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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3




기고5

낟알 문양의 유라시아

-'고대 유럽'과 '고대 중국'의 토기 장식에 들어간 법칙

츠루오카 마유미鶴岡眞弓






한자의 '穀'은 '단단한 껍질을 붙인 낱알 모양의 열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다'의 뜻, 또한 '(무엇을 먹으며) 살아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살아서는 집을 달리하나, 죽어서는 무덤을 같이한다(穀則異室, 死則同穴)'(<시경>)고 노래도 하여, '穀'은 '死'와 대조되었다. 서양 기독교에서 '한 알의 밀'(요한복음 12장)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몸소 몸을 바친 '희생'을 상징했다.


이처럼 인간은 동서를 막론하고 작은 곡물의 알에 생명과 죽음과 희망을 겹쳐 응시해 왔다. 신석기시대부터 농경민이 왕겨의 곁에서 만들어낸 조형/표상을 방문하면, 그 관념은 농경의 시작할 때부터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고에서는 농경이 시작하기 전 7000년 무렵의 '고대 유럽'의 여신상에 나타났던 '낟알 문양'을 방문하려 한다. 또한 그에 대응하는 여러 토기 문양을 만든 '고대 중국'의 양식과 유사한 점도 이어서 소개하고,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연/시간의 '율동'에 달라붙어 있는 의식에 관계해 왔는지를 찾아보려 한다.


그러면 가장 처음으로, 유럽 제일의 '농민 화가'의 눈을 머리글로 시작하겠다.




농부가 새긴 율동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의 북방 유럽. 플랑드르 지방에 '농민의 화가'로 알려진 피터 브뤼헐Pieter Brueghel이 있었다. 상업도시 안트베르펜의 화가조합원이었지만, 깊은 친밀감을 보듬으며 '농목의 모습'을 그렸다. '춤추는 농민'의 그림이 잘 알려져 있지만, '자연의 시간과 인간' '식량과 인간'의 관계까지를 투시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게으름뱅이의 천국'(1567년)에서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뚱뚱한 남자들(서기와 전사와 농민)의 머리 위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사라센 가루의 파테와 돼지 통구이를 그려 결핌과 풍요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인간을 풍자했다. '농민의 결혼식'(1565년)의 잔치에서는 인간보다 호밀빵과 요리를 주역으로 하면서 먹을거리가 텅 빈 그릇의 산도 암시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설교풍과는 거리가 멀며 시선을 낮추어 농목의 시공관을 실감적으로 전하여, 현대인의 눈도 끌어당겨 마지않는다. 그러고 보니, 저 타르코프스키 감독도 '혹성 솔라리스'에서 유일하게 체온이 통하는 '지구'를 기억시키는 '그림'으로 브뤼헐을 등장시킬 정도이다. 


브뤼헐의 작품은 만연히 농업과 농민, 농촌의 풍경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작음을 비웃는 풍자화와도 분명히 구별을 지어 호소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생명의 론도를 연주하는 '시간'으로 '자연'을 파악하여 그 '시간=율동'에 대한 의식을 농민화에 담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의미에서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풍경'(1556-1558년 무렵)은 전형적이다. 소에게 쟁기를 끌게 하고, 묵묵히 쟁기질하는 농부가 앞에 크게 그려져 있다. 배경의 푸른 바다에는 날개를 달고 너무 높이 날다가 태양의 열을 많이 받아 추락하는 그리스 신화의 '공인' 이카루스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해변에는 세계를 연결하는 훌륭한 '상선'이 바야흐로 출항한다. 그러나 '농부'는 그들의 일을 신경쓰지 않고 담담히 농지에 쟁기를 넣는다. 옆의 벼랑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양떼와 '목동'도 있다.





이 그림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목동(양치기)와 농업(농부), 상업(배)와 공업(공인, 이카루스)를 둥근 지구의 수평선을 도는 시계처럼 배치하고, 인류문명을 내려다본(공인=인공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낙하라고 함) 예언의경구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주인공은 농부, 농업이고, 단순한 경구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농부'는 이카루스의 비약적인 기술 같은 곡예를 행할 수 없으며, 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간의 곁에서 다양하게 궁리는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이 '우주와 자연의 시간'에 '참가하는, 보조를 맞추는' 노동이다. 미래를 과도하게 조종하기 위해 교묘한 기술을 구사하여 자연/시간을 앞질러 '극복하는'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곁에 있고, 인간이 직접 손을 댈 수 없는 성스러운 것, 경이에 속한다는 것을 브뤼헐의 농부는 무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새겨둔 쟁기의 자국은 우주와 자연이 산출한 '율동'을 대지에 전사하는 몸짓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율동이 곡물의 생명을 태동시켜 성장의 리듬으로 끌어올린다는 기도가 농부에게는 있다. 그가 과묵한 건 그 율동을 듣고, 지상에서 몸소 그 리듬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왜 브뤼헐은 르네상스 시대에 '농업'을 그렸을까? 그야말로 근대의 경제 체계가 뛰어나가는 도시에서 인간의 르네상스에 입회해 있었다. 그는 지금 기술한 농경적인 시간 의식을 인가노가 자연이 맞서 싸우는 팽팽한 이 역사적 지점에서 전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그림 속에서 밀랍으로 고정시킨 날개에 의하여 인공의 법칙을 만들어내고, 시간을 빠르게 하려 했던 사람이 화려하게 추락한다. 그러나 그 모양과는 반대로, 옆에서 수천 년에 걸친 농경의 리듬을 담담하게 새기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앞의 풍경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와 쟁기를 끄는 소의 걸음은 자연에 속하는 시간을 듣고 있는 모방일 것이다.


그럼, 선사 농경사회에 태어난 갖가지 조형 표현이야말로 그러한 생명과 자연/시간의 의식을 표시하려 한 예술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 관념을 가장 잘 전하는 토기에 묘사된 '조형 언어' '문양'이 그것이다.




고대 유럽의 여신상과 '낟알 문양'


유라시아 세계의 동서에 그 가장 오래된 작품의 예를 찾으면, 분명히 서쪽에서는 '고대 유럽'의 여신상 토기이며 그곳에서 뚜렷한 '낟알'의 장식을 알아차릴 수 있다.


대저 '고대 유럽'이란 리투아니아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신화학자인 고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가 이름을 붙여 친숙해진 신석기시대 최초 시기의 유럽 농경문명이다. 기원전 7000-6500년 무렵에 시작되어 인도=유럽어족의 문명이 '침입'한 3500년 무렵까지 이어지고, 그뒤에도 크레타·뮤케나이 문화에 저녁놀을 비추었다. 범위는 남동 유럽, 곧 도나우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남쪽은 에게해, 북쪽은 우크라이나 서부 드네스트르강에까지 걸친다(김부타스 1989). 


상세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이 문명은 이른바 4대문명보다 오래된 점이 주목된다. 최초 시기의 농경사회의 흔적은 에게해 연안과 발칸 반도에 잘 남아 있으며, 몇몇 지역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점에서도 그 유물의 변화가 풍부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에게해 연안의 그리스에서는 테살리아 지방의 볼로스에 가까운 세스클로의 마을 터에 연관을 시켜 '원세스클로 문화', 옛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베오그라드 동쪽의 표준 유적에 연관을 시켜 '스타체보Starčevo 문화', 또 남동부에서는 '케레스 문화'(루마니아 서부에서는 크리시 문화)라고 불렀다. 이들을 포함하는 문화 복합은 마케도니아, 옛 유고슬라비아 남부와 중앙부, 루마니아 동부의 몰도바에까지 미치며, 도나우강 중류 지역의 남쪽을가로질러 흐르는 바르다르강과 라바강의 유역에까지 미친다. 따라서 이 한 덩어리의 문화를 '에게해와 중앙 발칸의 신석기 문화'라고 부른다. 


이 에게해와 중앙 발칸에서는 밀과 보리, 렌즈콩, 살갈퀴가 재배되고, 양과 산양이 가축으로 가장 많이 사육되었다. 이것은 온난하고 건조한 에게해와 동지중해 지방의 특색이며, 이 농경 문명의 기본 패턴이 도나우강 중류 지역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곡물의 귀중함이 토기의 문양에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이 고대 유럽 전체의 풍부한 토기상 가운데 김부타스가 '다산 여신'과 '식물 여신'이라 이름을 붙인 기원전 5000-4000년대의 작품 예이다. 여신의 가슴과 복부, 하반신에 집중적으로 '낟알'을 누른 상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뱀' -동아시아에서도 '논의 신'인데 옛 유럽에서도 '물'에 관계되는 신- 을 표현한 뱀 모양의 소용돌이 문양과 '농지'를 암시하는 사각, 삼각, 격자, 줄무늬 등의 기하학 형태의 안팎으로 실물의 낟알과 씨앗을 강하게 꽉 누른 흔적이 아름다운 점 문양을 이루고 있다(그림2).


그림2 고대 유럽 여신상의 '낟알 문양'(김부타스 1989에 의함). 몰도바, 원 쿠쿠테니 문화, 기원전 4000년대




여신의 복부와 하반신을 식물과 먹을거리가 산출되는 '대지'와 '농지'라고 간주하고, 낟알을 '파종하여' 접촉과 끼워넣기를 행하는, 곧 풍년 기원의 형상화를 한 표현일 것이란 점은 의심할 수 없다. 


또한 이 매우 오래된 문양 중에서는 예를 들어 한자의 '米'의 형상을 꼭 닮은 문양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米'의상형은 대지를 田이란 글자로 본뜨고, 사방에 작은 쌀알이나 씨앗을 배치한 모양인데, 고대 유럽, 기원전 5000년대의 테라코타 여신상(전 유고슬라비아, 빈차Vinča 문화의 작은 상)에도 똑같은 모양을 볼 수 있다. 작은 한 알에 의미를 빌려 나타내는 행위는 고대 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널리 퍼졌다. 농업의 시작과 함께 기르던 곡물의 종류는 달라도 유라시아를 종횡으로 전도하듯이 멋진 공진을 보여주고 있다(그림3).


그림3 고대 유럽 여신상의 '십자와 낟알 문양' '소용돌이 문양'(김부타스 1989에 의함) 드네스트르강 상류 지역, 원 쿠쿠테니 문하, 기원전 5000년대 후반




이 시점에서 이번에는 유라시아 세계의 동쪽을 살펴보면, 선사 중국의 앙소문화의 장식 토기(기원전 3100-2000년)에도 원의 안에 田 자를 새기고, 거기에 한 알씩 점을 장식한 문양을 볼 수 있다(그림4). 다시 돌아와 고대 유럽을 보면, 이 문양을 지닌 원이나 소용돌이의 연속 문양이 김부타스가 발견했던 토기의 표면에서도 풍부하게 볼 수 있다. 이 고대 유럽 토기의 문양에 대조되는 중국 신석기시대의 토기 문양은 헨체 들에게 더 주목되어 왔지만, 일본에서는 비교연구가 아직 착수 단계이다(앞에서 든 김부타스 1989 권말, 대조도상군 참조).


그림4 채문 토기 선회문 전개도(張 1990에 의함) 마가요 문화층·앙소문화, 기원전 3100-2000년




이 비교는 문양에만 그치지 않는다. 초기 유라시아 농경사회의 곡물 재배를 지탱했던 '생명의 시간'이란 관념에서도, 동서 지역의 공통성은 나타난다. 어떻게든 중국에서는 -예를 들면 마가요 문화에서는- '낟알문양 토기'라고부르는 것이 있다. 씨앗과 새싹의 도상을 매개로 '인간'과 '작물'의 생명을 동체/동태적으로 표현한 문양이 나타나고 있다. 


고대 유럽에서도 '낟알 문양'과 토기 여신상은 일체였다. 그리고 저장과 요리와 제사를 위한 그릇과 그 형태는 대지에서 태어난 곡물을 비축하는 풍요로운 곳간으로 관념되었다. 그와 동시에 토기는 켈트 신화의 '다그다Dagda의 커다란 솥'이 잇따라 죽을 보내듯이, 무한의 먹을거리를 '낳는' 풍요다산 여신의 '모태'라고 간주되었다. 유라시아 동서의 농경과 토기의 문화는 이러한 오래된 조형 표현에 의하여 울리어,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낟알 문양이 있는 여신상이었다.


또한 '고대 유럽'과 '고대 중국'의 토기에는 조응하는 도상이 있다. '뱀' '개구리' '농지' 외에 '물' '빗물' '비구름'의 문양으로, 이들은 모두 '태어나는 것' '기르는 것' '재생하는 것'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두 문명은 놀랄만큼 비슷한 모양으로 이들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경제형태는 다르지만 '고대 유럽'과 시간적으로 병행하는, '고대 일본'의 조몬 토기도 장식과 모태관념에서 비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이 세 문명의 풍부한 토기와 그 장식 표현을 서로 대조하면, 수천 년의 기간 동안 영위된 '문양의 유라시아'라고 할 만한 표상체계가 새겨지는 게 틀림없다. 


여신의 모태, 곧 대지 위에 '곡물의 알과 씨앗을 장식하는' 행위가 오래전 유라시아의 동서에 있었다. 그것은 '생명 시간'의 한계가 없는 지속을 염원하는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성장과 증식의 '시간'이 고갈되지않도록 바라며, 그릇 안에 저장된 곡물과 공진하듯이 낟알 문양을 장식했다. 즉 문양이란 시각적 '비유'가 아니라, 생사와 맞서 싸우는 나날을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의 생의 실감이자 실천이었던 것이다.





눌러진 율동


한편 '문양'은 농경자가 염원하는 그러한 생명 시간의 '율동'의 표현에 관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양의 모양에 '규칙성'이 인지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대 유럽의 토기에서도 표현된 낟알 문양과 기하학 문양은 그 시작부터 그래픽하게 시각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토기에 직접적으로 '누르는' 방법으로 '표시된', 플라스틱하게 촉각적으로 조형된 것이었다. 이것은 조몬토기 문양의 복원에서 뚜렷하게 확인되는 가식加飾 기법이기도 하다. 새끼줄 매듭의 문양은 토기 표면에 꽉 누르면서 회전시켜서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손이 점토에 압력을 가하고, 그렇게 가해진 문양을 주시하고 있던 시간이 일본 열도에서 수천 년 이어졌다. 그것은 그뒤의 역사 시간이 매우 미치지 못하는, 농후한 '누름과 율동'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브뤼헐이 묘사한 농부의 쟁기처럼, 자연에 대하여 무언가를 표시하는 그러한 압력을 요한다. 이 경험은 생명적 신체에 받는 느낌을 가져올 것이다. 곧 얼핏 일체 사물의 주변에서 잉여로 발생한다고 간주되기 쉬운 '장식'이야말로, 세계와의 접촉을 최초로 표시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었다. 


표의문자이든 상형문자이든, 기호와 문자와 문양은 세계를 '누르는=표시하는' 손발을 가지고 가능해진다. 고대 유럽의 낟알의 점 문양은 곡물과 씨앗을 '여신의 몸'인 '토기', 곧 '대지'에 꽉 눌러 그 느낌의 한가운데에 성장이란 생명의 '법칙'도 표상할 수 있었다. 그 느낌을 확실히 하고자 농경사회는 수천 년에 걸쳐 변하지 않는 '문양'을 계속 눌러 곡물의 한 알 한 알을 표현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농경사회'와 '문양 표현'의 관계는 구석기와 신석기의 여신상을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다. 구석기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도, 신석기시대의 고대 유럽의 다산여신상도 가슴과 엉덩이의 통통함에서는 언뜻 보기에 똑같은조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대자연의 다산이 관념화되어 있어도 세세한 장식성은 띠고 있지 않다. 장식성은 대지를 밟고, 쟁기질하고, 새기고, 괭이질하여 생명을 기르는 일부터 추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단계가 되어서 단숨에 풍부해진다. 농경사회에서 여신상 몸의 낟알 문양은 자연과 인간의 사이에 세세한 친화성을 가져왔다.그것은 농경자의 귀에 속삭이는 더욱 명료한 '여신의 언어'(Gimbutas 1989)가 탄생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대 유럽의 토기는 씨앗부터 '싹을 불기 시작하는' 과정을 더듬는 듯한 '소용돌이 문양'을 여신의 몸에 두르고 있다. 이것에 호응하여 신석기시대의 중국에서는 '곡종아각채문穀種芽角彩文'이라 부르는 토기가 있다. 씨앗을 뚫고 얼굴을 내민 아기의 도상이 식물과 일체가 되어 있는 표현으로, 아기의 얼굴은 모태=대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그림5). 고대 유럽의 여신상에 표시된 문양에도 통하는 관념이다. 


그림5 인면 돋을새김, 곡종아각채문 토기(陸 2001에 의함) 마가요 문화층·앙소문화





이처럼 유럽부터 중국에 이르는 선사 농경문명의 '문양'을 관찰하면, 거기에는 씨앗과 싹부터 수확의 낟알까지를세심히 주시했던 농경민의 눈이 있으며, 또 생명 시간의 리듬을 들으려고 한 그들의 귀, 청각이 있다.  수천 년이나 들려 왔던 그 자연의 리듬은, 그러나 어느 사이에 인간의 시간으로 전환되어 나아가게 되었다. 근대 경제 체계가 자연에 속하는 시간을 앞지르고, 인간의 율동이 도시를 번성하게 하는 시대, 르네상스가 찾아온다. 사람은 대지=생명으로부터 생명을 산출하는 농업이 아니라, 근대의 증식생명인 통화가 돈을 낳는 체계로 매진해 나아간다. 


브뤼헐이야말로 상업과 금융업의 도시 안트베르펜의 화가조합에서 활용한 도시인이었다. 그러니까 농부의 쟁깃날로부터 각인되는 율동에 매료되었다. 그 증거로 서두의 그림(그림1) 안에서는 '공업, 공인 이카루스'가 화려하게 바다로 추락해도 아무도 그것을 보고 있지 않다. 놀라지 않는다. 다만 언덕 위에서 농업의 율동이 묵묵히 '문양'처럼 누르며 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이 그림에서는 근대인의 손바닥에서 잃어버린 촉감과 정적静寂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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