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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골 농법. 즉, 가짜 골에 씨앗을 심는 농사법이란 뜻이다.
왜 '가짜 골(헛골)'인가? 처음에는 골을 타서 거기에 씨앗을 심기에 골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사이갈이 김매기 등의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북주기를 통해 새로운 두둑으로 변모하기에 가짜 골이라 한다.

과거 조선 후기의 서유구 선생이 더 널리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견종법畎種法이 이와 같은 방식의 농법이다.




이 농법은 이후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널리 퍼졌던 농법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농법이 변한 것이다.

먼저 이 헛골 농법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봄 가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여름의 강풍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3. 작물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4. 노동력 절감에 도움이 된다.

크게 이렇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골을 타서 씨앗을 심기에 주변부보다 옴푹한 곳에서 특히 한국의 봄철에 두드러진 바람에 의한 수분 상실에서 보호되고, 또 아침 저녁의 이슬 등으로 수분을 보충할 수 있어 부족한 강우량에도 종자의 발아가 잘 되는 잇점이 있다.

그러고 나서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바람이 거세어지고 태풍 같은 것이 찾아오곤 하는데, 그럴 때 작물이 북을 준 흙무더기에 덮여 있기에 그런 조건에서도 잘 버티며 성장하게 된다.

작물에 북을 주면 새로 흙에 묻힌 곳에서 막뿌리가 나오게 된다. 이 막뿌리가 흙에 있는 양분과 수분을 흡수함으로써 작물이 더 잘 성장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북을 주면서 잡초의 방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고랑과 두둑의 풀을 잡기 위하여 북을 주면서 흙의 모세관을 끊어져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에도 지표면에서 수분의 증발이 덜 되도록 도와 작물이 충분히 수분을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잡초와의 경쟁도 줄어들기에 작물의 성장에 더 이로운 환경이 조성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오는 작업을 북주기라는 단 하나의 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업을 통해 김매기+수분 확보+막뿌리의 발달+작물의 성장+수확량 증가 등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농법이 왜 사라지게 되었는가? 무엇보다 새로운 농자재의 도입이 가장 크겠다. 바로 한국의 농업에 백색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농업용 비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을 수 있다. 비닐을 덮으면, 작물이 자라고 있는 곳의 흙은 더 이상 손댈 수가 없다. 그래서 비닐을 쓰는 곳에선 처음부터 높은 두둑을 지어서 비닐을 덮고 아예 수확할 때까지 그대로 쭉 가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중간에 비닐을 벗겨내는 일은 거의 없다. 농지가 비닐로 덮이게 되면서 이와 같은 방식의 농법도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농생태학 책을 보다가 멕시코에서 전통적으로 조선과 같은 헛골 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는 설명에 아래와 같은 그림이 첨부되어 나오길래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 보았다. 세계 각지의 전통 농법을 들여다보면, 어떤 농법이란 것은 어느 한 곳의 특출난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자신들이 처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며 최선을 다하여 농사짓는 과정에서 확립된 것. 그것이 전통 농법이다. 우열을 가릴 일도 아니고, 선후를 가릴 일도 아니다. 참고하고 그 원리를 궁리하여 지금 상황에 맞게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모색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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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재래종 옥수수로 만든 이 주식은 대량 생산과 근대성에게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소농들이 저항하고 있다.


Petra Cruz González 씨는 멕시코 틀락시아코Tlaxiaco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매일 400개 남짓 또르띠야를 만든다. , Mexico.CreditCreditLeila Ashtari



페트라 크루즈 곤잘레스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약 400개의 또르띠야를 손으로 만든다. 전기 제분기와 금속 프레스기 같은 몇몇 현대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8살 때 배운 것처럼 장작불에 조리한다.


49세인 곤잘레스 씨는 길거리와 집에서 또르띠야를 판매한다. 오악사카 지역의 도시에 있는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들을 조직하고자 1990년에 시작된 틀락시아코 Palmeadoras 조합의 대표인 그녀는 이것이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합의 89명의 조합원(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경쟁자들과 맞서 이러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그 도시의 25곳의 또르띠야 매장은 매출이 크게 줄었으며, 곤잘레스 씨는 또르띠야를 모두 팔기 위해 오후 10시까지 일해야 하곤 한다. 그녀는 6개에 10페소(약 550원)라는 가격을 매겼는데, 이건 들어가는 경비보다 조금 더 충당하는 정도이다. 그녀는 다른 행상의 먹을거리를 위해 남은 또르띠야를 거래하곤 한다.


"또르띠야 매장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하지 무얼 파는지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곤잘레스 씨는 말했다. "우린 양이 아니라 품질을 팝니다."




곤잘레스 씨는 이 도시의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로 이루어진 조직의 대표이다.





CreditLeila Ashtari




가운데에 곤잘레스 씨와 다른 또르띠야 생산자가 시장에 판매하러 가고 있다.Leila Ashtari



도시부터 농촌까지, 멕시코의 또르띠야는 위기에 처해 있다. 메트로폴리탄 소치밀코Xochimilco 자치대학의 영양학자  Julieta Ponce에 의하면,  멕시코 사람들이 빵과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으면서 1인당 소비량이 1982년 약 102kg에서 2016년 약 56kg으로 지난 35년 동안 약 45% 급감했다. 


값싼 또르띠야와의 경주에서 품질은 불리해졌다. 거의 절반 정도의 공급량이 현재 산업적으로 생산된 또르띠야 반죽이나 Maseca 같은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진다.  



멕시코 요리를 연구하는 작가 Cristina Barros 씨는 또르띠야의 위기 상황은 비만과 빈곤, 이민을 포함하는 멕시코의 광범위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경고라고 이야기했다.  "또르띠야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좋은 품질만이 아니라" 특히 또르띠야 생산자와 옥수수 농민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Barros 씨는 말했다.  “우리가 전통적 음식을 산업의 식품으로 바꾸려고 결심했을 때 이 비만이란 전염병이 나타났어요.” 


워싱턴 대학의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에 의하면,  멕시코의 비만율은 1980년 7%에서 2016년 20.3%로 급증했고, 1980년대 멕시코의 자유무역 기조가 이러한 변화에 기여했다.



지난 5월, 75개 이상의 단체와 기업이 옥수수 또르띠야를 홍보하고자 우리 또르띠야를 위한 동맹Alianza por Nuestra Tortilla를 창립했다. 멕시코에는 특히 북부 지역에 밀가루 또르띠야가 있는데, 이 단체의 초점은멕시코 요리의 기반인 옥수수에 있다. 그 연맹은 연구, 교육 행사, 언론 홍보 및 로비활동을 포함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동맹의 견해로는, 좋은 또르띠야는 말린 옥수수(이상적으로는 토종 품종)를 수산화칼슘을 푼 물에 담가 밤새도록 불리는(멕시코에서는 칼cal이라 함) 닉스타밀화라고 알려진 전통적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만들어진다. 이것이 영양분을 풀어서, 또르띠야가 비타민과 미네랄 및 단백질의 귀중한 원천이 되게 만든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옥수수 가루도 닉스타밀화되어 있지만, 또르띠야 순수주의자들에 의하면 추가 가공으로 영양분을 제거함으로써 질이 낮은 또르띠아가 만들어진다.  



생물다양성을 장려하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가 오악사카 주에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CreditLeila Ashtari




25년 이상 옥수수 생산자들과 일하고 있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는 소비자에게 전통적 또르띠야에 비용과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득하는 핵심으로 생물다양성을 장려한다. "지난 50년 동안, 도시 사람들은 옥수수 맛이 어떤지 모르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토종 옥수수는 산업용 옥수수보다 훨씬 풍미가 다양합니다.


동맹은 또르띠야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그리고 대규모 생산자에게 그 성분을 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법률로 만들고자 연방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옥수수 생산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멕시코 옥수수 또르띠야 재단Fundación de Tortilla Maíz Mexicana의 창립자이자 동맹의 회원인 Rafael Mier 씨가 이야기했다. 그는 "가짜" 제품을 폭로한다면 멕시코 사람들이 어떤 또르띠야를 먹을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을 가족을 위해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우린 단지 정보를 제공하면 됩니다." 



틀락시아코 옥수수 축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Rafael Mier 씨. 그는 또르띠야를 만드는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일하는 단체를 설립했다. Leila Ashtari




멕시코 시티의 다른 많은 새로운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또르띠야 반죽과 또르띠야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다.  작년에 개장한 이후 사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설립자이자 주방장 산티아고 무노즈Santiago Muñoz 씨는 전통적인 또르띠야 생산자가 원래 하루에 29kg 정도 만드는데 현재 적어도 204kg쯤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멕시코에는 300만 명 정도의 옥수수 농민이 있는데, 많은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의 재배를 그만두었거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민을 간 농민이 많다. 비슷한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이 전통이 살아 있도록 보전하고자 토종 옥수수에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한다.  멕시코 시티의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산후안 익스텐코San Juan Ixtenco에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는 자신의 토종 옥수수 0.45kg의 평균 가격이 2.25페소(약 133원)이고, 때로는 1.35페소(약 77원)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그는 4.5페소(약 267원)가 노동자들이 도시로 가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핼 필요가 없는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Angoa 씨는 3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건설 현장에 가서 일할 계획이고, 자신의 가족이 농지를 돌볼 것임). 



불행하게도, 많은 멕시코 사람과 요리사 들은 닉스타밀화와 관련된 작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요리학교에서는 이 기술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수산화칼슘의 정확한 양과 적절한 조리 시간을 찾기 위해 각각의 옥수수 품종마다 조사해야 한다(예를 들어 너무 지나친 닉스타밀화는 빛깔을 바꾸거나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게 할 수 있음). 


"또르띠야는 빵이나 피자 반죽과 같아요.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무노즈 씨는 말했다. 




멕시코 시티의 또르띠야 매장 Maizajo에서 일하는 요리사 산티아고 무노즈 씨. Maizajo는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CreditLeila Ashtari





산후안 익스텐코에서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CreditLeila Ashtari




그 가치는 높은 가격으로 나타난다. 도시에서 대부분의 전통적 또르띠야는 상업용 또르띠야의 약 5배에 달하는 가격인 호화로운 제품으로 팔린다.  농민과 함께 지역 및 세계의 식당에 반죽과 옥수수를 공급하는, Francisco Musi와 Sofia Casarin 씨가 소유주인 멕시코 시티의 한 기업인 Tamoa에서는 유통 비용을 줄이고 근처에서 재배한 토종 옥수수를 사용함으로써 고품질의 또르띠야를 더 많이 만들고 있다. 


잘 만들어진 또르띠야는 이미 도시의 최고 식당에 있기에,  Casarin 씨는 덜 비싼 식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큰 변화를 지켜본다.  "중간 가격의 또르띠야에 적합한 장소를 찾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요리사인 Enrique Olvera 씨와 Ramírez Leyva 씨가 동업하는 한 가게인 Molino El Pujol는 기계류를 사용하여 비용을 줄이는 걸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대적 장비는 기계의 롤러를 부드럽게 통과하는 Maseca 같은 표준의 농산물을 처리하도록 설계되었다. 다양한 토종 옥수수를 가지고 좋은 또르띠야를 생산하기 위해서 기계를 조정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Ramírez Leyva 씨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기계를 활용할 수 있다면, 확실히 전통적 또르띠야를 대중화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옛날 방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옥수수를 닉스타밀화하는 4만 개의 또르띠야 매장과 집에서 전통적인 또르띠야를 만드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엄청난 지식이 있지만 시장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Mier 씨는 이야기했다. 

노하우가 존재합니다. 우린 단지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할 의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18/12/21/dining/corn-tortilla-mexic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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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이짓기(간작)의 전형입니다.

 

가(밀)라는 작물의 사이(공간)를 이용해 나(콩)라는 작물과 수확기의 사이(시간)를 활용하여 한 농경지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이지요. ‬




나중에 밀이 익어서 수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은 콩밭이 되지요.

아래 사진은 밀이 다 익어서(위) 수확하고 20일 지난 뒤의 모습(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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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남아프리카에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이 아주머니 좀 보세요.
한국의 농촌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모습 아닙니까?

농사는 만국공통어입니다.

아무튼지간에, 남아프리카에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1. 토종 씨앗은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다. 또 가뭄 같은 거에도 잘 견디어 수확량도 괜찮다. /한국과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 씨앗 나눔으로 지역사회를 결속시킨다. /아쉽지만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 이후 농촌 사회의 결속력이 약해지면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지요.

3. 토종 씨앗을 재배하는 농민의 자부심이 강하고, 그를 통해 문화의 온전함도 지킨다.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잘 짓는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기품이 비슷한가 봅니다. 씨앗을 지킨다는 건 단순히 씨앗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연계된 문화를 보전한다는 맥락이 있지요. 씨앗을 보전함으로써 지키게 되는 농법, 식문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4. 토종 씨앗은 위협을 받고 있다.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정부에서는 토종 씨앗을 지키는 소농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지원을 하라고 권합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소농과 그들의 토종 씨앗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활동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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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직업 대장장이. 

농기구를 사려고 철물점이라도 가면 값싼 중국산 호미와 낫이 차고 넘친다.

좋은 농기구를 구하고자 지방의 장터에 아직 남아 있는 대장간을 찾아가도 썩 마음에 드는 농기구를 만나기란 어렵다.


10년 전쯤인가,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유람을 간 적이 있다.

모두들 일본 농기구에 뿅가서 몇 개씩 사들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때 사온 농기구는 특별히 벼르는 일이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저 일본의 쇠를 다루는 기술과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부러울 뿐이다.


아래 글을 보면 일본 대장간의 사정도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규모의 대장간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라. 한국에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지... 없다는 데에 500원 건다!


아무튼 글 말미에 나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역시 사람은 바닥을 쳐야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한국도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확 높아진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전환점이 다가오겠지. 그날이 오든 안 오든 난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가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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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일본식 낫과 괭이 등으로부터 이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철제 날 괭이의 나무 손잡이를 들고 그는 “이게 보여요? 이건 야마나시현에서 포도나무의 껍질을 긁는 데 쓰려고 만든 겁니다. 옆에 있는 삼지창은 치바현의 땅콩 재배 농민을 위해 만든 것이고요. 그리고 저기 있는 길고 얇은 날의 농기구는 초봄에 교토에서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겁니다.” 아이다 씨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특정한 목적과 지역, 토양,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약 1만 가지의 농기구가 있다. 


51세의 아이다 씨는 푸른 산의 다락논에서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에 있는 소규모 농기구 대장간인 아이다 합동공장의 대표이다. 이 마을은 17세기 이후부터 대장장이들의 공동체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부엌칼부터 분재가위까지 전문적으로 작은 금속을 가공하는 사업의 중심지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에 있는 이 공장은 1930년 타다오 아이다 씨의 할머니의 시숙이 되는 사람이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14만 가지의 농기구와 부품 등을 손으로 제조한다.



모종삽... 그저 아름답다고밖에...



삼지창... 이걸로 땅콩을 캔다고 함. 좋은 농기구를 보면 욕심이 나서 시골 장터에 갈 때마다 대장간을 들르지만, 이런 건 품질은 결코 보지 못했다. 부럽다.



손낫... 이런 거 하나 정말, 꼭 갖고 싶다.



바깥의 조용한 골목을 지나 들어서니, 공장보단 농가처럼 보이는 작업장이 나타난다. 1층짜리 농촌의 민가 양식(전통적으로 농민들이 거주하던 형태)의 기와지붕을 인 높은 천장을 지닌 60평 규모의 이 건물은 약 70년 전에 지어졌다. 작업장 안은 재료와 기계로 정신이 없었다. 


대장간의 일꾼들 —귀마개와 고글을 끼고, 이마에는 땀을 닦는 수건을 묶었다— 은 부지런히 타고 있는 석탄 위에 금속을 녹였다. 40년 된 빛이 바랜 회녹색 기계들, 먼지 낀 시계, 어울리지 않는 의자와 주문을 가득 적어 놓은 칠판이 70년 된 농기구 제조 작업장을 대변하고 있다.


꼼꼼함과 정밀함에 전통 공예를 융합하여, 17명의 직원 —20세부터 77세까지— 이 4천 종의 다양한 농기구를 생산한다. 각각의 농기구는 일본열도의 산악 지형부터 토양, 기후, 작물의 종류에 따라 알맞게 만들어진다. 그들의 모든 작업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약 3500가지의 괭이이다. 봄철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괭이부터, 남성용 전통의상의 외투인 톰비와 비슷하게 생겨 그 이름으로 불리는 가벼운 종류의 괭이까지 다양하다.


각 농기구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다. 일본의 나무 손잡이는 카시라 불리는 떡갈나무로 만들어진다. 날카로운 날의 강철과 쇠날은 왜 그 옛날 닌자들이 농기구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일꾼들은 우뚝 솟은 기계로 가득 찬 비좁은 방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좀 더 넓은 옆방으로 이동하기 전 농기구의 형판을 자르면서 일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집게로 뜨거운 석탄 위에 있던 금속을 집어 커다랗고 시끄러운 자동 망치 기계에 두들겨 멋지게 농기구를 만든다. 


옆방은 더 조용하다. 여기에서 일꾼들은 나무의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금속을 연마하여 날카롭게 날을 간다. 마지막으로 미리 구입한 나무 손잡이에 농기구를 끼운다. 


이러한 농기구는 평생 쓴다. 공장에서는 해마다 수천 개의 농기구를 수선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수요가 줄긴 했지만, 새로이 젊은 농부들이 농기구를 찾기 시작했다.



총 17명의 직원 가운데 쇠를 연마하는 3명의 직원.



공장의 설립자이자 현재 사장인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삼촌 타다오 아이다 씨. 




“농기구는 오래 사용할수록 주인의 몸에 맞게 길듭니다”라고 금융 판매원을 하다가 28세부터 이 사업을 시작한 아이다 씨가 설명한다. 


아이다 씨가 채소농사용 괭이를 집어들어 날을 살피자, 그의 근육질 팔뚝이 20년 넘는 대장간 일로 잔뼈가 굵은 그의 경력을 알 수 있게 한다. 


“농기구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연륜과 체력과 기술이 필요해요. 농기구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에 10년 정도 걸리죠.”


최근 공장에서는 새로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반영해 제품을 다각화하여 정원용 도구를 제조하는 기계를 들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농민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한편, 대량으로 생산된 중국산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거기에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며 농민들의 수요가 급락했다. 한때 농산물로 유명했던 일본 북동부 현의 생산 —과 그에 대한 수요— 가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로 확 떨어졌다.



공장 입구. 상호는 아이다 합동공장.



타다오 씨의 부인 에미코 아이다 씨.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는 괭이, 낫, 쇠스랑 등의 모습.




그러나 재해의 여파 속에서 새로운 유형의 농부가 나타났다. 아이다 씨는 방치된 농지를 개간하여 직접 농사짓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농기구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바뀌었어요” 그는 말한다. “식품안전에 대해 엄청 신경을 쓰고 있죠. 사람들은 안전한 과일과 채소, 쌀을 먹고자 해서 스스로 자기 먹을거리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20살짜리 조카에게 대장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아이다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은 늘 먹어야 살 수 있을 겁니다. 농기구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http://modernfarmer.com/2013/09/pitchfork-perfect/?utm_source=rss&utm_medium=rss&utm_campaign=pitchfork-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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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농업에서 배우자(32)-의성 오세석 선생

“토종 종자 수집하려고 시골장이란 장은 다 뒤졌지요”


대서라는 절기답게 후덥지근한 날,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있는 경북농산물원종장 의성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15년 이상 토종을 찾아 보존하며 경제성 있는 토종은 적극적으로 농가에 보급해 온 오세석(54) 분장장을 만났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 내세울 것도 없다며 환히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분이다.


- 이곳 원종장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 원종장은 기본적으로 종자를 채종해서 농가에 보급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 원종장은 각 도마다 다 있습니다. 이곳 경북 원종장은 원래 경상북도에 소속된 기관이었는데, 5년 전부터 농업기술원 소속으로 이관됐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보리, 콩, 참깨, 고구마 같은 식량작물을 채종해서 농가에 보급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구에 있는 원종장에서는 벼를 담당하고, 이곳 의성분장에서는 밭작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는 강원도에 있는 원종장에서 담당합니다. 여기 의성분장은 모두 10만 2천 평에 직원이 11명 있습니다. 보리, 콩, 팥, 녹두, 땅콩, 참깨, 들깨를 주로 심습니다. 이렇게 기른 작물에서 씨를 받아 경상북도 모든 농가에 보급하고, 농가에서는 보통 4년을 주기로 종자갱신을 합니다.

채소나 원예, 과수와 관련된 육종이나 채종은 모두 업자가 할 수 있게 관련법이 정비되어 있습니다. 종묘법에 따르면 채소, 원예, 과수와 관련한 종자는 종묘 회사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하면 품종 등록이 되지 않을 겁니다. 종묘 회사처럼 어디 팔고 그러면 소송을 당하겠죠. 엄격히 따지면 지금 여기 원종장에서 제가 토종을 심는 일도 걸릴 겁니다. 품종 이름도 내가 지었고, 몇 단계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법에 안 걸리려면 아마 품종 등록을 해야 할 겁니다.


- 토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셨나요?

= 부모님은 영천에서 과수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젊어서부터 기술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33년 동안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 농업 분야가 제 적성에 맞고 재밌습디다. 이곳 분장장에서 일한 지는 24년 됐습니다. 이곳에서 종자를 보급하는 일을 하면서 90년부터 토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종 종자를 수집하려고 시골 장이란 장은 다 다녔지요. 옛날 기록도 뒤져서 주산지가 어디라고 나오면 그곳까지 따라가서 뒤졌습니다.

그러다 십 몇 년 전에는 안동장에 갔다가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관광이나 하자고 해서 하회 마을을 찾았습니다. 거기에서 우연히 한 농가에 자주감자꽃이 핀 것을 보고는 주인한테 부탁해서 다섯 알을 얻어 왔지요. 그걸 심어서 첫해 10kg으로 늘리고, 이듬해에는 250kg까지 늘렸습니다. 98년에는 중국에도 한 일주일 가서 몇 가지 종자를 몰래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토종이 예전에는 300가지쯤 있었습니다. 헌데 이곳은 진흥청 산하 종자은행처럼 보관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계속 재배하기도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지금은 35가지만 심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원종장이라는 특성이 있는 만큼 농가에서 찾는 것을 중심으로 보존하는 현실입니다. 아니면 보기에 좋거나 특이한 것을 위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양은 아니고 15평, 30평씩 종자라도 보존하자는 생각으로 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심고 있는 35가지 토종 가운데 농가에는 15가지 정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속청, 검정콩, 율무, 메밀은 농가에서 많이들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른 원종장에서는 주로 종자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토종을 찾아서 보존하고 농가에 보급하는 일은 여기서만 진행하는 일입니다.


- 자주감자는 어떤 건가요?

= 자주감자는 50~60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입니다. 이건 춘천 지역에서 많이 심었다고 해서 이름을 춘천재래라고 합니다. 자주감자는 겉은 자줏빛이 나고 속은 흰데, 이걸 날로 먹으면 맛이 아립니다. 북한에서 나온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자주감자는 간에 좋다고 나옵디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한방 쪽에서 찾는 전화가 옵니다. 이런 것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율무는 이뇨 작용에 좋고, 목화는 변비에 좋고, 메밀은 동맥경화에 좋고 이런 것들을 자세하게 연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주감자 말고 붉은감자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처음에 예천의 한 백화점에 가서 구했는데, 종자로는 못쓰게 했습니다. 자신들만의 특산물이라며 지키려고 그런 거죠. 지금 10년 넘게 심고 있는데 퇴화되지 않습니다. 퇴화되면 토종이 아니죠.

토종은 해마다 심어도 퇴화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또 토종은 극심한 가뭄에도 잘 견뎌서 수확량도 괜찮고, 병충해도 잘 타지 않고 적응력도 높아 산간지나 텃밭이나 어디에든 재배할 수 있습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몸에도 아주 좋지요. 그런데 보통 토종이라고 하면 몇 백 년 전 것만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어디서 왔든지 우리 땅에 토착화했으면 토종이라고 생각합니다.


- 씨감자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요?

= 감자는 일반 창고에 2~3℃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구마는 11℃를 유지해야 좋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감자를 보관하려고 땅속에 묻었는데, 봄에 싹이 많이 납디다. 지금은 종이상자에 넣고 신문지 같은 종이 뭉치를 넣어서 그냥 창고 구석에 보관합니다.


- 토종 감자는 수확량이 어떠나요?

= 올해는 봄에 많이 가물어서 좀 못합니다. 땅만 좋으면 한 포기에 대여섯 개도 더 달리지요. 열개까지도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 퇴비를 많이 넣어야 합니다. 저는 퇴비는 많이 넣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땅은 검사하니 유기물 함량이 2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많이 좋아진 것이 그렇습니다. 95년도에 경지정리를 하면서 싹 뒤집어서 밑에 안 좋은 흙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4~5년 동안은 농사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이 단북면인데 붉을 단자를 씁니다. 여기 말로는 쪼대흙이라고 하는데, 황토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질고, 마르면 돌덩이가 됩니다. 수평 배수는 어느 정도 되는데, 수직 배수가 잘 안 되지요. 모래와 퇴비를 넣어서 그나마 좋아졌습니다.


- 옥광을 심고 있는데, 맛은 좋지만 웃자라고 익으면 터집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여기서 많이 보급하고 있는 토종 콩인 속청은 보통 5월 초에 심습니다. 지금 다 순지르기를 끝냈죠. 모든 콩이 보통 요즘이 개화기입니다. 이렇게 꽃이 필 때 순지르기를 하면 늦습니다. 웃자란다 싶으면 조금 일찍 심거나 순지르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콩은 처음에 웃자라면 수확량이 적습니다. 익으면 탈립하는 건 그 콩의 특성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경제성이 보장된다고 하여 여기서 재배해서 보급하는 콩은 5가지입니다. 그것은 대원콩, 태광콩, 장원콩처럼 굵은 건 메주콩으로 쓰고, 보석콩처럼 잘면 콩나물콩으로 씁니다. 또 청자콩 2호는 검정콩의 하나입니다.


- 콩에 질소질은 얼마나 주나요?

= 여기는 보통 4에 맞춥니다. 농고를 나오면 다 아는 얘기인데, 요소비료 같으면 질소비율이 46%입니다. 이걸 계산하면 300평에 8.7kg를 줘야 질소질 4kg을 주게 됩니다. 유안 같으면 질소비율이 20%이니 더 줘야 하지요.


- 붉은 찰벼라는 종자가 있던데 자광미와 다른 것인가요?

= 여기서 15년 넘게 심고 있는 찰벼입니다. 보통 벼보다는 분명히 수확량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먹어 본 분들은 자기가 먹어 본 찰벼 가운데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자광미는 이야기만 듣고 직접 해보지는 않았는데, 이건 쌀이 아니라 잎이 붉은색입니다. 쌀은 일반 벼와 똑같이 현미는 누런색이고, 도정하면 흰색입니다. 그러니 붉은 찰벼라는 건 잎이 붉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올보리를 많이 심습니다. 이걸 찾는 이유는 알이 굵어서 그렇습니다. 알이 굵어서 농사만 잘 지으면 쉽게 1등급을 받습니다. 그 재미로 수확량은 조금 떨어지지만 농민들이 올보리를 많이 심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세요.

=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벼, 보리, 감자, 옥수수, 콩 이렇게 다섯 가지만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점점 농업은 어려워지니까 정부에서는 그 다섯 가지 말고는 관리를 못하는 실정이지요. 막상 토종을 해보니 요즘은 괜히 힘만 들지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듭디다. 그래도 종자은행의 냉동고에 있는 것보다 살아 있는 싱싱한 종자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먹을 정도면 몰라도 농민 입장에서 어디 내다 팔고 하려면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는데, 토종은 아직 그런 면에서 힘듭니다. 예전에 흑미가 값이 좋을 때는 한 가마에 40~50만원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농산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5%만 과잉 생산되면 폭락하고, 5%만 모자라면 폭등합니다. 요즘은 어떤 농산물 값이 비싸다고 하면 바로 수입해서 그 폭이 덜하긴 하지요. 채소는 생물이라서 그렇게까지는 못합니다만, 값이 떨어지면 외면을 받습니다.

저는 사택에 따로 30평쯤 텃밭을 하는데, 거기 케일을 심었습니다. 거름은 깻묵 썩은 걸 주고 벌레 때문에 모기장을 덮어 놓았지요. 하루는 백화점 가서 깨끗한 케일을 보면서 ‘이게 이렇게 깨끗하게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0년 이전 농업통계를 보면 쌀만 생산량이 2000만석 전후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웬만하면 4000만석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작률은 줄었지만 오히려 수확률은 늘었다는 건 다수확 품종을 심고, 비료를 많이 주고, 그러다 보니 병이 많아져 농약을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비료를 적게 주면 도열병이 오지도 않습니다. 비료를 많이 주면 대번 도열병에 다 걸리지요. 퇴비를 보약이라고 한다면 화학비료는 영양제입니다. 한약은 많이 먹어도 나쁘지 않고 좋은 것처럼 퇴비를 줘서 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땅이 좋아야 안 좋은 종자도 좋아집니다. 땅이 나쁘면 종자도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종자가 좋으면 좋은데, 종자가 나쁘면 땅이라도 좋아야 합니다. 여기는 땅이 넓어 감당하기 어려워 퇴비를 많이 쓰지 못합니다. 그래도 생산량보다 종자로 쓰려고 하는 것이기에 될 수 있으면 비료를 적게 줍니다. 그래야 강한 종자를 받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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