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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5




기고3

인간의 행위와 자연의 경계선

앤 맥도널드






자연이 그린 구역


안개에 쌓인 다락논. 그것은 고뇌의 빛을 띤 풍경이었다. 그 고뇌의 표정 아래에 있는 것은 슬픔, 절망, 그리고 뱃속까지 울리는 공포 …… 눈앞에 펼쳐진 안개에 앞을 내딛는 발을 멈추었다. 안개의 막이 그 건너쪽과 이쪽을 구획짓는 경계선처럼 느껴져, 그것을 밟고 넘어보자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 동시에 발을 내디디지 않는 나도 있었다. 그 "자연이 그린 경계선"을 밟을까 밟지 말까 망설이면서 안개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다락논을 보고 체험한 "산간지형 벼농사 풍경".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기억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이 1982년 늦봄의 일. 뼛속까지 시린 보슬비 속, 나라의 농촌을 여행한 뒤, 와카야마현으로 향하고 있던 나는 굽은 등뼈 같은 좁은 길을 빙글빙글 돌아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검은 그림 같은 풍경의 안으로, 깊숙이 빠져 가는 느낌이 들고, 빛이 닿지 않는 숲을 뒤덮은 안개가 응축되어 서서히 무겁고 짙어졌다.


북미 대륙의 평원 지대를 떠나 동양의 섬나라로 날아와 얼마 안 된 즈음이었다. 동양의 산길을 걸으면 끝없이 펼쳐진 360도의 평원 지대의 하늘에서 온 나는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평선까지 대지를 뒤덮은 것처럼 보이는 보리, 밀, 채종밭의 경치는 매우 개방적이었다. 또는, 그 개방감은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대륙에서 태어나 자란 나의 신체에 물들어 있던 자연관일지도 모른다. 대륙의 자연은 평탄하게 펼쳐지고, 하늘이 낮게 떠 있는 듯이 느껴진다. 


한편, 산림 지대가 많은 섬나라 열도에 그려져 있는 공간은 다양하다. 또,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여러 가지이다. 자연계가 그린 선, 그에 대하여 인간이 여러 개의 선을 더하는 것이다. 





환경역사학에서 보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

 

때로는 내부 자연관이 경관에 대한 공감을 어렵게 만든다. 안개에 싸인 다락논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인은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지만, 그 풍경에 아름다음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여운이 있는 공포 -급경사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한 배미 한 배미의 논 뒤쪽으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돌담이 비틀비틀하게 있다. 왜인지 그 경관이, 뒤따라 붙은 과거를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농산촌의 여행을 나와 함께 한 일본인은 생사의 애달픔을 자연에 비유했다 -찾아오자마자 가버린 봄,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고요하게 춤추며 흩어지는 벚꽃. 자연에 대한 감동과 감명에는 보편성이 있는 반면, 가지고 태어난 자연관의 차이가 드러나는 일도 있다고 느꼈던 어느 날.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과 풍토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행위가 거미줄처럼 느껴진다. 자연과 인위 -교차되는 실이 이중성의 모자이크를 만든다. 자연계가 인간의 행위를 만들고, 그리고 인간의 행위에 의해 변하는 자연도 있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이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인류 문명의 시작이라고 이야기되는, 길가메시 전설의 무대이기도 한 현재 이라크의 수메르에서는 '숲의 원정'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림 파괴라고까지 말하는 목소리도 있음- 이야기가 있다. 수메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문명이 흥하여, 정착형 인간사회로 차츰 흙에서 떠나게 된 인간들. 그들 도시주민의 생활기반을 지탱해 가기 위해, 시계로부터 멀리 있던 자연계가 아무 말없이 변하여 간다. 그리고 비농업자의 식량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농업의 산업화가 진행되고, 그 변화가 다시 도시화에 박차를 가한다. 직접적인 반응(다이렉트 피드백)이 존재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즉 인위적활동이 자연계에 미친 영향이 직접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돌아오는 관계와 비교하면, 도시형 사회에서는 자연과의  인연이 희박해지고, 어느 의미에서 잘려 버린다. 도시화와 농업화에 의하여 인간과 자연계의 사이에서 이중의 선이 그어진다. 사람들에게 식량의 안정적 공급. 물론이지만,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생명을 지탱해 가기 위한 식량 획득은 환경이나 정치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기술혁신이 촉진되어, 식량의 생산량과 생산지는 확대된다.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인간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하여, 인간이라는 생물은 꽤 만만치않았다고 인류사를 바라보면 생각하는 것. 다습한 초원을 변신시킨 간척사업, 하천의 흐름을 바꾸는 관개용수와 댐 조성사업 등 자연의 모습을 착착 바지런하게 바꾸어 왔던, 그것이 "인간자연사人間自然史"이다.




토쿠가와德川 시대


과거를 더듬어, 토쿠가와 시대를 예로 들어 보겠다. 1600년부터 1720년, 120년 동안 개간에 의해 농지가 대략 배가 되었다. 면적으로 말하면, 150만 헥타르에서 297만 헥타르로 늘었다. 쇼나이圧内 평야에서는 당시의 수공학 기술을 최대로 활용해 아카가와赤川의 흐름이 바뀌었다. 면적으로 보면, 1650년까지 5000헥타르의 다습한 초원이 논으로 변하고, 더구나 그 증가 면적은 1750년에는 8000헥타르, 1870년에는 9600헥타르까지 이르렀다. 쇄국 시대 일본은 순환형 사회라고 이야기되는데, 열도의 국민에 대한 식량 공급을 위해 자연이 그때까지 그렸던 선을 새롭게 다시 그은 것이 확실하다. 


논은 아시아의 원풍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언제부터 원풍경인 것인지 때때로 생각하곤 한다. 쇄국이었던 토쿠가와 시대. 지정학적인, 사회적인 등과 같은 경계를 만들고, 다차원적으로 안과 밖의 선을 그었다. 국내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사이에도 선을 긋고, 출도出島라는 문에 다른 나라와의 교차점이 정해졌다. 누구라도 인식하고 있는 일본의 과거. 잠깐 보아 사람과 사물의 흐름을 제한한 것 같은데, 그러나 저류에서는 사물의 움직임도 있었다.


간척사업이 성행한 토쿠가와 시대와 동시기에 타이완에서도 사람의 손에 의한 자연 변신이 실행되었다. 이들은 타이완의 선주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의 손이 뒤얽혀서 일어난 자연 변신이었다. 향신료 무역경쟁에서 출발이 늦었던 네덜란드가 타이완에서 요새를 열다섯 조각의 인도 천으로 "구입"한 거래가 시작이었다. 그뒤 네덜란드인은 타이완의 자원을 무역재로 쓰고, 그리고 요새를 지키는 군사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집약적 농법을 도입했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존재하고 있던 자기완결적인 생계가 대규모 단작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밭농사를 중심으로 한 집약적 농법이었기 때문에, 주식이 되는 쌀은 일본에서 구입했다(타이완에서는 그때까지 보리와 토란을 주식으로 삼고 있었는데,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네덜란드인은 거래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타이완의 사슴가죽과의 물물교환에 의하여 일본으로부터 쌀을 손에 넣었다. 당시 타이완산 사슴가죽은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사용하기 편하며, 젖어도 줄어들지 않는 점 때문에 무사와 상인 사이에서 인기였다. 


타이완에서 네덜란드 요새의 시대는 1662년에 막을 내리고, 37년 동안의 통치 기간에 대략 9800헥타르의 원생림을 시작으로 하는 타이완의 원풍경이 집약적 농법 때문에 밭과 논으로 변했다. 그리고 식량 공급을 비롯해 무역을 위하여 163만8000매 이상의 사슴가죽이 타이완에서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토쿠가와 시대의 막이 내리려 할 때, 타이완의 사슴은 절멸의 위기에 빠지고 개간 면적은 60만 헥타르가 되었다. 


쇄국을 하던 토쿠가와 시대는 순환형 사회였다고 이야기된다. 세계에서 영토를 확대해 각지의 자원을 착취하던 제국 시대의 유럽과 국경 없는 지구적 시대라고 이야기되는 헤이세이의 일본과 비교하면, 확실히 순환형 사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쇄국 순환형의 토쿠가와 시대"와 "식량을 비롯해 사물의 자급률이 낮은 국경 없는 지구화의 헤이세이 시대"로 명확히 대립시켜 버리는 것에 나는 위화감이 있다. 국내에서는 간척과 관개 사업이 행해지고, 또 쇄국이라고는 말하지만 간접적으로 타이완의 사슴을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나타데코코, 새우 등의 식량 소비가 다른 나라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으며, 토쿠가와 시대가국경 없는 지구적 시대의 선두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에서 보는 안개


더욱 과거를 더듬어, 다락논을 우리들의 손으로 만든 키이紀伊 반도의 사람들은, 다락논을 떠도는 안개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 답은 자연계를 표현하는 기상, 계절, 그 고찰을 언어로 한 고전문학 안에서 살피고 있다.


안개와 일본문학. "계절과 연정은 일본 고전문학의 요점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막을 올리는 <문예기상학>에 대한타카하시 카즈오高橋和夫 <일본 문학과 기상>(중앙공론사, 1978)은 안개란 단순한 대기의 운동으로 인한 여러 현상의 기상 가운데 일부가 아니라, '인간이 토하는 숨'이라고 말을 걸고 있다. 게다가 <문예기상학>에 대하여 타카하시는 "기상이 인간의 물질생활이란 면만이 아니라, 인문적 생활의 면에서도 과거부터 현대까지 풍부한 문화를 탄생시킨 중요한 대상이자 계기가 되었단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고전 작가들은 바람의 움직임, 구름의 흐름, 초목의 성장에도 예민하게 느끼고, 그것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 과거 사람들의 마음을, 현대 기상학의 기초적 분야의 성과에 근거하여 지금의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자연 안의 인간"을 재발견하고, 문예창작의 비밀을 밝혀 나아가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문학이 남겨준, 자연 안에 있는 인간의 모습. 자연관, 자연의 자리매김, 인간의 자리매김도 포함하여 자연과의 선이 어떻게 그어졌던 것인가? 그 힌트가 만엽집 안에 있다. 야마가미 노쿠라山上憶良는 기상현상의 하나인 안개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오노야마大野山 안개 자욱히 낀다 내가 한숨지은 숨결의 바람에 안개 자욱히 낀다"(799)


기상 단어와 생명의 표현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 만엽의 '안개'. 이누카이 타카시犬養孝의 <만엽의 풍토>(塙書房, 1971)의 대략 수를 참고로 하면, 만엽에는 '안개'가 80단어 포함되고, 노래 수로 하면 77수. 그들을 지역별로 보면, 동일본은 없고 모두 서일본의 노래이다. 70년대의 기상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만엽가의 무대가 되는 '나라'는 현대의 일본에서도 안개가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단순한 가인의 공상이 아닌 듯하다.


만엽 가인이 자연현상에 오감을 기울였다고 상상하는 것은 나의 상상일 뿐일까? 자연이 드러낸 자연현상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은 주관적이고, 또한 헤아리기 어려운 무형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과 인간의 접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개의 내부 자연관의 기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 나를 놓을 것인가, 아니면 자연계의 위에 나를 놓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자연자원 이용의 방식을 결정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


사람들과 자연계의 경계선 -사람들이 자연계와 선을 긋는 일도 있다면, 때로는 자연계가 인간과 선을 긋는다. 홋카이도부터 큐슈까지 다이하츠사의 미제트에 타고 흔들흔들, 하늘하늘 하며 해안을 따라 돌기 시작한 지 11년이 지났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살고 있는 "바닷사람"이 어떻게 해양이라는 자연계를 보는지, 내륙에서 살고 있는 "육지사람"과 다른 자연관을 가지는지 어떤지, 그 탐구를 위하여 제멋대로 여행(현지조사)을 위해 작가이자 카메라맨인 故 이소가이 히로시礒貝浩와 나갔다. 2009년에는 일본이라는 네 개의 섬의 80%까지 돌았다. 그 여행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태풍의 계절이다. 자연이 그린 선, 경계에 민감한 바닷사람. 비바람으로 거칠어진 난바다, 폭풍과 폭우의 난바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맹위를 떨치는 강대한 파도. 자연계가 '이 이상은 출입금지'라고 선언하고 있는 듯하다. 숨을 곳을 육지에서 구하는 성질이 있는 인간은, 이러한 때에는 자연의 경고에 순순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자연계가 그은 선을 무시하는 사람의 행위도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과학기술. 기술개발, 그 획기적인 최신 기술 도입에 의하여 '생태적 혁명'이 일어나면 환경역사학자인 머천트Merchant 씨는 경종을 울린다. 즉, 과학기술혁신이 일으킨 인간 사회와 자연계의 관계 붕괴. 자연계가 그은 경계를 넘은 영역까지 인간의 행위가 걸음을 내디디고, 보전형 자원 이용에서 멀어져 감으로써 인간과 자연계의 관계에 새로운 선이그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홋카이도 시레토코知床 반도 라우스羅臼에서 잿빛으로 물든 해질녘이었다. 영하 19도 속에서 난바다로 가는 명태 어선에 탔다. 흘러오는 유빙을 부수면서 명태잡이가 행해진다. 예전부터 유빙의 계절에는 자연이 바닷사람에게 '육지에서 잠깐 쉬어라' 하고 말했다고 목선 시대를 살았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플랑크톤을 비롯한 영양을 날라오는 유빙은 그 바다에 영양을 주고, 일종의 해양 충전기, 해양생명에게 필요한 보식의 시기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선과 어구, 어업기술의 혁신이 그 잠깐 쉼을 없앤다. 맑아도, 흐려도, 눈이 오더라도 충전하고 있는 유빙을 부수고 난바다로 나간다.


맑은 날에는 쿠나시리国後가 보이는 시레토코 반도 라우스인데, 그날은 드라이아이스의 흰연기처럼 안개의 벽이 세워져 섬의 모습이 감추어졌다. 그 안개 속을 가는 어선이 인간이 그은 바다 안의 지정학선, 즉 국경을 허가 없이 넘어서는 일은 간혹 있는 듯하다. 기름값조차 나오지 않는 고기잡이가 계속되면, 이 "불혹의 국경 넘음"은 어부를 유혹한다고, 고요한 목소리가 말했다. 목표로 한 물고기와, 인간이 그은 선과. 다른 자연의 선이 교착하는 안을 간다. 


국가들이 그은 선, 개개의 어장을 정하는 선, 어종과 고기잡이철을 정하는 선, 육지의 위에서 정해진 여러 선이 바다 위에서 교착한다. 인간에 의한 국경선, 자연계가 정하는 국경선, 그들의 선 안에서 살아가는 지구이지만, 국경 없는 시대, 즉 선이 없는 시대를 이념으로 하는 지구도 있다. 


국경을 없애자는 움직임과 평행하게, 국경을 재구축해 가는 지구 사회. 현대만의 경향인 것 같다고도 생각할 수 있고, 인간사에서 반복되는 경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자연의 선 긋기에 여운이 남는 파도를 일으킨다. 그러한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학제적인 학문을 지향하는 보더 스터디즈border studies가 80년대에구미의 국경 지역에서 생겼다. 국경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리고 싶어 하는 유형의 국경(visible borders, 예를 들면 지정학선)과 무형의 국경(invisible borders, 예를 들면 정신적 선과 의식적 선), 또한 경제적 선, 문화사회적 선이 거미집처럼 실을 뽑는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국경을 인식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행위, 특히 그 노동과 타인, 타국, 그밖에 여러 생물과의 관계에 대하여 인식을 깊게 하기 위한 학문 추구가필요해지고 있다. 


태풍 18호가 지나간 직후, 이토 반도의 해안을 걸었다. 태풍에 의해 육지와 바다의 선이 새롭게 그어진 것처럼, 해안을 따라 난 길은 모래와 해조로 뒤덮였다. 태풍을 비롯한 이상기후 현상의 빈도가 확실히 높아졌다고 하는 의론은 차치하고, 2009년 아시아를 통과한 태풍이 할퀸 자국은 심하게 느껴진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행위가 선을 자근자근 그어 가고 있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계 사이의 선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예전부터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던 기후변화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달갑지 않은 현상이라 간주하게 되었다. 빙하가 녹음으로써 육지에 그어진 지정학적 선에 대한 영향이 일어나고,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며, 바다와 육지의 선도 변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 가져오게 될 자연 변모는 어떠한 선 긋기를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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