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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종자회사를 설립한 현재 고등학교 2학년 고바야시 히로시小林宙 씨가 목표로 하는 것은(촬영:우메타니 히데지梅谷 秀次)



15세란 나이에 종자회사를 시작한 고등학생이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고바야시 히로시 씨는 현재 16세인 고등학교 2학년이다. 회사의 이름은 "카쿠케이鶴頸 종묘 유통 프로모션"이다. 토종 채소를 주로 하는 씨앗과 모종 및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토종 채소를 판매하고 있다. 

교토 명물 센마이즈케千枚漬け의 재료인 쇼고인(聖護院) 순무, 도쿄의 네리마(練馬) 무, 가나자와(金沢) 야채의 킨지소(金時草), 가고시마의 사쿠라지마(桜島) 무, 맛이 좋다고 알려진 야마가타의 단콩(だだちゃ豆) 등이다. 최근 먹을거리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토종 채소의 상표는 원래 현지의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오던 토종 작물이다. 이밖에도 전국에는 다양한 토종 채소와 곡식이 있다. 



유소년기부터 씨앗과 식물에 흥미가 있었다 


한편 우리가 평소 슈퍼마켓이나 청과점에서 구입하는 것은 종자회사가 씨앗을 관리해 판매하는 F1 종자라고 부르는 1대의 교배종이다. 농가는 매년 씨앗을 구입해야 하는데, 재배와 수확이 편해서 쇼와 시기 후반에 대부분의 산지에서 토종 작물을 대체해 갔다. 예를 들어,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의 미우라(三浦) 무는 1979년의 태풍 20호로 큰 피해를 입은 일을 계기로 F1 종자인 아오쿠비(青首) 무가 급속히 보급되어 재배가 쇠퇴했다.

F1 종자에 밀려 멸종위기에 처한 토종 작물을 지키려고 맞서는 사람들은 전국에 많이 있다. 하지만 쇠퇴를 막을 수 없다. 이제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며 회사를 설립한 것이 고바야시 씨이다. 

인터넷 등으로 전국의 종자회사에서 매입한 씨앗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다녔던 그림책 카페와 농업서 센터 이외에도 꽃집과 커피가게 등 10곳 정도의 가게에서 위탁판매를 하고 있다. 가게의 판매 공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봉지는 작게 만들고, 1봉지에 200엔 정도로 책정하고 있다. 대량으로 판매되는 것은 도쿄도 이외에전국에서 열리는 먹을거리 행사에 참가한 때이다.  



일은 주로 주말에 한다. 사진 왼쪽은 부 활동 친구인 아베 준야阿部純也 씨(촬영: 우메타니 히데지)



평일에는 학업이 바빠서 일하는 것은 주말이다. 세세한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씨앗 봉지 만들기는 2명의 여동생과 학교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이 젊은이는 왜 종묘, 게다가 토종에 특화된 회사를 시작하려고 생각한 걸까? 

고바야시 씨는 유소년기부터 씨앗과 식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최초의 계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학교에서 기르던 나팔꽃에서 씨앗을 받아, 다시 심어 보았는데 훌륭히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자른 것은 잎이 별로 무성하지 않고 줄기도 비실거려 꽃이 너무 작게 피었던 일이다. 한편 유치원에 다닐 때 마당에 묻은 도토리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지만 싹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호기심이 일어 채소 모종을구매해 키우게 되었다. 



자신이 모르는 씨앗이 있다는 걸 알고 꿈속에서


어느날, 인테리아 매장의 씨앗 판매대에서 모종으로는 팔지 않는 채소의 씨앗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채소와 씨앗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도쿄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에서 고서를 구하고, 전문적인 책을 모으는 농문협의 농업서 센터에도 다니기 시작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인터넷에도 자신이 모르는 씨앗이 많다는 걸 알고, 더 모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씨앗 중에서 토종 채소도 있었다. 그것들의 씨앗은 재배되고 있는 지역의 종묘상에 가야지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 중 아버지의 출신지인 나가노현이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는 니가타현에 귀성할 때마다 근처의 종묘상을 돌아다녔다. 나가노현이나 니가타현에는 종묘상이 많았다. 



종묘상이 폐업하고 있는 실태를 알다


중학생이 되어 부모에게서 "간토우関東의 당일치기 거리라면 혼자서 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간토우의 종묘상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숙박해도 좋다"는 말을 듣는다. 여름방학 등 장기 휴가 때1주일 정도 잠만 자는 민박이나, 베낭여행객이 묵는 숙소 등에서 숙박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고바야시 씨는 민박에서 현지의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 등을 배웠다고 한다. "씨앗으로 재배한 것을 그 지역의 식문화 안에서 어떻게 먹는지를 아는 일도 중요하다. 직접 씨앗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씨앗을 선발하고 재배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어떤 맛을 맛있다고 생각하는지 체감하고 싶었다"고 고바야시 씨는 설명한다. 

각지를 다니면서 종묘상이 점점 폐업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 종묘협회라는 업계 단체에서 탈회하는 사람이 많다"고 고바야시 씨가 말하여 협회의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2018년도에는 27명이나 탈회했다. 

"그러고 나서 종묘상에 있는 자료를 보고 '이 씨앗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 씨앗을 받는 사람이 사망해서 취급하지 않아요'라는 답을 가는 곳마다 들었다."는 고바야시 씨. 실정을 알게 되며 씨앗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2018년, 고등학교 합격이 결정되고 곧바로 회사를 설립한 것은 토종 작물의 씨앗을 전국구에 유통시키는 일이 '일본 전체에서 씨앗을 수집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을 넘어 씨앗의 수요를 창출하고, 전국 규모로 유통시켜서 보존해 나간다"는 것을 사훈으로 삼았다. 



창업하려고 아버지에게 기획서를 제출


창업을 하려고 고바야시 씨는 우선 아버지의 이해를 구하고자 기획서를 정리했다. 서류를 작성한 것은 고바야시 집안에는 용돈 제도가 없어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설명하여 돈을 받아 구입한 다음 영수증을 제출하는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놀라면서도 회사 형태로 하면 책임도 가지니 좋고 경험도 된다며 인정해주었다. 

부모는 직장인이고 친척은 교원 중심이라 씨앗 회사를 설립하는 절차에 대해 상세한 어른이 주변에 없다. 고바야시 씨는 인터넷과 법률 관계의 서적 등에서 조사하고, 종묘상에도 상담했다. 

"중학생이 약속을 잡으려면 거절 당할 수 있죠. 직접 사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회사에 가려고, 사장이 일본 종묘협회의 이사인 사이타마현의 노하라野原 종묘를 방문했습니다. 판매하는 씨앗을 봉지에 적은 정보와 사진의 판권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신세를 졌습니다." 



많은 사람에 힘입어 사업이 확장되어 가다


10대의 고바야시 씨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얻고 있다. 가장 지지해주는 부모는 그때그때 도움을 주었다. 재배에 대한 상세한 것은 농문협의 서적이고, 가르쳐 준 것은 어머니이다. 동료에게 군마현 이세사키시伊勢崎市에 있는 밭을 빌리고, 개업 신고를 위해 동행해 준 것은 아버지이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에게 이끌려 갔던 먹을거리 행사에서는 농문협에 아는 사람이 생겼다. 당시 그 협회가 발행하고 있던 <노라노라のらのら>라는 어린이 농업 잡지에서 취재를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잡지의 기획으로 도쿄도에 사는 채종 명인에게서 씨앗을 받는 법을 배웠다. 

"그분은 직장인입니다. 회사의 옥상에 있는 텃밭에서 공원에 떨어진 낙엽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유기 재배를 하고 있었죠. 도시에 살아도 직접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바야시 씨는 말한다. 

중학교 과제인 직장 체험에서도 농문협에 편집보조를 하게 해 달라고 했다. 친해진 편집자에게 밭에서 채소를 너무 많이 수확했다고 하자 '판매하러 놀러와요'라는 말을 듣고, 행사에서 판매한 적도 있다. 가게를 돕고 나서 농문협의 책을 받아 채소를 채워 왔던 종이상자에 이번에는 원하는 책을 채워 돌아갔다. 그리고 채소와 씨앗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앞으로 지금의 회사는 '부업'으로 할 예정


창업하고 아직 2년째라 씨앗의 판매만으로는 이익이 그다지 오르지 않는다. 이세사키시의 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판매하는 행사 및 강사와 집필 등으로 운영비를 얻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씨앗의 미래: 내가 15세에 씨앗 회사를 창업한 이유>라는 책도 출간했다. 자기 월급은 필요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적자는 나지 않는 정도이다. 주식회사는 아니고 개인사업자이기에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고바야시 씨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씨앗을 취급한다. (촬영: 우메타니 히데지)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 않냐고 묻자, 앞으로 농업법인화하여 밭을 임대할 생각이기에 기업이 바람직하다는 고바야시 씨. "씨앗이 사라져 가는 것은 농가의 부업으로 씨앗을 받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 채종 기술을 계승하는 사람을 늘리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조금을 받으면서 운영하는 방법은 어렵다고 한다. "하기 시작하면 제한이 없기에, 사용목적을 한정하는 보조금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협찬해 주는 분에게 기부를 받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 등 사업을 응원해 달라고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익보다 씨앗을 유통시키는 일이 중요


카쿠케이 종묘 유토 프로모션은 지금도, 앞으로도 부업으로 할 예정이라 한다. "좋아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면 실패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도 안 되기 때문에 그만두는 사태를 피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이익보다, 씨앗을 유통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바야시 씨. 위탁판매하는 것도 씨앗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씨가 그렇게 해서 씨앗을 지키려는 것은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유명한 이야기로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일어나, 국민의 20% 이상이 굶어죽고, 대량으로 미국에 이민을 간 일이 있다. 그것은 단일 품종의 감자에 식량을 의존하고 있던 것이 원인이었다. 

지금은 기후변화가 심해 기존의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워지는 지역도 있다. 다양한 씨앗이 있다면 더위에 강한 것 등을 교배시킬 수 있다. 토종 작물을 지키는 일은 채소와 곡식을 백업해 놓는 것과 같다.  


다만, 토종 작물 중에는 기후와 토양이 변하면 독특한 모양과 맛을 잃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오사카의 텐노지天王寺 순무는 에도시대 나가노에 있는 노자와野沢 온천 마을의 켄메이지健命寺 주지 스님이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재배하니 줄기만 무성해져 노자와 나물(菜)이 되었다. 

전국구에서 씨앗을 유통시키면 특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냐 묻자, "지키는 일은 종자회사와 숙련된 채종인들이 하고 계신다. 나는 새로운 토종 채소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채소가 생기면 매우 재미있고, 마을의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명쾌히 대답했다. 



씨앗의 보존은 지역의 식물화와 역사를 지키는 일


씨앗을 지켜서 채소와 곡식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지역의 식문화를 지키는 일이며, 계승되어 온 역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식량 위기를 막기 위함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당연하게 먹어 오던 걸 먹을 수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바야시 씨처럼 젊은 세대가 새로운 발상으로, 씨앗을 지키는 활동에 참여한다면 채소의 미래는 변할지도 모른다. 

헤이세이平成 30년 동안,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 수집과 정보 교환의 수단이 다양해졌다. 세계화의 진행으로 사회의 구조도 크게 변화했다. 지금, 세상은 새로운 발상, 새로운 재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이와 경력에 관게없이 미래를 구축하려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익을 올리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사회가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의외로 우리의 미래는 밝은지도 모른다. 


https://toyokeizai.net/articles/-/31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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