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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발견한 일본의 토종 콩.

아주 흥미로운 건, 한국의 토종 콩과 비슷한 것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먼저 아래의 콩들은 메주콩과 닮았다. 일본은 이걸로 무얼 만들어 먹을까?

특히 푸른색의 콩들은 제주에서 장을 담가 먹을 때 쓰는 '푸른독새기콩'과 비슷하다.

역시 두 지역은 화산섬이라 유사한 점이 많을 것일까?

윗줄의 가장 왼쪽은 '노세'라는 지역에서 심던 푸른콩. 그 옆의 '오오츠루'와 '후쿠유타카'라는 이름의 콩은 그 유래와 내력을 모르겠다.

아랫줄은 야고우라는 지역에서 심던 토종 콩.



푸른콩과 노란콩을 비교.

푸른콩 같은 경우에는 밥밑콩으로 쓰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고, 노란콩은 나물콩 같이 생겼다.

그런데 일본만 해도 콩나물은 별로 먹지 않는다. 주로 숙주나물을 먹지.



아래의 두 장의 사진은 강낭콩이다. 이 모습만 보면 그냥 한국에서 재배하는 것이라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팥. 한국의 팥과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콩도 한국에 존재한다. 주로 밥밑콩으로 씀. 아주 흥미롭다. 

오사카에 갔을 때 전통시장에서 콩을 파는 곳을 발견한 적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싫어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기억이 난다. 

언제 일본에 가서 콩들만 싹 조사해봐도 재미나겠다.




밥에 주로 넣어 먹는 서리태나 검정콩처럼 생겼다. 그런데 일본도 콩밥을 먹는가?




이건 6~7년 전 이일형 형님께 얻어서 심던 콩과 똑같다. 이름은 잘 모른다며 줘서 심었는데, 콩알의 크기가 엄청 크다. 강낭콩의 하나임.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별로 맛이 없을 것 같았다. 꽃이 붉은색이라 홍화채두, 즉 붉은꽃 강낭콩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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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다포항의 전형적인 어촌 마을.

산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바다가 시작되는 특유의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 사람들을 무얼 하며 먹고 살았을지 궁금한 아침.


 



날마다 떠오르는 해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이리도 맛이 달라지는구나.


 

 



거제도에는 쬐깐한 논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역시 직접 먹을거리 농사를 짓는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든다.

거제에 와서 보니 확신이 들었다. 서남해의 도서 지방을 한 번 쭉 훑을 필요가 있다. 이런 곳은 농사를 지어도 판매가 아닌 자급용으로 짓기에 토종 종자가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10년만 쭉 돌 수 있는 예산만 확보되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어찌 되든 앞으로 10년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나저나 여기도 묵은 논이 보인다. 또 늙은 농부 한 명이 세상을 등지고 떠난 것일까? 피땀 흘려 일구었을 논밭이 농부의 죽음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갔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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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지나는 길에 들렀다.

백관실 대표는 자리에 없고, 전화하니 내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신다. 하하하.

그동안 방송도 많이 나오고, 언론에도 많이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셔 기분은 좋더라.

<토종곡식>도 조금은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앉은뱅이밀로 만든 중면을 한 묶음 사고 그냥 돌아서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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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의문이 풀렸다.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왜 파업에 나섰는지 말이다.

뉴스로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파업에 나섰다길래 "우와!" 하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발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콜롬비아가 미국 및 유럽연합과의 FTA로 종자산업을 강화하는 법안이 시행되었고, 그로 인해 농민들이 자신의 종자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소규모 가족농이 더 이상 안심하고 농사짓지 못하게 만든 농업 정책과 환경조성에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보면서 IMF로 종묘회사들이 다국적 기업들에게 홀랑 넘어갔던 한국의 암담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작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종자산업을 강화한다며 종자산업법을 개정하고 종자 강국이 되겠다며 본격적으로 나섰지. 이름도 재미난 골든씨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콜롬비아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세계는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구나. 연대투쟁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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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콜롬비아의 농민단체들이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시작했다. 그들을 도로를 가로막고, 차에 우유를 쏟아부으며 도시를 위한 먹을거리 생산을 중지했다. 문제는? 농민들이 정부 정책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여, 우리의 행진은 평화이다. 우린 평화로운 코코아 재배자이다. 우릴 도와달라!"




정부는 소농에 대한 지원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1 그 대신 부유한 소수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사회경제적 모델을 받아들였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과 체결한 자유무역 협정(FTA)이 보조금을 받은 수입산과 경쟁할 수 없도록 콜롬비아 농민들을 약화시키고 있다.2 콜롬비아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개 외국계인 대기업(브라질의 Monica Semillas, 이스라엘의 Merhav, 미국의 카길)의 토지수탈을 조장하여, 식량주권을 지향하는 가족농을 희생시켜 수출 지향형 농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 분야는 특히 토지의 이용과 생산비 절감이란 형태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시위대는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콜롬비아의 커피와 감자 농민들, 유제품과 육류 생산자들은 물론 소규모 어민들도 일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쫓겨나고 있으며 몰살되고 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지난 6월 한 지역에서 시작된 총파업 운동이 8월에는 전국적인 행동으로 조직되었다. 농민의 파업은 곧 석유산업 노동자, 광부, 운송 노동자, 건강 부문 전문가와 기타 다른 부문의 지원을 받았다. 8월 29일 파업에 들어간 지 10일째, 2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운동에 동참하여 수도 보고타를 뒤덮었다. 


정부의 반응은 혼돈과 반박이었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기자라고 언급하지 않은 많은 시위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날조된 혐의로 상급 노동조합의 지도자 Hubert Jesús Ballesteros Gomez 씨를 포함하여 250명이 체포되었다. 


양쪽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잃었다. 한쪽으로 정부는 농민들의 불만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몇 가지 양보안을 제시했다. 다른 한쪽으로는 그 운동이 FARC에서 침투한 사태라고 주장했다. Santos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와 "농민의 파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보고타의 거리를 가득 메운 최루탄과 분쟁 현장을 헬리콥터에 타고 살펴보는 그의 모습이 촬영되었다. 


총파업은 콜롬비아에 토론회, 의식화, 연대와 저항을 위한 공간을 여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농민을 지원하고 그들의 요구를 지지했다. 그들은 소리높여 GMO에 반대하고 식량주권을 지지한다고 시위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현행 콜롬비아 정책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압력의 파도에 농업에 대한 관심을 넘어 총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무상교육 요구안을 전하고 싶어 했다.


970 법안

종자가 눈에 띄는 쟁점으로 나타났다. 워싱턴만이 아니라 브뤼셀과 체결한 FTA 체제에 따라, 보고타는 콜롬비아에 투자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판매하는 종자에 법적으로 독점권을 제공해야 하게 되었다. 농장에서 갈무리한 씨앗이나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단순히 토종 씨앗을 판매하다가 잡힌 농민은 벌금이나 실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3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농민과 토착민이 종자를 저장하고 교환하고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유죄선고는 생물다양성과 문화적 유산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가 여러 해 동안 이러한 방향을 추진하여 안데스 공동시장이나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일환으로 그러한 정책에 동의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실행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및 유럽연합과 FTA를 체결한 이후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무허가' 종자들을 파괴하고 있는 자유무역의 모습이다. (사진: ICA)


2011년 콜롬비아 정부 당국은 후일라(Huila) 주의 캄포알레그리(Campoalegre)에 있는 벼 재배 농민의 창고와 트럭을 급습하여, 법에 따라 처리된 것이 아니라며 폭력적으로 70톤의 볍씨를 파괴했다. 농민의 씨앗을 파괴하기 위한 이러한 무력 개입은 많은 이들이게 충격을 주었고, 한 젊은 칠레의 활동가 Victoria Solano 씨는 이에 영감을 받아 그걸 영화로 제작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2010년에 채택된 법안의 숫자인 "9.70"이다. 이 법안은 농민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가의 권리에 따라 그들의 씨앗을 파괴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4

오늘날, 농민 시위의 힘과 끈기, 정당성 덕분에 콜롬비아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대중매체와 소셜네트워크, 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있으며, 정부가 왜 그런 무의미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운동에 대한 지원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잘 먹여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하수인의 이해관계를 채워주고 소규모 가족농의 자리는 생각하지 않는 경제 모델에 너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모델을 반전시키려는 콜롬비아 농민의 투쟁을 지원해야 한다. 너무 늦지 않았다. 

하나의 작은 구체적 행동으로, "9.70"이란 다큐멘터리 영화 -스페인어로 여기에서 http://youtu.be/kZWAqS-El_g 볼 수 있다- 가 영어 자막 버전을 만들려고 자금을 찾고 있는데,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직면한 상황이 무엇이고 그러한 정책을 깨부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여기로 가서 참여하시라! http://idea.me/proyectos/9162/documental970 마감은 10월 10일이다!

다른 의미 있는 행동으로, 비아깜페시나의 라틴아메리카 코디네이션이 파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제 연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로 가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http://goo.gl/9u6RXJ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관건이다!

콜롬비아 외에도 이와 비슷한 종자법에 관한 싸움이 현재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농촌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콜롬비아에서 채택한 더 적극적인 요소가 다른 라틴아메리카로 침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폐기시켜야 할 필요성은 정말 정말 시급하다!


더 읽을거리:

Visit the bilaterals.org website for more coverage (in English, French and Spanish) of the general agrarian strike and the fight over Law 970

For more information about the struggles around the seed laws in Colombia, please contact Grupo Semillas ("Seeds Group") at semillas@semillas.org.co or visit their websitehttp://semillas.org.co/

To learn more about the political battle currently taking place in Chile, please get in touch with Anamuri, the National Association of Rural and Indigenous Women, atsecretariag@anamuri.cl

For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in Argentina, please contact Diego Montón at theLatin American Coordination of La Vía Campesina, at secretaria.cloc.vc@gmail.com.


 

1 콜롬비아 인구의 약 1/3이 농촌에 살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의 약 60%는 어느 정도 기아 상태이다. Paro Nacional Agrario y Popular, Pliego de peticiones를 보라.

2 그 효과는 단지 시작이지만, 실제이다. 미국의 콜롬비아에 대한 농산물 수출은 협정 첫해에 62% 급증했지만, 콜롬비아의 미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은 15% 하락했다. (USTR와 Portafolio를 보라)

3 종자를 등록하고 인증을 받으려면 농산업의 과정에 맞도록 유전적 균일성과 안정성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다양하고, 적응력이 있고, 역동적인 경향이 있는 소농의 씨앗, 또는 크리올로의 품종은 배재된다. 콜롬비아의 현행 규정에 따라 만약 농민이 크리올로 씨앗을 심고자 한다면, 그들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단 한 번만 5헥타르의 규모로 심을 수 있고 그건 전부 집에서만 소비해야 한다(시장에 내다팔 수 없다).

4 영화의 페이스북을 보고, 트위터의 #NoMas970을 지켜보라. 970법안이 시행된 지 3년(2010~2012) 만에, 정부는 약 4천 톤의 씨앗을 거부하거나 파괴했다. 




http://www.grain.org/article/entries/4779-colombia-farmers-uprising-puts-the-spotlight-on-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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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ers and genebanks, an alliance to save traditional crops from Agrobiodiversity Platform on Vimeo.



말레이사아부터 볼리비아의 토착 농경사회와 함께 농민과 종자은행이 토종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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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농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은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건 곧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먹고살 식량이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선진국은 돈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 그렇게 하기 힘들다. 그래서 현재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농업이 가장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하려면 농업 부문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농업생산성이 좋아져야지만 대부분이 소농으로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소농의 이탈은 곧 노동자의 양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의 선진국에 속한 기업들은 개발도상국의 농업개발에 아주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들이 경제성장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확대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국이 그러했듯이 현재 개발도상국의 소농들, 사람들도 큰 변화를 겪어야만 한다. 이농 현상, 토종 종자의 소멸과 새로운 하이브리드 품종(현재는 유전자변형 종자), 농업의 규모화와 현대화 등의 과정이 차곡차곡 진행될 것이다. 그 와중에 힘 없는 사람들이 스러져 갈 것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주류의 방향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도 존재한다. 아래 기사에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아프리카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권력과 자본은 물론 한국에서 일어났던 그 일을 아프리카에서 되풀이하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는 점이다. 난 그들이 현명한 길을 택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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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위험 속에 놓인 식량안보와 농민의 생계와 함께 케냐는 정책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만이 아니라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을 개선하고 확대에 의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지식과 국가의 생물다양성에 의지하는 것이다. 

전례 없는 기후변화에 직면한 소농들의 생존이 걸려 있다. 

농업부에 따르면, 약 800만 케냐 가구 가운데 500만이 직접적으로 그들의 생계를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그러나 케냐의 농민, 특히 소농은 극단적인 기후 조건 때문에 불확실한 시대에 직면해 있다. 

지난 영농철의 자료를 보면 국가의 주요 수자원이 그들이 과거에 활용했던 것보다 적게 생산되는 걱정스러운 최근의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케냐 산, 마우 산림구역, 아버데어, 체란가니 구릉, 엘곤 산에서 발원하는 강과 하천의 물이 현재 덜 생산되거나 건기에는 완전히 말라버리고 있습니다”라고 리프트 벨리 주 엘버곤(Elburgon) 농업지도소의 Joshua Kosgei 씨는 말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12/2013년 케냐에 대한 보고에서는 "단기 우기"인 10~12월 동안의 강우량이 평균 이하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건조한 기간이 이어져 싹이 제대로 트지 않아 3번까지 다시 심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며, 작물이 고사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케냐 농업연구소(KARI)에 따르면, 케냐의 전체 4000만 인구 가운데 1000만 명 이상이 대부분 식량구호로 생활하는 식량불안의 상태이다.

농업 부문은 이 동아프리카 국가의 GDP 가운데 약 25%와 적어도 수출의 60%를 차지한다. 정부의 통계는 소규모 생산이 적어도 전체 농업 생산의 75%와 농산물 출하의 70%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케냐 국립 통계국에서 약 11.7억 달러에 상당하는 국가의 최고 수출품인 차는 가장 위험에 처한 작물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차 생산자의 비용을 총 수익의 30%까지로 높일 수 있다고 추산한다.


케냐의 농민, 특히 소농은 극단적인 기후 조건 때문에 국가의 주요 수자원이 지난 시기보다 부족해지면서 불확실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차는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합니다”라고 센트랄 케냐 농업지도소의  Kiama Njoroge 씨는 말한다. “그 결과, 50만의 소농이 생계 불안에 직면해 있습니다.”

센트랄 케냐의 소농 Joel Nduati 씨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우리의 주요 문제입니다”라고 덧붙인다.

Nduati 씨는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물 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필요하지 않을 때는 물이 너무 많고, 이후 건기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작물 품종입니다.”

그러나 Kosgei 씨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방법은 이미 개발되었다. 부족한 것은 효과적으로 이를 농민들에게 전하는 것이라 한다. 

“예를 들어, 케냐 차 연구재단은 45품종의 차를 개발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것이 존재하는지 몰라서 아직 그걸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다섯 가지 새로운 감자 품종과 몇 가지 양배추 품종이 케냐 농업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현재 많은 농민들이 채택은 커녕, 이런 새로운 품종이 있었냐고 되묻습니다.”

이런 정보가 전파되는 일이 지도원의 부족으로 어려운 상태이다. FAO에서는 지도소 하나에 400명의 농민을 상대로 하라고 권장하지만, 현재 케냐는 지도소 하나에 1500명의 농민을 상대한다고 국제 농업농촌개발연합에서 지적한다. 

케냐의 소농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단 1/5만 생산하고 있다고 지도원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두가 Kosgei 씨의 처방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케냐 중부 지역의 농민이 강우량 주기가 바뀌면서 작물에 물을 주려고 우물에서 물을 퍼올리고 있다. 

“해결책은 광범위한 풀뿌리 생태농업 운동을 촉진하여 토착지식을 회복하는 데에 있습니다. 서로 함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 전략을 제공하는 방법입니다”라고 아프리카 생물다양성 네트워크의 책임자 Gathuru Mburu 씨는 말한다. 

“농민들은 화학물질을 남용함으로써 부적절하게 생산하고 있습니다. 농생태학은 동물의 분뇨를 활용합니다. 이전 수확에서 나온 잔여물도 거름으로 되돌려 농사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Mburu 씨는 설명한다.

르완다와 에티오피아, 가나 같은 국가가 토착지식을 활용함으로써 식량안보와 생계를 상당히 개선해 나아가고 있다며 Njoroge 씨는 동의한다.  

그러나 농생태학이란 방법은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기술을 외면함으로써 일부에게 공격을 받는다. 

"화학물질을 범죄시하는 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과학적 혁신을 수용해야 합니다"라고 생물다양성 연구원 John Kamangu 씨는 말한다. “우린 더 높은 기온과 폭우에 견딜 수 있는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변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Mburu 씨는 기후변화에 맞서는 전략으로 거대 다국적 농기업에게 의존하는 것에 반대하며, 아프리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아프리카의 정부들은 농업 부문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포기하고 있으며, 자금을 제공하면서 아프리카를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입니다. 그들의 종자는 재배하려면 더 많은 화학물질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종자들은 또한 특정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습니다”라고 Mburu 씨는 말한다. 

Kosgei 씨는 이러한 다국적 기업이 이익률을 중시하지 아프리카를 먹여살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Mburu 씨는 또한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는 방법으로 정부들이 국가 식량의 적어도 70%를 생산하는 소농을 해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한다. 

“다국적 기업은 비공식 부문, 즉 소농을 범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그 정책들 가운데 일부가 종자법과 반복제법입니다”라고 Mburu 씨는 설명한다. “반복제법은 인증된 종자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증받지 않은 토종 종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적용되면 더 이상 그걸 재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Mburu 씨는 이러한 종자들이 “기후변화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한 종자들은 수억 달러를 투자하는 세계의 6개 기업들에 의해 통제되며, 그 종자는 토종 종자와 비교하여 우리 생태계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http://www.ipsnews.net/2013/07/in-kenya-small-is-vulner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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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전문 농업도서관을 기획하는 분을 만나서 몇 가지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적극 권장했던 것은, 기존 도서관과의 차별성을 두려면 전문 농업도서관은 농사를 짓는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장소나 책만 빌려주는 공간으로 전락하면 기존의 농업도서관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 안에 텃밭이든 옥상텃밭이든 상자텃밭이든 마련하여 회원들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강좌도 열고 해야 활력이 넘치는 진정한 농업도서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러한 농업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이 바로 씨앗도서관임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하나둘 씨앗도서관이 만들어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귀농자가 많은 한국의 유기농 벼농사 1번지인 충남 홍성을 비롯하여, 각지에 귀농자들이 만든 작은 도서관들이 그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 미국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구나! 

미국은 참 재미난 나라이다. 유전자변형 작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대규모 단작이 가장 발달했으며, 농민은 인구 대비 별로 없는데, 또 이런 풀뿌리 운동은 잘 발달해 있다.

그만큼 우리보다 먼저 겪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래의 사례 소개는 간략하지만,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면 꽤나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참고로 한국에서 씨앗도서관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그 공간을 통해 토종 씨앗도 살아갈 틈바구니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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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미약했다. Rebecca Newburn 씨는 캘리포니아의 리치몬드 그로우 씨앗 대출 도서관이란 그녀의 도서관이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싹을 틔우고,  2010년 시작했을 때에는 공공도서관 중 첫 번째였다고 추정한다. Newburn 씨는 단 3년 만에 이러한 도서관들이 “곰팡이처럼 피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90개의 씨앗도서관이 있다. 

씨앗도서관은 공공돗관이 책을 빌려주는 방법과 비슷하게 씨앗을 빌려준다. 회원들은 공짜로 씨앗을 가져가서 심고 그 작물을 돌본다. 그러나 회원들이 반환할 때에는 토마토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그러면 도서관에서는 감사히 먹을 테지만). 그 대신 씨앗을 반환한다. 이 씨앗들은 다음해에 회원들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씨앗도서관을 시작했을까?

“공공도서관은 접근성이 좋고, 지역사회의 공유물이기에 맞춤하다”라고 Newburn 씨는 말한다. “우리의 사명과 그들의 사명은 긴밀히 아름답게 협력하는 것인 듯하다.”

“도서관은 문서를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이며, 그 조건은 실제로 씨앗을 조정하기에 정말 좋다”고 말을 이어갔다. “이곳은 어둡고 기온도 적당하며 모든 조건이 씨앗을 저장하는 데에도 딱 알맞다.”

Newburn 씨는 도서관을 시작했을 때 많은 자원이 없었지만,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중학교 수학과 과학 교사와 자칭 “조직의 여신” 새로운 도서관에 대한 찾아보기를 만들고, 도서관의 홈페이지에 씨앗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올렸다. 그녀는 또한 씨앗도서관 소셜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일도 도왔다.

Newburn 씨는 씨앗을 심었고, 공공도서관에 기반하는 씨앗도서관들이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여기에서는 다섯 곳만 다룬다.


캘리포니아 리치몬드 공공도서관의 Richmond Grows Seed Lending Library

이 셀프서비스 도서관에서는 회원들이 “로지 더 리버터Rosy the Riveter”(Newburn 씨의 변장)에서 강의에 참석하고,  씨앗과 재배 관련 정보를 얻고 천연염색을 할 수 있다.


코네티컷 페어필드 우즈 분관 도서관의 페어필드 우즈 씨앗에서 씨앗도서관(Fairfield Woods Seed-to-Seed Library)

지금 대풍이 들었다면 그 농산물로 무엇을 하겠는가? 도서관의 젖산발효 발표에 가입하라. 텃밭에 채소가 충분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지역 농민들의 꾸러미도 접할 수 있다.





콜로라드 웨스트클리프의 웨스트 커스터 카운티 도서관에 있는 웨스트클리프 씨앗 대출 도서관(Westcliffe Seed Lending Library)



록키산맥의 기후에 적응한 씨앗들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고, 모든 지역사회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의 목공예가가 씨앗을 넣는 서랍을 만들고, 지역의 기업이 맨 처음 씨앗을 기증했다. 






애리조나, 피마 카운티 공공도서관의 씨앗도서관(Seed Library)



사서 Justine Hernandez 씨가 자신이 일하는 도서관에 작은 씨앗도서관을 만들면서 지금은 7곳에 씨앗을 저장하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카운티의 28곳 도서관에서 목록을 검색할 수 있다. Hernandez 씨는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관심과 요구”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법으로 씨앗도서관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지역사회 텃밭만이 아니라 농민장터가 정말로 풍부해지고 있다.” 씨앗도서관은 이러한 추세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캐나타 토론토 그림스바이 공공도서관의 그림스바이 그로우(Grimsby Grow)


이 공공도서관 안에 존재하는 씨앗도서관이란 개념이 캐나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셀프서비스 용기에 회원이 직접 확인하고 씨앗을 반환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텃밭 농부들은 콩, 완두콩, 시금치, 상추 같은 식물을 심을 수 있다.



http://modernfarmer.com/2013/07/5-public-libraries-that-have-gone-to-seed-libr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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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인류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풍요로운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형마트나 시장에 가면 진열대마다 먹을거리들이 넘쳐나고, 식당에 가도 식재료가 끊이는 법 없이 줄기차게 요리가 나온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풍요로운 것이 맞는가?

우리가 먹는 음식에 쓰이는 식재료들을 가만히 놓고 보면 그렇다고도 하기 어렵다.

양은 많아졌지만 질과 다양성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산과 유통, 분배를 도맡는 기업들이 그것을 장악하면서 연구기관에서는 그들의 목적에 맞는 품종과 농법을 개발하기에 바쁘고, 정부는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이익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곤 한다.

대규모, 대량, 대형 같은 '거대한' 시대에 우리는 '강요된 풍요' 속에서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그맣고 다양한, 그래서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는 일은 지금 시대에 불가능한 것인가?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때 우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바로 그러한 쪽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은유적 표현이 많아 의역이 난무하니 영어 실력이 되는 분들은 원문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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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벙커(John Bunker) 씨



매년 가을 미국 메인 주의 COMMON GROUND Country Fair의 지속가능한 농업의 멋진 농산물 코너에 존 벙커 씨는 별난 사과를 진열해 전시한다. 지난 9월, 다시 한 번 가능한 한 크기와 모양, 빛깔 등이 다양한 사과를 가져갔다. 울퉁불퉁하고 작고 노란 건 웨스트필드(Westfield) 시크노퍼더(Seek-No-Further)라 하고, 자주빛의 자두 비슷한 건 블랙 옥스포드(Black Oxford)라 하며, 크고 붉은 줄무늬가 있는 건 울프리버(Wolf River), 토마스 제퍼슨의 과일 가운데 하나인 아소포스 스피첸버그(Esopus Spitzenburg)라는 것도 있다. 벙커 씨는 메인 주에서 "사과를 퍼뜨리는 사람" 또는 간단히 "사과 남자"로 알려져 있고, 반무명 상태에서 여러 해 동안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는 결코 더 요구한 적이 없다. Fedco Trees의 카탈로그를 통해 30년 전 우편주문 회사를 설립한 벙커 씨는 풀뿌리 사과 혁명의 씨앗을 뿌렸다. 


긴 주말 내내, 벙커 씨의 빛나는 사과들로 가득한 탁자에 사람들이 끌려오는 것을 보았다. 백발에 이가 빠진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가 벽돌색의 사과를 가리키며 "볼드윈(Baldwin)!" 하고 외쳤다. 이 사과는 1933~1934년 지독히 추운 겨울이 이를 무명의 상태로 처박아 넣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과 중 하나였다. "그건 최고야!"


금발의 여성이 놀라서 블루 페어메인(Blue Pearmain)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블루 페어메인"이라며 경탄했다. "엄마가 마당에 한 그루 가지고 있었어."


또 다른 여성은 파운드 스위트(Pound Sweet)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할머니가 파운드 스위트를 가지고 있었지! 할머니는 내가 빨래를 널 때마다 그걸 하나씩 줬어."


그냥 향수가 아니었다. 농가의 정보광들이 농장 계획에 벙커 씨의 축복을 받으려고 늘어섰다. "나는 사과를 따서 그대로 먹는 용도로 세 그루의 카바나(Kavanagh)와 두 그루의 콕스 오렌지 피핀(Cox's Orange Pippin)이 있고, 빵을 굽는 데 쓰는 울프 리버, 겨울 저장용 블랙 옥스포드가 있지만,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해요. 사과주스용으로는 무얼 추천하나요?" 62세의 벙커 씨는 뉴잉글랜드 슬레이트로 만든 것 같은 커다란 목소리로 조언을 해주었다.


대부분 땅을 산 뒤 진입로나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일부는 벙커 씨에게 아이폰에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메인 주의 Common Ground Country Fair부터 여러 로타리 클럽과 그가 강연하는 역사학회까지 벙커 씨가 다니는 모든 곳에서는 수수께끼의 사과를 식별해 달라고 요청을 받는다. 그는 기꺼이 해주는데, 그가 정말로 찾고 있는 것은 자신이 식별할 수 없는 사과나무이다. 그는 사과 탐정인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미국에는 식량작물로 개발된 수천 가지 품종의 놀라울 만큼 다양한 사과가 있었다. 그러다가 공업형 농업이 그 세계를 부수어 버렸다. 사과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는 몇 가지만 남겼고, 나머지는 잊혀졌다. 그들은 상업적으로는 멸종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다. 


버려지더라도 사과나무는 200년 이상 살 수 있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소년이 돌아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약 200년 정도의 수령인 늙고 구부러진 메인 주 할로웰(Hallowell)에 있는 블랙 옥스포드 나무에는 아직도 짙은 자주빛의 사과가 가을마다 달린다. 뉴잉글래드의 북부와 애팔래치아 산맥, 조니 애플시드가 사랑한 오하이오의 리버 벨리 같은 곳 —불도저도 도망간 농업의 한계지— 에서, 이러한 100년 이상의 나무들이 존재의 경계에서 깜박거리며 버티고 있다. 그들의 정체는 현재의 자택 소유자들에게는 수수께끼이곤 하다. 그리고 존 벙커 씨는 그 나무들이, 그리고 그가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구하려고 마음먹었다.


사과의 품종에 관해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사과는 씨앗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과의 과일은 모수, 즉 어미나무의 일회용 자궁인데, 거기 들어 있는 씨앗은 새로운 개별체로서 그 각각은 어미와 알 수 없는 아비에게서 받은 유전자가 독특하게 조합되어 있다. 그 조합은 봄에 벌들이 꽃가루를 묻혀 날아다니면서 수정이 되어 이루어진다. 그 씨앗이 나무로 성장하면, 거기 달린 사과는 부모와 닮지 않을 것이다. 그 사과들은 크기와 붉기, 당도 같은 품질은 우연히 재현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유전자의 배열이 필요하기에, 시고 작고 녹색을 띠곤 할 것이다. 그러한 묘목이 미국 농촌의 비포장도로 등지에 줄지어 서 있다. 


특정 나무에 달리는 사과를 좋아해서 그와 같은 나무가 더 많이 있기를 바란다면, 그걸 복제해야 한다. 원래의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서 살아 있는 밑나무에 접을 붙여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과 품종이 대대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모든 매킨토시(McIntosh)는 존 매킨토시가 1811년 자신의 온타리오 농장에서 발견한 원래의 나무에 접을 붙이거나 접을 붙인 것에 다시 접을 붙인 것이다. 모든 그래니 스미스(Granny Smith)는 마리아 앤 스미스(Maria Ann Smith)가 1800년대 중반 호주의 자기 퇴비더미에서 발견한 묘목에서 유래한다. 


현재 미국에서 많이 재배하는 사과 품종들.


그런데 때때로 그러한 묘목 가운데 하나가 특별한 무언가를 생산하곤 한다. 접붙이는 기술이 확산되면서, 그런 특별한 나무가 발견되면 복제되고 이름이 붙여졌다. 1800년대까지 미국은 세계의 다른 어떤 곳보다 각 지역의 기후와 수요에 맞춤한 많은 품종의 사과가 있었다. 어떤 건 7월에 익고, 어떤 건 11월에 익었다. 어떤 건 지하 저장고에 6개월이나 저장할 수 있었다. 어떤 건 빵 굽기나 양념에 최고였고, 대부분은 생으로 먹기에 너무 떫어 사과발효주로 만들었다. 농장에 정착하고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백만 개의 사과 씨앗을 심었던 미국 식민지의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사과가 사라졌다. 그 방법을 선도한 것은 존 채프먼(John Chapman), 일명 조니 애플시드였다. 그는 혼자서 많은 개척지의 묘목장에 수많은 씨앗을 심었는데, 이주자들을 끌어들일 생각으로 무상불하지의 일부에 50그루의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접목을 이해했다고 해도 이주자들은 아마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과 중 일부는 생으로 먹고, 더 많은 돼지를 먹이거나 발효시키려고 재배했지만 어느 일이나 너무 까다로웠다. 

벙커 씨는 이 시기를 위대한 미국의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미국 농무부나 대학(land grant college)도, 과수학회(pomological societies)도 없었죠." "풀뿌리 운동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육종가였죠." 농업이 공업화되면서 과수원의 규모가 더욱더 커졌다. 주의 농업지도서비스는 과수재배자들에게 맛과 향을 희생시키며 장거리 운송에 견딜 수 있는 몇 가지 품종에 집중하여 반짝이고 붉은 과실을 크게 생산하라고 장려한다. 오늘날 수많은 특별한 사과들이 사라지고 단지 몇 가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벙커 씨가 자신의 빛나는 사과를 전시하는 걸 보면, 사과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점점 좁아졌다는 것이 떠오른다. 이 다재다능한 과일의 종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시 A: 해리슨 사과(Harrison apple), 뉴저지 주 뉴어크의 자랑, 180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함, 세계에서 가장 좋았던 샴폐인 같은 사이다를 만듦. 그러나 해리슨처럼 좋은 사과발효주를 만드는 고탄닌 품종의 대부분이 금주령으로 사라졌다. (최근 부활한 사과발효주는 주로 생식용 사과로 만들어 맛이 없다.) 그러나 1976년 벙커 씨와 사과를 찾는 동료 중 한 명이 오래된 해리슨 사과나무 한 그루를 뉴저지 리빙스턴에 있는 문을 닫은 사이다 공장 부지에서 찾아, 그걸 접목하여 현재 새로운 세대의 해리슨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피노 누아르라는 포도주를 다시 발견한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왼쪽부터: 롤프(Rolfe), 울프 리버(Wolf River), 옐로우 벨플라워(Yellow Bellflower), 로드 아일랜드 그리닝(Rhode Island Greening), 블루 페어메인(Blue Pearmain), 카바나(Kavanagh)



농업생물다양성의 보존에 대한 일반적 논거는 단일작물이 병해충에 의해 전멸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옛날 사과의 일부는 사과 부패병에 대한 저항성 유전자가 있으며, 현대 과수원의 또 다른 재앙에 유용하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사과는 다른 작물보다 더 많은 농약이 필요하고, 그것이 현대의 사과 품종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꿈 같은 소리라고 무시하지 마라. 세계는 우리가 수많은 개성의 다양한 사과를 경험할 때 조금 더 즐거워질 것이다. 


벙커 씨의 사과에 대한 사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그가 콜비(Colby) 대학을 졸업한 뒤 메인 주 팔레르모의 마을에서 척박한 땅을 구해 농사를 시작한 해이다. 첫 해 가을, 그는 대부분은 무시했지만 십 몇 년 전 심어 당시 전성기에 이른 나무에서 사과가 익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걸 따기 시작했다.

"나는 마을에서 찾았고, 결국 메인 주와 다른 곳에서 이 나무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서 선물받은 것 같아요. 난 내가 이렇게 하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난 지구에 와서 모든 사과나무를 재배하고 결실을 이루는 놀라운 경험해보자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영역으로 나를 데려가 가진 것을 보여줄 고풍스러운 나무들이 옛 도로의 여행길에 나를 내려주었죠. 난 누군가의 문을 두드렸고, 다음은 당신도 알듯이 그들과 함께 먹었죠. 그건 끝없이 선물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난 이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즐기고 가 버릴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는 Fedco Trees를 설립했다. 이곳은 매년 희귀한 사과를 선택해서 그것이 덜 희귀해지도록 시도한다. 그가 이 잃어버린 고리의 하나를 찾으면, 그걸 Fedco의 묘목장에 있는 어미나무에 접을 붙이고 몇 년 뒤 그 나무를 판매한다. 벙커 씨는 지난 30년에 걸쳐 80~100품종을 망각으로부터 구했다고 추산한다. 그의 수사 기법은 줄기 주변의 구멍의 깊이를 공부하는 것부터, 접붙이는 흉터를 위한 원줄기를 확인하고 오래된 묘목장 목록과 역사적 기록들을 심사숙고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는 사과가 유래한 마을의 구멍가게에 "수배" 전단지를 붙이고, 역사학회의 모임에도 나누어준다. 전단지에는 "살아 있길 바랍니다: 내러갠싯 사과(Narragansett Apple). 요크 카운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 ... 1873년 메인 주 벅스턴의 Jacob H Harmon의 농장에서 유래함"이라 적혀 있다. 그런 다음 사과에 대한 그림과 설명 아래에 호소한다. "당신이 이 사과의 소재를 안다면 제발 Fedco에 연락해 주세요." 



그는 메인 주 윈스롭(Winthrop)의 자랑인 페어뱅크스(Fairbanks)와 네이키드 림드 그리닝(Naked Limbed Greening)처럼 100년 동안 들어보지 못한 한때 사랑받던 사과를 찾기를 꿈꾼다. 그의 현재 성배는 너무 맛있어서 1870년대에 영국으로 수출되었다고 하는 풍부한 맛의 노란 사과 블레이크(Blake)이다. 옛날 카탈로그와 원예 관련 도서에 따르면, 블레이크의 과육은 "질 좋고, 아삭하며, 파삭파삭하고, 약간 신" 맛으로 1800년대 중반 메인 주에 널리 퍼졌다. 블레이크 나무는 다른 사과나무들이 사과가 떨어지는데 반해 끝까지 달려 있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벙커 씨는 2011년 12월 포틀랜드 근처의 들판에 있는 노란 사과로 덮여 있는 오래된 나무를 발견하고는 혹시 블레이크가 아닐까 기대를 했다. 그곳은 1870년대 J.H. Blake가 소유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무는 블레이크가 아니라고 판명되었고, 여전히 탐험은 계속되고 있다.

설로(Thurlow) 씨는 예전 플레처(Fletcher) 타운의 중심지였다 버려진 교차로로 벙커 씨를 데려가 오래된 비틀린 나무를 가리키며 "내가 어릴 때 저 사과를 먹곤 했어요"라고 말하다. 그 나무는 거의 죽었다. 지상에서 약 5.5m 높이인 이 나무는 살아 있는 가지가 하나에, 몸통은 5cm 정도 너비의 껍질만 살아 있었다. 과실도 달리지 않았지만, 벙커 씨는 관심을 보였다. 몇 달 뒤 그가 돌아와 가지 몇 개를 가져가서 농장의 어미나무에 그걸 접붙였다. 몇 년 뒤 설로 씨와 그 나무는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접목한 것은 무럭무럭 자라 몇 년 뒤에 처음으로 과즙이 많은 그린 플레쳐 스위트(green Fletcher Sweet)라고 이름을 붙인 사과가 달렸다. "훌륭한 사과예요"라고 벙커 씨는 말한다. "굉장히 멋진 독특한 맛이 있어요." 현재 벙커 씨는 어린 플레처 스위트 사과나무를 링컨빌(Lincolnville)에 돌려주었다. 벙커 씨의 발견 가운데 최고의 하나는 자신의 연구에서 링컨빌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타난 플레처 스위트(Fletcher Sweet)였다. 2002년 그는 링컨빌 역사학회의 사람들과 만났다. 그들은 그 사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뉴잉글랜드 북부의 여러 다른 오래된 마을처럼 숲으로 재생된 링컨빌의 일부를 플레처 타운이라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회의 회원이 지역 신문에 "플레처"라고 부르는 옛날 사과를 찾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79세의 클라렌스 설로(Clarence Thurlow)라는 사람이 그 신문을 읽고 "플레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지만, 플레처 스위트가 있던 곳은 알아요"라고 전화했다. 

이것은 사과의 마법이다. 클라렌스 설로와 접목하지 못하면 새로운 걸 기를 수 없없는데, 그의 나무는 쉽게 복제되어 메인 주로 반환되었다. 현재 난 플레처 스위트를 한 입 베어 물고 설로가 80년 전 소년이었을 때 경험한 바를 그대로 알 수 있다. 나는 뉴타운 피핀(Newtown Pippin)을 씹을 수 있고, 토마스 제퍼슨이 파리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여기는 우리의 뉴타운 피핀과 비교할 만한 사과가 없다"고 아쉬워한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건 사과에 관한 것이면서 사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벙커 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한다. "나는 사과의 역사에 관하여 이야기했는데, 그거 압니까? 이건 농업 유산에 대한 내용이기에 매우 정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유산이 위험에 처해 있다. 산업화된 식량체계가 우리를 극소수의 사과 품종에 제한할 뿐만 아니라, 스위탱고(SweeTango) 같은 새로 출시되는 사과의 대부분이 그걸 육종한 사람에게 지적재산권이 있는 "클럽 애플(club apples)"이다. 재배자들은 특정한 그 나무를 재배하고 판매하려면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모든 사과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자신의 사과를 통제하는 농민들의 시간이 숫자로 세어질 수 있게 되고, 지식의 사슬을 끊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벙커 씨는 고심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상호작용할 때, 지구에서 함께하는 우리의 능력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하던 모든 물건으로 함축된다"고 한다. "우린 언어를 발명하지 않았다. 우린 옷을, 길을, 농업을 발명하지 않았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단지 받았을 뿐이고, 다음에 올 사람에게 줄 뿐이다."


COMMON GROUND Country Fair의 말미에, 나는 다시 찾으려는 그 이상의 사과가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괴상한 봄 날씨에 최근 사과의 생산이 최악이었다. 많은 나무에서 과실이 달리지 않았고, 평소보다 적은 사람들이 벙커 씨에게 자신들의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어느 멋진 젊은 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어쩐지 아미쉬 같아 보였다. 남자는 조끼와 밀집모자를 쓰고, 여자는 손으로 짠 리넨을 입었다. "이름 중에 '유령(ghost)'이라는 게 있나요?" 남자가 물었다. "우린 최근 가디너(Gardiner)에 오래된 나무가 좀 있는 땅을 샀어요. 95세인 이전 소유자가 그 이름을 알려줬습니다. 하나는 '유령'처럼 생겼어요."

벙커 씨는 "유령"에 가까운 이름을 가진 어떤 토종 사과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 뒤, 그는 고스트 사과를 조사하려고 여행을 떠났다. 그는 가디너의 집을 보자마자 희망이 샘솟았다. 그곳에는 전형적인 옛날식 헛간이 있었고, 앞마당에는 수령이 많은 배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50그루의 크랩(crab) 사과나무들이 집에 그늘을 드리웠다. 

단풍나무들이 집 뒤편을 장악했지만, 그들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오래된 유령들을 볼 수 있었다. 약 30그루의 옛 과수원이었다. 대부분은 죽었으며, 일부는 차츰 죽어가고 있었다.

유령은 스노우(Snow)의 틀린 이름임이 판명되었다. 1600년대 프랑스 정착민들이 재배하던 밝고 붉은 캐나다의 사과인 스노우는 매우 일반적이었다. 이 사과는 매킨토시에 가장 좋은 어미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 이름은 눈처럼 흰 과육에서 왔다. 벙커 씨는 "또는 유령처럼 흰"이라고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는 흔히 보기 어려운 미국의 오래된 사과 품종인 갈색에 솜털이 있는 락스베리 러시트(Roxbury Russet)를 확인했다. 어디서나 그랬기에 그는 특별히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런 다음 옛 과수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적어도 수령이 150년은 된 비틀린 나무에 다가갔다. 과실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땅 위에 이십여 개의 황금빛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벙커 씨는 하나를 주워서 손에 들고 살펴보았다. 그 사과는 황갈색 점에 자루 부분에는 황갈색 무늬가 있었으며 둥글고 단단했다. 그는 전에 이런 사과를 본 적이 없음을 즉시 알아채고, 전율과 함께 혹시 블레이크를 발견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매우 적은 수의 샛노란 사과들이 150년 전 메인 주에서 재배되었다. 그런데 그 과육이 "질 좋고, 아삭하며, 파삭파삭하고, 약간 신맛"인가? 그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이것이 블레이크임을 밝히려면 더 오랜 수사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더 나은 상태의 과실을 얻기 위해 내년 가을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위대한 미국의 농업혁명이란 유령이 더 이상 유령이 아님을 강하게 직감했다.



전국의 사과 탐정 모임(아래 지도를 클릭하시오) 

위의 사과 그림은 <Apples of New York>, Volume 1 Volume 2, 그리고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Pomological Watercolor Collection에서 가져옴. 



http://goo.gl/RJI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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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벼농사 모습을 보자.


먼저 지난해 잘 갈무리해 놓은 볍씨를 꺼내 못자리를 만든다.





못자리에서 모가 어느 정도 크면 물을 떼서 말린 뒤 모내기를 위해 모를 찐다.

적당한 크기로 모를 쪄서 단을 묶어 놓으면 됨.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뿌리가 쫙 흙을 붙들고 있어서 잘 안 떨어진다는 것이 힘듦.

바랭이나 피 같은 풀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모를 쪄서 단으로 묶어 놓으면 그걸 모내기하는 논으로 나른다. 

논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 놓음. 그것은 모내기 할 때 동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논에 거름도 좀 내다가 펼치고...





논도 쟁기질로 갈아엎은 뒤 물을 담아 잘 나라시(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바닥을 고르게 만드는 일)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시라는 말이 널리 퍼져서 아직도 쓰는 분들이 많다. 나부터라도 안 써야지.

네팔의 이 지역에서는 겨리 써레로 바닥을 고르게 써린다.





그러고 나면 모내기에 들어간다. 

논 옆에 있는 소쿠리에 쪄 놓은 못단을 담아서 옮겼나 보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본 조선의 모내기도 이러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못줄을 잡고 모내기하는 걸 옛날 방식의 농사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못줄을 이용한 줄모 내는 방식은 일제강점기 근대 농업이 들어오면서 퍼진 농법이다.

예전에는 못줄을 띄우지 않고 막모라는 걸 냈다.

그건 오로지 경험이 많은 농부의 감에 의존하는 농법이다.

어찌 보면 규격화되지 않은 낙후된 농법이라 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아주 효율적인 농법이라 할 수 있다.

전적으로 모를 내는 사람의 연륜과 경험, 기술에 의존하기에 그렇다. 사람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말이다.

근대 농법은 사람보다 체계와 규격 등이 더 중요해진다. 체계와 규격에 맞추어 교본대로 농사를 짓기만 하면 된다. 더하고 말고도 없다. 딱 그대로 따르면 예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근대 기술이란 것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벼를 수확해서 마당에서 잘 말린다. 

벼의 건조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일본의 밥맛이 좋은 이유는 이걸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최고의 밥맛을 내는 조건을 잘 맞추기 때문이다.





잘 말린 벼는 방아를 찧어 쌀로 만든다.

거기에서 검불과 싸라기 등을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렇게 키질을 하면 된다.

보기에는 간단해도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려운 기술이다.

채소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어렵다. 수확해서 먹는 과정은 정말 간단하다.

반대로 곡식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쉽다. 하지만 수확해서 먹는 과정이 정말 까다롭다.





마지막으로 오이밭에서 참을 준비하는 모습.

이것은! 한국의 토종 오이랑 똑같다. 네팔의 오이도 조선오이와 같은 계통이었어.

마운틴 듀가 인상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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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주감자를 수확했다.

사실 조금 더 놔두어도 괜찮았지만, 줄기가 병에 걸려 비실비실하여 그냥 모두 캤다.

아무래도 자주감자는 내 밭의 흙과 잘 안 어울리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감자들은 멀쩡한데 이것만 그렇다.

아니면 일찍 익는 품종인가? 그걸 확인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년에 다시 한 번 심어봐야겠다. 그래야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지.

여차하면 모두 다 쪄서 먹으려고 했는데 씨감자도 놔두어야겠네.


처음 9알을 심었는데 먹을 만한 것만 골라 65개를 거두었으니 약 7배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감자 한 그루당 7개 정도가 달린 셈이니 숫자는 괜찮은 편이지만, 확실히 개량종보다는 크기가 작다는 약점이 있다.


뭐, 양이 아니라 질로 먹는다면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영양가치도 그렇고.

오늘은 이 자주감자를 쪄서 먹어봐야겠다.



감자를 쪄서 먹다!


감자, 저는 별로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오늘은 맛을 보기 위해 수미감자와 자주감자를 쪄서 먹어보았습니다.




일단 처음 입에 들어온 느낌은 수미감자와 같이 점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찰박찰박거립니다. 

오물오물 씹은 뒤에 꿀꺽 삼키면 목구멍 쪽에서 약간 매운맛 같은 게 느껴집니다. 아린 건가?

아무튼 수미감자와는 다른 맛! 


이상 자주감자를 먹고 느낀 소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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