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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지역의 신석기인들이 거주하던 가옥을 복원한 모습이라고 한다. 주거 공간과 조리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며, 조리 공간에 양의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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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이렇게 마늘을 많이 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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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 발굴된 4500년 전 신석기 시대 개의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해 보았더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그곳 사람들은 왜, 어떻게 늑대를 길들여 개로 키웠을까?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19/apr/13/neolithic-dog-reveals-tales-behind-orkney-monuments?CMP=Share_iOSApp_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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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부터 동과 서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길들을 따라 사람이 오가고, 그에 따라 새로운 식물과 동물이 오가고, 그를 기르는 방법들이 오가며, 그걸 거두어 먹는 법도 왕래했겠지.


그나저나 이런 걸 만들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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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호미가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 

이걸 보면서 우리는 무얼 생각하게 될까?

'우와, 호미가 역시 엄청나게 우수한 농기구였다. 과학적으로도 뛰어나다는 게 이로써 증명되는 것이다.'와 같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고, '미국 애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고 그래, 우리보다 한참 못하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나는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라 본다.

왜 호미와, 그를 만드는 대장장이와, 그들이 일하는 대장간은 사라지고 있는가?
왜 몇 십 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미 한 자루가 4천원이고, 직원은 비상근의 고령자들 뿐인가?
젊은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기피하기 때문에 안 하려는 것일 뿐인가?
그렇다면 과연, 호미와 호미를 만드는 기술은 지속가능한가?

이렇게 질문하다 보면, "호미라는 도구는 당분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호미를 만드는 기술과 그를 지닌 사람은 서서히 절멸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기사에 나오는 수제 원예용품은 수십만 원에 이르는 것까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호미는 성능도 좋고 손으로 만들면서 가격은 1-2만원 밖에 안 한다. 이런데 미국의 원예 애호가들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한국의 호미를 만드는 일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미국에서 호미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해야 이를 되살릴 수 있을지, 기자라면 여기에 주목하여 후속기사를 써 주었으면 한다.

나는 정말 호미를 만드는 장인과 그들이 일하는 곳이 사라지는 게 아쉽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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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José Manuel Galán 교수가 이끄는 타후티Djehuty 프로젝트에서 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의 정원 유구를 발굴했다.

아마 무덤 앞을 장식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는데, 여기서 어떤 씨앗이나 식물체의 흔적이 나올지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식물을 어떤 의미로 어떻게 활용했을지 밝히는 데 좋은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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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시대와 함께 품종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가운데, 탄생부터 6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큐슈九州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보기 드문 품종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맛있는 쌀'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고시히카리란 도대체 누구인가? 고시히카리는 왜 인기가 있는가? 벼에 대해 잘 아는 농학자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고시히카리가 태어난 건 지금으로부터 60년 이상 전인 1956년. 당시 후쿠이福井 현립농사시험장県立農事試験場에서 개발되었다. 

뜻밖에도 탄생 직후에는 재배가 확산되지 않았는데, 1979년 쌀 재배면적 1위로 올라서서는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쌀의 재배에는 지역에 따라 적합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지만, 도호쿠 지방부터 큐슈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현재 고시히카리 말고는 없다. 최근에는 해외에도 그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가장 유명한 일본 쌀이 되었다. 국내외에서 '맛있는 쌀'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말하자면, 쌀의 슈퍼스타 같은 존재이다.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쌀을 살 때 '고시히카리'나 '히토메보레ひとめぼれ'나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등의 '품종명'을 따지는데, 이러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고시히카리가 계기가 되었다고 사토 요우이치로 씨는 이야기한다. 


사토 요우이치로 씨. 교토부립대학 일본 식문화 연구센터 특임교수, 종합지구환경연구소 명예교수. 교토대학 대학원 농학연구과 수료. 국립 유전학 연구소 연구원, 시즈오카대학 농학부 조교수, 종합지구환경학 연구소 교수 및 부소장. 대학 공동이용기관 법인 인간문화연구기구 이사를 거쳐 현직. 전문은 식물유전학. 30년 이상에 걸쳐 아시아 각지를 현지조사하고, 벼의 기원을 찾아 왔다. 



"소비자가 '품종명'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식량관리법이 폐지되고 식량법이 제정되어 자주유통미自主流通米(※1)가 출현한 일이 시작이다. 그때까지 소비자는 '일등 쌀' '이등 쌀'이란 등급과 '하리마(播磨) 쌀' '오우미(近江) 쌀' '이세(伊勢) 쌀' 같은 산지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니이가타현新潟県이 '고시히카리'의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품종명의 정보가 제공되었다." (사토 씨) 품종은 농민만이 아는 '벼의 품종'에서 소비자도 아는 '쌀의 품종'으로 자리매김이 변하였다. 

※1 정부를 통하지 않고 집하업자와 판매업자 등을 통하여 유통되는 쌀

“세 방면이 좋아한”쌀로 인기를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많이 생산되는 쌀'에서 '맛있는 쌀'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수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부터 국가 전략으로 한 알이라도 많은 쌀을 취급하려는 시대가 계속되었지만, 1960년대에 쌀의 생산성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아무리 기술혁신을 하려 하고, 품종개량을 하려 하고, 비료를 많이 쓰려 했지만 수확량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양'에서 '질'로 최초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니이가타현이었다. 맛있는 쌀을 만들려고 생각한 것이다." (사토 씨)


'양'에서 '질'로 쌀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자주유통미가 된 쌀의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어, '수확량=수입'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20% 비싸게팔면 수확량이 10% 줄어도 벼 농민의 수입은 약 10% 증가한다. 또 고시히카리는 도열병에 걸리기 쉬웠기 때문에, 병을 막기 위하여 질소비료를 즐이니 맛이 좋아졌다. 각 현의 시험장이 극진하게 고시히카리의 재배 지도를 다는 일도 전국으로 확대되는 데에 뒷받침이 되었고, 정미 수율이 좋았던 점 때문에 쌀가게도 좋아했다. 게다가 고도경제성장에 의하여 소비자가 쌀에 대하여 양보다 질을 추구하게 되는 등 시대와도 잘 맞았다.   

고시히카리는 농민, 쌀가게, 소비자에 의하여 "세 방면이 좋아하는" 쌀로 환영을 받았다.  

동과 서에서 선호하는 "전 일본"

2018년 산지 품종 목록을 보면, 홋카이도北海道와 도쿄도東京都와 오키나와현沖縄県을 제외한 총 44부현府県에서 재배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그러나 고시히카리가 퍼지기 전에는 "오사카大阪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대립이고 미질이 단단하며, 도쿄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소립이고 미질이 부드럽다"(사토 씨)라는 식으로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쌀의 선호가 달랐다고 한다. 

그럼 왜 고시히카리의 맛은 동일본에서도, 서일본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일까? 

고시히카리는 농림農林 1호'와 '농림 22호'를 교배시켜 탄생했다. 

'농림 2호'는 동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리쿠陸羽 132호와 카메노오亀ノ尾 같은 계통의 품종. 그리고 '농림 22호'는 서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아사히旭' 계통의 품종이다. 


위 사진의 출처 http://www.ken-ohashi.jp/contents/2b/dagakki/2008/132.html



그때까지 동과 서의 품종을 교배시킨 예는 별로 없었는데, "동쪽의 천하장사" 계통과 "서쪽의 천하장사" 계통이 교배된 고시히카리의 탄생은 일본인의 쌀 선호에 변화를 가져왔다. 


고시히카리의 아버지 농림 1호.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


"일본 전국 거의 어디서나 농사지을 수 있는 '전 일본'이 태어나, 동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과 서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이 합체함으로써 양자에서 받아들여지는 맛이 탄생했다. 그래서 고시히카리가 퍼졌다고 생각한다."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고시히카리가 탄생한 뒤 재배면적 1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3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토 씨에 의하면, 당초는 고시히카리의 평가가 간사이関西를 중심으로 높고 간토우関東에서는 고시히카리보다 '사사니시키ササニシキ'가 인기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니이가타현의 움직임이 영향을 주었다. 

'깨끗한 물과 비옥한 대지에서 재배된 니이가타 고시히카리'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에 맛있게 자란 우오누마魚沼 고시히카리' 이라는 이미지 전략에 의하여 간토우에도 고시히카리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재차 타격을 주듯이, 1993년 헤이세이平成의 대냉해로 인해 사사니시키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고시히카리 일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동서에서 선호하는 고시히카리의 탄생을 계기로, 일본인의 쌀에 대한 미각은 균일화되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시히카리 논


고시히카리 덕에 잃어버린 것


고시히카리 탄생 후에는 고시히카리를 기반으로 품종개량이 반복되어 현재는 전국에서 재배되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란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 '농림 100호'란 농림 번호(※2)로 1956년에 고시히카리가 탄생하고나서 2015년 시점에서 논벼의 농림번호는 '농림 474호'까지 나왔다(농림수산기술회의 <2016년 농림번호 부여 품종>).

"약 60년 동안에 국가에서 만든 품종만도 300계통 이상이고, 각 도도부현에서 만들고 있는 품종은 더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정 품종만 시장에 남아 있다. 각 농업시험장의 육종가들 입장에선 '좋은 걸 만들어도 고시히카리를 이길 수 없다'는 불행한 상황이다"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판매하는 측에서도 구매하는 측에서도 '고시히카리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맛있다'는 풍조가 있어, '육종은 마케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도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품종도 있을지 모르지만,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도큰일이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가 이렇게까지 확산됨에 따라 "확실히 다양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다음회 나만의 벼 품종을 만들자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짐에 따라 생기는 문제와, 다양성을 창출하기 위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2 농림성 소속의 연구기관과 각 현에 산재해 있는 국가 지정 시험지에서 육성된 농작물 품종에 붙여진 등록번호. 


https://agri.mynavi.jp/2019_01_15_5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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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회는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라는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가 된 경위를 농학자인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한편,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에 의해 잃어버린 '쌀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쌀은 대략 20품종

쌀의 다양성이 사라진 이유로, 사토 씨는 '군사물자로 쌀의 품질을 통일시키려는 국가정책을 취한 점' '특히 소화시대 이후에 다수확을 목적으로 키가 작은 특정 품종만 품종개량에 사용한 점'을 들지만, 역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고시히카리의 등장'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재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멥쌀, 찹쌀, 술쌀을 합계하여 약 480품종(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 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이 가운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멥쌀은 재배 비율 상위 20품종이 84.1%를 차지하고있다(2017년산, 미곡 안정공급확보 지원기구 공표). 

※일정한 산지(도도부현 단위)에서 생산된 품종이 다른 산지에서 생산된 동일한 품종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품질차를 나타내기 때문에, 농산물의 거래 등에서 해당 산지와 품종을 농산물 검사로 특정할 필요가 있음. 1년 1회, 도도부현마다 내역 설정의 신청이나 폐지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장이 설정되고, 학식 경험자, 생산단체, 실수요단체, 행정관계자에 의한 협의를 통해 농림수산성 국장에게 전달. 내역의 설정 등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농림수산부 장관이 행하는 농산물 규격규정의 개정 절차가 진행됨.



각 현에는 여러 가지 대표 품종이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 보면 재배면적은 적다(Panasonic'쌀 이야기 박물관OKOME STORY MUSEUM'의 전시에서)




한편, "메이지 시대는 4000가지 품종이 있었다. 이명 동종, 동명 이종이라 생각되는 것을 정리하더라도 600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사토 씨가 말한다. "메이지 시대에 여러 가지 품종이 보전된 것은 사람들이품종을 식별하여 목적에 따라 구별하여 쓰거나, 지역 사이의 교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시히카리의 등장 이후, 전국에서 비슷한 품종이 나왔기 때문에 현재는 다른 품종을 식별할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도 시대에 농사지었다고 보이는 품종 '愛亀'. 역주; 이 품종은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린 붉은 물감과 초록 물감만 가지고 있다. 섞으면 자주색이 된다. 다양한 자주색이 되겠지만, 결국은 자주색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늘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의 품종개량이다. 어떻게 기호라는 게 균일화되는 것인가 한다." 



에도 시대에 카가번의 헌상미였다고 이야기되는 품종 '킨챠쿠巾着'



한때 '가짜 고시히카리'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다. "유통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가운데 30%가 가짜일 때조차 우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품종의 차이가 적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품종이 들어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니, 즉 맛의 차이를 모르면서 비싼 고시히카리를 구매하는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가짜 고시히카리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쌀의 맛이란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며 발생한 비극이었다." (사토 씨)


문화의 다양성과 품종의 다양성이 지닌 관계 

다양성이 적다는 건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사토 씨는 "품종의 다양성을 없애는 건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라 딱 잘라 이야기한다. "어느 지역이라도 각각의 식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품종이 있었을 것이다. 식문화의 배경에는 잔치 음식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잔치 음식이라도 특정 품종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면, 그 쌀의 특징을 살린 식문화는 사라져 버린다. 잔치가 사라지면 그때 사용된 품종도 사라져 버린다. 문화의 다양성이 품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품종의 다양성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다양성이 여위어 버리면, 다른 한편의 다양성도 여위어 버린다."

실제로, 짚 세공용 벼 품종도 짚을 쓰는 문화가 사라져서 소멸되어 버렸다. 현재의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우리가 평소 먹고 있는 멥쌀은 약 290품종, 찹쌀은 약 70품종, 술쌀은 약 120품종이다(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밥을 먹고, 잔치 음식으로 떡을 만들고, 일본술을 마신다. "적어도 경사스런 날만이라도 품종을 구별해 쓰면 어떨까요?"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우리의 "경사스런 날"과 "잔치"의 밥상이 문화와 품종을 유지해 나아갈 것이다.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越田秀俊 씨와 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한 '은방주銀坊主'라는 멥쌀 품종. 역주; 은방주는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들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朝日新書)이란 저서가 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은 있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찾자?' 그 진의를 묻자,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맛있는 쌀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사토 씨가 답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든다'는 건 어떤 뜻일까? 

사토 씨가 제안하는 건 '나의 품종'을 만드는 일. '나의 품종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손을 맞잡고 만드는 품종이다. 맛있는 쌀을 만드는 책임은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어떤 품종을 만들고 싶다고 대화하고, 자신들이 직접 인공교배하고 선발을 한다. 소비자는 모내기와 제초, 벼베기 등 1년에 몇 번은 농작업을 도우러 가고, 생산된 쌀은 구매한다. 그 토지에서 농사지은 쌀은 확실히 그 땅에 적응하고 있다. 다양한품종을 만드는 일을 통해 그 토지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고, 예를 들어 냉해 등의 재해가 있어도 전멸이란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가채종을 반복하는 것으로 종묘법에 규정된 '품종'에서는 사라져 가겠지만, 이해하는 소비자와 함께 품종을 만들어 먹는 분량만큼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토 씨의 생각이다. 



수확한 벼는 씨앗이 된다 



장애물이 높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품종개량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라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 무렵의 품종은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탄생하고, 농민들이 품질을 유지해 왔다. 품종의 관리를 민간에 맡기는 일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문화의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 文化的多様性は生物多様性を担保する

2018년 4월, 장려품종에 대해 규정된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 폐지되었다. 현재는 도도부현이 독자적으로 장려품종을 계속 다루고 있지만, 만약 앞으로 장려품종이 사라진다면 식량관리법 시대처럼 '니이가타 쌀(新潟米)' '후쿠시마 쌀(福島米)' '일등 쌀(一等米)' '이등 쌀(二等米)' 같은 산지나 등급의 정보만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리겠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사토 씨는 "다양성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품종을 스스로 만든다면, 지적재산권도 경제적 소유권도 자신의 것. 거대한 농생명 기업에 얽매이지 않는다. 지금 시대는 옛날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총동원해 나의 품종이 지닌 형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다양하지만 잡박하지 않은 품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토 씨가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하듯이, 사람들이 단일 품종을 먹고 있다면 단일 품종만 재배되어 버린다. 그러나 다양한 쌀을 맛봄으로써 다양한 품종의 재배가 퍼져 나갈 것이다. 쌀 품종의 다양함은 문화의 다양성과 동일하다. 

나의 품종을 만들어 메이지 시대 같은 품종의 다양함이 현대에 소생되면 일본의 밥상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벼 오타쿠에게 듣다!『나의 품종』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했듯이, 농민이 육종가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모른다. 


https://agri.mynavi.jp/2019_01_22_5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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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mazon.co.uk/First-Farmers-Europe-Evolutionary-Perspective/dp/1108435211


유럽 최초의 농민이라니... 재미나겠다. 

한국에서도 한반도 최초의 농민 같은 책이 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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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재래종 옥수수로 만든 이 주식은 대량 생산과 근대성에게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소농들이 저항하고 있다.


Petra Cruz González 씨는 멕시코 틀락시아코Tlaxiaco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매일 400개 남짓 또르띠야를 만든다. , Mexico.CreditCreditLeila Ashtari



페트라 크루즈 곤잘레스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약 400개의 또르띠야를 손으로 만든다. 전기 제분기와 금속 프레스기 같은 몇몇 현대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8살 때 배운 것처럼 장작불에 조리한다.


49세인 곤잘레스 씨는 길거리와 집에서 또르띠야를 판매한다. 오악사카 지역의 도시에 있는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들을 조직하고자 1990년에 시작된 틀락시아코 Palmeadoras 조합의 대표인 그녀는 이것이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합의 89명의 조합원(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경쟁자들과 맞서 이러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그 도시의 25곳의 또르띠야 매장은 매출이 크게 줄었으며, 곤잘레스 씨는 또르띠야를 모두 팔기 위해 오후 10시까지 일해야 하곤 한다. 그녀는 6개에 10페소(약 550원)라는 가격을 매겼는데, 이건 들어가는 경비보다 조금 더 충당하는 정도이다. 그녀는 다른 행상의 먹을거리를 위해 남은 또르띠야를 거래하곤 한다.


"또르띠야 매장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하지 무얼 파는지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곤잘레스 씨는 말했다. "우린 양이 아니라 품질을 팝니다."




곤잘레스 씨는 이 도시의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로 이루어진 조직의 대표이다.





CreditLeila Ashtari




가운데에 곤잘레스 씨와 다른 또르띠야 생산자가 시장에 판매하러 가고 있다.Leila Ashtari



도시부터 농촌까지, 멕시코의 또르띠야는 위기에 처해 있다. 메트로폴리탄 소치밀코Xochimilco 자치대학의 영양학자  Julieta Ponce에 의하면,  멕시코 사람들이 빵과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으면서 1인당 소비량이 1982년 약 102kg에서 2016년 약 56kg으로 지난 35년 동안 약 45% 급감했다. 


값싼 또르띠야와의 경주에서 품질은 불리해졌다. 거의 절반 정도의 공급량이 현재 산업적으로 생산된 또르띠야 반죽이나 Maseca 같은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진다.  



멕시코 요리를 연구하는 작가 Cristina Barros 씨는 또르띠야의 위기 상황은 비만과 빈곤, 이민을 포함하는 멕시코의 광범위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경고라고 이야기했다.  "또르띠야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좋은 품질만이 아니라" 특히 또르띠야 생산자와 옥수수 농민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Barros 씨는 말했다.  “우리가 전통적 음식을 산업의 식품으로 바꾸려고 결심했을 때 이 비만이란 전염병이 나타났어요.” 


워싱턴 대학의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에 의하면,  멕시코의 비만율은 1980년 7%에서 2016년 20.3%로 급증했고, 1980년대 멕시코의 자유무역 기조가 이러한 변화에 기여했다.



지난 5월, 75개 이상의 단체와 기업이 옥수수 또르띠야를 홍보하고자 우리 또르띠야를 위한 동맹Alianza por Nuestra Tortilla를 창립했다. 멕시코에는 특히 북부 지역에 밀가루 또르띠야가 있는데, 이 단체의 초점은멕시코 요리의 기반인 옥수수에 있다. 그 연맹은 연구, 교육 행사, 언론 홍보 및 로비활동을 포함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동맹의 견해로는, 좋은 또르띠야는 말린 옥수수(이상적으로는 토종 품종)를 수산화칼슘을 푼 물에 담가 밤새도록 불리는(멕시코에서는 칼cal이라 함) 닉스타밀화라고 알려진 전통적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만들어진다. 이것이 영양분을 풀어서, 또르띠야가 비타민과 미네랄 및 단백질의 귀중한 원천이 되게 만든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옥수수 가루도 닉스타밀화되어 있지만, 또르띠야 순수주의자들에 의하면 추가 가공으로 영양분을 제거함으로써 질이 낮은 또르띠아가 만들어진다.  



생물다양성을 장려하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가 오악사카 주에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CreditLeila Ashtari




25년 이상 옥수수 생산자들과 일하고 있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는 소비자에게 전통적 또르띠야에 비용과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득하는 핵심으로 생물다양성을 장려한다. "지난 50년 동안, 도시 사람들은 옥수수 맛이 어떤지 모르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토종 옥수수는 산업용 옥수수보다 훨씬 풍미가 다양합니다.


동맹은 또르띠야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그리고 대규모 생산자에게 그 성분을 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법률로 만들고자 연방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옥수수 생산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멕시코 옥수수 또르띠야 재단Fundación de Tortilla Maíz Mexicana의 창립자이자 동맹의 회원인 Rafael Mier 씨가 이야기했다. 그는 "가짜" 제품을 폭로한다면 멕시코 사람들이 어떤 또르띠야를 먹을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을 가족을 위해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우린 단지 정보를 제공하면 됩니다." 



틀락시아코 옥수수 축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Rafael Mier 씨. 그는 또르띠야를 만드는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일하는 단체를 설립했다. Leila Ashtari




멕시코 시티의 다른 많은 새로운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또르띠야 반죽과 또르띠야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다.  작년에 개장한 이후 사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설립자이자 주방장 산티아고 무노즈Santiago Muñoz 씨는 전통적인 또르띠야 생산자가 원래 하루에 29kg 정도 만드는데 현재 적어도 204kg쯤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멕시코에는 300만 명 정도의 옥수수 농민이 있는데, 많은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의 재배를 그만두었거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민을 간 농민이 많다. 비슷한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이 전통이 살아 있도록 보전하고자 토종 옥수수에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한다.  멕시코 시티의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산후안 익스텐코San Juan Ixtenco에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는 자신의 토종 옥수수 0.45kg의 평균 가격이 2.25페소(약 133원)이고, 때로는 1.35페소(약 77원)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그는 4.5페소(약 267원)가 노동자들이 도시로 가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핼 필요가 없는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Angoa 씨는 3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건설 현장에 가서 일할 계획이고, 자신의 가족이 농지를 돌볼 것임). 



불행하게도, 많은 멕시코 사람과 요리사 들은 닉스타밀화와 관련된 작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요리학교에서는 이 기술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수산화칼슘의 정확한 양과 적절한 조리 시간을 찾기 위해 각각의 옥수수 품종마다 조사해야 한다(예를 들어 너무 지나친 닉스타밀화는 빛깔을 바꾸거나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게 할 수 있음). 


"또르띠야는 빵이나 피자 반죽과 같아요.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무노즈 씨는 말했다. 




멕시코 시티의 또르띠야 매장 Maizajo에서 일하는 요리사 산티아고 무노즈 씨. Maizajo는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CreditLeila Ashtari





산후안 익스텐코에서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CreditLeila Ashtari




그 가치는 높은 가격으로 나타난다. 도시에서 대부분의 전통적 또르띠야는 상업용 또르띠야의 약 5배에 달하는 가격인 호화로운 제품으로 팔린다.  농민과 함께 지역 및 세계의 식당에 반죽과 옥수수를 공급하는, Francisco Musi와 Sofia Casarin 씨가 소유주인 멕시코 시티의 한 기업인 Tamoa에서는 유통 비용을 줄이고 근처에서 재배한 토종 옥수수를 사용함으로써 고품질의 또르띠야를 더 많이 만들고 있다. 


잘 만들어진 또르띠야는 이미 도시의 최고 식당에 있기에,  Casarin 씨는 덜 비싼 식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큰 변화를 지켜본다.  "중간 가격의 또르띠야에 적합한 장소를 찾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요리사인 Enrique Olvera 씨와 Ramírez Leyva 씨가 동업하는 한 가게인 Molino El Pujol는 기계류를 사용하여 비용을 줄이는 걸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대적 장비는 기계의 롤러를 부드럽게 통과하는 Maseca 같은 표준의 농산물을 처리하도록 설계되었다. 다양한 토종 옥수수를 가지고 좋은 또르띠야를 생산하기 위해서 기계를 조정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Ramírez Leyva 씨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기계를 활용할 수 있다면, 확실히 전통적 또르띠야를 대중화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옛날 방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옥수수를 닉스타밀화하는 4만 개의 또르띠야 매장과 집에서 전통적인 또르띠야를 만드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엄청난 지식이 있지만 시장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Mier 씨는 이야기했다. 

노하우가 존재합니다. 우린 단지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할 의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18/12/21/dining/corn-tortilla-mexic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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