옥수수를 재배해야 한다. “결국 옥수수는 에탄올 생산을 위해 재생가능한 원료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놓친 절호의 기회


‘추출하기 위한 에너지’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보다 커져 버렸고, 자원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 이를 EROI(Energy Return on Investment)라고 부른다. 그리고 농업의 생산성을 에너지 측면에서 분석한 시초는 피멘텔 교수의 1973년 논문인 “식량 생산과 에너지 위기(Food Production and the Energy Crisis)”일 것이다.


그럼 농업 생산을 에너지 측면에서 처음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누구일까? 세르게이 포돌린스키Sergei Podolinsky(1850~1891)라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의사가 그다. 당시 포돌린스키는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 살고 있었기에, 프랑스의 농업 통계를 가지고 삼림·자연 목초지·인공 목초지·밀밭의 생산성을 비교했다. 포돌린스키는 사료나 짚의 에너지를 3750㎉/㎏, 밀을 2550㎉/㎏이라 하고, 노동력도 말 645㎉/時, 인간 65㎉/時라고 ㎉로 환산하여 1880년 에너지의 입력/출력비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는 인력이나 축력이 농업에 투하되는 만큼 면적당 수확량도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포돌린스키는 노동력에 따라서 ‘지구의 에너지 축적량’이 늘어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논문은 잘못되었다. 포돌린스키는 탈곡에서 소비하는 증기기관의 에너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구아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볼리비아·페루 동맹군과 칠레 사이에서 벌어진 초석 전쟁(1879~1884)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비료를 에너지로 환산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돌린스키는 그 뒤에 확립된 농업 에너지 수지와 기본적으로 같은 방법론을 이미 이용하고 있었다.


그럼 포돌린스키는 왜 농업 생산을 에너지란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포돌린스키가 열역학의 관점에서 경제 법칙을 밝히려고 최초로 시도한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1881년에 발표한 기사에서 포돌린스키는 노동가치설을 자연과 에너지, 그리고 경제의 순환과 통합하려고 했다. 노동가치설(labour theory of value)이란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만들고, 노동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열역학도 발표했다. 프랑스의 니콜라스 레오나르도 사디 카르노Nicolas Leonard Sadi Carnot(1796~1832)가 열이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할 때 일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은 1824년이었고, 이 이론을 발전시킨 폴란드 출신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시스(1822~1888)는 1850년에 열역학 제1법칙, 1865년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정식화하고, 엔트로피란 개념도 확립했다. 포돌린스키는 자신이 카르노나 클라우시스의 뒤를 좇고 있는 것을 예민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포돌린스키는 태양에너지의 흐름과 석탄 형태로 저장된 에너지를 쓰는 것의 차이에서도 언급했는데, 노동이 중요한 것은 땅속에 축적된 기존 에너지를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너지의 축적량을 늘리는 데 있다고 했다.


“탄광 노동자들의 에너지 생산성은 농민들의 그것보다는 많다. 하지만 석탄의 에너지는 일시적이다. 석탄으로 만든 일은 열에너지의 형태로 반드시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포돌린스키는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모든 천연자원의 부족을 극복해 무제한적인 물질적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주의 모델은 실패하고 있다.”


포돌린스키는 경제 성장을 발목 잡는 것은 생산 관계가 아니라, 물리학과 생태학 법칙의 한계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열역학 법칙을 조건으로 더욱 큰 체계에 묻혀 있는 하위체계인 경제를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엥겔스에게 전했다.


하지만 포돌린스키에 대한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반응은 차가웠다.


“해머, 나사 또는 바늘의 에너지 가치를 생산비로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 관계를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엥겔스는 포돌린스키의 시도를 마르크스와도 논의했는데, 마르크스도 열역학 제2법칙에는 비판적이라 침묵했다. 이리하여 가장 빨리 농업을 에너지 측면에서 분석한 사람이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는 생태학적 사회주의를 구축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전통농업의 에너지 효율


1940년대 이후 생태계의 에너지 흐름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생태학자들이었다. 이 일은 피멘텔에게도 전승되었다. 한편에서 인류학자들도 전통농업의 에너지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로이 라파포트Roy Rappaport의 연구(Pigs for the Ancestors, 1967)는 뉴기니의 에너지 생산성을 밝혔다. 그러면 피멘텔의 연구 성과를 아래에 정리하자.



부대밭(火田) 농업 체계  2ha/人  8:1


초기 부대밭 농업 체계는 20년 간격으로 농업을 행했다. 양분을 다 쓸 때까지 약 2년 정도 농사를 짓고, 그 뒤에는 묵은 땅으로 되돌린다. 20년 이상 묵히고 갈지 않으면 양분과 생산성이 회복되기에 지속가능하다. 부대밭 농업에서는 도끼나 괭이 같은 농기구를 제조하는 데에만 화석에너지가 쓰이는데, 이것들은 숯으로도 만들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는 태양에너지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밖에 필요한 투입 자재는 10.4㎏/ha의 옥수수 종자뿐이다. 약 1944㎏/ha의 옥수수 생산에 드는 노동력은 약 1144시간이고, 이는 연간에 성인이 일하는 전체 노동시간의 약 60%에 해당한다. 농민은 약 3000㎉/日의 식량을 소비하고, 식량을 요리하는 데에는 약 6000㎉/日의 땔감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체계의 입력/출력비는 8.4:1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옥수수 생산에 필요한 약 1200시간/ha의 노동력은 다른 지역의 작물, 그중에서도 곡류라도 전형적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미국의 집약적인 곡물 생산보다 면적에 비하여 더 많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약 1200시간/ha의 노동력이 곡물 생산에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한 사람을 먹이는 데에는 최저 2ha, 5인 가족이면 10ha의 농지가 드는데, 이 체계는 1ha의 농지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데에 10ha의 토지가 필요하다. 현재 세계의 인구를 약 60억으로 환산하면, 지구에는 0.25ha/人 이상의 농지밖에 없다. 부대밭 농업은 지속가능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토지의 1/8밖에 없다. 결국 농지의 부족이 이 기술의 제약으로, 현재나 미래의 농업으로 유용하게 퍼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유기 가축 농업  4ha/人  4:1


그럼 부대밭 농업에서 쓰는 1144시간의 인력을 소의 힘으로 치환해 보자. 소를 약 200시간/ha 부리면 인력은 380시간/ha까지 줄고, 인력 에너지는 20,1000㎉가 된다. 소를 약 200시간 일하게 하는 데에는 150㎏의 옥수수와 300㎏의 사료가 든다. 사료는 한계경작지 2ha의 목초에서 얻을 수 있는데, 옥수수는 1944㎏/ha의 수확량에서 차감하게 된다. 또한 소똥의 약 20%(2000㎏)는 목초지나 옥수수밭에 거름으로 주고, 5인 가족의 배설물도 옥수수밭에 거름으로 준다. 또 옥수수는 토끼풀이나 살갈퀴 등과 같은 콩과의 풋거름작물과 돌려짓기하고자 필요한 토지가 1ha 늘어나지만, 옥수수 재배에 필요한 최소한의 질소(60㎏/ha)가 공급되어 토양침식을 줄이고, 토양의 유기물도 늘어난다. 이 체계에서 옥수수 생산에 필요한 총 투입 에너지는 170만㎉/ha이기에, 1944㎏/ha의 수확에서 입력/출력비는 4.1:1이 된다. 에너지에서는 부대밭 농업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면적은 약 4ha가 된다.



혼농임업 체계  3ha/人  4:1


다음으로 유기 가축 농업에 질소고정 수목을 조합한 혼농임업 체계를 생각해 보자. 1ha의 토지 가운데 0.5ha에 옥수수, 0.5ha에 콩과의 수목 레우카에나Leucaena를 심는다. 옥수수는 상술한 유기 가축 체계보다 배의 밀도로 심는데, 같은 수확량 1944㎏/ha를 얻을 수 있다. 레우카에나와 옥수수의 경쟁은 옥수수를 심기 전에 레우카에나를 베고, 8cm의 그루터기로 되돌려 잡아 놓는다. 레우카에나는 해마다 4500㎏/ha의 부산물을 생산하고, 그 가운데 잎과 잔가지가 2500㎏/ha이고 이 안에 질소가 약 2/3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토양에 돌려주면 유기 가축 체계와 같은 양의 질소 약 60㎏/ha를 거름으로 줄 수 있다. 이 체계에 쓰이는 총 에너지는 약 170만㎉이고, 입력/출력비는 4.1:1과 같다. 다만 이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면적은 3ha가 된다. 더욱이 잎과 잔가지는 질소 이외의 양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토양 유기물이 되어 보수력을 높인다. 또 등고선 모양으로 레우카에나를 심어 잎과 잔가지로 멀칭을 하면 토양침식이 1년에 1t/ha로 억제된다. 나머지 2000㎏은 땔감으로 수확하는데, 이는 1세대의 땔감 수요의 약 80%를 해결한다.



집약형 기계화 체계  3:1


미국 이외의 선진국에서 행해지는 트렉터 동력을 쓰는 농업에서는 상술한 인력이나 축력의 체계와 비교해, 노동 투입량이 불과 10시간까지 줄어든다. 그렇지만 이 적은 투입 노동력을 보조하고자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농약이 쓰인다. 미국에서 옥수수를 생산하는 데에는 평균 약 1000만㎉/ha, 1000ℓ/ha의 석유가 필요하다. 옥수수 수확은 8000㎏/ha로 늘어나는데, 입력/출력비는 2.8:1로 떨어진다.



집약형 기계 생산을 더욱 지속가능하게 전환


그러면 옥수수를 더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 것으로, 생태적으로 더욱 건전한 기존 기술을 쓴 체계를 생각해 보자. 첫째로 콩 등의 적절한 작물을 옥수수와 돌려짓기한다. 이것으로 선충이나 옥수수의 병, 잡초 문제를 줄인다. 집약적인 옥수수 생산에서의 평균적인 해충 피해 손실은 12%인데, 돌려짓기하면 3.5%까지 준다. 농약도 필요하지 않고, 수확량은 약 8% 늘어난다. 둘째로 가축과 지피작물을 더한다. 수확한 뒤에 살갈퀴(겨울남) 등의 콩과 작물을 도입하면, 토양침식이나 잡초 문제가 줄고, 토양 양분도 유지된다. 외양간두엄의 활용이나 지피작물을 갈아엎고, 노동 투입량은 10~12시간/ha 늘어나는데, 수확량이 8000㎏/ha에서 8640㎏/ha로 늘고, 총 에너지의 양도 집약형 체계의 1000만㎉/ha보다도 꽤 줄어 370만㎉로 해결된다. 또 집약 체계에서는 약 17t/ha나 있는 토양침식을 1t/ha 이하까지 줄인다. 1t/ha 토양침식율은 대부분의 농업 조건에서는 토양의 재생율과 비슷하다. 이 개선된 체계에서는 집약형 기계 체계보다도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1) 토양침식을 억제한다.

2) 소형 트렉터를 쓰는 것으로 연료 소비를 줄인다.

3) 돌려짓기로 무농약 재배를 할 수 있다.

4) 가축의 거름으로 질소 비료 모두 해결한다.

5) 칼륨 양분의 대부분을 대체한다.

6) 지피작물로 재배하지 않는 동안의 손실을 억제한다.



저에너지 투입으로 고에너지 수확량


면적당 수확량만 보자면 전통농업은 근대농업만큼 생산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는 무엇을 비교의 기준으로 평가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노동에 따른 생산성으로 보면, 트렉터로 작업하는 대규모 농장만큼 유리하다. 하지만 트렉터나 화학비료에 쓰이는 화석연료를 생각하면, 투입 에너지에 따른 수확량은 전통농업 쪽이 뚜렷하게 높다. 피멘텔이 계산했듯이 에너지 효율에서는 전통적인 부대밭 농업보다도 낮다. 근대농업은 생산물 이상으로 대량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


서양의 농민들은 생산성을 중시해 주로 많은 수확량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농민들의 목표는 다르다. 전통적인 농민들은 생산성보다도 안정성이나 지속성을 중시했다. 작물도 어느 한 작물을 중시하기보다도, 작물 사이의 균형을 취하여 택했다. 그리고 낮은 투입 자재로 체계의 높은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지해 나아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수확량을 얻는다는, 저마다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었다. 전통농업은 서양의 분석에서 중시되는 기준만이 아니라, 체계의 안정성이나 지속성과 관련된 생산성이라는 전통적인 농민들 자신만의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전통농법을 다시 평가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적인 농민과 소농의 운동, 비아 깜페시나이다. 비아 깜페시나에는 라파엘 알제리아Rafael Alegría, 조제 보베José Bové, 조아오 페드로 스테딜Joao Pedro Stedile 등의 유명한 활동가가 있는데, 4월 17일을 ‘소농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피크 오일만이 아니라, ‘피크 인산燐酸’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비아 깜페시나는 근대농업의 EROI가 낮고, 농업이 에너지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고 있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직면한 가운데 단작으로 농업연료(agrofuels)를 생산하는 등, 잘못된 해결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것은 식량 주권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업형 농업이 기후변동의 주요한 원인이고, 세계의 식량을 수송하며, 기계화·집약화·농약 사용·단작과 공업형 농업을 하게 만드는 것으로 종의 다양성이나 농업의 탄소저장력을 파괴하고, 농업을 에너지의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하게 한다.”


그런데 이 과격한 주장은 뜻밖의 장소에서 평가받고 있다.



 

written by 요시다 타로,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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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에서 본 우리의 전통농업


 

들어가며


본론에 앞서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하 조선반도)은 어떤 책이고, 저자인 다카하시 노보루는 누구인지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먼저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사시험장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노보루가 조선 팔도를 다니며 농민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농사와 관련된 기록을 모아 놓은 자료이다. 그는 주로 당시 농민들이 농사짓던 방식부터, 무엇을 어떻게 먹고 땅값이나 농산물·농기구의 값은 얼마인지 등을 조사했다. 직접 조사한 내용인 만큼 당시 실정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들이 보관하고 있던 그의 초고를 정리하여 1991년 일본에서 출판한 것으로서, 저자가 직접 정리하지 못한 만큼 체계나 완결성은 좀 떨어진다. 또한 주로 식량 작물에 초점을 맞추어, 푸성귀 등은 다루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몇 가지 한계는 있지만 당시 농업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임은 틀림없다. 조선총독부의 주관으로 조사된 다양한 내용들이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의 저자인 다카하시 노보루는 189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1918년 동경대학 농학부 농학과를 졸업했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도 농법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19세기 후반에는 정부 차원에서 그곳의 농법을 정리해 전국에 보급할 정도였다. 그는 그 이듬해인 1919년부터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수원지장에서 일하면서 조선에 첫 발을 내딛어, 그곳에서 9년을 일하다가 1928년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서선西鮮지장의 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1944년에는 농사시험연구기관을 정비·통합하면서 다시 수원지장으로 돌아와 총무부장이 되어, 1946년 5월까지 그곳에서 나머지 업무를 처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해 7월 심근경색으로 55살에 숨을 거둔다.



조선 농업 실태 조사


그가 조선반도의 농법을 조사한 가장 큰 목적은 식량 증산에 있었다. 아마도 세계적인 경제 공황과 함께 찾아온 식량 위기가 그 동기였을 것이다. 그는 1937년 7월 6일 경상도로 출장을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하지만 이때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것을 적어 놓았을 뿐이고 이후 더 자세하게 조사하려고 길을 나서는데, 그 장소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1937년 : 7월 29일 경기도→9월 1일 이후 황해도→9월 6~7일 경상도→9월 27일~10월 5일 강원도→10월 24일~11월 1일 평안도

1938년 : 3월 16일 황해도→6월 30일~7월 16일 함경도→11월 6~10일 충청도

1939년 : 2월 26~28일 전라도→4월 30일~5월 6일 황해도→5월 20일~6월 3일 제주도→7월 2~8일 강원도→10월 12~13일 충청도→10월 13~21일 전라도

1940년 : 2월 25일 충청도→3월 4~9일 황해도→10월 26일~11월 3일 함경도→11월 13~25일 경상도

1942년 : 6월 1~5일 강원도

1943년 : 7월 3~9일 경기도


이처럼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쉴 틈 없이 다니느라, 아들의 기억에 따르면 아버지를 볼 새도 없었다고 한다.



전통농업과 현대농업


이야기에 앞서 먼저 전통농업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 결론부터 말하면, 전통농업이란 산업화 이전 자급을 위주로 하는 가족이나 마을 단위의 중소농 중심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전통의 범위를 좁혀서 우리의 옛 농사만 전통농업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유럽도 산업화 이전의 농업, 곧 전통농업에서는 삼포제와 콩을 이용한 농법 등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상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농민은 노동자로, 자급 중심의 농사는 상품 생산을 위한 농업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부터 그러한 경향을 보이다, 1970년대 산업화 이후 뚜렷하게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조선반도란 책의 내용을 보면, 조금씩 금비金肥를 쓰는 모습에서 그 분기점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농업의 특성은 현대농업의 특성을 살펴보면 저절로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 전통농업을 산업화 이전 자급을 위주로 하는 가족이나 마을 단위의 중소농 중심 농업이라고 정의했는데, 현대농업은 그와 달리 산업화 이후 상품 판매를 위주로 하는 개인 단위의 대농 중심 농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현대농업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경제학의 논리에 맞춰, 넓은 땅에서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가장 많은 수확량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는 일부 상업적 유기농업에서도 추구하는 바로서, 어떨 때는 관행농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농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석유’이다. 산업화와 과학기술이 진행되고 발전함에 따라 이제 석유는 일상생활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업화에 따라 도시로 떠난 일손을 석유가 대신하고 있다. 각종 농기계부터 비닐, 농약, 화학비료 같은 석유화학제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이들 없이는 농사짓고 살 수 없을 정도다.

또 ‘시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생활에서 시장 거래를 통해 얻는 돈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돈에 의존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현대농업에서는 한정된 땅에서 많은 수확을 얻고자 홑짓기, 석유화학제품과 지하수의 남용 등으로 땅은 물론 사람과 자연까지 병들고 있다. 물론 이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소비자들이 몇 배는 더 지나치다. 심지어 요즘 도시 사람들은 이게 콩인지 보리인지도 모르는 숙맥들뿐이다.

지금까지 현대농업을 매우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전통농업에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조선반도란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작부 체계 ― 사이짓기, 섞어짓기, 그루갈이, 돌려짓기


현대농업과 전통농업의 가장 큰 차이는 작부 체계일 것이다. 작부 체계란 한정된 땅에 몇 가지 작물을 조합하여 순서대로 재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넓게는 작물을 생산할 때 필요한 자원 관리, 자재 투입, 재배 기술 등도 이에 포함된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농업의 작부 체계가 갖는 특징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확량만 늘리고자 홑짓기와 석유화학제품을 쓴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방법이 처음에는 비약적으로 생산량을 늘려 녹색혁명이라고까지 찬양을 받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땅을 혹사시켜 메말리고, 익충까지 죽여 오히려 더 많은 병해충을 불러오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까지 불러왔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발전해 적정량만 쓰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 폐단은 고스란히 우리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자급 위주의 중소농이 중심이었던 전통농업에서는 상품성보다는 먹는 데 초점을 맞춰, 작물들의 다양한 특성을 파악해 한정된 땅에서 서로 어울리게 길렀다. 또한 석유화학제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람과 살아 있는 것들 ―소, 미생물 등― 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실제로 어떤 작부 체계를 운영하였는지 조선반도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논벼 그루갈이 보리 ― 순천, 광주, 남원, 보성, 벌교, 통영, 익산, 옥구, 나주, 남지, 영덕, 봉화-밀, 아산.

2) 삼(3월 중·하순 심어 7월 중순 수확) 그루갈이 논벼 ― 경북, 특히 안동.

3) 마늘 또는 감자 그루갈이 논벼 ― 경북.

4) 논에는 거의 논두렁콩을 심는다 ―남조선 전반.


위에서 보듯이 그루갈이를 할 수 있는 남부 지방에서는 대부분 뒷그루로 보리를 심었다. 밀은 보리보다 수확이 늦어 모내기에 영향을 주고 지금처럼 많이 먹지도 않았기에, 논에는 별로 심지 않았다. 삼베는 지금도 안동의 유명한 특산물로서, 당시에도 상품성 때문에 논벼의 앞그루로 심었을 것이다. 삼베 말고도 왕골이나 골풀 같은 작물을 논의 일부에 심어 자리나 농기구 등을 만드는 데 썼다. 마지막으로 논두렁콩을 많이 심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처럼 논에 그루갈이를 함에 따라 지금과 못자리와 모내기철이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보겠다.


못자리에 볍씨뿌리기 : 음력 3월 초(교동도), 4월 17일(수원), 4월 20일(개성), 음력 3월 중순(영흥도), 음력 3월 중순(보성), 5월 초(원주), 5월 10일(제주), 음력 3월 말~4월 말(통영), 음력 2월 초(익산-불이흥업농장)

모내기 : 6월 말~7월 말(제주), 음력 5월 8~20일까지(순천), 음력 5월 10~20일(익산), 6월 15일(옥구), 하지 중심(남원), 음력 5월 22일(보성), 음력 5월 말~6월 10일(통영), 6월 20~30일(나주), 음력 4월 29일~5월 10일(수원), 음력 5월 초~말(교동도), 음력 4월 말~6월 초(영흥도-물이 부족해서), 6월 중·하순(원주), 5월 말~6월 20일(개성), 음력 4월 중순(홍천)


이를 통해 대부분 이팝나무에 꽃이 필 때쯤 못자리를 만드는데, 북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늦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모내기는 지금보다 늦은 하지 무렵이었다. 지금처럼 모내기가 빨라진 데에는 안정적으로 수확량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다. 벼뿐만 아니라 참외와 딸기 같은 작물을 보면 요즘은 한겨울이 제철인 양 시장에 쏟아진다. 이처럼 현대농업에서는 상품성을 목표로 작물들을 제철이 아닌 때 심고 거둔다. 덕분에 제철에 맞는 농산물을 보기 힘들어졌다. 제철에 맞는 농산물을 내면 오히려 그것이 더 상품성이 높을 정도이다. 작물이 제철을 잃어버린 것과 함께 사람도 철을 모르고 산다. 한겨울에는 반팔, 한여름에는 긴팔을 입는 사람들까지 있다. 농업을 통해 이런 철부지들이 철 좀 들게 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밭의 작부 체계를 살펴보자. 예상하듯 논보다 훨씬 다양하게 이용했다.


1) 보리 그루갈이 조에 섞어짓기 콩 또는 팥 : 제주, 순천, 안동, 괴산, 수원, 양주, 금곡, 강릉.

2) 보리 그루갈이 콩→보리 사이짓기 목화→보리 그루갈이 콩 : 순천, 광주, 남원, 남지, 나주, 안동, 청주, 대전, 아산, 수원, 원주.

3) 보리 그루갈이 콩에 섞어짓기 수수 : 수원, 양주, 덕적도-메밀, 금촌, 가평, 강릉.

4) 보리 사이짓기 콩 : 의성, 안동, 대전, 개성-수수·녹두, 평창, 강릉.

5) 조 섞어짓기 팥 또는 수수 : 경북, 영덕, 개성, 철원, 신막.

6) 밀 사이짓기 콩에 수수 섞어짓기 : 연천, 원주, 평창, 김화.

7) 보리 사이짓기 조 : 안동, 가평, 강릉, 김화.

8) 콩 섞어짓기 수수 : 나주, 충북, 수원, 금곡.

9) 조나 콩 둘레에 섞어짓기 들깨, 참깨, 아주까리 : 경북, 수원, 양주.

10) 보리 그루갈이 밭벼 : 경북, 청주, 대전.

11) 감자 그루갈이 무·배추 : 남원, 대전, 나주.

12) 콩 또는 팥 섞어짓기 옥수수 : 철원, 세포, 평창.

13) 콩에 들깨 섞어짓기 : 충북, 금촌-수수.

14) 가을보리 줄뿌림에 사이짓기 콩 점뿌림 : 경북, 충북.

15) 보리 그루갈이 무·배추 : 수원, 양주.

16) 보리→조→보리→콩 : 영덕, 괴산.

17) 귀리 사이짓기 콩 : 연천, 세표.

18) 보리 그루갈이 고구마 : 제주, 대전.

19) 감자(겨울) 그루갈이 메밀(여름)→피(여름)→감자 그루갈이 메밀 : 제주.

20) 감자 그루갈이 무→조 섞어짓기 콩 : 제주.

21) 보리 그루갈이 조→풋베기콩→보리 그루갈이 조→풋베기콩 : 제주.

22) 고구마→밭벼→보리 그루갈이 고구마→밭벼 : 제주.

23) 감자 사이짓기 콩·옥수수·팥 : 평창.

24) 감자 사이짓기 콩→가을보리 그루갈이 조 : 강릉.

25) 밭벼 섞어짓기 수수 : 남원.

26) 보리→조→밀→콩 : 괴산.

27) 조 섞어짓기 콩, 수수, 녹두 : 금곡.

28) 봄보리 그루갈이 무·배추 : 홍천.

29) 보리→콩→보리→조·수수 : 울진.

30) 밀 사이짓기 조 : 홍천.

31) 콩 섞어짓기 옥수수 : 평창.

32) 감자 그루갈이 조 : 강원.

33) 가을보리(겉보리) 또는 봄보리(쌀보리)→콩→가을보리→조 : 봉화.

34) 오이 그루갈이 무·배추에 섞어짓기 파 : 수원.

35) 마늘 섞어짓기 상추 : 개성.


밭 작부 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사이짓기와 섞어짓기이다. 한마디로 사이짓기는 수확기가 다른 작물을 한 곳에서 키우는 방법이고, 섞어짓기는 특성이 다른 작물을 한 곳에서 키우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계에 의존하여 대규모로 농사짓는 현대농업에서는 실행하기 어렵다. 콩이면 콩 하나만 심어서 비행기로 관리하면 되는데, 여러 작물이 섞여 있으면 하나하나 손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은 중소농이 중심이었던 전통농업의 핵심이다.

또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는 지금과 달리 식량 생산이 주된 목적이어서 보리나 조 같은 작물이 중심이었다. 당시는 대부분이 농민이며 아직 농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반도를 보면 푸성귀 종류는 대부분 집 근처 채마밭에서 해결했다. 물론 경성 같은 큰 도시 근처에서는 많이 지었지만, 지금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서 도시에서도 채마밭 정도는 일구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농업의 활성화가 농촌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물론 수도권 과밀화와 같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이러한 전통농업의 작부 체계에서 핵심 작물은 바로 콩이다.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하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알려진 대로 콩과 작물은 땅힘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유럽의 전통농업에서도 이를 이용하고자 작부 체계에 꼭 콩을 넣었다고 한다. 다음 자료는 콩을 심었을 때의 효과를 기록한 책의 내용이다. 이는 수원 지방에서 수수와 콩·조·들깨를 심었을 때의 수확량을 비교한 결과이다.


1) 수수와 콩일 경우 : 수수 4~5말, 콩 6말 정도.

2) 수수와 조일 경우 : 수수 2~3말, 조 1말~1말 5되.

3) 수수와 들깨일 경우 : 수수 2~3말, 들깨 5~6말 정도.


이를 통해서도 콩의 효과를 알 수 있다. 지금처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대신, 작부 체계를 짤 때 사이짓기·섞어짓기·그루갈이에 콩을 이용하는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 아래의 기록은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서, 당시 세포농사시험장의 시험 재배 결과이다. 여기서도 작부 체계에 콩과 작물을 넣으면 홑짓기할 때보다는 콩과 작물의 수확량이 떨어지지만, 대신 다른 작물들의 수확량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험 넓이

150평 1구역

시험 작물

첫 번째 방식 : 감자, 콩, 옥수수

두 번째 방식 : 팥, 옥수수, 팥

거름 준 양

(300평에)

관습처럼 준 양 : 두엄 100貫, 황산암모늄 1.5貫, 과인산석회 1.5貫, 나뭇재 5貫

표시하고 준 양 : 두엄 200貫, 황산암모늄 3貫, 과인산석회 3貫, 나뭇재 10貫

비고

첫 번째 방식 : 감자 4, 콩 5, 옥수수 1의 비율로 심음

두 번째 방식 : 팥 5, 옥수수 1의 비율로 심음

수확량(300평에) 

섞어짓기(그루 수)

홑짓기(넓이)

첫 번째 방식

표시 : 감자 212.4貫, 콩 0.227섬, 옥수수 0.749섬. 조수입 계 33원 31전

관습 : 감자 160.5貫, 콩 0.284섬, 옥수수 0.663섬. 조수입 계 30원 64전

표시 : 감자 154.8貫, 콩 0.449섬, 옥수수 0.210원. 조수입 계 26원 54전

관습 : 감자 128貫, 콩 0.416섬, 옥수수 0.242섬. 조수입 계 24원 48전

두 번째 방식

표시 : 옥수수 1.113섬, 팥 0.448섬. 조수입 계 27원 41전

관습 : 옥수수 1.191섬, 팥 0.414섬. 조수입 계 29원 49전

표시 : 옥수수 0.386섬, 팥 0.564섬. 조수입 계 18원 96전

관습 : 옥수수 0.364섬, 팥 0.567섬. 조수입 계 18원 85전

 

마지막으로 감자와 옥수수를 보면, 대부분 강원도와 같은 산간 지역에서 심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땅에는 그런 작물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품성을 따라서 작물을 선택하여 인위적인 환경을 만들어 재배하기보다는, 그 땅에 어울리는 작물을 선택해 농사를 지었다. 앞에서 “제철”을 말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전통농업의 핵심이 바로 “제땅”이다.



그밖에 ― 씨앗, 거름, 쟁기질


당시 볍씨의 경우 농사시험장에서 보급한 다마금, 은방주, 영광, 애국, 적신력 같은 보급종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밭 작물은 대부분 토종을 이용했다. 이 책의 기록을 보면, 농민들에게 품종을 묻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그럴 때면 농민들은 ‘흰콩’이니 ‘왕콩’, ‘붉은팥’, ‘울산녹두’ 등이라고 대답했다. 그저 수확도 괜찮고 다른 것보다 맛이 좋다거나 하는 이유로 씨를 받아 썼다. 별다른 이름이 없는 그 품종들이 바로 토종이다.

안완식 박사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토종은 산업화 이후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한다. 이는 산업화 이후 다수확의 방향으로 방향을 설정한 결과이다. 현대농업이 추구하는 바대로 나아간 결과, 이름 없던 토종은 거의 멸종 상태이다. 이제는 다국적 종자회사가 씨앗을 독점하여 지적재산권을 행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 문제가 이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예측만 할 뿐 아무도 알 수 없다. 배고픔은 해결했으니 토종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종의 다양성을 살리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전통농업의 핵심인 제철에 제땅에서 작물을 키우기에는 토종이 더 알맞다. 유전자를 조작한 작물에는 그 회사의 농약만 쓸 수 있는 것처럼.

현대농업에서 편리하게 쓰는 화학비료는 그 편리함만큼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화학제품을 쓰지는 않지만 요즘의 상업적인 유기농업도 문제가 많다. 이런 상태로 나아가면 지속가능한 농업은 없을 것이다. 거름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조선반도의 기록을 보면, 전통농업에서 활용한 다양한 거름 재료들을 볼 수 있다. 못자리나 논에는 개자리(순천), 자운영(광주, 익산, 보성), 말린풀·토끼풀(제주), 털갈퀴덩굴(남지, 청주), 풋베기콩(제주) 같은 풋거름작물부터 풀(나주), 깻묵(옥구), 나뭇재·똥재(괴산), 해초(영흥도), 콩 삶은 것이나 갈잎(황해도) 등을 넣었다. 또 주요한 밑거름인 두엄의 재료로는 왕겨, 볏짚, 풀, 보릿짚, 소·돼지의 똥, 생선거름(덕적도), 태풍에 밀려온 해초(제주) 등 다양한 유기물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 썼다. 웃거름으로는 주로 똥오줌, 돼지 오줌, 설거지물 등을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쟁기질이 있다. 한쪽에서는 쟁기질이 흙의 떼알 구조와 보이지 않는 흙속의 다양한 생태계를 망친다고 무경운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그 입장에서 말하는 쟁기질은 현대의 트렉터 같은 기계를 이용한 로터리 같은 방식의 쟁기질이라고 본다. 물론 그런 방식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소를 이용한 쟁기질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했지만, 소쟁기질은 지금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산업화 이후 석유에 기반한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일어났다.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인간은 물론 자연도 소외되었다.

조선반도의 기록을 보면 소쟁기질한 뒤 곰방매를 이용해 덩어리를 깨거나 써레질하고, 아니면 그냥 발로 쓱 문질러 구멍을 내고 콩을 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떼알 구조가 이루어진 흙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오랫동안 유기농사를 지어 흙이 살아 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를 근거로 쟁기질의 목적이 단지 양분을 섞고 흙속에 공기와 물이 통하도록 하는 것만이 아닌, 다른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쟁기질은 사이짓기나 섞어짓기 같은 작부 체계에 맞춰 밭을 꾸미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책의 기록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오고, 동네 어르신께도 들었다. 두 거웃 갈이의 경우 목화, 고구마, 보리 줄뿌림, 제충국, 보리·밀(수원)을 심기 위한 쟁기질이고, 세 거웃 갈이는 보리 흩뿌림, 조, 밀, 콩, 팥을 심으려고, 네 거웃 갈이는 팥, 메밀, 보리 등을 심으려는 쟁기질이란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얼마 전 단양에 취재를 가니, 그곳에서는 이런 기능 말고도 비탈이 심한 밭의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이짓기를 쉽게 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다. 작물이 자라고 있는 골 사이에 새로 작물을 심을 골을 내는 건 사람이나 소입니다. 요즘 폭이 좁은 관리기도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 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또한 사이갈이를 통해 김매기는 물론 북주기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쟁기질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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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30년대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마당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한자로는 탈곡脫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개는 집의 앞마당에서 하지만, 이렇게 들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둘을 구분하여, 들에서 할 경우에는 이를 들마당질이라 했지요.

아무튼, 마당질과 관련하여 걸어다니는 영상실록이신 정용수 본부장 님은 이렇게 기억하십니다.

 

"마당질을 하려면 일단 마당질하기 전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지게로 산에서 고운 흙을 퍼다 나른다. 그걸 앞마당에 곱게 펴고, 고르고 판판하게 깐 다음 틈날 때마다 다지는 거야. 이게 보통 기술이 아니어서 실력 없는 사람은 하지도 못했지. 그렇게 꼼꼼히 준비한 다음 거기서 곡식을 떨면, 나중에 비로 쓸어도 흙이 쓸리지 않을 정도였지. ……."

 

이야기를 들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정확하지 않으니, 언제 만나면 다시 한 번 여쭈어 볼 일이다.

 

사진으로 들어가 보면, 먼저 벼를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이 벼를 떠는 방법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확연하게 다르지요.

이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발로 밟는 탈곡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주 보편적으로 쓰던 방법으로서, 태질 또는 개상질이라고 합니다.

태질이란 말 그대로 후려친다는 뜻에서 온 말이고, 개상질은 사진처럼 통나무 같은 것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 치는 걸 말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태질에는 개상 말고도 지방에 따라 돌을 쓰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절구통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상질보다는 태질이 더 범위가 넓게 쓸 수 있지요.

 

앞에서는 둘이 태질로 낟알을 떨고, 뒤에는 볏단을 나르기도 하고 교대하기도 하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습니다.

태질은 보통 중노동이 아니라 탈곡기로 떠는 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일입니다.

그 뒤에서는 기다란 장대, 바로 갈퀴를 든 사람이 개깔을 고르고 있지요. 개깔만 잘 떨어도 쌀 몇 말이 나오는지 모른다고, 마당질할 때마다 안산의 이정욱 어르신은 강조하십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티끌 모아 태산이고, 남에게 줄 줄 알아야 오래간다는 교훈을 잊는다면 삼대가 지나지 않아 쪽박을 찰 겁니다.

갈퀴질을 하는 사람 바로 옆에는 낟알을 가마니에 담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이 한 조가 되어 들마당질에 열심입니다.

 

이 많은 볏단을 보면서 얼마나 배가 불렀을까요?

그런데 달구지를 멘 수소 옆에 서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요? 뭐간디 일도 않고 멀뚱하니 서 있간?

아마 지주의 무엇쯤 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옷 차림새부터 다른 사람과 다르니 말입니다.

머리도 당시에는 신식인 빡빡머리로 깎았겠다, 옷도 좋겠다, 일도 안 하고 서 있으니 그렇게 짐작해 보았습니다. 아님 말구요.

그렇다면 이 사람들 이렇게 일해야 별로 건지는 것도 없겠습니다.

소작료는 지역마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이 시기에만 해도 거의 반씩 나눈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소작인이 부담해야 하는 각종 세금까지 생각하면, 실제로는 일해서 20~30%나 건지면 다행이지요.

그래도 어쩐답니까,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진짜 죽지 못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참말 편한 세상이 아닙니까. 세금 많이 뗀다고 투덜거려도 굶어 죽을 만큼 못 먹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에서 재밌게 볼 만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볏단을 널어 말리는 곳과 벼 그 자체입니다.

그냥 봐도 벼의 길이가 엄청 긴 것을 알 수 있지요.

토종 취재를 다니며 들은 바로는, 토종벼의 특징이 바로 큰 키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확량도 문제이지만, 화학비료를 주거나 거름을 많이 주면 쉽게 쓰러지는 단점이 있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벼는 그 토종벼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리고 볏단을 널어 말리는 곳에 즐비하게 자리한 무덤을 보십시오.

논 뒤로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덤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혹시 동네 사람들의 공동묘지였을지도 모르지요.

땀 흘리며 일하여 먹고 사는 사람과 후손에게 땅과 생명을 넘기고 죽은 사람이 공존하는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습니까!

등산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군인도 훈련을 나가서 쉴 때는 꼭 무덤을 애용합니다.

그 이유는 무덤의 대부분이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덤들도 그렇다면 남쪽을 향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 그 아래에 있는 논도 자연스레 볕이 좋은 곳에 자리했겠지요.

 

오늘도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 천천히 감상해 보았습니다. 다음 사진은 또 어떤 것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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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찍었다는 사진. 아마 서울의 어디에서 외국인이 찍은 사진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바람에 쭉정이나 껍질을 날려 알곡만 고르는 일을 한자로는 풍선風選, 우리말로는 날려고르기라고 한다.

현재 날려고르는 곡식은 옷차림이나 낟알의 생김으로 볼 때, 벼보다는 밀이나 보리가 아닐까 한다.

오른쪽의 남자가 밟고 올라선 것은 매통이다.

매통은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벼의 겉겨를 벗기는 도구이다.

왼쪽의 남자가 바가지로 키에 낟알을 퍼 담으면 그걸 후두두둑 떨어뜨린다.

바닥에는 멍석을 깔았고, 뒤로는 달구지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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