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거름이라 하면 많이 낯선가요? 그럼 綠肥라고 하면 어떤가요? 아, 한자가 더 낯설겠군요. 용어야 어떻든지, 농경지에서 자라고 있는 어떤 식물을 풋풋한 상태일 때 거름으로 이용한다고 하여 풋거름 또는 녹비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식물을 거름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무릇 거의 모든 식물은 후손을 잇기 직전에 식물체에 가장 양분이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풋거름은 다분히 그러한 현상을 농사에 이용한 방식입니다. 과거 세종대왕의 명으로 지었다는 <농사직설>에도 “기름지지 못한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녹두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갈아엎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풋거름을 활용하는 한 방법이지요.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농학자 가운데 일부는 조선의 조 또는 기장-밀 또는 보리-콩과 작물-휴한이라는 2년3작식 농법에 감탄한 적이 있지요. 이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2년째 겨울에 풋거름 작물을 재배하는 걸 추가할 수 있습니다. 땅을 놀리긴 놀리되, 더 효율적으로 놀리는 방식이지요. 어느 연구에 의하면, 풋거름 작물을 흙에 공급하면 매년 0.12%씩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미미한 수치일 수 있지만, 꾸준히 실행해서 해마다 축적되면 놀라운 변화와 효과가 일어날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은 이처럼 꾸준하고 성실했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풋거름이 토양에 들어가 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해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또 하나는 토양에 질소를 공급해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토양을 살린다는 말은 식물의 직접적인 양분이 되는 원소를 잔뜩 넣는다는 게 아니라, 토양에 깃들어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토양의 구조와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다는 것이죠. 이때 풋거름이 그 일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 풋거름 작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1) 콩과식물: 털갈퀴덩굴(헤어리베치), 자운영, 토끼풀, 살갈퀴 등
(2) 벼과식물: 보리, 호밀, 들묵새, 수단그라스, 트리티케일 등
(3) 야생식물 : 갈대, 갈퀴나물, 망초, 명아주, 쑥, 자귀풀, 자주황기 등
(4) 기타: 메밀, 해바라기, 유채(를 비롯한 십자화과) , 파셀리아, 코스모스 등
이 가운데 콩과식물을 질소질이 부족한 토양에 적합합니다. 그러니까 토양 검정을 통해 내 농경지의 흙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 다음 –물론 상농부는 그런 과학적 검사 없이도 자기 농경지의 상태를 잘 알테지만, 저는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질소질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를 보충할 수 있는 콩과식물을 풋거름 작물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토양에 유기물이 부족하거나 토양의 구조를 개선할 목적이라면 벼과식물, 질소나 인 같은 양분이 너무 넘친다는 결과가 나오면 십자화과식물을 선택해서 이용하면 됩니다. 어떤 풋거름 작물이 최고라고 할 수 없고, 모두 자기 농경지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마치 건강검진과 그에 따른 처방 같지요?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몇 가지 종류의 풋거름 작물을 섞어서 심은 뒤 그 성적을 비교하는 실험을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1) 토양의 질을 개선하는가, (2) 뒷그루 작물에 이로운가, (3) 비용은 적당한가.
이를 위해 (1)겨울 보리와 함께 무와 갓, 나머지 (2)귀리와 무 (3)귀리와 베치, 파셀리아 (4)귀리와 호밀 등은 각각 그 조합만 9월에 파종했습니다. (1)은 얕이갈이한 뒤 흩뿌림하고, (2)부터 (4)는 줄뿌림하는 방식으로 파종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풋거름 작물을 토양에 갈아엎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수확량; 생풀과 건조물 모두에서 귀리와 호밀이 가장 많은 수확량.
토양의 구조; 모든 실험밭에서 토양의 구조가 매우 좋아짐. 특히 귀리와 베치, 파셀리아를 심은 곳이 최고, 귀리와 무는 별로였지만 그것도 좋은 수준이었음.
지렁이; 지렁이의 개체 수는 무와 갓의 실험밭에서 가장 많음. 이 밭은 얕이갈이를 한 점에서, 무엇보다 경운을 최소화한 영향으로 보임.
실험 결과 얻은 각 풋거름 작물별 건조물의 수확량(왼쪽)과 지렁이의 중량 및 개체 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흙 한 자밤의 우주>, 데이비드 W. 울프 지음, 염영록 옮김, 뿌리와 이파리
2. <땡큐 아메바>, 제프 로웬펠스 외 지음, 이현정 옮김, 시금치
3.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이완주 지음, 들녘
4.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5. <발밑의 혁명>,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6. <발밑의 미생물 몸속의 미생물>, 데이비드 몽고메리 외 지음, 권예리 옮김, 눌와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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