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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란 무엇인가?


현재 세계의 인구는 60억, 올해 안으로 7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에는 90억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인구를 먹여 살릴 것인가? 핸드폰, 자동차 팔아서?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와 그걸 생산하는 농업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지금처럼 발전·개발의 길로 계속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부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룰 것이냐? 주류는 전자를 전제로 모든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솔직히 난 후자 -아웃사이더, 아나키즘, 마을 공동체 등- 에 더 끌린다.

아무튼 농업은 흙에 씨앗을 심어 작물을 길러 먹을거리를 거두는 구조이다. 그런데 현대 농업은 어떠한 모습인가?

독일에 하버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기체 상태의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하여, 1908년 낮은 온도에서도 높은 압력을 가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그리고 보슈라는 사람과 함께 이를 실용화하여 1913년 ‘하버-보슈법’이라는 대량생산 공정을 개발한다. 이로써 인류는 질소 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질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배경이 된다. 사실 주목적은 폭탄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이후 하버는 화학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를 반대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독가스를 만들어 살포한다. 그의 별명은 ‘독가스의 아버지’다. 이런 사람에게 노벨재단은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여한다. 노벨상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인데 질소(N), 인(P), 칼륨(K)이란 식물의 3요소가 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미량원소들을 먹고 사는 게 식물이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를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질소는 식물의 몸을 만드는 역할, 인은 탄소동화·호흡·당분과 관련된 활동, 칼륨은 증산과 광합성에 영향을 준다. 그중에 생산량과 직결되는 것이 바로 질소이다. 현재 농민들은 질소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준다. 크기를 크게, 수량을 많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질소 비료를 많이 주면 작물은 잘 큰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잘 먹어 키도 덩치도 크지만 힘이 없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영양이다.

그런데 옛날 작물들은 키가 큰 편이었다. 질소 비료가 값싸게 나와도 조금만 줬다하면 너무 자라서 쓰러져 버리기에 손실이 컸다. 그래서 육종학자들은 비료를 많이 주어도 쓰러지지 않고 수확량이 많아지는 작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선구자가 바로 노먼 볼로그이다. 그가 1944~1960년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육종한 밀 종자가 세계의 녹색혁명 바람을 일으키고, 그는 1970년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또 노벨상이다.

아래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보라색 실선이 바로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질소 비료의 양이다. 196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비료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육종법과 만나면서 나온 시너지 효과이다. 그럼 맨 앞의 인구증가 그래프를 다시 돌아보자. 우연히도 인구증가와 질소비료, 녹색혁명이 함께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덕에 이 세상에 태어난 잉여일지도 모른다.



현대 농업은 이렇듯 화학비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화학비료를 많이 주어 작물의 몸만 키울 경우, 그것을 먹고자 병해충이 많이 달라붙게 된다. 살찐 사람에게 이런저런 성인병이 잘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그걸 방제하고자 농약을 만들어서 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화학비료에 기반하는 현대 농업은 어쩔 수 없이 농약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를 갖는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감소한 농촌 인구를 빼먹을 수 없다. 화학비료와 녹색혁명이란 위대한 과학기술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럼 남아도는 일손은 어디로 가는가? 바로 도시로 몰려든다. 달동네, 도시빈민이 탄생한 배경에는 농촌 인구의 감소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인구의 80%가 농민이었던 농경 국가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로 산업화·도시화를 거쳐 현재는 300만 명 정도, 곧 6%의 농민이 농촌에서 아직도 우리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급률이다.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쌀이 남아돈다고 식량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착시현상을 벗어날 몇 가지 통계를 보자. 전체 식량 소비량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된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키는 식량자급률은 1970년 81%에서, 90년에 43%, 현재는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참고로 일본은 40% 정도이다. 그나마 쌀이 100% 넘는 자급률이기에 이 정도 수준이지 밀 0.5%, 옥수수 4.9%, 콩류 29.5%로 그 현실은 참담할 정도다. 참고로 1970년까지 콩의 자급률은 86%였다. 이제 알겠는가? 산업화·도시화→농민 인구 감소→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제 농민도 산업 인력의 하나로 돈이 되는 작물만 주로 재배하고, 자급을 위한 먹을거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농사지어 내다팔고 그 돈으로 마트에서 다른 농산물을 사다 먹는 구조랄까.

아무튼 우리나라의 자급률이 떨어진 데에는 가축 사료의 수입도 한몫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가축은 사람보다 더 많은 곡물을 먹는다. 연간 곡물 소비량이 2000만t 정도인데, 그중에 47%가 가축의 사료이고 사람이 먹는 것은 29%일 뿐이다. 육식주의는 세계 식량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불러온다는 사실. 우리는 육식도 채식도 아닌 곡식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이, 농사짓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얘기 잠시 샛길로 샜다. 농촌 인구의 감소는 일손이 줄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그 공백은 무엇이 메우는가? 바로 농기계다. 허나 우리나라의 지형으로 인해 거대한 농기계는 쓸모없는 돈덩어리일 뿐이다. 농기계는 미국처럼 드넓은 평원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잘 어울리는 도구이다. 우리와 같은 소농의 나라에서 농기계는 돈 먹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또한 1980년대 백색혁명이 일어나면서 비닐을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다. 비닐은 김을 매야 하는 일손을 덜어주는 한편, 지온을 상승시켜 작물을 크게 빨리 자라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허나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자란 작물은 고유한 힘이 없다. 그저 크기만 클 뿐이다.

이렇게 현대 농업은 화학비료, 농약, 육종 씨앗, 농기계, 비닐 등으로 대표된다. 이 모든 것(육종 씨앗은 별도로)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석유라는 자원에서 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현대 농업은 석유 농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석유와 관련하여 피크오일이란 소리가 나돌고 있다. 생산량이 최고점을 쳤다는 말인데, 이제 생산량이 서서히 감소하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맞다. 석유 값이 오른다. 석유 값이 오르면, 그에 기반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 문명의 위기가 닥친다.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를 것이다. 특히 석유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있는 현대 농업은 제대로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량가격 상승에 따라 잇달아 일어난 혁명은 이제 세계 혁명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물론 잘 사는 선진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나라는 개발도상국이고, 그 개발도상국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도 팍팍해지리라는 것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자,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기존의 가치를 준수하며 그 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생태농업이 그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쿠바라는 나라가 있다. 쿠바는 소련이 살아 있을 때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지해 대규모 단작 농업으로 생산한 사탕수수를 수출하고, 석유와 식량을 수입해서 먹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자급율은 40%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련이 붕괴된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쿠바는 심각한 경제난과 에너지난 등에 시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그런데 이런 쿠바가 선택한 길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가까운 이웃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지만, 쿠바는 생태농업을 선택해 자급율 100%에 도전하여 아직 단 1명의 아사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북한과는 그 자연조건이 다르기에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상징적이지 않은가?

생태농업이란 말 그대로 화학비료와 농약 같은 자재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생태계와 그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효과(천적, 작물의 특성과 성질, 거름) 등을 활용하는 농업을 말한다. 물론 생산량은 현대농업에 비하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태농업이야말로 에너지를 적게 쓰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며, 물질로 채우는 행복이 아닌 진정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자세로 사는 방법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그리고 생태농업은 현대농업에서 쓰는 자재를 활용하지 않는 만큼 전통농업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전통의 재발견과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에서 행하고 있는 생태농업의 방법은 이렇다.


1) 케냐의 농법


2) 과테말라의 농법 - 벨벳콩이란 덩굴이 지는 콩이 있다. 농민들이 옛날부터 밭에 심어오던 것인데, 농학자들은 그 효용도 모르고 화학비료와 하이브리드 종자를 쓰는 농법을 보급했다. 그러면서 이 벨벳콩을 함께 심으면 수확량이 감소한다고 못 심게까지 했다. 하지만 콩은 훌륭한 질소고정 식물로서 거름의 효과와 함께 열대우림인 이곳 과테말라에서는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3) 잠비아의 농법 - ‘무군가’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아카시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특이하게도 건기에 잎이 나고 우기에는 잎을 떨군다. 그래서 이곳의 농민들은 이 나무를 심고 그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써 왔다. 아카시나무가 지하수를 확보해주며, 콩과인 아카시나무가 질소를 고정하는 역할까지 한다. 거기에 떨어진 잎도 훌륭한 덮개이자 거름이자 사료가 된다. 이걸 발견한 세계 혼농임업센터의 학자가 현재 아프리카 곳곳에 이 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4) 온두라스의 농법 - 숲속에서 농사를 짓는 렌카족이 있다. 그들은 숲에 불을 내는 화전농업이 아니라 나무를 관리하며 그 사이에 농사를 지어 살고 있다. 가지치기로 얻은 부산물로 흙을 덮어 갈아엎지 않아도 좋은 흙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5) 우리나라의 농법 - 다르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중심이 된 소농의 농사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그마한 자투리도 허투루 방치하지 않는 소농의 농사, 다양한 작물의 사이짓기와 돌려짓기를 활용, 계절과 기후에 맞춘 농사, 거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 콩과 작물을 활용 등등을 살펴보면 좋다.

현대농업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생산을 이루려는 자연 수탈 농업이다. 그래서 현대 농업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지력의 고갈과 토양 침식, 병해충 만연, 휘발성 시장가격에 따른 변동, 농가부채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하여 생태농업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지금의 농민 숫자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농부가 되자! 자신의 먹을거리를 가능하면 내 손으로 지어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농부를 돕는 지름길일 수 있다. 우리는 농부와 경쟁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순간 농부는 우리를 믿고, 우리는 농부를 믿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공존·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한때 유기농이 엄청나게 뜬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게 돈이 된다는 소문에 이제는 몬산토나 카길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 대규모 유기농 단지를 조성해 유기농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유기농은 답이 아니다. 농약을 치더라도 지역의 먹을거리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을 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씨앗을 돈 주고 산다고?


현재 종자 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씨앗을 만들어 사고팔고 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육종가는 ‘농부’다. 농부가 대대손손 거쳐서 선별하고 심어온 토종 종자가 미래의 희망을 안고 있다. 지구는 점점 기후변화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이 직결되는 곳이 바로 농업이다. 이에 대응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대안은 바로 유전자조작으로 대표되는 생명공학이다. 우리는 과학자Scientist와 기술자Engineer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진리와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이고, 기술자는 자본과 결탁된 그 무엇이다.

노만 볼로그의 시대만 해도 육종이라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냈다. 허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자연은 배제한 채 씨앗에 장난을 치고 있다. 이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일부 실험에서 그 위험성이 드러나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0억으로 불어날 인류에게 은혜로운 일이 될지 끔찍한 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실.

세계 종자 시장의 규모는 79조 원이다. 이 어마어마한 사업을 몬산토, 카길, 신젠타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다. 그들의 현재 주력 사업은 유전자조작 작물이다. 현재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들의 씨앗+비료+농약+사용법 교육이란 패키지 상품이 팔리고 있다. 우리의 종자회사들도 모두 그러한 다국적 기업의 소유다. IMF 때 김대중 정권은 시장을 개방하며 우리의 종자산업을 모두 외국에 팔아넘겼다. 외제, 국산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중요한 기간산업을 민영화한 것이 바로 문제. 이제 농민들은 그들에게 꼬박꼬박 해마다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상품성 좋은 고추씨는 1000개 한 봉지에 10만 원에 육박한다.

원래 씨앗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었다. 집에서 자신들이 먹을거리를 해마다 손수 씨를 받아 심고, 그중에서 좋은 놈으로다가 다시 씨를 받고, 이듬해 다시 심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이 땅의 자연조건에 최적화되면서 육종이 되었다. 그래서 ‘농부가 최고의 육종가’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 농부는 ‘최고의 소비자’ 신세로 전락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바로 농사의 산업화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가. 물론 돈은 가장 효과적인 교환수단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돈이란 가치로 환원이 되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나 생명과 관련된 것을 돈으로 따진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당신이 생명은 얼마인가? 당신은 한 달에 얼마나 자신의 생명력을 자본에 갖다 바치고 그 대가를 얻는가? 그 대가로 얼마를 받는가? 그걸 돈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런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토종 종자가 가진 중요성은 다양성의 보존이란 측면에 있다. 다양성, 우리는 다양성이 없는 사회다. 다양하면 어지럽다며 하나로 통일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다. 하지만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개의 순종을 생각하면 쉽다. 훌륭한 혈통의 애견 한 마리를 만들고자 같은 혈통끼리 교배시켜 얼마나 많은 삐꾸들이 탄생하고 죽임을 당하는지 알면 놀라 자빠질 정도다. 순수한 혈통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열등함을 탄생시킨다. 유전적으로 다양하게 섞인 것일수록 강하고 예쁘고 어떠한 조건에서도 살아남는다. 바로 토종 종자가 그렇다. 그것이 가진 다양성(잡박함)이 생명력 가득한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토종이 다양한 지역이야말로 생물종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라는 사실이 1900년대 초반 러시아의 학자 바빌로프에 의해 밝혀졌다. 그리고 또한 토종이 다양한 지역이 문화도 다양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곧 작물다양성→생물종다양성→문화다양성→건강한 사회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양한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구조가 바로 생태계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밝힌 사실은 뉴튼의 말처럼 어린아이가 바닷가에서 발견한 몇 개의 조개껍데기일 뿐이다. 요즘 과학계의 이슈는 복잡계이다. 모든 것이 서로 복잡다단하게 얽힌 구조를 인정하자. 그 구조를 인정하고 그 구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다 제자리, 제 역할이 있는 법. 그걸 찾아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생태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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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ed.com/talks/lang/ko/cary_fowler_one_seed_at_a_time_protecting_the_future_of_food.html




종자은행보다 더 좋은 방법은 농가에서 토종을 보존하는 일! 그래서 소농이 중요하고, 그래서 토종이 중요하다! 지금으로선 종자은행이 최선인 듯하지만, 결국은 토종과 소농이 최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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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ttp://worldagroforestry.org/newsroom/media_coverage/statement-dennis-garrity-high-level-dialogue-un-forum-forests-9-2011


동남아와 중미, 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에서 혼농임업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Dennis Garrity의 연설문. 핵심은 비닐이 아닌 풀이나 잔가지 등으로 땅을 덮어 토양침식 등을 막는 법, 질소고정균을 활용하여 땅심을 높이는 법, 더 나아가 이를 통해 기후변화 등에 대처하는 법이 핵심. 혼농임업, 곧 전통농업에서 산을 이용하는 법을 응용한 것의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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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근(84), 임순희(74) 두 내외가 농사짓는 전형적인 가족 중심의 소농 농가. 자식들은 모두 분가(도회지에서 직장 생활)하고 현재 두 내외만 살고 있다.



마을의 위치 :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 솔안말(지도의 빨간 표시 부분). 괴산군은 산세가 험준하여 대부분의 마을이 지도와 같이 골짜기,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 또한 중부 내륙 한가운데 위치하여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하다. 연평균기온 9°C 정도로 낮은 편이고, 1월 평균기온 -5.7℃, 8월 평균기온 22.8℃로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강수량은 1155mm로 여름에 집중호우가 잦은 편이고, 태풍 피해는 그다지 많지 않음. 하지만 겨울이 춥고 길며 눈이 많이 온다.



집의 위치와 밭 : 우리가 찾은 안달근 할아버지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편이라 아직도 손수 1000평 밭의 농사를 짓고 있다. 집은 전형적인 남남서향으로 밭도 집과 바로 붙어 있다. 고랑의 방향은 아래쪽 큰길 방향으로 나 있다. 그 밭의 생김은 아래와 같다. 사진에 보이듯이 직사각형의 터의 한쪽에 집이 들어앉아 밭은 전체적으로 사다리꼴의 모양이다. 넓이는 대략 3300제곱미터, 곧 1000평쯤. 또한 50평 정도의 텃밭이 집 앞마당에 바로 붙어 있고, 거기에는 대추나무 2그루가 있으나 1그루는 바이러스로 괴멸 상태. 또한 집 주변의 자투리 땅을 이용하여 여러해살이인 부추나 덩굴성의 호박과 같은 작물 등을 심어 이용하고 있음.



밭의 전체적인 모습 : 밭은 크게 6개로 구분이 된다. 집은 구옥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신옥이 있는데, 구옥은 아무도 살지 않고 창고 식으로 쓴다. 6번 텃밭에 두 그루의 대추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나 오른쪽의 나무는 바이러스로 태워 없애지 않으면 옆의 것까지 전염될 지경이다. 각 밭의 농사법은 사진 자료를 보며 다시 설명(아래 그림은 넓이의 비율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니 위치만 참조할 것).



각 밭의 농사법 :


1번 밭; 팥+콩 섞어짓기와 콩+옥수수 섞어짓기 - 전체를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두둑을 지어 거기에 한 줄로 콩을 심고, 나머지 반에는 팥을 심는다. 그리고 그 고랑에는 옥수수를 띄엄띄엄 섞어짓기한다. 옥수수와 옥수수 사이의 간격은 약 6m. 옥수수도 줄을 지어 심는다. 


1번 밭과 2번 밭 사이에는 수수(장목수수)를 줄지어 빽빽하게 심는다. 수수를 이렇게 빽빽하게 심는 이유는 지난해 고추를 심어 땅에 거름기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거나, 양옆으로 콩과 녹두가 자라고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2번 밭; 녹두 - 녹두는 두둑을 지어 그 위에다 그냥 심음. 올해는 비가 자주 오고 기후가 좋지 않아 제대로 영글지 않았다. 이곳에 녹두 이외의 다른 작물은 심지 않은 까닭은 지난해 여기가 고추를 심었던 자리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래의 사진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을 듯하다.



3번 밭; 고추 + 팥 - 고추는 대표적인 돈벌이작물로서, 이 농가도 고추를 팔아서 가계소득을 올리고 있다. 괴산은 청결고추라는 상표의 고추가 유명한데, 여기서 청결은 품종의 이름이 아니라 씻어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괴산 지역 토종 조사를 통해 이번에 이육사와 청용이란 토종 품종을 발견했으나, 이 농가는 그냥 F1종자를 구입하여 쓰고 있다. 고추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두둑을 짓고 비닐을 덮고 줄지어 심고, 사이사이에 지주를 박은 다음 줄은 3번 띄워준다. 이때 찾았을 때는 끝물고추를 갈무리하려고 고추대를 모두 뽑아 놓아 고추가 말라 가고 있었다. 고추 농사법의 특이한 점은 바로 고랑에다 팥을 심는다는 점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려는 전형적인 소농의 농사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한 고랑을 건너 팥을 심어 놓았다. 여기에 심은 팥은 위의 1번 밭의 팥과는 다른 품종. 교잡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리고 고랑을 건너뛰어 팥을 심은 이유는 고추와 관련된 일을 할 때 이동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고추 농사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고추밭을 활용하여 김장거리를 심는다는 것이다. 몇 번에 걸쳐 고추를 따고 나면, 이제 고추는 그냥 걷어치우고 그 자리를 이용하여 김장거리(배추, 무, 갓, 쪽파 등)와 집에서 먹을거리(아욱, 당근 등)를 심는다. 그 모습은 아래의 사진들과 같다.



여기서 잠깐, 고추밭과 바로 이웃한 4, 5번 밭 사이의 일부 고랑에는 집에서 먹을 대파를 심는다. 대파는 고추와 궁합이 잘 맞는 대표적인 작물이다. 대파의 향이 고추에 생기는 벌레를 쫓아주는 효과가 있으며, 또 거름만 충분하다면 대파와 고추의 미묘한 경쟁관계가 서로를 자극하여 더 잘 자라도록 해준다. 아래 사진과 같이 3번과 4, 5번 밭의 고랑을 활용하여 대파를 기른다.


또한 밭의 가장자리에는 군데군데 덩굴강낭콩을 심어서 수확하고 있다. 풀을 잡기 위해 차광막을 깔기도 했는데, 덩굴강낭콩이 점유한 공간에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점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4번 밭; 참깨+들깨 섞어짓기 - 참깨와 들깨도 이 농가에서 주력하고 있는 작물의 하나이다. 저장성이 좋고 시세가 그런대로 괜찮기 때문에 선택한 돈벌이작물인 듯하다. 아무튼 두둑을 지어 비닐을 덮고 참깨를 줄지어 심고, 그 고랑에는 들깨를 심는다. 참깨는 들깨보다 먼저 심으며 옆으로 가지를 뻗기보다는 위로 자라는 습성이 있고, 들깨는 참깨 이후에 심어 참깨를 벨 무렵에 옆으로 무성히 자란다는 성질을 활용하기에 섞어짓기가 가능하다. 또한 참깨가 다 자라서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들깨가 자라면서 받쳐주기에 지주나 끈을 띄울 필요가 사라진다는 장점도 있다. 구체적인 모습은 아래와 같다. 


하지만 줄을 띄워야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아래와 같이 들깨가 참깨를 받쳐주지 못하는 부분인 밭의 끝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두 줄만 띄워도 되니 자원도 비용도 노동력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5번 밭; 땅콩+팥 섞어짓기 - 먼저 두둑을 짓고 비닐은 덮지 않은 채 땅콩을 심어서 기르고, 그 사이에 팥을 심어 섞어짓기한다. 땅콩을 걷어낼 무렵이면 팥은 아래와 같이 되는데, 올해는 기후가 좋지 않아 자람새가 좋지 않다. 



이상 각 밭의 넓이를 대략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콩, 팥 200평

녹두 50평

고추 300평, 9두둑

들깨, 참깨 300평

땅콩 30평




마지막으로 6번 텃밭은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상추, 결명자, 부추, 쪽파, 도라지, 대파, 실부추, 겉절이 거리 등등등 집에서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심어 그때그때 뜯어다 먹는다... 사진을 참조.






마지막으로....


텃밭에서 그날 먹을 반찬거리를 마련하는 임순희 할머니. 사진에서와 같이 이 텃밭은 약을 치지 않는다. 하지만 늘 꾸준한 관리를 받기에 농사에 해가 되는 풀은 찾아볼 수 없고, 나물로 먹을 수 있는 풀들만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이날 안달근 할아버지는 장목수수를 수확하고 있었다. 


장목수수는 베어낸 다음 이제는 보기 힘든 지게에 실어서 집까지 나른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는 평생을 소농으로 살아온 두 내외의 손길과 솜씨가 여기저기 묻어 있다. 아래는 안달근 할아버지가 손수 엮은 삼태기. 아직도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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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은 '농민의 길(Via Campesina)'이라는 국제 농민단체 연합에서 주장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국내외에서 생산되는 어떠한 농산물이더라도 자국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식량안보'와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식량주권의 이론적인 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업정책의 목표는 식량 자급에 있어야 한다.

둘째, 한 나라의 국민은 그 사정에 알맞게 식량의 생산양식과 소비양식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며, 이 각각의 양식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놓인 국제 무역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식량의 생산과 소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복리에 맞춰 방향이 정해져야지 다국적 농산업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넷째, 각 국가의 식량 체계는 1차적으로 국내 시장에 맞춰 국민의 건강에 이로운 양질의 식량이 생산, 거래되어야 한다. 또한 그 나라의 문화에 적합한 것을 생산하되, 저질 먹을거리나 정크푸드는 막는다.

다섯째, 농촌이 피폐해지고 그로 인해 도시의 빈민가가 거대해진 것은 농업과 농촌이 공업과 도시에 예속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이제 그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여섯째, 토지개혁을 통해 일부 지주와 다국적 기업이 지나치게 소유한 농지를 회수해 균등히 재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재분배된 토지는 공동체나 집단의 형태로 소유하고 생산하도록 한다.

일곱째, 농업 생산은 소농과 협동조합, 국영기업이 주로 담당하고, 식량의 분배와 소비는 농민과 소비자의 권리와 복리를 고려해 공정한 가격으로 국가에서 관리한다.

여덟째, 유전공학 등의 생명공학에 바탕하는 기업농과 화학적 기술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녹색혁명은 지양한다.

아홉째, 전통농업의 기술은 인간과 자연이 바람직한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해 온 것으로, 그 안에는 커다란 지혜가 담겨 있다. 따라서 전통농법이 현대농법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 "The Food War," Walden B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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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가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농업을 개선하려면 지역의 소수민족이 행하는 전통농업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과학협회Indonesian Institute of Sciences(LIPI)의 과학자 요하네스 푸르완토Yohanes Purwanto 씨는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토종 작물이 작물종을 개선하기 위한 자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토종 보호에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과학협회에 연구 교수로 임명될 때 행한 취임사에서 그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민족식물학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인도네시아의 많은 토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요하네스 씨는 생태학과 진화학을 공부한 투키린 파르토미하죠Tukirin Partomihardjo와 인류학을 공부한 요하니스 하바Johanis Haba라는 다른 두 과학자와 함께 연구 교수에 임명되었다.

 

그는 민족식물학 연구는 소수민족의 지역사회에서 쓰던 토종을 감정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한다. 민족식물학 연구는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지식이 자연 자원을 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것은 토종을 보존하려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생물다양성의 가치는 여전히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불법 벌목과 벌채로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토종을 보존하는 대신 숲을 마구잡이로 개발하도록 허용하는 다양한 정책을 공표하고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또 그는 대규모 단작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농업 부문에서는 전통농업을 무시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두 가지 정책은 생물다양성의 지속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지역의 지혜로 개발한 전통농업과 그 체계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요하네스는 그의 연구가 지역사회가 그들의 전통적인 지식을 사용해 숲을 보호하고 세대를 이어 귀중한 토종을 보존할 수 있었음을 보여줄 거라고 말한다. 그는 파푸아Papua에 있는 발리엠Baliem 계곡의 다니Dani라는 마을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소수민족보다 더욱 앞선 고구마를 기르는 수준 높은 재배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늪지대, 평지, 산간 지역이란 서로 다른 세 곳의 생태계에 알맞은 세 가지 농사법이 있다. 다니 마을을 연구하여 100가지 이상의 고구마 (Ipomoea batatas), 15가지의 바나나(Musa spp), 8가지의 사탕수수(Saccharum officinarum), 4가지의 붉은과일red fruit(Pandanus conoideus) 등의 풍부한 토종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모두 가치 있는 유전자원입니다”라고 요하네스 씨는 말한다. 또한 동東 칼리만탄Kalimantan에 있는 다약 켄야Dayak Kenyah 마을은 타낙 울렌tanah ulen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보존 기술이 있고, 한편 람펑Lampung에 있는 크루이Krui 마을은 다마르damar라는 전통적인 혼농임업 체계가 있다.

요하네스의 연구에서는 그들의 지식이 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연결망과 경제에도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어받은 지역의 지식으로 자연자원을 개발하려고 하는 지역 행정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민족식물학 연구와 함께 전통적인 향약초 치료법이 고혈압, 비만, 고지혈증, 당뇨병, 암과 심지어 에이즈와 같은 인도네시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질병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지식은 토종을 보존하는 의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translated by 김서방.

 

출처 http://www.thejakartapost.com/news/2011/01/04/knowledge-local-plants-offers-numerous-benefi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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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골드스미스의 취재기

 

 

 

초기 농업은 비생산적이라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미래에 가장 희망적인 농업이다. 농민인 무디얀세 테네쿤Mudiyanse Tennekoon 씨는 스리랑카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의 선지자이다. 그는 농사지으며 쿠레네갈라Kurenegala의 작은 마을에 산다. 최근 그는 FAO나 특히 세계은행이 스리랑카에 도입한 집약적인 근대농업 체계의 파괴성과 반생산성을 인식한 사람들 사이에 꽤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근대농업에 비판적인 두 박식한 남성과 함께 그와 만났다. 한 사람은 국무총리의 아들 두들리 세나나야케의 조카인 우팔리 세나나야케Upali Senanayake 씨, 다른 한 사람은 스리랑카의 전통 삶을 연구하고 있는 공무원 구나세카라Gunasekara 씨이다(에드워드 골드스미스Edward Goldsmith는 “생태주의자Ecoligist”라는 잡지의 편집자이다).

 

에드워드 스미스와 무디얀세 테네쿤 씨.

 

 

 

예전에 사람들은 자급했다

 

골드스미스(이하 G) : 이 지역의 평균적인 농장 크기는 얼마인가요?

테네쿤(이하 T) : 보통 가구에 2500평 이하입니다.

 

G : 자급하고 있습니까?

T : 유감스럽지만 아닙니다. 아버지 대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소금과 옷뿐만 아니라 전등에 쓸 등유도 사야 합니다.

 

G :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습니까?

T : 할머니는 자신과 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땔감을 하고 부대밭을 만들던 숲인 첸나chenna에서 목화를 길렀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러고 있습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미Mee 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미 오일을 썼기에 등유는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미 나무의 묘목을 심는 영국인 고등판무관(출처 구글).

 

G : 미 오일은 요리에도 자주 쓰나요?

T : 네, 또 약으로도 썼습니다. 코코넛 오일도 그렇구요.

 

G : 인도처럼 현지의 장인들과 옛날처럼 물물교환을 했습니까?

T : 네, 10년 전 마을에서는 도공과 대장장이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식량을 주고 항아리나 도구와 바꾸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상점에서 이런 것들을 사야 합니다. 게다가 매우 쓸모 있던 점토로 만든 항아리는 이제 구할 수 없습니다.

 

G : 항아리는 주로 무엇을 담는 데 썼나요?

T : 물을 저장하는 데 썼습니다. 왕겨를 채워 그것을 태워 몇 시간 지나 재가 되면 씻어 내고 물을 넣습니다. 이렇게 물을 차갑게 보존했습니다.

 

G : 그거 끝내 주네요. 그런 지식은 아버지가 가르쳐주나요?

T : 물론입니다. 모든 농민은 연구자이자 교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민이 아닙니다.

토지와 기후, 용도에 맞는 300종류 이상의 벼를 재배했다

 

G : 여기에서는 몇 종류의 벼를 재배했나요?

세나나야케(이하 S) : 예전에 스리랑카에서는 280종을 재배했는데, 지금은 15~20종만 남았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그 이외의 품종은 절멸되어 버렸습니다(D.Dreberg에 따르면 1974년에는 300~400의 벼 품종이 재배되었다<superintendent of school gardens quoted in C. Wright, Glimpses of Ceylon>).

T : 저는 지금 123종의 붉은벼를 기억하고 있는데, 남아 있는 건 겨우 3~4종뿐입니다.

 

G : 이러한 품종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T : 먼저 우리는 두 번의 농사철에 맞는 다른 품종이 필요합니다. 북동 계절풍과 관련된 마하Maha와 남서 계절풍과 관련된 야라Yala라는 두 농사철이 있지요. 마하 기간에는 ‘4개월’이라 부르는 품종을 심습니다. 그 이름처럼 자라는 데 4개월 걸립니다. 야라 기간에는 ‘3개월’이란 품종을 심습니다. 마하 기간의 품종에는 갈색과 흰색의 무룬가카얌Murungakayam, 웰라 일란가리야Wella illangaliya, 혼다라와라Hondarawara, 간가라Gangala, 베루위Beruwee가 있습니다. 야라 기간의 품종에는 다하나라Dahanala, 콕칼리Kokkali, 칸니 무룬가Kanni Murunga, 파츠하 페루말Pachha Perumal, 쿠루위Kuruwee, 수반델Suvandel이 기억납니다. 또 ‘6~8개월’이란 품종인 마위Mawee도 길렀습니다.

 

G : 마위는 무엇인가요?

T : 그건 승려를 위한 겁니다. 불교의 승려는 정오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다음날 아침까지 몸을 유지하려면 영양가 높은 음식이 필요합니다. 마위는 매우 영양가가 높고, 단백질 함량도 높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재배한 까닭입니다.

 

G : 그밖에 어떤 품종이 있었나요?

T : 아기 엄마를 위한 헨나티Heenati를 길렀습니다. 지방과 당분이 많아 젖이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농사철에도 그것을 길렀습니다. 또 논에서 일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많아 힘이 나기에 칸니 무룬가를 길렀습니다. 그것은 전통 의식에 쓰는 우유를 만드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수반델은 독특한 향 때문에 길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품종의 일부는 특히 논에 물이 충분할 때 길렀습니다. 반면 물이 별로 없을 때에는 다른 품종을 썼습니다. 물이 많은 곳에 쓰던 품종을 구델Goodel 또는 고다Goda라 부르고, 뒤의 것은 마다위Madawee 또는 알위Alwee라고 합니다. 어떤 품종은 특히 질퍽한 곳에 알맞은 게 있고, 또 진흙이 적은 고지대에 알맞은 품종도 있었습니다. 또 아주 기름진 흙에 필요한 품종도 있고, 매우 척박한 흙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품종은 다른 품종보다 해충에 강해서 전통적인 해충 방제법이 실패했을 때에는 다른 품종보다 그걸 심었습니다.

새를 위한 벼농사, 새는 그것을 알고 있다

 

G : 논의 해충을 방제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T : 해충은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하나는 토종 벼는 줄기가 길어 바람에 날려서 곤충이 줄기에 붙어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즘 나오는 하이브리드 품종은 줄기가 짧고 훨씬 단단하여 해충이 붙어 있기 쉽습니다. 또 신품종 벼와 달리 토종은 잎이 커서 늘어지며 그늘을 만들어 풀이 자라는 것도 막았습니다. 벼는 특히 생육기 중에 짧지만 결정적인 기간인 약 2주일(이삭이 패고 나서 약 2주일의 물알들 때) 동안 해충을 예방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는 가족 모두가 경계 태세를 취해 어떠한 비상사태에도 대처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늘 하던 일은 다럭daluk이란 선인장 수액을 논에 넣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곤충을 물리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벼가 누렇게 물들면, 우리는 알곡이 생기기 시작할 때까지 논의 물꼬에 대나무 잎을 묻었습니다. 이 단계(물알들 때)에 알곡은 아직 거의 액체입니다. 그래서 곤충에게서 벼를 보호하려고 승려가 버린 옷을 구해다가, 그것을 코코넛 오일에 담가서 심지를 만듭니다. 그 다음 그걸 논의 이곳저곳에 불을 밝혀 놓지요. 승려의 옷에는 밝은 노란색 채소의 염료가 포함되어, 그걸 태울 때 빛과 함께 해충을 물리치는 매우 강한 냄새가 납니다. 또 다른 장치는 여기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의 잎을 부수어 가루를 내서 액즙을 만들어 논의 물꼬에 붓곤 했습니다. 이 액즙은 물에 떠서 벼의 둘레에 붙는데, 그것은 결정적인 2주일 동안 벼를 먹는 해충인 고드웰라Godwella를 죽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논의 네 귀퉁이에 마크라Makra 잎을 모아서 말린 걸 층층이 쌓았습니다. 또 거기에는 카두라Kadura의 나뭇가지도 심었습니다. 그것은 논의 벌레를 끌어 모으는 코코넛 등불의 받침으로 썼습니다. 또 점성학으로 점을 쳐 가장 좋은 날을 정해 볍씨를 심었습니다. 저는 이것도 해충의 침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이것과는 별도로 하던 일은, 강바닥에서 모래를 긁어모아 논과 관개수로에 뿌렸습니다. 이것도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또 바라밀에서 끌어낸 매우 끈끈한 물질로 긴 밧줄을 만들어, 아이들이 논을 가로질러 줄을 질질 끌면 논의 벌레가 거기에 달라붙습니다. 그게 아니면 둠말라Dummala라고 부르는 나무의 진을 스며들게 한 여러 헝겊 조각을 묶어서 이걸 끌고 다녔습니다. 피노비아Pinovia란 특별한 도구를 손에 든 아이들이 논에 들어가 수면에 있는 벌레를 잡기도 했습니다.

S :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매우 복잡한 농업 형태가 가능하려면 온 가족의 협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개발의 여파로 가족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세대가 끊기고, 그것을 실천할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서양에서 행해지는 매우 파괴적인 근대농업에 의지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T : 그렇습니다.

 

G : 서양에서는 그런 방법을 ‘생물 방제’라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했던 겁니까?

T : 네, 사실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해충 방제법의 하나는 코코넛 껍데기를 부수어 논의 네 귀퉁이에 뿌리는 겁니다. 이것은 데말리츠츠Demalichch 또는 일곱 자매라 불리는 회갈색 새를 불러옵니다. 새는 부수어진 코코넛을 먹거나 논의 해충도 잡아먹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2주일 동안 벼를 먹는 벌레인 고드웰라를 잡아먹지요.

 

G : 해충 방제를 위한 전통 의식이 있나요?

T : 우유를 끓여서 흘러넘치게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우유가 항아리에서 흘러 나온다’는 것을 뜻하는 ‘키리우투루네와kiriuturunewa’라고 불렀습니다. 논의 주요 해충인 벼멸구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해충을 물리치는 데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 다른 의식은, 논 한가운데에 장식을 단 장대를 꽂는 것입니다.

 

G 설치류는 어떤가요? 그게 옛날에도 문제였나요?

T : 쥐를 잡는 데에는 미Mee 나무의 동쪽에서 캔 뿌리의 네 조각을 묻고서, 그걸 논의 네 귀퉁이에서 태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쥐는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G : 새는 어떤가요.

T : 각 논의 농사가 끝나는 쿠룰루 팔루와kurulu paluwa라는 시기에 새를 위해 조그만 부분에 벼를 길러서 잘 대처했습니다.

 

G : 그런데 어떻게 새가 그 벼가 자기 것인지 알았나요?

T : 우리는 몇 천 년 동안 이 일을 했습니다. 새에게 어느 것이 자신의 논이고, 어느 것이 우리 인간의 논인지 가르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론 새들은 좀처럼 우리의 논 지역에 침입하지 않았지만, 침입하더라도 벼의 해충이나 ‘고드웰라’를 먹거나 아이들이 내쫓거나 했습니다.

S : 마법 같은 해충 방제법은 없습니다. 우리 농민은 모든 해충을 피할 수 있는 ‘기적의 품종’이나 ‘기적의 화학물질’을 팔려고 하는 서양의 과학자를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산업사회가 붕괴되고 서양의 과학자들이 사라진 훨씬 뒤에도 논의 해충은 주변에 있겠죠.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충들과 함께 살며 그 약탈을 조절해야 합니다. 각각의 방법은 조그만 기여밖에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아버지에게서 아이에게로 이어질 겁니다. 아이들을 도시의 학교에 보내 당신의 서양 과학적인 미신을 가르치지 않을 때에만 이 일이 가능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완전히 협동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작업한 시간마다 임금을 줘야 하는 종업원으로는 이러한 협동을 결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질소고정 나무와 과일박쥐의 똥이 거름

 

G : 논의 땅심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A : 매우 많은 방법을 썼습니다. 하나는 논에 미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미는 콩과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합니다. 이전에는 1헥타르에 20그루를 심었습니다. 잎에도 질소가 많은데 그 아래에 쌓여 덮였습니다. 또 매우 흥미로운 것은 과일박쥐가 미 나무의 열매를 좋아해 과실이 익을 때에는 엄청나게 모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질소를 많이 함유한 박쥐의 똥도 중요한 거름이 되었습니다. 또 첫비(Akwassa) 전에 볍씨를 심어 질소를 얻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비에는 많은 질소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쏘라Thora, 안다나Andana, 히리야Hiriya, 니디쿰바Nidikumba, 필라Pila라고 부르는 수확철 사이에 여러 콩과의 풀이 논에서 자라도록 했습니다. 그것들은 논의 옆이나 위에 자리한 작은 구역의 놔두는 땅인 필레와스Pillewas에서 자랍니다. 콩과의 풀씨는 필레와스에서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농사짓지 않았습니다. 또 그곳은 쟁기질에 부리는 물소가 쉬는 곳도 됩니다. 물소의 똥은 비가 내리면 아래쪽의 논으로 흘러와 이것도 거름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똥을 누거나 오줌을 누는 곳도 필레와스에 자라는 떨기나무의 그늘입니다. 이것도 땅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근대적인 개발로 논의 면적을 늘렸기에 필레와스도 농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땅심의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또 이미 말했듯이 전통적인 벼 품종은 줄기가 길어 지금처럼 줄기가 짧은 품종보다 논에 돌려주는 볏짚이 많았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각 마을의 뒷산에는 정글이 우거지고, 거기에서 ‘저수지’로 흘러와 논에 물을 댈 때 쓰는 물이 흘렀습니다. 정글이 주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홍수가 나면 논으로 흘러오는 흙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방법을 써서 우리는 땅의 힘을 유지했습니다. 그것들이 기능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지요.

 

 

근대 보급(하이브리드) 품종은 가뭄에 약하다. 수확량이 늘어난 것도 수분이 많을 뿐

 

G : 화학비료는 쓰려고 했습니까?

T : 네, 이 몇 년은 화학비료가 필요한 하이브리드 벼를 재배했기에 그래야 했습니다.

 

G : 쌀에는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T : 제 논은 1200평입니다. 풍년일 때에는 2800kg을 생산합니다. 우리 가족이 1년에 2100kg을 소비하기에 풍년일 때에는 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급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잉여물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아마 제 아버지 대에는 필요한 것이 적어서 논의 생산력도 적었을 겁니다. 또 그는 매우 많은 품종을 심었기에 해마다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생산했을 겁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해에 맞부딪쳐도 어떤 품종은 잘 자랐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품종은 현재 심고 있는 하이브리드 품종만큼 가혹한 상태에 취약하지 않았습니다. 가뭄이 나면 하이브리드 벼는 말라 버립니다. 지금 해마다 가뭄이 지독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정글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하이브리드 벼는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갈무리해 놓으면 2~3개월 뒤에는 곰팡이가 핍니다.

 

G : 토종은 얼마나 보존하나요?

T : 적어도 3년은 갑니다.

구나세카라 : 저는 아버지가 아직 저장고에 3년 전의 쌀이 있는데 어머니가 햅쌀로 밥을 짓는다고 뭐라 하시던 일이 기억납니다. 보관 방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쥐가 들지 않는 대에 놓인 커다란 흙항아리에 보관했습니다. 항아리는 숨구멍이 있어서 쌀이 숨을 쉬고 서늘하게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라임 잎으로 안을 대고, 카라Kara의 잎도 해충을 쫓는 데 유용했습니다.

 

G : 근대적인 하이브리드 벼의 보관성이 나쁜 것은 수분 함유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화학비료를 쓰면 생산물의 무게는 늘지만, 이는 주로 수분 함량 때문입니다. 만약 말려서 재면 비료를 쓰지 않는 경우와 거의 같은 무게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유럽에서 두 연구를 통해 제3세계의 저장 문제는 주로 이 늘어난 수분 함량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는 서섹스Sussex대학, 다른 하나는 UNEP에서 실시했습니다.

T : 어떤 경우 하이브리드 밀은 밀가루를 만들어 먹어도 아무 맛이 없습니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저는 하이브리드 벼농사를 그만두고 다시 토종으로 농사지을 계획입니다. 허나 문제는 씨앗을 찾는 일인데, 우리는 서로 전통농업의 체계로 돌아가는 걸 도울 수 있도록 현지의 농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옛날 체계에는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이제는 생산할 수 없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예전에는 생산했다는 점입니다.

물고기가 없어졌기에 말라리아가 늘었다

 

G :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요?

T : 먼저 예전에는 바울루Baulu, 위라Weera, 바라밀, 힘부투Himbutu, 우드 애플Wood Apple, 히말라야 야생배와 아보카도 등 많은 먹을거리를 구하려고 자주 정글에 갔습니다. 지금은 정글이 벌목되어서 이제는 그런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정글을 재생해야 합니다.

또 예전에는 시내, 저수지, 물을 채운 논에서 수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룰라Lula, 카와탸Kawatya, 하다야Hadaya, 아라Ara 등의 물고기는 말라 버린 못에서도 살았습니다. 적어도 이 지역에서 이것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정부가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틸라피아Tillapia에게 먹혀 버립니다. 정부는 틸라피아는 식물만 먹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것들, 특히 논에 사는 물고기는 농약의 독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물고기도 더 이상 살지 않기에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모기 유충이 현재 건기에도 살아남습니다. 그 결과 말라리아가 이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저수지에서 번식하던 룰라는 피를 만드는 기능이 있어 늘 임산부에게 먹이던 가치 있는 물고기였습니다. 저수지에서 잡을 수 있던 다른 물고기로는 로랄레Lorale, 페티야Petiya, 히리카나야Hirikanaya, 와라야Walaya, 안다Anda, 안쿠타Ankutta도 있었습니다. 특히 코랄레Korale는 매우 맛있는 물고기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단지 틸라피아만 있을 뿐입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모든 토종 물고기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토종 물고기에는 모두 특별한 용도가 있습니다. 틸라피아는 논에는 넣지 않고 저수지에서만 서식합니다. 이 변화로 우리의 식사와 인생도 눈에 띄게 빈한해졌습니다.

 

우드 애플.

 

 

 

부대밭 농업이 부정되었다

 

G : 그밖에 어떤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었나요?

T : 많은 식물성 먹을거리를 저수지에서 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연밥, 일종의 연의 씨앗입니다. 또 연의 푸른 줄기도 먹었습니다. 게다가 저수지에서는 연근도 자랐고, 카케티의 뿌리로 가루도 만들고, 망고·바나나·코코넛·바라밀·후추·병아리콩과 콩나물 등도 구했습니다. 아직 어느 정도는 재배하지만 그것들은 옛날 것이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부정적인데, 우리는 첸나chenna나 부대밭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논농사에 맞지 않는 마을 뒷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몇 년 농사지은 뒤 그곳을 버리면 정글이 재생하는 데에 10~14년이 지나면 회복되었습니다. 각 가족은 약 600평 정도 농사지었는데, 그곳은 사유지가 아닌 마을 공유지였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기른 주요 작물은 조, 쿠루켄Kuruken 외에 건조 곡류였습니다. 요즘은 인구가 늘어나 그 주기가 정글이 완전히 화복할 수 없는 4~5년으로 짧아졌습니다. 현재 첸나 재배는 정부에서 장려하지 않고, 예전에 이 목적으로 쓰던 대부분의 땅은 그에 적합하지 않게 영구적으로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바라밀.

 

 

말라리아의 전통적인 특효약을 정부가 금지했다

 

G : 실제로 모든 전통식에는 약효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효과적인 말라리아 전통요법도 있었나요?

T : 매우 효과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알려져 있듯이 반자Banja나 간자-마리주아나Ganja-marijuana를 씁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약품의 하나로, 예전에는 ‘온 세계에 이길 수 있는 잎’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약효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루로 내 홍차처럼 우려서 자게리jaggery(Kittul palm으로 만든 설탕)를 넣습니다. 그것은 말라리아에 유일하게 효과적이었는데, 해충에도 유효했습니다. 또 피에 흡수되는 시간을 줄이려고 우리는 다른 먹을거리와 섞어서 그것을 먹기도 했습니다. 벌꿀에도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구나세카라 : 16세기에 스리랑카에 난파되어 왕의 죄수로 17년 동안 지낸 영국인 로버트 녹스Robert Knox는 반자를 실론의 말라리아 요법이라 불렀습니다. 그 식물은 ‘세 세계의 지배자’라고 불렸습니다.

 

G : 약용으로 아직도 반자를 씁니까?

T : 아니요. 지금은 정부에서 금지했습니다.

환경에 맞지 않는 일본의 모내기 기술을 정부가 강제하다

 

G : 어린모일 때 모내기하여 수확량을 늘린다고 하는데, 이것을 하려고 합니까?

T : 정부에서는 그것을 강제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 기술을 일본인에게 배웠습니다. 일본의 벼농사 지역 대부분에는 보통 3주일 정도 이어서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벼가 논에 있으면 손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온실 안에서 씨앗을 심어 서리로부터 보호하고,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스리랑카에서는 모내기한 뒤에 모가 아프다는 걸 알면 회복에는 최대 2주일이 걸립니다.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화학비료를 쓰는 것이고, 약한 벼의 해충에게는 농약을 뿌리는 것입니다. 모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첸나 농사나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등 다른 활동을 방해합니다. 정부에서는 두그루짓기가 아닌 세그루짓기를 해야 한다고 열성입니다. 정부의 주장은 근대농법에 따를 때 가능한데, 벼멸구가 영구히 서식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시간이 걸리며 사회생활을 포함하여 우리의 여가 활동에 참견하는 셈입니다.

 

 

트랙터는 땅심을 저하시키고, 실업을 늘린다

 

G : 트랙터를 쓰려고 했습니까?

T : 저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은 농민이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소만큼 좋지 않습니다. 한 쌍의 물소는 약 900kg의 무게이고, 그 발은 논의 흙을 밟는 데에 알맞은 모양입니다. 그 결과 논에는 물이 빠지는 걸 줄이는 점토와 딱딱한 표면이 형성됩니다. 한편으로 진흙 위쪽을 휘저어 무르게 합니다.

물소는 1년에 약 680kg의 똥을 싸고, 오줌도 많이 쌉니다. 모두 엄청 땅심에 공헌합니다. 한편, 트랙터는 논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트랙터가 지나간 곳은 점토층이 파괴되어 물이 지하로 침투됩니다. 트랙터를 쓰면 대량의 물이 필요한데,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또 흙을 뒤섞어서 가벼운 유기물이 표면에 떠올라 홍수 때 떠내려가 버립니다. 그래서 트랙터를 쓰면 땅심의 저하로 이어지는 겁니다. 트랙터는 똥이나 오줌도 싸지 않고, 흙을 만드는 데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식사에 매우 중요한 우유와 기ghee(불순물을 뺀 탈지유), 커드curd도 만들지 못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것은 번도 못합니다. 한 대가 죽으면 다른 트랙터를 사와야 합니다.

물론 트랙터는 노동력을 절감시키고 늘 얘기하지만, 저의 직업은 늘 논밭에 나가야 하는 농업입니다. 그것이 저의 삶입니다. 물론 저는 하루 종일 자고 싶지도, 이웃과 한담을 나누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높은 실업률의 나라에서 노동 절약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옛날에 노동 절약 장치는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가족과 지역사회가 온전하여, 충분한 사람들이 쟁기질, 씨뿌리기, 수확, 저수지 유지에 나섰습니다.

저수지 부흥에는 전통 문화의 부흥도 빠질 수 없다

S : 만약 그런 협동이 없었다면 저수지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나 폴로나루와Polonaruwa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어쩌면 현 인구와 필적하는 1500만 명이란 인구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G : 정부는 지금 옛 관개 체계를 복구하려 하지는 않나요?

세나나야케 : 그들은 세계은행의 원조로 많은 저수지를 복구했습니다. 하지만 큰 저수지만 그렇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큰 저수지는 마을의 작은 저수지가 침전물로 막히는 경우에만 유용합니다.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이 관개 당국의 일인데, 관료 제도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마을의 사회구조가 붕괴된다면 침전물로 막힐 겁니다. 전통농업을 회복하고 싶다면 먼저 사회생활과 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T :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복구해야 하는 것은 저수지가 아니라 모든 저수지 농사의 체계입니다. 관료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5개 유형의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마을의 위에는 정글에 파 놓은 숲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관개가 아니라 정글에 사는 야생 동물에게 물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몇 천 년이나 걸려서 동물들은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배웠고, 물을 구하려 마을에 내려와 농업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저수지는 산의 저수지입니다. 그곳의 목적은 운하가 아니라 첸나에서 농사짓는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포타 웨팅PPota Wetie으로 알려진 모래막이 저수지입니다. 그것은 쉽게 준설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저장용 저수지로서 보통 그것은 2개가 같이 있어 쌍둥이 저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은 차례대로 쓰여서 한쪽이 유지되는 동안 다른 하나가 쓰였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마을 저수지로 이어졌습니다.

S : 이러한 저수지는 전통 농촌에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는 사원이나 논도 없는 건조한 지역의 저수지가 없는 마을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마을의 세 가지 기본 구성요소는 사원(불사리탑), 논(Kumbura), 저수지(Wewa)였습니다. 물론 테네콘 씨가 말했듯이, 그것 말고도 중요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위쪽의 정글, 채소밭과 첸나 농사가 이루어진 떨기나무숲입니다.

T : 물론입니다.

 

G : 전통적인 마을은 어떠했습니까?

T : 집들을 매우 가깝게 붙여서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귀중한 땅을 최소한으로 차지하도록 했습니다. 이 배열은 마을의 빠질 수 없는 협동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여러 이웃의 아이를 맡았습니다. 작물 수확과 저수지를 유지하는 등 많은 사람이 필요할 때 이것은 중요했습니다.

 

G : 저수지를 유지하는 조직은 어떻게 되나요?

T : 그것은 왕의 권한인 라자카리야Rajakariya 봉사의 일부였습니다. 누구나 1년에 40일은 이 봉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왕의 개인적인 욕심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구나세카라 : 실제로 어떤 왕은 라자카리야의 일이라며 캔디Kandy에서 자신의 왕궁 정면에 있는 인공 호수의 진흙을 치우라고 시켰는데, 사람들이 ‘이는 지역사회의 일이 아니다’라며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왕의 개인적인 책임이라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S : 물론 영국인들은 라자카리야의 완전한 원칙을 오해하여, 학정이라 여기고 캔디의 봉건적인 과거의 유물이라며 철폐시켰습니다. 이는 영국인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일의 하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협동의 원칙을 파괴한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초보적인 모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익을 위하여 아직도 1년에 14일은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970년에 관개 당국이 최종적으로 폐지한 관습입니다. 관료들은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그것은 봉사를 위한 수요를 감소시켰습니다. 만약 라자카리야 체계가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면, 관개 당국의 관료들은 전혀 필요 없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저수지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이지만, 그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G : 저에게 말한 모든 이야기를 통해 서양식 기술 농업의 모든 선물을 완전히 거절하는 것이라 해석해도 좋습니까?

T : 그렇습니다.

 

G : 옛 농민들의 전통농법을 좋아하는 거네요.

T : 네, 좋아합니다만 모든 여건이 가능하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관점으로 보면, 저는 ‘자급 농민’이기에 가난합니다. 서양식 교육도 받지 않아서 무교육자입니다. 특히 저의 모든 지식, 전통과 문화는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정규 경제로도 다룰 수 없기에 실업자라고 합니다. 저는 시장에 공헌하고 있지 않으며, 거지라고까지 불렸습니다.

 

 

스리랑카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S : 이 모든 것이 금세 바뀔 거예요. 당신이 모범이 되어 우리의 전통을 배우려고 젊은이들이 모일 겁니다. 지금의 경향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플랜테이션을 계속하려고 정글을 모조리 베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속도로 토양침식이 늘어나고, 저수지는 진흙으로 틀어 막히고 있습니다. 모래막이 저수지나 쌍둥이 저수지, 마을의 저수지를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완전히 침전물로 저수지가 막힌 마을도 존재합니다. 당장은 누구나 시내와 도시로 이주하려 합니다. 현재 콜롬보에는 10년 전에는 없었던 커다란 빈민가가 있습니다. 지금의 경향이 계속되면 콜롬보는 캘커타처럼 되어 버리겠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식량을 시장경제에 의존하게 되고, 그 가격은 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보다 수출하는 돈벌이작물을 생산하려 하고, 습지 지역에서 우리 토지의 절반이 묵혀지고 있습니다. 또는 마하웨리 계획을 세워 커다란 댐 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의 농업 체계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물론 현재 우선시되고 있는 개발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를 서양과 같은 열대판 산업 국가로 바꾸려는 시도는 자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섬뜩한 영양불량과 기아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 스리랑카에 있어야 할 것은 과거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농장 앞에 선 테네쿤 씨.

 

 

<참고자료>

Edward Goldsmith, Traditional Agriculture in Sri Lanka, interviews Mudyanse Tennekoon, Goviya: Traditional Sri Lankan agriculture,2000.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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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다

 

 

 

 

 

 

가우제Gause의 법칙을 넘어서

 

 

생태학에는 ‘가우제의 법칙’으로 알려진 법칙이 있다. 러시아의 생태학자 게오르기 가우제가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두 종류의 짚신벌레로 실험하여, 같은 생태적 지위에 있는 복수의 종은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법칙이다. 그렇지만 실제 생태계에서는 한정된 자원만 있는 바다 속에서도 수많은 플랑크톤 종이 살고 있다. 이 ‘플랑크톤의 역설’처럼 가우제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례는 많다. 그것은 시간적인 어긋남이나 먹이 등에 의하여 경쟁을 배제한 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글에서 인도의 발라수브라마니안A.V.Balasubramanian 박사가 전통농업의 지혜를 부활시키고자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를 세웠다고 적은 바 있다. 박사는 생화학과 생물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1982년 이후 인도의 전통 과학기술을 이해·연구하고,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건강법에 관심을 가진 많은 기관 및 조직과 연대하고 있다. 요가, 아유르베다, 전통적인 관개, 선주민의 연금술과 전통적인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케랄라주Kerala州의 코치Kochi에서 Bharathaaya Vichara Kendram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이 얼마나 가우제의 법칙을 회피하여 왔는지를 강연했다. 그 요지를 소개하겠다.

 

 

 

 

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지 않는다

 

 

인도는 야생 동식물 자원의 난개발을 억제하는 전통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인도의 마을에서는 공유지로 마을숲을 유지해 왔다. 지역사회는 마을숲을 보호하며 신중히 활용해 왔다. 이러한 숲에서 땔감 들을 수확하는 데에는 특정한 규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우타라칸드주Uttarakhand州의 차몰리현Chamoli縣의 고페슈워Gopeshwar의 마을숲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각 가정에서 한 사람만 땔감을 모을 수 있다. 그 결과 다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완전히 숲이 벌채되었지만, 이 마을의 숲은 아직 잘 보전되어 있다.

 

 

자원 이용에는 계절적인 규제도 있다. 예를 들면 힌두교의 달, 사라바나Sravana(8월 중순~9월 중순)는 인도 전 지역에서 우기의 최고조인데, 많은 카스트가 물고기·가금류·육류의 소비를 완전히 삼가여 모든 사냥이 멈추는 기간이기도 하다. 곧 어느 특정한 야생 식물의 수렵은 1년의 어느 시기에 의식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의 우타라칸드주 우타르카시현Uttarkashi縣의 주콜 파나가리Jhukol Panagari 지역에서는 종교 제의의 시기에만 나크두르Nakhdur로 알려진 식물의 덩이줄기를 일부 수확한다. 이 시기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의 난다데비Nandadevi 근처 고산의 꽃밭이 만발하는 때이다.

 

 

우타라칸드주의 테흐리-가르왈현Tehri-Garhwal縣의 야무나천Yamuna川의 담수어는 독과 그물을 써서 잡는다. 그리고 독살된 물고기는 육식 카스트가 소비하는데, 그물로 하는 어업은 1년 내내 허용되지만 독은 하천의 유량이 많고 또 독의 영향이 시간적으로 꽤 한정된 축제가 열리는 며칠만 허용된다.

 

 

 

 

카스트마다 분야를 특화하다

 

 

인도의 부족사회는 저마다 수렵 구역이 있는 수렵채집민족으로 구성되는데, 이 수렵 구역은 최근까지 카스트제도에 의해서 계승되어 왔다. 그곳에서는 이용되는 동식물에 대한 개발압이 균등히 분산되어 왔고, 각 카스트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자원을 계승할 필요성을 의식하며 생활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는 것을 억제하는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하나가 이용하는 자원의 분산이다.

 

 

각 카스트는 좁은 지리적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데, 이용하는 천연자원을 구분하고 있다. 각 카스트는 아주 한정된 자원으로 특화되어, 그것은 같은 영역에 있는 다른 카스트의 그것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의 특정 자원이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다. 생태적 지위 다양화의 두 예를 들겠다.

 

 

먼저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州 서쪽 가트Ghats의 크레스틀라인현Crestline縣에서는 주요 카스트로 쿤비스Kunbis와 가블리스Gavlis가 산다. 쿤비스는 계곡과 구릉 비탈의 아래쪽에서만 벼농사를 짓는다. 한편 가블리스는 구릉 비탈 위쪽의 계단밭에서 농사를 짓고, 물소와 소를 기르며, 부대밭 농업을 조금만 한다. 쿤비스는 야생 동물을 수렵하는데, 가축은 운반용으로 소 몇 마리만 기른다. 한편 가블리스는 놓아먹이는 가축에게서 탈지유를 얻어 그것을 단백질원으로 삼으며 수렵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탈지유를 쿤비스의 곡물과 교환한다.

 

 

마하라슈트라주 서부의 반 건조지대의 유목수렵민 난디발라스Nandivallas, 파세파라디스Phaseparadhis, 바이두스Vaidus 부족에서도 이러한 분산을 볼 수 있다. 난디발라스는 수렵을 전문으로 하는 부족으로 개를 써서 돼지, 산미치광이(porcupine), 왕도마뱀 등을 대규모로 수렵한다. 파세파라디스는 인도 검은산양·사슴·새의 수렵에 특화되었고, 바이두스는 몽구스·사향·재칼·고양이 등의 소형 육식동물을 덫을 놓아서 잡는다. 곧 세 카스트는 서로 다른 수렵 기술을 써서 서로 다른 종을 잡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종으로서 보호하다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라마야나에는 수렵 부족의 시인 발미키Valmiki가 교미하는 한 쌍의 학 가운데 하나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고 영감을 받아 시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살해는 엄밀히 보편적인 윤리에 반한다. 사실 황새, 해오라기, 왜갖, 따오기, 갤우지, 펠리컨 등의 거류지인 헤로나리heronaries는 둥지에 가장 가까운 마을에 의해 지속적으로 완전히 보호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의 반다라Bhandara 지역에서 전통적인 어업 카스트는 구릉지 하천의 담수어를 결코 해코지하지 않는다. 마하라슈트라주 아메드나가르현Ahmednagar縣 파세파라디스의 수렵 부족이 주로 잡는 것은 인도 검은산양인데, 새끼나 임신한 암컷이 덫에 걸리면 예전부터 풀어 준다고 한다.

 

 

 

 

성스러운 동식물을 지킨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이 신성시되어 절멸을 면해 왔다. 예를 들면 가장 널리 보호되는 것이 인도 보리수이다. 기원전 2000년 전의 모헨조다로에서도 부조에 무화과가 표현되어 있는데, 무화과도 신성시하였다. 무화과속은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종합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요점’이 되는 식물로, 이를 보존한 까닭은 과실을 먹는 조류, 특히 비둘기를 보전하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밖의 동식물은 각 지역과 특정 카스트마다 ‘신성시’하며 보편적으로 보호하였다. 예를 들면 공작새는 시바신의 둘째 아이, 카르티게야Kartikeya에 의해서 신성시되어서 수렵되지 않아 타밀나두주의 카르티게야의 사원에는 무수하게 있다. 공작새는 구자라트주Gujarat州 서부와 라자스탄주Rajasthan州 전역에서도 널리 보호되었다. 푸른 집비둘기도 성자 샤 자랄(Hazrat Shah Jalal)에 의해서 신성시되어 보호되는데, 방글라데시의 농촌에서는 인공으로 둥지를 만들어 번식을 장려하고 있다. 쥐조차 보호하여 라자스탄주의 유명한 카르니마타Karnimata를 모시는 사원에 많이 있다.

 

 

또 각 카스트와 그 제도 안의 수많은 씨족도 어떤 종의 동식물을 토템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는 일은 없고, 남이 파괴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마하라슈트라주에서는 이전에 마라타Maratha가 공통어였는데 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카스트가 있다. 이 마하타 카스트의 모레스Mores와 고르파데스Ghorpades는 그 일족의 이름이 토템의 동물로서 공작새와 왕도마뱀에서 유래하였기에 다른 부족은 잡아먹어도 그들은 이것들을 보호한다.

 

 

라자스탄 사막의 주민 비슈노이Bishnoi 교도는 힌두교의 일파로서 1485년에 설립되었는데, 녹색 잎이 달린 나무는 결코 자르지 않고, 모든 동물도 죽이지 않는다. 또 지역에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콩과의 나무를 가장 신성시하였다. 1630년 조드푸르Jodhpur 왕이 새로운 궁전을 짓는 데에 연료용으로 이 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할 무렵, 363명의 비슈노이 신도가 나무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슈노이 교도도 검은산양과 가젤의 일종인 친카라Chinkara 등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였다. 이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어, 비슈노이 교도의 마을은 인도의 사막에서도 가장 야생 생물과 녹색이 풍부한 곳이다.

 

 

 

 

성스러운 나무숲과 못이나 늪이 공간을 보호한다

 

 

가우제의 고전적인 실험이 보여주듯이, ‘포식자와 피식자’로 구성되는 체계에서 먹히는 쪽의 절멸을 막는 데에 특히 효과적인 방법은 포식자에게서 도망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공간으로 유역에 자리한 나무숲, 못이나 늪의 연결망을 만들어 왔다. 인도 전역에는 어떠한 신과 이어진다며 현지 마을에서 특별히 보호하는 식생지와 신성한 나무숲이 있다. 그러한 곳은 몇 백 제곱미터부터 50헥타르 이상의 토지와 수역으로 이루어지는데, 신들에게 바치려고 동식물이 개발로 위험에 처해지는 일 없이 전통적으로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서 인도의 아라발리Aravalli 구릉에서는 조그마야Jogmaya라는 신과 관련된 오란스Orans로 알려진 나무숲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금속을 써서 땔감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또 인도 남부 서해안의 카르나타카주 우타라 칸나다현Uttara Kannada縣, 우두피현Udupi縣, 다크시나 칸나다현Dakshina Kannada縣으로 구성된 카나라Kanara 지역에는 최근까지 신성한 나무숲의 연결망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작은 수풀부터 1헥타르에 이르는 극상식생의 섬을 이루어 지역의 약 5%나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금도 이러한 신성한 나무숲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절멸된 식물종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덩굴성 woody climber(Kunstleria keralensis)가 그것이다.

 

덩굴성 식물 '우디 클림버'

 

 

 

방글라데시의 모든 사원에는 적어도 하나의 못이 있고, 그러한 못에 사는 동물은 침해하지 않는다. 2개의 성스러운 못은 절멸위험종을 보전하고 있는 곳이라 생물학적으로 흥미롭다. 칸 자한 알리Khan Jahan Ali는 악어가 사육되고, 바야지드 보스타미Byazid Bostami 사원에도 박묵자라(Trionyx nigricans)가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라의 서식지이다. 서기 300년에 초기 불교의 사원이 세워진 장소에 이슬람교인 바야지드 보스타미 사원이 건설되었는데, 자라와 신성한 못을 보호하는 전통이 이슬람교에도 동화된 고대의 전통인 듯하다.

 

 

 

 

농업생물다양성을 유지하다

 

 

인도는 재배 작물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주요 작물의 한 예로 콩을 들자면, 베다 시대에는 약 40만 품종이 있었다고 벼 전문가 리차리아R. H. Richaria 박사는 평가한다. 박사는 2만 종의 콩을 마드야 프라데슈주Madhya Pradesh州와 차티스가르주Chhattisgarh州에서 모아 특정하고 있다. 쌀은 해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데, 재배 표고는 해발 3m 이하부터 2100m 이상까지 이른다. 강우량도 연간 500밀리미터인 지역에서 자라는 콩 품종이 있다. 수많은 농업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연관된 문화적인 관습이 있다.

 

 

예를 들겠다. 오리사주Orissa州 푸리Puri의 자간나트Jagannath 사원에서는 날마다 새로 수확한 쌀을 요리로 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는 수많은 쌀 품종이 있었다는 뜻이다.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와 안드라 프라데슈주Andhra Pradesh州에서는 해마다 정월에 우가디Ugadhi라는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는 알맞은 품종을 선발하려고 다양한 종자의 발아력을 시험하는 의식이 열린다. 타밀나두주에서도 무라이파리Mulaippari 축제가 있는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듯하다. 다양한 곡물 품종의 특성을 관찰·이해하고서 용도와 상태에 따라 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밀나두주에서는 모래나 먼지가 날리는 건기에 심는 데 알맞은 벼 품종이 있다.

 

 

 

 

종교와 문화로서 사회에 엮어 넣은 생태적 삶

 

 

현재 환경에 우수한 과학기술과 개발 모델을 온 세계에서 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은 과거 몇 세기 동안 환경을 파괴한 공업화에 대한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더욱 자연에 좋은 것’이란 요구는 널리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연과 대립하는 철학의 ‘조정책’일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에는 명확히 생물다양성과 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련 있는 전통이 있었다. 과거 200년 동안 인도 사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많은 전통과 관습이 남아 왔고, 그 전통을 보면 인도 사회가 그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본질적으로 ‘생태적으로 자연에 우수함’을 알 수 있다. 모든 사회적·문화적·종교적 관습과 전통이 생태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은 사회의 핵심에까지 스며들어가 엮여 있었다.

 

 

<참고문헌>

A.V.Balasubramania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nd Natural Resourced Management : Current Relevance and Future Potential bulletin - article o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ugust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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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생태농업 1 - 기존 문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쿠바의 생태농업은 진전하고 있는가

 

쿠바의 생태농업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예를 들면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 세계 식량문제 연구센터의 데니스 에이브리Dennis Avery 소장은 <쿠바인은 거짓 음식으로 굶주린다(Cubans Starve on Diet of Lies)>에 이렇게 썼다.

 

“쿠바인은 1990년대 전반 소련의 보조금이 끊긴 뒤, 농업용 연료와 화학자재를 쓰지 않으며 스스로 자급하는 일을 영웅적으로 배웠다고 온 세계에 떠든다. 농민 협동조합, 생물농약, 유기비료를 자랑하고 있다. 지렁이 농법과 해충을 먹는 천적 벌, 그리고 트랙터를 대체하는 소 쟁기질도 자랑한다. 온 세계의 유기농업 활동가들은 여기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아바나에 주재하는 미국 이익 대표부 직원에 따르면, 현재 쿠바는 그 소비식량의 84%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쿠바 농업성의 고위 관료가 스스로 인정한다고 한다. 유기농업이 성공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철의 장막 뒤에 앉아 있는 독재자가 자유세계를 속이려고 냉전시대처럼 행동한 것으로, 요란한 공산주의 방식의 커다란 거짓부리이다.”

 

이 에이브리란 사람은 오랫동안 유기농업을 비판하며 유전자조작 작물·농약·방사선을 쬔 식품·공업형 농업·자유무역을 지지하던 사람으로, <농약과 플라스틱으로 지구를 구한다 : 수확량이 많은 농업의 환경 승리(Saving the Planet With Pesticides and Plastic: The Environmental Triumph of High-Yield Farming)>(2000)라는 저작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허드슨연구소에 자금을 대는 곳은,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콘 아그라Con Agra, 카길Cargill 등의 농산업 기업과 아메리칸 사이나미드American Cyanamid, 치바가이기Ciba-Geigy, 몬산토Monsanto, 신젠타Syngenta 등의 생명공학 및 농약 기업이다. 그가 바라보는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꽤 삐딱한 면이 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

 

한편, 쿠바의 유기농업을 오랫동안 지지한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쿠바의 생태농업을 절찬한다.

 

“우리가 아는 한 2008년 3번의 허리케인이 쓸고간 뒤, 쿠바는 그 소비식량(비공식 수치)의 55%를 수입하고 있다”며 쿠바가 식량을 수입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최근 쿠바를 방문한 사람들이 수집한 사례 증거를 통해 쿠바의 유기농업 생산력이 최근 떨어졌다고도 기술한다. 그렇지만 에이브리가 ‘쿠바의 생태농업 모델은 붕괴 직전이다’라고 단언하듯이, 쿠바 생태농업의 실적을 칭찬하는 모든 보고서도 ‘커다란 거짓부리이다’라는 점을,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계속한다.

 

“쿠바는 기후 변동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나라의 하나이다. 하지만 2008년 3번의 허리케인 피해에도 상관없이 식량 자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생태농업은 쿠바에서 성장하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쿠바의 자립 소농 ANAP의 회원 수의 약 절반인 10만 세대가 생태농업을 통한 다양화를 실천하고, 상업적인 산업형 농업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같은 면적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농업의 대다수는 캄페시노 운동(Campesino a Campesino)의 일부로서, 20%의 토지만으로 국내 식량의 65% 이상을 생산한다. 이러한 쿠바의 경험에서 나온 자료는 단일 작물의 수확량이 아닌 총생산량을 고려하면, 대농보다 소농이 뚜렷하게 생산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를 확증한다. ANAP는 경험을 나누어 지역적 연구와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농민에게서 농민으로’라는 모델의 기술 혁신과 보급 과정을 통해 농민의 적극적인 참가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소규모인 농민도 이 생태농업 혁명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귀농을 바라는 가족에게 최대 13.5ha의 농지를 제공했는데, 10만 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목표는 쿠바의 식량주권을 확실히 하고자 150만ha를 생태농업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도시농업의 업적도 성장하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38,3000개의 도시 농장이 5만ha의 유휴지를 포함한 곳에서 150만 톤 이상의 채소를 생산한다. 아바나와 산타클라라 등의 도시에서는 70% 이상의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정도다. 도시 농장은 화학 합성 물질을 전혀 쓰지 않으며 1평방미터에 20Kg의 수확량을 올린다.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도 식료품의 이동거리와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고, 지역 농산물 소비라는 흐름을 이끈 이 효율적 수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최근의 10개 주州에서 농장의 실정을 조사하며 몇 백 명의 농민, 농학자, 정책 입안자와 이야기하여 이러한 발전을 확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거시경제 측면에서 쿠바의 농업은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로제트와 알티에리 박사는 “경제 봉쇄 때문에 인도주의적 식량 판매라는 암시장으로 미국에서 수입되는 식료품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경제 봉쇄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무력행사에 대항할 원조를 구하고자 쿠바 정부에서 어떠한 정치적 결정을 한 듯하다. 미국 기업에게 해마다 고액의 본질적으로는 필요치 않은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이러한 수입 증가가 최근 쿠바의 전국 생산을 저하시키고, 그것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대안을 결의하자고 주장하는 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데, 그만큼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어떤 상태인지를 확실히 하는 데에는 각각의 우량 사례만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어떤 상황인지 조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쿠바의 문헌에는 이러한 사례 조사를 좀처럼 볼 수 없는데, 캐나다 어느 대학의 석사논문 수준에서도 학생들이 꽤 면밀히 조사했다. 아래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그러한 석사논문 가운데 하나로 그 개요를 소개하겠다.

 

 

애매모호한 쿠바의 유기농업 정의

 

쿠바는 유기농업의 선두로 간주된다. 그 경험은 <근대사에서 최대의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함>」(Rosset and Medea, 1994), <근대적 대규모 관행농업에서 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장대한 실험>(Rosset, 1997: 291), <유기농업으로 전환>(D’arcy, 2005), <유기혁명>(Warwick, 2001: 54)이라 불리고 있다.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업 체계에서 쿠바가 세계에서 중요한 선구자임을 보여주는 문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쿠바의 농업 부문에서 ‘유기’나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엄밀히 무엇을 뜻한다고 정의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어느 때는 ‘쿠바 농업은 전체가 유기이다’라 하고, 또 어느 때는 ‘준 유기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지속가능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생태농업이다’ 기술한다. 이렇게 다양한 용어의 경계는 애매하게 얼버무린 채이다. 쿠바에게 유기농업이란 무엇을 뜻할까? 먼저 역사적 경과를 보도록 하자.

 

 

경제위기 이전부터 준비되었던 유기농업

 

쿠바의 농업은 소련의 원조를 받는 녹색혁명에 따른 근대적 생산 모델이었다. 근대농업의 기술은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보다 국영농장에서 더욱 성행했다. 경제위기 이전에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이 관리하던 농지는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통적인 저투입형의 비교적 지속가능한 농법이 유지되어(Funes, 2002) 그것이 전국적인 차원의 고투입형 기술에서 전환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또 다른 세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도 1960~1970년대에 걸쳐서 환경 의식이 높아진다. 그 까닭은 DDT와 같은 농약의 나쁜 영향을 지적한 레이첼 카슨의 고전 <침묵의 봄> 등의 저작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Funes, 2002). 이 의식의 고양으로 1970~1980년대에 걸쳐 쿠바의 학회와 농업성(MINAGRI) 및 대학은 관행농업에 비판적인 입장이 되어 대안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연구의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Rosset, 1997; Warwick, 2001; McKibben, 2005). 이리하여 농장과 연구를 통해 경제위기 이후에도 쓰일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투입 자재의 전환

 

일반적으로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와 농약 등을 유기비료 등의 생물투입자재로 대체하는 것이라 하며, 그것은 거의 모든 유기인증 규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쿠바에서도 ‘투입자재의 대용이 새로운 농업의 핵심이다’라고 Funes(2002)는 기술하며, 이 성패가 유기농업의 지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체는 ‘고투입형에서 저투입형 농업으로의 전환’(Rosset, 1997), ‘석유, 화학자재, 기계 등의 공업적 투입에서 대안에너지, 바이오 방제 유기체, 수소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 지속가능한 투입자재로의 전환’이라고 기술한다(Rosset, 1997).

 

투입 자재의 대체에 대한 쿠바의 전환은 참으로 빨랐다. 하나의 예를 들면, 1991년에는 작물의 56%가 이미 바이오 방제로 처리되고 있었다. 이는 유기농업의 진전이고, 약 1560만 달러의 경비 절감으로 이어졌다(Rosset and Medea, 1994). 또 수소도 1990년에는 약 5만 마리였는데 2000년에는 40만 마리가 되어, 이것이 경작용으로 트랙터를 대체했다(McKibben, 2005).

 

 

전통기술도 근대기술도 함께 쓰다

 

유기농업은 반反근대라서 로우 테크의 저투입형 농업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통농업이라고 하여 반드시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우 환경파괴적인 전통농법도 있다. 쿠바에서는 근대기술보다 자금이 들지 않기에(McKibben, 2005),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의 일부로 전통농업으로 회귀하자고 적극적으로 장려되었다(Rosset, 1997; Nieto and Delgado, 2002). McKibben (2005: 64)는 쿠바의 준準유기농업을 고투입형 트랙터 농법에 필적하는 발명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근대농법과 유기농법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고, 현장 상황에 따라서 모두 존중된다. 가장 초보적인 전통농법도, 경제적 긴급사태에서 어쩔 수 없이 강구된 조치라고 하기보다는 현재의 농업 과제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술의 하나라고 본다(Mart´ın, 2002: 69).

 

 

농장 규모

 

기계화 농업에서는 규모를 확대하는 쪽이 효율적이지만, 그러한 대규모 농업에서는 섬세한 경영 관리나 자원순환이 어렵다. 유기농업과 같이 지식에 기초하는 생산에서는 소규모인 쪽이 더욱 효율이 좋다(D’Souza and Ikerd, 1996). 이 때문에 유기농업에서는 대규모 유기농업이라는 발상 그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되는 것이다. 쿠바에서는 사탕수수, 카카오, 커피 등 대규모 플랜테이션도 유기농업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그 전환 속도는 소규모 농장과 협동조합 농장과 비교하면 더디다(Funes, 2002). P´erez and Echevarr´ıa(2002: 273)는 사탕수수와 담배 농장에 대해서 ‘대규모 농장에서 유기농업으로 가는 길은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라고 인정한다. 곧 대다수 대규모 농장은 아직도 관행농업인 채이고,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소규모 농가와 그 조직이다(Warwick, 2001; Ricardo, 2003). 유기농업에는 토지 특성에 따른 지식이 필요하여, 소규모 농가 쪽이 농지와 더욱 친밀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초기에는 대규모 국영농장이 해체되고 소규모로 바뀌는 농업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수출지향생산과 지역 농산물 먹기

 

유기농업에서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수출 지향일지라도 큰 과제이다. 많은 유기농업 추진파는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며 유기농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의 원거리 출하에는 환경 부하가 있어, 건전한 자급자족형 지역사회 만들기에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유기농업 대부분은 지역 농산물 먹기보다 선진국의 유기식품 시장을 지향한다(Raynolds, 2000; Gomez Tovar, 2005).

그러나 쿠바는 다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것은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의 달성(Rosset and Bourque, 2002; Funes, 2002)과 Perera(2002: 7)가 말한 ‘식량주권’의 중시와 함께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다만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기는 하나, 쿠바는 아직도 해마다 9억 달러나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1980년대의 식량 수입액은 1년에 10억 달러로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자 쌀, 밀, 밀가루, 고기, 우유, 콩 등을 계속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FAO, 2005).

 

Rosset(1997)는 경제위기 초기에 기아를 피하려면 이런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경제위기가 시작되면 쿠바는 그 식량의 50% 이상을 수입해야만 한다(Nieto and Delgado, 2002). 갑자기 수입 식량의 침체로 인해 현지의 식량안전보장이 긴급 과제가 되었다. 현재 얼마나 되는 유기농산물이 생산되는 그 지역사회 안에서 직접 소비되지에 대한 통계는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비공식 평가를 통해서 생산된 지역에서 꽤 많이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다(Alvarez, 2002; Funes, 2002). 그 식량의 얼마는 생산자가 직접 소비하고 있는데, 그밖에도 지역 내 유통이란 선택지가 있다. 1994년에 문을 연 민간의 농민시장이 그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배급제도를 보완하고, 어느 정도 가처분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지 생산물을 판매할 기회를 생산자에게도 가져다주었다(Sinclair and Thompson, 2001; McKibben, 2005).

 

도시농업도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어, Altieri et al.(1999: 132)는 이를 ‘생산이 밀접하게 도시 주민과 결합되고, 도시에서 직접 영향을 받는 도시 및 도시 근교에서 생기는 모든 농업·가축 생산’이라고 정의한다. 1989년 이전도 자가 텃밭의 얼마는 도시부에서 식량원이 되었는데(Wezel and Bender, 2003), 이러한 텃밭은 저개발의 상징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Altieri et al., 1999).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뒤 가정과 지역사회의 텃밭이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빠뜨릴 수 없는 수단이 되어서, 이런 의식은 급속히 변화해 나아갔다(Altieri et al., 1999; Chaplowe, 1998; Warwick, 2001). 현재는 가령 농사 경험이 거의 없는 시민도 지방정부에게 공짜로 식량생산용 토지를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현재는 몇 천 개의 도시 텃밭이 있어, 아바나시에서는 몇 만 명이 도시농업 부문에 종사하며, 2004년에는 30만 톤의 식량(과실과 채소의 대부분, 그리고 쌀과 고기도 꽤 포함)을 생산했다(McKibben, 2005). 도시농업은 매력적인 분야가 되어, Wezel and Bender(2003)는 임금이 높은 도시농업 부문에서 일하려고 국가공무원들이 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쿠바의 도시 텃밭은 현지 생산과 지역 안의 유통체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업 모델의 주요 사례로도 인식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사용이 금지되어, 결과적으로 땅심을 올리고 병해충을 방제하고자 도시 텃밭에서는 유기농법을 쓰게 되었다(Altieri et al., 1999).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도시농업을 통해 창설된 지역 농산물을 먹자는 운동의 연결망이다. 그것은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적인 관계망을 구축하자는 유기농업의 이상을 만족시키고, 식품 수송으로 발생하는 오염을 삭감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게다가 재활용된 투입자재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재(지렁이두엄 등)을 쓰고(Altieri et al., 1999), 결과적으로 유기농업의 지지자들이 ‘더욱 깊은 형식의 유기농업’이라고 간주하는 닫힌 생산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지역 농산물 소비 연결망의 중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수출용 유기농산물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움직임도 있다. 국제시장에서 받는 유기인증 농산물의 높은 가격을 이용하고, 사탕수수·카카오·커피·벌꿀·과일 등의 전통적인 돈벌이작물을 유기인증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Funes, 2002). 이 수출 생산에 초점을 맞춘 전환에 의해서 유기농업이 의미하는 내용도 변화해 나아갈지도 모른다. “충분하지 않은 외환의 현재 경제 상태… 그것이 수출용의 유기농산물과 시장관리를 지지하고 있다(Funes, 2002: 23).” 그렇지만 수출 지향 샌산에 맞춰서 쿠바가 어떻게 움직여 갈지는 명확하지 않고, 수출 시장을 중시한 유기인증 농산물에 의해서 돈벌이작물을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하려는 쿠바의 예전 입장으로 돌아갈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쿠바에 유기농업 철학은 있는가

 

투입자재의 대체는 거의 모든 유기인증 기준의 기초를 이룬다. 하지만 유기농업에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포괄적인 일련의 가치관과 이상주의이다. 유기농업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익으로부터,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신념에까지 미치는 동기부여가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은 주로 경제적인 동기부여와 수입자재의 대체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여 소규모 농장과 지역 농산물 먹기 운동의 연결망이 크나큰 역할을 맡았기에, 투입자재의 대체 모델보다는 훨씬 깊고 포괄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쿠바에서는 포괄적인 유기농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Funes(2002:23)는 투입자재의 대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서로 배가 되는 구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모델에 바탕하며, 작물과 가축 생산·숲 관리 이외에 서브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일치시켜 조합하는 복잡한 생태농업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Garc´ıa(2002)도 투입자재와 특정 생산기술을 뛰어넘는 기본적이고 철학적인 차이를 포함한, 관행농업과 유기농업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농촌에서 실시하는 보급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체계를 확립하는 데에는 농업을 고립된 단위로 간주하는 사상적인 심리상태를 여러 학문 분야가 연계된 포괄적인 접근으로 다가서는 것이 농업의 본질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깊은 철학적인 기초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수출의 가능성에 맞춘 전환을 포함해, 이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동향도 있다. 예를 들면 쿠바는 급속, 또 대규모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찬미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에서 정부는 관행농업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Funes, 2002). 유기농업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손에 넣을 수 없다. 관행농법과 비이오테크와 유기농업을 조합한다는 문제도 있다. 쿠바의 새로운 농업 전망의 핵심에 있는 것은 철학적, 도덕적 유기농업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더욱 실용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으리라.

 

McKibben(2005)는 평소에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다가도 감자에서 해충이 발생하면 화학농약을 쓰는 쿠바 농민의 사례를 들고 있다. 쿠바의 농민들은 올바른 먹을거리의 생산 방법이라는 강한 신념을 위해서 스스로 유기농업 생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Warwick(2001)의 지적에 따르면 예방 원칙에 기초하여 밭에서 시험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데, 쿠바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연구도 꽤 이루어지고 있다(McKibben, 2005).

 

 

맺으며

 

쿠바의 유기농업에 대한 기존 문헌을 보아도, 쿠바인들이 어떻게 유기농업을 정의하며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정확히 주장할 만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문헌의 대부분은 신중한 과학적 조사보다, 오히려 사례 증거나 일반적인 인상에 기초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기존 문헌을 분석하면,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이 투입자재의 대용과 전통기술과 근대기술의 조합에 기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장의 규모와 구조로 말하면, 유기농업은 소규모 개인 농장, CCS, CPA, UBPC, 그리고 특히 도시 지역의 다양한 토지 소유 구조로 실천하고 있다(Rosset, 1997; Chaplowe, 1998; Altieri et al., 1999; Funes, 2002). 일반적으로는 대규모 국영농장보다 소규모 농장 쪽이 유기농업으로 신속히 전환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장의 규모가 쿠바 유기농업의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도 거의 없다. 또 쿠바의 유기농업 사상을 바탕으로 지역 농산물 먹기가 중시되고 있는지, 또는 현실적인 식량안전보장에 대한 일시적인 실용적 대응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더욱이 문헌에서는 쿠바인들이 사회와 자연에 대한 포괄적인 철학으로서 어떻게 유기농업을 보는지, 또는 거꾸로 경제적으로 동기부여된 투입자재의 대체수단이라고 보는지 결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증거도 얻을 수 없다. 다만 가장 명확한 점은 현재 쿠바의 농업이 유기농업의 수많은 원칙과 실천(지렁이 양식, 부산물 재활용, 대체에너지 이용, 쟁기질·사이짓기·섞어짓기 보전, 축산학, 그리고 생물 방제, 생물 농약, 생물량 등 현지에서 생산되는 생물 투입자재)을 받아들여,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계통적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뿐이다(Rosset and Medea, 1994; Rosset, 1997; Warwick, 2001; Funes, 2002; CIC,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Erin Tace Nelson, A better World is possible: Agroecology as a Response to Socio-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in Cuba, University of Waterloo, 2006. 

(2) Fernando Funes, Miguel A Altieri and Peter Rosset, The Avery Diet: The Hudson Institute’s Misinformation Campaign Against Cuban Agriculture, Ma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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