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재작년 일본의 일정식(和食)이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고, 올해는 밀라노 만국박람회가 '먹을거리'를 주제로 개최되는 등 세계적으로 '먹을거리 본연의 모습'을 되묻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정식이란 전통 식문화가 있었지만, 그것이 2차대전 이후에 크게 변화해 사라지려 하고 있다. 야요이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먹어 왔던 쌀밥은 세 끼에 한 끼가 빵으로 대체되고, 가정의 식탁에는 일정식 요리가 줄어들며 서구풍, 그리고 중화풍 요리가 많아졌다. 민족 전통의 일본술을 마시는 사람은 적어지고, 외래의 맥주를 많이 마시고 있다.
그런데 민족 전통의 일정식이란 어떠한 식문화인 것일까? 일정식의 최고봉이라 하는 요리집의 가이세키 요리는 세계 어느 나라의 요리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요리인데, 그것만이 일정식의 모든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먹는 1국 3채의 일정식, 또는 동네 식당에서 나오는 회정식이나 생선구이 정식처럼 밥에 회나 생선구이, 당근, 우엉, 토란 등의 조림, 시금치나 소송채의 무침, 거기에 된장국과 채소절임을 곁들이는 일정식도 있다. 초밥, 튀김, 장어구이, 오뎅, 메밀 등도 일본 독자의 먹을거리이다. 메이지 무렵까지 일본인의 식사는 거의 이와 같은 일정식이었다.
죠몬, 야요이의 옛날부터 일본인은 이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소중히 먹고 살아 왔다. 고온다우의 국토에 잘 생육하는 벼를 중심으로 하고, 계절별 신선한 어패류나 채소를 살린 요리를 만들어 자연의 풍부한 혜택에 감사하며 "잘 먹겠습니다"라고, 가족이나 동료와 사이좋게 먹어 왔다. 그리고 지역별로 향토 요리, 계절별로 행사식을 즐겨 온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풍토와 국민성에 맞추어 쌓아올려 왔던 일정식인데, 메이지가 되어 서양 요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2차대전 이후에는 서구 식문화의 큰파도에 밀려 그 모습이 크게 바뀌어 버렸다. 카레라이스나 고로케, 돈카츠, 라멘 등은 지금이야 훌륭한 일본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애당초 먹을거리 문화란 것은 보수적이어서 언제까지나 그 토지의 특색을 잃지 않는 법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탈리아 요리와 중화요리의 식당은 있지만, 가정에서는 그 토지의 민족요리를 먹고 있는 것이 보통이고, 일본처럼 서구풍, 그리고 중화풍의 요리가 가정의 식탁에까지 쑥 들어온 나라는 드물다.
일본인은 근대화, 국제화, 세계화라는 사회풍조에 말려들어가 일본 문화의 좋은 점을 잃어가고 있는데, 식문화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일본열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바싹 붙어 살아 왔던 일본인의 섬세한 감성이 빚어낸 일정식이 몸에도 마음에도, 그리고 자연에도 좋은 이상적인 식사였음을 잊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야요이 시대붜 2000년의 세월을 거쳐서 쌓아올렸던 일본 독자의 식문화 역사를 재검토하고, 그 좋은 점을 '현재와 미래의 식생활'로 살리는 것을 생각하는 건 어떨까. 일본 선조의 지혜와 노력으로 유지해 왔던 일본 식탁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현재의,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식탁 본연의 모습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일본 식탁의 2000년 역사를 오늘날의 식생활에 투영시켜 보면 '일본 식생활은 이걸로 좋을지, 장래의 식생활은 어떻게 해야할지'가 확실히 보일 것이다.
목차
시작하며 내일의 식탁을 생각하기 위하여
제1부 일정식의 박물지
1. 쌀농사는 야요이 시대부터 시작한다
2. 수렵채집으로 살았던 죠몬인
3. 벼농사로 일본의 나라를 지탱하다
4. 일본의 나라 재정과 쌀의 가격
5. 세 끼의 밥을 먹는 것은 에도 시대부터
6. 밥이 맛있는 일정식
7. 쌀 부족으로 고생했던 2000년의 역사
8. 불안해진 쌀농사 농업
1. 나라奈良의 도읍, 나가야 왕長屋王의 사치스러운 밥상
2. 젓가락과 상을 사용하는 식사 양식이 시작한다
3. 헤이안교平安京의 귀족이 즐겼던 대향연요리
4. 도우겐道元 선사禅師가 전한 정진요리
5. 두부, 유바, 밀기울, 참기름을 사용한 조리
6. 무가武家 사회에서 상차림 요리(本膳料理)이 탄생했다
7.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향응했던 호화로운 상차림 요리
8. 다도와 가이세키 요리의 탄생
9. 동남아시아 요리에 흥미를 보인 카톨릭 신자 다이묘大名
10. 가이세키 요리는 일본 요리의 최고봉
11. 요리집의 일본 요리부터 가정의 일본식으로
1. 쌀을 사용해 술담그기가 시작하다
2. 식삼헌式三献이란 음주 의례
3. 일본술의 제조기술
4. 에도에서 술 많이 마시는 내기가 유행
5. 전후에는 일본술에서 맥주로 대체
6. 술은 백약의 으뜸인가
1. 일정식에 빠질 수 없는 된장과 간장
2. 일본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다시마와 가다랑어
3. 초회는 일본 요리에 빠질 수 없다
4. 일정식에는 짠것이 많다
5. 일정식에는 설탕을 잘 쓴다
6. 일본 요리와 향신료
제2부 일본 먹을거리의 근대지
1. 공동주택 주민의 식생활은 어떠한가
2. 에도의 반찬은 어떤 것인가
3. 도쿠가와 장군의 옹색한 식생활
4. 농민은 잡곡의 잡탕죽으로 견뎠다
5. 음식점이 번창했던 에도의 마을
6. 메밀가게가 400곳이나 있었다
7. 에도 토박이에게 인기 있던 초밥
8. 장어와 튀김은 마을사람의 미식 요리
9. 취향을 담은 도시락 문화
10. 생선을 회로 만드는 요리 문화
11. 요리책 붐이 일었다
12. 두부 요리는 인기 반찬
13. 에도에서 유행한 계란 요리
14. 실낫토의 기원
15. 매일 빠질 수 없던 절임
16. 차를 마시는 습관이 퍼지다
17. 세계에 비길 데 없는 우아한 일본과자
제6장
1.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2. 어패 요리가 맛있는 일정식
3. 다종다양한 채소가 풍부하다
4. 버섯과 해초를 잘 먹는다
5. 과일을 물과자로 즐기다
6. 식탁의 계절감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다
7. 잊어가는 행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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