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 등의 분포율이 높아서 사질 토양이 흔합니다. 그리고 지형 및 기후의 측면에서는 산이 많고, 여름철의 집중 호우와 겨울철의 결빙 작용 등으로 조립질 토양과 쇄설성 토양이 흔하지요. 그 때문에 토양의 유기물 함량과 토양 산도(pH)가 낮은 특성이 있고, 토양에서 양분 염류들의 용탈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척박한 토양으로 분류되는 곳이 많습니다.
이러한 토양을 관리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토양 침식을 최소화하는 일입니다. 한국에서 비바람 등에 쓸려 사라지는 연간 총 토양 유실량은 5000만 톤 이상이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비탈이 있는 산지의 농경지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밭의 전국 평균 토양 유실량이 37.7톤/헥타르에 달합니다. 이에 비해 임야는 3.5톤/헥타르, 논은 0.3톤/헥타르 이하로 추정되니, 밭에서 일어나는 토양 침식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늘어나 토양 침식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실된 토사가 하천 등으로 유입되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산사태 등으로 인명을 위협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이유로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고랭지의 토양 침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여러모로 강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해 제시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토양이 비바람에 그냥 노출되지 않도록 일부러 풀과 떨기나무 등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예전에는 개망초 등 빠르게 자리를 잡고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종류를 권장했으나, 그다지 보급이 되지 않자 눈개승마 같은 나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을 이용하길 권했습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콩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개발되었습니다. 중남미의 산간 지역에서 살아가는 농민들도 콩과식물을 이용해 산사태 등을 예방한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다음은 피복용 농자재인 비닐 대신에 볏짚 등의 덮개를 이용해 토양을 덮는 것입니다. 비닐에 비가 떨어지면 그대로 빠르게 흘러내리며 토양까지 함께 쓸어갈 확률이 높지요. 그 대신 볏짚 등을 덮으면 빗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침투될 수 있어 토양의 유실을 막을 수 있는 겁니다. 더구나 볏짚이 나중에 잘 삭으면 토양의 유기물 함량까지 높일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토양 침식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요. 물론 수고가 더 든다는 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비닐을 주로 쓰되 토양 침식이 발생하기 쉬운 곳은 볏짚 등의 덮개를 활용하고, 밭의 경계지에는 호밀이나 여러 토양 침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식생을 일부러 심어 가꾸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여 농업 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흙을 지키는 것이지요. 사실 저는 텃밭 농사를 좀 크게 지을 때는 비가 온 다음날은 밭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발에 흙이 묻어 나오는 것은 물론 내 발걸음마다 흙이 다져지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죠.
사람들에게 흙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토양 침식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해도 잘 체감하지 못하곤 하지요. 그만큼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으니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걸 돈으로 환산해 이야기하면, 그나마 조심해야겠단 생각은 할지도 모릅니다.
최근 발표된 토양 침식에 관한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264837718319343), 토양침식으로 발생하는 연간 경제적 손실이 8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9조2504억 원에 이릅니다. 어떤가요, 이렇게나 값비싼 흙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겠단 생각이 조금이나마 드시나요?
<토양 유실 방정식에 따른 세계의 연간 절대토지 생산성 손실율. 출처: <A linkage between the biophysical and the economic: Assessing the global market impacts of soil erosion>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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