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란 무엇인가?
현재 세계의 인구는 60억, 올해 안으로 7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에는 90억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인구를 먹여 살릴 것인가? 핸드폰, 자동차 팔아서?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와 그걸 생산하는 농업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지금처럼 발전·개발의 길로 계속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부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룰 것이냐? 주류는 전자를 전제로 모든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솔직히 난 후자 -아웃사이더, 아나키즘, 마을 공동체 등- 에 더 끌린다.
아무튼 농업은 흙에 씨앗을 심어 작물을 길러 먹을거리를 거두는 구조이다. 그런데 현대 농업은 어떠한 모습인가?
독일에 하버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기체 상태의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하여, 1908년 낮은 온도에서도 높은 압력을 가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그리고 보슈라는 사람과 함께 이를 실용화하여 1913년 ‘하버-보슈법’이라는 대량생산 공정을 개발한다. 이로써 인류는 질소 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질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배경이 된다. 사실 주목적은 폭탄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이후 하버는 화학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를 반대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독가스를 만들어 살포한다. 그의 별명은 ‘독가스의 아버지’다. 이런 사람에게 노벨재단은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여한다. 노벨상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인데 질소(N), 인(P), 칼륨(K)이란 식물의 3요소가 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미량원소들을 먹고 사는 게 식물이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를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질소는 식물의 몸을 만드는 역할, 인은 탄소동화·호흡·당분과 관련된 활동, 칼륨은 증산과 광합성에 영향을 준다. 그중에 생산량과 직결되는 것이 바로 질소이다. 현재 농민들은 질소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준다. 크기를 크게, 수량을 많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질소 비료를 많이 주면 작물은 잘 큰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잘 먹어 키도 덩치도 크지만 힘이 없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영양이다.
그런데 옛날 작물들은 키가 큰 편이었다. 질소 비료가 값싸게 나와도 조금만 줬다하면 너무 자라서 쓰러져 버리기에 손실이 컸다. 그래서 육종학자들은 비료를 많이 주어도 쓰러지지 않고 수확량이 많아지는 작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선구자가 바로 노먼 볼로그이다. 그가 1944~1960년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육종한 밀 종자가 세계의 녹색혁명 바람을 일으키고, 그는 1970년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또 노벨상이다.
아래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보라색 실선이 바로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질소 비료의 양이다. 196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비료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육종법과 만나면서 나온 시너지 효과이다. 그럼 맨 앞의 인구증가 그래프를 다시 돌아보자. 우연히도 인구증가와 질소비료, 녹색혁명이 함께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덕에 이 세상에 태어난 잉여일지도 모른다.
현대 농업은 이렇듯 화학비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화학비료를 많이 주어 작물의 몸만 키울 경우, 그것을 먹고자 병해충이 많이 달라붙게 된다. 살찐 사람에게 이런저런 성인병이 잘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그걸 방제하고자 농약을 만들어서 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화학비료에 기반하는 현대 농업은 어쩔 수 없이 농약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를 갖는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감소한 농촌 인구를 빼먹을 수 없다. 화학비료와 녹색혁명이란 위대한 과학기술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럼 남아도는 일손은 어디로 가는가? 바로 도시로 몰려든다. 달동네, 도시빈민이 탄생한 배경에는 농촌 인구의 감소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인구의 80%가 농민이었던 농경 국가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로 산업화·도시화를 거쳐 현재는 300만 명 정도, 곧 6%의 농민이 농촌에서 아직도 우리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급률이다.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쌀이 남아돈다고 식량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착시현상을 벗어날 몇 가지 통계를 보자. 전체 식량 소비량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된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키는 식량자급률은 1970년 81%에서, 90년에 43%, 현재는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참고로 일본은 40% 정도이다. 그나마 쌀이 100% 넘는 자급률이기에 이 정도 수준이지 밀 0.5%, 옥수수 4.9%, 콩류 29.5%로 그 현실은 참담할 정도다. 참고로 1970년까지 콩의 자급률은 86%였다. 이제 알겠는가? 산업화·도시화→농민 인구 감소→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제 농민도 산업 인력의 하나로 돈이 되는 작물만 주로 재배하고, 자급을 위한 먹을거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농사지어 내다팔고 그 돈으로 마트에서 다른 농산물을 사다 먹는 구조랄까.
아무튼 우리나라의 자급률이 떨어진 데에는 가축 사료의 수입도 한몫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가축은 사람보다 더 많은 곡물을 먹는다. 연간 곡물 소비량이 2000만t 정도인데, 그중에 47%가 가축의 사료이고 사람이 먹는 것은 29%일 뿐이다. 육식주의는 세계 식량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불러온다는 사실. 우리는 육식도 채식도 아닌 곡식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이, 농사짓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얘기 잠시 샛길로 샜다. 농촌 인구의 감소는 일손이 줄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그 공백은 무엇이 메우는가? 바로 농기계다. 허나 우리나라의 지형으로 인해 거대한 농기계는 쓸모없는 돈덩어리일 뿐이다. 농기계는 미국처럼 드넓은 평원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잘 어울리는 도구이다. 우리와 같은 소농의 나라에서 농기계는 돈 먹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또한 1980년대 백색혁명이 일어나면서 비닐을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다. 비닐은 김을 매야 하는 일손을 덜어주는 한편, 지온을 상승시켜 작물을 크게 빨리 자라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허나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자란 작물은 고유한 힘이 없다. 그저 크기만 클 뿐이다.
이렇게 현대 농업은 화학비료, 농약, 육종 씨앗, 농기계, 비닐 등으로 대표된다. 이 모든 것(육종 씨앗은 별도로)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석유라는 자원에서 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현대 농업은 석유 농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석유와 관련하여 피크오일이란 소리가 나돌고 있다. 생산량이 최고점을 쳤다는 말인데, 이제 생산량이 서서히 감소하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맞다. 석유 값이 오른다. 석유 값이 오르면, 그에 기반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 문명의 위기가 닥친다.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를 것이다. 특히 석유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있는 현대 농업은 제대로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량가격 상승에 따라 잇달아 일어난 혁명은 이제 세계 혁명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물론 잘 사는 선진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나라는 개발도상국이고, 그 개발도상국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도 팍팍해지리라는 것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자,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기존의 가치를 준수하며 그 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생태농업이 그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쿠바라는 나라가 있다. 쿠바는 소련이 살아 있을 때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지해 대규모 단작 농업으로 생산한 사탕수수를 수출하고, 석유와 식량을 수입해서 먹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자급율은 40%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련이 붕괴된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쿠바는 심각한 경제난과 에너지난 등에 시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그런데 이런 쿠바가 선택한 길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가까운 이웃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지만, 쿠바는 생태농업을 선택해 자급율 100%에 도전하여 아직 단 1명의 아사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북한과는 그 자연조건이 다르기에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상징적이지 않은가?
생태농업이란 말 그대로 화학비료와 농약 같은 자재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생태계와 그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효과(천적, 작물의 특성과 성질, 거름) 등을 활용하는 농업을 말한다. 물론 생산량은 현대농업에 비하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태농업이야말로 에너지를 적게 쓰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며, 물질로 채우는 행복이 아닌 진정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자세로 사는 방법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그리고 생태농업은 현대농업에서 쓰는 자재를 활용하지 않는 만큼 전통농업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전통의 재발견과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에서 행하고 있는 생태농업의 방법은 이렇다.
1) 케냐의 농법
2) 과테말라의 농법 - 벨벳콩이란 덩굴이 지는 콩이 있다. 농민들이 옛날부터 밭에 심어오던 것인데, 농학자들은 그 효용도 모르고 화학비료와 하이브리드 종자를 쓰는 농법을 보급했다. 그러면서 이 벨벳콩을 함께 심으면 수확량이 감소한다고 못 심게까지 했다. 하지만 콩은 훌륭한 질소고정 식물로서 거름의 효과와 함께 열대우림인 이곳 과테말라에서는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3) 잠비아의 농법 - ‘무군가’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아카시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특이하게도 건기에 잎이 나고 우기에는 잎을 떨군다. 그래서 이곳의 농민들은 이 나무를 심고 그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써 왔다. 아카시나무가 지하수를 확보해주며, 콩과인 아카시나무가 질소를 고정하는 역할까지 한다. 거기에 떨어진 잎도 훌륭한 덮개이자 거름이자 사료가 된다. 이걸 발견한 세계 혼농임업센터의 학자가 현재 아프리카 곳곳에 이 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4) 온두라스의 농법 - 숲속에서 농사를 짓는 렌카족이 있다. 그들은 숲에 불을 내는 화전농업이 아니라 나무를 관리하며 그 사이에 농사를 지어 살고 있다. 가지치기로 얻은 부산물로 흙을 덮어 갈아엎지 않아도 좋은 흙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5) 우리나라의 농법 - 다르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중심이 된 소농의 농사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그마한 자투리도 허투루 방치하지 않는 소농의 농사, 다양한 작물의 사이짓기와 돌려짓기를 활용, 계절과 기후에 맞춘 농사, 거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 콩과 작물을 활용 등등을 살펴보면 좋다.
현대농업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생산을 이루려는 자연 수탈 농업이다. 그래서 현대 농업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지력의 고갈과 토양 침식, 병해충 만연, 휘발성 시장가격에 따른 변동, 농가부채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하여 생태농업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지금의 농민 숫자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농부가 되자! 자신의 먹을거리를 가능하면 내 손으로 지어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농부를 돕는 지름길일 수 있다. 우리는 농부와 경쟁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순간 농부는 우리를 믿고, 우리는 농부를 믿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공존·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한때 유기농이 엄청나게 뜬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게 돈이 된다는 소문에 이제는 몬산토나 카길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 대규모 유기농 단지를 조성해 유기농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유기농은 답이 아니다. 농약을 치더라도 지역의 먹을거리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을 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씨앗을 돈 주고 산다고?
현재 종자 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씨앗을 만들어 사고팔고 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육종가는 ‘농부’다. 농부가 대대손손 거쳐서 선별하고 심어온 토종 종자가 미래의 희망을 안고 있다. 지구는 점점 기후변화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이 직결되는 곳이 바로 농업이다. 이에 대응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대안은 바로 유전자조작으로 대표되는 생명공학이다. 우리는 과학자Scientist와 기술자Engineer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진리와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이고, 기술자는 자본과 결탁된 그 무엇이다.
노만 볼로그의 시대만 해도 육종이라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냈다. 허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자연은 배제한 채 씨앗에 장난을 치고 있다. 이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일부 실험에서 그 위험성이 드러나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0억으로 불어날 인류에게 은혜로운 일이 될지 끔찍한 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실.
세계 종자 시장의 규모는 79조 원이다. 이 어마어마한 사업을 몬산토, 카길, 신젠타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다. 그들의 현재 주력 사업은 유전자조작 작물이다. 현재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들의 씨앗+비료+농약+사용법 교육이란 패키지 상품이 팔리고 있다. 우리의 종자회사들도 모두 그러한 다국적 기업의 소유다. IMF 때 김대중 정권은 시장을 개방하며 우리의 종자산업을 모두 외국에 팔아넘겼다. 외제, 국산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중요한 기간산업을 민영화한 것이 바로 문제. 이제 농민들은 그들에게 꼬박꼬박 해마다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상품성 좋은 고추씨는 1000개 한 봉지에 10만 원에 육박한다.
원래 씨앗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었다. 집에서 자신들이 먹을거리를 해마다 손수 씨를 받아 심고, 그중에서 좋은 놈으로다가 다시 씨를 받고, 이듬해 다시 심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이 땅의 자연조건에 최적화되면서 육종이 되었다. 그래서 ‘농부가 최고의 육종가’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 농부는 ‘최고의 소비자’ 신세로 전락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바로 농사의 산업화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가. 물론 돈은 가장 효과적인 교환수단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돈이란 가치로 환원이 되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나 생명과 관련된 것을 돈으로 따진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당신이 생명은 얼마인가? 당신은 한 달에 얼마나 자신의 생명력을 자본에 갖다 바치고 그 대가를 얻는가? 그 대가로 얼마를 받는가? 그걸 돈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런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토종 종자가 가진 중요성은 다양성의 보존이란 측면에 있다. 다양성, 우리는 다양성이 없는 사회다. 다양하면 어지럽다며 하나로 통일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다. 하지만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개의 순종을 생각하면 쉽다. 훌륭한 혈통의 애견 한 마리를 만들고자 같은 혈통끼리 교배시켜 얼마나 많은 삐꾸들이 탄생하고 죽임을 당하는지 알면 놀라 자빠질 정도다. 순수한 혈통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열등함을 탄생시킨다. 유전적으로 다양하게 섞인 것일수록 강하고 예쁘고 어떠한 조건에서도 살아남는다. 바로 토종 종자가 그렇다. 그것이 가진 다양성(잡박함)이 생명력 가득한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토종이 다양한 지역이야말로 생물종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라는 사실이 1900년대 초반 러시아의 학자 바빌로프에 의해 밝혀졌다. 그리고 또한 토종이 다양한 지역이 문화도 다양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곧 작물다양성→생물종다양성→문화다양성→건강한 사회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양한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구조가 바로 생태계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밝힌 사실은 뉴튼의 말처럼 어린아이가 바닷가에서 발견한 몇 개의 조개껍데기일 뿐이다. 요즘 과학계의 이슈는 복잡계이다. 모든 것이 서로 복잡다단하게 얽힌 구조를 인정하자. 그 구조를 인정하고 그 구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다 제자리, 제 역할이 있는 법. 그걸 찾아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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