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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토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8년이다. 나는 2002년 무렵부터 귀농에 관심이 있어 농사 경험이라도 쌓자는 생각으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농사는 유기농업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농사를 짓다가 나의 눈은 자연스레 전통농업으로 향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농약과 화학비료 같은 농자재 없이도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하는 점이 너무 궁금했고, 당시의 좋은 기술이 있으면 지금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흙살림에서 조직한 ‘전통농업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우리 위원들은 노농들의 경험을 살피고자 전국 곳곳을 다니며 그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했다. 그렇게 몇 년을 다니면서 살펴보니 옛날 농사법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노농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러한 농법은 희미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흔적도 없이 말만 남아 있었다. 물론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소로 쟁기질을 하는 단양의 할아버지는 여전히 예전의 방법을 활용해 두둑을 지어 농사를 짓고 있었고, 풀을 매는 방법이나 작물을 돌보는 방법 곳곳에 예전 농법들의 흔적이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온전한 모습 그대로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너무 파편화되어 그걸 온전한 형태로 간추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딱 하나, 옛날의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씨앗이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스마트폰이 그런 위치이겠지만, 농부에겐 씨앗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즘 농부들은 그러한 씨앗조차 제 손으로 받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다. 농약방에 가면 수확량이 좋다는 씨앗들이 무수하게 널려 있으니 굳이 애써 씨앗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노농들에게는 적어도 한두 가지의 토종 씨앗이 존재했다. 그렇게 취재와 조사를 마치면 남는 것은 녹음기에 녹음된 노농의 목소리와 봉다리에 담긴 씨앗이 있었다. 그걸 가지고 돌아와 농지에 심고 가꾸며 씨앗의 숫자를 늘렸다. 그 일의 화룡점정은 농촌진흥청의 의뢰로 2008년에 있었던 “토종 유전자원 수집단”이었다. 안완식 박사를 단장으로 박문웅, 한영미, 안철환 선생과 함께 두 달 여 동안 강화도와 울릉도, 제주도 전역의 마을을 모두 돌아다니며 토종 씨앗을 수집했다. 당시 450여 점의 토종 씨앗을 수집할 수 있었고, 제주에서 수집한 토종 씨앗은 제주 여성농민회총연합에 인도하여, 현재 토종 씨앗 보전운동을 펼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토종 씨앗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토종 씨드림’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나도 그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토종 씨앗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토종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에 대하여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종 씨앗이 중요한 이유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농업생물다양성의 교두보’라고 이야기하겠다. 토종과 관련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마치 토종 씨앗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오해이다. 토종만 있으면 농약과 비료가 없어도 유기농업이 가능하고, 토종 씨앗이 신품종보다 훨씬 우수하고 뛰어나며, 토종을 먹으면 없는 병도 고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토종교’는 위태롭다. 믿음의 영역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토종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왜 우리의 농업에서 토종이 사라지게 되었고, 토종에는 어떤 특성이 있으며, 이러한 토종을 왜, 어떻게 보전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고민 없는 맹목적인 믿음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위험하다. 거기에 빠지면 자신만 옳고 다른 건 그르다는 태도를 취하기 쉽다. 그러한 태도는 상대를 죽여 없애려 하기 십상이다. 지금까지 그러한 태도로 인해 수많은 토종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우리는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일을 멈추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토종 씨앗이 지닌 함의도 ‘다양성의 공존’에 있다. 


농사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진다. 요즘 식물공장이니 수경재배시설이니 하는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마치 사람이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통제해서 생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물론 그렇게 하여 작물을 재배하면 그 기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외부의 오염원으로부터 안전하고, 여러 요소들을 통제하여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겠다. 그러나 거기에는 ‘관계들의 상호작용’이 빠져 있다. 그저 양분만 주입하고, 햇빛을 쪼이든 LED 광원으로 그를 대신하든지 하여 겉모습만 농산물을 생산할 뿐이다. 농사는 일종의 교향곡이다. 햇빛과 바람과 물을 바탕으로 하여 작물을 중심으로 흙과 그속의 다양한 미생물과 지렁이, 땅강아지, 두더지 같은 생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연주를 한다. 농부는 그 교향곡의 지휘자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지시하며 서로의 관계를 조율하는 데 도움을 줄 뿐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한두 명의 결원은 보충할 수 있겠지만, 전체를 다 담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기농업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유기농업의 ‘유기(有機)’라는 단어는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음이란 뜻이다. 즉, 농업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물에 이로운 상호작용을 하도록 농사짓는 것이 바로 유기농업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유기농업이 그저 농약과 화학비료 같은 화학 농자재만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인 양 호도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유기농가에서도 비료만 쓰지 않을 뿐 과다한 퇴비를 사용하여 땅을 망가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기농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화학 농자재만 쓰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며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유기농업에서는 참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물론 작물에 해를 끼치는 요소는 달가운 존재들이 아니다. 당장 유기농업을 실천하여 농약을 치지 않으면 병충해가 늘어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깨어진 균형을 다시 이루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매우 어려워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니 일반적인 농사에 비해 할 일도 많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농업생태계에 참여한 여러 요소들이 다양해지려면 논밭의 주연인 작물도 다양해져야 한다. 수만 평의 논밭에 똑같은 품종의 한 가지 작물만 재배되는 모습에 어떤 사람은 장관이라 여기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겠지만,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기도 하다. 경관이 획일화된 논밭에는 병충해가 찾아오기도 쉽고, 그 작물이 요구하는 양분도 모두 같기에 땅이 혹사를 당하기도 쉽고, 그에 찾아오는 미생물이나 곤충도 다양하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획일성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말 실수 가운데 ‘틀리다’는 표현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보면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표현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왜 다른 게 틀린 것이 되었을까 하는 건 나의 오래된 의문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우리 사회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과거 모두가 하나 되어 경제발전을 이룩하자며 온 국민의 군인화가 이루어지고 일반 사회는 군대의 연장선이 되었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 다양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처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몇 십 년 동안 이어졌으니 우리가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그저 다른 것일 뿐이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다양성들을 무시하고 짓밟아 왔다. 성소수자, 병역거부자, 장애인, 여성주의자 등등 이 사회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사람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짓밟혔다. 그 모습이 우리의 논밭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것이다. 수확량(경제성장)이 떨어지는 토종 씨앗(다양성)은 빨갱이로 내몰리며 논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농민들 역시 사회적 존재가 아닌가? 사회에서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심지어 신품종 통일벼를 보급하는 초창기에는 통일벼 이외의 다른 품종의 토종 벼로 못자리를 만들면 관련기관의 관리들이 나와 못자리를 밟아 망쳐 버리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에서 토종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최선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토종은 토종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토종 씨앗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어떠한 토종들이 있는지 이야기하겠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토종 씨앗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토종 씨앗이 농업생태계에 비집고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한 일이 농업은 물론,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토종 씨앗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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