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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디서 본 글인지 아시겠나요? 네, 바로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길들임(domestication)은 농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지난 4월 “농사잡록” 첫 연재의 제목은 “식물을 길들이는 인간”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인간이 식물을 길들이는 방법, 즉 다양한 육종법과 그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지요. 우리 인간은 야생의 식물을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작물을 탄생시켰고, 그를 이용해 농경 사회를 구성하며 지금과 같은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야생의 식물을 작물로 변화시킨 결과는 너무나 놀랍습니다. 오늘은 훌륭한 정보도(infographic)와 함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옥수수입니다. 여러 유전학자와 식물학자, 고고학자 들의 노력으로 옥수수의 조상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던 약 9000년 전의 테오신테라고 밝혀지게 되었습니다.초기의 농민들이 이 식물을 길들이게 되면서 매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지요. 아래 정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크기에서는 19mm에서 190mm로 10배 정도나 확대되고, 껍질을 벗기기는 쉬워져 수확하기 좋게 되었고, 빛깔과 품종의 숫자도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그림1 옥수수의 변화상>





<그림2 시간에 따른 옥수수 자루의 크기 변화>


<그림3 테오신테와 현대의 옥수수>





두 번째는 복숭아입니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이 과일은 약 4000년 전의 씨앗이 발굴되어 분석한 결과, 크기는 25mm 정도이고 씨앗이 전체의 36% 정도를 차지할 정도였으며, 3가지 품종이 존재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현재는 과거에 비해 크기는 4배로 커지고, 먹을 수 있는 부분도 90%에 달할 정도로 확 바뀌었습니다.




<그림4 복숭아의 변화상>


<그림5 중국에서 발굴된 약 250만 년 전의 복숭아 씨앗 화석>


세 번째는 수박입니다. 아프리카 남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수박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널리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야생의 수박을 보면 이게 과연 수박이 맞는가 할 정도로 작고 씨앗만 큰 모습이라, 인간이 작물로 길들인 효과가 얼마나 큰지 절감하게 됩니다.



<그림6 수박의 변화상>



<그림7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Giovanni Stanchi가 그린 유화에 등장하는 수박의 모습. 당시에는 진귀한 먹을거리를 그림에 넣음으로써 자신의 부와 명성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림8 수박의 대명사 무등산 수박의 모습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수박과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더 원형에 가까운, 즉 야생성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주식 벼를 살펴보며 마칠까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야생에서 자라는 이 풀의 씨앗을 먹으려고 생각한 건 누구인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 수없이 많은 농민의 손을 거치며 지금과 같이 풍성한 이삭을 가지게 된 벼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9 야생 벼(왼쪽)와 현대의 작물화된 벼(오른쪽) 비교. 가운데는 벼잎에 있는 기동세포의 차이를 보여준다. 기동세포는 벼잎에 물이 모자라면 쪼그라들어 주변의 잎을 당겨서 잎이 돌돌 말리게 하여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길들여 온 씨앗을 생각하면서 아래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세요. 의미가 또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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