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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새들이 우짖고 푸른 새싹이 돋는 따뜻한 봄날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자연에 맞춰 우리네 몸도 겨우내 묵은 때를 털고 봄기운을 맞이하느라 찌뿌드드하고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와 함께 슬슬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준비를 다 끝냈지만 게으른 농부는 이래저래 마음만 바쁩니다. 열심히 마련한 거름을 내 논밭을 갈고, 이것저것 씨앗을 추스르고 심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종播種, 곧 "씨뿌리기"와 관련된 말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씨뿌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밭 만들기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일단 건너뛰겠습니다. 씨도 씨지만 땅을 빼고는 농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씨보다도 땅이 더 중요합니다. 수컷들이 씨를 뿌려놓고 나 몰라라 하면 암컷들이 다 거두어서 기르는 것처럼 말이죠. 땅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만큼 땅은 농사의 기본이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지금은 씨와 관련된 말을 살피는 시간이니 땅과 관련된 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씨를 심으려면 먼저 씨앗(종자種子) 준비해야 합니다.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을 사면 포장도 깔끔하고, 포장지를 뜯으면 씨앗에 색깔을 입혀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은 모르는데 벌레 피해를 막기 위해서 약품 처리를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씨앗이 아니라 지난해 직접 받은 것이라면 씨앗가리기(종자예조種子豫措)를 해야 합니다. 겉은 말짱해 보이지만 물에 담그면 둥둥 뜨는 것들은 속이 덜 여문 것이니 골라내고 할 수 있으면 알찬 놈들로만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씨고르기(선종選種)을 마치면 바람이 잘 통하는 선선한 곳에 매달아 놓고 심는 날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오래 묵은씨라면 옆 마을에 아는 사람이나 이웃에게 새로 씨앗을 받아 씨앗갈이(종자갱신種子更新)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내가 좋은 씨앗이 있다면 서로 씨앗바꾸기(종자교환種子交換)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피난을 가더라도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씨앗이라고 합니다. 좋은 씨앗은 베개 속에 꽁꽁 넣어놓았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씨앗을 목숨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씨앗을 서로 나누는 행위는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씨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면 잔씨앗(소립종小粒種)과 중씨앗(중립종中粒種), 큰씨앗(대립종大粒種)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잔씨앗이고 큰씨앗인지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상추씨 같이 재채기 한 방에도 다 날아가 버리는 것들이 잔씨앗이고, 작두콩 같이 큰 놈들이 큰씨앗이 아닐까 합니다. 이건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 내가 본 것들 가운데 기준이 생기는 아주 주관적인 잣대입니다.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왠지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도 저마다 자기한테 맞게 해야지 시스템이 먼저 있고 사람이 거기에 끼워맞춰야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요즘은 참 이상한 시대입니다.

아무튼 한데(노지露地) 심는 것 가운데 잔씨앗은 잎남새(엽채류葉菜類)나 줄기남새(간채류幹菜類)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씨앗이 작은 놈들은 흩뿌림(산파散播)을 하거나 줄뿌림(조파條播)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흩뿌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감이 있는 분들이 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흩뿌림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뿌리는 것 같은데도 싹이 날 때 보면 어김없이 좍좍 흩어져서 아주 잘 자랍니다. 이런 일을 초보자가 했다가는 한 군데에서 뭉텅뭉텅 자라서 나중에 솎을 때 애먹습니다. 배게뿌림(밀파密播)는 처음 뿌리는 분은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어떤 분은 몇 십 평에 심을 수 있는 씨앗을 한 평에 다 쏟아붓는 경우도 있지요. 걔네들이 나올 때 보면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이 생각납니다.

이런 작은 놈들을 다룰 때 이래저래 가장 편한 방법은 손가락으로 한 줄 죽 긋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조금씩 집어서 살살살살 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얕심기(천식淺植)를 하다보면 정신을 집중하느라 잡념이 사라지는 무념무상의 경지도 살짝 맛볼 수 있습니다. 흙덮기(복토覆土)도 두 손가락으로 살살 덮고, 따로 밟기(답압踏壓)나 누르기(진압鎭壓)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터져나오는 새싹들! 참 신비롭고 가슴 뿌듯한 뭔가가 가슴에서 찌르르 흐릅니다.

어느 정도 알이 굵은 놈들은 점뿌림(점파占播)를 합니다. 그 유명한 "새 한 알, 벌레 한 알, 사람 한 알"씩 먹는다는 말은 점뿌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뻥입니다. 새들이 어찌나 극성인지 다 먹어치웁니다. 뒤적거려서 찾아 먹지 않으면 떡잎을 똑똑 끊어먹어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아주 속터질 노릇이지요. 저는 몇 해는 "눈치 농법(새들이 없거나 보지 않을 때를 눈치 봐서 심는)"으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더군요. 씨앗을 어디에 심었는지 모르니 떡잎이 나오는 대로 죄다 따먹어 버렸습니다. 결국은 모종을 키우거나 방충망을 덮는 방법을 동원해서 피해를 보지 않았지요. 그래도 그 등살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 남은 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놈들 주변에는 풀덮기(부초敷草)를 해서 위장하고, 떡잎이 없는 놈들은 뽑고 메워심기(보식補植)를 하거나 덧뿌림(보파補播)을 했습니다.

요즘은 잘 안하지만 그냥 집에서 뜯어 먹을 푸성귀를 기를 때는 섞어뿌림(혼파混播)도 했다고 합니다. 밭에 오시는 형님께서 옛날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께에는 그대로 해봤는데 그거 참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남새 종류는 한 해에 주로 두 번을 심을 수 있습니다. 봄뿌림(춘파春播)과 가을뿌림(추파秋播)를 할 수 있지요. 저는 봄에 뿌린 놈들을 실컷 먹다가 몇 놈만 놔둡니다. 그럼 알아서 꽃이 피고 씨가 달립니다. 저절로 힘들이지 않고 씨받이(채종採種)를 하는 겁니다. 그럼 지가 알아서 떨어진 놈도 있어서 거기서 가을에 또 자라거나 받은 씨를 가지고 또 심으면 됩니다. 아주 쉬운 두번짓기, 그루갈이(이모작二毛作) 방법입니다.

부추 같은 경우는 다른 것처럼 한해살이(일년생一年生)나 두해살이(월년생越年生)이 아닌 여러해살이(다년생多年生)라서 한자리에서 4~5년은 거뜬합니다. 그보다 오래되면 자라는 것이 신통찮다고 합니다. 먹을 수 있는 양분을 다 골라 먹어서 그럴까요? 아무튼 그때가 되면 뿌리채 캐서 다른 곳에 갖다 심으면 또 막 자란다고 합니다. 농담으로 던져만 놓아도 산다고 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보통 냄새가 강한 것들이 생명력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맛있거나 무른 것들이 손도 많이 가고, 아주 골치 아프지요. 지난 봄에는 비타민채라는 것을 심었는데 이게 맛나니까 까맣고 노란 톡톡 튀는 벌레가 엄청 달라붙더군요. 배추에도 안 가고 여기에만 달라붙어서 봄에는 영 별로였는데, 가을에는 좀 덜해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겨울나기(월동越冬)를 하더군요. 일본에서 들어온 씨라서 추위에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잘하면 언피해(동해凍害) 없이 시금치처럼 겨울에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씨를 가지고 곧뿌림(직파直播)하는 작물 말고도 모종(묘苗)으로 심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고추이지요. 고추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2월 초중순이면 모판흙(상토床土)를 만들어서 씨앗 넣어야지. 그러고 나면 날마다 들여다보며 싹트기 알맞은 온도(발아적온發芽適溫)를 맞추려고 추우면 이불 덮어 주고 따뜻하면 햇볕 쪼이게 하고 지극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모판흙 만드는 건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깨끗한 흙에 모래흙도 넣고 숯에다 제대로 썩은두엄(腐熟堆肥)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맞춰줘야 합니다.

저는 성격이 게으른지라 이도저도 귀찮아서 그냥 곧뿌림을 합니다. 지난해 곧뿌림을 하니 수확량이 확실히 적긴 하지만 편하더군요. 그놈들은 곧은뿌리(직근直根)가 속흙(심토深土)으로 쭉 뻗어서 버팀대(지주支柱)가 없어도 바람에 쓰러지지(도복倒覆) 않습니다. 모종으로 키우는 고추는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심기(이식移植)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상태는 한때심기(가식假植)라서 서리가 내리지 않는다 싶으면 제밭(本田)으로 나가서 아주심기(정식定植)를 해야 합니다. 고추는 얕은 뿌리성(천근성淺根性)이라서 자꾸 옮겨심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건 모종을 키워서 수확량을 많이 낼 때나 그렇습니다. 또 자꾸 옮겨심다보니 곧뿌리가 끊기기에 잔뿌리를 많이 내서 자기도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지요. 위기를 느끼는 만큼 종족 번식에 더 힘쓴다는 원리입니다. 어떻습니까, 시장 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고추 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또 씨앗의 분류에는 햇빛을 받으면 싹이 빨리 트는 담배나 양배추 같은 볕밭이씨(광발아종자光發芽種子)와 반대로 햇빛을 받지 않아야 싹이 빨리 트는 호박이나 오이 같은 그늘밭이씨(암발아종자暗發芽種子)도 있습니다. 곡식의 품종에는 키 작고 이삭 큰 품종(단간수중형품종短稈穗重型品種)과 키 작고 이삭 많은 품종(단간수수형품종短稈穗數型品種)이라는 분류도 있습니다.

나중에 자라면서 햇빛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짧은볕식물(단일성식물)과 긴볕식물(장일성식물)로도 나뉩니다. 물론 햇빛을 싫어한다고 해서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광합성을 해야 하는 만큼 햇빛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취나물처럼 뿌리나누기(분근分根)로 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모종을 심을 때 곧추심기(직립식直立植)하는 것도 있고, 빗겨심기나 휘어심기 같은 방법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것보다 일찍 익는 올씨(早生種)와 늦게 익는 늦씨(만생종晩生種), 적당한 때 익는 가온씨(중생종中生種), 엊늦씨(중만생종中晩生種)라는 구분도 있지요. 올씨와 늦씨는 착각하기 딱 좋습니다. 올씨라고 하여 일찍 심는 것이 아닙니다. 올씨는 빨리 익는 것이니 오히려 늦게 심을 수 있는 씨앗입니다. 이런 씨는 그루갈이나 부룩으로 심을 수 있지요. 여느 때보다 일찍 심는 것은 올뿌림(조파早播)라고 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철당겨가꾸기(촉성재배促成栽培)를 합니다. 딸기만 해도 어릴 때는 분명 5월쯤부터 먹은 것 같은데 이제는 1~2월이면 나오기 시작해서 3월이면 거의 끝나갑니다. 뭐든지 몇 개월씩 빨라졌습니다. 자연의 만물은 나이가 들수록 철든다는데, 사람은 거꾸로 시간이 지날수록 철부지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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