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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역설적이다.

아파야지만 아프지 않아야지 생각하고,

슬퍼야지만 슬프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힘들어야지만 힘들지 말자고 생각한다.

 

삶은 참 역설적이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일을 겪어야지만

또 다른 삶을 준비한다.

그도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일 뿐...

 

삶은 역설적이다.

내 앞에 놓인 삶은 누구도 모른다.

방아쇠를 당기는지, 아이를 받는지,

술을 마시든지, 화를 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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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가는 제비
김석기 기자
이제 밤이면 서늘한 찬바람이 피부에 스치고, 풀벌레들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을 보니 완연한 가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올 해는 다른 해와 달리 절기를 따지면서 살았는데 절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왔음을 느끼니, 한 해가 다 간 것 같아서 괜시리 밤이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삼복 더위만 지나면 한 해가 다 지난 것 같다는 말이 수긍이 가는 요즘입니다.

그렇다 보니 새삼 봄날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서도 어렸을 적 봄만 되면 찾아오던 손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옛날 국민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저는 곤지암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지역에서는 봄이면 소로 논밭을 갈았고, 가을이면 고추랑 벼를 말리는 것이 큰일이었고, 눈 오던 겨울이면 꿩이며 토끼를 잡으러 산으로 들로 다녔습니다.

그곳에 살던 그 시절, 봄만 되면 특별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찾아오는 통에 만나던 손님이 있었습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바로 그들입니다. 봄이면 찾아와서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똥을 싸고, 시끄럽게 지저귀던 제비들 ... 요즘 같은 가을이면 왠지 그 제비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제비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80년대 중․후반에는 서울에서도 제비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 만난 제비는 예전에 시골에서 만나던 그 제비들이 아닐까 하여 너무 반갑고 기뻤습니다. 환경이 변했지만 제비는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서울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이 제비들이 서울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어찌나 날쌔게 날아다니는지 무서워서 조심조심 하면서 다녔는데, 참 대단한 것이 제비들과 한 번도 부딪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제비들 하고 부딪칠까 무섭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할머니는 걱정말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 같아서는 후라이팬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다녀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피하려고 움찔움찔 거리다 보면 어느새 핑 하고 위로 슉 오르고, 엄마야 하면서 움츠리면 옆으로 쌩쌩 비켜가고, 정말이지 내가 날아다닌다면 제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그런 제비들이 언제부터인가 천대를 받게 되었지요. 시골에서 살 때는 제비가 찾아오면 정말 반갑게 맞았습니다. 제비가 비우고 간 집은 일부러 놔두고 제비집 밑에는 똥받침도 해주고 혹시 뱀 같은 천적이 덤벼들까 지켜주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비가 시끄럽고, 똥 싸서 지저분하다고 제비가 집을 지으면 허물어 버리고 쫓아내고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 너무 달라져서 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제비와 헤어진 것이 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런 제비를 이번 여름에 동해안으로 놀러갔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함께 간 집사람을 길거리에 세워두고 제비를 쫓아다니느라 몇 십분 동안 그 동네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집사람이 자기가 제비보다 못하냐고 하면서 화가 나서 풀어주느라 혼났지요. 그래도 제비가 너무 반가운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짜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비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네들이 오면 먼저 집을 정성껏 짓습니다. 어디서 물어오는지 마른 풀이며 진흙을 물어다가 튼튼하게 집을 짓고, 그러고 나서는 암수가 몰래 짝을 지어 알을 낳지요. 그리고 알이 깨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먹이를 잡아다가 새끼들을 배불리 먹입니다. 그 때 새끼들이 서로 먼저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지지배배 거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황구라고 했습니다. 그맘때 제비 새끼는 부리가 유독 큰데 노란 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이들이 먹을 것 달라고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어린 아이들을 보고 황구라고 했지요. 이 말만 봐도 제비가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흥부전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에 나오고 있지요. 그렇게 새끼를 키우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끼들이 하나 둘 자기 힘으로 하늘을 날게 됩니다. 그때는 아무래도 먼저 태어난 놈들이 용감하게 먼저 날아오르지요. 그래도 어수룩한지라 비행에 실패해서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놈들이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놈들은 개가 먼저 물어가기 전에 얼른 집어서 다시 둥지로 넣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새끼 제비는 겁을 먹어서 쉽게 날아오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는 형제들이며 부모가 모두 응원을 해 주어 결국은 비행에 성공하게 되지요. 그렇게 날개에 힘이 붙으면 제비들이 떠날 때가 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요즘이지요.

제비가 떠날 때가 되어서 그런지 가을이 되자 저절로 제비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에는 새 하면 비둘기나 까치만 떠올리게 됩니다. 그만큼 생물종의 다양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더군다나 도시가 형성되면서 거기에서 적응할 수 있는 동물들만 볼 수 있게 되는 현실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그래도 밭에 가면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까치, 비둘기는 물론이고 꾀꼬리, 뻐꾸기, 할미새 ... 이름을 잘 모르는 새들까지 ...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솔개 같은 맹금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수가 워낙 적어서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부터 지리산에 반달곰을 풀어놓는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식 또한 함께 들려서 참 안타깝습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겠지만 호랑이가 산의 주인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어릴 적 읽었던 시튼 동물기의 늑대왕 로보 보다 마지막 호랑이 이야기였던 대왕이라는 무늬가 새겨져 있던 일본놈들을 잡아먹었다는 대왕호랑이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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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지저분한 공터엔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님만 바라보던 그 해바라기는
오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몇 일째 내리는 비에
밤이면 가득했던 복권방의 손님들도
발길이 뜸해졌다.

오늘도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던
옥탑방 김씨의 눈에는
줄지어 늘어선 노란 물탱크들의 행렬이
마침내 하늘로 올랐다.

그날 가리봉 해바라기는
십자가 떠 있는 하늘을 외면한 채
고개를 떨구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무엇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 의문에 대한 답은 자명합니다. 도시의 외형이 빛나는 만큼 개개인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이면 차를 타고 서부간선도로를 지나게 됩니다. 그 길에서 지금은 구로디지탈단지라고 이름이 바뀐 구로공단을 보게 됩니다. 회색빛의 케케한 공장들이 사라진 자리에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겠지요.

 

이런 일은 비단 구로공단이나 가리봉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길을 가다 흔하게 마주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안산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지금은 그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사람들은 어두운 면을 보기 싫어하여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그런 일들은 조그맣게 다루어 집니다.

다른 지표는 제쳐두더라도 출생률 저하에 자살률 1위, 이것이 현재 우리의 주소입니다. 국민소득 2만불을 외치고 있는 나라에서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것이 발전이라면 그 딴 발전은 집어치워도 좋습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폭주기관차는 멈춰야 합니다. 폭주기관차가 어디로 가는지 뻔히 알지만 쉽게 내릴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관차를 멈추거나 내리기 힘들다면 조금 천천히 인간다운 속도로 달릴 수는 없을까요. 사람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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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도돌이표를 찍어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

나는 다시 그 시간을 살 수 없다.

 

과거를 지금 여기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기억에 아로새긴 옛 감정을 내 피부에 새기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미 저만치 흘러갔기에.

 

흐르는 강물을 고스란히 되돌릴 수 있다면,

시간에 도돌이표를 찍어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살지 않으리.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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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교 위에서 찍은 극락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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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불이 일어서면 개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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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은 신도시가 아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아오던 곳이었다.

그러던 곳을 새로 개발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신도시인 양 생각한다.

공장 많은 곳, 범죄율 높은 곳, 뜨내기 많은 곳... 이런 평가가 현재 안산의 모습이다.

 

그러나 안산은 그 역사가 무지 오래된 곳이다.

물론 시화방조제를 만들면서 안산의 역사는 새로 시작되긴 했다.

옛 마을을 쓸어 버리고 새로운 집을 만들고, 개막은땅에는 공장들이 들어서고, 이제 아파트며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넘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이가 있으니, 바로 이 느티나무이다.

한대역에서 중앙역 사이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나이만 무려 400살이 되었다.

이건 이제 하나의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지 않은가?

들어서는 길조차 없어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덕분인지 어마어마하게 가지를 뻗은 것이 나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

사람들의 왕래와 손길이 많이 닿는 나무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할까?

뭐든 사람이 많이 끼면 문제가 된다.

 

 

얼마나 더 물러나야 온전한 모습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가면 굴러떨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찍었다.

나무 둘레는 어른 4~5명이 둘러안아야 할 정도로 굵다. 

 

 

1982년에 370살이라고 추정했으니,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400살...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나이다.

 

 

옆에 꼽사리처럼 자라는 나무는 밤나무다. 어디서 씨가 굴러왔나보다.

보통은 자기 새끼를 치는데, 이 느티나무는 맘씨 좋게도 밤나무를 불러왔다.

 

 

원래 이곳은 바닷물이 들락거리던 곳이다.

지금은 시화방조제 덕에 너른 땅이 생겨, 예전에는 농토로 썼지만 지금은 모두 돈이 되는 건물들뿐이다. 

새만금 공사가 끝나면 아마 그곳도 이렇게 되리라.

그래도 좀 다른 것이 그곳은 수도권이 아니라 이 정도까지는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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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었던 닐 마샬로프가 찍은 1968년도 봄의 농촌 풍경. 써레질하는 모습 뒤로 사람들은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다.그건 그렇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농사지을 수 있는 농사땅(경작지耕作地)에 거름을 냈으면 쟁기질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모두 소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일을 했지요. “이랴” “워~워” “마라” “왼나” 하는 소 부리는 소리가 새삼 떠오릅니다. 어릴 때 소와 함께 논을 갈던 어른을 바라보던 때를 기억하면 가슴이 퍼렇고 푸릅니다. 살짝 물 고인 논에 맑은 파란 하늘이 비치고, 소와 사람의 호흡이 장단을 맞추는 사이에 끼어드는 추임새. 소는 그 소리를 알아듣는 것인지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신기하게도 사람 말을 기막히게 잘 알아듣습니다.



주한미군이었던 닐 마샬로프가 찍은 1968년도 봄의 농촌 풍경. 써레질하는 모습 뒤로 사람들은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다.



소 얘기하니까 또 소 키우고 싶어서 맘이 근질근질합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선물이나 파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거 하는 대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소나 한 마리 사 달라고 합니다. 쓸데없이 뭐 사는 데 돈 쓰지 않아도 되고, 귀찮게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 참 좋습니다. 무수한 날 가운데 기념일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소중할 뿐입니다.
아무튼 소로 하루갈이(일경日耕)할 수 있는 넓이(면적面積)가 보통 1200~1500평이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 일이면 사람도 진을 빼지 않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경운기 같은 기계가 나오면서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물론 처음 그런 것을 만든 목적은 편리함이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계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하니 사람들은 지치고, 그럴수록 진이 빠졌습니다. 힘든 것과 진이 빠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한도를 다 써서 다시 채워야 하는 상태를 힘들다고 한다면, 그걸 뛰어넘어 생명력을 갉아 먹은 상태가 진이 빠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건 제가 내린 정의니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아무튼 기계의 빛과 그림자처럼 모든 것에는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은 경운기도 한물갔고 트렉터로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논이나 밭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트렉터 하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많이 하는 로터리rotary를 어떤 말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트렉터에 달려 있는 쇠날이 빙빙 돌아간다고 해서 로터리라고 했을 텐데 이제 밭을 갈면서 부수는 일을 그대로 로터리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이 말부터 따져보려고 합니다. 소로 하는 일과 비교하면 써레질에 맞먹지 않을까요? 물론 정확하게 맞먹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써레질은 논에만 한 것이 아니라 밭에도 했습니다. 써레질의 목적은 흙부수기(쇄토碎土)와 흙고르기(平土), 수평잡기입니다. 이러한 써레질은 무지하게 중요한 일이라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논 같은 경우는 더 심했다고 합니다. 논에 비탈(경사傾斜)이 있으면 물이 한쪽으로 쏠리고, 그러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밭 같은 경우는 그나마 별 상관이 없기에 아이들도 써레질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 같은 경우 팔에 힘이 어른보다 모자라서 써레 위에 올라타거나 써레에 돌을 얹었다고 합니다.



로터리를 단 트렉터.



그렇게 중요했던 소가 이제는 혼자 쓰던 조용한 외양간(우사牛舍)에서 몰려나 좁아터진 곳에서 떼거지로 갇혀 지냅니다. 언젠가는 맛있는 고기가 되어서 밥상에 오를 날만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풀밭에 고삐가 매인 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모습은 사진이나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값싼 소고기들이 밀려오면 발붙일 곳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10년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더 하겠지요. 그래도 뜻있는 사람들이 지키기는 할 것입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 세계의 도시인구가 처음으로 농촌인구를 앞질렀다고 합니다. 지구는 점점 땅을 잃어 갑니다. 잃어버리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을 겁니다. 겉에 콘크리트며 아스팔트를 둘렀으니 얼마나 갑갑할까요. 숨 막혀 죽게 만들 참인지.
인간적인 기술이라고 하면 그것도 인간 중심적인 냄새가 나니 그렇고, 아무튼 자연에 알맞은 수준의 기술을 갖추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소비하고 소모하려고만 합니다. 세상에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사는 시공간도 무한히 열린 곳이 아닌데, 똑똑한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입니다. 옛날에 경제학 수업에 들어갔다가 혀를 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무한한 자원과 열린 시공간이었습니다. 이건 경제학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를 특징짓는 과학기술도 기본 바탕이 그럴 겁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기계 인간이 되려고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철이 같은 모습입니다. 철이는 결국 안드로메다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겠지요.



어린 시절 눈을 떼지 못하고 본 만화. 뒷날 생각하니 엄청난 만화였다.



논과 관련한 말에 대해 더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안산입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시화 갯둑(방조제防潮堤)이 있지요. 그 덕분에 땅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모릅니다. 갯둑을 막아 개펄(간석지干潟地)을 없애기 전에는 저 앞까지 걸어 나가면 바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차로 30분 이상 달려가야 바다가 나옵니다. 그렇게 만든 넓은 땅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시화 공단이 서 있지요. 집까지는 시화 공단의 냄새가 넘어오지 않지만, 가끔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날아오곤 합니다. 그리 유쾌한 냄새는 아니지요. 지금 새만금에도 갯둑을 막아 세계 최대의 개막은 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개펄로 있을 때도 얼마든지 조개며 해산물을 따다가 아들딸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는데, 왜 굳이 돈 들여서 공사해서 그 수입원을 없애는지. 또 왜 농사땅으로 만든다는 명목을 들고, 진짜 그렇게 쓰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땅에서 짓는 농사만큼 바다에서 짓는 농사도 엄청 중요한데, 소유욕에 사로잡혀서 그런지 그런 사실은 알고도 모른 척합니다.

잠깐 이야기가 샜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옛날에 논은 물사정나쁜논(수리불안전답水利不安全畓)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며 비만 기다리는 천둥지기, 하늘바라기논(天水畓)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웅덩이, 둠벙(보洑)을 파 놓은 곳에서는 그 물을 쓸 수 있어 물사정좋은논(수리안전답水利安全畓)에 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논은 물받이논(저수답貯水畓)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거나 샘이 솟는 곳이 아니면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논은 마른논(건답乾畓)이 되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일단 마른논에 볍씨를 뿌려서 키우다가 장마 때 비가 많이 오면 물을 가두는 마른논붙임(건답직파乾畓直播)이란 농사법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죄 우물(관정管井)을 파서 무자위(양수기揚水機)로 땅속물(지하수地下水)을 퍼 올리니 물 걱정 없지요.



수생생물의 천국, 둠벙. 겨울에는 여기에서 개구리 엄청 퍼 담았다.


논 가운데 산기슭에 있어 산의 찬물이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논이 있습니다. 그런 논은 찬물받이논(냉수유입담冷水流入畓)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물꼬나 도랑을 이용하여 한두 바퀴 물을 돌려 덥힌 다음 제논(본답本畓)에 들어오게 했답니다. 그리고 물이 샘솟는 샘논(냉수용출답冷水湧出畓)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샘솟는 찬물 때문에 똑같은 논에서 자라도 그 자리의 벼만 덜 자란다고 합니다. 논은 참 물 관리가 중요합니다. 못자리(묘대苗垈)를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나서도 낮과 밤의 물높이를 다르게 해줍니다. 낮에는 물높이(수위水位)를 낮춰서 햇볕을 더 많이 받게 하고, 밤에는 높여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합니다. 모내기(이앙移秧)를 하고 나서도 벼가 자라는 상황을 보며 그때그때 물을 댔다가 다시 뺐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창 새끼치기(분얼分蘖)를 할 때는 적당하게 물을 대고, 더 이상 새끼치기를 못하게 할 때는 부러 물을 많이 담거나 싹 뗀다고 합니다.



물을 뗀 논의 모습. 이 붉은 벼는 붉은찰벼라는 토종 벼이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논에는 속도랑물빼기(암거배수暗渠排水)를 한다고 합니다. 처음 암거배수라는 말을 접하고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암거배수, 물을 빼기는 뺀다는 얘기인데 어두운 도랑? 도대체 뭘까? 암거배수란 다름 아니라 관을 땅속에 묻어서 물을 뺀다는 얘기였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참 어려운 말들이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겠지만, 처음 듣는 사람한테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입에 익은 말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국민학교가 금방 초등학교로 바뀌는 것을 보니 그 일이 어렵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벼는 아무래도 햇빛을 많이 받는 곳이 좋습니다. 가을의 쨍쨍한 햇살이 알곡을 여물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늘이 지는 논도 있습니다. 그런 논은 응달논(음지답陰地畓)이라고 합니다. 요즘 보리가 건강식으로 뜨면서 논에 두그루짓기로 보리를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포에 취재를 가니 그곳도 그랬습니다. 보리는 보통 벼를 베고 나서 심습니다. 그리고 보리를 거둔 다음에는 바로 모내기에 들어가지요. 그렇게 보리를 심는 논은 보리논(맥답麥畓)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할 수 있는 곳이면 당연히 보리나 밀을 심었는데, 경제성에 밀려 한동안 사라졌다가 경제성 때문에 다시 보이기 시작해 참 반갑습니다. 논에서 볼 수 있는 건 보리만이 아닙니다. 바로 논두렁콩(휴반대두畦畔大豆)도 볼 수 있지요. 논두렁콩이라는 특별한 품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두렁에 심으면 어떤 콩이든 논두렁콩이라고 했습니다. 메주콩을 심어도 논두렁콩이고, 콩나물콩을 심어도 논두렁콩인 것이지요. 콩에는 물기(수분水分)가 참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논두렁에 콩을 심으면 콩은 물기를 해결할 수 있어 좋고, 벼는 양분을 얻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논두렁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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