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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법

흙과 거름과 미생물 -종장 세계 농업유산,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에서 배운다

by 雜s 2025. 10. 6.

종장   세계 농업유산,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에서 배운다

 

 

 

 

흙과 농과 식의 One Health

모든 생물은 그 활동 에너지를 식물의 광합성 작용에 의한 태양 방사 에너지의 고정에 의존하고 있다. 작물에 의한 태양 에너지의 이용 효율은 비교적 높다. 그러나 작물에 의한 전체 생산량의 70~90%는 수확물의 형태로 경작지 밖으로 가지고 나가고, 그 대부분은 인간의 식재료나 가축의 사료가 된다. 그리고 그 일부는 똥거름이나 퇴구비로 다시 경작지에 환원되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고정된 에너지는 열로 소산한다.

경작지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에는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가 동식물의 유체나 배설물을 분해, 환원하는 흙 속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무기화되어, 다시 식물에게 받아들여지는 형태로 하나의 주기를 이루며 순환할 필요가 있다. 이 물질대사의 주기는 숲 등의 자연 생태계에서는 거의 완결된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경작지 생태계에서는 수확물이 체계 밖으로 가지고 나가 버리기에 그대로는 물질대사의 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 종래의 자연에 의존한 농업에서는 일단 체계 밖으로 가지고 나간 유기물은 종-1의 그림처럼 똥거름이나 퇴구비의 형태로 농지에 환원됨에 따라 인위적으로 물질대사의 주기를 완결시켰다.

 

종-1 일본의 경작지 생태계에서 전통적인 물질대사의 주기(모식도). 이와키岩城 외(1979)의 그림을 바탕으로 손보아 고쳐서 작성.

 

 

그러나 구미에 한정하지 않고 일본에서도 체계 밖에서 오는 화학비료의 보급이나 하수도의 완비에 수반해 경작지에 환원되는 유기물이 대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에, 경작지의 물질 순환계는 붕괴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토양의 물리성이나 화학성은 차츰 열화되고, 지력과 수분 보유력의 저하, 토양 미생물상의 빈곤화를 불러와, 작물 생산 그 자체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토양 속의 사건은 상당히 복잡하고, 현대 과학을 가지고도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평균적으로 그 움직임은 완만하여, 예를 들면 시비 등의 조작에 대한 반응은 느린 동시에 토양이나 자연조건에 의해서도 변하기 쉬우며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점, 작물 생산을 마음대로 하거나 증대시키거나 하기 위해서는, 매우 성가신 상대이다. 토양이나 미생물의 작용을 무시하고, 식물인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화학비료를 사용해 직접 주는 수단을 강구하는 쪽이 생산력을 제어하는 데는 매우 효율적이고 편리한 면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식물과 토양의 상호작용계로서 기능하던 생태계로부터 토양을 떼어 놓아서 토양은 버려 두게 된다. 지금까지 각 장에서 기술했듯이,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해 생산력을 올리는 것은 흙을 살찌우기는 커녕, 오히려 흙을 피폐하기 만든다는 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화학비료는 결코 '거름'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을 듯하다. 

한편, 경작지로부터 가지고 나가서 식재료로 도시로 운반된 유기물은 이제는 농지에 환원되지 않은 채 도시의 분뇨 공해, 해양이나 호수나 하천의 수질 오탁 원인이 되고, 또한 가축의 사료가 된 유기물은 축산 폐기물의 형태로 환경 오염에 한몫하고 있다. 이들은 경작지 생태계에서 토양-거름-토양 생물-작물/가축-인간 같은 일련의 관계에서, 물질대사의 주기와 생명 순환계가 붕괴된 결과 발생한 일에 의한다. 생태계 안에는 여러 가지 생물이 서식하고, 그들 생물끼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경작지에서 풀덮개 같은 풋거름이나 퇴비나 외양간두엄이 화학비료로 대체된다면, 유기물의 감소에 의해 토양 생물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토양 비옥도가 저하되어 수확량이 저감되어 버린다. 또한 고도 하수 처리에 의해 호수나 해양에서 오염이 저감되지만, 폐쇄적 해역이나 호수의 '빈영양화'가 진행되는 등의 사태가 나타난다. 그에 더하여 이와 같이 생물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또는 화학적 환경에 대한 영향 등 그들이 생태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기 폐기물에 의한 하천이나 해양의 오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농촌을 포함한 지역 생태계 안에서 물질대사의 주기를 인위적으로라도 완결시켜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똥거름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그대로 농지에 뿌리는 일은 지금은 물론 할 수 없다. 하수의 오수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오니를 원료로 유기질 비료를 제조하려는 시도는 몇 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지만, 설비와 비용, 안전성 등 여러 문제가 있어서 자원의 유효이용이 반드시 궤도에 올랐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상태이다. 그러나 그걸 시대에 맞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궁리를 하고 보급해 나가야 한다. 일본 각지의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병원체가 완전히 사멸되어 있는 점이나, 중금속이 포함되지 않았는지 등 정기적인 검사를 받은 고도 하수 처리에 의해 생긴 오니를 희망하는 시민 등에게 배포하고 있다. 또한 검은화산재흙에는 대량의 인산이 흡착되어 잠들어 있기에, 그 인을 밭의 지렁이나 균근균 등에 의해 회수하는 생물학적 방법이 확린된다면, 농민도 화학비료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미래를 위해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인구의 증가나 산업의 수요에 응할 수 없어서, 농업의 근대화를 부르짖고 농업의 화학화, 기계화 등 집약화가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올렸던 것도 확실하다. 일본의 숲이나 농지는 다양한 생물의 생존을 보증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도 토양의 보전이 중요하다. 효율이 나쁘다고는 하지만, 농업을 작물과 토양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계로 이해하고, 토양을 가꾸면서 작물을 기른다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화학 약제의 다용이 지닌 모순을 깨닫고, 지력 유지를 통해 식재료의 안정적 생산을 도모함과 함께, 과학 약제의 다용을 피하며 건강에 참으로 공헌하는 식재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질·생명 순환의 원리에 입각한 농업이 필요하다. 앞에 기술했듯이 영국인인 알버트 하워드가 1940년대 중엽에 이것을 이미 주장했다. 화학비료, 살충제나 제초제나 살균제 같은 농약, 유전자 변환 작물 등에 의지한 현대의 농업은 오히려 흙을 피폐하게 하고, 작물이나 가축의 감염증, 충해 등도 불러일으키며, 생물다양성의 파괴 등 지구 환경의 악화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산의 과정이나 품질에 눈을 돌리지 않고, 싸고 보기 좋은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는 우리들 소비자도 적어도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책임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식은 최후까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을 텐데, 요즘은 그곳으로부터 잘라내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으로 스마트폰 대금에는 매월 몇 십 만 원이나 지불하면서, 50원, 10원이라는 농산물 가격차에는 과민할 정도까지 반응하는 등 소비자로서 돈을 지불하는 순위 매김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을 먹느냐는 것은 자아실현으로,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닐까? 매일 끼니마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먹을거리는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소비자로서 농축산물에 돈을 지불하는 순위 매김이 변해 가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흙 속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미생물이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식물만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흙으로부터 수확하는 것이 인간 몸의 면역이나 장내 세균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장내 세균에 관해서도 인간의 면역을 제어하기는 커녕, 인간의 정신도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인간 심신의 건강조차 흙과 거름과 미생물이 크게 관여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다용해서 기른 작물을 먹은 그 날이나, 며칠 안에 무언가 변이가 일어나는 듯한 급격한 독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복부 타격 같이 심신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기에 소비자는 심신의 손상이 되는 자각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알아채지 못한다. 

2019년 이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의 팬데믹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세계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에 새로운 팬데믹을 막는 수단으로 '원 헬스one health)'라는 사고방식이 공중위생학 분야에서 주목되었다. 곧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건강과 환경의 건강을 동시에 성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원 헬스라는 개념은 인간(식)의 건강, 농(농작물)의 건강, 흙(환경)의 건강에도 들어맞는 것은 아닐까? 식과 농과 환경은 지금 심각한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열쇠가 되는 것은 흙과 퇴비의 본래 힘을 되찾아 인간(식)의 건강, 농(농작물)의 건강, 흙(환경)의 건강이란 3가지 건강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걸 나는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나 지구라는 큰 생명체에 안겨서, 지금이야말로 농이나 식이나 환경이 긴밀히 연결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해야 하는 시대이다. 생태계 안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그들 생물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생물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또는 화학적 환경의 영향 등 쉽게는 볼 수 없는 과정이 있으며, 그것들이 생태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생태계 안의 동적 응답을 다루는 복잡 과학이 앞으로 한층 더 진보하길 바란다. 

 

 

 

 

 

녹색혁명으로부터 세계 농업유산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FAO(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등의 발전도상국 사람들을 식재료 부족에 의한 기아로부터 구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하며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쳐 왔다. 그 상징적인 활동이 다수확 F1 품종의 육종, 화학비료나 농약, 기계화 및 관개 시설의 부설 등에 의한 대규모 농업으로 바꾸어 도상국의 기아를 해결하려 한 '녹색 혁명'이다. 그 뒤 F1 품종에 이어서 '유전자변환 작물'이 등장함에 따라 대기업이 종자나 비료를 독점하고, 각지의 자연 특성에 맞춘 농업을 할 수 없게 되는 사태도 생기고 있다. 곧, '흙과 거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가급적 자연의 영향을 차단할 만한 온실이나 공장이나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과학 기술도 발전해 있다. 그러나 균근균 등의 토양 미생물이 영양 순환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들이 없는 무균 상태에서 하는 수경 재배로 기른 식물이 영양적으로 과연 건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방법은 확실히 단기적으로는 농업 생산력은 높을지도 모르지만, 태양과 물과 흙을 가까이 한다는 농업의 근간은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그해 그해의 수확을 올리는 일이 혈안이 되어 50년, 100년 같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다는 관점에서 농업이나 식재료를 파악하는 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보호·육성하고 조화를 유지하면서 식재료 생산을 진행시켜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4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세기 초 독일인 테어가 부식이야말로 작물의 양분이며, 그것에 기반한 시비와 작부 체계를 제창해 토양 비옥도와 농업 경영에서 일어나는 물질 순환의 관련에 대하여 '지력 균형론'을 명확히 개념화했다. 같은 시대의 화학자 리비히는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곡물이 흡수한 만큼의 인이나 칼륨 등 무기물을 토양으로 제대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하며 이를 '충족률'이라 부르고, 그때까지의 농업을 약탈농업이라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1세기 뒤에 하워드가 유기물을 밭에 돌려주는 일이 토양과 작물의 건강과 풍요로운 수확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설파한 '환원의 법칙'을 제창했다. 요컨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토양 양분이 제대로 순환되어야 한다는 셈이다.

그런데 몽고메리가 짓고 카타오카 나츠미가 번역한 『흙・소・미생물』()2018)을 읽었을 때, 화학비료의 시용에 길을 열어주었다고 하던 리비히가 놀랍게도 테어나 하워드와 마찬가지로 퇴비의 중요성을 설파한 The Natural Laws of Husbandry라는 책을 1863년에 출판했다고 적혀 있는 부분에 눈이 박혔다. 이 서명은 「농업 경영에서 자연의 법칙』이라고도 번역하면 좋을까? 이 안에서 리비히는 작물에 충분한 영양을 주기 위해서 유기물을 밭에 돌려주는 일을 추천하고 있다 한다. 앞에 기술했듯이 "흙으로부터 빼앗은 영양을 퇴구비로 흙에 돌려주라'는 것이 유기영양설을 주장한 테어의 지력 균형론이었다. 리비히는 이들을 약탈 농업이라 비판하며 무기영양설을 제창했던 것인데, 한편으로 그의 마지막 대저인 이 책에서 리비히가 농업에서 물질대사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리비히가 유기농업적인 사고방식으로 눈길을 돌려 작물에 충분한 영양을 주기 위해서 유기물을 밭에 돌려주는 일을 추천하며 '유기물이 문명 유지의 열쇠이다'라고 생각했던 단락이지는 않을까 하고 몽고메리도 저서에서 놀라움을 가지고 적고 있다. 하긴 리비히에게 식물 영양소가 무기물이라는 점이 단순히 유기질 비료 불필요론 등으로 이어질 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리비히의 사고방식이 동시대의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1818~1883) 만기의 환경 사상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시이나 시게아키椎名重明는 저서 농학의 사상 -마르크스와 리비히(2014 증보신장판)에서 썼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일본의 일부 사람은 리비히가 유기비료 불필요론자이거나 유기농업 부정의 선구자라고 계속 오해하고 있다. '흙과 거름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현대야말로 토양의 비옥도에 유기물이나 토양 생물과의 관계나 물질 대사의 주기에 대해 우리들도 진지하게 다시 배워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FAO가 지금까지 추진했던 녹색 혁명과는 크게 다른, 그를 대신하는 접근법으로 21세기에 이르러 만들어진 것이 '세계 농업유산'이다. 세계 농업유산이란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동시에 전통적인 농림수산업을 영위하는 지역이나 농림수산업 체계를 FAO가 인정하는 제도이다. 세계 농업유산으로 인정받는 농업은 그동안 FAO가 추진하던 '녹색 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아나 국제 경쟁력에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화학비료나 농약, 기계 등에 의지한 대규모 농업으로 전환하려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세계적으로 경제성,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근대적 농업 체계가 진전하면서 농촌 지역에 전해지는 전통적 농업의 식재료 생산만이 아니라, 자연이나 풍경이나 농촌 문화 등 다면적 기능을 국제적으로 평가하고 남겨 간다는, 그리고 그걸 후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며 그 하나로 FAO의 세계 농업유산이 생겼다. 세계 농업유산의 정식 명칭은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라 하고, 그 앞글자를 따서 'GIAHS'(지아스)라고도 부른다. 세계 농업유산은 2002년에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세계 정상 회의' 통칭 '요하네스버그 세계 서밋'에서 FAO가 제창한 것이다. 이전 FAO의 노력인 '녹색 혁명'에 대해서는 일정 평가가 이루어지는 한편, 지역의 삶이나 문화, 생물다양성의 유지 같은 가치관과 꼭 조화롭지는 않다는 면도 드러나고, 그에 대하여 의문도 지적되었다. 그러한 모색의 결과, FAO가 또 하나의 접근법, '플랜B'로 내놓은 것이 세계 농업유산(GIAHS)이다. 차세계에게 계승할 만한 중요한 전통적 농업이나 생물다양성, 전통적인 지식, 농촌 문화, 농업 경관 등 전체를 체계로 계승해 나아가려고 한다. '손대지 않은 것'이나 '오래된 것'을 최상으로 하는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과는 달리, 시대의 변화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해 가는 것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전통적인 지혜의 축적이 '세계 농업유산'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그걸 장래를 위해 차세대에게 계승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도쿄 서부 근교의 키타무사시노에 위치한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카와고에시, 후지미노시, 미요시마치로 구성된 산토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FAO의 세계 농업유산이란 새로운 제도의 존재를 알고, 자신들이 360년 동안 계속해 온 낙엽 퇴비 농법을 지키고 가꾸어, 그걸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강한 자각과 사명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가족 경영에 의해 안심하고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을 지속적으로 계속하기 위해서도, 건강한 식과 농과 환경을 장래에 이어주기 위해서도 세계 농업유산의 인정을 받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해 세계 농업유산 추진협의회를 설립했다. 필자는 산토메 지역을 기점으로 칸토우 평야의 평지림과 농업의 관련성에 대해 지금까지 약 50년에 걸쳐 조사·연구를 계속해 온 경위도 있어 이 협의회의 활동에 2019년부터 관계해 왔다. 세계 농업유산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산토메 지역의 농가나 주민의 가치관에, 이것으로 큰 전환이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는 '발전으로부터 뒤쳐지고, 낡고 비효율적이어서 쓸모가 없다' '전근대적이고 중노동의 농법' 등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되던 면도 있었던 낙엽 퇴비 농법이나 농경 문화에 대해, 새로운 측면에서 세계적인 평가가 주어짐에 따라 농가나 지역 주민들의 자신이나 자랑,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점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세계 농업유산 ー주목되는 일본의 마을 땅 마을 산』(2013)을 지은 타케우치 카즈히코武内和彦는 강조한다. 이러던 중, 도쿄 서부 근교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 추진협의회의 착실한 노력의 축적에 의해 2023년 7월에 세계 농업유산으로 인정·등록되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좁은 섬나라인 일본의 수도 근린에서, 낙엽 퇴비 농법에 의해 아직도 노지 채소 재배를 계속 영위하고 있다. 시설원예에서는 없는 이러한 흙 가꾸기를 기초로 둔 농업이 세계 농업유산에 등록된 것은 세계에서도 일본에서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은 건물이나 자연, 이른바 부동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반해, FAO의 세계 농업유산 쪽은 근대적인 부분을 받아들여 진화를 계속하면서 자연을 따르는 전통 기술이나 지식을 어떻게 남겨 갈 수 있을지를 묻는다. 자연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연의 구조를 연구하고 그걸 합리적으로 이용한다는 말하자면 '자연을 따른다'는 사고방식이 소형 농적 환경을 유지해 나아가는 데에는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수도 도쿄의 30km 권역에 에도 시대의 새논 개발 때부터 3세기 반 이상을 경과한 지금도 많은 후계자에 의해 이어져 수도권에서도 고위에 속하는 농업 생산을 올리고 있는 것이 산토메 지역의 자연을 따르는 형식의 무사시노 낙엽 퇴비 농법이다. 황무지였던 무사시노의 대지 위에 개발된 밭농사 새논에서 밭농사 농업을 유지하는 데에는 경작지 생태계 안에 낙엽광엽수를 주체로 한 평지림을 의식적으로 배치했다. 그걸 유지·관리하고 낙엽으로 퇴비를 만들며, 해마다 다량의 유기질 비료를 밭에 투입해 토양 생물을 유지하는 흙 가꾸기를 해서 작물을 기름과 함께 풍식해를 저감하는 낙엽 퇴비 농법이라는 체계를 고안한 것이다. 이 낙엽 퇴비 농법이 지닌 특징은 지금까지 보았듯이 토양 유기물과 토양 생물을 늘리는 '흙 가꾸기'이다. '흙 가꾸기'라고 하더라도, 낙엽을 채취해 연 단위의 시간을 들여 만든 퇴비를 시용하며 애정을 쏟아부으면서 작물을 기르고, 나머지는 지렁이나 톡토기나 미생물 같은 토양 생물의 작용에 맡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자연을 따르는 형식의 농법은 수고와 시간이 많이 들지도 모르지만, 부식과 토양 생물을 늘리는 흙 가꾸기를 중요시 한 농법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토양 생물의 작용을 얼마나 존중하며 작물을 기르는지이다. 

지금까지 기술했듯이,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농업의 대세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농지의 비옥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효성은 아니지만 토양 생물의 에너지원이 되는 유기 탄소를 보급하고, 자연 환경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보호·육성하여 조화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식재료 생산을 진전시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은 단기적으로는 강심제 같은 눈부신 효력을 발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흙 속의 유기물 감소로 이어져 토양 침식이나 토양 열화를 일으키고, 흙 속의 토양 생물을 사멸시킨 결과, 영양의 순환을 늦추어서 작물 수확량의 저하를 불러와 버린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아직 숨쉬고 있는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 21세기의 농업이나 나아가 사회를 구하는 농법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확신을 나는 가지고 있다. 농업의 원점은 식재료의 생산을 통해 인간들이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농업은 인간들의 공감력을 높이고, 공조의 정신을 양성하는 구조였을 것이다. 생산자인 농가와 소비자인 우리들은 함께 인간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농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할 시기이지는 않을까? 

현대의 농업에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전통적인 농법을 현대 토양생태학의 식견과 융합시켜, 세계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집약적 농업을 유지·추진할 것인가이다. 지난 반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달성된 현재의 수확량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토양 자체는 물론, 토양 유기물이나 생물다양성을 이 이상 잃지 않도록 해 나아가야 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현재 세계 농업의 약 70% 이상이 3000평 미만의 소규모 농가에서 차지하고 있으며, 소규모·가족 농업은 세계 농가의 약 90%를 차지하며 식재료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기아나 식량안보는 이들 소규모 가족 농업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맥락에서 농업에 새로운 초점이 맞추어질 때는 식재료 생산과 천연자원 관리에서 이들 농민이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해 농업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개발도상국은 대규모이고 화학화된 농업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숨쉬고 있는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처럼 가족농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농업 관행이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특히 개도국에서 널리 채용되어 나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화학화, 기계화, 대규모화가 진전된 농업과 비교하면 저투입인 만큼 저생산이었거나 생산이 불안정했거나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다양한 자원을 조달하여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기술 속에 그 토지 고유의 지식이나 기술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농업에서는 세계의 식재료 생산량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흙이나 생물 등의 농업 자원 열화나 환경 보전을 도모하는 것에 유의한 관행 농업과 유기적 농업을 공존시켜 가는 일이 현실적일 듯하다. 어느 쪽을 농민이 실시할지는 개도국 농민의 사고방식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속적 농업과 흙과 거름낙엽 퇴비에 의한 지력 증강을 세계에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농업에 한정하지 않고 공업에서도 똑같았지만, 생산 비용의 안에는 임금이나 원재료, 자재비 등의 직접 생산비는 계산되어 있으나 생산 과정이나 생산물이 시장에 나간 뒤에 사회에 손해를 주거나,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거나 하는 것에 대한 비용은 전혀 합계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또한, 생산 체계 내부에서의 효율을 올려 내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자는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그 체계의 밖에 들이고 있는 외부 비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기는 커녕 공해나 '동일본 대지진' 때의 원자력발전 사고 같이 내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 불경제'로서 외부 비용을 늘리는 걸 서슴치 않은 예조차 있었다. 지금, 이러한 외부 비용 가운데 대기나 흙이나 물 등 환경에 대한 비용만으로 한정해 이걸 '환경 비용'이라 부른다면, 종래의 농업 생산 방식 중에는 환경 비용이 큰 것이 적지 않다. 집약적인 선진국의 농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 약제는 비료이든, 농약이든 과잉으로 사용되면 환경에 음의 충격을 주는 원인이 된다. 경작지에 단일한 작물을 이어짓기하거나, 지나친 방목이나 지나친 경작 등이 토양의 구조를 약화시켜 토양 침식을 격화하거나, 이어짓기 장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하고, 그 결과 한층 더 화학 약제의 다용을 불러오게 되고, 농지로부터 유망된 화학 약제는 지하수나 하천이나 호수나 해양을 오염시켜 명확히 환경 비용을 키우고 있다. 반복하지만, 식과 농과 환경의 원 헬스를 목표로 해야 한다. 현재의 농작물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화학비료나 농약 등 다량의 '화학 약제 절임'으로, 병충해나 기상 재해에 약한 기형의 식물로 변신해 버렸다. 충분한 시비, 병충해의 방제, 기상이나 토양 등 환경 스트레스의 완화, 경합하는 잡초의 방제 같은 인간에 의한 보호 없이는 이제는 기르기조차 어려워졌다. 화학비료를 다용한 밭의 작물은 뿌리를 통해 간단히 무기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식물은 영양을 얻는 데에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더라도 해결하게 되었다. 식물에게 에너지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일은 생존의 중심이다. 그래서 식물은 무모하게 뿌리를 뻗거나, 삼출액을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뿌리 권역의 근균균이나 그밖의 유익 세균의 수가 감소하거나 사멸하거나 해 버린다. 나아가서는 식물의 건강과 병원체로부터의 방위에 필요한 영양 교환, 미네랄의 흡수, 피토케미컬이라 부르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로 미생물과의 정보 전달을 포함해 방위와 건강에 관계되는 광범위한 기능을 지닌 물질의 생산이 활발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러하면 미생물상의 활성이 떨어져 영양 순환이 늦어지고, 작물 생산량이 저하된다. 또, 선진국의 농업에서 하는 다량의 화학 약제 사용은 지금까지 보았듯이 작물 안의 잔류, 지표나 지하수의 오염 등을 통해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협도 되고 있다. 한편, 유기질 비료만으로 농산물의 높은 수확량을 얻으려고 한다면, 상당히 다량을 시용해야 해서 이것 또한 환경 오염으로 이어져 버린다. 나아가 그에 더하여, 1980년대 초에는 아메리카에서도, 유럽에서도 곡물의 과잉 생산이 정부나 농민을 재정적으로도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 후반에는 기존의 쌀 부족으로부터 완전히 바뀌어 쌀의 과잉 문제를 논의하게 되고, 1969년에 일본의 농정사에서 처음으로 쌀의 생산 조정이 시행되었다. 식량 관리 제도를 유지하면 국가의 재정 부담의 증대를 불러오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새롭게 '종합 농정'을 발족시켜 1995년에는 식량 관리 제도를 폐지하고 현재의 자유 쌀 제도에 이르렀다. 환경 비용을 축적하여, 바꾸어 말하면 환경에 대한 '외상'을 계속 모은다면, 최종적으로는 농업 생산 그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린다. 그건 흙이나 물 등의 생산을 위한 자연 자재를 탕진하고 있기에 당연한 것으로, 환경을 배려하지 않는 농업은 지속성을 보증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실제 EU 여러 국가처럼 이미 국민적 합의에 따라서 자연이나 환경 보전을 위한 자조 노력을 하고 있는 농가에는 디커플링이란 직접 소득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국민의 자산으로서 환경이나 토양이 보전된다면, 그로 인한 수확량 감소분을 사회가 부담하기로 국민적 합의를 얻은 것이다. 유기물을 농지에 돌려준다고 한 마디로 하더라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사회적 시야에서도 지금 있는 농업 보조금을 재편하는 등으로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 같이 흙 가꾸기를 기본으로 해서 지력 개선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농가에 대하여, 보수를 주려는 시책을 반드시 일본에서도 실현해야 한다. 에도 시대를 연상시키는 먼지에 범벅이 되는 노동을 수반하는 낙엽 퇴비 농법이 산토메 지역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으며 영양가가 높은 농산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농민의 자부심이 그 기반이 되며, 그것이 낙엽 퇴비 농법을 계속하는 농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흙 가꾸기를 열심히 하면서 농업을 행하고 있는 농민의 자부심에만 의지해도 좋은 것일까? 소비자가 이러한 농민에게 경의를 표하고, 소득 보상을 포함해 그에 걸맞는 적절한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고령화가 진행되어 경작 방기지나 농지의 피폐가 진척되어 식재료 자급률이 38%대에까지 떨어져 있는 일본 농업에게는 중요한 시책이 될 것이 틀림없다. 흙과 거름과 토양 생물의 적절한 취급이야말로 원 헬스를 목표로 하는 지속적 농업을 보증하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작물의 생산이나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켜 문명의 쇠퇴를 저지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식과 농의 체계를 외부로부터 가져오는 대량의 에너지를 계속 소비하는 방향으로 더욱 진척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연에 따르는 지역 한정의 농법을 대안적인 체계로 남기려고 하는 것이 좋을지가 의문이다. 파국으로 이어지는 농업 생산의 확대와 농업 생산성의 가일층 상승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규모 축소와 감속을 목표로 해야 할 듯하다.

 

 

 

 

낙엽 퇴비에 의한 지력 증강을 세계로  

일본인은 화학비료나 농약이 보급된 70~80년 정도 전까지는 마을 산의 자원을 거름으로 하는 등 농경 활동에 이용해 왔다. 마을 산이나 유역을 단위로 한 생활 양식의 존재,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나 재생과 순환의 세계관에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일본인은 마을 산의 문화를 지키며 초목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유럽에서는 비료의 제한으로부터 비료가 적을 수밖에 없으며, 경작지의 지력 유지는 기본적으로 경작지 내부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토양의 성질, 쟁기질의 방법이나 유기물의 환원이 신경질적일 정도로 고려되고, 비옥도는 토양의 속성이라는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었던 건 아닐까? 한편, 일본에서는 토지를 쟁기질하려면 공동 부지나 마을 산에서 거름의 재료가 되는 것을 모아 오면 좋았기에, 지력 증강은 얼만큼 거름을 주는지로 결정된다는 관념이 강했던 듯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의 기본에는 자연 생산력의 크기에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공동 부지나 마을 산에서 거름의 재료를 채취할 수 있던 것은 온난습윤한 기후 조건으로부터 임야의 생산력과 재생력이 냉량하고 건조한 유럽에 비하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건 끊임없이 일본인의 지근 거리에 자연이 있어, 생명의 고동이 들렸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걸 기회로 낙엽 퇴비나 풀덮개, 똥거름 같은 유기질 비료에 의한 흙 가꾸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 현재에 지니는 의의를 일본은 물론 세계를 향해 호소해 나아갈 필요가 크지는 않을까? 반복하지만, '흙 가꾸기'라고 해서 단지 작물을 심어 두는 흙을 준비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토양 구조를 다양화하고 작물의 양분으로 풍부한 생물상 풍족한 토양으로 만들어 경작지 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면 안 된다. 식물 영양을 화학비료에 의지하고 있는 농업으로부터, 토양 생물상을 활성시켜 토양 비옥도를 높여야 지속적 농업이 가능하다는 토양생태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농업의 사고방식에도 호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야말로, 경작지 생태계 안에 마을 산을 끌어들여,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낙엽 퇴비를 이용해 밭의 흙 가꾸기를 행하고, 토양 유기탄소를 저류하여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면서 농작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농법이다. 3장에서 기술했듯이 뿌리 권역을 둘러싼 토양 미생물학이나 토양 영양학 등 최근의 과학 발전에 의해 작물과 토양의 세계관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낙엽 퇴비 같은 유기물과 다양한 토양 동물·토양 미생물과 식물의 뿌리와 행하는 상호작용이 해명됨에 따라서 무사시노의 낙엽 퇴비 농법이 새로운 빛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산토메 지역에서는 3세기 반이나 전부터 이 농법을 계속 실천하고 있다. 참으로, 토양의 유지를 기초로 하는 농경 문화를 쌓아 올려 왔다고 평가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2021년 11월 국제연합의 추계에 의하면, 세계의 인구는 80억 명을 넘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식재료를 비롯한 물질을 농업 혁명이나 산업혁명이나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등과 같은 큰 기술 혁신으로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가 생산할 수 있는 생물 자원도, 이용할 수 있는 지하 자원도 무한하지는 않다. 인간이 지구 환경에 어느 정도의 부하를 주고 있는지를 고려함과 함께, 지구의 현상과 생활을 재검토해, 자손에게 무엇을 남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단절되어 온 농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잇대어 성립하는 식과 농과 환경의 원 헬스를 기초로 하는 순환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인류는 더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건 명확하다. 식재료 문제나 환경 문제, 감염증의 팬데믹 심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자연에게 인간이란 무언가"라는 것과 함께 재고되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연의 파괴에 의해 자연력을 갈아먹고 잃어버린 듯한 지금, 우리는 인간이 자연적인 존재인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책에서 지적한 '흙과 퇴비의 힘'이 저하됨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염려는 필자의 견강부회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현대의 식과 농과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드리워진 틀림없는 현실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국민 차원의 관심이 낮다는 현실이, 나로서는 매우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점이다. 바라건대 이 책이 지금 많은 일본인에게 '흙과 퇴비의 힘'을 되찾는 중요한 깨우침이 된다면 기대 이상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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