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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셨나요? 꽃이 만발하여 작물과 어우러진 텃밭의 모습을. 꽃은 텃밭 농사에 이로운 생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걸 가꾸는 텃밭 농부에게도, 그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안겨 줍니다. 텃밭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텃밭의 모습에 감탄하며 좋아할 겁니다. 최근 도시의 텃밭이 개발 논리에 밀려 자꾸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 여러 꽃을 심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면 텃밭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와 지지를 얻어내기에도 좋은 수단이 되겠지요.

텃밭의 꽃들에는 어떤 익충이 가장 많이 찾아올까요? 위의 그림에 나오는 조사에 의하면 기생성 말벌이라고 합니다. 텃밭의 작물을 먹어치우는 초식성 곤충의 애벌레에 자신의 알을 낳아 번식하는 곤충이지요. 이들은 평소 텃밭 주변의 꽃들에서 꽃가루와 꿀을 먹으며 지내다가, 번식을 할 때가 되면 텃밭의 작물에 살고 있는 해충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텃밭에 꽃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도 좋아져 더 많은 개체가 살게 되지요.

텃밭에 여러 꽃이 만발하면 기생자 말고 포식자도 여럿 찾아오게 됩니다. 포식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편가(generalist)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가(specialist)입니다. 말 그대로 보편가는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한 해충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뜻하고, 전문가는 특정한 먹이만 골라서 먹는 걸 가리킵니다. 보편가에는 풀잠자리, 집게벌레, 거미, 딱정벌레 등이 있고, 전문가에는 무당벌레, 꽃등에 등이 포함됩니다.

최근 농경지에 일부러 꽃을 심어 천적을 유인해 해충을 방제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한 결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에 들어와 트랩식물을 이용한 해충 방제법을 실험한 연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해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인 것이 사실입니다. 생태계의 역학을 이용한 자연적인 방제법보다는 무언가를 만들어 뿌리는 쪽에 중점을 두고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쪽이 훨씬 쉽고, 빠르며, 돈이 되기에 그렇지 않은가 싶네요.

 

해외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30종의 두해살이 및 여러해살이 꽃을 심은 스위스의 사과 과수원에서 살충제를 쓰지 않고도 질경이둥글진딧물(Dysaphis plantaginea)의 피해가 몇 년 동안 경제적 한계선 이하로 상당히 감소.

-20종의 한해살이, 두해살이, 여러해살이 꽃을 심은 벨기에의 사과 과수원에서 진딧물의 포식자 개체수가 증가하고, 질경이둥글진딧물의 피해는 살충제 없이도 몇 년 동안 경제적 한계선 이하였다.

-프랑스에서 배나무이(Psylla pyrisuga)에 감염된 어린 배나무 근처에 길뚝개꽃, 수레국화, 공작국화 등이 있으면 2주 안에 감염률이 유의미하게 억제되었다.

-프랑스의 사과 과수원에서 익충을 위한 꽃 두둑에 여러해살이 꽃을 심으니, 진딧물의 군집에 무당벌레와 꽃등에의 숫자가 약 60%까지 증가했다.

(이상 <Perennial flower strips -a tool for improving pest control in fruit orchards> 참조)

텃밭의 꽃들에 찾아온 이로운 곤충을 위하여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생울타리를 심는 겁니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면 바람막이 역할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찾아와 쉬거나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지요. 그리고 같은 이유로 굳이 농지로 이용하지 않는 공간에는 다양한 풀이 자라도록 허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벌이 벌집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곤충들이 숨거나 서식할 수 있는 돌무더기와 나무더미 등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와 박쥐가 와서 살 수 있게 하는 장치도 좋겠네요. 이 모든 일들이 텃밭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구조를 더 풍부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조치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어떤 종류의 식물을 선택해서 심어야 더 효과가 좋을지 이야기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익충들을 텃밭으로 유인하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식물을 선정해 심어야 합니다.


  1. 천적들이 쉽게 접근해 먹을 수 있는 꿀과 꽃가루(짧은 꽃부리를 가진 식물)를 제공해야 합니다.

  2. 농사철보다 빨리 꽃이 피는 식물이 유리합니다. 농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천적을 지원하고 있어야 나중에 작물을 심었을 때 도움을 받기 쉽습니다.

  3. 농사철 내내 꽃이 계속 피도록 유지할 수 있는 식물을 심어야 합니다. 일찍부터 꽃이 피어 계속 피는 종류나,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계속해서 꽃이 피는 종류를 선택해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적들이 텃밭에서 계속 머물며 우리의 농사를 도울 수 있지요.

  4. 꽃을 심는 게 좋다고 하여 해충이 유난히 좋아하는 걸 심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잘 검색하여 천적들이 좋아하는 걸 골라서 심도록 하세요.

  5. 크게 자라는 것보다는 작게 자라는 식물이 관리하기에 편합니다.

  6. 한해살이보다는 두해살이나 여러해살이가 더 좋습니다. 한해살이는 해마다 파종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말이죠.

  7. 꽃밭의 식물 군집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풀도 함께 자라게 하지만, 그들이 너무 우점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꽃과 풀의 비율이 2:8 또는 3:7 정도가 되도록 해야 좋답니다.

  8. 마지막으로, 자신이 농사짓는 텃밭의 환경과 토양에 적합한 걸 골라 심어야 하겠지요.


그림1 텃밭의 꽃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천적의 비율. 기생성 말벌이 여기에서 발견되는 생물다양성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2곳의 과수원에서 3년에 걸쳐 평가함. 출처: Interreg TransBioFruit project 2008–2014).


그림2 기생성 말벌의 알을 가득 지고 있는 박각시나방의 애벌레. 출처: https://harvesttotable.com/parasitic-wasps-beneficial-insects/

 

그림3 진딧물이 있다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무당벌레.

 

 

그림4  농경지의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생태계의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조치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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