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효고현 및 각각의 시는 아래의 지도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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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면에 놀라며 그 기원으로 꼽는 것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그런데 조선 말고도 과거 아일랜드 사람들 역시 엄청난 대식가였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845년 아일랜드 성인은 하루 평균 감자 50~80개를 먹었다."
상상이 되는가? 하루에 감자 80개라니... 그냥 평균적으로 하루에 감자 60개를 먹는다고 치면, 한 끼에 20개 정도이다. 이 정도 양이면, 모르긴 몰라도 고봉밥과 맞먹거나 그보다 많을 걸?
작은 알의 감자 20개는 이 정도의 양이다. 이걸 한끼에 다 먹는다고 상상해 보라.
참고로, 지금은 소식으로 유명한 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과거엔 대식가였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라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보자. 딱 봐도 엄청난 밥그릇 크기이다.
다음 대정 7년, 그러니까 다이쇼大正 7년이니 1918년 무렵 쌀 소동 이후 개설된 공설 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던 식사의 내용을 기록한 자료를 보자. 얼마나 많은 양의 밥을 원했는지 엿볼 수 있다.
위의 내용을 보면, 한끼에 무려 1홉5작의 쌀로 밥을 지어 제공했단다. 1홉이면 180ml이고, 쌀로 환산하면 무게가 160g 정도이다. 요즘 흔히 쓰는 전기밥솥의 1컵 분량이다. 거기에 5작이 추가되니까, 한끼에 240g의 쌀을 먹은 셈이다. 요즘 전기밥솥 계량컵으로 지은 1인분 반의 밥을 한 사람이 한끼에 먹었다!
아래 일본의 식생활 변화 도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곡식의 소비량이 대폭 감소하게 된다. 대신 다른 종류의 먹을거리들을 많이 섭취하면서 영양의 균형도 이루고 대식의 문화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건강과 긴 수명도 부가적으로 얻게 되었겠지.
마지막으로, SBS에서 조선인의 대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 놓아 소개한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19515).
탄수화물에만 치중한 식단이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먹어도 금방 배가 꺼져 허기가 지고, 또 먹을거리 사정이 좋지 않아 먹을 수 있을 때 폭식을 하는 식문화에 대식을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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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벽은 놀라운 취미이다.
아무것도 아닌 물건을 하나의 유물로 만든다.
이건 쌀포대에 찍는 스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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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추쌈 출판사에서 이야기하다 떠오른 생각.
<한국농기구고>에서 김광언 선생이 호미에 대해 저술한 게 1980년대 중반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113
그 이후 한국의 호미는 어떻게 되었는지 관련 논문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아마 관심사에서 잊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이 아니라 서구에서 호미가 만능 정원 도구로 이름이 자자하게 퍼졌다.
그렇다면 현재 전국 각지에 잔존하여 명맥을 유지하는 대장간의 호미는 몇 가지이며 어떤 특징이 있을까? 왜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까?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또, 다이소나 철물점 같은 데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호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이거 학위논문 주제감이다. 이런 걸로 논문이나 쓰고 학위나 받을 걸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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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커지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 이것도 양극화라 정의할 수 있다.
프랑스의 농촌 지역도 그러하여, 점점 빵집이 사라지고 있단다. 농촌에서 사라지는 게 어디 빵집 뿐이겠는가? 아이가 줄면서 학교도 폐교되고, 사람이 떠난 빈 집은 무너져 버리고, 버스와 택시도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신선한 빵"으로 대표되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는 권리도 도시만의 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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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의 입경인들은 울창한 수림을 한 그루도 남김없이 베어냈다. 나무가 울창한 수림을 베어내고 불을 붙여 화전을 일구듯이 마라도의 땅을 갈아엎었다. 이때 마라도의 뱀들은 서로 몸을 의지하여 제주도로 헤엄쳐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동서로 돌담을 놓아 섬을 구획했다. 마라도 북쪽에는 목장, 그리고 남쪽에는 인가와 밭을 배치했다. 마라도의 목장 지대를 켓밭이라고 했다.
입경인들은 왜 한 그루의 나무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베어냈을까. 나중에 불어닥칠 땔감 마련의 고통을 예견하면서도 말이다. 바로 방목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제주대 국문과는 1974년 8월에 가파도를 답사해 보고서를 남겼다. 그 속에는 '나무 없는 마라도'라는 전설이 들어 있다. 전설의 전승자는 가파도의 조재문 씨였다. 그 내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마라도는 지금 나무가 별로 없다. 그러니 땔감으로는 소의 똥을 말려두었다가 불을 때고 있다. 소의 똥을 땔감으로 사용할 때는 쇠똥을 그대로 주워다가 말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만두를 만들 듯이 뭉쳤다가 편편히 눌러 보기 좋게 손질한 다음 말렸다.
이렇게 나무가 없는 마라도에서는 땔감이 큰 문제지만 개경 당시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무성했다. 그런데 이 섬에는 뱀이 많아서 사람이 정착하기에 매우 곤란했다. 하는 수 없이 뱀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 불꽃은 충전하여 온 섬을 덮었고, 그 많은 뱀들은 불에 타 죽기도 하고 일부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로 뛰어든 뱀들은 동쪽으로 헤엄쳐 갔고 해류에 따라 흘러 정의 지역의 뱀 귀신이 되었다. 이래서 지금도 마라도에는 나무와 뱀이 없는 섬이 되고 말았다.
-이상 고광민, <마라도의 역사와 민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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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익산 군수가 제공했다는 예비 상차림은 아래와 같다. 입맛을 돋우기 위한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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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많은 생물 종들처럼, 인간이란 종도 사실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살아남고 도태되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이 공존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증거를 얻고 있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90905031244444
매우 흥미롭다. 앞으로 더 많은 증거들이 나오면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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