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을 대신해
'기술'이란 물질이 아니다
사회관계를 무시한 '기술적 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
2차대전 패전 이후 많은 일본인은 이제부터는 세계 사람들의 평화적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 그 살아가는 길이라 말하고, 해외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협력해 왔다. 선진국으로부터 도상국으로는 여러 가지 경제적 원조가 행해졌지만, 이윽고 "배고픈 자에게 주어야 할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낚시 도구와 낚시 기술이다"라고 주창하며 "technology transfer"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널리 강조되었다.
이것을 일본에서는 '기술 이전'이라고 번역되었다. 기술이란 '전하고' '배우는' 것이지, 건물이나 물품처럼 한 지점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되'거나, 또는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의 문명 개화의 시대에 높은 월급을 지불하고 '고용 외국인'을 초빙해 서구의 기술을 흡수하려고 했다. 그것이 잘된 경우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천 공사나 치수 기술의 습득 등은 꽤 잘된 듯하지만, '서양의 앞선 농기구 초청' 등은 완전한 실패였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의 분기점은 '상황을 조사해 거기에 필요한 방식을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유럽의 앞선 기술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당사자의 태도 차이에 있었다.
2차대전 이후 기술 전달의 장면에서도, 도상국에서 필요로 하는 건 기술 일반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라고 사람들은 깨달았다. 그래서 국제 사회에서는 '기술 이전'이라는 간판 옆에 '적정 기술'이라든가 '중간 기술' 등이라고 덧붙였고, 이번에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기술'이 열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앞선 기술>을 도상국에 가르친다'는 것을 오로지 창도하고 있던 일본 정부의 담당 관청과 '현지에서는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우선 생각하려는 협력 현장과의 어긋남을 확대시켰다. 현지에 있는 협력 전문가가 기술 강의를 하기 전에 그곳의 정황을 알아내려고 하면 도쿄로부터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반면 무작정 강의나 텍스트 만들기 등을 하다 보니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대로부터 수십 년, 지금은 국제 협력 활동에 대한 공헌으로 '기술 이전을 얼마나 추진했는가' 등이란 추궁을 당하는 건 사라진 것 같지만, 그 대신에 다른 구호나 고정관념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 한 예가 '개도국에는 방대한 <수확 후 손실>이 존재해, 이를 기술 도입으로 일소하면 식량 문제도 농촌의 빈곤도 단번에 해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제창된 망상이었지만, 국제기구 등에 의해서 '녹색 혁명'의 제2단계'로 인기를 얻어, 마침내는 '수확 후 손실의 삭감 목표'가 1976년의 유엔 총회에 설정되는 만담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이 유행하는 관념을 상장한 어느 원조 관료 등은 "개도국에서는 나락의 65%만 백미가 되지만, 일본에서는 72%가 백미가 된다. 그러니까 일본의 기술을 보급하는 것만으로 세계의 백미 생산량은 10% 늘어난다" 등이라 언급했다(이 책의 독자에게는 일본과 외국은 쌀의 종류도 작업법도 달라 이런 주장이 황당무계하다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이 이후 일본을 포함한 각국 원조 기관의 식량·농업 관련 각종 계획에는 '수확 후 손실 삭감' 항목이 필수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를 위한 각종 기자재·설비 등도 개도국에 공여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원래 현실의 오인에 의한 가공의 관념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국제 협력의 영위 일반을 떨어뜨릴 수 있는 '실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개도국의 방대한 수확 후 손실'이 있다고 해도 왜 그것을 간단히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예를 들면 선진국에도 방대한 식량의 낭비, '손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기술적 개선에 의하여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등이란 누구나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사람들의 생활·산업·문화 등의 총체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도상국의 경우에는 똑같은 문제를 '기술적 개선에 의해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이 이론의 제창자는 "개도국의 경우에는, 농민이 그 수확 후 처리 기술을 개선하면 되니까 문제는 단순하다"라고 하는 것 같다. 이래서는 마치 농민만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것과 같다.
농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돈을 많이 벌려고 일한다. 만일 현재의 작업으로 곡물의 결실 등 손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허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논자들처럼 '곡물 손실 감소' 때문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한 예로는 '농민의 기술 개선의 한 사례'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농민은 무식하고 기술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전문가들 또한 농민의 입장을 너무 알려고 하지 않으며 기술적 개선 등을 제안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최상단으로 휘두른 방대한 수확 후 손실 절감론(PHLR로 약칭됨)은 원조업계의 회의나 결의나 문서 등에 자주 나타나 관공서나 학자의 예산이나 연구비나 직책 등을 부풀리기는 했지만 농촌의 현장에서는 거의 상대하지 않았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선진국에서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문제가 도상국의 경우에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단순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원조국 쪽의 무의식적인 생각이,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의 국제 협력 조직 안에도 편재해 있는 것 같다. 서두에 든 '기술 이전' '적정 기술' 등의 말이 자주 사용된 배경에도 같은 경향이 있다. '기술'이라는 것은 어느 장소에 사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이상적 상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데, 이러한 말을 제창한 사람들은 '기술' 그 자체를 실체화해 마치 물건인지 무엇인지 같이, 거기에 가져다 두면 내일부터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아프리카에서 쌀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전문가는 '쌀 생산 기술이 낮기 때문'이라 하며,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해결법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기술 원조'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쌀농사 농민의 입장은 어떠한가? 그 기술을 담당하는 사람은 농민인데, 그들의 입장이나 이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매우 적다. 농민에게 쌀 생산의 이익이 크다면 농민의 쌀을 생산하는 기술도 금세 추진될 텐데 말이다.
기술은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의 일종이지, 인간을 떠나 그 밖의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농민의 생활과 행동, 그 문화에 무관심하면서 쌀농사 기술 개선 등을 주창하는 것은 마치 공기에 옷을 입히려는 것과 같다. 기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행복 실현에 있다.
201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가신 나카무라 테츠中村哲 씨는 현지 상황을 속속들이 알게 된 끝에 100개의 진료소보다 하나의 관개수로라고 깨닫고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문 분야 밖인 우물 파기와 수로 건설에 몰두했다. 그것이 주민의 지지를 얻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머지않아 물이 풍부해지면, 의사가 등장할 차례도 온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만약 쌀농사의 기계화 등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선 농민들이 쌀농사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하면, 머지않아 기계화등의 차례도 온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매달려 상황을 잘못 봐서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마치며
많은 독자 분에게 아마 생소할 것 같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작은 정미소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지역의 영세한 농민에게는 '농촌 정미소를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점이야말로 쌀농사의 의욕이 솟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며, 또 그들이 농사짓는 쌀의 품질도 좌우한다는 점은 납득하셨을까요?
지금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쌀 소비가 갑자기 증가하고 있는데, 그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며 대량의 수입 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역 주민에게 얼마나 경제적 불리함과 식량 안보라는 측면에서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국가들은 쌀 증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노력의 성패에도 농촌 정미소의 존재가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의문이나 모르는 점 등이 있으시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에 모두 대답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는 범위에서 기꺼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또, 천학비재와 견문·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이 책의 기술에 잘못된 점 등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참고할 만한 사실이나 감상 등도 들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의 출판에 농문협 프로덕션의 타구치 히토시田口均 씨에게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다구치 씨의 열성적인 지도가 없었다면 이 책은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친구 야마구치 코지山口浩司 씨로부터는 사진과 귀중한 조언을 받았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1년 2월
코가 야스마사古賀康正
약력
1931년생. 도쿄대학 농학부 졸. 농학 박사.
해외 기술 협력 사업단(OTCA) 연수 관리원, (주)사타케佐竹 제작소(현 주식회사 사타케) 해외 부장,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 위원회(ESCAP) 전문가, 해외 화물 검사(주) 컨설턴트부 고문, 인도네시아·보고르 농과 대학 객원 교수, (주) 민생 기술 연구소 소장, 이와테 대학 농학부 교수, 국제 협력 기구(JICA) 연수 지도자 등을 역임, 해외 각종 프로젝트의 조사·계획·감독에 종사한다. 전국 소수력 이용 추진 협의회 설립·이사(현 고문). 현재, JICA 시간 강사, 그외 컨설턴트.
저서
<쌀 -그 상품화와 유통> (공저, 地球社)
<농촌 사회 발전과 기술> (アジア経済研究所)
<농산물 수확 후 처리 과정과 그 기술을 둘러싼 여러 문제> (주)国際農林業協力協会
<놀면 죽는다> (徳間書店)
<일본에서의 농촌 사회와 농기구의 관계> (공저, JICA),
<Rural transport vehicles in Indonesia> (Bogol Agricultural University)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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