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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

 

 

눈물일랑 거두오

서러운 마음은 사랑으로 품으오

침통한 얼굴일랑 관두오

그대신 미소를 보내주오

 

그냥 빈손으로 찾으오

지고 가야 무거울 짐이오

모든 건 내가 주겠오

그대신 자리에 앉아주오

 

서로 술잔을 나누오

그게 싫으면 이야기를 나누오

나 돌아가는 날

한바탕 잔치를 열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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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농사 짓던 나라에서는 왕을 바랐다.

그때는 강력한 사람이 온 나라를 쥐고 흔드는 것이 곧 편한 삶이었다.

괜히 장사꾼이 끼어들면 괜히 사람들이 농사는 안 짓고 딴 데 정신이 팔렸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농사꾼보다는 장사꾼이 더 나은 시대다.

그만큼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대통령도 다르다.

 

옛날에는 그래도 농사 짓던 풍습이 남아서 그것과 가까운 사람이 통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왠만하면 봉건적인 사람, 봉건 전제적인 사람을 원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이끌고, 우리를 이끌어야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나한테, 특히 우리한테 밉보이면 그대로 끝이다.

옛날처럼 그 사람을 건드리리 수도 없고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그 시절이 아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참 슬퍼한다.

 

지금 이회창 밑에 모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하지만 시대는 그런 사람들을 쳐다 보지도 않는다.

혹시 멀리 내다보려고 생각했다면 이회창 아저씨 밑에 있는 사람들은 포기해야지.

바보들... 시대를 보지 못한 꼴통 보수들...

 

지금 한나라당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뭐랄까... 복잡하다.

이건 뭐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재밌게 볼 수밖에 다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꼴통 보수는 아니다.

되려 이회창 �문에 도움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 모호한 성격... 최고다.

정치는 모호함이다.

뚜렷하게 드러내면 그 순간 생명을 잃는다.

웃기지. 사람 사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좀비처럼 구나보다.

 

참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지.

이제는 상업 국가다.

상업 국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흐흐... 그렇게 사는 것이지.

그래서 이제 명분이나 명예, 도리, 도덕은 필요없다.

사는 데 쓸모 없는 모든 것은 부질 없을 뿐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추구하고, 우리가 뿅 가는 것은...

그저 누가 더 내 욕구를 만족시켜주는가 하는 날카로운 아니 뭐랄까 거시기다.

제길...

술 마시자.

그럴수록 더 마시고 마셔,

사회가 나아가는 곳과 비례하여 술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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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꽁꽁 얼었던 시내가,

간질간질 꿈틀꿈틀 뒹구는 소리.

사랑이 다가오는 소리도 꼭 그렇다.

봄볕에 얼음 녹듯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내 맘이 녹는다.

 

아~! 봄은 사랑의 계절이런가.

새들의 지저귐도,

꽃망울의 부끄럼도,

여린 싹들의 몸부림도,

모두들 사랑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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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최옥금, 김재성, 양재동, 권수정, 최성숙 6인이
동서울 터미널을 출발하여 수안보에서 시골농부님과 만나 지프로 석장골에 도착하였습니다.
지도 보고 길 찾기했다간 분명 저 깊은 산골에서 길을 잃고 엉엉 울었을 겁니다.
인적도 없고 가는 길이 꼬불꼬불 산 속입니다. 게다가 갈래길도 있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것이 집인가, 싶더군요.
그래도 석기 군은 제 사는 집이라고 방문 열고 향 피우고 주인 왔노라 신고식을 치릅니다.
금세 어두워진 골짜기에서 초를 켜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낯설은 살림을 뒤져 고기 구울 준비를 합니다.
이럴 때의 삼겹살은 먹을 것으로서보다 여러 사람이 무언가 주섬주섬 일을
하게 만든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저희 일행에게 새로운 얼굴은 시골농부님 한 분뿐인데
수안보 터미널에서 수인사하실 때부터 친근한 인상이시더니
풍성한 농사 이력으로 이야기를 세 보따리쯤 풀어 놓으셨습니다.
물론 양해동 님께서 구수하게 추임새를 곁들이셨음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시겠지요.

별 보며 술 먹다 방이 뜨끈하니 들어가서 마시기로 했지요.
안주도 삼겹살에서 오징어로 술도 막걸리에서 매실주로 바뀌었습니다.
(매실 효소에 소주를 탄 칵테일, 맛 좋습니다!)
어두컴컴한, 초배지 바른 방이 참 아늑합니다.
방 아랫목은 절절 끓고 술꾼들의 목청도 높아집니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침, 방으로 난 작은 창문으로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고
어제 낯설어 제대로 보지 못한 석장골 호텔 화장실도 가보고,
산골이라 늦게 솟는 해님에게 평소에 잊었던 고마움도 새삼 느끼며
시골농부 님 차에 짐을 맡기고 수안보로 걸어나옵니다.
시골농부 님은 다음 행선지로 차를 모시고, 나머지 일행은 온천으로 향합니다.
모처럼 온 온천이니 온탕 냉탕 맥반석탕 골고루 들어가보고 노곤해진 몸으로 차에 오릅니다.
문용성 님, 연락 끝에 접속 실패, 일행은 중국집에서 다시 배불리 먹고 헤어졌습니다.
(모두 신발끈 매느라 정신없는(?) 틈에 양해동 님께서 계산하셨습니다. 감사!!)

***
출발 전에 동서울터미널로 나와 주신 석민, 정희 님 넘 감사하구요.
(고구마 꿀칡차 넘 맛있게 먹었어요! )
시골농부 님께서 궤짝으로 가져오신 배는 한 이삼일은 먹을 것 같네요.
덕분에 석장골 잘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흠, 시월의 마지막 밤은 정작 이제부터네요. 이용의 쓸쓸한 밤은 묻어 두고
석장골의 휘영청한 달밤을 떠올리렵니다.
모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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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은 날

 

 

서른이 넘기 전엔 몰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앞만 보고 달리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질주하고 때로는 폭주하며

팽팽히 당긴 시위에 매긴 살처럼

돌아볼 것도 쉴 곳도 없이 내쏘았다.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심한 몸앓이 끝에 일어난 날.

불현듯 죽음이 고만큼 더 가까워졌음을 보았다.

늘어나는 흰머리에도 별 느낌 없더니

몸살 한 번에 인생을 반이나 살았다고 깨달았다.

어느새 나에겐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과

왈칵 쏟아지는 눈물은 사라졌다.

대신 어느덧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맞춰 발걸음은 느려졌고, 어깨는 좀 무거워졌다.


우린 모두 세상에 던져진 존재.

언제 죽음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지금도 함께 하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옳은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순간과 찰나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할 뿐,

그러나 아무도 최선을 다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대의 숨결을 느끼며 서로 발걸음 맞춰 그곳으로 걸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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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농사짓자 - 땅을 알아야 농사짓지 3  (0) 20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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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연예인이 작년 한 대선후보의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라는 말을 유행시켰습니다. 그런데 행복과 살림살이는 어떤 관계일까요.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진정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행복해질거라 믿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살림살이는 나아졌습니다. 기술의 혜택으로 물질적인 풍요는 엄청난 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은 또 그 자식인 우리들은 과연 행복합니까?


  지금도 우리는 '못 살겠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도 모자를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저만치 떨어져 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렇게 되었지만 행복하기는커녕 비극적인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로가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고 죽이는 역사였습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나의 경쟁상대였고 내가 극복하고 이겨야만 되는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이렇게 나와 남을 가로고 구분 짓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지금 우리는 나와 남을 가르고 구분 짓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무수히 많은 타인과 함께 있기에 지금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장해보면 세상 만물이 있기에 지금 이곳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없다면 지금 이곳에 내가 있을 수 있을까요? 물이 없다면 공기가 없다면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물과 공기를 만들어내는 나무와 풀 같은 자연이 없다면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요?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세상 만물이 있기에 거기에 의지해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돈, 명예, 출세, 사랑보다도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무엇일까요? 목숨,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 명예, 출세, 사랑도 다 나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숨 쉬는 행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먹는 것에 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내 안 어딘가에 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의미의 생명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생명이란 가치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명이란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 만물에 의지해서만 있을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렇다면 나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이 곧 나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의지하는 것들 중에서 하나만 빠지더라도 나의 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코와 입을 막고 10분만 있으면 나의 생명은 죽습니다. 만약 생명이라는 가치가 내 몸 안 어느 곳에 절대적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숨을 쉬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요?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다른 모든 것들에 의지하였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나와 남을 가르고 나와 자연을 가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살았기에 우리는 이기적인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과는 180도 다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의 세상은 전쟁, 환경파괴, 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 등의 문제로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이 곧 내 생명이라는 세계관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생활은 곧 다른 것들을 죽이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생명을 위한다면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삶의 뿌리부터 바꾸는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는 동반자살로 가는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대에서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한 길은 귀농 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낸 저에게 농사일은 쉬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농사를 얼마나 잘 짓느냐라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명을 아끼고 보살피듯이 또 다른 내 생명인 이웃과 자연을 아끼고 보살핀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면 안 됩니다. 서울은 지금 파괴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사람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농부가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시골의 자연이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서울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생명을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 마당에 서울이라는 도시는 점차 다른 지역을 파괴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 이외의 지역은 사람조차 살지 않는 폐허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서울을 떠나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 살더라도 나의 생명이 다른 것에 의지해 있다는 사실만 분명히 자각한다면 다른 지역의 사람과 또한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들어가 내가 사는 마을을, 지역을 살리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내 생명처럼 다른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자 농사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은 파괴의 도시고 악이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모두 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내 생명이기에 모두가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이외의 모두가 나와는 아무 상관없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하겠습니다. 또 한번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것은 허황된 꿈이나 이상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국 곳곳에는 이런 생각으로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씨앗들이 뿌려져 있습니다. 저는 직접 그 희망을 보고 왔습니다. 그 길에 희망은 꼭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 때'인 것처럼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한 길은 제가 사는 모습과 다른 많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서로 서로가 의지해 있기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고의 전환 없이 더불어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나누며 사는 고마움, 그 길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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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울음소리, 음메~.

소를 아는가?

인류의 동반자.

인간이 농사를 지으면서 도움을 요청해 함께 살았던 짐승.

그만큼 인간과 가까워 여러 문명에서 함께 했던 짐승.

그 짐승이 이제는 돈이다.

고깃덩어리로 팔리는 신세.

고깃덩어리를 키우고자 사료를 먹이고,

사람이 보기에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그 결과 남는 것은 고깃덩이로 바꾸는 돈.

 

솔직히 소는 이제 고깃덩어리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누가 소의 숨소리, 몸짓, 눈망울을 기억하는가?

이제 고깃집에 가서 돈을 주고 시킨 소고기나 먹거나,

아니면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구경하고 사거나,

어떤 사료를 먹여야 마블링이 지느냐.

아무튼 이러한 생각으로 소를 바라볼 것이다.

 

선언하자. 이제 소는 먹을거리다!

그것도 값비싼 고급 먹을거리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처음 소가 나오는 기록은 이렇다.

삼국사기 지증 마립간 3년(502)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소로 밭을 갈게 한 기록이 보인다.

 

아무튼 소로 밭을 갈면서 엄청나게 생산력이 높아졌다.

농사를 짓겠다고 몸을 놀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누가 소의 힘을 당할 수 있는가?

경운기나 트렉터 같은 기계뿐, 절대로 사람은 소의 힘을 당할 수 없다.

당한다면 사람 몇 명이 모여야 가능하다.

그거 참 우습고, 비참하고, 경이롭다.

 

하지만 이제 소는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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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농부는 가을갈이(추경秋耕)를 잘해 놓는다고 합니다. 가을에 땅을 뒤집어 놓으면 병균이나 벌레가 겨울 추위에 죽고, 거름은 잘 곰삭고, 흙도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좋아진다고 합니다. 확실히 겨울에는 불알이 얼 정도로 추워야 흙이 부서집니다.
2년 전인가, 안산 밭에는 아무개 마트를 지으면서 땅을 판 흙을 가져다 덮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흙을 가져오더니, 어느 틈에 슬그머니 시커멓고 딱딱한 개흙을 같은 것을 갖다 부은 것입니다. 첫해에 그 밭을 일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완전 일군땅(개간지開墾地)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첫해에 그렇게 노력을 들이고 나니,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차츰 땅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하고 시커멓던 흙이 푸석푸석 부서지기도 하고,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에 참 놀랐습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참말입니다.
요즘은 가을갈이하는 곳을 자주 보기 힘듭니다. 마을에서도 부지런한 분이나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그냥 봄갈이(춘경春耕) 정도로 그치지요.

한쪽에서는 쟁기질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갈지 않는(무경운無耕耘) 농법을 주장하는 분들이지요. 쟁기질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어느 방법이 더 좋고 나쁜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상황에 맞게 하면 되지,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듣기로는, 그 농법의 뿌리는 일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일본을 다녀오니 거기는 흙이 시커멓더군요. 함께 간 선생님께 여쭈니 화산재(화산회토火山灰土)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일본의 흙은 유기물 함량도 엄청 높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흙은 다들 알다시피 화강암이 부서진 흙이라 산성도도 높고, 무지 메마른 흙(척박토瘠薄土)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이 쟁기질을 한 까닭이, 이러한 흙의 차이에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일본의 흙처럼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면 굳이 쟁기질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건 상황과 조건에 맞춰야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엇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자세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갈지 않는 농법이 좋은지 아닌지는 저마다 알아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고, 여건에 맞는 것이 따로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자면, 쟁기질의 효과 가운데 하나는 겉흙(표토表土)과 속흙(심토深土)을 뒤집어엎는 데 있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겉흙은 속으로 보내 쉬게 하고, 밑에 팔팔한 놈을 끄집어내는 효과가 아닐까요?

쟁기질은 그것 말고도 숨은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가에 따라 쟁기질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도 쟁기질을 해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보리를 심을 때는 두 거웃 갈이를 하고, 고구마를 심을 때는 한 거웃 갈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작물에 따라 그 특성에 맞는 쟁기질 방법이 있었던 것이지요. 높고 좁은 두둑이 필요한지, 아니면 넓은 두둑이 필요한지에 따라서 쟁기질하는 법이 달랐습니다.
두 거웃 갈이는 한 번 갈면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그 옆을 갈아 오면서 한 두둑을 만든다는 소리입니다. 이 말은 경기도 사투리입니다. 생식기 주변에 난 털을 뜻하는 거웃과는 다른 뜻입니다. 이를 뜻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거웃을 예로 들면, 충청도나 강원도 같은 산골짝에서는 망이라고 하더군요.
쟁기질은 보통 네 거웃 갈이까지 했다고 합니다. 네 거웃 갈이를 하면 한 1.2m 이상 되는 넓은 두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추나 고구마는 좁고 높은 두둑(고휴高畦)을 짓지만, 보통 작물은 그냥 펀펀한 두둑(평휴平畦)을 짓습니다. 작은 규모의 농사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하지요.

쟁기질할 때 쟁기를 잡는 사람은 쟁기꾼이라고 했습니다. 상여꾼, 장사꾼 하듯이 그 분야에 전문이라는 뜻으로 꾼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일 잘하는 쟁기꾼은 서로 모셔 가려고 했다는 말로 봐서, 그때에는 엄청난 기술자였을 겁니다.
쟁기질을 끝내면 뒤를 따라가면서 쇠스랑이나 곰배로 흙덩이를 부수는 일을 했습니다. 트렉터로 로터리 치면 아주 고운 흙이 나오지만, 쟁기로 하는 만큼 큰 흙덩이는 따로 부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에 바로 써레질에 들어가지요. 써레질은 앞에 잠깐 설명했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써레질하는 것을 동사로 ‘써린다’ 또는 ‘쓰린다’ 등으로 불렀습니다. 밭이야 어느 정도 수평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논 써레질에서 그러면 큰일이지요.

마지막으로 흙의 종류를 구분하고 끝내겠습니다.
흙의 굵기에 따라 말하면, 먼저 자갈흙(역토礫土)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갈흙이죠. 다음은 모래흙(사토砂土)입니다. 모래흙은 땅콩 같이 물이 잘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 잘 사는 곳입니다. 만지면 부스스 부서지는 흙이라 갈기도 좋고, 삽질도 편합니다. 하지만 물이 너무 잘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료를 주면 그 효과가 빠르지만, 물이 잘 빠져서 가뭄(한발旱魃)에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흙이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면 철, 망간, 규산 등이 모자라기 쉬워서, 질퍽한 딴흙(객토客土)을 넣어야 합니다.
또 모래참흙(사양토砂壤土)이 있습니다. 입자가 세밀한 찰흙(점토粘土), 중간인 실트, 거친 모래가 거의 같은 양이 섞여 있는 흙에 비해서 모래가 조금 많은 흙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농사짓기 괜찮은 흙입니다.
흙 가운데 가장 좋은 흙은 뭐니 뭐니 해도 참흙(양토壤土)입니다. 모든 농사에 가장 좋은 상태의 흙이지요. 고운 흙 가운데 질흙이 25~40% 정도인 흙입니다. 참나무, 참깨처럼 참으로 좋은 참흙입니다. 또 다른 참흙으로 질참흙(식양토埴壤土)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아셨겠지만, 찰흙이 많게는 절반 정도 포함된 흙입니다. 참흙보다는 좀 거시기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죠. 양분, 특히 물기를 잘 잡고 있어서 벼나 콩, 과수에 좋습니다.
다음 질흙(식토植土)이 있습니다. 절반 이상이 질흙인 흙입니다. 그만큼 끈덕끈덕하겠지요. 물기도 많고 거름도 잘 잡고 있지만, 공기나 물이 잘 통하지 않아 농사짓기 어렵습니다. 모래흙을 섞어 주는 것이 좋고, 석회나 두엄 같은 유기물을 섞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가을갈이를 거칠게 해서 잘 말리는 것도 좋습니다. 흙이 안 좋다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하나하나 내 힘으로 땀흘려 가꾸면 참흙으로 만드는 것도 금세입니다.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사람이죠. 그만큼 사람이 참 무섭습니다.
다음 찰흙(점토粘土)입니다. 국민학교 때 뻔질 나게 사 가던 흙이 바로 이 찰흙입니다. 이 흙은 큰 돌이 부서지면서 생긴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심한 찰질흙(중식토重植土)이 있고, 가장 질퍽한 질찰흙(중점토重點土)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으면 아주 찐덕해지는 흙입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쟁기질하기도 힘들고, 마르면 딱딱하게 굳어서 쩍쩍 갈라집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지으려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흙을 말했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너무 모자랍니다. 모자란 글이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편은 추수秋收, 곧 가을걷이와 관련된 말을 골라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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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환 어르신과 함께 한 장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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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리 마을 어귀에 자리한 선돌. 앞에 치마를 두른 것이 암바위, 뒤에 선 것이 숫바위이다. 

크기는 숫바위 280×260×60cm, 암바위 160×150×30cm.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기서 제사지냈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암바위보다 숫바위가 더 커서 모계에서 부계로 넘어갈 무렵일 것이라고 추정한단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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