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지금도 숨쉬는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
무사시노의 개척
일본에서는 경작지라고 하면 쌀을 거두는 논이고, 밭은 논에 비해 부차적인 경작지라는 느낌으로 보는 일이 많다. 논벼농사와의 대비에 의해 밭농사가 부차적이라는 것은 쌀 녹봉제에 의한 지배 체제가 확립된 근세에 구축된 밭농사 관념에 의한 것이었다. 지질, 지세로 보더라도, 밭은 논보다도 불리한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많이 보인다. 하천에 가까운 평탄지에 있는 비옥한 토지는 논에 의해 이용되고, 밭이라고 하면 경사지나 구릉, 주위보다 높은 평탄지 등에 분포해, 그 때문에 겉흙은 침식되어 토층이 얕고 모재인 암석의 영향이 강한 토양이 많다. 가뭄 피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 많고, 또 작물에 의해 중요한 인산이 불활성이 되기 쉬운 산성 흙이 많은 것도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밭농사는 논벼농사 같이 관개수에 의해 지력을 유지하는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양분을 매년 인위적으로 보급하든지, 오랫동안 휴한을 해서 지력이 자연히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밭에서는 논에 비해 지력이 소모되기 쉬운 데다, 작물의 생육을 좌우하는 질소분이 특히 유망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논에서는 벼가 생육하고 있는 동안은 논물이 있어 산소가 부족한 환원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때문에 질소 성분은 암모니아 형태로 머물러 있는 비율이 높고 토양 입자에 흡수되기 쉬워지는데, 밭에서는 토양 입자에 흡수되는 성질을 잃고 있기 때문에 강우 등에 의해 농사흙 밖으로 유출되어 버린다. 인산 성분의 변화도 밭과 논에서는 조금 다르다. 논에서는 기온이 높아지면, 흙이 강하게 고정된 성분도 벼 뿌리에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변화하지만, 밭에서는 일단 흙에 고정된 인산 성분은 좀처럼 작물에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밭에서는 인산을 많이 주지 않으면 수확량이 적고, 주는 방법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밭은 논에 비하여 산성화되기 쉽다. 강수량이 많으면 칼륨, 나트륨, 석회, 고토(산화마그네슘) 등 염기류의 유망이 뚜렷해지고, 또한 규산의 용탈도 있다. 이들 염기의 유망에 의해 산성화가 시작된다. 염기는 산성이 되면 특히 녹기 쉽기 때문에, 그 유망은 가속되어 더욱더 산성화가 진행되어 버린다. 따라서 밭농사 농촌에서는 인구가 증가해 가는 것에 수반해 생산력을 유지하는 농법이 필요해진다. 밭 토양은 논처럼 관개수로부터 양분을 자연 보급받지 못하고, 특히 시비되지 않는 미량 요소가 부족해지기 쉽다. 그 때문에 밭에서는 부근의 임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풀이나 풀덮개 등의 풋거름, 낙엽으로 만드는 퇴비와 함께 아궁이나 화로에서 얻을 수 있는 초목재 같은 자급 비료가 예전부터 시용되었다. 특히 밭 토양에 퇴비 등의 유기질을 투여하는 건 미량 요소의 공급원이 되어서 중요하다. 산간지의 산허리나 산꼭대기 부근의 완만한 경사면이나 고깔 모양 돌더미나 선상지 등에서는 수리가 특히 나쁘고 부식이 적은 자갈흙이기에 쌀이나 채소 등을 재배하는 일은 어려웠다. 식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밤이나 피, 두류나 메밀, 토란 등이 '부대밭'이나 '이동식 부대밭(切替畑)'에서 재배되었다. 이동식 부대밭이란 조림용 나무 심기 등의 땅 정리를 위해 불놓기를 하고 수목이 어릴 때 밭으로 이용하다 식재된 수목이 생장했을 무렵에 숲으로 바뀌는 것이다.

3-1 코테사시가하라小手指原 옛 전장戦場의 비(토코로자와시所沢市)메이지 중기에 쿠니기다 돗뽀国木田独歩의 『무사시노武蔵野』 모두에 "무사시노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곳이란 이 옛 전장 부근"이라 묘사되어, 코테사시가란 이름은 전국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무사시노라는 건 본래 도쿄도, 사이타마현 및 카나가와현의 일부를 포함한 무사시국에 펼쳐진 들판을 가리킨다. 이루마강入間川, 아라강과 타마강에 끼어 있는 홍적洪積 대지台地로, 해발 120m에 위치하는 골짜기 초입 마을인 오우메青梅를 선상지의 정점으로 한 타마강이 만든 오래된 선상지이다. 선상지 중앙부의 광대한 선상지 중앙부는 홍적층의 자갈이나 모래의 위에 화산재를 모재로 한 칸토우 양토가 두텁게 퇴적되어 있는 물부족 땅이다. 그러나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 위에는 사야마狭山 구릉丘陵 아래를 비롯한 몇 곳의 샘으로부터, 쿠로메강黒目川·시라코강白子川·샤쿠지이강石神井川·묘우쇼우지강妙正寺川·젠푸쿠지강善福寺川·이노카시라강井の頭川·메구로강目黒川 등과 같은 소하천이 흘러나오고 있다. 타마강의 단구段丘 절벽의 기슭이나, 이들 소하천의 개석곡開析谷 샘물터 등에는 일찍부터 마을이 성립되어 있었다. 논은 소규모이면서 고개(垰)나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를 잘게 쪼갠 나뭇가지 모양 골짜기의 침식곡 등의 부근에 개간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 인접한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의 가장자리 부분에는 길든밭이 개척되었다. 그러나 광대한 물부족의 특성이 있는 대지에 마을이나 길든밭이 개척되었던 건, 에도 시대가 되어 농업 토목 기술이 발달하게 된 뒤부터였다.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인 대지는 예로부터 가시나무 등의 상록활엽의 숲으로 덮여 있던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옛날부터 농업적인 이용이 이루어져 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오시카 시로우青鹿四郎는 1935년 간행된 『농업경제지리』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인용해, 고대에는 무사시노가 부대밭이나 목초지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추론한다.
흥겨이 들을 태워라. 옛 풀에 새 풀이 뒤섞여 돋아나 자라게 하듯이 (『만엽집万葉集』 권14, 동가東歌)
봄의 들에서 풀을 뜯는 망아지의 갈기처럼, 푸른 베옷을 입고 있을 그 집 아이들이로구나 (『만엽집』 권 7, 동가)
또한 『속고금화가집続古今和歌集』에는 미나모토노 미치카타源通方에 의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볼 수 있다.
무사시노에는 달이 잠길 만한 봉우리도 없고, 억새꽃 끝에 걸려 있는 흰구름 뿐
이 일본 시에 의하면, 13세기 무렵이 되어서도 무사시노가 역시 온통 억새 들판이었던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나아가 아오시카는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의 코테사시小手指나 사이타마시의 사시오리자指扇 등의 '사시'란 지명으로부터 부대밭을, 아사카시朝霞市 우치마기内間木(우치노마키内牧)나 시키시志木市 히키마타引又(히키마타引馬多) 등의 지명으로부터 연희식延喜式의 관 목장이 존재했던 것을 추론한다. '사시' 또는 '사스'가 붙은 지명은 한자로 '지指' '차差' 등에 해당하는데, 오쿠치치부奥秩父나 오쿠타마奥多摩의 산간지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일찍이 부대밭이 행해졌던 지명이라고 이야기된다. 부대밭의 작업은 나무들의 벌채부터 시작되어 가지를 제거한 용지 전체에 펼치고 나무 밑의 풀과 함께 말린 뒤, 불놓기를 행한다. 이렇게 해서 키가 작은 떨기나무가 뒤섞인 억새 초원으로 이루어진 식생에 불놓기를 해서 식물체를 초목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지상 부분의 식물 영양소인 칼륨이나 칼슘은 무기화되어 식물체에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토양 표면에 균일하게 공급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불놓기에 의한 토양 온도의 상승에 의해, 마치 논 토양의 '마른흙 효과'와 마찬가지로 '구운흙 효과'가 나온다. 불놓기에 의해 흙의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미생물도 번식하고, 부식 속의 질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가 되어 작물에 흡수되기 쉬워진다. 그외에도 토양 속의 인산도 유효화되어 작물을 농사지을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불놓기에 의해 지표나 겉흙 속에 있는 잡초의 싹이나 종자를 사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잡초의 방제에도 꽤나 도움이 되었다.
아오시카가 인용한 만엽집이나 속고금화가집의 노래를 보더라도, 8세기 무렵부터 13세기 무렵의 무사시노는 온통 억새 등의 초원이었단 것을 엿볼 수 있다. 가시나무 등의 숲은 불놓기나 방목에 의해 억새밭으로 되돌아갔다. 비록 묵히고 있더라도 소나무나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의 2차림이 듬성등성했던 정도라고 생각된다. 에도 시대 초기에 무사시노는 용수湧水 지대에 입지했던 오랜 마을의 공동 목초지가 되어 있었기에,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 위의 식생은 13세기 무렵과 크게는 변화하지 않았다. 공동 목초지란 것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장작이나 소와 말의 사료인 꼴(마초)이나, 비료가 되는 낙엽이나 풀 등을 구하는 임야로, 농업이나 농촌 생활의 재생산을 하는 데에 중요하고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오사카 평야의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에서는 저수지 관개에 의해 중세부터 논의 개발이 행해졌다. 그러나, 칸토우 평야의 많은 대지·구릉 위에서는 오사카 평야와는 달리 오랫동안 논을 개간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하천 등도 적고 기복이 적은 대지에 저수지를 조성하기가 어려워, 관개용수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에는 칸토우 양토층이 두껍게 퇴적해 있기 때문에, 누수가 심하여 논 개간이 방해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마을은 물이 샘솟는 단구 절벽이나 선상지의 끝 부분에 입지하고,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 위는 그들 마을의 화전 경작이나 방목이나, 공동 목초지로서 조방적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1722년, 극도의 재정난에 빠져 있던 막부는 새논 개발에 대한 종래의 규제를 풀고, 재정 재건의 한 정책으로 새논 개발을 강력히 추진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이 결정은 무사시노에도 당연히 적용되었는데, 이 개발 정책에 반대해 타마·이루마 두 군 28개 마을의 농민이 개발 철회를 청원한 문서가 있다. 그 안에는 공동 목초지가 당시 옛 마을의 농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건 오오토모 카즈오大友一雄의 『토코로자와시사 연구』 제4호 「교호享保 시기 키타무사시노 개발과 목초지 소동」(1980)이라는 논문에 나오는 "삼가 두렵고 송구하오나, 서류를 붙여 소송을 아뢰옵니다"라는 1723년에 제출된 문서이다.
그것을 읽어 보면 무사시국의 타마와 이루마군의 합계 28개 마을의 농민이 "무사시노는 옛날부터 공동 목초지로서 풀을 베어 논밭의 거름으로 쓸 뿐 아니라, 땔감을 얻으며, 식량이 부족하면 들풀을 따서 그 덕에 기근을 견디어 사람과 말 모두 목숨을 이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사시노 옛 마을의 논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의 논벼농사는 해마다 다량의 풀이나 나뭇가지나 낙엽 등을 공동 임야에서 실어 와서 논에 투입해 논의 비옥함을 유지하며 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떌감과 숯의 자재를 비롯해 때로는 들풀이나 버섯을 채취해 식량 부족을 보충하기도 했다. 앞에 무사시노는 그때까지 조방적인 이용이 이루어져 왔다고 썼으나, 오랜 마을의 농민에게 무사시노는 만일의 경우에는 참으로 안전망 같은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부터 오랜 마을의 농민들은 공동 목초지의 새논 개발은 사활 문제라고 여겨, 산토메 새논 개척이 시작되고 거의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함께 키타무사시노 개발의 철회를 바라며 청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랜 마을에서 간절한 청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부나 가와고에번 川越藩의 재정은 핍박되어, 오랜 마을의 농민들이 바랐지만 무사시노 뿐만 아니라 저습지 등에서도 차례차례 새논 개발이 추진되었다.
산토메 새논의 성립과 직사각형 토지 구획
야지마 니키치의 『무사시노의 마을』(1954)에 의하면, 무사시노의 새논 개발은 3기로 나뉘어 행해졌다. 제1기는 17세기 초두인 에도 시대 초기부터 세이호正保 연간(1644~1648년)까지로 오우메의 신마치新町로 대표되듯이 소규모의 새논 마을이었는데, 케이안慶安 연간(1648~1652년)부터 겐로쿠元禄 연간(1688~1704년)까지의 제2기는 이츠카이치五日市 가도를 따라 있는 오가와小川 새논·스나가와砂川 새논이나 산토메 새논으로 대표되듯이 대규모에 수도 많았다. 제3기는 호우에이宝永 연간(1704~1711년)부터 19세기 중엽의 막부 말기까지의 새논 개발 완성기로, 82개소의 무사시노 새논이 급속하고도 모식적으로 개발되었다. 에도 막부의 성립 이후, 타마강玉川 상수나 노비도메野火止 용수의 굴삭 등이 이루어져, 이러한 농업 토목 기술의 발전을 볼 수 있는 것도, 말하자면 농경 한계로 남겨져 있던 무사시노의 개발을 가능케 했다. 따라서 경작지나 마을로 본격적인 무사시노 개발은 에도 시대의 새논 개발기 이후가 되고나서 비로소 시작된 곳이 많다. 토치기현의 나스노하라那須野原 등은 메이지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개척이 시작된다.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에는 큰 하천이 없고 지하수위도 낮아서, 이 대지나 구릉이나 선상지 위는 물을 얻는 일이 어려운 토지이기 때문에 논이 아니라 개척된 경작지의 대부분은 밭이었다.
에도 시대에 개척된 도쿄 서쪽 근교의 무사시노 새논의 대부분은 이주 농가에게 토지를 균분으로 배분하기 위해 직사각형의 토지 구획이 시행되었다. 겐로쿠元禄 7년(1694)에 개척된 키타무사시노北武蔵野의 산토메 새논은 현재의 사이타마현 이루마군入間郡 미요시마치三芳町의 카미토메上富 새논과 그에 인접한 토코로자와시所沢市의 나카토메中富 새논과 시모토메下富 새논이란 3개의 카와고에번川越藩 운영 새논을 합친 호칭이다. 카미토메·나카토메·시모토메 각각의 새논은 먼저 너비 6칸(약 11m)의 길을 종횡으로 여는 것부터 개척이 착수되었다. 이 길의 양쪽을 길에 접한 너비 40칸(약 72m), 안길이 375칸(약 675m)의 직사각형으로 구획하고, 1호당 5정보(약 1만5000평)씩 배분했다. 1호당 면적은 옛 마을과 비교하면 상당히 넓게 잡았지만, 이건 척박한 땅으로 토지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에 옛 마을의 평균 약 3000평에 비하면 꽤 면적을 넓게 해서 수확량을 올리려고 했을 것이다. 도로에 면한 정면을 집터로 하고, 그 다음으로 경작지를 가장 뒤쪽에 산이라고 부르는 평지림을 배치했다. 3-2의 사진처럼 경작지 생태계 안에 공용 부지나 마을 산의 기능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2 밭과 평지림이 만들어내는 산토메 지역의 경관
이렇게 하여 에도 시대가 되어 새논 개발이 행해지게 되어, 공동 목초지나 부대밭으로 이용하는 것이 소멸되고,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에는 소나무나 참나무·졸참나무 등의 2차림이 형성되었다. 새논 마을의 농민은 새롭게 개척한 길든밭에 들어가는 퇴비를 만드는 낙엽이나 연료인 땔감을 얻기 위하여 각 집에서 평지림을 육성해야 했다. 아마 참나무·졸참나무숲 같은 양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자연 천이하도록 기다릴 뿐만 아니라, 파종을 하거나 묘목을 심거나 해서 적극적으로 평지림을 육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동안의 사정을 아는 열쇠가 되는 기술을 키타무사시노의 산토메 새논 개척 사정이 기록되어 있는 1929년 간행된 「산토메 개척지三富開拓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는 "개척 당시 거처를 마련한 사람에게 1호에 3그루씩 졸참나무 묘목을 배분한다든가 하는, 현재 무성해진 졸참나무는 그 후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아가 1650년의 「카와고에번 군방郡方 조목」(토요하시豊橋 미술박물관 소장 오오코우치大河内 문서)를 보면, 카와고에번에서는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 등의 재목이 될 분량은 가지치기를 해서 기르고, 자잘한 나무는 떌감으로 하라"라든지, "그루터기에서 나온 움돋이 가운데 발육이 좋은 것을 2개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낸다" 등 숲의 유지·관리나 이용법 등을 세세하게 지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평지림의 유지·관리를 규정한, 아마 가장 오래된 법령일 듯하다. 「산토메 개척지』에는 각 호에 배포된 졸참나무 묘목은 3그루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수가 매우 적은데, 「카와고에번 군방 조목」을 보더라도 산토메 새논의 평지림은 확실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숲이다. 농가 개개의 직사각형 토지 구획 가장 뒤에 배치된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로 이루어진 평지림은 이웃집의 평지림과 띠 모양으로 이어져, 각 호의 농업과 농촌 생활을 지탱하는 공유지를 대신하는 새로운 마을 산으로 역할을 담당했다.
3-3의 그림처럼 직사각형 토지 구획의 중앙에는 너비 4척(약 1.2m)의 경작도를 만들고, 밭의 둘레에는 경계의 역할과 동시에 밭의 흙이 강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병꽃나무를 심었다. 밭은 1인 1일분 노동 범위의 기준이 되는 5묘(약 150평) 단위로 구획되었다. "한 사람 몫의 남자란 하루에 5묘의 밭을 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이야기하듯이, 당시 농민은 5묘를 기준으로 경작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집 주위를 둘러싼 집터 숲(屋敷林)에는 대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등을 심었다. 이들은 겨울의 '강바람'으로부터 집을 지켜주는 방풍림 역할을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나무는 단단히 뿌리를 내려 지진에 강한 점이나 식재료인 죽순을 캘 수 있는 점, 농기구나 대바구니의 재료 등을 얻을 수 있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느티나무는 낙엽광엽수의 키 큰 나무로 가지가 펼쳐지기에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지만, 겨울엔 낙엽이 져 따뜻한 태양빛을 집 내부에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점, 삼나무나 편백나무와 함께 집의 건자재로도 이용할 수 있는 점 등이 생각되었다. 떡갈나무는 불에 강해 이웃집으로부터 날아오는 불똥이 있더라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나 떡갈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기근일 때 비상식량이 된다는 점 등을 생각했던 듯하다. 훌륭할 정도로 나무별 특성을 생각해서 식재했다는 점에 새삼 놀랍다.

3-3 산토메 새논의 직사각형 토지 구획(모식도). 犬井(2001)에 의함
3월 초순 산의 나무들이 싹트는 걸 신호로 낙엽을 밟아 넣고 고구마 못자리를 만들거나, 감자의 자른 면에 재를 묻혀 심을 준비를 시작하거나 한다.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에, 목련의 흰꽃이 피면 토란을 심는 시기가 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목련꽃이 피는 쪽이나, 집터 숲의 느티나무가 싹트는 상태를 관찰함에 의해 농민에게 가장 경계되는 늦서리의 유무를 판단했다. 목련꽃이 나무 높은 가지나, 낮은 가지에도 일제히 개화하면 늦서리의 염려가 없는 해이다. 산에서 가장 늦게 싹트는 것이 자귀나무로, 자귀나무가 싹트면 '입춘 이후 88일 되는 날의 서리' 걱정도 이제 쓸모없다. 5월 상순이 되면 산의 때죽나무가 순백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때죽나무 꽃이 피면, 고구마 못자리를 엎는다'라고 하여, 드디어 무사시노에서는 고구마 모종을 심는 시기가 도래한다. 때죽나무의 개화로부터 조금 늦게 밭의 경계목인 병꽃나무가 순백의 꽃을 피운다. 농민은 이걸 찻잎 따기의 기준으로 삼았다. 농사력은 자연이나 계절의 변천을, 농작업에 읽어 들이는 구조였다. 물론, 사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상수리나무·졸참나무의 평지림이나, 숲 아래 풀꽃의 변화로부터 농민의 자연관이나 사고방식이 길러졌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시 개척 농가의 영농이나 생활에 이 평지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소나무를 섞으면서도 대부분이 낙엽광엽수인 상수리나무·졸참나무로 이루어진 평지림은 농민이 오랫동안 관리·육성하던 인공의 마을 산인 숲으로, 자연적으로 생긴 숲은 아니라는 걸 강조해 두고자 한다.
불량 흙인 검은 화산재흙과 강바람(空っ風: 겨울에 산을 넘어 불어오는 건조하고 찬 바람)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나 구릉지를 덮고 있는 겉흙은 대부분이 화산재의 풍화물에서 생긴 산성 토양이다. 이건 칸토우 평야만이 아니라 홋카이도, 토우호쿠, 큐슈에는 이른바 '검은화산재흙'이라 부르는 화산재흙이 널리 분포해 있다. 2장에서 보았듯이 논벼농사가 키타큐슈로부터 일본 각지로 전파될 때, 논 개간이 꺼려진 흙이다. 그 이름은 '검은색이고 걸으면 푸석푸석한 흙'이라는 것이 유래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토양을 실지조사한 미국의 토양학자가 검은화산재흙이 지나치게 검은 데 놀라서 암토暗土(ando)라고 불렀다. 이것이 기원이 되어 토양 분류 중에 일본어 기원의 안도솔(Andosols) 토양 조항이 설정되고, 이것이 국제적인 전문용어로 정착했다고 한다. 검은화산재흙이 새카만 색을 띠고 있는 것은 토양 속에 유기탄소를 함유한 부식이 다량으로 집적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검은화산재흙은 일본의 다른 토양에 비교해도 부식의 함유량이 월등히 높고, 세계의 다양한 토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부식은 문자 그대로 '삭은 식물'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낙엽이나 마른 가지나 마른 풀이나 뿌리 같은 식물 유래의 것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미생물의 사체나 똥도 재료가 된다. 신선한 생물 유체나 낙엽이나 마른 가지가 원형을 남기지 못할 정도로 자잘해져 부엽토가 되고, 그것이 세균이나 곤충, 지렁이나 톡토기나 진드기 같은 토양 생물의 먹이가 되며, 더욱 자잘해진 것이 부식이다. 토양 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탄소를 산화해 에너지를 얻는 것(호흡 작용)이 필요하다. 그 뒤, 여러 가지 유익균의 중계에 의해 낙엽은 분해가 진행되어 이산화탄소와 물, 암모니아, 질산염 등의 무기물로 변환되어 가고, 식물의 뿌리로 흡수된다. 그리고 어디어디의 흙은 비옥하다든지 비옥하지 않다든지 하는데, 토양의 비옥도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유기물인 부식 함유량의 많고 적음이다. 부식이 많은 토양은 검게 보이고, 떼알구조를 만들기 쉬우며, 보수성과 통기성이 풍부해 양이온을 흡착한는 작용이 강하다고 하듯이, 식물에게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캐나다의 봄밀 지대인 대초원 흙이나 우크라이나부터 러시아 남부에 분포하는 검은흙인 체로노젬에는 칼슘을 많이 함유한 안정도힌 부식이 집적되어 있다. 체르노젬은 그 비옥함으로 '흙의 황제'라고도 불리며, 밀의 굉장한 곡창 지대가 되어 '유럽의 빵바구니'로 알려졌다.
그런데 검은화산재흙도 문자 그대로 흑색을 띤 흙이지만, 체르노젬과 달리 실제로는 비옥하지 않다. 왜냐하면, 검은화산재흙은 산성인 데다 활성 알루미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산성 상태에서는 알루미늄은 녹기 쉬워져 반흥하기 쉬워진다. 이러한 상태를 '활성화된다'라고 한다. 검은화산재흙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활성 알루미늄과 점토가 결합된 앨러페인이나 이모고라이트는 인산과의 결합력이 매우 강해서 한번 결합해 버리면 인산을 쉽게 해방시키지 않는다는 건 서장에서 이미 기술했다. 모든 토양은 일반적으로 인산과 강하게 결합해 버리지만, 검은화산재흙의 경우는 다른 토양에 비교해도 특히 인산과 결합하는 정도가 강하다. 작물이 뿌리로부터 흡수할 수 있는 인산은 단지 몇 %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검은화산재흙에 흡착되어 버린다. 또한 활성 알루미늄에 의해 뿌리의 생장이 방해를 받아 물이나 양분의 흡수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불량 흙인 검은화산재흙에서도 생육할 수 있는 식물이 있다. 그건 억새나 조릿대로, 오랜 세월 동안 무성하게 많은 부식을 검은화산재흙에 공급해 왔다. 이 유기물의 부식도 활성 알루미늄과 결합해 안정화되고, 미생물에 의한 분해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해마다 부식을 다량으로 집적해서 시커먼 흙이 되고 있다. 일반 작물은 검은화산재흙으로부터 인산을 빼내는 능력이 없다고 하는데, 메밀만은 잘 자란다. 그건 메밀이 시들 때 뿌리로부터 유기산인 옥살산을 방출하기 때문으로 검은화산재흙에 흡착되어 있는 알루미늄이나 철을 녹이고, 그루갈이할 때 인산을 흡수 가능한 형태로 남긴다. 더구나 유기산에는 유해한 알루미늄이온을 해독하는 작용도 있다고 한다. 홋카이도나 토우호쿠나 중앙 고지의 검은화산재흙 지대에서는 메밀이 특산품이 되어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건 그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 경작지가 없는 둘째, 셋째 아들 대책이나, 식량 부족 핍박의 해결책으로 중국에서 활로를 찾아내기 위해 동북 지구(옛 만주)나 내몽골(몽고)에서 '만몽 개척단'으로 많은 농민이 일본에서 보내졌다. 패전 이후 개척민이 돌아와 귀국한 사람들은 식량난에 대처하기 위한 국책인 '긴급 개척 사업'에 종사했다. 이 이른바 전후 개척지의 대부분은 억새나 조릿대의 들판 그대로 전후까지 방치되었던 검은화산재흙 지대가 주요 대상지가 되었다. 대부부은 관개수를 대는 것이 어려운 고원이나 대지·구릉지였기에 논을 개간할 수 없고, 밭농사에 의한 개간을 진행해 갈 수밖에 없었다. 점토나 부식에 흡착된 인산 이온이나 알루미늄이온에 의한 산성 피해와 중화제인 석회나 인산 부족에 의하여 농작물의 생육 불량이 잇따라 개척은 더없이 곤란했다. 인산 비료도 석회도 구할 수 없던 시대에 인산이 결핍된 산성 토양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그러나 석회와 인산 비료를 계속 시용함과 함께, 유럽처럼 유축 농업을 도입해서 외양간두엄을 사용하는 등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를 극복해 나아갔다. 그동안의 사정은 키타자키 코우노스케北崎幸之助의 『전후 개척지와 가토우 칸지加藤完治 -지속 가능한 농업의 원류』(2009)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지질학자인 야마노이 토오루山野井徹가 '검은화산재흙은 화산재흙이다'라고 하는 종래의 토양학자의 설에 파문을 일으킨 『일본의 흙 ー지질학이 밝히는 검은흙과 죠몬 문화』(2015)라는 책을 썼다. 야마노이의 견해는 검은화산재흙은 죠몬 시대에 행해졌던 들 태우기나 산 태우기의 결과, 억새나 조릿대 등의 연소에 의해 생긴 미립탄이 바람에 날려 퇴적되어 형성된 풍성층으로, 화산재를 모재로 하는 화산재흙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마노이의 설에는 토양학자들의 반론도 있는 듯해서 현재는 널리 인정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일본 겉흙의 약 20%를 차지하는 검은화산재흙이 새로운 눈으로 재검토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량 흙이란 낙인이 찍혀 버린 검은화산재흙의 밭도 1960년부터 1965년에 걸쳐서 석회 시용에 의한 토양의 산성도 교정과 인산 공급력을 단숨에 높이는 '용인'의 다량 시용 기술이 개발되었다. 용인이란 것은 '용성인비'의 약칭으로, 인광석이나 마그네슘이나 니켈을 함유한 사문암 등을 원료로 하기에 고토(산화마그네슘), 석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용인은 토양과 결합하기 어렵기에 인산이 유망해 쓸모없어지지 않는다. 인산 비료를 조금 시용하는 것만으로는 작물에 이르기 전에 점토에 인산을 빼앗겨 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점토의 흡착력을 상회하는 다량의 인산 비료를 뿌려야 한다. 방치해 두면 흙이 산성이 되는 일본의 밭에서는 고토 석회 등의 석회 비료의 시용을 게을리하면 산성에 약한 작물은 자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석회 비료와 용인의 다량 시용에 의해 검은화산재흙의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 결과, 부드러우면서 보수성과 배수성이 좋다는 이 흙이 지닌 본래의 장점도 살리고, 뛰어난 밭 토양으로 검은화산재흙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인의 용도로 최대인 것은 물론 비료이지만, 그외에도 농약이나 살충제, 금속의 표면 가공이나 세정제, 공업용 촉매, 식품첨가물, 세제나 치약 등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그러나 일본에는 인광석의 광맥은 없고, 모두 수입에 의존해 왔다. 게다가 인광석은 편재하기에, 현재 희귀 금속 수준이 되어 있는 인의 공급이 불안정화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라 한다. 그러나 세계의 농지 토양에 고정되어 있는 인의 축적량은 지난 1세기 동안 농업 생산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고도 한다. 일본의 검은화산재흙에도 많은 인산이 흡착되어 잠들어 있다. 나카무라 요시오中村好男의 『지렁이와 흙과 유기농업』(1998)에 의하면, 그 인을 흙 속의 지렁이는 뿌리가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의 가급태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지렁이를 사용한 인의 회수 방법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외에, 뒤에 기술할 미생물인 AM균을 사용하거나 해서 흙에서 인을 회수하는 생물적 방법 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자원이 부족한 일본의 미래를 위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새논 개발이 진행되어 무사시노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자, 물을 얻기 어려운 물부족 지역일 뿐만 아니라, 불량 흙인 검은화산재흙과 함께 바람이 강해서 사람들은 계속 시달렸다. 겉흙인 검은화산재흙은 겨울에는 서릿발이 서고, 비가 내리면 진창이 되며, 건조하면 흙먼지가 날리기 되는 아주 가벼운 흙이다. 특히 겨울의 북북서풍은 풍속 10m를 넘는 강한 계절풍에는 혼쭐이 났다. 한국의 동해 쪽에서 눈을 내리고 건조해진 시베리아 기단으로부터 척추 산맥인 미쿠니三国 산맥을 넘어 아카기赤城 재넘이나 닛코우日光 재넘이가 되어 차가운 '강바람'이 칸토우 평야에 내리 불어온다. 이 강바람은 당연히 무사시노에도 엄습해, 무사시노의 농민이 꽤나 고생한 모습이 에도 시대 말기에 후루카와 코쇼우켄古川古松載이 지은 붓으로 쓴 화철본 지지서地誌書 『사신지명록四神地名録』(1794)의 4권 타마군 항에 다음처럼 적혀 있다.
풀을 베러 가서도 말뚝을 박아서 거기에 광주리를 묶어 두지 않으면, 바람에 날려 1리나 2리를 가 버리고, 매우 바람이 강할 때에는 그 몸도 바람에 넘어져 일어날 수도 없으며, 데굴데굴 굴러서 오정이나 십정을 바람에 굴러갔다고 한다.
18세기 말에 쓰여진 이 문장은 농민의 이야기로 소개되어 있는 것인데, 현대어로 다시 보면 '풀 베러 나갔을 때는 말뚝을 박아서 풀바구니를 묶어 두지 않으면, 바구니는 4~8km나 날아가 버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서 있는 것이 어려워 500~1000m나 날아가 버렸다"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놀랄 만한 강풍이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를 휘몰아치고 있다. 또한 『사신지명록』은 국립 국회도서관의 디지털 컬렉션 안에 수록되어 있기에 누구라도 읽을 수 있다.
야마네 이치로우山根一郎의 『지형과 경지의 기초지식』(1985)에는 무사시노와 같은 검은화산재흙으로 이루어진 토치기현의 농사시험장에서 행한 풍식 조사 결과가 기재되어 있어, 후루카와 코쇼우켄이 적은 강풍의 대단함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맨땅의 밭에서는 12~4월까지의 강바람 기간에 300평당 1300kg의 흙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5년이면 밭의 가장 비옥한 겉흙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는 계산이다. 맥류밭에서는 그 1/15, 목초지에서는 흙의 비산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 경제성장기가 되면, 맥류의 수입자유화에 의해 가격이 저렴해져 버린 겨울밀을 재배하더라고 수익이 나지 않아 버린 농가는 겨울철에 농사짓지 않게 되어, 맨땅이 된 밭의 풍식에 의한 토양 침식이 증대되었다.
개척이 시작되고부터 360년 동안, 미생물의 힘을 통한 낙엽 퇴비에 의해 떼알구조를 발달시킨 흙 가꾸기를 행해 왔던 산토메 지역에서는 큰 떼알이 많은 농사흙이 겹쳐지는 것과 함께 경작지 방풍담이나 평지림을 육성함에 따라 풍식해에 대한 저항성을 강화해 왔다. 무사시노가 겨울철부터 초봄에 걸친 강풍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낙엽 퇴비 농법이 현재까지 계속되어 온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새롭게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 위에 개발된 새논에서 밭농사 농업을 유지하는 데에는 직사각형 토지 구획 안에 낙엽광엽수를 주체로 한 평지림을 배치하고 육성해 낙엽으로 퇴비를 만들고, 해마다 다량의 유기질 비료를 밭에 투입해 작물을 기르는 것과 함께 토양 개량을 해서 풍식해를 저감하는 낙엽 퇴비 농법이라는 체계가 고안된 것이다.
대지臺地·구릉 위의 평지림
유럽에서는 농촌에 한하지 않고 도시 안에서도 볼 수 있는 평지림이 일본에는 매우 적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숲은 산지의 토지 이용이다. 특히 이 경향은 개발이 오래된 키나이畿内의 평야에서 강해, 현재 키나이의 평지에서 볼 수 있는 평지림은 카스가春日 대사大社 등의 '사당의 숲'으로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일본 최대인 칸토우 평야의 대지나 구릉 위의 농촌부에는 3-4의 그림처럼 도시화가 진행된 현재도 밭과 함께 상수리나무·졸참나무숲이나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진 평지림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은 농민이 보유하고 있고, 평균 3000평 전후라는 영세한 보유 규모의 숲이다. 칸토우 평야의 대지나 구릉 위는 표고가 낮고 경사가 완만하지만, 물을 얻기 어려워 논벼농사는 어려웠다.

3-4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 분포(1982년)자료: 20만분의 1 국토지리원 발행 토지 이용도 '타카다高田' '닛코우日光' '시라카와白川' '나가노長野' 우츠노미야宇都宮' '미토시水戸' '도쿄' '치바' '오오타키大多喜' '요코스카横須賀'의 각 도폭(1982년 편집). 이누이犬井(1992)에 의함.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 분포를 나타낸 3-4의 그림을 잘 보면, 논벼농사가 탁월한 아라강荒川・타마강多摩川・토네강利根川 등 유역의 저지에는 거의 평지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지림의 분포는 평야 총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는 사가미하라相模原・무사시노武蔵野・오오미야大宮・시모우사下総・히타치常陸・나스노가하라那須野原 등의 대지나 구릉 위의 밭농사 지대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 기술했듯이, 산성으로 작물에게 유효한 부식이 적은 검은화산재흙으로 덮여 있는 밭에서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유기질 비료를 살포하는 일이 필요했다. 밭에서 재배되던 것은 보리, 밀, 조, 피, 밭벼, 메밀 등의 곡류와 함께 팥, 콩 등의 두류, 고구마, 토란 등의 덩이류였다. 이들은 모두 외양간두엄의 시용 효과가 매우 큰 작물이기에, 물론 당시에는 화학비료 등이 없었기 때문에 대지 위의 밭농사 농업에서 퇴비의 재료가 되는 낙엽을 생산하는 낙엽광엽수로 이루어진 평지림은 필요불가결한 생산수단이었다. 그런데 일본 전국 시정촌의 세무과나 법무국에 있는 토지대장에는 그 토지가 평지이더라도 숲으로 덮여 있으면 지목명은 모두 '산림'이라 표기되어 있다. 일상적으로도 평지의 숲이어도 산림이라 부르고, '평지림'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1880년대 말인 메이지 20년대에 전국적으로 간행된 「부현府県 통계서」나 「부현 권업勧業 연보」 등을 보면, 민간 소유의 임야가 산지와 평지의 숲, 그리고 풀산 3가지로 분류되어 기재되었다. 그 무렵은 일본도 산업혁명을 점차 맞이하려는 시기였기에, 정부도 아직 장작과 숯의 재료나 퇴비 재료 등을 공급하던 평지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이러한 통계상의 취급도 일시적으로,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몇 년 뒤에 숲은 모두 산림 항목으로만 되어 버린다. 이후 현재의 농림업 실태조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모든 숲에 관한 통계류에서 평지림이란 항목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평지림은 전국적으로 보면 적었던 점과 화학비료를 비롯한 금비의 도입이나 연료 혁명에 의하여 낙엽 퇴비나 장작과 숲의 중요성이 차츰 희박해졌기 때문에, 결국 시민권을 얻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기 떄문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낙엽광엽수림의 낙엽 생산
일본의 낙엽광엽수는 대부분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저온기인 겨울에 잎을 떨구고, 기온이 낮아지면 뿌리의 작용이 약해져 수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수분을 너무 많이 증산시키지 않고자 잎을 떨어뜨려 버린다. 잎과 가지의 경계에는 떨켜라는 특별한 세포층이 있다. 기온이 떨어지면 이 떨켜의 세포가 점점 딱딱해져 물이나 양분을 통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겨울을 날 준비가 완전히 이루어지면, 뚝뚝, 뚝뚝 잎을 떨어뜨려 간다. 다만, 상록수도 잎의 교체를 행하는데, 그 시기가 새 잎이 열리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잎의 교체가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또한 낙엽광엽수는 10~12월에, 상록광엽수는 4~6월에, 상록침엽수인 소나무는 10~12월에 낙엽이 집중된다.
칸토우 평야에서 볼 수 있는 평지림의 자연식생은 난온대림인 야생 동백나무, 모밀잣밤나무, 떡갈나무, 녹나무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상록광엽수 숲이다. 그러나 현재 눈에 띄는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 대부분은 소나무가 섞어 있지만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 등을 주체로 한 낙엽광엽수 숲이기 때문에 본래의 자연식생은 아니다. 낙엽광엽수 숲을 영속적으로 유지하며 이용하기 위해서는 숲을 극상의 상록광엽수 숲으로 천이하는 것을 방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무 밑 풀베기, 낙엽 쓸기, 맹아 갱신 같은 인위적 작업을 매년 반복하고, 낙엽 퇴비를 만들어 유기질 비료로 밭에 투입해 왔다.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는 맹아력이 강하여, 벌채된 나무의 그루터기에서는 이윽고 많은 수의 새순이 나온다. 그 가운데 생장이 좋은 몇 개를 남기고 평지림의 재생을 도모하는 방식이 3-5의 그림에 나오는 맹아 갱신이다.

3-5 맹아 갱신과 평지림 천이의 구조. 이누이犬井(1996)에 의함.

3-5-1 숲 바닥의 조릿대나 떨기나무를 베어서 정리

3-5-2 맹아 갱신을 위한 벌목
이러한 인위적 작업의 반복에 의해 자연식생을 편향 천이시켜 늘 숲 관리를 행하여, 산토메 지역을 비롯한 칸토우의 밭농사 지역의 평지림이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동북 일본의 너도밤나무숲이나 서남 일본의 조엽수 숲 같은 극상림도 산불이나 홍수, 산사태, 인간에 의한 벌채 등으로 파괴된 뒤에 초원을 비롯한 몇 가지 단계의 식생 천이를 거쳐 2차림이 성립된다. 동북 일본에서는 너도밤나무·물참나무 숲을 벌채하면 너도밤나무과의 졸참나무나 자작나무 등의 낙엽광엽수 숲의 2차림이 성립된다. 서남 일본에서는 조엽수 숲을 벌채하면 두 가지 유형의 2차림이 성립된다. 그 하나는 킨키 동쪽의 중부나 칸토우 지방에 많은 졸참나무나 상수리나무나 밤을 중심으로 하는 2차림이다. 또 하나는 킨키 서쪽의 2차림으로,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나 밤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모두 낙엽광엽수 숲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비료가 널리 보급되기까지 이러한 2차림이 농업이나 농가 생활에 도움이 되는 농업용 숲으로 열도의 각지에서 이용되었다. 농민은 2차림을 관리·육성하여, 낙엽이나 땔감과 숯의 재료 채취에 이용해 왔다. 특히 대지나 구릉지에서 이루어지는 밭농사는 충적 저지대에서 이루어지는 논벼농사에 비하면 퇴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으므로, 논 지대보다 밭농사 지대에 숲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인이 육식을 기피하게 된 것은 6세기 나라 시대의 불교화에 따른 살생 금단 때문이다. 그때까지의 신기神祇 신앙에서 '부정관(穢れ観)'이 확산되는 것과 호응함으로써, 중세 이후 본격적인 육식 기피로 이행하는 풍습이 퍼졌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이 되기 전까지, 육식은 일반에서는 좀처럼 행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생선과 새를 제외한 육류를 상식하지 않았던 일본인은 식용으로 많은 가축을 사육하지는 않았고, 농경이나 운반용으로 소와 말을 사육하는 데 그쳤다. 이렇게 해서 서양처럼 유축 농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는 가축의 분뇨에 의한 외양간두엄도 충분히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논벼농사처럼 관개수에 의한 지력 유지 기능이 갖추어지지 않은 밭농사에서는 화학비료나 금비가 보급되지 않은 시대에는 풋거름이나 낙엽으로 만든 퇴비는 밭농사 농업의 재생산에 매우 편리하고 유일무이한 '거름'이 되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새논 마을의 직사각형 토지 구획 안에, 택지나 밭과 함께 평지림을 의식적으로 배치했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 영농이나 농가 생활에서 이 평지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누이 타다시의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1992)에 의하면, 칸토우 평야에서 평지림의 마을 산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강풍 지대에 있어 검은화산재흙과 칸토우 롬층으로 덮인 물부족 성질의 대지나 구릉이 많이 존재한다는 자연조건과 개발의 역사가 새롭고, 게다가 밭농사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 재생산 자재를 얻고 있었다고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구할 수 있다.
산일(ヤマ仕事)의 계절
12월 중순 '무 뽑기(수확)'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 "내일부터 산에 들어가자"라는 한 가족 가장의 호령으로 '새 베기'나 '낙엽 쓸기' 등의 산일이 시작되었다. 산일은 구정(2월 1일) 전까지 매일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농가가 산일에 힘썼던 1950년대 중엽까지 무사시노의 농촌에서는 이 때문에 정월은 신력 1월 1일이 아니라 구력으로 맞이했다. 이처럼 예전에는 사람과 농農과 평지림이 일체화된 주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산일은 먼저 새 베기부터 최초로 시작했다. 새는 억새나 띠 등의 속칭으로, 한자로는 훤萱이라든지 모茅를 가리킨다. 억새는 키가 1~2m로 크기에 지붕 재료로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다른 풀들과 섞이지 않도록 억새를 먼저 베어 집에 날라다 놓았다. 지붕 재료로는 밀짚이나 볏짚도 사용되었지만, 밀짚은 5~6년, 볏짚은 2~3년밖에 가지 않는데 반해, 새로 지붕을 이으면 남면에서는 30년, 북면에서는 20년이나 갔다. 그러나 1960년대 중엽이 되면 농가의 신축이나 개축 붐이 일어, 지붕도 튼튼하고 길쭉한 함석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 지붕 재료인 억새를 베는 농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억새는 볏짚을 구하지 못하는 무사시노의 밭농사 농민에게 익숙한 소재였다. 산토메 사적 보존회가 편찬한 1929년 간행 『산토메三富 개척지開拓誌』에는 '무사시노의 띠탕(茅湯)'이란 일화가 나온다. 17세기 말 새논 개발 당초에는 물이 부족한 무사시노는 음료수도 부족하여, 농민은 목욕 등을 할 수 없어 베어낸 띠를 그늘에서 말려 이걸로 몸을 닦아서 목욕을 대신했다고 한다. 새 베기가 끝나면, 낙엽을 긁어 모으기 쉽게 숲의 청소와 손질을 한다. 먼저 마른 가지를 떨어뜨리고, 말라죽은 나무를 쓰러뜨린다. 자신의 산이 없는 농가도 '빌려 긁기(カリッコカキ)'라고 해서 남의 산에 들어가 긴 대나무 막대에 풀베기 낫을 동여 맨 도구로 마른 가지를 취했다. 마른 가지에 한하여 남의 산에서 채취하는 일은 묵인되었다. 나무가 빽빽한 곳은 솎음을 위한 간벌을 한다. 간벌은 '단단한 나무'라고 불리는 졸참나무·상수리나무를 가급적 남기도록 하고, '잡'이라 부르는 오리나무, 자귀나무, 때죽나무 등을 베도록 주의했다. 무사시노에서는 숲 바닥의 떨기나무 종류나 억새 이외의 초본류를 '바야バヤ'라든지 '보사ボサ'라 부르고, 풀베기 작업을 '바야 베기' '보사 베기'라고 불렀다. 간벌한 나무나 베어낸 바야는 집에서 불을 때기 위해 단으로 묶어 가지고 돌아갔다. 자가용 연료는 이러한 바야 종류만이 아니라, '찌꺼기'라 하여 밀짚, 팥꼬투리, 잡곡 껍질이라든지, 양잠이 성행하는 무렵은 누에에게 잎을 먹인 뒤의 뽕나무 가지 등 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을 땠다.
낙엽의 채취 작업은 겨울철 농한기에 행해진다. 칸토우 지방에서는 이 시기가 건조기이기에, 낙엽 채취를 하기 쉬워 '겨울의 풍경'이라 불렸다(권두 사진 4 참조). 그러나 눈은 강적으로, 눈이 내려 버리면 낙엽이 축축해져 버려 작업이 매우 어려워져 버렸다. 칸토우 지방에서도 음력 정월인 2월을 지나면 강설이 많아지기에, 그때까지 낙엽 쓸기를 마쳐야 했다. 낙엽을 채취하려면 먼저 낙엽을 긁어 모으기 쉽게 숲 바닥의 떨기나무 종류나 초본류를 없애는 '바야 베기'라고 부르는 풀베기를 행하고 나서 시작된다. 갈퀴로 낙엽을 긁어 모아, 무사시노에서는 8개의 대오리로 짠 '여덟 대오리 바구니(八本ばさみ)'라고 부르는 큰 대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3-6 무사시노의 겨울 풍경이라 이야기되던 낙엽 쓸기
무사시노에서는 낙엽 채취 작업을 '부스러기 쓸기'라고 부른다. 갈퀴로 낙엽을 긁어 모아 '여덟 대오리 바구니'에 가득 담는다. 도대체 평지림에서 어느 정도 양의 낙엽을 매년 채취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 의문에 답할 만한 것을 제대로 조사했던 논문을 발견했다. 1940년 간행된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 연습림演習林 보고」 제28호에 게재되어 있는 미우라 이하치로우三浦伊八郎・나이토우 미츠오内藤三夫가 지은 「무사시노에서 키 작은 나무 숲(矮林)의 수확 및 풀・낙엽 채취에 대하여」라는 논문이다. 그에 의하면 수종이나 나무 수령에 따라서도 다소 다르지만, 평균을 하면 평지림 300평에서 건조 중량으로 450kg(약 120관)의 낙엽을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덟 대오리 바구니 1개분의 낙엽 중량은 50~60kg이 된다. 채취한 낙엽의 대부분은 퇴비 재료나 고구마 못자리에 사용되었다. 고도 경제성장기 이전까지, 즉 화학비료의 사용이 보급되기까지는 300평의 밭벼, 밀, 보리, 덩이류 등을 심는 데에 1톤 안팎(200~300관)의 퇴비·외양간두엄이 필요했다. 300평의 농사에는 그 2배 전후, 즉 600평 남짓 넓이의 평지림이 필요해진다. 그에 더하여, 고구마의 못자리용으로 다량의 낙엽이 발효열 재료로 필요했다. 300평의 밭에 심을 수 있는 고구마 모종을 기르는 데에는 못자기라 필요한데, 그곳에 밟아넣는 낙엽의 양은 통상 약 1톤이라는 상당한 양이 필요하다. 고구마 농사는 '모가 70%인 농사' 또는 '모가 반인 농사' 등이라 하여, 낙엽이 분해하며 내는 발효열을 이용한 따뜻한 못자리에서 건강한 모를 얼마나 만드는지가 수확량의 많고 적음을 좌우했다. 300평의 농사에 필요한 낙엽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못자리용과 퇴비용을 합하여 1200~1800평, 대략적으로 말하여 작부 면적의 5배 전후의 평지림이 필요했다고 하는 셈이다. 이처럼 밭은 평지림과 묶음이 되어 비로소 농지로 기능했다.
이와 같이 대지 위의 밭농사 농민들에게 낙엽 없이는 농업을 영위해 나아갈 수 없었기에, 산을 가지지 않은 농민도 친척이나 지인을 의지해 어떻게든 산을 빌려 낙엽을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차용료는 현금에 의한 지불은 적고, 산을 관리한다든가 농번기에 도우러 간다든가 하는, 말하자면 노동 지대地代에 의한 지불 쪽이 많았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농지개혁 때에도, 지주로부터 밭뿐만 아니라 평지림도 함께 해방해 받을 수 있게 한 지역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 금비나 화학비료가 보급되어, 낙엽 채취를 하고 퇴비를 완성시키는 데에는 연 단위의 시간과 중노동을 요하기 때문에 다른 산업으로 농업노동력이 유출되는 등의 상황에서는 낙엽 퇴비 농법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 어려워져 가던 지역이 차츰 늘어났다. 낙엽 채취가 행해지지 않게 된 평지림의 숲 바닥에는 낙엽이 두텁게 퇴적되고, 좀조릿대 등이 번성해 숲 바닥 식물이나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 등 양수陽樹 종자의 발아가 되지 않아 그때까지 평지림이 보유해 왔던 생물다양성의 유지도 곤란하게 되는 경우도 여기저기 조금씩 볼 수 있다.
퇴비를 요구하는 흙과 작물
유효한 부식이 적고 산성이라 지력이 낮은 검은화산재흙으로 덮인 밭에서는 적당한 비율의 비료 성분이나 미량 요소 등을 포함한 퇴비는 딱 맞는 거름이었다. 그 때문에 고도 경제성장기 무사시노의 밭농사 농촌에서는 거름은 낙엽을 주재료로 한 퇴비가 오로지 사용되었다. 동시에 유기물의 분해를 담당하는 미생물 등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비료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아가 퇴비를 시용하는 것은 부식의 근원을 공급하는 것이기에, 지렁이 등의 토양 동물이나 미생물의 활동을 활발하게 함과 함께 뿌리의 활동에 빠질 수 없는 토양의 통기성을 좋게 하고, 보수력을 높이며, 흙 속의 건조·과습을 완화해 토양의 떼알구조를 발달시키기에 겨울철의 강렬한 '강바람'에 의한 풍식해도 저감시켰다.
평지림에서 채취해 온 낙엽은 퇴비장에 야적되었다. 이전에는 4월까지 아침마다 목욕에 사용한 물과 허드렛물을 끼얹는 '하수 끼얹기'라는 작업을 하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뒤집기를 몇 번 행하고 숙성시킨다. 추워지면 뒤집기할 때에는 낙엽 퇴비에서 자욱하게 증기가 올라온다. 낙엽이 분해될 때 나오는 발효열에 의해 70~80℃ 정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뒤집기를 하면 건조한 다루기 쉬운 낙엽 퇴비가 생길 뿐만 아니라, 병원균이나 기생충의 알, 잡초의 종자 등을 사멸시킬 수도 있어 안심하고 사용하는 낙엽 퇴비가 된다. 숙성된 낙엽 퇴비는 작물에 따라, 거름이 되는 칼륨이나 인산분을 포함한 초목재나 쌀겨를 섞어 작물을 심기 전의 밭에 전면 살포했다.
특산품인 고구마용 퇴비는 특히 '고구마 거름'이라 부르고, 밭의 토양을 떼알화하며 땅속의 덩이에 산소를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입자가 거친 퇴비나 솔잎을 많이 포함한 것을 사용했다. 고구마 거름은 모 꽂기를 하는 곳에만 퇴비를 두고, 전면 살포는 하지 않는다. 맥류 파종도 점뿌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맥류용 퇴비도 고구마와 같이 점뿌림했다. 상수리나무·졸참나무 등 광엽수의 낙엽만으로 만든 퇴비보다는 소나무의 낙엽이 적당히 섞인 퇴비 쪽이 좋다고 한다. 난분해성인 리그닌 함유량이 많은 솔잎은 광엽수의 낙엽보다 분해 속도가 느려 천천히 산화가 진행되어 이윽고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부식으로 변화해 나아간다. 따라서 솔잎을 적당히 섞으면 퇴비의 숙성 정도를 알맞게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낙엽은 돼지, 말, 소 등 가축의 깔깃으로도 사용되었다. 밭농사 지대에서 가축의 깔깃으로는 통상 보릿대가 사용되었는데, 낙엽이 풍부한 겨울과 봄철에는 대신해서 깔아 주었다. 깔아 준 낙엽은 10일 정도 지나면 긁어 꺼내 퇴비와 섞는다.
솔잎을 중심으로 낙엽의 일부는 아궁이나 화로의 불쏘시개로도 사용되었다. 태운 뒤에 남은 나무재는 자급비료로 소중하게 간직해 두고, 퇴비와 함께 밭에 살포했다. 곧, 칼륨이나 인 등의 무기질 양분의 보급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온기를 유지하거나 취사를 하거나, 가족 단란의 장으로 언제나 농가의 중심적인 존재였던 화로도 실은 이러한 무기질 비료의 생산의 장이기도 했다. 또한, 고사리 등을 먹을 때 쓰고 떫은맛을 제거하는 데에도 초목재는 빠질 수 없었다. 무사시노의 옛 농가 안에서는 지금도 '잿간'이라고 부르는 재의 저장소가 남아 있는 집도 볼 수 있다. 농지·농촌 주변의 숲, 곧 마을 산이 농지로 비료를 공급하는 근원이 되었던 것은 낙엽이나 풀만이 아니었다. 산토메 지역에서는 초목재라는 무기질 비료를 대량으로 얻는 장으로 경작지 생태계 안에 조성된 평지림에서 요구하는 이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어느 농가라도 느티나무 등의 집터 숲과 생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이 세워져 있다. 농가의 마당은 농산물의 탈곡, 곡물의 건조장 등 농작업장의 광장으로 사용되었다. 겨울, 그대로 놔두면 서릿발이 서고, 이 마당도 낮동안 질척질척해져 버린다. 보리 타작을 비롯한 농가의 마당은 농작업을 하는 장도 되기에, 질척거리지 않도록 소중히 했다. 여기에 낙엽을 깔아 놓으면, 서릿발이 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낙엽 위를 걸으면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 야간의 방범용으로도 좋았다고 한다. 마당에 깔아 놓은 낙엽도 허투루 두지 않고 봄의 춘분 무렵에는 다시 긁어 모아서 퇴비장에 쌓아올려 퇴비가 되었다.
맹아 갱신과 농업용 숲
낙엽 채취가 끝나면, 벨 때가 된 숲을 베는 작업에 착수한다.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는 25년 이상 지나면 수세가 약해지기에, 농민은 정기적으로 숲을 베어서 갱신시키면서 땔감을 채취했다. 나무를 베면 그루터리에서 새로운 맹아 가지가 나오고, 그대로 생장해 가는 수종이 있다. 몇 년 뒤에 자라서 북적이던 가지들 중에서 굽은 것이나 생육이 나쁜 것을 잘라 수를 2~3개로 줄이는 '싹 제거'라는 작업을 한다. 새롭게 식림할 필요가 없는 데다, 원래 나무의 뿌리는 크게 뻗은 채이기에 이 싹은 자라는 것이 빠르다. 이걸 이용한 숲의 재생은 맹아 갱신이라 부르며, 맹아력이 강한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는 간단히 숲의 갱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맹아 갱신을 시키기 위해서는 언제 벌목해도 좋은 게 아니다. 베어서 좋은 시기는 수목이 생장 휴지기에 들어가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 하순까지로, 3월에 들어서고 나서 베면 수목의 맹아력이 저하되기에 반드시 그때까지 끝내야 한다.
벌목하는 시기는 숲의 지형이나 토양 등에 의해 다소 다르지만, 대략 15~20년 주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중에는 토양의 조건이 좋아서 겨우 7년 정도에 벨 만큼 생장이 빠른 산도 있다. 이와 같은 숲은 7, 5, 3세에 '허리띠를 매는 축하'에 빗대어서 '허리띠 산'이라 불렀다.
맹아 갱신에 의해 재생된 숲은 잠깐 본 것만으로 곧바로 그것이라 알 수 있다. 즉, 밑동에서 똑바로 하나의 줄기로 서 있는 것은 적고 밑동에서 몇 개가 같이 나거나, 때로는 그것이 돌려나기하거나 해서 여러 갈래가 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맹아 갱신을 했던 무렵 숲 안에 거목은 없고, 나무의 굵기도 크기도 가지런했다. 정기적으로 베었던 무렵의 평지림이라면, 나무의 키는 크더라도 고작 10m 정도였다. 다만, 소나무는 맹아력이 약해 '1대代 한정'이기에, 밑동에서 수관까지 1개의 줄기가 뻗어 있다. 소나무를 자를 때 곧게 자란 모습이 좋은 것은 자르지 않고서 어미나무로서 300평당 10그루 전후 남기고, 자연히 씨가 떨어지는 갱신을 행했다.
앞에 기술했듯이 맹아 갱신을 멈추어 버리면, 머지않아 자연의 천이에 의해 극상의 상록광엽수 숲으로 돌아가 버린다. 낙엽광엽수 숲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고 농업용 숲으로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는 숲이 극상의 상록광엽수로 천이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방해해야 한다. 곧, 아래의 풀베기, 낙엽 쓸기, 맹아 갱신 같은 인위적 작업에 의한 식생의 편향 천이를 시켜, 산토메 새논의 낙엽광엽수 숲의 평지림이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3-5의 그림, 3-5-1, 3-5-2의 사진 참조).

3-7 맹아 갱신된 숲(좌)과 '싹 제거'(우) [권두화 5 참조]
1960년대 중엽이 되면 '연료 혁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어 땔감과 숯 재료의 수요가 사라지고 농촌에까지 석유나 프로판 가스가 보급되자, 나무의 키가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커졌다.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평지림에도 고령화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젊은 숲도 중년의 숲도 나이를 먹은 숲도, 각각 적당한 비율로 존재하는 형태가 이상적이다. 이대로 평지림의 수목이 이용되지 않고 맹아 갱신도 시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나이 먹은 숲만 남아 생물다양성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농민이 평지림을 필요로 했던 것은 낙엽 퇴비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평지림에서 연료가 되는 땔감이나 섶나무 가지, 가옥이나 헛간의 보수재, 지붕 재료인 억새 등을 구할 수 있었고, 식재료용 얼레지, 고사리 등의 산나물이나 버섯, 쓴풀이나 삼지구엽초 등의 약초 등도 채취했다. 또한, 연료가 되는 땔감이나 섶나무 가지 등도 얻었다. 땔감을 채취하기 위해서 15~20년 주기로 평지림을 벌채하고, '맹아 갱신'에 의하여 쉽게 평지림을 재생시켰다.
그외에 지붕 재료인 억새 등의 새도 구할 수 있고, 식재료가 되는 버섯이나 들풀도 채취했다. 즉, 평지림은 농업의 재생산이나, 농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임야로 농업용 숲이라 불린다. 건축용 자재의 생산을 주목적으로 하는 육림 지대의 삼나무나 편백나무의 상록침엽수 산림과는 수종도 역할도 다르다.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은 대부분이 상수리나무·졸참나무숲이나 소나무숲을 주체로 한 농업용 숲이다. 또한 직사각형 토지 구획의 최후부에 배치된 평지림은 이웃집의 숲과 이어져 겨울의 강바람으로부터 마을 전체의 밭흙이나 집터를 보호함과 함께, 대지나 구릉에 내린 비를 곧바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보수 기능도 담당했다. 나아가, 마을 주위에는 막 벌채된 숲이나, 생육 단계 도중에 있는 숲 등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존재했기에 다양한 종의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어서 생물다양성이 일부러 도모하지 않고도 유지되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칸토우 평야의 대지나 구릉 위의 밭농사 지대에서는 분가를 나올 경우나 소작지에는 밭과 평지림을 반드시 한묶음으로 하는 관행이 있었다. 전후의 농지 개혁 때조차, 평지림은 농지 해방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데도 지주로부터 밭과 함께 평지림의 해방도 쟁취된 곳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이 지역의 농민에게 평지림이 얼마나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을 산 같은 평지림의 이용 방법이나 이용 형태는 정말로 칸토우 평야의 주변보다 높은 평탄지에서 살아가는 밭농사 농민의 지식 체계이다. 현재, 우리들이 보고 있는 산토메 지역의 평지림 대부분은 각 집에서 경작지 생태계 안에 마을 산을 흡수한 것으로, 직사각형 토지 구획의 최후부에 배치된 평지림이 이어진 것이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3-8 평지림의 하사품. 새 지붕, 처마 밑의 땔감, 못자리, 채취한 낙엽, 이러한 모습은 1970년대 중엽까지 볼 수 있었다. [권두화 3 참조]

3-9 농업용 숲(모식도). 이누이犬井(1996)에 의함.
평지림, 잡목림, 마을 산
칸토우 평야의 약 60%를 차지하는 홍적洪積 대지台地에서는 밭과 연결되어 있던 평지림을 볼 수 있다. 농민은 이 평지림을 '산'이라 부르고, 결코 '잡목림' 등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토쿠토미 로카德富蘆花의 『자연과 인생』의 잡목림이나, 쿠니키다 돗포国木田独歩의 「무사시노武蔵野』의 낙엽림 같이 자연주의 문학자의 문예 작품 안에 무사시노의 평지림이 있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곧, 무사시노의 상수리나무·졸참나무로 이루어진 평지림을 잡목림이나 낙엽림으로 새롭게 풍경 가치를 평가했던 건 일본의 산업혁명 시기에 해당하는 20세기 초두의 자연주의 문학자였다. 확실히 잡목림에 붙여진 '잡'이란 글자는 잡종, 잡용, 잡역, 잡어 등과 마찬가지로 무사시노의 농민이 평지림에 대하여 품고 있는 농업용 숲이라는 '중요·불가결'이란 감상과는 좀 먼 느낌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농민이 아닌 이른바 방관자로서 아름다운 평지림을 보았던 문학자도, 아마 평지림이 농민에게 농가 생활이나 농업 생산에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농업용 숲이라는 이해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잡목림'이라는 말을 써 버린 듯하다. 나 자신, 1년 내내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고 늠름하게 우뚝 서 있는 삼나무나 편백나무 등의 침엽수 숲보다도 봄의 연두빛, 여름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낙엽과 사계절 정취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낙엽광엽수 숲 쪽에 친근함을 느끼는 건 확실하다.
평지림을 산이라 부른 것은 칸토우 평야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공통된다. 산이라는 건 높낮이 차이가 크고 경사가 급한 산지의 지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용 숲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톻의 3/4이 산지로 점유되어 있고, 그 대부분이 숲이라는 토지 이용의 국토에서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숲이 있는 장소가 곧 산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마을 산'의 산도 산지가 아니라 농업용 숲을 가리킨다. 곧, 마을 산이란 것은 본래는 마을에 가까운 농업용 숲이었다.
그런데 국가가 마을 산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1994년에 환경 기본계획을 결정했을 때로, 인구밀도가 낮고 산림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지역을 '마을 땅'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농림수산 활동 등 다양한 관계를 맺어 왔던 지역으로서, 고향의 원형으로 상기되었다는 특성이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를 보면 마을 땅은 농업용 숲에 국한되지 않고, 그것과 인접하여 깊은 관계를 지닌 경작지나, 수로나 집터도 포함한 농촌 환경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지력을 키우는 '츠쿠테ツクテ(낙엽 발효퇴비)'의 힘
지력이란 것은 일반적으로 토지가 지니고 있는 비옥함, 보수성, 통기성 등 작물을 육성하는 종합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나아가, 식물에게 토양은 중성인 것이 바람직한데, 앞에 기술했듯이 일본의 밭 가운데 약 40%는 산성 토양이다. 그래서 화전법(부대밭)에 의해 태워 없앤 뒤의 재로 중화시켜 왔다고 서장에서 기술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토양을 중성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질소분이 부족하다. 그래서 토지를 갈아서 산소를 넣는 것과 동시에 풀을 흙 속에 갈아엎거나 해서 다량의 유기질 비료, 곧 질소분을 경작지에 보급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처럼 초목재로 흙을 중성화하면서 산소와 질소분을 보급해서 토양의 회복 작용을 끊이지 않게 도모하면서 작물을 심었다. 이것이 일본 밭농사의 본래 농법이었다.
지력이 부족한 밭에서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세 이전에는 이미 초목재 시용, 깊이갈이, 섶나무나 풀을 갈아엎는 풀덮개 같은 기술이 확립되어 있었는데, 카마쿠라 막부가 열리고 나서 칸토우 지방의 개발이 진행되어, 맥류를 중심으로 하는 2모작이 보급되었다. 그러자, 종래의 초목재와 풀덮개에 더하여 똥거름이나 외양간두엄의 시용이 보조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에도 시대가 되면, 초목재와 풀덮개의 이용이 전과 다름없이 중심이었지만, 똥거름과 외양간두엄, 그리고 낙엽 퇴비의 이용도 상당히 보급하게 되었다. 그 결과, 평지림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공유지의 개발에 따라 각지에서 그 이용을 둘러싼 다툼이 많아졌다.
농업 이용을 목적으로 볏짚 등의 수확 잔재나 가축 분뇨 등을 퇴적하고, 미생물의 힘으로 호기적으로 분해시킨 것을 퇴비라고 한다. 예전에는 벼나 맥류의 짚, 낙엽, 들풀 등을 퇴적해 분해시킨 것을 '퇴비', 가축 분뇨를 주원료로 한 것을 외양간두엄, 농업 이외의 유기성 폐기물을 퇴적 분해시킨 것을 컴포스트compost, 이들 모두를 총칭한 '유기물'과 구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단독 원료만으로 퇴비화하는 것은 적고, 가축 분뇨에 톱밥, 짚을 섞는 등 복수의 원료로 퇴비화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낙엽 퇴비를 설명할 때, 영어로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낙엽 퇴비를 영역하면, fallen leaves compost가 아니라 fallen leaves manure가 적절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타카하시 에이이치高橋英一는 『퇴비가 온 길 돌아갈 길』(1991)에서 영어의 manure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영어의 manure는 라틴어의 manus=hand에서 온 파생어의 하나로, 원뜻은 '손으로 흙을 갈다'라든지 '토지를 기름지게 하다'라는 의미였다. 유럽 중세에 농작업은 대부분이 손에 의한 것으로, 손으로 흙을 갈아서 가축의 똥 등을 손으로 흩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기 무렵이 되면 쟁기의 보급에 의해 '손으로 갈다'라는 의미는 쓰이지 않게 되고 흙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만이 남고, 나아가 '비료(fertilizer)'라는 의미가 되었다.
무사시노의 산토메 지역에서는 낙엽 퇴비를 '츠쿠테'라고 부른다. 그러나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몇 명의 노인에게 물어보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츠쿠테에 '작수作手'라고 한자를 해당시켜 보면, 영어의 manure와 완전히 똑같은 뜻인 '손으로 만들다'가 되지 않을까? 이 점으로부터도 낙엽 퇴비는 fallen leaves manure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납득한다. 에도 시대 후기에는 퇴비의 재료로 낙엽의 이용이 일반적이 되어 평지림이 초목재와 풀덮개만이 아니라 낙엽 퇴비의 재료 공급원으로 한층 중요시되었다. 화학비료가 보급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기 이전에는 300평의 밭벼, 밀, 보리, 덩이류 등을 재배하는 데에 200~300관(약 1톤)의 퇴비가 필요했다. 평지림 300평당 평균 120관(450kg)의 낙엽을 채취할 수 있기에, 300평의 작부면적에는 그 배 전후, 즉 600평 남짓하는 넓이의 평지림이 필요했단 계산이 된다. 앞에 기술했듯이 무사시노 대지를 덮고 있는 칸토우 롬은 가벼운 데데가 활성 알루미늄이 풍부하며, 인산분이 부족한 산성 토양의 검은화산재흙으로 덮여 있어서 지력이 낮다. 더구나 무사시노 대지의 농촌에서는 새논 개발기 이후로 맥류·밭벼·고구마 등의 작물을 중심으로 한 밭농사를 생산의 축으로 삼아 왔다. 그 때문에 관개수로부터 비료분의 보충을 받을 수 있는 논벼농사에 비하여, 해마다 경작지에 다량의 유기물을 넣어야 한다. 따라서 농업의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지림으로부터 낙엽을 채취해 퇴비를 만들어 지력 유지를 도모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에도 시대 후기인 19세기에 군고구마용 상품작물이 된 고구마는 퇴비의 시용 효과가 다른 작물에 비해서 매우 높았기에, 비료의 대부분을 낙엽 퇴비에 의존해 왔다. 낙엽 퇴비는 적당한 비율의 비료 성분에 더하여 미량 요소도 함유하고 있어서 고구마에 흡수되기 쉽고, 덩이(덩이뿌리)의 비대 및 잎과 줄기의 생육에 대해 균형잡힌 효과를 나타낸다. 동시에 토양의 통기성을 좋게 하고, 보수력을 증대시키고, 건조·과습 조건을 개선하고, 뿌리뭉치의 발달을 좋게 하며, 나아가 미생물에 의해 비료분의 분해를 앞당겨 고구마의 생육을 촉진해 수확량을 높였다.
카미토메 새논 위치하는 카미토메 2구에서는, 통상 3000평의 고구마 농사에는 1350~2250kg의 퇴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분량의 낙엽을 얻기 위해서는 900~1500평의 평지림을 필요로 한다. '부스러기 쓸기'로 불리는 평지림에서 하는 낙엽 채취는 농가의 중요한 농작업이다. 채취한 낙엽은 '츠쿠텟파ツクテッパ'라고 부르는 퇴비장에 야적하게 되고, 예전에는 목욕에 사용한 물이나 허드렛물을 끼얹어 분해시켰다. 도중에 뒤집기를 2회 정도 행하며 숙성시킨다. 숙성된 퇴비는 무너뜨리고, 현재는 작물의 성질에 따라서 구입 비료인 쌀겨·볏짚재·물고기박·화학비료 등을 섞어서 밭에 살포한다. 넓은 산을 가지고 있는 농가 중에는 1만 관(37.5톤)이나 되는 퇴비를 만드는 농가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농가에서는 3-10의 사진처럼 츠쿠텟파(퇴비장)가 2개 나란히 지어져, '츠고시ツゴシ'라고 하여 전년부터 만든 숙성된 퇴비와 올해의 새로운 퇴비를 수북하게 쌓아 놓은 것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물론 낙엽의 형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흙처럼 된 츠고시의 츠쿠테부터 사용해 간다. 이처럼 좋은 낙엽 퇴비를 만드는 데에는 수고도 시간도 놀랄 만큼 필요로 한다.

3-10 츠쿠텟파(퇴비장). 올해의 새로운 츠쿠테(우)와 2년 된 츠고시의 츠쿠테(좌)가 공존하고 있다.
낙엽의 일부는 축사의 깔짓으로도 사용했다. 1912년 발행된 『이루마군정촌入間郡町村 세요람勢要覧』에 의하면, 미요시무라三芳村 안에 말 11마리, 돼지 132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깔짚에는 통상 보리짚이나 밭볏짚을 사용했는데, 낙엽이 풍부한 겨울·봄철은 그 대용으로 낙엽을 깔아 주었다. 깔았던 낙엽은 긁어 꺼내 외양간두엄이 되었다. 억새 지붕의 보수나 띠 교체를 할 때 나온 억새도 잘게 잘라 퇴비장에 쌓아 두고 퇴비와 함께 섞어서 사용했다.
낙엽은 퇴비의 재료만이 아니라, 구황 작물로서 18세기 에도 시대 중엽에 도입된 고구마의 못자리 발효열 재료로도 다량으로 필요했다. 그 점, 고구마는 다른 작물보다 평지림의 낙엽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작물이다. 당초 구황 작물로서 도입된 고구마는 그 뒤 보통 작물로 정착하고, 에도 시대 후기에는 '카와고에
川越 고구마'란 이름으로 산토메 지역 특산 군고구마용 상품작물이 되어 지금까지 특산물로 재배가 계속되며, 현재도 생산·출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다량의 낙엽이 필요한 독농 기술을 지원하면서 상품작물인 고구마 농사가 존속해 온 것도 평지림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첫째 가는 이유인 듯하다.
산토메 지역에서는 최근 고구마만이 아니라 당근·무·순무·소송채·시금치 등 집약적인 채소의 재배가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이들 채소는 재배 가긴아 짧기 때문에, 1년 동안 몇 번 농사지을 수 있어서 적은 밭의 농가에서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러한 집약적인 채소 재배를 행하는 데에는 유기질 비료가 빠질 수 없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최초는 확실히 다수확을 올릴 수 있지만, 유기질 비료의 시용을 그만두고 화학비료를 계속 사용하면 작물에 필요한 미량 요소가 부족하거나, 반대로 불필요한 성분이 흙에 잔류하거나, 농사흙이 차츰 홑알화하며 단단해져 버리거나 해서 뿌리 뻗음이 나빠져 좋은 작물을 얻을 수 없게 된다. 화학비료에만 의존해서 같은 작물을 같은 밭에 이어짓기하면, 병충해의 발생이나 농민이 말하는 '그루타기(忌地)' 같은 이어짓기 장해가 일어나기 쉬워져 작물의 수확량도 차차 저감되어 버린다.
퇴비의 원료에는 낙엽이나 볏짚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흙 속의 미생물 활동에 소중한 것은 탄소, 공기, 물이란 3가지이다. 퇴비의 재료 안에 질소는 암모니아, 요소, 단백질 등 여러 모양으로 존재한다. 탄소 쪽도 마찬가지로 전분이나 당분이나 섬유소 같은 유기탄소의 형태로 존재한다. 퇴비나 외양간두엄의 재료를 보면 분해하기 어려운 것은 탄소 함유량을 질소 함유량으로 나눈 탄소율(C/N비, 탄질비)가 높고, 분해가 쉬운 것은 탄소율이 낮고 질소분의 비율이 높다.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에 의한 낙엽 퇴비는 탄질비가 30~50%로 분해에 적당하기에, 소똥의 15~20%, 돼지똥의 40~45%, 닭똥의 30~35%, 볏짚의 50~60%에 비교해 자연스레 분해할 수 있는 탄질비라고 이야기된다. 야적해 두더라도 부패하지 않고, 퇴비화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시용한 뒤 흙 속에서 쉽게 분해되는 성질인 탄소가 급격한 분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퇴비 안의 탄질비가 퇴비 품질의 판단 기준이 된다.
또한, 주요 퇴비 재료의 영양분에 대한 분석 결과를 후지하라 슌로쿠로우藤原俊六郎가 『농업기술대계』(1986)에 수록한 '자급 유기질 비료' 항에서 3-11의 표처럼 밝혔다. 상수리나무의 잎은 다른 식물성 재료에 비해 귀중한 질소, 인, 칼륨의 공급원이 된다. 또한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낙엽 퇴비에는 사상균(곰팡이)나 방선균, 바실러스균 등 많은 미생물이나 균류가 부착되어 있다. 방선균은 부식 물질이란 흙을 비옥하게 하는 유기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항생 물질을 만들고, 식물 병원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길항균'의 작용을 하는 종류도 있다. 바실러스균은 길항균으로 일본에서는 고초균이란 이름으로 옛날부터 알려져 있고 낫토균도 그 무리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미생물이다. 사상균은 부생균으로 낙엽이나 뿌리 등 토양 속의 유기물을 분해하고, 미네랄분을 식물에게 건네주는 작용을 한다. 세균이나 사상균은 균사나 점액을 분비해 흙의 떼알구조를 생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퇴비가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공극이 많은 흙의 떼알구조는, 물론 미생물의 서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상균은 물질대사 주기의 큰 담당자인 반면, 많은 식물 병원균도 되는 만만치 않은 세균이기도 하다.
3-11 주요 퇴비 재료의 성분 조성(%)
| 재료 | 수분 | 질소 | 오산화이인 | 산화칼륨 | 산화칼슘 | 산화마그네슘 | 이산화규소 |
| 논볏짚 | 14.3 | 0.63 | 0.11 | 0.85 | 0.26 | 0.19 | 5.49 |
| 밭볏짚 | 14.3 | 0.97 | 0.10 | 0.85 | 0.31 | 0.24 | 5.49 |
| 밀짚 | 14.3 | 0.48 | 0.22 | 0.63 | 0.27 | 0.11 | 3.10 |
| 보리짚 | 14.3 | 0.64 | 0.19 | 1.07 | 0.33 | 0.12 | 2.34 |
| 옥수수대 | 15.0 | 0.48 | 0.38 | 1.64 | 0.49 | 0.26 | 1.31 |
| 상수리나무잎 | 13.2 | 1.07 | 0.18 | 1.98 | 1.78 | 0.35 | 1.47 |
| 조릿대 | 10.9 | 0.54 | 0.09 | 0.23 | 0.43 | 0.02 | 6.49 |
후지하라藤原(1986)에 의함
부식 사슬과 토양권의 다양성
토양 속의 소동물이나 미생물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식물은 태양광을 에너지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로부터 흡수한 물과 흙 속의 양분을 이용해 식물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이처럼 무기물을 동화하여 유기물을 생산하는 식물을 독립 영양생물(생산자)이라 한다. 나아가 자신은 유기물을 생산할 수 없고 남이 생산한 유기물을 먹이로 해서 생활하는 인간이나 동물 등의 종속 영양생물(소비자)로 이어진다. 지면에서 생육하고 있는 초본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나아가 맹금류 같은 고차의 소비자로 이어지며 계층을 만들고 있다. 서로의 먹이를 통해 양분은 순환하고, 이와 같은 먹이사슬을 생식 사슬이라 한다. 그에 반해 낙엽이나 떨어진 가지 등의 유기물을 기원으로 하는, 토양 생물-토양 미생물- 세균에 의한 먹이사슬을 부식 사슬이라 한다. 목숨이 다하면 식물이나 동물은 고사하고, 유체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만약 흙이 없었다면, 그리고 흙 속에 소동물이나 미생물이나 세균이 서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구는 생물의 유체와 생명에 유해한 배설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유기물은 다양한 미생물을 통해 적당한 수분으로 분해가 시작되면, 비로소 탄수화물(당)이나 아미노산, 전분 등으로부터 분해가 진행된다. 단백질 등 세포 내부의 물질이 사상균 등의 호기성 세균에 의해 분해되고, 그 호흡열로 발열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식물 세포벽의 성분인 펙틴의 분해가 시작된다. 그 뒤 50~60℃ 이상이 되면 사상균은 서식하기 어려워지고, 고온성이고 호기성인 방선균이 늘어나, 사상균이 분해할 수 없었던 셀룰로오스(섬유질)의 분해가 진행된다. 이 다음 방선균이 먹는 '먹이'가 사라지면 온도가 천천히 떨어지고, 난분해성 리그닌의 분해는 사상균의 무리인 담자균(버섯류)에 의해 시작된다. 토양 속의 유기물은 이러한 미생물의 작용으로 시간을 들여 분해되어 간다. 사상균 중에는 뿌리에 기생하는 것도 있어, 식물의 생육을 촉진하는 예가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은 AM균이라 하는 사상균의 무리로, 기생한 식물이 인산이나 무기물을 흡수하는 걸 도와 생장을 촉진함과 함께, 개화를 앞당기거나 착화 수를 증가시키거나 내병성을 높이거나 하는 등의 효과도 가지고 있다. 토양 생물에는 작물에 유익한 기생 선충이나 병을 가져오는 세균이나 사상균도 있다. 유해 생물의 폭주를 억제하고, 작물을 건전하게 기르는 데에는 토양 환경에서도 다양성의 보유가 필요하다. 호기성 세균부터 혐기성 세균까지 서식할 수 있는 다양한 토양 환경을 보유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토양에 떼알구조가 형성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낙엽 등의 유기물은 지렁이, 노래기, 쥐며느리, 톡토기나 곤충의 유충 등에 의해 잘게 파쇄되어 먹히고 똥으로 배설된다. 이들 토양 생물의 똥은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물, 암모니아, 질산염 등의 무기물로 변환된다. 흙 속의 유기태 질소는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암모니아태 질소로 분해된다. 이것을 미생물에 의한 유기체 질소의 무기화라고 한다. 암모니아태 질소에서 아질산균에 의해 아질산태 질소가 생성되는데, 이것을 질화라고 한다. 또한, 1장에서 설명했는데 탈질균의 탈질 작용에 의해, 질산태 또는 아질산태 질소는 가스 상태의 질소나 질소산화물로 환원된다. 나아가 공기 중의 질소 가스는 질소를 고정하는 호기성 세균인 아조토박터, 뿌리혹박테리아 등의 세균이나 조류 같은 토양 미생물에 의해 고정화되는 등 흙 속의 질소는 미생물의 다양한 작용을 통해 물질대사를 하고 있다. 인은 자연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산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탄소나 질소에 비하면 토양의 흡착성이 강하다. 그 존재 형태에 따라 토양 생물에 의한 이용성이 다르다. 물에 녹지 않는 난용성 인산은 그대로는 식물이 흡수할 수 없다. 토양 미생물들에 의해 가용성 인산으로 변화되어 비로소 식물에 흡수된다. 미생물 중에는 세균, 방선균, 사상균은 유기물의 산화력이 높고, 낙엽 퇴비에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므로 물질의 순환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크다. 세균과 균류는 낙엽을 분해하여 부식으로 변환시킨다. 이들 미생물은 유기물을 분해해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식물에 필수인 무기 양분을 분비하여, 이러한 토양 생물의 활동에 의해 비옥한 식물 생육 환경이 유지된다.앞에 기술했듯이 낙엽 퇴비는 균형잡힌 양분을 주는 것과 함께 흙의 구조를 수분이나 공기가 유지되는 떼알구조로 만들고, 작물 뿌리의 생장에 적당한 흙으로 개량해서 병해의 방제 등에 효력을 발휘해 왔다. 밭의 토양이 떼알인지, 아니면 단단해져 버린 홑알의 흙인지, 이 차이는 작물의 생장, 특히 뿌리의 뻗음에 큰 영향을 준다. 서장에서도 기술했듯이 홑알구조의 점토질 토양은 수분이 많으면 끈적끈적한 진창 상태가 되고, 건조하면 딱딱한 회반죽 벽처럼 되어 버린다. 작물의 생육에는 물도 빼놓을 수 없지만, 너무 많으면 거꾸로 뿌리가 호흡할 수 없어 뿌리 썩음을 일으켜 버린다. 겨울에 씨를 심는 겨울밀은 겨울철 추위로 밭의 흙이 서릿발로 얼어 들뜨며 뿌리가 잘려 버리기에, 이를 막기 위해서 무사시노에서는 '보리밟기'가 겨울의 빼놓을 수 없는 농작업이었다. 토양이 떼알화하면, 토양 속의 크고 작은 공극이 많아지기에 물빠짐이나 통기성이 좋아짐과 함께, 떼알의 미세한 틈에 포함된 물에 의해 보수력도 좋아진다. 토양 입자가 유기물의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작은 떼알이 만들어지고, 이 작은 뗴알이 부식 물질이나 미생물이 내놓는 다당류 등의 대사물질이나 라틴어로 점액이라는 뜻인 무코라고 부르는 끈적끈적한 점질물에 싸여 있다. 이 작은 떼알이 모인 퇴비 등의 거칠고 엉성한 유기물, 곰팡이의 균사 같은 미생물체와도 결합되어 더욱 큰 떼알이 형성되어 간다. 서장에서도 언급했듯이 떼알구조를 지닌 토양은 보수성과 통수성 같은 얼핏 상반된 성질을 양립시킬 수 있는 우수한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떼알구조가 미생물의 서식처가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낙엽을 가지고 간 평지림의 영양물 순환
후지이 사오리藤井佐織는 『삼림과학』 65호(2012) 수록 「잔뿌리와 토양 동물의 상호작용」이란 논설에서, 지금까지의 숲 바닥 토양의 영양물 순환에 대한 연구에서는 주로 낙엽만 주목되었는데, 수목의 살아있는 뿌리에서 나오는 삼출액의 역할이나 잔뿌리와 토양 동물의 상호작용의 시점을 고려하는 것이 적었다고 기술하며, 21세기가 된 이후의 식물 뿌리와 토양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검토한다. 잔뿌리라는 것은 뿌리계의 끝부분에 있는 일반적으로 지름 2㎜ 이하의 가느다란 뿌리이다. 지금까지 평지림이 공급하는 낙엽이나 떨어진 가지만이 토양의 영양물 순환의 기반이 된다고 믿고 있어 지하의 뿌리계와 토양 동물의 상호작용에까지 생각이 미치치 않았던 필자에게도 참으로 눈에서 대들보가 제거되는 듯한 논설이었다. 해마다 다량의 낙엽을 평지림으로부터 가지고 가는데, 왜 숲 바닥 토양의 영양분이 저하되어 평지림이 고사하거나, 약화되거나 하는 등의 영향이 나오지 않을까, 이 논문을 만나기까지 나 스스로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물론, 산토메 지역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갈퀴로 낙엽을 채취하고 있기에, 숲 바닥의 낙엽을 1장도 남김없이 완전히 제거해 버리지는 않는다. 또한, 갈퀴로 포착할 수 없는 낙엽이나 마른 가지는 숲 바닥에 잔존하고, 숲 바닥을 덮고 있던 시든 풀도 뿌리가 토양 유기물로 남는다. 또한, 개개의 농가는 해마다 소유하는 모든 평지림에서 낙엽 채취를 하는 것은 아니라 채취하는 장소가 겹치지 않도록 하면서 행하며, 채취하지 않는 장소도 순서대로 남기는 등의 궁리를 한다. 그 때문에 나는 평지림이나 숲 바닥 토양의 영양물 순환에는 큰 영향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낙엽 쓸기를 하는 것은 서장에서도 기술했듯이, 비를 맞은 낙엽에서는 칼슘이나 칼륨 등의 영양분이 빠져나가 버리는 대신에 흙 속으로 방출된 수소이온에 의해 숲 바닥 토양을 산성화해 버리지만, 오히려 그것을 막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후지이의 논설에 의하면, 최신 연구에서는 고사한 잔뿌리에 포함된 영양 함량은 낙엽에 포함된 것과 같은 정도이고, 또 잔뿌리의 연간 고사량은 낙엽량에 필적한다는 것이기에 놀랍다. 또한, 살아있는 수목의 잔뿌리 주위에는 뿌리에서 나온 삼출액 등의 유기물에 의해 세균이나 균의 성장이 활성화되고, 미생물의 밀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즉, 숲 바닥 토양의 유기물 공급은 지상과 지하 복수의 경로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 잎부터 뿌리로 보내진 탄소는 뿌리의 생장이나 호흡에 사용되는 것과 함께, 잔뿌리를 통해 균근균의 균계, 토양으로 이동한다. 즉 뿌리는 수분이나 양분을 흙 속으로부터 빨대처럼 빨아올리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광합성으로 획득한 탄소를 직접 지하로 운송하는 작용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탄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미생물에 의해 모여진 인산이나 수분을 공급한다. 그 때문에 수목은 흙 속의 인 양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게 되어 생육이 촉진되고, 내건조성도 높아지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후지이가 지적하듯이, 지하의 식물 뿌리의 작용이나 토양 미생물과의 상호작용 등을 감안한다면, 숲 바닥 토양으로의 영양분 공급의 한 요소인 낙엽을 제거한다고 해서 숲 바닥 토양의 영양물 순환에는 큰 영향을 주는 일은 적든지, 오히려 숲 바닥 토양의 추가적인 산성화를 막고 있다고 하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식물 뿌리와 토양 미생물의 상호작용 연구는 조사해 보니 독일의 로렌츠 힐트너Lorenz Hiltner(1862~1923)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식물의 뿌리와 토양 경계면의 몇 ㎜ 범위를 근권이라 부르는데, 100년 이상이나 전에 힐트너는 깊은 통찰력으로 근권과 그 토양의 기본적 특징을 밝히고, 근권 미생물 군집의 동적인 성질을 언급하고 있다. 힐트너 이후 근권이 미세한 영역인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식물 측에서 분비되는 유기산이나 그외의 물질이 토양에 작용해, 거꾸로 미생물이 영양을 광물 토양과 유기물로부터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환시켜 식물의 흡수에 맞추어 뿌리털에서 빨아올려진다고 하는 매우 복잡한 식물-토양 사이의 상호작용이 밝혀졌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가 되면, 토양생태학과 미생물학의 발전은 영양 순환을 좌우해 토양 비옥도에 영향을 주는 미생물과 유기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크게 진전시켰다. 근권을 둘러싼 과학의 발전에 의해 작물과 토양의 세계관은 현재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아가, 낙엽 퇴비 같은 유기물과 다양한 토양 동물·토양 미생물과 식물 뿌리의 상호작용이 해명됨에 따라,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도 현재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식물은 흙 속에서 뿌리를 뻗어 양분이나 물을 흡수하고 있는데, 이들의 작용을 돕는 미생물이 흙 속에는 서식하고 있다. 식물로 양분 공급하는 외에, 뿌리와 공생하고 식물 생장 호르몬의 합성이나 병원균의 억제 등을 행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흙 속에는 많이 서식하고 있다. 토양 생물에는 작물에 유익한 기생 선충이나 병을 가져오는 세균이나 사상균도 있다. 작물의 뿌리에 기생(공생)하고,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균이나, 토양 속의 난용성 인산을 식물에게 공급하는 유익한 '균근균'도 있는 건 이미 기술했다. 흙 속에 흩어져 있는 많은 미생물의 자연 작용에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은 뿌리로부터 삼출액을 내놓아 특정한 토양 미생물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권 토양에는 근권 토양 바깥보다도 특정 미생물의 밀도가 늘어나, 종의 다양성은 감소해 있다. 그 원인은 뿌리로부터 분비되는 다양한 물질로, '근권 효과'라고 이야기한다. 그 분비물질에는 당, 아미노산, 유기산, 지방산이나 2차 대사산물만이 아니라 서장에서 기술했던 식물 호르몬 등 '피토케미컬'이라 부르는 신호 물질이나, 탈락된 뿌리 세포 등도 포함된다. 또한 토양 안의 수분에 용해되는 물질만이 아니라, 뿌리에서 만드는 휘발성 물질도 알려져 있다. 작물이 광합성에 의해 합성한 탄수화물의 30~50%에나 이르는 상당한 양이 뿌리로부터 분비되고, 그 양과 조성은 작물의 품종, 생육 단계, 광합성 활성, 토양 조건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고 한다.
아버스큘라Arbuscular 균근균이란 사상균의 무리는 약 4억 년의 태고부터 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며 살아왔다. 아버스큘라 균근균은 그 머릿자를 따서 일반적으로는 'AM균'이라 약칭하여 부른다. AM균의 무리는 300종 정도라고 추정되고, 그중의 많은 종은 나뭇가지 모양 몸과 자루 같은 형태를 한 주머니 모양 몸을 가진 것과 함께, 큰 포자를 만드는 것이 특징으로 흙 속에서 포자는 발아해 균사를 뻗어 뿌리 속으로 침입한다. 요시다 타로우는 『흙이 바뀌면 뱃속도 바뀐다 -토양 미생물과 유기농업』(2022)에서 이 균사의 길이는 200m 이상에 이르고, 뿌리나 뿌리털이 차지하는 영역을 훨씬 넘어 몇 천 평에나 걸쳐서 퍼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균사는 세포 속에서 나무의 가지처럼 조직을 만들어 균사가 충분히 발달하면 식물과 흙을 중개하여 인이나 칼륨은 물론이고 작물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 같은 식물의 양분 흡수를 돕는다. 곧, 뿌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기에 뻗어 있는 뿌리의 근처에 있는 양분만 흡수할 수 있다. 그 결과, 식물은 뿌리의 주위에 있는 양분을 다 흡수해 버린다. 이와 같은 때에, AM균은 식물의 뿌리가 들어갈 수 없는 틈으로 파고들어, 뿌리 대신에 양분을 모아서 식물에게 중개를 한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양분의 태반이 미생물로부터 균근균을 통해 피드백되고 있다. 특히 인의 흡수에는 발군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유용 토양 미생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AM균은 필수 영양소인 인이나 질소를 토양으로부터 흡수해 공생 상대인 숙주 식물에게 줌으로써 경작지나 자연 생태계에서 식물의 생육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주요한 농작물 중에서 AM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옥수수나 콩, 팥이고, 그 다음으로 감자, 당근, 파 종류, 밀 등이다. 오이나 토마토, 가지 등의 과채류와도 공생하고, 약 80%의 육상 식물과 공생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어서 '미생물 비료'로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런데 AM균은 공생한 숙주 식물로부터 공급되는 탄소원에 의존하며 생육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단독으로는 거의 생육할 수 없어 다음 세대의 포자를 형성할 수도 없다. 그 때문에 AM균을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식물과 공존 배양할 필요가 있어, 수고와 비용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AM균의 농업 이용은 연구기관에서도 주목받고 있어, 유효 활용을 목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인산은 작물에 대한 과잉 장해가 나타나기 어렵고, 지금까지는 가격도 비교적 싸고 이용하기 쉬웠기에, 과잉으로 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유용 토양 미생물인 AM균의 수가 토양 안에서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인은 지구에 편재하는 유한한 자원으로, 가까운 장래에 고갈되는 것이 걱정된다. 또한, 논밭에 시용된 과잉의 인이 인근 하천이나 호수에 흘러들어가서 부영양화를 불러와 주변의 환경에 부하를 주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인산의 시용량을 삭감하고, 그런 문제를 경감하기 위해서도 AM균의 효과적인 이용이 기대된다.
산토메 지역의 농민은 경작지 생태계 안에 편입된 평지림에서 낙엽을 채취해 유기질 비료인 퇴비를 만들어 시용하고, 토양에 부식을 계속 공급해 미생물의 작용을 통해 생산을 이어왔다. 그것은 결코 타성이나 습관으로 360년 동안이나 계속해 왔을 리 없다. '100년이 하루 같은 것'처럼 변함없어 보이지만, 그때까지의 과학으로는 해명하지 못했던 근권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뛰어난 농민이더라도 흙을 비옥하게 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과학적, 이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흙에 손을 대고 눈으로 보며 냄새를 맡으면 금방 흙의 상태를 대번에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이 밭의 흙을 손으로 쥐고 손끝으로 비비며 자문자답하는 모습을 나는 몇 번이나 밭에서 보았다. 잘 부스러지는지, 가루 같은지, 떼알 형태로 뭉쳐 있는지, 만지면 뿔뿔이 부스러져 버리는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등. 무엇보다도 눈으로 보면, 그 색으로 흙에 얼만큼의 부식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흙의 냄새는 방선균이 만드는 물질에 의하여 바로 부엽토 같은 특유의 냄새가 난다. 흙의 냄새를 맡아서 부패한 냄새나 곰팡이 냄새를 느끼면, 미숙한 유기물이 섞여 있다는 증거로, 물빠짐이 나쁜 흙은 아닐까 하고 그들은 순식간에 판단할 수 있다.
360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는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 지닌 최대의 특징은 '흙 가꾸기'이다. 흙 가꾸기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작물 재배의 받침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토양 구조를 다양화하고 생물상을 풍부하게 만듦과 함께, 경작지 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배지培地라는 의미이다. 좋은 흙은 부식(토양 유기탄소)을 풍족히 함유하고 그걸 먹이로 하는 지렁이나 미생물이나 세균 같은 토양 생물의 작용도 활발하고 보수성이나 통기성 등의 물리적 성질도 좋아 식물을 튼튼히 기를 수 있다. 그 때문에 좋은 흙에서 길러진 식물은 병에 잘 걸리지 않고, 또한 해충의 피해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채소 등은 화학비료를 다량으로 주면 생육 과잉이 되어, 과실이나 잎 등의 이용 부분이 크기는 하지만 맛이 밍숭맹숭해져 버린다. 양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질이 수반된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단백질, 철, 아연 같은 영양분이 감소하고, 대량의 탄수화물이 작물에 채워지는 것만으로 끝나 버린다. 화학비료에 의지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생육 과잉은 일어나기 어렵고, 풍미가 늘어난다고 한다. 즉, 그 작물 본래의 영양이나 풍미의 바탕이 되는 성분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로 부식과 토양 생물 덕분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학비료에 의지하지 않는 농업이더라도 높은 수확량을 올리기 위해서 퇴비나 유기질 비료를 많이 시용해 상품 가치가 높은 작물만을 이어짓기하게 되면, 식물체 안의 해충 기피물질의 생선이 감소해 해충의 식해를 받기 쉬워지고, 이어짓기로 토양 전염성 병이나 해충이 집적하기 쉬워지며, 다비로 연약해진 식물체에 병원균이 침입하기 쉬워져 버린다고 니시오 미치노리西尾道徳는 「검증 유기농업』(2019)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산토메 지역에서는 경험적으로 이러한 일을 알고 오랜 세월에 걸쳐 낙엽 퇴비 농법을 실천해 왔다.
고구마 모종의 바이러스 장해와 썩음병(基腐病)
산토메 지역에서는 고구마 농사는 '모종이 반인 농사' 또는 '모종이 70%인 농사' 등이라 하여, 지금도 낙엽을 밟아 넣은 못자리에서 손수 돌보아 건강한 모를 만들고, 낙엽 퇴비로 고구마를 기르는 농가가 많다. 그러나 낙엽을 밝아 넣은 못자리를 이용해 육성된 고구마의 모는 영양번식 작물의 장기간의 이어짓기에 의해 발생하는 바이러스 장해가 2000년 전후부터 산토메 지역에서도 조금씩 발생했다. 씨고구마에 의한 영양번식은 유전적으로는 똑같은 개체, 즉 복제물을 늘리는 것이다. 토양 안의 병원균이 일단 송곳니를 드러내면, 전멸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의한 바이러스 프리 배양 모를 종묘업자 등에게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농가도 늘어났다. 평지림의 감소나 노동력 부족, 화학비료의 보급 등에 의해, 지금까지에 비하면 낙엽 채취량이나 투입량이 감소해 좋은 흙 가꾸가기 어려워졌다. 또한 산토메 지역에서는 고구마 농사는 경영 규모가 큰 농가가 고구마 재배를 최대로 하고 당근, 무, 토란 등 소수의 근채류를 조합해 재배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마를 재배하는 밭을 거의 고정하지 않을 수 없다. 3-12의 사진처럼 고구마 단일 경작(홑짓기)에 가까운 형태라서 돌려짓기하는 것도 어렵다.

3-12 산토메 새논 지구의 경영 규모가 큰 농가는 특산품인 고구마 재배의 면적을 최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홑짓기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은 언제나 균형을 회복하려고 한다. 인간이 맨땅을 만들면 잡초의 커다란 무리를 보냄으로써 지표를 덮어버리고, 홑짓기를 행하면 병원균을 보내서 그 작물을 시들게 함으로써 그외의 생물종이 그 굴을 매우고 번영할 수 있게 한다. 홑짓기처럼 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이나, 낙엽 퇴비 시용량의 감소를 초래하는 등의 결과, 특산품인 고구마 모의 바이러스 장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흙 속 부식의 양 등, 눈에 보이지 않을 듯한 가장 느린 변화야말로, 농가에게 어떤 때에는 감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다른 한편, 2018년 가을 무렵부터 오키나와현, 가고시마현 및 미야자키현의 알코올 원료용 고구마의 대규모 단일 재배 지역에서 그루가 말라죽고, 덩이가 부패하는 '기부병基腐病'이 다발하고 있다. 수확량의 감소에 의해 생산자의 수익 감소나, 고구마 소주의 가공업자에게는 원료 공급 부족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고구마 기부병은 약 100년 전에 미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 균은 당시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뉴질랜드 등에서 고구마 재배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 그 뒤, 아시아권에도 퍼져 일본에서는 2018년에 오키나와에서 최초로 발생이 확인되었다. 2021년에는 칸토우 북부에서도 감염 보고가 뒤이었다. 생식용 고구마가 특산품인 산토메 지역에서는 다행스럽게 아직은 기부병 발생 보고가 없다. 그러나 흙 속에 있는 사상균에 의해 일어나는 병이기에, 하나라도 모가 감염되어 방치하면 토양을 통해 다른 농가의 모에도 차례로 전염되어 버려 지역 전체에 전염되고, 수확량은 계속 감소하며, 결국은 전멸하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실제로 밭의 흙을 훈증해서 균의 양을 줄이는 시도를 진행하는 지역도 있다. 얼핏 보면, 이러한 방법이 좋아 보이지만, 기부병의 원인이 되는 사상균만이 아니라 식물에게 유용한 다른 많은 균도 모두 죽여 버린다. 일시적으로는 건강한 토양으로 돌아갔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병원균이 들어올 우려가 있다. 그때에 방어해 주는 좋은 균이 흙 속에 없다면, 다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어 버린다. 그 가장 기초에 있는 것이 유기물이 많이 함유된 토양의 풍부함이 유지되는 것과, 그 적절한 관리를 계속하는 일이다. 즉, 다양한 토양 동물이나 미생물이 병원균을 직접, 간적적으로 섭식하여, 병원균의 증식 조건을 저화시키고 작물로 감염되는 것과 발병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균을 먹는 미생물의 '먹이'(에너지원)이 되는 균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다양한 토양 생물이 대신 '먹이'가 된다. 부식(토양 유기탄소)가 풍부한 좋은 토양이 있음으로써 병에 강한 건강한 작물을 길러, 그 영양이 돌고 돌아 우리들 인간에게도 도달한다. 그 좋은 흙을 가꾸는 건 다종다양한 미생물이나 토양 동물들의 작용을 지탱하는 부식의 존재 덕분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낙엽 퇴비 농법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아갈 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화학비료나 농약이나 기계에 의존하면서 상품 작물의 단일 경작을 해서 단기적인 생산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물인 낙엽 퇴비를 공급한 흙 가꾸기를 계속하고 규모는 작더라도 가족 경영으로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에도 시대를 연상케 하도록 힘든 노동을 수반한 낙엽 퇴비 농법이 지금도 아직 산토메의 땅에서 계승되고 있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웃도는 매력이 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라고 적었는데, 소비자에게 안전·안심이고 영양가가 높은 맛있는 농산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자부야말로 매력이고, 그것이 낙엽 퇴비 농법을 계속하는 산토메 지역 농가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본래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란 지구의 물질 순환이 무리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태를 농업 안에서 지속시킨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유기질 비료도 흙 속의 미생물이 동식물의 사체 등의 유기물을 분자량이 충분하게 작은 부식으로 분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분해에는 그에 상당하는 시간을 요한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이 시간을 단축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학비료는 화석연료인 석유를 사용함에 따라 그 시간을 단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유한하고, 유한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결국은 고갈되어 버린다. 화학비료나 농약만으로 생산의 향상을 맡긴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파탄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것에서 눈을 돌리려고 하지도 않고 아무튼 효율화나 경제성만 추구하는 농업의 상태와는 이제야말로 결별해야 한다. 이제 효율보다도 질감을 추구하고, 등신대까지로 발전의 속도를 감속하며, 발전 모델은 직선성에서 순환성으로 대체해야 하는 시대이다.
낙엽 퇴비 농법에 의한 생물다양성의 보전
산토메 지역의 농가는 매년 겨울이 되면 평지림에 들어가, 나무 아래 풀을 베고 낙엽을 쓸어 모아서 퇴비를 만들었다. 풀베기나 낙엽 쓸기에 의해 떨기나무나 키가 큰 풀에 뒤덮이지 않게 되기에, 특히 초봄의 관리된 밝은 숲 바닥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식물 종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한 조사에 의해 얼레지나 삼지구엽초 등이 외부의 들풀 애호가에 의한 도굴로 감소하거나, 볼 수 없게 되어 버리거나 한 일도 있지만, 숲 바닥이 관리된 평지림이 초봄에 나타나는 동식물에 의해 안정된 생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매화노루발, 치자풀, 야고, 산자고, 금난초, 은난초, 은대난초, 약난초, 보춘화, 새우난초 등 희소한 난의 무리를 비롯한 식물이 확인되었다. 어느 식물도 환경성이나 사이타마현의 멸종위기 목록의 멸종위기나 준멸종위기에 해당하는 귀중한 종이다. 농업용 숲과 관계가 깊은 은행나무강도 확인되어 비상飛翔 공간이 되는 밝은 숲 바닥과, 밀원이 되는 꽃풀이 개화하는 열린 숲 바닥 환경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또한 표범나비의 무리는 제비꽃 종류를 먹는 풀로 삼아, 제비꽃 종류가 생육하고 있는 밝은 숲 바닥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확인된다. 귤빛 부전나비, 큰녹색 부전나비 등 '숲의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제피러스zephyrus 류'의 무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의 어린 나무 싹을 좋아한다. 그외에 평지림의 숲 가장자리에서는 큰알락귀뚜라미, 북방실베짱이 등의 희소한 중베짱이 류도 확인된다. 그리고 낙엽 퇴비를 만들어 놓기 위한 츠쿠텟파에는 투구벌레 유충이나 지렁이나 미생물 등 많은 토양 생물이 있다. 이러한 곤충류나 지렁이나 초목의 열매 등을 찾는 쇠딱따구리, 박새, 큰부리밀화부리, 멧새 등의 조류도 많고, 평지림의 최고차 소비자로 환경성 멸종위기 목록의 준멸종위기종인 맹금류의 참매가 산토메 지역의 평지림에서 고밀도로 번식하고 있다. 포유류인 산토끼, 일본너구리 등도 확인되며, 이처럼 마을 산의 초원이나 벌채지 등 사람의 손이 닿은 환경을 이용하는 다양하고 많은 육상 생물이나 토양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평지림 안이나 숲 바닥에 있는 곤충류나 토양 생물, 도토리 등의 나무 열매를 찾아 조류나 포유류도 모여든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도 똥을 숲 바닥에 싸고,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 양은 질소분만으로도 연간 약 1억 톤이 된다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비록 환경 변동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금방 대응할 수 있는 예비의 다양한 생물군이나 종이 있기에 평상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기능이 저하되거나,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지거나 했을 때 그 기능을 예비의 생물군이나 종에 대응시키는 회복력(resiliency)이 기능하게 된다.
도쿄 근교의 평지림 감소
일본의 여름은 유럽에 비하면 고온습윤하여 병해충이나 잡초가 발생하기 쉽기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 농업을 행하는 데에는 불리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산토메 지역에서는 화학비료나 농약의 사용을 매우 최소화하고, 낙엽 퇴비에 의한 흙 가꾸기를 현재도 계속해 수도권 중에서도 높은 농업 생산을 올리고 있는 농가가 많이 보인다. 낙엽 퇴비를 주체로 한 저농약·저화학비료의 환경보전형 농법 같은 부가가치가 있는 농작물을 소비자가 구입해 낙엽 퇴비에 의한 이 농업 체계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간다면, 단적으로 말해서 평지림을 보전해 나아가는 것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농과 식과 환경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 경제성장기에 일어난 ‘에너지 혁명’에 의해 급속한 에너지원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장작이나 숯은 가스나 프로판 가스, 석유로 대체되고, 완성되기까지 연 단위의 시간과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하는 낙엽 퇴비는 화학비료를 비롯한 속효성 금비로 대체되어 수고를 들여야 하는 낙엽 쓸기를 하는 농가도 적어졌다. 전후의 고도 경제성장기가 되면 칸토우 지방의 밭농사 농촌 중에는 평지림이 농업용 숲으로서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아니게 되자, 농가는 가옥의 신축이나 개축, 자녀의 진학이나 결혼 등을 비롯한 큰 지출을 계기로 해서 차츰 평지림을 남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 결과, 평지림은 밭보다 앞서 주택지나 공장용지 등으로 전용되어 버려 소실되어 갔다. 평지림은 일반적으로 밭에 비교하면 땅값이 싸고, 한 필지당 토지 구획의 면적도 넓다. 덧붙여 전용에 대한 법적 규제도 약하고, 농지를 전용할 때와 같이 대체지도 원칙적으로 필요없기 때문에, 한 번에 광대한 면적의 전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주택단지나 공업단지 등의 대규모 용지로 평지림은 잇달아 전용되어 갔다. 카미토메 새논이 있는 미요시마치에서도, 1959년에 '미요시마치 공장 유치 조례'가 시행되어 1969년에 폐지될 때까지 10년 동안에 농가가 남에게 넘긴 카미토메 지구의 평지림에 공장, 기업이나 대학 등의 운동장, 창고, 분양주택 등이 진출해 개발·전용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주택이나 공장용지, 자재 적치장, 폐기물 처리장 등으로 급속히 전용이 진행되었다. 특히 도쿄에 가까운 철도나 도로망이 발달해 있는 무사시노 남부에는 3-13의 그림처럼 고도 경제성장기가 되자 평지림이 소실되어 갔다. 그건 1968년 도시계획법에 의한 지역 설정 계획에 따라서 '시가화 구역'으로 지정되어 택지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무사시노 북부에 해당하는 산토메 지역에서는 대부분이 도시화를 억제하는 '시가화 조정 구역'으로 지정된 결과, 이 지역의 새로운 도시 개발은 곤란해졌다. 그러나 현행 농지법에서는 비록 평지림에서 농업 생산에 필요한 낙엽을 채취하고 있더라도, 평지림은 농업용지가 아니기에 땅값이 비싼 대도시 근교에서는 농지와 비교하면 월등하게 고액인 고정자산세나 상속세가 과세되어 버린다. 특히 평지림에 부과된 상속세에는 농지에 허용되는 납세 유예 등의 적용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농가에서 상속이 발생하면, 고액의 상속세가 평지림에 과세되기에 농가는 평지림의 매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상속세 대책으로 매각된 평지림은 시가화 조정 구역 안이라도 합법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창고나 토석 적치장, 폐기물 처리장 등으로 전용되어 갔다.

3-13 무사시노 대지의 평지림 감소(1870~1970년). 이누이(1982)의 그림을 고침.
개발에 의해 평지림은 축소되거나 고립되거나 하여, 결국은 소실되어 갔다. 농가만이 아니라 일반의 시민이나 NPO나 행정에 의해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등 환경 악화와 함꼐 낙엽 퇴비에 의한 안전하고 안심이 되는 농산물 생산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일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예전의 마을 산과 같던 평지림을 되찾자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이용이 저하되었던 평지림이나 상속의 대상이 된 평지림 등은 농민의 손을 떠나, 도시로부터 기피된 폐기물 처리장이 집중되어 '다이옥신 오염 문제'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버렸던 '쿠누기산くぬぎ山'도 산토메 지역의 한 구석에 있다. 2004년부터는 카와고에시川越市, 사야마시狭山市, 토코로자와시所沢市, 미요시마치에 걸쳐 있는 쿠누기산의 45만 평에나 이르는 평지림이 자연재생사업법에 의한 '쿠누기산 지구 자연재생사업'의 대상이 되어, 자연재생의 노력이 이어져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동해 자연재생 조치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민유지가 점유해 자연재생의 합의 형성이 어려운 쿠누기산과 그 주변 지역에서 미요시마치에 입지한 산업폐기물 처리회사였던 이시자카石坂 산업은 자연재생사업에 호응해 새로운 사업의 전개를 개시한 기업의 하나이다. 진출했던 당초, '민폐 시설'의 하나로 여겨져 주변 주민의 진출 반대운동에도 직면했지만, 폐기물의 자원재생사업과 함께 마을 산 재생사업, 환경 교육사업, 유기농업 사업을 기둥으로 하는 오감으로 배우는 마을 산 환경 교육 현장 '산토메 지금과 옛날 마을(今昔村)'로 재생되었다. 주변 농가에게서 빌린 땅도 포함해 5만1000평에 이르는 부지에 연간 약 6만 명의 방문자를 모아, 마을 산의 영속성이나 자원 절약이나 자원 순환의 구조 이해를 촉구하는 21세기형 새로운 마을 산 체계를 배우는 주목할 만한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
2001년에는 임업 기본법이 개정되어 '삼림·임업 기본법'이 제정되는 것과 함께 '삼림법'의 일부가 개정되었다. 그에 의하면 도시 근교의 마을 산은 '삼림과 인간의 공생 숲'으로 정비하는 삼림 시업施業 계획을 책정하면 상속이 발생할 때 평가액을 40% 감세하게 되었다. 이에 의하여, 산토메 지역 같은 도시 근교의 평지림에 부과되는 고액의 상속세에 대한 일정 정도의 부담 경감책이 되었다. 평지림 이용이 수도에 근접한 이 지역에서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건 배후에 존재하는 시가화 조정 구역 지정을 비롯해, 새로운 삼림 시업 계획 등에 의한 외적 조건도 큰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산토메 지역에서는 사이타마현 자연환경보전 조례에 기초한 '자연환경 보전 지역'의 지정이나, 고향 사이타마의 녹지를 지키고 가꾸는 조례 '고향의 녹색 경관지'의 지정 등 자치단체에 의한 평지림을 지키는 조례나, 우수한 자연을 공유재산으로 공유지화하는 '사이타마 녹지 트러스트 운동' 등이 전개되었다. 또한, 평지림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맹아 갱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평지림의 소유자에 대하여 자치단체가 보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들 법 제정이나 자체단체의 보조 제도만이 아니라, 도시 주민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체에 의한 낙엽 퇴비 농법에 빼놓을 수 없는 평지림의 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3-14의 사진처럼 시민 참가 낙엽 쓸기나, 고구마 캐기 측제 등을 기획하고, 도시 근교의 농업이나 평지림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시민에게 전하고 있다(권두화 6, 7 참조).

3-14 시민 참가 낙엽 쓸기 체험(위)와 '세계 제일의 고구마 캐기 축제'(아래).
참가자는 농민에게서 갈퀴를 사용한 낙엽 모으기 방법이나, 퇴비와 흙 가꾸기 등의 지도를 받은 뒤 작업을 개시한다(위).
세계 제일의 고구마 캐기 축제는 낙엽 퇴비를 사용한 고구마 재배 방법이나 캐는 방법 등의 설명을 듣고 나서 약 440m의 긴 두둑에 줄지어 서서 일제히 시작한다(아래, 미요시마치 촬영).
산토메의 농민은 지력이 낮은 황무지를 과거 3세기 이상의 시간을 들여 평지림을 관리·육성하고, 낙엽 퇴비 농법에 의해 생산력이 높은 농지로 바꾸는 노력을 이어왔다. 낙엽 퇴비 시용에 의해 가져온 토양 유기물은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적 성질을 양호하게 유지하고, 또 양분을 작물에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농업 생산성의 향상·안정화에 빼놓을 수 없다. 2010년에 간행된 카타오카 나츠미片岡夏実 번역 『흙의 문명사』를 지은 몽고메리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토양의 유지를 기초로 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인간 사회는 거의 없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했듯이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야말로 참으로 토양의 유지를 기초로 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세계에서도 희한한 농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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