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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경제연구원에서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한국의 농민인구는 50만 명 가량 줄어들고, 고령인구가 전체 농민의 43%까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러올 미래는 이렇습니다. 농촌에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야 마을이 살아날 텐데, 농촌에 농사짓는 사람만 남게 될 테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점점 한국의 농촌에는 농사짓는 사람만 남고 다른 서비스 -병원이라든지 학교, 중국집, 핸드폰 가게, 옷가게 등등- 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결국 농지라는 생산도구만 남고 생활편의는 도시에서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농촌은 사라지고 농업생산기반과 농업노동자만 남는 일이 생길 겁니다.


농촌이 살아나려면 농촌에 다양한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농업인만 지원하는 사업으로는 농촌을 살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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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마을을 지켜준다는 존재로, 그 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며 사람들이 모시던 신격화된 나무가 마을마다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당산나무'라고 한다. 


당산이란 어느 한 마을의 지킴이를 모신 성역을 뜻한다. 이를 당산 또는 서낭당, 도당이라고도 부르는 곳이 있기도 하다. 특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야트막한 구릉일 수도 있고, 특정한 장소일 수도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이나 지킴이를 모신 건축물일 수도 있다. 어느 장소이건 마을사람들이 함부로 소란을 피우거나 해를 끼쳐서는 안 되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졌다.

당산의 핵심은 바로 나무이다. 대개 오래되고 큰 나무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나무의 둘레에는 줄을 치거나, 나무 밑동에 왼새끼 또는 백지를 감아 놓은 경우가 많아서 쉽게 는에 띈다. 이렇듯 당산나무는 신격화된 나무이다. 누군가 그 나무를 해치면 그 사람만이 아니라 마을에 재앙이 내리는 중요한 나무이다. 또한 마을의 중심축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특정한 날 이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지내고,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한다. 이렇게 마을 공동체와 큰 연관을 지니며 함께 살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예전 당산나무의 역할을 했던 나무는 남아 있어도 예전과 같은 기능은 모두 사라진 곳이 많다. 그만큼 마을이란 공동체가 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여전히 예전처럼 당산나무를 신격화하여 모시는 곳이 꽤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래의 사진은 2007년 충북 단양 기동리의 한 마을을 찾아갔을 때 만난 당산나무이다. 앞서 설명한 전형적인 당산나무의 모습을 보여준다. 왼새끼를 꼰 금줄, 거기에 끼워넣은 한지, 그리고 아래에는 치성을 드렸는지 조촐한 제사음식과 양초가 놓여 있다. 지금도 이렇게 당산나무를 모시고 있는지는 다시 가보지 못하여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형식의 당산나무를 발견했다. 왼새끼를 꼰 금줄 대신 나일론 끈이, 한지 대신 폐비닐이 감겨 있는 미루나무이다. 나무의 크기와 웅장함만큼은 당산나무와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지만, 그 정성과 꾸밈은 볼품없다 못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이 나무의 쓰레기를 치워줘야지.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미안해서 하는 일이니까. 나쁘다, 인간... 






괴산군 장연면에 가면 아래와 같은 10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를 볼 수 있다. 어떻게 모시고 가꾸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오래 잘 살 수 있는 것이 나무이다. 사람은 아무리 잘 모셔도 100년이면 오래 산 것이지만, 나무는 그 10배를 살고도 멀쩡하다. 이 정도면 우리가 나무를 신으로 모실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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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을에 들어서면, 이 마을이 언제 어떤 연유에 따라 형성되었는지에 따라 집들의 배치부터 길이 난 모습까지 분위기가 달라진다. 오래전에 형성된 마을은 고풍스런 분위기가 풍기고, 새마을운동으로 형성된 곳은 반듯반듯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 나고, 실향민이 이주한 곳은 쓸쓸함을 안겨준다. 


그래도 농촌에선 사람 사는 냄새를 찾아볼 수 있지 대도시의 건물들 사이에 서면 느끼는 그 당혹스러움이란... 어디를 가나 아무 개성없이 똑같은 모습이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으면 어느 집 대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동네 구멍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담 옆에 핀 개망초꽃이 있었지 하는 요소로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런 곳에서 길을 찾을 때면 아주 곤혹스럽다. 


허나 농촌도 마찬가지다. 새로 집을 개보수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집을 짓는다. 이제 농촌의 집들을 보면 이곳이 한국의 농촌이라 할 만한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새로 지으면서 집만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옛것을 함께 버린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씨앗도 함께 버려진다.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버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토종씨앗 수집을 나가면 개보수가 된 집에는 잘 방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건과 함께 생각까지도 싹 개보수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냥 신이 난다. 집을 개보수했어도 질기게 씨앗을 보존하고 심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 덕에 토종씨앗이 이어지고, 농사가 이루어진다. 아무 보상도 없는 일을 그렇게 하며 살아왔다. 이런 농부를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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