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코가 야스마사古賀康正
시작하며
이 책의 주제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쌀농사 발전과 기술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를 논할 때, 먼저 이해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본과 세계 각지의 쌀농사 농민이 놓여 있는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이다.
많은 일본인은 쌀농사에서 일본의 농민이 세계에서 유일, 다른 나라의 농민이 전혀 하지 않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로부터 초래되는 이점(과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수확한 나락을 농민 자신이 현미로까지 마무리해서 판매한다. 쌀은 현미 형태로 사회 전반에 유통·저장된다. 이를 현미 유통이라 한다. 일본인 대부분은 현미 유통이 만국 공통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매우 특수한 일본 독자의 관행으로 일본의 역사와 문화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에 비해 일본을 제외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농민은 벼를 베어 거두어 탈곡·건조해 나락으로 만든 뒤 그걸 그대로 업자에게 팔아 넘긴다. 즉, 수확한 쌀은 나락 그대로 농민의 손을 떠나 유통된다. 이것이 나락 유통이다.
이러한 일본과 여러 외국의 농민이 행하는 작업 범위의 차이, 곧 '도정 작업을 농민이 할지, 아니면 업자가 할지'라는 차이가 사실은 중대한 기로가 된다. 현미는 겉으로 보아 그 품질을 판정할 수 있지만, 나락은 겉껍질에 싸여 있기에 그 품질을 알 수 없다. 거기에 여러 외국의 여세 쌀농사 농민이 출하한 나락을 싸게 후려쳐 사들이는 근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똑같은 나락 채로 팔더라도 미국 등 같은 몇 천 헥타르라는 대규모 농가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판매하는 농민과 구매하는 업자의 쌍방이 입회하여 나락의 품질을 정확히 검사하고, 그에 기반해 거래하고 있다.
영세 규모의 쌀농사가 농민에게 불리한 것은 아시아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러면 왜 이러한 나라들에서 쌀 생산이 계속되고 있을까?
그건 '영세 쌀농사 농민이 쌀을 농사짓는 건 그걸 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서는 나락을 도정해서 쌀(현미나 백미)로 만들어야 하는데, 손으로 도정하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정한 쌀을 싸라기 투성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쌀농사 농촌 지역에서 나타난 것이 저렴한 가공비로 기계로 정미를 해주는 소규모 '농촌 정미소'였다.
'농촌 정미소'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 역할과 의의가 얼마나 큰지, 그 의미가 전해지면 이 책의 역할은 거의 끝나게 된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건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곧, '농업 생산의 확대에는 진보된 기술의 도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하는 '상식'을 머리에 짊어지고 농민이 처한 입장, 이해, 의욕에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이 책을 손에 쥔 분은 꼭, 그와 같은 '상식'은 일단 옆으로 밀어두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농민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풍요롭고 출실한 생활을 보내려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그 영위의 결과로서 어느 새로운 행동 양식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걸 사람들은 나중에 '기술'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곳에서는 도구나 기계 등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들 자체가 기술을 형성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나락을 햇볕에 쬐어 건조할 때 나락을 지면에 얇게 펴느냐, 아니면 두터운 층을 만들어 펴느냐에 쓰는 도구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건조한 나락을 정미해 얻는 백미 안의 싸라기 비율에는 천지차이가 난다. 얇게 편 나락에서는 싸라기 투성이의 백미밖에 얻을 수 없는 데 반해, 두텁게 편 나락에서 얻은 백미에는 싸라지 비율이 매우 적다.
백미의 만듦새에 농민이 이해관계가 생기면 두터운 층으로 펴서 뒤섞으면서 천천히 건조시키고, 만약 관계 없다면 나락을 빨리 건조해서 팔아 치우기 위해 얇은 층으로 펴서 직사광선으로 쨍쨍하게 급속히 건조한다. 즉, 농민이 "적절한 나락 건조의 기술"을 획득하는지 아닌지는 그들이 어떠한 입장에 놓여 있는지에 따른다. "나락은 두터운 층으로 펴서 건조시켜 주세요" 등이라 아무리 권장해 봐야 그것이 농민에게 아무 이이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곧, 어느 기술이 사회에서 성립하는지 아닌지는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에 따르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의 영세한 쌀농사 농민의 기술 발전사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저마다 생활의 충실과 풍요를 추구해 온 노력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역사 개관이기도 하다. 물론, 필자의 한정된 견문과 지식의 협소함이란 제약이 있지만, 일본과 여러 외국의 영세 쌀농사 농민의 모색과 노력을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목차
1장 일본에서만 행해지는 쌀농사 방법
세계에서 유일한 현미 유통 -쌀의 증산과 품질 개선의 요인
일본에서는 탈곡하기 어려운 쌀 품종이 선택되어 왔다
------일본과 외국의 콤바인
일본에서만 행해지는 농민의 나락 도정 작업
------쌀겨의 이용
일본이라서 생긴 '현미 유통'
농가용 나락 도정 용구의 발전
------일본 독자의 볏짚 이용
작물 재배 과정과 수확 후 과정의 차이
쌀농사의 기계화는 쌀의 품질 향상을 위해 시작되었다
기계화 진전의 의미
현미 유통이 안고 있는 문제
쌀의 수확 후 과정과 그를 위한 기계
나락을 건조하다
나락에서 쭉정이 등을 제거하다
나락을 현미로 만들다
현미로 남은 나락을 분리하다
현미를 백미로 만들다
백미를 깨끗이 하다
엥겔베르크식 기계
2장 농민이 쌀농사에 열심이지 않다면 그럴 까닭이 있다
쌀이 벌이가 되는 작물이라면 생산은 금방 늘어난다
나락의 '최저 매입 가격'은 무의미
나락 그대로 품질은 알 수 없다
'나락 매입'에서는 쌀의 품질은 저하된다
대규모 쌀농사라면 나락으로도 품질 상응의 가격
소규모 쌀농사에서도 '품질 상응의 가격'은 실현할 수 없을까?
여러 외국에서는 '현미 유통'은 할 수 없다
'외국에도 현미 유통이 있다'는 성급한 판단의 실수
3장 영세 농민에게는 '농촌 정미소'가 구세주이다
쌀을 먹는 민족의 쌀농사 지역에는 농촌 전미소가 반드시 나타난다
'맛있는 쌀을 먹고 싶다'가 농촌 정미소의 연원
------ '쌀을 먹는 민족'이란
농촌 정미소는 금방 시작할 수 있다
상업 정미소와 농촌 정미소의 차이
농촌 정미소의 가공비는 싸지고, 기술은 금세 향상된다
일본에는 '농촌 정미소'가 없다
백미로 만들면 정당한 가격으로 팔 수 있다
농촌 정미소 사이의 경쟁이 필요
나락으로 팔면 손실인 근본적 이유 -'카스케加助 소동'의 예
백미로 만들어 팔면 쌀농사 의욕도 기술도 높아진다
쌀의 생산이나 유통은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담당하고 있다
쌀의 '얼굴'을 읽어 기술 개선이 진행된다
현미 유통과 마찬가지로, '품질 = 가격'이다
농민의 기술 개선의 한 예
4장 농촌 정미소의 파급 효과
농촌 정미소는 그걸 쓰지 않는 농민에게도 도움이 된다
유통 백미의 품질도 향상된다
------ 태국 쌀이 고품질을 유지하는 이유
농촌 정미소의 증가에 의한 지역 주민의 복리 개선
------ 찐쌀
농촌 정미소를 부정하는 의견
농촌 정미소의 기술 수준에 대한 오해
농촌 정미소는 상업 정미소의 기술 향상을 촉진한다
5장 아시아, 아프리카의 쌀 증산과 농촌 정미소
농촌 정미소의 출현에 따른 인도네시아의 기적적인 쌀 증산
쌀농사로 농민이 얻는 이익은 매우 낮았다
'정미소 설립 자유화'라는 충격
기술 수준의 저하? -학자의 이상한 해석
기적적인 쌀 증산의 실현
------벼 수확법의 변화 이삭 따기에서 밑둥 베기로
버마의 쌀 유통 국영화란 비극
나락의 강제 공출제도
매입된 나락의 행방
쌀 수출의 괴멸
국내 유통 쌀의 품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쌀 증산의 전망
쌀의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쌀을 수입함에 따른 위험성
쌀의 생산 부족과 그 품질 열악의 이유
'벼농사 저택'이 세워진 탄자니아
농촌 정미소의 발전을 제약하는 그럴싸한 조치
케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아프리카에 필요한 것은 무얼까?
맺음말을 대신해
'기술'이란 물질이 아니다.
사회관계를 무시한 '기술적 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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