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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논 아트"를 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이제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인정할 만합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일본에서는 논에 그림을 그려 관광 수입과 농산물 판매를 연결한다는 사실을 알고 역시 우리보다 좀 앞서 가는구나 싶었는데, 이건 뭐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나아갔네요. 1993년부터 했다고 하니 20년 넘게 쌓인 노하우이겠네요. 이 예술작품을 보러 아오모리현에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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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생종 벼들이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린 이유가 본문에 나온다.

"한국의 시월과는 다른 이 지역의 기후는 아침 저녁이면 벌써 초겨울의 기온이다."


일본 농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조선의 벼들은 대부분 조생종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겠다. 하나, 가능한 지역에서는 대개 맥류와 이모작을 행하기에 모내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일찍 여무는 품종이 유리했다. 둘, 관개 사정이 여의치 않기에 -빗물에 의존하거나 조그만 둠벙 등으로 해결- 6월 말에서 7월 초쯤 찾아오는 장맛비가 관개용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여, 그 시기를 전후하여 모내기하는 것이 유리했다.

지금이야 물 사정 때문에 모내기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최근의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의 영향을 빼고- 모내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그만큼 재배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중만생종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논이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생종은 강원도 지역처럼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곳이나, 추석맞이 햅쌀을 출하하려는 농가를 빼고는 잘 선택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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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녹색혁명의 공로자인 미국의 육종학자 오르빌 보겔Orville Vogel. 사진은 그가 새로운 하이브리드 밀과 기존 밀을 비교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먼 볼로그와 함께 하이브리드 밀을 개발해 농업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사건은 이런 뒷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세실 살몬Cecil Salmon이란 생물학자가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16가지 품종의 밀을 수집했는데 -점령군이 점령지에 생물학자를 보내 식물 유전자원을 수집한 걸 보면, 과거부터 미국이 이런 일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가운데 농림10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농림10호는 이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매우 키가 작은, 한국의 앉은뱅이밀을 바탕으로 육종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살몬 씨는 이 수집품들을 1949년 미국 워싱턴에 있던 오르빌 보겔 씨에게 보낸다. 보겔 씨는 이 수집품들 가운데 농림10호를 활용해 기존의 밀보다 줄기가 좀 더 짧은 새로운 밀 품종을 육종하는 데 성공한다. 보겔 씨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렇게 개발한 밀에 게인즈Gaine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워싱턴 대학의 지도교수 에드워드 게인즈Edward Gaines 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자료에 의하면, 게인즈 밀은 기존 밀보다 약 25% 정도 수확량이 더 높았다. 기존 밀에 비해 키를 줄임으로써 더 많은 양분을 이삭에 집중하도록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보겔 씨는 자신의 새로운 밀 품종을 "녹색혁명"의 설계자라 불리며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씨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했다. 노먼 볼로그 씨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업적이 모두 보겔 씨 덕에 가능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밀을 교배 육종한 결과물. 차핑고53호와 농림10호.




https://en.wikipedia.org/wiki/Orville_Vo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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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가 이렇게 써 놓은 글을 보았다.


"고추가 임진왜란 후에 들어왔다는 것만 가르치고 배추는 더 나중에 들어온 걸 안 가르치니 임진왜란 이전엔 백김치를 주로 먹은 줄로 사람들이 착각하잖아."


과연 그러한가? 조선에 배추는 없었는가? 

사실 배추는 구한말 이전에 조선에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배추는 지금처럼 속이 꽉 차지 않는, 이른바 조선배추라는 형태가 다수였다. 


위의 글에서 이야기한 구한말에 들어왔다는 배추는 중국에서 들여온 호배추라 하여 속이 차는 품종의 씨앗을 수입해 온 걸 가리킨다. 그렇게 중국에서 전량 수입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육종기술이 들어오며 한국에서도 속 차는 배추를 개발하다가, 해방 이후 우장춘 박사가 귀국하며 그 기술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주로 일본에서 씨앗을 수입했단다.


그러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종자시장이 완전개방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한국 종자산업 발달사>인가 하는 책 등에 관련 내용이 잘 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배추에 관한 건 아마 대장금에서도 관된 내용이 나오지 않나? 

대장금이 얼토당토 않은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니라 나름 고증을 통해 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내용에 대한 더 자세한 건 여기를 참조하시길...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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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생긴 뒤, 일본인 농학자들이 이러저러한 실험을 한 기록을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화학비료가 없던 그 시절, 그래서 질소거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자운영 같은 풋거름(녹비)작물을 조선에 도입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의 토양에서는 자운영 등의 콩과식물에 공생균이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봤더니, 한국에는 그런 종류의 공생균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른 일본인 농학자들이 아예 일본에서 공생균이 살고 있는 토양까지 가져와서 함께 심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조선의 토양에는 유기물 함량이 너무 부족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작물의 부산물까지 몽땅 땔감으로 쓰고 그 재나 똥오줌과 섞어서 거름으로 쓰다보니 정작 토양에는 유기물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는 기록이 나왔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서 과거의 농업에 환상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또 들고 그랬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올 수도 없고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사실은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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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평예(坪刈; 농작물의 작황을 검사할 때 평균적으로 된 곳의 한 평 내지 몇 평을 베어 전체의 소출을 셈하는 방법) 시험



코우사카 기사부로(向坂幾三郞)



조선에서는 경지면적을 말할 때 몇 마지기 또는 며칠갈이로 계량하는데, 그 한 마지기 또는 하루갈이로 부르는 것도 가는 곳마다 서로 다르다. 혹은 두 마지기로 하여 이전에 1단보에 해당하는 면적임에도 세 마지기나 네 마지기로 부르던 것이라서 처음으로 이런 계량 단위를 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한 마지기에 몇 말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몇 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이를 토대로 전체를 추론할 수 없다. 특히 도량형 제도 역시 통일적이지 않은 오늘날, 몇 섬 몇 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가는 곳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통계가 유래한 근거를 알지 못한 채 조사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으므로 농민은 해마다 자기의 경지는 물론 생산되는 수확물의 수확량마저 자세히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정확한 수확량은 스스로 자기들이 조사하지 않는 한 도저히 이를 분명히 할 수 없어서 농업경영자들이 늘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점으로, 경영방침과 개량법을 쉽사리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이제 일본과 조선 양국 공통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조선 농업에 뜻을 둔 사람이 날로 많아지는 때를 즈음하여, 경지의 생산력을 알아야 할 필요가 더욱 간절하다고 믿는다. 이 모범장은 지난 1906년, 우선 전라북도 군산과 경기도 수원의 두 지역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농사짓는 곳을 선정해 정밀한 평예를 함으로써 두 나라의 벼 품종별 수확량을 조사하여 다음의 성적을 얻었기에 보고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음의 성적에 의하여 두 지역 논의 수확량을 개략적으로 알게 되었고, 일본 품종이 상당한 차이로 조선 품종보다 우수하여 단보당 수확량이 400kg 이상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이로 보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의 재래종 대신 일본 품종으로 대체하는 것만이 조선의 쌀 생산량을 뚜렷하게 증가시킬 수 있음은 추호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무튼 품종을 장려하고 보급하기 위해서는 아주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므로 단순히 다음의 성적에만 의존하여 결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 모범장에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연구조사를 반복, 빨리 좋은 품종을 찾아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권업모범장 1907년 사업보고서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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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일본의 사토야마 이니셔티브. http://satoyama-initiative.org/casestudies/


산업연구원에서 발간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ODA 동향과 시사점>을 보면, 선진국들이 돈도 많이 쓰고 활동도 활발히 한다. 역시 제국주의의 경험이 중요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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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여행을 가면 료칸에 가는 재미에 빠져 지금까지 아소와 유후인, 아리마 등지에 다녀왔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서도 료칸 여행으로 노보리베츠에 가기로 결정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하코다테가 좋긴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싸서 그나마 싼 편인 노보리베츠로 선정한 것인데 여기도 다른 곳에 비해 비싸긴 비싸다.

그래도 료칸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어쩌랴, 다녀오는 수밖에.


우리가 간 곳은 아래의 료칸이다. 이곳을 선정한 이유는 가족여행이다 보니 온천이 방에 딸려 있는 곳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하루 비용은 한화로 70여 만원이 나왔다.




잘 꾸며 놓은 방에 기분이 좋았다. 





노보리베츠의 온천수는 유황 냄새가 강했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계란 노른자 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코를 살살간지르는 걸 알 수 있었다.

온천수 역시 유황 성분이 많은 물. 그래서인지 다녀본 곳들 가운데 물은 단연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주변 여건은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가서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살거리도 많지 않다. 

그런 걸 모두 충족하려면 역시 유후인이 최고였다. 유후인은 료칸의 가격도 여기에 비해 20만원은 싼 편이었다.

노보리베츠는 뭐랄까... 쇠락해가는 수안보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다음에도 홋카이도에 올 일이 있다면 이곳의 료칸은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방은 널찍하여 막 뛰어다니며 놀아도 되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 상태. 눈에 보이는 곳은 괜찮았지만 공기청정가습기에 먼지가 잔뜩이고, 게다가 담배냄새에 쩔어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청소를 감행했을 정도이니 이건 뭐.



홋카이도 한정 삿포로 맥주가 유명하다고 하여 기대를 하고 갔으나 솔직히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오히려 이 노보리베츠 맥주가 훨씬 좋았다. 삿포로 클라식을 먹느니 그냥 산토리가 더 좋았다는 나의 평.

동네 상점 가운데 지역의 술과 맥주 들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거길 들어가지 않은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나만 홀로 갔더라면 거기에서 이것저것 마셨을 텐데... 아쉽다.




마지막으로 방에서 받아 먹는 가이세키 료리에 대해... 비싼 료칸 요금에 비해 장식은 화려하고 멋졌으나 먹을 것은 부실했다. 이것도 가격이 더 저렴했던 유후인이나 다른 지역의 료칸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홋카이도의 물가가 비싸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일까? 내가 여기서 밥을 먹고 허전하여 컵라면을 하나 더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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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같은 인형 제조사 같으니라고.

유후인에서 토토로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어, 린짱이 고양이를 좋아해 거금을 주고 하나 샀다.

 

잘 가지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서 세탁기에 빨았는데, 눈동자라고 붙여 놓은 것들이 다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네임펜으로 눈을 그려 넣었다.

 

디자인부터 잘못된 것인지, 제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엉터리 같은 제품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일본 제품도 엉망진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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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1인당 연간 먹을거리 소비량을 비교한 자료를 보았다.

쌀; 67.4kg : 56.7kg
밀; 48kg : 41.4kg
설탕; 28.1kg : 16.7kg
소고기; 10kg : 6.9kg
돼지고기; 23.8kg : 14.8kg
가금류; 14.9kg : 13.3kg
유제품; 27kg : 32kg
해산물; 58.1kg : 53.7kg
(출처: 과학동아 11월호)

이거 완전히 한국인이 대식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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