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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어 가다 보면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씨앗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긴 하다.

모든 생명은 씨앗에서 시작된다 ―"씨앗 학교"의 오카모토 요리타카岡本よりたか 씨가 "씨앗 받기"를 권하는 이유



요즘은 정원이나 텃밭이 취미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종이나 씨앗은 어떻게 구하는가? "씨앗은 사는 것." 그것은 농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씨앗 받기'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씨앗 학교'를 세운 무비료 재배자 오카모토 요리타카 씨이다. "모두의 생명은 씨앗에서 시작된다"고 각지에서 씨앗의 매력을 알리고 다닌다. 씨앗에 얽힌 위기부터, 간단히 할 수 있는 씨앗 받기의 소중한 힌트까지 알려주었다.  

어머니에게 들은 "생명을 먹으세요"

―오카모토 씨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40대가 되면서부터이네요. 왜 농부가 되려고 생각한 겁니까? 

오카모토 저는 40세까지는 텔레비와 IT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쪽 생활은 불규칙하고, 스트레스도 심하죠. 몸 상태가 망가져 버린 겁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어린 시절부터 계속 들었던 "먹을거리가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말. 어머니는 항상 "생명을 먹으세요"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 직접 농사짓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여 채소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처음은 상자텃밭부터요.

 

―농약과 비료는 처음부터 쓰지 않은 겁니까? 

오카모토 네. 사실 영상 일을 하고 있을 때, 농약의 독성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어서 처음부터 농약에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비료도, 화학비료는 물론, 유기비료도 냄새가 독하여 아무래도 사용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럴 때, 자연농법의 대가 후쿠오카 마사노부 씨의 저서 <자연농법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무비료로 하겠다고 결심했죠.  

씨앗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2018년에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를 출판했는데, 씨앗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오카모토 씨앗을 생각하기 시작한 건, 사실 농업으로는 생활할 수 없어 포기하려 한 때였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야마나시山梨에 밭을 빌려 취농을 하고 있었는데, 무비료로는 생각처럼 수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저금도 약간. 세금을 체납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수렁을 맛보았습니다. 이제 농업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



―일단 농업을 포기하려 했네요.

오카모토 그 무렵은 이미 밭도 내버려 두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가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던 토마토가, 그것이 보기 좋게 열매가 달려 있었어요. 감동했지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밭에 가면 먹을거리는 있다. 씨앗이 생긴다. 손에 씨앗이 있으면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직접 씨앗을 받게 된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수확할 수 없어도 어쨌든 씨만은 받으려고.


―그때까지는 왜 씨앗을 받지 않았나요? 

오카모토 확신이었죠. 농업을 시작할 때 직접 받은 씨앗은 맛있는 것이 나오지 않고, 양도 적다고 배운 거죠. 그래서 농약이나 비료는 사지 않아도 씨앗만은 종묘상에서 구입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화감도 들었습니다. 씨앗을 구입한다는 건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사회경제의 안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죠. 저는 먹을거리를 농사짓는다는 행위는 경제와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씨앗은 환경을 기억하고 스스로 개량한다 

―직접 받은 씨앗을 사용하면서 무엇이 변화했나요?

오카모토 저의 경우, 채소들이 건강히 자라게 되었어요. 병도 잘 안 생깁니다.

―대단하네요. 왜 그런가요? 

오카모토 씨앗은 설계도 같은 것입니다. 심어진 토지의 기후와 토양, 곤충들의 종류와 풀의 다양성 등을 모두 기억하면서 제대로 자라도록 스스로 개량해 갑니다. 그래서 일단 병에 걸리면 그 정보를 수집하고, 다음 세대에서는 그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되지요. 


여러 종류의 보리 씨앗. 왼쪽에서 두 번째는 고대 보리의 일종. 


―굉장한 능력이군요!

오카모토 저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1년째부터 서서히 정보가 축적되어 7년이면 완전히 그 토지에 익숙해집니다. 예를 들면, 자연농법으로 유명한 카와구치 유이치川口由一 씨의 밭에 가면 마치 풀 속에서 채소가 자라고 있는 것 같은 상태랍니다. 자가채종을 계속한 씨앗이 풀 속에서 자라는 유전자가 된 것입니다. 종묘상에서 구입한 씨앗으로는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자가채종으로 이어가면 씨앗이 환경을 기억하기 때문에 재배의 노력이 줄어듭니다. 씨앗을 구입한다는 건 모처럼 정보가 기록된 설계도를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설계도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잡초가 자라는 밭에서 씩씩하게 크고 있는 염교의 싹 


씨앗에게 맡기는 것이 최고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에서는 판매하고 있는 씨앗과 자가채종한 씨앗은 외형도 전혀 다르다고 써 있습니다. 오카모토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당근의 경우 시판하는 씨앗은 약간 타원형으로 휘어져 있지만, 자가채종한 것은 잔털이 빽빽하게 붙어 있습니다. 마치 작은 벌레처럼.

씨앗이 달려 있는 채로 말려, 건조 보존시키는 당근의 꽃. 


―어떻게 된 것인가요?

오카모토 털이 있으면 기계로 잘 파종할 수 없기 때문에, 종묘상이 없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은 이 털이 당근의 발아에 굉장히 도움이 되어요. 

당근은 물을 열심히 주지 않으면 발아하지 않지만, 자가채종한 씨앗은 비가 한 번 오면 발아합니다. 털이 수분을 쥐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심기 어렵다고 털을 없애고, 발아하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근만이 아니라, 식물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몸에 달지 않아요. 각각 그 모양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채소의 일은 채소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씨앗에게 맡기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三浦 무의 씨앗(앞쪽)


씨앗 받기의 관습은 왜 사라졌을까


―일반적인 농업에서도 보통은 씨앗을 구매하지요. 

오카모토 네. 지금, 슈퍼 등의 진열대에 있는 채소의 대부분은 두 종류 이상의 품종을 교배시킨 교배종(F1:잡종 제1대)인데, 교배종이 나와서 씨앗 받는 관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구입한 교배종의 씨앗을 심으면 맛과 모양, 크기가 균일한 작물이 나오지만, 거기에서 받은 씨앗을 심으면교배시키기 전 각각의 품종이 지닌 형질이 나타나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 됩니다. 


순무의 고정종 가운데 하나, 미야마みやま 작은 순무. 생으로 갉아 먹어도 부드럽고 맛있다 


―그럼 시장에 내기는 힘들겠네요. 

오카모토 본래는 그 다양성이야말로 식물이 생존하기 위한 생명력이지요. 하지만 유통을시켜도 팔리지 않아 곤란하기에 농민은 해마다 씨앗을 구매해 심게 된 것입니다.  

저는 교배종을 부정하지 않아요. 교배종이 있기에 지금의 일본의 식탁에는 채소가 많이 올라가고 있죠. 사람의 지혜가 집적된 기술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씨앗을 남기는 것은 식물의 최종 사명입니다. 나 자신, 씨앗 받기를 하게 되어 "생명의 순환"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씨앗 받기만큼은 잃어 버리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씨앗을 턴 뒤의 가지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그런데 지금, 씨앗을 둘러싸고 일부 기업에 의한 지배와 독점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오카모토 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카모토 기업이 씨앗의 권리를 주장하고, 농민의 자가채종을 금하려 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불쑥 생각한 것은, 유전자변환 종자였습니다. 유전자변환 종자에는 개발한 기업에게 지적재산권인 특허가 주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유채를 재배해도 의도하지 않게 이웃 밭의 유전자변환 유채와 교잡된 것만으로도 특허 침해로 고소를 당합니다. 

하지만 씨앗을 맺는 건 식물로서 당연한 생명 활동입니다. 씨앗은 식물 자신이 생명의 이어달리기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씨앗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딱 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2018년 4월에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하 종자법)"이 폐지되어 '자가채종 금지인가' 하고 시끄럽습니다. 

오카모토 여기는 조금 조심해야 하는 바입니다. 

종자법은 어디까지나 벼, 보리, 콩에 관한 법률로, 전쟁 이후의 혼란기, 국가가 농민을 대신해 주식인 벼, 보리, 콩의 원종, 원원종을 남기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폐지된 것은 시대도 변하고, 민간도 많이 만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쟁의식을 높여 가격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종자법이 폐지된다고 하여 곧바로 자가채종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안심일까요? 

오카모토 아니, 그렇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종자법이 폐지되어서 앞으로 바이오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종묘회사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벼, 보리, 콩의 씨앗에서도 기업과의 사이에서 '자가채종 금지'의 계약이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종자법에는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싹을 내민 보리밭 


걱정해야 할 건 종묘법의 개정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카모토 제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씨앗에 관한 또 다른 법률 '종묘법'이 개정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자가채종의 권리에 직접 관련된 것은 종묘법 쪽입니다. 

종묘법은 벼, 보리, 콩만이 아니라 채소와 꽃 등 식물 전체에 대한 법률입니다. 종묘법에서는 등록된 품종에 대해서는 개발자에게 '육성자권'이 주어지고, 육성자권을 가진 주체 이외는 씨앗과 모종을 육종하거나, 판매, 양도하는 일은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편, 현재 상태에서는 농업인이 씨앗을 받거나, 받은 씨앗으로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일(자가증식)은 인정되고 있습니다(※1)。

※1:예외적으로, 종묘회사가 계약으로 자가채종을 금지할 수 있다. 또, 감자와 딸기 등 뿌리와 줄기, 덩굴 등에서 '영양번식'으로 늘어나는 것은 자가증식이 제한되어 있다. 


자가채종한 씨앗이 보관되어 있는 "씨앗 학교"의 보관고 


―그 종묘법이 어떻게 개정되려 합니까? 

오카모토 품종 등록된 품종에 대하여, 모든 자가채종을 금지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 전제로 있는 것이 '식물 신품종의 보호에 관한 국제조약(UPOV 조약)'입니다. 이전, 딸기와 포도 등에서 일본이 육종해 등록한 품종이 한국과 중국으로 건너가 허가 없이 재배된 사건이 있었는데, UPOV 조약은 그러한 문제를 받가 각국의 지적재산인 육성자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 공통의 규칙으로 체결된 겁니다. 

요점이 되는 건 UPOV 조약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자가증식이 금지되어 있는 점. 그리고 지금 농수성은 종묘법도이에 맞추어 씨앗을 받거나, 받은 씨앗을 직접 심는 일까지 금지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가증식이 금지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오카모토 '씨앗은 사는 것'이라 믿고 있으면 별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기업에게 씨앗이 집중되는 건 매우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기업이 씨앗을 팔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보다 몇 십 배 가격을 올리면? 

실제 인도에서는 재래종 면화의 씨앗에 대한 권리를 거대 바이오 기업이 독점하고, 유전자변형 종자만 판매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씨앗의 가격이 80배나 뛰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씨앗 학교"에서 씨앗 받기를 퍼뜨리고 싶다

―오카야마 씨는 2018년 기후현 군죠시郡上市에 종자은행 '씨앗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까? 

오카야마 그렇습니다. 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면 언제 종묘법이 개정되어 버릴 겁니다. 만일 자가채종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수중에 씨앗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씨앗 학교'에서는 회원 여러분이 채종한 씨앗을 보낸 걸 받아서 보존하는 일과 동시에, 씨앗 받는 기술을 지도하거나, 씨앗 교환회를 하거나 하여 '씨앗은 남기는 것'이란 의식화를 하고 싶습니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오카모토 씨앗 받기를 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걸 실감합니다. 수확량만 보면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았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집에서 작은 화분에 재배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씨앗 받기를 하는 사람은 전업농의 수보다 많지 않을까 해요. 


오카모토 씨 자신이 채취한 씨앗과 전국에서 보낸 씨앗이 보관되어 있다. 


호박과 토마토의 씨앗을 받아 보자!

―채소를 기르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오카모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구입한 호박의 씨앗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씨앗 주변에 붙은 걸 깨끗이 씻어서 잘 말립니다. 이걸 땅에 심으면 싹이 나고, 호박이 달릴 겁니다.  

호박 이외에도 토마토, 수박, 멜론 등이 있어요. 씨앗을 빼서 씻어 말리기만 해도 됩니다. 상자텃밭 하나에서도 할 수 있어요. 

씨앗 받기부터 직접 하면, 단편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보지 못하던 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식물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씨앗에서부터 먹을거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낼 줄 알면, 어디에 가서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열매에서 빼 말리고 있는 씨앗 


―왠지 두근두근 하네요.

오카모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하면 좋습니다. 토마토라는 하나의 저런 작은 알갱이에서 몇 개가 생기는 것일까요? 흔히 말이에요. 파칭코보다 승률이 좋아요(웃음).  어쨌든 한 알에서 몇 만 알이나 생기니까요.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저는 계속 이 질문을 생각해 왔는데,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 식물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種は誰のものか?

岡本よりたか/著(2018年、veggy Books・キラジェンヌ出版)

農作物の種を巡る世界情勢が目まぐるしく変わってきている現在。種がなぜ大事なのかを改めて考えると同時に、種がどのように作られ、私たちの命とどうかかわっているのか、さらには世界と食卓を結ぶ一粒の種にどんな問題が起きているのかを、分かりやすく解説。そのうえで私たちが今すべきことをライフスタイルから見つめ直していきます。





岡本よりたかさん

오카모토 요리타카岡本よりたか

空水 비오팜 농장주。CM 크리에이터、TV 디렉터 등의 취재를 통하여 농약과 제초제, 비료가 환경에 미치는 파괴적인 피해를 알고, 40세 중반에 야마나시현 호쿠토시北杜市의 야스카타산八ヶ岳 남쪽 기슭에서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 자가채종 밀과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기후현 군죠시郡上市로 다시 이주하여, 자가채종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세미나와 강연을 개최하면서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농법을 보급하는 일도 노력하고 있다. 무비료 재배 세미나 강연활동은 연간 150일 정도, 전국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1800평 밭에서 농업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민간 종자은행인 '씨앗 학교'를 주최하고, 농업 학교 등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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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밀'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유명해져서 전국 방방곡곡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여기저기 널리 재배될 뿐만 아니라 상품으로도 꽤 많이 팔리고 있다. 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문헌이나 이야기만 듣다가 2012년 여름, <토종 곡식>을 저술하면서 조사하다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자료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어떻게 찾을 수 없을까 알아보다가 진주 금곡 정미소에서 이 밀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 대표인 백관실 선생을 만나러 갔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또 한 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석태 선생이다. 그 더운 여름에, 가는 길에 서석태 선생을 태우고 금곡 정미소까지 함께 가서 취재를 한 기억이 난다. 가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체했는지 어떤지 안색이 좋지 않으셨다. 결국 그날, 내가 한창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앉아서 쉬시다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놀라고 당황하여 경황이 없었지만 먼 길을 왔기에 인터뷰는 마쳐야겠고, 사람은 쓰러졌고,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함께 간 주소영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저는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우니 대신 좀 부탁드린다고. 그리고는 응급차가 와서 함께 경상대병원으로 가서 바로 입원하시고 이후 위암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덕분에 살았다고, 혼자 거창 집에 있었으면 아무도 모르게 쓰러져서 큰일날 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날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 하고도 7-8개월이나 지났다. 저 세상에서도 주변에 사람들 모아서 재미나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를 기억한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데로 흘렀다.

앉은뱅이 밀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안완식 박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서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었지만 다들 안완식 박사가 앉은뱅이 밀을 다시 찾았다고만 이야기하고 나의 일은 쏙 빠져 있으니 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그런 사실 관계는 차치하고, 나는 그런데 왜 앉은뱅이 밀은 그렇게 키가 작아졌을지 궁금했다. 도대체 왜일까? 안완식 박사의 자료에 의하면, 앉은뱅이 밀은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품종명을 기록해 놓은 자료를 보아도 앉은뱅이 밀의 품종명이 나타나는 곳의 분포가 그와 일치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남해안일까? 여기서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바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했다. 남해안은 보리가 한창 성숙하여 자라고 있을 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와 인접해 있는지라 더더욱 바람의 변동과 세기가 심했을지 모른다. 이른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키가 큰 것보다 키가 작은 쪽이 더 살아남기에 유리했을 터이다. 그러니 자연히 농민들도 이런 특성을 보이는 밀을 선택하여 재배해 오지 않았을까? 이런 내용은 이미 <토종 곡식>에서 다룬 바 있다.

오랜만에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앉은뱅이 밀에 대한 내용이 참 많아졌다. 그런데 동아일보 김유영 기자는 '앉은뱅이 밀'이 기원전 300년부터 재배되었다는 걸 어떻게 저렇게 자신 있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61102/81119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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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래 벼 품종의 맛 평가>라는 논문

https://www.jstage.jst.go.jp/article/hokurikucs/52/0/52_6/_pdf



일본 재래벼 품종군 맛 평가.pdf


일본 재래벼 품종군 맛 평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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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회는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라는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가 된 경위를 농학자인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한편,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에 의해 잃어버린 '쌀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쌀은 대략 20품종

쌀의 다양성이 사라진 이유로, 사토 씨는 '군사물자로 쌀의 품질을 통일시키려는 국가정책을 취한 점' '특히 소화시대 이후에 다수확을 목적으로 키가 작은 특정 품종만 품종개량에 사용한 점'을 들지만, 역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고시히카리의 등장'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재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멥쌀, 찹쌀, 술쌀을 합계하여 약 480품종(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 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이 가운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멥쌀은 재배 비율 상위 20품종이 84.1%를 차지하고있다(2017년산, 미곡 안정공급확보 지원기구 공표). 

※일정한 산지(도도부현 단위)에서 생산된 품종이 다른 산지에서 생산된 동일한 품종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품질차를 나타내기 때문에, 농산물의 거래 등에서 해당 산지와 품종을 농산물 검사로 특정할 필요가 있음. 1년 1회, 도도부현마다 내역 설정의 신청이나 폐지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장이 설정되고, 학식 경험자, 생산단체, 실수요단체, 행정관계자에 의한 협의를 통해 농림수산성 국장에게 전달. 내역의 설정 등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농림수산부 장관이 행하는 농산물 규격규정의 개정 절차가 진행됨.



각 현에는 여러 가지 대표 품종이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 보면 재배면적은 적다(Panasonic'쌀 이야기 박물관OKOME STORY MUSEUM'의 전시에서)




한편, "메이지 시대는 4000가지 품종이 있었다. 이명 동종, 동명 이종이라 생각되는 것을 정리하더라도 600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사토 씨가 말한다. "메이지 시대에 여러 가지 품종이 보전된 것은 사람들이품종을 식별하여 목적에 따라 구별하여 쓰거나, 지역 사이의 교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시히카리의 등장 이후, 전국에서 비슷한 품종이 나왔기 때문에 현재는 다른 품종을 식별할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도 시대에 농사지었다고 보이는 품종 '愛亀'. 역주; 이 품종은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린 붉은 물감과 초록 물감만 가지고 있다. 섞으면 자주색이 된다. 다양한 자주색이 되겠지만, 결국은 자주색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늘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의 품종개량이다. 어떻게 기호라는 게 균일화되는 것인가 한다." 



에도 시대에 카가번의 헌상미였다고 이야기되는 품종 '킨챠쿠巾着'



한때 '가짜 고시히카리'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다. "유통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가운데 30%가 가짜일 때조차 우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품종의 차이가 적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품종이 들어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니, 즉 맛의 차이를 모르면서 비싼 고시히카리를 구매하는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가짜 고시히카리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쌀의 맛이란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며 발생한 비극이었다." (사토 씨)


문화의 다양성과 품종의 다양성이 지닌 관계 

다양성이 적다는 건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사토 씨는 "품종의 다양성을 없애는 건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라 딱 잘라 이야기한다. "어느 지역이라도 각각의 식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품종이 있었을 것이다. 식문화의 배경에는 잔치 음식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잔치 음식이라도 특정 품종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면, 그 쌀의 특징을 살린 식문화는 사라져 버린다. 잔치가 사라지면 그때 사용된 품종도 사라져 버린다. 문화의 다양성이 품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품종의 다양성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다양성이 여위어 버리면, 다른 한편의 다양성도 여위어 버린다."

실제로, 짚 세공용 벼 품종도 짚을 쓰는 문화가 사라져서 소멸되어 버렸다. 현재의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우리가 평소 먹고 있는 멥쌀은 약 290품종, 찹쌀은 약 70품종, 술쌀은 약 120품종이다(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밥을 먹고, 잔치 음식으로 떡을 만들고, 일본술을 마신다. "적어도 경사스런 날만이라도 품종을 구별해 쓰면 어떨까요?"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우리의 "경사스런 날"과 "잔치"의 밥상이 문화와 품종을 유지해 나아갈 것이다.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越田秀俊 씨와 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한 '은방주銀坊主'라는 멥쌀 품종. 역주; 은방주는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들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朝日新書)이란 저서가 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은 있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찾자?' 그 진의를 묻자,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맛있는 쌀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사토 씨가 답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든다'는 건 어떤 뜻일까? 

사토 씨가 제안하는 건 '나의 품종'을 만드는 일. '나의 품종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손을 맞잡고 만드는 품종이다. 맛있는 쌀을 만드는 책임은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어떤 품종을 만들고 싶다고 대화하고, 자신들이 직접 인공교배하고 선발을 한다. 소비자는 모내기와 제초, 벼베기 등 1년에 몇 번은 농작업을 도우러 가고, 생산된 쌀은 구매한다. 그 토지에서 농사지은 쌀은 확실히 그 땅에 적응하고 있다. 다양한품종을 만드는 일을 통해 그 토지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고, 예를 들어 냉해 등의 재해가 있어도 전멸이란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가채종을 반복하는 것으로 종묘법에 규정된 '품종'에서는 사라져 가겠지만, 이해하는 소비자와 함께 품종을 만들어 먹는 분량만큼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토 씨의 생각이다. 



수확한 벼는 씨앗이 된다 



장애물이 높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품종개량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라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 무렵의 품종은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탄생하고, 농민들이 품질을 유지해 왔다. 품종의 관리를 민간에 맡기는 일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문화의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 文化的多様性は生物多様性を担保する

2018년 4월, 장려품종에 대해 규정된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 폐지되었다. 현재는 도도부현이 독자적으로 장려품종을 계속 다루고 있지만, 만약 앞으로 장려품종이 사라진다면 식량관리법 시대처럼 '니이가타 쌀(新潟米)' '후쿠시마 쌀(福島米)' '일등 쌀(一等米)' '이등 쌀(二等米)' 같은 산지나 등급의 정보만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리겠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사토 씨는 "다양성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품종을 스스로 만든다면, 지적재산권도 경제적 소유권도 자신의 것. 거대한 농생명 기업에 얽매이지 않는다. 지금 시대는 옛날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총동원해 나의 품종이 지닌 형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다양하지만 잡박하지 않은 품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토 씨가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하듯이, 사람들이 단일 품종을 먹고 있다면 단일 품종만 재배되어 버린다. 그러나 다양한 쌀을 맛봄으로써 다양한 품종의 재배가 퍼져 나갈 것이다. 쌀 품종의 다양함은 문화의 다양성과 동일하다. 

나의 품종을 만들어 메이지 시대 같은 품종의 다양함이 현대에 소생되면 일본의 밥상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벼 오타쿠에게 듣다!『나의 품종』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했듯이, 농민이 육종가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모른다. 


https://agri.mynavi.jp/2019_01_22_5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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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재래종 옥수수로 만든 이 주식은 대량 생산과 근대성에게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소농들이 저항하고 있다.


Petra Cruz González 씨는 멕시코 틀락시아코Tlaxiaco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매일 400개 남짓 또르띠야를 만든다. , Mexico.CreditCreditLeila Ashtari



페트라 크루즈 곤잘레스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약 400개의 또르띠야를 손으로 만든다. 전기 제분기와 금속 프레스기 같은 몇몇 현대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8살 때 배운 것처럼 장작불에 조리한다.


49세인 곤잘레스 씨는 길거리와 집에서 또르띠야를 판매한다. 오악사카 지역의 도시에 있는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들을 조직하고자 1990년에 시작된 틀락시아코 Palmeadoras 조합의 대표인 그녀는 이것이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합의 89명의 조합원(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경쟁자들과 맞서 이러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그 도시의 25곳의 또르띠야 매장은 매출이 크게 줄었으며, 곤잘레스 씨는 또르띠야를 모두 팔기 위해 오후 10시까지 일해야 하곤 한다. 그녀는 6개에 10페소(약 550원)라는 가격을 매겼는데, 이건 들어가는 경비보다 조금 더 충당하는 정도이다. 그녀는 다른 행상의 먹을거리를 위해 남은 또르띠야를 거래하곤 한다.


"또르띠야 매장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하지 무얼 파는지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곤잘레스 씨는 말했다. "우린 양이 아니라 품질을 팝니다."




곤잘레스 씨는 이 도시의 수제 또르띠야 생산자로 이루어진 조직의 대표이다.





CreditLeila Ashtari




가운데에 곤잘레스 씨와 다른 또르띠야 생산자가 시장에 판매하러 가고 있다.Leila Ashtari



도시부터 농촌까지, 멕시코의 또르띠야는 위기에 처해 있다. 메트로폴리탄 소치밀코Xochimilco 자치대학의 영양학자  Julieta Ponce에 의하면,  멕시코 사람들이 빵과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으면서 1인당 소비량이 1982년 약 102kg에서 2016년 약 56kg으로 지난 35년 동안 약 45% 급감했다. 


값싼 또르띠야와의 경주에서 품질은 불리해졌다. 거의 절반 정도의 공급량이 현재 산업적으로 생산된 또르띠야 반죽이나 Maseca 같은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진다.  



멕시코 요리를 연구하는 작가 Cristina Barros 씨는 또르띠야의 위기 상황은 비만과 빈곤, 이민을 포함하는 멕시코의 광범위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경고라고 이야기했다.  "또르띠야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좋은 품질만이 아니라" 특히 또르띠야 생산자와 옥수수 농민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Barros 씨는 말했다.  “우리가 전통적 음식을 산업의 식품으로 바꾸려고 결심했을 때 이 비만이란 전염병이 나타났어요.” 


워싱턴 대학의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에 의하면,  멕시코의 비만율은 1980년 7%에서 2016년 20.3%로 급증했고, 1980년대 멕시코의 자유무역 기조가 이러한 변화에 기여했다.



지난 5월, 75개 이상의 단체와 기업이 옥수수 또르띠야를 홍보하고자 우리 또르띠야를 위한 동맹Alianza por Nuestra Tortilla를 창립했다. 멕시코에는 특히 북부 지역에 밀가루 또르띠야가 있는데, 이 단체의 초점은멕시코 요리의 기반인 옥수수에 있다. 그 연맹은 연구, 교육 행사, 언론 홍보 및 로비활동을 포함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동맹의 견해로는, 좋은 또르띠야는 말린 옥수수(이상적으로는 토종 품종)를 수산화칼슘을 푼 물에 담가 밤새도록 불리는(멕시코에서는 칼cal이라 함) 닉스타밀화라고 알려진 전통적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만들어진다. 이것이 영양분을 풀어서, 또르띠야가 비타민과 미네랄 및 단백질의 귀중한 원천이 되게 만든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옥수수 가루도 닉스타밀화되어 있지만, 또르띠야 순수주의자들에 의하면 추가 가공으로 영양분을 제거함으로써 질이 낮은 또르띠아가 만들어진다.  



생물다양성을 장려하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가 오악사카 주에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CreditLeila Ashtari




25년 이상 옥수수 생산자들과 일하고 있는 농학자 Amado Ramírez Leyva 씨는 소비자에게 전통적 또르띠야에 비용과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득하는 핵심으로 생물다양성을 장려한다. "지난 50년 동안, 도시 사람들은 옥수수 맛이 어떤지 모르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토종 옥수수는 산업용 옥수수보다 훨씬 풍미가 다양합니다.


동맹은 또르띠야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그리고 대규모 생산자에게 그 성분을 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법률로 만들고자 연방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옥수수 생산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멕시코 옥수수 또르띠야 재단Fundación de Tortilla Maíz Mexicana의 창립자이자 동맹의 회원인 Rafael Mier 씨가 이야기했다. 그는 "가짜" 제품을 폭로한다면 멕시코 사람들이 어떤 또르띠야를 먹을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을 가족을 위해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우린 단지 정보를 제공하면 됩니다." 



틀락시아코 옥수수 축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Rafael Mier 씨. 그는 또르띠야를 만드는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일하는 단체를 설립했다. Leila Ashtari




멕시코 시티의 다른 많은 새로운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또르띠야 반죽과 또르띠야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다.  작년에 개장한 이후 사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설립자이자 주방장 산티아고 무노즈Santiago Muñoz 씨는 전통적인 또르띠야 생산자가 원래 하루에 29kg 정도 만드는데 현재 적어도 204kg쯤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멕시코에는 300만 명 정도의 옥수수 농민이 있는데, 많은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의 재배를 그만두었거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민을 간 농민이 많다. 비슷한 또르띠야 매장과 마찬가지로,  Maizajo는 이 전통이 살아 있도록 보전하고자 토종 옥수수에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한다.  멕시코 시티의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산후안 익스텐코San Juan Ixtenco에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는 자신의 토종 옥수수 0.45kg의 평균 가격이 2.25페소(약 133원)이고, 때로는 1.35페소(약 77원)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그는 4.5페소(약 267원)가 노동자들이 도시로 가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핼 필요가 없는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Angoa 씨는 3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건설 현장에 가서 일할 계획이고, 자신의 가족이 농지를 돌볼 것임). 



불행하게도, 많은 멕시코 사람과 요리사 들은 닉스타밀화와 관련된 작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요리학교에서는 이 기술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수산화칼슘의 정확한 양과 적절한 조리 시간을 찾기 위해 각각의 옥수수 품종마다 조사해야 한다(예를 들어 너무 지나친 닉스타밀화는 빛깔을 바꾸거나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게 할 수 있음). 


"또르띠야는 빵이나 피자 반죽과 같아요.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무노즈 씨는 말했다. 




멕시코 시티의 또르띠야 매장 Maizajo에서 일하는 요리사 산티아고 무노즈 씨. Maizajo는 농민들이 토종 옥수수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CreditLeila Ashtari





산후안 익스텐코에서 사는 농민 Simon Angoa 씨.CreditLeila Ashtari




그 가치는 높은 가격으로 나타난다. 도시에서 대부분의 전통적 또르띠야는 상업용 또르띠야의 약 5배에 달하는 가격인 호화로운 제품으로 팔린다.  농민과 함께 지역 및 세계의 식당에 반죽과 옥수수를 공급하는, Francisco Musi와 Sofia Casarin 씨가 소유주인 멕시코 시티의 한 기업인 Tamoa에서는 유통 비용을 줄이고 근처에서 재배한 토종 옥수수를 사용함으로써 고품질의 또르띠야를 더 많이 만들고 있다. 


잘 만들어진 또르띠야는 이미 도시의 최고 식당에 있기에,  Casarin 씨는 덜 비싼 식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큰 변화를 지켜본다.  "중간 가격의 또르띠야에 적합한 장소를 찾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요리사인 Enrique Olvera 씨와 Ramírez Leyva 씨가 동업하는 한 가게인 Molino El Pujol는 기계류를 사용하여 비용을 줄이는 걸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대적 장비는 기계의 롤러를 부드럽게 통과하는 Maseca 같은 표준의 농산물을 처리하도록 설계되었다. 다양한 토종 옥수수를 가지고 좋은 또르띠야를 생산하기 위해서 기계를 조정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Ramírez Leyva 씨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기계를 활용할 수 있다면, 확실히 전통적 또르띠야를 대중화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옛날 방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옥수수를 닉스타밀화하는 4만 개의 또르띠야 매장과 집에서 전통적인 또르띠야를 만드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엄청난 지식이 있지만 시장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Mier 씨는 이야기했다. 

노하우가 존재합니다. 우린 단지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할 의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18/12/21/dining/corn-tortilla-mexic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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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중부의 다채로운 옥수수들. Credit: Getty Images



그의 부모와 조부모처럼 Edilberto “Beto” García Cuenca 씨는 어렸을 때 그 땅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깜페시노”—스페인어로 가족농—의 긴 계보의 후손인 그는 푸에블라의 멕시코 주에 있는 Santa María Zacatepe의 고향에서 엄마가 물려준 6000평 규모의 작은 밭에서 아직도 옥수수를 재배한다.  또한 토양 비옥도를 유지하고자 콩을 심고, 작물에 물을 주는 건 빗물에 의존한다. 


장마철에 García Cuenca 씨는 이전 농사철에 갈무리해 놓은 씨앗을 선발하고, 그걸 심어 모종을 돌본다.  멕시코의 다른 수백 만의 깜페시노들이 그렇게 증식시켜 유전적으로 다른 수억 가지의 옥수수를 얻는다. 저마다 매우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독특한 선발 방법을 거친다. 


이런 진화론적 실험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소농의 노력은 북아메리카에서 옥수수의 유전적 다양성 가운데 대부분을 창출했다. 더 공격적인 날씨의 위협에 직면한 연구원들은 그 발견이 중요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식물 유전학자 Daniel Piñero 씨는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가족농은 옥수수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여를 해 왔다고 Piñero 씨는 말한다. 


멕시코의 생물다양성의 지식과 활용에 관한 국가위원회에서 일하는 사회과학자 Mauricio Bellon 씨와 그 동료는 연구에서, 지난해 국세조사가 완료된 2010년 장마철에서 정부의 통계를 사용했다. 그 연구진은 헥타르당 3메트릭톤 이상의 옥수수 수확량을 올리는 지방자치제에 다가섰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아직 자신의 먹을거리와 토종 품종을 재배하는 곳이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상업적 규모로 하이브리드 옥수수가 생산되는 곳을 추정했다. 


멕시코의 상업적 옥수수 농민들은 장마철 동안 약 38억4000만 평을 심었다. 나머지 18억 평은 깜페시노가 심었다고 연구자들은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지난 8월 보고했다. 이전의 추정을 활용하여, Bellon 씨의 동료들은 2010년 멕시코의 가족농이 유전적으로 다른 약 1380억 가지의 옥수수를 재배했다고 계산할 수도 있었다. 다양한 기후와 고도, 경사면에서 토종 옥수수의 작물화는 그렇지 않으면 사라졌을 희귀한 돌연변이를 보전하게 만들었다고 Bellon 씨는 강조한다. “깜페시노는 국가와 세계에 대한 옥수수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에 매우 중요한 진화론적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과학자들은 한 농사철에서 다음 농사철로 씨앗을 저장하거나 공유하는 일과 같은 전통적 방식에 힘입는 이런 유형의 농사는 멕시코의 59가지 토종 옥수수 품종으로 이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진자주색부터 상아색과 분홍색및 주황색의 다양한 빛깔과 크기를 지닌 껍질과 알의 옥수수들이다. 이런 다양성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옥수수를 생산하는 미국에서는 드물다. . “당신이 아이오와 주의 농장에 가면 300만 개의 옥수수를 볼 수 있겠지만, 그 모두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다”고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옥수수의 진화유전학을 연구하는 식물유전학자 Jeffrey Ross-Ibarra 씨는 이야기한다. 미국의 농민들은 자신의 품종 대신 종자를 구매하기 때문에 “진화가 일어날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자연재해나 인간에 의한 재해에 대비하여 식물의 종자를 저장하는 안전한 장소인 종자은행은 진화 과정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더 나은 장소는 아니다. 노르웨이의 영구동토 아래의 훼손되지 않는 종자 창고인 스발바르 국제 종자저장고 같은 저장 시설의 포장된 종자는 연구자들이 특정 시점에 작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냅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샘플들이 30년 뒤에 인간이 만나게 될 환경에서 제대로 싹이 날지 어떨지는 보장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Bellon 씨와 그의 연구진이 보았을 때, 그건 깜페시노의 농업을 대체할 수 없다. 다른 이들도 동의한다. “우리가 늘어나고 있는 인구를 위해 식량을 재배할 수 있길 바란다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농업 체계가 필요하다”고 Ross-Ibarra 씨는 말한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매우 새로운 기술이 많다. 하지만 우린 수천 년 동안 있었던 이러한 아주 인상적이고 놀라운 자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2004년 García Cuenca 씨는 미국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여행을 위해 자신이 수확해 저장한 똑같은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야를 가족을 위해 포장했다. 그는 노란 하이브리드 옥수수가 지평선을 수놓은 농지가 펼쳐진 미네소타의 목장에서 8년 동안 일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작은 밭 같은 곳은 보지 못했다. 이제 멕시코로 돌아와, 그는 자신의 땅에 하이브리드 종자를 뿌리길 거부하고 있다. 그 종자는 너무 비싸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알아온 토종 옥수수보다 더 많은 물과 관심이 필요하다.  


“우린 우리의 씨앗에 익숙하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걸 바꾸는 일에 관심이 없다.”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small-farmers-in-mexico-keep-corns-genetic-diversity-alive/?sf202618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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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믹스 지역의 실험용 옥수수밭을 살펴보는 공동 저자 Javier Lopez 씨.


 


멕시코에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토종 옥수수가 발견되었답니다. 100년 이상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종 옥수수가 지닌 특성을 미국의  연구진이 규명했다네요. 다비성 작물로 알려진 옥수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니, 놀랍네요.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앨런 반 데인즈Allen Van Deynze 씨 외의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멕시코 시에라믹스Sierra Mixe 지역의 한 외딴 마을에서 재배되는 토종 옥수수가 발뿌리에서 끈끈한 점액질을 분비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합니다. 옥수수의 조상이라 하는 테오신트에서 진화해 온 이 옥수수는 아마도 양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그런 특성이 발달했을 것이라 추정한답니다. 연구진은 이 토종 옥수수가 생육에 필요한 질소의 약 30~80% 공기 중에서 흡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연구진은 10년 전 이 토종 옥수수를 처음 발견한 뒤 최근까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논문에 의하면, 이 옥수수는 최대 5m까지도 자라며, 파종을 하고 3개월이 지나면 줄기의 마디에서 손가락처럼 가는 발뿌리가 뻗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뿌리의 끝부분에서 점액질이 분비되는데, 여기에는 많은 당분이 포함되어 미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네요. 그리고 이 점액질에 공생하는 미생물들이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고정시켜 옥수수가 이용하기 좋은 형태로 변형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수나 옥수수, 사탕수수는 줄기를 쭉쭉 빨면 달달한 물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걸 발뿌리를 통해 점액질의 액체로 내보내 미생물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양분을 공급받는 원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 옥수수 품종은 열매가 커다랗게 달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 중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지 열매를 커다랗게 맺는 쪽으로 가지는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다른 열매가 크게 달리는 품종과의 교배 육종 등을 통해 전해주게 된다면 옥수수 농사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재미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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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칼라와야족 농민이 재배한다는 11가지 품종의 감자. 

이만큼은 아니어도 예전 조선의 농민도 이렇게 다양한 품종의 작물을 재배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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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노오亀の尾라는 일본의 토종 벼.

이 벼는 일본의 개인 육종가인 아베 카메지阿部亀治가 육종한 품종이다.



당시 일본만이 아니라 조선과 타이완에서도 널리 재배되었다. 

나는 이름만 보고는 거북이 꼬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인가 했더니, 개인 이름에서 따온 품종명이었나 보다.


검색하니 이 쌀을 이용해 주조한 일본 전통주가 많이 보인다. 

토종 벼를 살려서 전통주를 담근다. 역시 일본답다.

한국도 토종 벼를 살려 이런 시도를 많이 하면 좋겠다.


아예 양조회사에서 술을 담그기 위해 토종 벼를 재배하는 논도 꽤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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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기르고, 지키자.


캐나다의 한 토종종자 관련 단체에서 만든 씨앗봉투에 적힌 글귀이다.

참 좋은 아이디어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씨앗의 소중함과 재배의 기쁨을 알릴 수도 있고, 또 이걸 후원금을 받으며 나누어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한국의 씨드림에서도 시도해 볼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edibleottawa.ediblecommunities.com/food-thought/big-picture-jane-rabinowi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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