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준이치上田純一
시작하며
"보존식"이었던 절임
절임이란 무엇인가? 가까이 있는 사전류에 의하면, 그것은 채소나 과일, 어패류, 조수의 고기 등을 소금이나 된장, 간장 등으로 절인 식품이며, 또 흉작일 때에 대비하기 위한 식재료 보존방법으로 안출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물론 외국에도 절임은 있다. 중국의 짜사이, 유럽의 피클이나 사워크라우트 등은 잘 알려져 있다(Davison 2018). 또한 절임을 '식재료 보존방법'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경우, 채소 이외에도 예를 들어 비와코琵琶湖의 붕어식해(鮒ずし) 등도 절임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견해에 대해서는 필자도 의견을 같이하지만, 본고에서는 이러한 광의의 절임에까지 화제를 넓히는 걸 삼가고, '일본식 안의 절임'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들을 '보존식'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1 고대의 절임
중국의 절임
일본식의 성립을 생각할 경우, 중국의 영향이란 요소를 고려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인데, 이 점은 절임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선 꽤 오래전부터 소금에 절인 절임(염장)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가령 기원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에는 염장을 가리키는 말이 있으므로, 이미 염장법에 의한 절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제조법 등이 밝혀진 건 그 뒤 6세기 중엽에 나온 농업 전문서 <제민요술>즈음부터이다. <제민요술>에는 절임을 전문으로 해설한 항목이 있어서 아욱, 순무, 갓의 소금절임법 등 30여 종의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이미 매실장아찌 절이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 점이다. 즉 '식경' 인용으로 "매실의 매우 큰 알을 골라 껍질을 벗기고 그늘에 말린다. 바람을 쐬지 말 것, 이틀 밤낮으로 소금물을 빼고 꿀 속에 담갔다가 한 달 정도 지나면 다시 꿀을 갈아준다. 1년이 지나도 갓 딴 것처럼 신선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임의 대표격인 매실장아찌가 뜻밖에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 놀랍다.
또 7세기 초에 성립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라는 책이 있다. 중국 남주의 형초 지방(현재의 후베이성, 후난성 일대)의 연중행사나 먹을거리 등에 대해 기록한 것인데, 이 책의 11월 조에도 채소의 절임으로 순무나 아욱 등의 채소를 따서 말리고, 소금절임을 하여 겨울에 대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중국에서도 절임이란 겨울철 채소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고안된 식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절임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에서도 절임은 옛시대부터 제조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발굴에 의한 확인은 불가능하기에 문헌 등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할 건 식문화 관계사료로서 지금까지 거의 이용되지 않았던 한방 의학서를 두루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방의 '약식동원'이란 사고방식과 먹을거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上田 2018).
'약식동원'이란 "공복을 채울 때는 먹을거리라 하고, 병을 치료할 때는 약이라 한다"(<황제내경>)라는 중국 고대 이래의 사상인데, 일본의 의학(한방의학)도 그 생각을 계승해 성립되었다. 따라서 한방 의학서는 먹을거리 연구에서도 제1급 사료가 되는 것이다. 최초로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절임 이야기로 돌아가자. 절임에 관계된 사료로서 이른 시기의 것은 8세기 전반의 이른바 <長屋王家木簡>(나라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이나 <正倉院文書>(도쿄대 출판회 1968) 등에 보이는 '장醬'으로 절인 양하, 박, 가지 등이다.
덧붙여서 헤이안 시대에 찬술된 현존 최고의 의학서 <醫心方>에는 가지의 의학적 효능으로 "피부를 충실하게 하고, 기력을 더한다. 각기脚氣인 사람이 그 국물에 다리를 담그면 효과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각기'란 현재의 각기를 포함한 다리의 병 전체를 말한다.
그 뒤 헤이안 시기 무렵이 되면 식재료는 물론, 절이는 방법도 한층 더 다양해진다. 지금까지의 소금 절임, 장 절임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지게미 절임, 식초 절임, 아마츠케甘漬(소금을 적게 쓴 절임), 菹(니라기)漬, 스즈호리須須保利, 裏(에즈츠미)漬 등이다. 순서대로 설명해 보겠다.
지게미 절임과 식초 절임은 술지게미나 식초를 썼을 것이다. 아마츠케의 상세함은 분명하진 않지만 소금의 양을 적게 한 것이나, 또는 술지게미로 절인 것이었을까? 에도 시대의 <본조식감本朝食鑑>에는 '아마츠케'의 설명으로 무를 쌀, 누룩, 소금 등과 함께 절인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단맛을 끌어내기 위해 멥쌀과 누룩을 조합시킨 것일지도 모르는데, 추측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니라기 절임은 절임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느릅나무의 껍질 가루를 조미료로 쓴 절임이었다고 생각된다. <만엽집> 권16에는 "게를 위해 아픔을 이야기해 만든다"(3886수)라는 제목의 장가長歌가 있고, "난바강難波江에서 잡은 게를 느릅나무의 껍질 가루와 함께 갈아서 소금을 치고 병에 넣어 만들었다"라고 읊고 있다. 다만 게를 식재료로 이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는 드물고, 보통은 유채, 순무 등의 채소류가 많았다. 10세기의 <연희식延喜式>에 의하면, 조정에서는 느릅나무 껍질의 규격을 정해(길이 약 43cm, 너비 약 10cm), 각지에 느릅나무 껍질의 공출을 명한다. 중국에서도 '장' 제조에 느릅나무 껍질을 쓰는 일이 있었던 것 같고(篠田 1976), 또 전술했던 <의심방>에는 느릅나무 껍질의 효능으로 대소변이 나오지 않는 걸 낫게 하고 위장 속의 열기를 없어며 붓기를 제거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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