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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2



3장

화전과 벼농사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벼농사를 추구하며     카와노 카즈아키川野和昭




시작하며


'화전과 벼농사'의 조합을 제시한 찰나에, 일종의 위화감을 느껴 버리는 것이 자연스런 감정일 것이다. 그건 일본열도의 '화전'이 '잡곡과 뿌리작물'의 농경이고, '벼농사'는 '논벼농사'의 농경이라 상식적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벼농사 문화권'이라고도 불리는 공간적인 퍼짐새 안에서 이해한다면 '일본 열도'라는 한정적이고 매우 지역적인 상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즉, '벼농사'를 '작물인 벼의 재배농법'이라 생각한다면, '논에서 하는 재배'만이 아니라 '화전에서 하는 재배'나, 더 나아가 '밭에서 하는 재배' 또는 '화전 같은 논과 천둥지기에서 하는 재배' 같은 다양한 재배를 시야에 넣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열도에서 그러한 '벼농사'에 대한 비극적인 오해가 생긴 건, '논벼농사'로 획일화되어 온 정치적, 역사적 경위가 있다. 그와 동시에, 역사학을 시작으로 민속학이나 고고학 등 인문과학 분야의 연구도 오랫동안 '논벼농사 사관'이라고도 부르는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점과 관계가 없지 않다. 


다만, 그러한 안에서도 일본 열도의 '벼농사'에 관해서 '논벼농사'를 넘어 화전과 밭농사, 천둥지기논의 벼농사도 논의되어 왔다. 예를 들면, 조엽수림 문화를 계속 제창해 온 사사키 타카아키 씨는 조몬문화 안에서 화전 내지는 두둑과 고랑을 수반하지 않는 천둥지기논에서 하는 벼농사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민속학의 츠보이 히로후미坪井洋文(1929-1988)는 화전과 덩이뿌리와 붉은쌀을 핵심어로 삼아 '논벼농사 문화' 외에 '화전, 밭농사 문화'의 존재를 설명하고, 다양한 일본 문화의 모양을 주장했다. 그리고 사토 요이치로 씨는 농학의 입장에서 휴경을 수반한 밭농사의 요소가 강한 벼농사의 존재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다양한 의론을 근거로 하면서 '일본 열도의 화전과 벼농사', '라오스 북부의 화전과 벼농사'를비교하는 형식으로 '논벼농사'를 상대화하고, 다양한 '벼농사'의 모양을 살펴보겠다.





일본의 화전과 벼농사


일본 열도에서 화전 벼농사에 대한 사례 보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겨우 화전 기술로 재배하는 밭벼에 대한 기술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건 19세기 초 무렵에 사츠마번이 편찬한 농업전서의 성격을 지닌 <성형도설成形圖說>의 다음 기록이다. 즉, 이 책 권16의 '밭벼(畠稻)'에 올밭벼에 대한 해설에 보이는 "츠치카라地道는 첫째 숙토를 좋아하고 새땅을 좋아지도록 황야의 실풀을 베어 뒤집어 흙과 함께 쌓아서 불을 태워 재로 만들어 심는데 12년은 훌륭히 거두고 그 뒤는 땅을 묵혀서 바꾸어 놓는다"라는 서술에서 나타나는 건 황야, 땔감용 풀, 불태우기, 재, 휴경이란 화전의 기술적 요소를 모두 갖춘 벼의 경작이다. 이건 틀림없는 화전의 연장선에 있는 '화전 벼농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벼농사와는 별도의 밭벼 재배가 가고시마 지역에서 행해졌다. 


또한 민속 전승에서도 '화전 벼농사'를 확인할 수 있다. 2008년에 방문했던 미야자키현 사이토시西都市 카미아게上揚의 하마사 리쿠키濱砂陸紀 씨(1931년생)가 체험했다는 다음의 전승은 틀림없는 화전 벼농사였다.


카미아게에서 화전은 코바라 부르고, 가을에 나뭇잎이 낙엽이 되기 시작하기 전에 벌채하여 겨울을 나고 이듬해 5월에 태우는 아키코바와 모내기가 끝날 무렵에 벌채하여 음력 7월 보름 전후에 태우는 나츠코바라는 두 방식이 있었다. 아키코바는 니이코바(새로운 코바)라고도 부르며, 밭벼라든지 피라든지 조를 심었다. 코바에서 재배한 밭벼에는 메벼와 찰벼 두 종류가 있으며, 5월 초순에 불이 날리지 않도록 주변을 청소하고, 욧카시라(경사면 위쪽의 가장자리)의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불을 붙이고, 요코지리(경사면 아래쪽의 가장자리)로 향하여 불태워 내려간다. 태우면 곧바로 두둑을 지어서 골을 타고, 거기에 볍씨를 곧바로 파종했다. 풀베기 작업은 메벼는 풀 길이가 30cm 정도로 성장할 무렵에 한 번 한다. 찰벼인 붉은찰은 제초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수확은 10월 무렵에 낫으로 밑동 베기를 하고, 걸어서 말렸다. 멧돼지가 뛰어올라 먹기 때문에, 상당히 높게 걸어서 오랫동안 코바에 놔두고, 집에 가지고 돌아와서 탈곡기로 탈곡했다.


찰벼인 '붉은찰'이라 부르는 알곡이 붉고 쌀이 흰 벼는 코바에서도 논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벼로서, 키가 크고 볏짚 세공에 편리했다. 현재에도 시로미銀鏡(사이토시)의 나카타케 에츠코中武悅子 씨는 볏짚을 시로미 신사에 금줄 용도로 봉납하기 위해 논에서 붉은찰을 재배하고 있다. 또한 카미아게의 나스 토시타카那須利隆 씨도 아직 논에서 붉은찰을 재배하고 있다. 이러한 코바는 1972년 무렵까지 행하였다.


또, 이러한 밭벼의 화전 재배에 대해서는 인근 마을인 니시모로카타군西諸県郡 수키촌須木村(현 고바야시시小林市) 토리타에서도 행했던 것이 벼잎 세포화석의 분석에서 벼농사의 기원을 연구하고 있는 농학자 후지와라 히로시藤原宏志 씨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후지와라 씨는 평균 경사도 30도인 소나무숲의 흙속에서 벼잎 세포화석이 검출된것에 의문을 가지고, 마을의 노인에게서 화전에서 밭벼를 재배했던 일을 캐물어 알아내고 재현을 시도했다. 그 품종명은 메라고메라고 부르며, "화전 같이 물이 적은 조건에서도 농사지을 수 있고, 과습한 저습지 논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고장 사람에게는 화전 벼농사와 밭벼농사(밭에서 하는 밭벼 재배)를 구별할 필요 등이 없음을 깨달았다"(괄호는 필자가 보충, 이하동문)라고 기술한다.


1864년에 기록된 <오오스미국大隅國 다카야마高山 향수옥가郷守屋家 경작 일기>에는 "하나  붉은볍씨는 콩밭과 아울러 심어 벼농사에 들어간다. 단 4월 16일 소만부터 5월 2일 망종까지"라는 기사가 있으며, 현재의 가고시마현 키모츠키군肝付郡 키모츠키정肝付町 다카야마高山에서는 붉은벼를 논에 곧뿌림하는 것과 동시에, 콩밭 안에서 농사짓는 걸 살필 수 있다. 또한 가고시마현 히오키시日置市 긴포우정金峰町 일대에서는 밭에 재배되는 밭벼가 '메라'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은 미야자키현 사이토시 카미아게의 사례와 후지와라 씨의 지적, 게다가 <성형도설>이 보여주었던 수륙양용 밭벼의 기사와 합하여 매우 다양한 벼농사의 존재를 가르쳐 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츠보이 히로후미는 화전과 덩이뿌리와 붉은쌀을 핵심어로 삼아 일본 문화의 다양성에 다가갔다. 특히 만년의 저작 <벼농사 문화의 다원성 -붉은쌀의 민속과 의례->에서는 그 요약으로 '농경문화 연구의 과제'라는 항목을 마련해, "민속 문화를 다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점을 더욱 진전시켜, 벼농사 농경문화의 다원성까지도 문제 삼는 것이 새로운 문제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문제 삼을 만한 요점의 하나로 '일본의 벼농사 사회(논벼농사 사회) 체제의 틀에 꼭 들어맞지 않는 농경사회가 존재해 왔다. 화전, 밭농사 사회이다. (중략) 화전, 밭농사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는 흰쌀과 (붉은쌀이) 대등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들어, 농학과 고고학을 포함한 '학제적 연구'를 진행할 것을 제언한다. 그러나 츠보이가 제기한 문제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진전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의 벼농사 문화 또는 일본 문화 그것의 다양성을 분명하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본 열도에서 행한 화전 연구의 성과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조금 더 주의 깊게 다시 읽는 작업과, 새로운 청취자료의 발굴에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일이 츠보이가 유언처럼 남겼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 (중략) 의 민족과 비교하는 일'이란 기초적 자료를 정돈해, 비교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란 점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동남아시아 대륙부의 북부 산악지대에 속한 라오스 북부의 화전과 벼농사에 대하여 서술하겠다.





라오스 북부의 화전과 벼농사


라오스 북부의 산악부에 사는 캄, 타이, 라오, 몽, 야오, 아카 등 다양한 소수민족은 논을 전혀 만들지 않고 화전에서만 벼농사를 짓고 있는 곳, 화전 벼농사에 논벼농사를 도입하고 있는 곳, 찰벼를 중심으로 재배하는 곳, 메벼를 중심으로 재배하는 곳 등 다양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다양한 벼농사의 상태를 화전 벼농사를 중심으로 그 재배기술, 의례, 신화를 언급하면서 기술해 보도록 한다. 



'새로운 해'의 개시와 풍년 기원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화전 벼농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예를 들면, 캄족의 사례를 보자. 루앙남타주 남타군 프랑 마을은 루앙남타와 태국 국경의 보케오주 호이사이를 연결하는 국도 3호선에 따라서 있는 캄쿠엔족이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12월의 초승달이 나오는 날, 즉 12월 초하루부터 3일 사이에 묵은 해에서 새로운 해로 바뀌는 '옷'이라고 부르는 축제를 한다. 이것은 '푸쿤'이라 부르는 선조의 혼에게 덩이뿌리를 바치는 제사이다. 마을의 모든 가족이 밭의 벼를 마을의 곳간으로 옮겨 들이면, 그해 밭에 심어 놓았던 덩이뿌리 종류를 수확한다. 벼의 수확이 끝나기 전에 스로(토란)과 쿠와이(다이죠우)를 수확하여 먹으면 푸쿤이 노하여 가족을 병에 걸리게 하거나 죽게 하거나, 로이 라왕(정령, 우레)을 밭에 떨어뜨려 벼의 수확을 나쁘게 한다고 한다.


'옷'을 행하기 전날 밭에 가서 밭을 태운 직후의 폿크 카통(태우다·알)이라는 덩이뿌리를 심는 의례로 심은 스로(토란)을 수확하여 밭의 곳간에 보관한다. 그뒤 밭의 덩이뿌리 종류를 수확하고 ('옷'에 쓰일 분량만이라도 좋음) 집으로 운반해 돌아온다. 밤이 되어 수확해 온 덩이뿌리 종류를 쪄 놓는다. 


다음날 아침, 푸쿤 앞에 식탁을 놓고서 그 위에 찐 덩이뿌리 종류나 라오하이(검은쌀의 양조주) 등을 바치고, "새해가 되었습니다. 덩이뿌리를 드십시오. 올해도 가족이 병에 걸리지 않고, 수확도 풍성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하고, 그뒤 가족 전원이 덩이뿌리를 먹는다. 이때 바친 덩이뿌리 종류 중에서도 스로(토란)과 쿠와이(다이죠우)가 공물의 중심이다.


이것은 스로(토란)과 쿠와이(다이죠우)를 선조의 혼이 드시게 하여 가족의 안녕과 화전에 심는 작물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을 나타낸다. '옷'에는 온갖 작물 중에서 덩이뿌리가 우선한다. 이것은 츠보이가 일본 열도에서 벼의 떡을 중심으로 하는 '떡 정월(餅正月)'과 대립되면서, 다양한 벼농사 문화의 상징으로 지적한 '덩이뿌리 정월'에 상당한다.


또한, 몽족은 파종 의례부터 수확 의례에 이르는 벼농사 의례를 대부분 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루안프라방 비엔캄 마을의 몽족에게 벼농사 의례를 하지 않는 이유를 들으면 벼의 수확 이후 12월의 새해에 행하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제사 때 선조의 혼에게 기원하기에 특별히 의례를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루앙 프라방의 파방군 롱라오 마을의 몽족은 웅티쿠왕이란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의례를 할 때 공물로 바친 닭의 다리가 똑바로 펴져 있는지, 머리뼈와 아래의 부리에 피가 묻어 있지 않은지, 혀를 빼서 한가운데의 근육이 나와 있지 않은지를 보고서 그해 가족의 안녕과 함께 화전에 심는 작물의 형편을 점친다.


게다가 아카족이 사는 루앙남다의 푸카군 통랏토 마을에서는 벌채한 화전지를 불태우기 전(4월 말부터 5월 초순)에 잘 타도록 각 집에서 '호즈 다(새롭다·오르다)'라는 의례를 행한다. 참깨를 묻힌 쟈레레라는 둥근떡을 치고,삶은 달걀 한 개를 만들고, 닭을 한 마리 죽여서 요리를 만든다. 대나무 고치에 작고 둥글게 뭉친 쟈레레 3개, 삶은 달걀 세 토막, 닭고기 세 토막을 꽂은 쟈레 쟈다(떡·새해에 오르다)를 만들어, 집의 입구 두 군데의 바깥쪽 위의 들보에 붙인다. 나쁜 혼령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뒤 아피포로(집의 혼령)에게 쟈레레, 삶은 달걀, 닭의 머리, 간과 장기, 고기를 조금씩 바치고, 다음으로 아궁이에 바치며, 그뒤 가족도 똑같은 걸 먹는다. 호즈다의 3일 동안은 마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호즈다가 끝나면 밭을 태워도 좋다. 즉, 여기에서도 새로운 해에 선조의 혼령을 제사지내는 일이 밭이 잘 태워지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벌채는 문제가 아니고 태우는 작업이야말로 선조의 혼령이 지배하는 화전 작업의 개시라는 의식을 명확히 알아챌 수 있다. 이것은 '최적의 숲은'이란 필자의 질문에 대한 '흙이 좋아도, 숲이 좋아도, 태우지 않으면 거름이 되는 재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다'라는 답변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 뭉싱군 파이야로앙 마을에서는 호스 아표로이(새로운 해의 제사)의 이틀째에 청년들이 집단으로 수렵을 행하고, 이것도 밭을 태우기 전 의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에 따라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와 의례의 내용은 저마다 다른데, 화전의 풍작을 기원하고, 점을 치고, 잘 타길 기원하는 등 화전 벼농사와 깊이 연관된 의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그 벌채하여 개척하는 화전지를 선정하는 자세를 살펴보자.



화전지의 선정 기술과 의례


(1) 화전지 선정의 기준 -대나무의 화전-


필자는 라오스 북부의 화전민이 어떠한 기준으로 화전지를 선정하는지에 대하여 "화전에는 어떤 숲이 적합합니까? 대나무만 있는 숲인지, 나무만 있는 숲인지, 대나무와 나무가 섞인 숲입니까? 그 이유를 가르쳐 주세요." "화전에 적합한 대나무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좋은 순서대로 이름을 들고, 그 이유를 가르쳐 주세요." "대나무와 나무의 조합에서 화전에 적합한 숲은 어떤 조합이 있습니까? 그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라는 청취 조사를 했다. 이들 질문은 토카라 열도부터 오오스미 반도, 큐슈 산지에서 나무의 숲보다 대나무숲을 화전으로 하는 쪽이 좋다고 하는 '대나무 화전'이라 부를 만한 사례와 비교하는 시점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러한 청취 조사에서 얻었던 결과를 보면, 일본 열도에서는 매우 지역적인 존재인 '대나무 화전'이 라오스 북부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화전이란 점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캄족이 사는 루앙남다의 뭉고이군 핫캄 마을에서는 다음처럼 말한다. 화전에 가장 적합한 숲은 돗츗과 돗보이라는 대나무가 섞여 있는 숲이다. 그 가운데 돗츗은 한 포기에서 여러 갈래로 자라는 대나무이고, 돗보이는 땅속 줄기에서 자라는 대나무이다. 이 숲은 대나무의 뿌리에 수분이 있어, 흙에 수분이 지켜지기에 벼농사에 적합하다. 얏걈이란 땅속 줄기에서 자라는 대나무도 돗보이와 마찬가지로 뿌리에 수분이 있어 흙에 수분이 지켜지기에 벼농사에 적합하다. 그밖의 타라와 쵸이라는 대나무는 보통이다.


두번째로 적합한 건 나무와 대나무가 섞인 숲으로, 대나무가 2/3, 나무가 1/3 정도로 섞인 비율이 좋다. 나무만 있는 숲은 흙이 건조하여 후끈후끈하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곧바로 말라 벼가 죽기에 좋지 않다.


그리고 '대나무 화전'과 관련하여, 캄족이 대나무와 작물의 연계를 표현하는 속담을 가지고 있는 건 매우 흥미롭다.


핫캄 마을에서는,


  부루앙       부릿     타넷크               룻             야

 벌채하다      숲     대나무 이름    잘 할 수 있다      담배


 부루앙        부릿          타라             부리야           핏

 벌채하다       숲       대나무 이름      잘 할 수 있다    고추


라고 한다. 또한 캄족이 사는 루앙파르방의 남바크군 호이징 마을에서는


   푸리       푸라이           부리아           고

    숲     대나무 이름    잘 할 수 있다       벼   

  푸리      타넷크             부리아         푸리

    숲     대나무 이름    잘 할 수 있다     고추

  푸리       라항             부리아          야

   숲    대나무 이름     잘 할 수 있다     담배


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호이징 마을에서 화전에 적합한 대나무의 순위는 푸라이(라오어 이름으로 마이라이), 타넷크(라오어 이름으로 마이홋크), 라항(라오어 이름으로 마이상)이라고 순위를 매긴다. 그 이유로 수분이 많고, 잘 타며, 거름이 되는 재가 많은 등의 점을 들어 핫캄 마을의 경우와 공통된다. 이러한 속담의 존재는 캄족 사람들이 화전과 대나무와 작물을 한 묶음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여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캄족의 마을에서는 인간의 악행에 의하여 벼의 씨앗이 대나무의 마디 안으로 도망가 숨어,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실화라고 이야기한다. 핫캄 마을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우옹 씨(62세)의 아내 통 씨(57세)는 4년 전 어느 날, 박쥐를 잡으러 숲에 갔다. 끝이 부러지고 없어져 버린 쵸이의 네 번째 마디에 박쥐가 살고 있는 듯한 구멍이 있었다. 그곳에서 통 씨는 그 대나무를 잘라 보았다. 그러나 박쥐는 살고 있지 않았는데, 예쁜 쵸이이구나 밭에서 옷을 말리는 대나무로 쓰자고 생각하여 여덟 번째 마디를 잘랐다. 그때 그 마디 안에서 28알의 볍씨가 나왔다. 그 볍씨를 집에 가지고 돌아와서, 반은 프라넷고(벼의 보물)로 삼고 나머지 반은 볍씨로 썼다. 그 벼의 이름은 곳 담 당고롯크(벼·흰색·가지)라는 벼로서, 원래 마을에 있었던 벼였다. 이 종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 세상에 가지고 가셔서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벼가 도망가는 곳으로 대나무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대나무는 물이 있고, 벼는 물과 함께 있다는 캄족의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타일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남바크군 코크남 마을에서는 화전에 적합한 대나무에 대하여 더욱 세세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 순서와 이유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적합한 건 마이히야라는 대나무이다. 이 대나무는 껍질이 얇야서 전부 타 버린다. 거름이 되는 재가 많이 나오기에, 벼의 줄기가 굵게 자라고 이삭도 잘 패지만, 하천이나 골짜기에 있어서 그늘이 지고 이삭이 굵어지지 않는다. 두번째는 마이라이라는 대나무이다. 이 대나무는 뿌리가 깊고, 여기저기에 작은 덩어리로 퍼져 있기에 수분을 가지기 좋고, 산등성이 일대나 가파른 경사면에 생육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 볕도 잘 든다. 가지치기는 적지만 이삭도 크고 쌀도 맛있다. 세번째는 마이홋크라는 대나무이다. 이 대나무는 뿌리 그루가 커서 그 주변이 잘 타고, 거름이 많고 벼도 이삭이 잘 패고 잘 자란다. 그러나 뿌리 그루와 뿌리 그루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 잘 타지 않기에 거름이 적어 밭 전체적으로는 벼의 생장이 좋지 않다. 네번째는 마이상이란 대나무이다. 이 대나무는 흙이 건조하기에 그다지 좋지 않지만, 비가 많을 때는 좋다. 즉, 대나무는 수분을 가지고 있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토지는 수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화전에 적합한 대나무의 선정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화전지로 대나무에 그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민족도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몽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비엔캄군  옹브링 마을은 표고 940미터의 고지에 위치한 마을로서, 화전만 행하는 마을이다. 여기에서는 숲의 나무들 형성보다 흙의 좋고 나쁨이 화전지 선정의 기준이 된다. 테이(화전)에 적합한 숲으로는 부드럽고, 흙에 습기가 있는 곳이 좋다. 딱딱한 흙은 통수성이 나쁘기에 좋지 않다. 붉은 돌이 들어 있지 않은 흙이 좋다. 모래가 들어간 흙은 좋지 않다. 또, 냐카라는 풀이나 곳카(야생 모란)이 나오는 흙도 좋지 않다. 마이츄라는 가시나무가 있고, 유액이 나오는 큰 나무가 있는 곳도 좋지 않다. 마이퐁이란 대나무만있는 숲이라도, 마이칭(나무)만 있는 숲이라도 흙이 좋으면 좋다. 그러나 마이퐁은 높은 산에는 별로 없다. 마이솟이란 대나무숲은 흙이 건조하기에 벼를 심어도 별로 여물지 않는다. 이와 같이 표고가 높은 곳에 사는 몽족이나 아카족의 경우는 그다지 구애되지 않고, 오히려 나무의 숲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발견된다.



(2) 점유 표시


그럼, 이러한 기준으로 숲을 선정한 다음 그곳에 가서 자신이 선정한 숲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점유의 표시를 한다. 그 표시 방법에는 몇 가지의 패턴이 인정된다. 먼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건 예정지의 경계에 타레오, 타레라고 부르는 여섯 개의 대나무로 짠 걸 거는 방법이다. 이것이 걸리면 다른 사람은 그 범위를 침범하여화전지를 만들 수 없다. 걸려 있는 여섯 개의 대나무로 짠 것은 침입을 거절하는 표시로서 다양한 장면에서 활용되는 표식이다. 예를 들어, 의례의 기간 중에 마을의 출입구에 걸어 외부에서 마을에 출입하는 것을 거절하는 표식으로 삼거나, 벼농사 의례에서도 악령이나 다른 사람이 밭 안에 들어오는 걸 거부하는 표식으로 화전의 가장자리에 걸 수 있다.


또한 후아팡의 삼타이군에 사는 타이담족의 마을에서는 대나무 장대의 상부를 쪼개 가느다란 깃발 장식물처럼 바깥쪽으로 열어서 지면에 세우고, 끝을 지면에 찔러 꽂은 '마이타크나이'라는 표지를 세운다. 이 표지도 다른 사람의 침입을 거절하는 표지이다. 같은 지역 비엔통군에 사는 캄족의 마을에서도 똑같은 표식을 발견할 수 있다. 라오스 북부의 화전민 사이에는 이러한 표식이 불가침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공통적으로 인식되며, 혼령의 존재와의 사이에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전 예정지를 표시하는 마이타크나이(후아팡의 삼타이군)



대나무 장대의 끝을 쪼갠 깃발 같은 장식은 큐슈 산지인 미야자키현 시바椎葉 마을의 작은 정월에 밭에 세우는 것이나, 가고시마현 사츠마센다이시薩摩川内市 신덴新田 신사 모내기 제의의 모내기 장소를 청정하게 하려고 신사의 논에 세워서 휘휘 돌리거나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칼집을 넣어서 섶나무를 끼우거나 나무의 줄기를 깎거나 하기만 한 것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라오스 북부와 공통성이 인정된다. 



(3) 영혼의 배제 의례와 사전 축하 의례


캄족은 점유를 표시하는 일보다도 그 숲에 있는 영혼의 존재를 경외하여 퇴거하도록 하는 의례를 중시하는 경향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캄족이 사는 우돔사이의 뭉훈군 푸랏토 마을에서는 퐁케이라고 부르는 의례를 행한다. 이 마을에서는좋은 날을 골라 밭에 간다. 이때 반드시 새로운 손도끼를 만들든지, 옛날 것은 날을 벼려서 가지고 간다. 밭으로 삼을 장소에 가서 퐁케이를 행한다. 


먼저 지면에 아래 그림과 같은 모양을 손도끼로 찍는다. A·B·C의 지점에 지난해 베어 처음으로 거두어 곳간 안쪽의 벽에 꽃아 놓았던 벼의 이삭을 가지고 와서, A에는 이삭의 아래 부분, B에는 이삭의 한가운데, C에는 이삭 끝을 꽂는다. 마찬가지로 바나나 나무, 사탕수수의 상중하를 각각 C·B·A에 찌른다. 이것은 풍년의 전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해에 벤 이삭과 같이 벼의 줄기가 사탕수수처럼 강해지고, 벼의 이삭이 바나나처럼 많이 달리라는 것을 기원하는 사전 축하 의례이다. 




다음으로 퐁케이를 마친 뒤, 모닥불을 피워서 고추, 개각충의 둥지를 태우고 "지금부터 나무를 벨 것이니, 여기에 있는 영혼과 벌, 야생동물은 밖으로(어딘가로) 가(도망가) 주십시오. 여기는 나의 밭이 될 겁니다."라고 외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그 숲에 있는 영혼이 고추와 개각충 둥지를 태울 때 나는 강한 냄새에 의해 피하여 달아난다고 한다. 


또한 라멧토족이 사는 루앙남다의 나레군 사리앙팡 마을에서는 가족에게 좋은 날을 골라 숲에 가서 밭으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장소를 결정한다. 자신이 마음에 든 장소를 정하고, 사방 5미터 정도 나무를 벌채해 개간하고, 와옷 켓 마(가다·점하다·밭)라는 밭으로 만들어도 좋은지 아닌지 점을 친다. 먼저 가는 대나무나 나무를 자르고, 그것에 타레오를 만들어 붙이며, 벌채해 개간한 장소로 통하는 길에 세워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다음으로 벌채해 개간한 장소의 한가운데 지면에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삼각형을 그린다. 여성의 성기를 그리는 건 숲에 있는 영혼이 그것을 보고 더럽다고 생각해 싫어하여 가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나무 실을 2개 준비하여 각각을 10번 꺾어 구부려서 밑변이 곧은 삼각형을 2개 만들고, 지면에 그렸던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삼각형의 안에 날카롭고 뾰족한 쪽의 정점을 꽂아서 역삼각형 모양으로 찔러 세운다. 이때 "이제부터 이 숲을 벌채하여 밭으로 만듭니다. 여기에 있는 영혼들은 어디든 밖으로 도망가 주세요."라고 외치면서 찔러 세운다. 지면에 그렸던 삼각이 밭을, 대나무 실로 만든 삼각이 인간(남성기)를 나타낸다. 이것은 여성기와 남성기의 꿈을 꾸면 다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하여 미리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게다가 여성기를 나타내는 삼각형의 한가운데에 세계를 어둡게 하여 쥐나 다람쥐, 해충의 눈이 보이지 않도록 카잉압프라는 우콩(울금)과, 영혼이 두려워하는 카쿠로이라는 우콩,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벼를 응원해 주는 카잉돗이란 우콩을 세 종류와, 카잉압프와 같은 목적으로 라앗이란 풀을, 카쿠로이와 같은 목적으로 랏쿠로이라는 풀을 두 종류 심는다. 이때 찔러 세운 삼각형은 가능하면 밑변이 짧으며 높이가 높은 삼각형이 좋고, 밑변이 곧아지면 벼가 병 없이 풍년이 되거나 사람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이 의례는 모의 생식과 우콩의 수호에 의한 벼의 사전 축하, 게다가 벼의 수호를 위한 여성 성기와 우콩에 의한 영혼의 배제, 해로운 짐승, 해충의 배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의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이나 흙, 나무의 구멍에 나뭇잎을 채워 넣고 그 구멍을 막는다. 이것의 벼를 파종할 때 쥐나 다름쥐, 해충 등이 나와서 파종한 씨앗을 먹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 한다. 


또한 타일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남바크군 곳크낭 마을에서는 일찍이 다른 사람이 밭으로 만들려다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한 큰 숲이나, 파케(나이를 먹은 숲)을 화전으로 만들 경우는 승려에게 카타 피 부아(작은 돌에 쓴 부적·영혼·싫증나다·싫어하다)를 받아서 숲에 가지고 가, "이제부터 이 장소를 밭으로 만들 테니, 여기에 사는 나쁜 영혼이나 뱀들은 밖으로 나가 여기를 서로 나눕시다."라고 외치면서 벌채하여 없애려는 범위의 네 귀퉁이에놓는다. 화전지를 선정할 때 이러한 영혼의 배제와 벼의 사전 축하 의례를 행하는 건 타이족계와 캄족계 민족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다만 모든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각 민족 안에서도 마을마다 다양한 변형이 발견된다. 즉, 민족 내부에서도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4) 꿈에 의한 벌채 허가·금지의 계시


화전지의 선정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그날 밤의 꿈을 본다. 숲에 있는 영혼이 그 꿈을 통해서 선정한 숲을 벌채하여 화전으로 해도 좋은지 어떤지를 계시해준다. 현재도 금지의 꿈을 꾸면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하기에 절대로 벌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숲의 난벌을 억제하는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꿈에 의한 계시는 대부분의 민족에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몽족과 캄족에게는 매우 희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앞의 프랏토 마을에서는 큰돌, 탁한 물이나 탁한 하천의 꿈을 꾸면 숲을 벌채해도 괜찮다. 큰돌은 벼의 혼이고, 탁한 물이나 탁한 하천도 벼의 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 이외에도 홍수, 탁한 하천의 물, 물놀이 같은 물에 관련된 꿈은 벼의 풍작을 가져오는 꿈으로 이야기된다. 이들 외에도 높은 벼랑에 오르는 꿈도 벌채 허가의 꿈이라고 자주 이야기된다. 이것은 수확한 쌀이 높은 산처럼수북히 쌓여 풍작이 된다는 징조라고 의미를 매긴다. 


이에 반하여, 누군가가 찾아와 물소를 달라며 찾고 있는 꿈은 벌채 금지의 계시이다. 그것은 물소가 밭을 벌채해 개척하려는 사람을 나타내고 물소를 찾고 있는 사람은 영혼을 대신하기에, 밭을 벌채해 개척하면 그 사람은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 또는 누군가가 큰 나무를 벌채하고 있는 꿈도 벌채 금지의 계시이다. 그것은 관을 만들기 위한 나무를 벌채하고 있는 것으로, 사람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라든지 비행기에 타고 있는 꿈은 좋지 않다. 그것은 관에 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는 1986년에 세 곳의 깨끗한 훈롯(연못)이 있어서 물이 매우 깨끗해지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에 나쁜 꿈을 꾸었지만 상관없이 화전을 했는데, 그해 마을사람이 16명 죽었다고 한다. 즉, 벌채 금지의 꿈은 장례식이 행해지는 징조로 이야기되며, 가족의 죽음이나 병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다.


앞에서 들었던 콧크남 마을에서도 홍수가 난 하천의 꿈이나 하천에서 수영하는 꿈, 특히 홍수가 난 하천에서 수영하는 꿈을 꾸면 벌채해도 괜찮다. 하천이 홍수로 갈색이 되는 꿈은 벼가 황금색으로 여무는 것과 같은 색으로, 많은 벼를 수확할 수 있다는 징조이기에 가장 좋은 꿈이다. 또한 홍수가 난 하천에서 필사적으로 고생하며 수영하는 꿈은 벼농사 작업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많은 벼를 수확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물소에 부딪치거나, 뿔에 찔리거나, 물소를 사로잡거나 하는 꿈을 꾸면 벌채는 안 된다. 물소는 숲에 있는 영혼의 대표로서, 벌채는 안 된다는 걸 계시하러 왔기 때문이다. 또한 구멍에 떨어지거나,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는 벌채는 안 된다.



(5) 야생 동물에 의한 벌채 금지


이러한 꿈에 의한 벌채 허가와 금지의 계시 외에, 야생동물의 출현으로 영혼이 전하는 계시가 있다. 


예를 들면,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뭉고이군 도잉 마을에서는 벌채하려고 하는 범위를 정하고 숲에 갔을 때, 벌집을 보거나 황이라 부르는 야생 사슴의 모습을 보거나 울음소리를 듣거나 하면, 곧바로 화전을 만드는 일을 중지한다. 벌집이 내려가는 모양은 장례식에서 관을 메고 있는 모양이고, 황은 숲의 영혼이 부려서 '여기를 밭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걸 계시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밭으로 만들면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른다. 황은 사체를 본 경우에도 즉시 벌채를 중지해야 한다는 전승을 널리 믿고 있다. 숲에 사는 영혼이 부리는 황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6) 수원에 의한 금기


이에 반하여 아카족은 그것들과는 좀 다른 전승을 갖는다. 루앙남다의 야루 마을의 사례를 들어보자.


물이 샘솟아 그 앞으로 땅속에 사라져 물이 땅속으로 흐르고 있는 곳은 네(영혼)가 있기에 벌채하면 사람이 죽는다. 그러한 곳은 염분이 있어서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라 벌채 장소에서 제외한다. 일반적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수원인 곳은 나쁜 꿈을 꿀 경우에는 벌채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벌채해도 상관없다. 또한 그 물이 땅속으로 흐르는 하천의 상류도 벌채하면 수원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혼이 노하여 벌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물의 영혼인 개에게 물리는 꿈을 꾸면, 숲에 물의 영혼이 있다는 것이기에 벌채해서는 안 된다. 개의 꿈을 꾸어도 물리지 않으면 인간이 물의 영혼에게 이기는 것이기에 벌채하여 밭으로 삼아도 괜찮다. 또한 승려도 물의영혼이며, 승려의 꿈을 꾸면 숲에는 물의 영혼이 있기에 벌채해서는 안 된다. 


또, 큰 나무에 큰 구멍이 열려 있고 그곳에 물이 괴어 있다면, 보테라호(뱀)가 그 물을 마시러 오기에 벌채해서는안 된다. 그 나무 자체에도 네(영혼)이 있어 벌채하면 네도 보테라호도 모두 노하기에 벌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숲속에 관을 만들기 위하여 벌채한 나무의 그루터기가 있는 경우는 의례를 하지 않으면 벌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과거 만들었던 밭과 올해의 밭이 근접해 있다면 사람이 죽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밭을 만들어야 할 때는 양쪽의 밭 사이에 길을 만들어 연결하고, 그곳에 볍씨를 뿌린다. 그 벼는 자라든 자라지 않든 관계가 없다. 양쪽의 밭 사이에 다른 가족이 밭을 만든다면 그런 건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양쪽 밭 사이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면 양쪽을 연결하는 길을 만드는 일도 볍씨를 뿌리는 일도 하지 않아도괜찮다.


이상과 같이 선택하는 장소를 화전지로 만들 수 있는지 어떤지 의례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물'이 큰 기준이 되며, 그것은 대나무숲을 선택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곧, 화전의 벼농사는 '물'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화전 예정지를 벌채해 개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벌채 작업에 들어간다.





화전의 벌채 기술과 의례


(1) 벌채 의례


2월 초순이 되어 벌채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는 거의 의례를 볼 수 없다. 아마 예정지 선정의 단계에서 영혼의 배제 의례나 꿈에 의한 점을 행하는 일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비엔캄군 산통 마을에서는 캄족 달력의 2월 상순(서기 1월 상순) 벌채를 시작한다. 그때 베기 전에 봉 콩 하렛(장소·의례·화전)이란 의례를 행한다. 아침, 브릿(고추), 랑타렝(숫돌), 스크루(레몬그라스), 하라우엣(생강), 마루(소금)을 집에서 지참하고 부부가 벌채 예정의 숲으로 간다. 예정지의 한가운데를 2미터 사방 정도 베어낸다. 여주인이 불을 붙이고, 남주인은 숫돌의 대를 만들어 타랑우엣크(나무꾼 칼)를 벼린다. 


다음 남주인은 타라(라오어 이름 마이히야)와 쵸이(라오어 이름 마이솟)의 대나무 꼬치에 브릿(고추), 스크루(레몬그라스), 하라우엣(생강)을 끼우고 불로 태우면서, "여기가 좋은 흙으로, 좋은 밭이 되도록 산의 영혼과 숲의 영혼에게 나쁜 일을 당하지 않도록"이라고 외친다. 이것은 벌채 예정지 안에 있는 로이(영혼)을 그 냄새로 쫓아내고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행하는 의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의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죽게 된다. 이것을마치고 잠깐 쉬고나서 본격적으로 벌채를 시작한다. 이와 같이 본격적으로 벌채를 시작하기 직전에 영혼의 배제 의례를 행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타이푸앙족이 사는 후아팡의 비엔통군 탐라뉴아 마을에서는 벌채 허가의 꿈을 꾸면 코 피 푸(부탁한다·영혼·숲, 산)이란 의례를 하고 벌채를 시작한다. 양초를 다섯 개 가지고 가, 두 개씩 두 조를 바나나잎으로 꽃과 함께 감싸고, 나무 작대기의 양끝에 붙인다. 남은 하나는 그 한가운데에 붙여 지면에 세우고, "여기를 밭으로 벌채합니다. 여기에 있는 영혼은 벌채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주세요. 그리고 무사히 벌채하도록 해주세요"라고 외치고, 피 푸에게 부탁을 한다. 그런데도 벌채의 한창인 사람이 쓰러지는 나무에 깔리면 그 주변 전부의 벌채를 중지한다. 이것은 피 푸가 그 숲을 벌채해서는 안 된다, 벌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 한다. 다만 하천과 산에서 떨어져 있는 장소는 벌채해도 상관이 없다. 여기에서도 영혼의 배제와 허가를 얻기 위하여 의례를 행하는 사례가확인된다. 


그러나 야오족이 사는 후아팡의 비엔통군 호아이통 마을에서는 벌채하기 시작할 때는 특별한 의례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12월 30일에 새해의 챠히양 제사(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제사)를 지낼 때 선조에게 '화전을 벌채할 때는 안전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채 작업 도중에 츙(사슴)이 울 때나 로(두더지)가 낮에 걷고 있는 모습을 볼 때는 벌채하는 것을 즉시 그만둔다. 그것은 퍄오미엥(가신)이 벌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사람이 병에 걸리고, 사람이 죽고, 쌀을 수확하지 못하게 된다는 등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사전에 알려 주는 것이다. 야오족과 몽족의 사이에는 화전의 의례가 적은 이유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제사를 지낼 때 선조에게 부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드는데, 벌채 도중에 생기는 일을 선조의 영혼이 의사표시를 하는것으로 여겨 벌채를 중지하는 일이 있다. 이것은 숲의 영혼이 의사표시를 있다고 하는 캄족의 설명과는 두드러진차이를 보인다.



(2) 재생을 촉구하는 벌채


라오스 북부의 화전 풍경을 보고 느낀 점의 하나로, 벌채가 그루채 파는 게 아니라 중간부터 베어 그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어째서인지 들으면, 대개의 경우는 작업을 서 있는 자세로 행하기 때문에 그게 더 편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뭉고이군 동 마을에서 조사한 다음의 전승은 주목해도 좋다. 그것은 수확 작업의 점심을 준비할 때 밭에 남아 있던 가슴 높이 정도의 그루터기 상부를 도마로 쓰기 위하여 선 채로 깎을 때의 일이다. 그 남성은 이 정도 잘라내도 이 나무가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 정도의 높이로 베어 쓰러뜨리면그 부분까지는 죽어도 뿌리는 살아서 곧바로 새로운 싹이 나오는데, 뿌리 가까이 베어 넘기면 전부가 죽어 버린다고 설명한다.


또한 캄족이 사는 루앙남다의 프카군 프렛토 마을에서도 넓적다리 정도의 크기보다 큰 나무는 가슴 높이 정도인 곳에서 베어 넘긴다. 그 이유의 하나는, 그 나무가 죽지 않기에 또 그 벌목한 데에게 새로운 싹이 나와 재생되고,지면에 수분이 남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뿌리 부근에서 베면 그 나무가 죽어 버리고, 밭에 수분이 남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캄크엥족이 사는 루앙남다의 남타군 챠룽슷토 마을에서도 완전히 똑같은 것을 전승하고 있다.


즉, 뿌리채 캐지 않고 중간에서 벌목한 것은 화전터의 재생을 배려한 벌채 기술이라는 것이다. 벌채한 그루에서 새싹이 나오고 있는 화전터의 풍경은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벌채가 끝나면, 다음은 불태우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화전의 연소 기술과 의례


(1) 태우기 시작하는 의례


태우기 시작하며 영혼을 재베하는 의례도 벌채를 시작하는 의례와 마찬가지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사례가 확인된다.


예를 들면, 앞의 타이프앙족이 사는 팟토타이 마을에서는 벌채하고 1개월 정도 건조하고서 태운다. 옛날 숲이 깊을 때는 파이피 파이테바다(말을 하는 피와·말을 하는 테바다와)라는 의례를 행했다. 테바다라는 건 피보다 지위가 높고, 사람을 지켜주는 좋은 영혼이다. 집에서 라오하이(쌀의 발효주) 병을 두 개 밭으로 가지고 가서, 한 병에 4개의 대나무 빨대를 꽂고 물을 긷는 물건과 카오라오(뿔잔)을 놓고서 "이제부터 밭을 태웁니다. 여기에 있는 피와 테바다들, 이 라오하이를 마시고 떠나 주세요."라고 외치고, 그뒤 사람이 라오하이를 마시고 불을 놓기 시작한다. 현재는 숲이 젊기 때문에 피와 테바다가 있지 않아서 이러한 의례는 행하지 않는다. 또한 캄족이 사는 후아팡의 비엥통군 피엥동 마을에서도 특별한 의례는 하지 않지만, 불을 넣기 전에 로이캉(영혼·집), 로이용(영혼·남자), 로이마(영혼·여자) 등 집의 선조에게 "오늘은 이제부터 밭을 태웁니다. 깨끗하게 탈 수 있도록 여기에 있는 영혼들을 떠나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말을 한다. 


이들 의례의 특징은 영혼을 술로 정중하게 대접하거나, 부탁을 하여 떠나 달라고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으로, 캄족과 같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겨서 강제로 배제하는 것과는 다르다. 



(2) 태우는 기술


라오스 북부에서 태우는 방법에 대한 기술을 들으면, 대부분이 주변에는 방화대를 만들지 않고 경사면 아래쪽,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불을 놓고, 경사면 위쪽으로 향하여 타 오르게 한다고 답한다. 일본 열도에서 '반대로 태운다(사카모에逆燃え)'라고 하여 경사면 위쪽의 바람이 불어 가는 쪽에서 불을 놓아, 아래쪽을 향하여 태워 내려가도록 하는 방법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다. 


그러나 주의 깊게 청취 조사를 진행하면 반드시 그렇게 태우는 방법만이 아닌 사례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캄크엥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남타군 챠룽슷토 마을에서는 태우기 전에 사웻이라 부르는 방화대를 경사면 위쪽은 6-7미터, 옆과 아래쪽은 2-3미터 너비로 만들고, 불이 날아가도록 한다. 그것이 끝나면 경사면 위쪽의 가장자리 한가운데부터 좌우로 불을 따라다니고, 아래쪽으로 조금 태워 내려간다. 이렇게 하면 불의 세력도 약해지고서서히 타며, 위쪽의 숲으로 불이 날아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위쪽이 태워지면 경사면 아래쪽으로 불을 따라다니며 단숨에 태워 버린다. 이것은 캄크엥족의 부모나 그 조상들부터 행해 오던 전통적인 태우기 방법으로, 농림사무소 등에서 지도를 받거나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이 마을 사람들은 "몽족이나 아카족은 사웻도 만들지 않고 그대로 태우고 있어서 주변의 숲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여 다른 민족과의 차이와 함께 숲의 보호도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화전의 경사면 위쪽에서 태우는 사례는 라오크족이 사는 퐁사리의 우타이군 마이송황 마을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통상 경사면의 아래쪽에서 불을 붙여 태워 올라가지만, 화전지의 위나 옆에 영혼이 있는 숲이 있는 경우는 미페페라고 부르는 방화대를 만들어 경사면 위쪽부터 반절 정도를 태우고, 그뒤 아래쪽의 가장자리에 불을 따라다니며 단숨에 태워 올라간다고 한다. 이 경우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주위의 숲에 영혼이 있는지 아닌지이며,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 의하여 연소를 억제하는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파종까지의 작업


태운 뒤, 파종하기까지 행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오두막을 만드는 것이다. 그걸 세우는 위치가 문제가 된다. 가장 많은 사례가 화전지의 거의 한가운데에 약간 평탄한 곳을 선택해 세우는 것이다. 그밖에는 물이 있는 곳에 가까운 화전지의 아래 부분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오두막 짓기는 파종이나 제초 등의 농작업을 하는 기간에는 휴식이나 비를 피하는 곳, 식사 등을 할 때 활용하고, 이삭을 거두는 수확 작업이라면 성스러운 밭의 곳간으로 그 성격이 변한다.


또 하나의 작업이 불태운 뒤에 태우고 남은 걸 몇 군데에 모아서 태우는 작업이다. 이 태운 곳에는 재가 많이 모여 거름이 많다고 하며, 특별한 씨앗을 파종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캄족의 경우는 벼의 장로라는 지위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곳 히양이란 검은쌀을 심거나, 토란 등의 덩이뿌리 종류를 심거나 하는 장소로 선택하여 일종의 특별한 장소로 인식된다. 


태운 직후에 행하는 의례로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건, 루앙프라방이나 루앙남타, 보케오에 사는 캄족의 몇몇 마을에서 볍씨를 파종하기 전에 스로라고 부르는 토란을 심지 않으면 선조의 영혼이 화가 나 벼의 수확을 없애거나, 가족을 죽게 하거나 병에 걸린다는 전승이 존재하고, 그에 기반하여 덩이뿌리 심기 의례가 행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캄크엥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남타군 프랑 마을에서는 화전을 태우면 그날이나 다음날에 챠오 하렛(오두막·화전)을 세울 예정지 근처에 폿크 카통(태우다·알)이란 스로를 심는 의례를 행한다. 


먼저 1.8미터 정도 길이의 대나무 막대기를 지면에 놓고, 집에서 가져온 달걀을 바나나잎으로 감싸 불로 태워서 굳히고, 밥을 조금 더하여 대나무 막대기의 위쪽에 놓는다.


다음으로, 대나무 막대기의 아래쪽 좌우에 하나씩 스로를 심고, 그 사이에 톳캴(울금)을 심는다. 그리고 그 주위에 라가(참깨)를 심는다. 이때 스로를 심는 건 로이 라왕(영혼·우레)가 밭에 떨어지지 않도록, 또 숲의 정령이 벼를 빼앗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의례가 끝난 뒤, 밭의 벌채한 그루터기 뒤 등에 덩이뿌리 종류를 심는다.


이것은 분명히 벼의 파종 의례에 선행하는 토란 심기 의례로 평가할 수 있다. 사례가 많지 않은 현시점에는 단정적인 것은 유보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은 라오스 북부 캄족의 사이에서 화전 농경으로서 벼에 선행하여 덩이뿌리의 재배가 행해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의례가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선조에게 덩이뿌리를 드시게 하는 '옷'이란 '덩이뿌리 정월'과 조합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태우는 작업이 끝나면 다음은 드디어 파종 작업으로 넘어간다.




파종 기술과 의례


파종 작업부터는 그 작업의 하나하나에 '벼의 혼'이란 존재가 크게 반영된다. 즉 '벼의 혼'이 밭에서 도망가지 않도록 의례를 행하고,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먼저 밭에 씨앗을 파종하는 단계부터 살펴 나아가도록 하자.


(1) 파종 의례와 벼의 혼 계승


라오스 북부의 화전 벼농사를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밭 전체의 파종에 앞서서, 성스러운 밭을 설치해 의례의 성격을 갖는 파종을 행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그들 의례의 과정을 살펴보면, 화전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벼에 대한 관념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뭉고이군 핫사프이 마을에서는 아렛크 하렛(시작하다·밭)이란 파종 의례를 행한다. 태운 뒤, 밭 한가운데에 챠오하렛이란 오두막을 세운다. 이것은 화전에서 일할 때 휴식 등의 생활을 위한 오두막임과 함께, 수확할 때는 밭의 곳간이 된다. 챠오하렛 근처의 오른쪽에 물을 넣지 않은 대나무 물통을 기울여 세운다. 그 대나무통 근처에 집에 가지고 있던 우콩(울금)을 심는다. 이 우콩은 선조의 시대부터 이 의례로 쭉 심어 온 것으로, 선조의 영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밭을 지켜 준다고 한다. 물통과 우콩 주위에 곳 히양(쌀·검다)의 씨앗을 심는다. 몇 포기 심는지는 정해진 게 없다. 이 의례가 끝나면 오두막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중생종을 심고, 다시 오른쪽 아래에 심고서 내려온다. 시계 방향으로 돌고서 늦벼를 왼쪽 위까지 심고서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챠오하렛까지 내려오면서 심는다. 올벼는 중생종, 늦벼와는 달리, 밭의 네 귀퉁이에 심는다. 하루의 작업이 끝나면 손을 씻고 그 물을 대나무 물통 안에 부어 넣는다. 이것은 파종 작업이 끝나기까지 매일 반복한다.밭 전체의 파종이 끝나면, 대나무 물통에 모은 물을 우콩 주위에 뿌린다. 이것은 밭에 파종한 씨앗이 확실히 싹이터 수확하도록 하는 기원이다. 


이 의례의 특징은 의례를 하면서 활용하는 볍씨가 검은쌀이란 점이다. 검은쌀은 캄족 사이에서 '벼의 장로'라든지 '마 곳(어머니·벼)'라고 불리며, 벼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평가를 받는 벼로서, 이 벼가 밭 전체의 수확을많아지게 한다고 생각환다. 또한 우콩은 밭의 벼를 지키는 존재라고 믿고 있으며, 하나의 종을 계속하여 심고 있는 것이 특징이고, '우콩의 혼을 계승한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또한 타일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남바크군 곳크낭 마을에서는 홍 카오 헷(집·쌀·최초로 하다)라는 파종 의례를 행한다. 씨앗을 심는 날의 오전 중에 밭에 가서 오두막 근처에 홍카오헷이란 제단을 만든다. 1미터 사방으로 구획하고, 네 귀통이에 대나무를 세워 각각의 꼭대기에 타레오(여섯 개의 대나무로 짠 것)를 붙인다. 그 아래쪽에 대나무통을 세우고 각각에 물을 넣는다. 그 구획의 가운데에 대나무 하나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대나무로 짠 홍(작은 집)을 설치하고, 대나무의 중간쯤에 큰 타레오를 설치하고, 밑에다 대나무통을 세워 물을 넣는다. 네 귀통이의 타레오 사이에 쪼갠 대나무를 활 모양으로 붙이고,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다만 중간에 의례의 성격을 지닌 파종이 끝나기까지는 네 면 가운데 한 방향은 열어 놓는다. 홍에서 대나무로 짠 작은 물고기 모형의 바퀴를 한 줄로 늘어뜨리고, 가장 아래에 있는 대나무로 짠 큰 물고기의 모형을 내려뜨린다. 홍의 안에 꽃, 붉은사탕수수, 바나나를 바친다. 홍을 지탱하는 한가운데 대나무의 지면 쪽에 볍씨와 도크다이(쌀의 혼에게 은혜를 돌려주는 꽃, 통상 맨드라미)의 씨를 심는다. 간단히 하는 사람은 세 포기나 다섯 포기나 일곱 포기 정도만 심지만,착실한 사람은 30포기나 심는다. 이때 씨앗을 심는 사람은 성급한 사람은 안 되고, 차분하게 심어야 한다. 올해 주인이 심어서 결실이 잘 없으면, 다음해는 부인이 심거나 아이가 심거나 한다. 이 파종이 끝나면 전에 개방해 놓았던 입구를 쪼갠 대나무로 닫는다. 이렇게 하면 안에 나쁜 것은 들어가지 못한다. 이 파종을 한 사람은 그날은 불을 다루는 일은 할 수 없다. 또한 밭 전체의 싹이 나오기까지는 머리카락을 잘라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벼의 이삭이 잘 패지 않기 때문이다. 이 파종이 끝나면 밭 전체의 파종을 행한다. 



성스러운 밭, 홍카오헷(루앙프라방의 남바크군 곳크낭 마을 타일족)




이와 같이 의례의 성격으로 파종하는 구획을 타레오를 단 기둥과 쪼갠 대나무로 둘러싸거나 하는 건 악령의 침입을 막아서 벼의 혼이 안녕하도록 할 목적을 띤다. 또한 불을 다루는 것이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의 금지 등, 벼의 풍성한 결실을 강하게 의식한 금기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의례는 성스러운 밭에서 성스러운 벼농사를 행하고, 벼의 혼이 안녕하도록 함을 꾀하는 벼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례는 타이족계와 라오족 등의 사이에서 널리 확인할 수 있는 파종 의례이다.


또, 아카족 사이에는 '벼 혼의 계승'을 벼농사의 중요한 일로 의식한 파종 의례가 확인된다. 예를 들면, 아카아그이족이 사는 보케오의 뭉군 퐁사왕 마을에서는 밭 전체의 파종을 하기 전에 '야카카도'라는 파종 의례를 행한다. 어느 한 채의 집을 마을의 대표로 선발하고, 그 집의 남주인이 오두막 위쪽의 한 면에 '코피야츙(밭 정령의 조각 이엉을 지닌 오두막)'라고 부르는, 높이와 너비 30센티미터 정도의 조각 이엉을 지닌 오두막을 세운다. 그 뒤쪽에 아홉 포기의 볍씨를 심는다. 이때의 볍씨는 지난해의 '호도 고(벼의 꽃·따다)'라는 수확을 시작하는 의례로 아홉 포기 중에서 따서 아피포로(집의 선조의 영혼)의 위에 꽂았던 세 이삭의 알곡과 수확 작업의 마지막에 남겨놓았던 아홉 포기에서 딴 체지 샤마우웅(볍씨의 곳간)에 넣어 놓았던 세 이삭의 알곡을 올해의 화전에 심을 예정인 볍씨에 섞은 것이다.


이 의례에서는 명확하게 '벼 혼의 계승'이 확인된다. 성스러운 밭에 재배된 알곡이 이듬해의 성스러운 밭의 볍씨에는 물론이고, 일반 밭의 볍씨 안에도 섞여서 계승해 가는 것이다. 또한 아카족의 사이에서는 '9'라는 숫자는 성스러운 숫자로 악령을 접근시키지 않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아홉 포기라는 포기 수만으로 그 공간의 성스러움이 유지되어 벼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의 차이에 따라 다른 모습이 있는데, 성스러운 밭의 벼농사를 밭 전체의 벼농사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는 공통된 사고방식이 있다. 



(2) 파종의 방법과 도구


파종의 방법은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거의 공통된다. 즉 남자가 뾰족한 막대기를 가지고 지면에 구멍을 뚫고, 여성이 그 구멍에 몇 알의 볍씨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넣는 방법으로, 밭의 경사면 아래쪽부터 경사면 위쪽으로 향하여 심어 올라간다.


구멍을 뚫는 막대기의 현재 쓰이고 있는 대부분은 원뿔형 쇠꼬챙이를 대나무나 나무의 자루 끝에 붙인 것이다. 특수한 형태로는 루앙남타나 보케오 등 라오스 북부의 서쪽에 사는 캄족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톳츗크'라고 부르는 파종용 막대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마이크왕이란 나무를 길이 62센티미터, 두께 3.2센티미터, 너비 9센티미터로 깎아 전체를 산 모양으로 형성하고 그 끝을 뾰족하게 한 것으로, 그것에 길이 3미터, 지름 3센티미터 정도의 대나무 자루를 붙인 것이다. 


또한 여성들이 볍씨를 담아서 허리에 차는 바구니도 중요한 파종 도구이다. 캄유앙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푸카군 푸렛토 마을에서는 파종의 마지막에 오두막 위쪽에 곳 시리(쌀·먹으면 안 된다)라고 부르는 곳 히양(쌀·검다)과 곳 앙타앙프랑이란 두 종류의 볍씨를 몇 포기 심는데, 그 파종 도구로는 벵큿이란 어살처럼 짠 작은 원통형 바구니를 쓴다. 또한 일반 밭에 파종하는 도구로는 벵켓이라는 마름모 네 눈 짜기로 짠 주둥이가 오므라진 바구니를 쓴다. 바구니 외에는 직물로 만든 어깨에 거는 자루 등을 쓰는 사례 등이 있다.



화전의 파종(루앙남타의 몽싱군)




(3) 파종의 다양성


라오스의 벼농사에서 매우 충격적인 건 재배하는 품종의 다양함이다. 특히 화전 벼농사에서 그것이 뚜렷하다. 2005년에 방문한 루앙프라방의 남밧크군 국도 13호선에 연이은 화전에서 한 체험은 강렬한 것이었다. 사토 씨가 양손으로 꽉 쥔 벼이삭을 보면 그곳에는 아홉 종류나 되는 벼의 종류가 섞여 있었다. 그뒤 방문한 마을마다 벼의 종류를 물어서 조사했다. 현재 타케후지 치아키武藤千秋 씨 및 카웅타파토에 있는 라오스 국립농림업연구소의 비엥퐁 씨와 함께 조사하는 마을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볍씨를 수집하려 애쓰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은 마을에서는 22종류나 되고, 평균적으로 10종류를 넘는다. 


예를 들어, 2008년 12월에 방문했던 베트남 북부 국경에 가까운 퐁사리의 마이군 옴카넹 마을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이 마을은 표고 507미터이고, 가구수 37호, 인구 230명이며, 전통적으로는 화전 벼농사를 행해 온 캄크엥족이 사는 마을이다. 이 가은데 17호는 화전만 경작하고, 나머지 20호는 논도 경작하고 있다. 논벼농사는 1995-1996년 무렵부터 개시했다. 경지면적은 화전이 각 호당 약 3000평, 논이 전체가 4만2000평이다. 이 마을에서수집한 22종류의 볍씨를 살펴보면, 화전에서 재배하는 씨앗은 올벼 4종(메벼 1종, 찰벼 3종), 중생종 9종(전부 찰벼), 늦벼 7종(메벼 1종, 찰벼 6종), 중만생종 1종(찰벼)이고, 올벼와 중생종, 늦벼에는 저마다 여러 종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점, 찰벼가 중심이지만 올벼와 늦벼에 메벼가 한 종류씩 포함되어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하여 논에서 재배하는 볍씨는 올벼와 늦벼는 하나도 없고 중생종 1종(찰벼만)이며, 게다가 그것은 TDK1이란 교잡종이었다. 이것을 비교하면 화전 재배용 씨앗의 다양함에 비교하여 논 재배용 씨앗은 단순하고 획일적이며, 양자 사이에는 또렷한 차이가 발견된다. 


또한 2007년 1월에 방문했던 퐁사리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역시 베트남 북부 국경에 가까운 후아팡의 솟프바오군 퐁바오 마을은 전통적으로는 논벼재배를 중심으로 행해 온 타이뎅족이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표고 260미터, 가구수 52호, 인구 280명이고, 경지면적은 논이 4만8000평, 화전이 2만4000평으로 논이 우위를 점한 상황이다. 이 마을에서 청취 조사한 전통적인 벼의 씨앗을 보면, 그 가운데 화전에서 재배하는 종자는 올벼 3종(전부 찰벼), 중생종 4종(전부 찰벼), 늦벼 6종이다. 그에 반해 논에서 재배하는 씨앗은 올벼와 중생종은 하나도 없고 늦벼 5종으로, 화전 재배용 씨앗 쪽이 다양함을 가진다. 논 재배용 씨앗은 중생종을 빠뜨린 종류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앞에 기술한 옴카넹 마을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정은 라오스 북부의 화전 벼농사 재배를 행하고 있는 마을에서는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거의 똑같은 경향을 보인다.



다양한 작물을 섞어 심은 화전의 밭벼밭(퐁사리의 분타이군 핑아렛 마을, 캄족)




이 화전 벼농사와 논벼농사의 차이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 이유를 화전 벼농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면, 먼저 '물·비'와의 관련을 든다. 그것은 그해가 비가 많은 해인지, 햇빛이 많은 해인지, 벌채해 개간한 화전지의 토양이 수분을 포함한 땅인지, 건조한 땅인지에 따라서 그에 적합한 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앞의 퐁바오 마을에서는 1호당 화전에는 1년에 4종류 정도를 심지만, 논에는 1종류만을 심는다고 한다. 화전에 많은 종류의 씨앗을 심는 이유를 들으면, 씨를 심기만 하여 작업이 간단한 점, 각각(올벼, 중생종, 늦벼)의 익음때가 조금씩 차이가 있기에 수확 작업이 분산될 수 있는 점, 하나의 품종이 잘 되지 않아도 다른 품종이 되기에 안심하는 점을 든다. 이것은 화전 벼농사가 기상조건, 밭의 토양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다양한 대응의 수단이 그대로 볍씨의 다양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벼의 이름에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민족과는 다른 민족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 사례가 확인되어,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서 볍씨의 교환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도 볍씨의 다양성을 높이는 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논은 많은 종류를 농사지으면 못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점, 한 종류여도 관개하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아도 안심하고, 매년 잘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4) 벼와 다양한 작물의 섞어짓기


그러나 화전 벼농사의 다양성은 벼의 씨앗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음으로, 똑같은 화전에 벼 이외에 어떤작물을 섞어 뿌리는지, 또는 섞어 심는지를 언급하면서 그 다양성에 대하여 서술해 보겠다. 라오스 북부의 화전 벼농사에서는 벼만을 재배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1996년 5월에 본, 벼가 싹이 튼 직후의 한 뙈기의 화전은 인상적이었다. 오두막 주변의 맨드라미꽃과 가지, 벌채한 그루의 둘레에 자라는 오이와 수세미, 벼 포기 사이의 토란, 수박과 호박, 카사바 등의 풍경은 그때까지 미나미큐슈의 화전과 밭에서 몇 가지 섞어심기와 섞어짓기를 보았던 필자라도 그 다양성에 깜짝 놀랐다.


그뒤 섞어심기와 섞어짓기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볍씨와 섞어서 심는 방법과 볍씨와는 섞지 않지만 같은밭에 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소개하겠다. 


① 파종과 섞어서 심는 종

표3-1은 2008년 2월부터 3월에 걸쳐서 방문했던 후아팡의 삼타이군 및 비엥통군과 루앙프라방의 비엥캄군의 타이뎅족, 타이프앙족, 캄족, 몽족, 야오족의 마을에서 청취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민족의 범위를 넘어서 예외 없이 볍씨와 함께 섞어서 심고 있는 것은 오이이다. 그리고 야오족을 제외하고는 동아도 똑같은 결과이다. 이 두 종류의 작물은 모두 덩굴이 지면을 기면서 성장하여 벼 포기를 감고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이를 심는 건 여름에 풀을 벨 무렵에 목이 마를 때 물 대신 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라 한다. 캄족이 사는 우돔사이의 사이군 사낭피 마을에서도 승캴(오이)는 풀 베기 등 목이 마를 때 물 대신에 먹는 것으로, 반드시 길게 잘라야지 둥글게 자르면 안 된다고 한다. 


오이와 동아는 화전과 홍수를 이야기하는 전승인 아마미奄美 제도의 천인여방역天人女房에서도 중요한 요소를 점한다. 그것은 하늘의 세계로 돌아온 천인여방을 뒤쫓아서 하늘에 올라왔던 남자가 천인여방의 아버지가 부과한 화전 작업에 관한 난제를 여방의 가르침에 의거해 차례차례 해결해 가는데, 그곳에 심은 씨가 오이와 동아라는 박이며 수확한 박을 자를 때 아버지가 이야기한대로 둥글게 잘랐기 때문에 홍수가 일어나 남자는 떠내려가 버려 여방과는 1년에 한 번 칠석날 밤에만 만나게 되었다는 칠석 기원을 말한다. 또한 구마모토현 이츠키 마을五木村과 미야자키현 시바 마을椎葉村 등 큐슈 산지의 화전 지대에서도 박(특히 오이)이 화전민의 목을 축이는 물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라오스 북부에서도 큐슈 산지부터 난세이南西 제도에서도, 화전에 섞어 심는 작물로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라오스족이 사는 퐁사리의 우타이군 마이송황 마을에서는 로리라고 부르는 알곡이 흰색과 검은색인 피를 벼와 섞어서 심는다고 한다. 라오스 북부에서도 벼 이외의 곡물을 섞어 심는 것을 알 수 있다.


1

2

3

4

5

6

 7

10 

11

12 

13 

14 

 15

수세미

(긴것)

수세미

(짧은것)

동아

호박

호리병박

토란

덩이뿌리 가지 강낭콩옥수수 생강 고추 레몬그라스 참깨 율무 

이족

밧토타이 마을

타이텡족

Ο






 Ο Ο    Ο Ο  

렝 마을

타이텡족

Ο

Ο




Ο

Ο Ο        

탐라뉴아 마을

타이프앙족

Ο


Ο

Ο

Ο

Ο

   Ο Ο  Ο  Ο 

캄족

풍시앙 마을

캄족

Ο



Ο



 Ο  Ο  Ο  Ο  

비엥통 마을

캄족

Ο



Ο


Ο

 Ο Ο   

Ο

   

상통 마을

캄족







  Ο Ο     Ο 

몽족

옴브링 마을

몽족







         

야오족

호아이통 마을

야오족







  Ο Ο     Ο 

표3-1 볍씨와는 섞지 않지만, 같은 밭에 심는 작물




② 볍씨와는 섞지 않지만 같은 밭에 섞어심기, 섞어짓기하는 종

표3-2는 표3-1과 같은 마을에서 청취 조사하여 얻은 볍씨와는 섞지 않지만 같은 밭에 섞어심기, 섞어짓기하는 종의 종류를 정리한 것이다. 종의 종류는 합계 15종류에 이른다. 그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가지이고, 수세미이다. 이들은 제초와 수확을 할 때 밭의 오두막에서 국 등의 요리를 하여 밥과 함께 먹거나 하는 데 이용된다. 특히 수세미는 성숙한 열매의 섬유질 부분을 찜기의 바닥에 까는 깔개로도 활용하고, 찜의 식습관에도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이 표에는 나오지 않지만, 호리병박 종류도 또한 섞어심는 작물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것은 식용으로 이용되는 것, 물건을 넣는 용기류로 이용되는 것이 있다. 호리병박을 사용한 용기류에는 물을 담아 나르거나 저장하기 위한 물통과 물을 긷는 국자, 씨앗을 보존하는 통, 찐밥을 담는 밥통, 국을 뜨는 숟가락 등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다.



1

2

3

4

5

6

오이

동아

참깨

강낭콩

사탕수수

수박

이족

밧토타이 마을

타이텡족

Ο

Ο





렝 마을

타이텡족

Ο


Ο




탐라뉴아 마을

타이프앙족

Ο

Ο

Ο




캄족

풍시앙 마을

캄족

Ο

Ο


Ο

Ο


비엥통 마을

캄족

Ο

Ο

Ο


Ο


상통 마을

캄족

Ο

Ο





몽족

옴브링 마을

몽족

Ο

Ο





야오족

호아이통 마을

야오족

Ο





Ο

표3-2 볍씨와 섞어서 심는 작물



즉, 파종과 섞어서 심는지 어떤지는 차치하고, 화전에다 섞어심기, 섞어짓기하는 기술은 그 양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작물이 화전민의 먹을거리와 생활도구를 포함하여 생활문화 전체의 체계 안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화전작물임을 알 수 있다.


화전 벼농사에서 중요한 작업의 하나는 제초 작업이다.




제초


(1) 제초의 방법과 도구


라오스 북부에서는 제초 작업은 3번 행하는 것이 통례이고, 처음 2번은 작은 손괭이, 세 번째는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뽑거나 한다. 예를 들면,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비엥캄군 상통 마을에서는 제초 작업을 요우헹 하렛(풀을 없애다·화전)이라고 부른다. 올벼의 경우는 2번 행하여, 첫번째는 벼의 길이가 15-20센티미터 정도로 자란 시기에 큰 우엣크(제초용 작은 괭이)로 흙을 일구듯이 하여 풀을 없앤다. 두번째는 벼의 길이가 허리 높이 정도로 자라서 이삭이 패려고 할 즈음에 작은 우엣크로 흙을 긁듯이 하여 풀을 없앤다. 중생종과 늦벼는 3번 제초를 행하여, 첫번째는 벼의 길이가 15-20센티미터 정도로 자란 시기에 큰 우엣크로 흙을 일구듯이 하여 풀을 없앤다. 두번째는 벼의 길이가 가슴 높이 정도로 자라고 아직 이삭이 나오지 않을 무렵에 작은 우엣크로 흙을 긁듯이 하여 풀을 없앤다. 세번째는 이삭이 팼을 때 풀을 손으로 뽑는다. 



(2) 말하는/ 도움이 되는 잡초


라오스 북부의 화전 지대에서는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닭의장풀이 인간을 위협하고 속이는 전승을 듣는다. 예를 들면, 캄족이 사는 루앙프라방의 비엥캄군 상통 마을에서는 화전 벼농사에서 가장 곤란한 잡초는 닭의장풀의 일종인 칫타공(라오어 이름 냐캇피)라고 부르는 풀이라고 한다. 화전 한가득 자라서 벼에 좋지 않은 풀로서, 인간이 뽑으면 "(나를 뽑아서) 그루터기의 머리에 놓으면 열매가 된다. (나를 뽑아서) 쓰러진 나무 위에 두면 꽃이 핀다. (나를 뽑아서) 흙 위에 놓으면 썩어서 죽는다."라고 말하며 인간을 협박하고 속인다. 캄족의 사이에서는 이 상통 마을의 사례 이외에도 뽑아낸 풀을 '흙(지면)'에 폐기하면 '죽는다'라고 말하며 속인다고 이야기하는 사례가 있다. 


또한 다이뎅족이 사는 호아팡의 삼타이군 남크앙 마을에서도 화전에서 가장 곤란한 풀은 역시 닭의장풀의 일종인냐캇프라는 풀이다. 이 풀은 제초하는 인간에 대하여 "(나를 뽑아서) 쓰러진 나무 위에 버리면 말의 등에 타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나를 뽑아서) 태우고 남은 나무 위에 버리면 겨울에 추울 때 햇빛이 드는 것(처럼 따뜻하여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며 인간을 속인다. 타이족계와 라오족 사이에는 뽑아낸 풀의 폐기 장소로 '하천에흘려 보낸다' '불속(태운다)' 등의 사례가 있어 캄족과의 차이가 뚜렷하다. 이들 전승은 말할 수 있는 요소는 민족의 차이가 확인되지만, 모두 닭의장풀이 지닌 강한 가뭄 저항성과 번식력에 주목하며 인간을 속이고 우롱하며 협박하는 풀로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점에 특징이 있다.



(3) 제초 작업의 기원 이야기


캄족 사이에는 제초 작업의 기원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예를 들면, 루앙남타의 나레군 통통 마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와루(제초용 작은 괭이)는 자기 혼자서 풀을 없애고 있었다. 그 대신, 와루가 물을 마시고 싶을 때는 인간이 물을 나르러 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여성이 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늦어졌다. 와루는 벌채한 그루터기 위에 허리를 기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성은 "와루야, 너는 어디에 있니'라고 부르짖어, 와루는 놀라서 그루터기에서 떨어져 버린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 여성은 떨어진 와루를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 이후 와루는 스스로 풀을 없애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인간이 풀을 없애야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악행에 의하여 스스로 제초 작업을 해야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건 캄족에게 특징적으로 확인되는 전승이다.




생육을 촉진하는 의례


첫번째 제초가 끝나고 벼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시기에, 더욱 성장을 촉진하여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가 행해진다. 


예를 들면, 타일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남바크군 곳크낭 마을에서는 씨를 심고서 2개월 지나, 벼의 길이가 넓적다리 높이 정도가 될 무렵 홍카오헷이라는 의례를 행한다. 성스러운 밭의 벼 앞에 집에서 가져온 가이 메이 웅 카오(닭·암컷·감싸다·벼)라고 부르는, 가족으로 기른 가운데 자주 알을 낳고 자주 병아리를 키운 닭과 파슈우(수컷)이란 살아 있는 물고기 2마리를 홍(제물용 작은 오두막) 안에 산 채로 바친다. 그리고 그 집의 여성이 사용하고 있는 목걸이와 비녀, 치마 등을 홍에 걸고, 그 위에 우산을 건다. 다음으로 홍을 지탱하고 있는 대나무 기둥과오두막을 흰 무명실로 연결하고, 승려에게 부탁해 쌀의 혼이 모이도록 염불을 외워 기도를 드린다. 승려의 기도가 끝나면 물고기를 건지는 데 쓰는 삼각그물을 가지고 밭 전체를 건져 올리면서 그 사람이 밭 안에서 예쁘다고 생각하는 돌과 그외의 것을 넣고서 홍을 지탱하고 있는 대나무 기둥의 아래에 놓는다. 그뒤 파슈우, 파캉이란 두 마리 물고기를 하천에 돌려 보낸다. 이 의례에 닭과 물고기를 바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다.


옛날, 타일족은 벼농사는 하지 않았다. 파마이 히마팡(숲·풍부한 야성)이란 산속에 지름이 주먹 일곱 개 크기의알이 큰 벼 이삭이 있어서, 수확 시기가 되면 라오카오(곳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종을 퐁이라고 두드리면, 알곡이 날아와서 저절로 가득차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죽은 메마이(과부)의 할머니가 라오카오를 다시 만들었다. 그런데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시간이 걸려 완성하기 전에 손에 가지고 있던 막대기가 종에 닿아 버렸다. 다른 집의 라오카오는 알곡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기에 날아온 알곡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할머니의 라오카오는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날아온 알곡은 밖에 머물렀다. 할머니는 분하고 너무 화가 나서 막대기로 그 알곡을 쳤던 바, 현재처럼 작은 알곡으로 쪼개져서 마을 전부의 알곡이 하천과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숲으로 도망간 알곡은 카이파(야생 새)가 보관하고, 하천으로 도망간 알곡은 파슈우라는 종류의 낭타로타랑이란 이름의 암컷 물고기가 보관했다. 그 이후 10만 년 동안 타일족은 알곡이 없애져 버렸다. 그런데 10만 년 뒤, 어느 부유한 여성이 힝(삼각그물)을 가지고 하천에 고기잡이하러 갔던 바, 파캉이란 종류의 수컷 물고기를 사로잡았다. 그는 낭타로타랑의 연인이었기에 그녀는 '연인을 잡으면 곤란하니 파캉을 살려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여성이 파캉을 돌려주니 낭타로타랑은 벼를 주었다. 그때부터 타일족은 다시 벼를 손에 넣어 벼농사를 시작할 수있었다. 그래서 홍카오헷의 의식에 가이 메이 웅 카오와 파캉, 파슈우라는 살아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바친다.


즉, 이 성장을 촉진하고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는 이러한 날아오는 거대한 쌀, 도망간 벼, 야생 새(암컷)와 물고기(암컷)에 의한 보관, 벼의 부활, 벼농사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신화에 뒷받침되는 의례인 것을 알 수 있다. 의례에초청된 벼의 혼은 닭(암컷)과 물고기(암컷)를 바치는 것으로 안녕하게 되고, 벼의 부활을 건져올린 삼각그물로 밭의 보물을 건져올려 바치는 것으로 벼의 풍요가 약속되는 것이다.


또한 캄족의 사이에서는 닭과 돼지, 물소 등을 제물로 삼아 벼의 혼을 대접하고 벼의 풍요를 기도하는 의례를 행한다. 예를 들면, 루앙남타의 나레군 삼송 마을에서는 벼가 영글기 전, 아직 알곡이 푸를 무렵에 벼의 수확이 많아지도록 라망 곳(혼·벼)라는 의례를 행한다. 밭의 오두막 근처에 춋(마이봉의 대나무)를 한 개(의례를 행하는 사람에 따라서 숫자는 바뀌며, 많은 사람은 12개를 세우기도 함) 세운다. 춋에는 각 마디마다 폿쵸(얇게 깎아 술처럼 만든 장식물)을 장식하고, 그 대나무 끝에서 슈로이(대나무의 테를 연결한 것)를 늘어뜨리고, 그 끝에다 싱(새), 카(물고기), 호이(매미)의 대나무로 짠 모형을 붙인다. 춋의 아래에 원형 밥상을 놓고, 그 둘레를 대나무 고치의 울타리로 에워싼다. 밥상 위에 알, 꽃, 빙로스(여성이 씹는 베텔야자의 열매로 만든 기호품), 돈(동전)을 바친다. 다음으로 춋의 아래에서 돼지를 죽여서 그 생피를 춋의 지면에 뿌리면서 "여기에서 돼지 한 마리를 죽여서 바쳤습니다. 라망곳(벼의 혼)들은 여기에 와서 드세요. 드시면 벼가 잘 영글게 해주세요."라고 외친다. 돼지를요리하면 간장과 폐, 머리, 꼬리, 뒷다리 하나(이것만은 날로)를 앞과 똑같은 말을 외치면서 밥상 위에 바친다. 그뒤 모두 돼지의 요리를 먹는다.


여기에서도 새와 물고기의 모습이 보이고, 벼의 혼을 안녕하게 하는 장치인 것이 틀림없다. 또 매미는 서늘함을 가져오고,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것도 벼의 혼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민족마다 의례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양하지만, 벼의 혼에 대한 경외와 공경의 마음이 의례의 중심인 것은 공통된 관념이라 말할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병의 배제와 낙뢰 방지 등 벼의 성장을 촉진하는 의례가 다양하게 발견된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결실의 시기를 맞이하고, 수확 작업이 시작된다.




다중 구조를 가진 수확 의례


수확 작업에 수반한 의례도 다양하다. 민족에 따라서 덜 익은 벼를 수확하여 볶은 햅쌀로 먹는 수확 시작 의례, 본격적인 수확 작업의 개시기에 행하는 의례, 탈곡 의례, 마을의 곳간에 옮겨 들이는 때의 의례 등 민족에 따라서다양하다. 여기에서는 아카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뭉싱군 야루 마을의 사례를 증심으로 살펴보겠다.



(1) 수확 시작과 햅쌀을 먹기 시작하는 의례


우선 오도 고(벼·따다)라는 의례를 행한다. 벼의 이삭이 반쯤 누렇게 되고 반은 푸르게 남아 있는 무렵에 행한다. 이것은 최초로 햅쌀을 먹는 의례이다. 


먼저 밭에 가는 건 남성(집의 장남 또는 차남이라도 상관없다. 자식이 없을 때는 사위도 상관없음)과 여성(여주인 또는 딸 중에서)이 한 조이다. 남주인은 가서는 안 된다. 만약 남주인이 나가다가 도중에 뱀이 길을 가로지르는 걸 우연히 만나면 그 이후 아피포로(집의 선조 영혼)에게 관련된 의례를 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집을 나올 때는 페통(어깨에 거는 검은 베로 만든 자루)을 어깨에 걸고, 남성은 좌우의 손에 화로의 재를 한 움큼씩 쥐고집을 나선다. 마을의 로콩(마을 출입구의 수호문)을 나와 잠깐 간다면, 먼저 오른손의 재를 뿌리고 다음으로 왼손의 재를 뿌린다. 이것은 길의 좌우에서 뱀이 횡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행한다. 


밭에 도착하면 포페춍(성스런 밭의 조각 이엉을 한 오두막)의 뒤쪽에 파종했던 벼 포기 중에서 잘 영근 세 개의 이삭을 가장 이삭 끝에 가까운 잎의 부근부터 따서 거두어 페통에 넣는다. 그리고 보통 밭의 메벼와 찰벼를 각각 양손으로 한 그릇 분량을 훑어 거두어 페통에 담는다. 포페춍의 뒤쪽에 심었던 벼 포기를 베어 거두어 포페춍의 지붕 위에 올리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면 아피포로호니라는 아피포로의 기둥에 페통을 그대로 걸어둔다. 시에퓨(볶은 쌀)을 만든다. 보통의밭에서 훑어 거두어 온 메벼와 찰벼를 따로 분류하여 냄비로 볶는다. 조금 식혀서 작은 절구로 찧고, 왕겨와 쌀겨를 날려서 정미하고, 바나나잎에 넣어 로코(수원지)에서 길어 온 물을 조금 붓고 감싼다. 이 의례는 중요한 의례이기에, 깨끗한 붉은 수탉을 죽인다. 대나무로 짠 밥상 위에 멥쌀과 찹쌀의 시에퓨, 조리한 닭의 머리, 발, 간장의 고기, 시파(술), 로보(차)를 올린다.


다음으로 포페춍의 뒤쪽에서 따서 거둔 세 개의 이삭을 페통에서 꺼내고 로코의 물로 씻어서 밥상 위에 훑어 떨어뜨린다. 세 이삭의 줄기는 아피포로의 카테(시렁)에 걸려 있는 오도체누라는 고리에 걸어 놓는다. 남주인은 그밥상을 아피포로 앞에 옮기고, 아피포로카테에 조금씩 바친다. 남주인은 아피포로카테에서 공물을 내려서 고기를조금 먹고, 여주인과 자식, 딸의 순서로 먹게 한다. 그뒤 볶은 쌀을 가족이 먹는다.



화전 밭벼밭의 포페춍(루앙남타의 몽싱군 아카족)




세 개의 이삭에서 밥상 위에 훑어 떨어뜨린 알곡은 파종할 때 남은 볍씨의 자루에 함께 담아서 아피포로의 아래(여주인이 잘 때의 머리 부근)에 보관한다. 이 자루의 알곡을 세유다마라 말하고, 이듬해의 볍씨에 섞을 수 있다.


다만 밥쌀이 부족하다면 오도고의 의례를 서둘러 행한다. 그것은 이 의례를 하지 않으면 햅쌀을 먹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카아게이족이 사는 보케오의 뭉군 퐁사왕 마을에서도 먹는 쌀이 부족하면 '호도 고(벼의 꽃·따다)'를 서둘러 행한다. 아직 푸른 알곡을 훑어서 냄비로 볶고, 햇빛에 말리고 정미하여 '호 스(쌀·새롭다)'라고 부르는 볶은 쌀을 만들어 아피포로에 먹게 하고 자신들도 먹는다. 이것을 끝마친 뒤에는 볶은 쌀을 만들어 먹어도 괜찮다.


또한 캄족이나 타이족계, 라오족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밥쌀 부족을 보완하기 위하여, 볶은 쌀 만들기를 행하고 있다. 캄족이 사는 우돔사이의 사이군 남렝 마을에서 옛날에는 밥쌀이 부족해질 때 곳프라웃프라는 볶은 쌀을 만들어 먹었다. 루잇(도둑질)을 하러 간다고 하며 밭에 가서, 정식 밭의 입구가 아닌 곳으로 들어가 올벼가 아직 어중간하게 푸른 쌀을 수확해 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고, 집 밖에 둔다. 선조들의 영혼에게 보이지 않도록 집 밖에서 탈곡하고, 볶아서 햇빛에 말리고 정미한다. 먹을 때는 집 안에서 먹는다.고파라웃프는 소량씩 몇 번이나 만들고, 해에 따라서는 올벼의 벼를 모조리 먹어 치우는 일도 있다.


이 오도고라는 의례가 끝나면 일반 밭의 벼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벼를 베어 거두면 서서히 체풍 바우(낟가리 쌓기·나르다)를 한다.



(2) 마을의 곳간으로 운반해 들이는 의례


밭의 벼베가가 전부 끝나면 체풍 마(낟가리 쌓기·크다)라는 의례를 행한다. 포페춍 뒤쪽의 성스러운 밭에 심었던 벼를 베어 거두고, 이삭을 토란 위에 올리는 체풍 마를 두 개 만들어 포페춍 앞에 바치고, 밭 안 각각의 체풍 바우 알곡을 탈곡한다. 옛날에는 발로 비벼서 탈곡했다. 그것이 모두 끝나면, 마지막으로 체풍 마의 알곡을 발로 비벼서 탈곡한다. 체풍 마 하나의 알곡은 집의 곳간에 최초로 운반해 들여 한가운데에 놓고, 그것에 작은 돌을 넣는다. 그뒤 밭의 탈곡한 알곡을 전부 날라 들인다. 여기에는 성스러운 밭의 벼의 혼을 일반 밭의 알곡에도 이전시킨다는 주술감염적인 의의를 읽을 수 있다.



(3) 볍씨를 곳간에 수납하는 의례


집의 곳간에 알곡을 날라다 넣는 일이 끝나면 '포유풰'라는 의례를 행한다. 다음날 오전 7시부터 8시쯤에 아피포로의 아래(여성이 잘 때의 머리 부근)에 보관하고 있던 셰유다마라고 부르는 알곡과 체풍 마의 의례에서 남았던 또 하나의 알곡을 섞어서, 치지마공(볍씨의 곳간)에 가지고 가 수납한다. 그때 치지마공 안의 가치가우(달걀)이 쪼개져 있으면 교환하고, 쪼개져 있지 않으면 그대로 놔둔다.


다음으로 시마와 포하라는 두 종류의 나뭇잎을 준비한다. 그리고 호챠챠페(찹쌀죽), 지파(소주), 로포(차)를 각각 바나나잎으로 감싼 걸 두 묶음 , 바나나잎으로 감싼 삶은 달걀을 1개, 포하잎에 감싼 호챠챠페를 2개를 준비한다. 그들과 키요(벼를 베는 낫), 대나무 끈 3개를 사이카토(바구니)에 넣어서 밭으로 향한다. 로콩(마을 입구의 문)을 나와 잠시 하는 바로, 포하잎에 감싼 호챠챠페 2개를 길의 오른쪽과 왼쪽에 던져 버린다. 이것은 뱀이 길을 가로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밭에 도착하면 포페춍 주변을 키요로 청소하고, 지면에 구덩이를 만들고 시마잎을 깐다. 그 위에 집에서 가져온 삶은 달걀을 놓고, 다시 그 위에다 시마잎으로 덮는다.


다음으로 성스러운 밭에 남아 있는 벼 포기의 줄기 위쪽과 아래쪽에 바나나잎으로 감싼 호챠챠페, 지파, 로포를 위쪽에는 아래로 향하게, 아래쪽에는 위를 향하게 붙인다. 


그리고 줄기의 위쪽과 아래쪽 사이를 키요로 잘라 버리고, 위쪽 줄기는 사이카토에 담아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아래쪽의 물건은 밭을 지키는 포페춍의 영혼이 먹을거리로 그대로 남겨 놓는다. 숨겨 놓았던 삶은 달걀을 몰래 훔쳐 나오듯이 꺼내고, 사이카토에 담아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포페춍을 해체하여 집으로 가져오고, 키요로 잘랐던 위쪽 줄기와 물건은 아래로 향하게 하고, 치지마공에 단다. 이 의례를 하면, 올해의 벼농사 작업이 모두 끝나게 된다. 이 의례를 하지 않아 포페춍을 헐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밭 안에 물소가 들어온다면, 돼지를 죽여서 의례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병에 걸리고 죽어 버린다고 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매우 복잡한 정중하고 신중한 의례이다. 특히 어느 단계에서도 포페춍 뒤쪽의 성스러운 밭에의례적으로 심었던 벼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종 의례의 절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벼를 해마다 볍씨로 계속하여 쭉 파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벼 혼의 계승'이며, 이것이 벼농사 또는 벼농사 의례의 주제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파종 의례에서 심은 볍씨를 계속하여 심는 '벼 혼의 계승'은 캄족과 타이족계사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벼의 수확 기술에 대해 언급하겠다.




(4) 수확 작업과 수확 도구


벼의 수확 기술은 민족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① 알곡을 맨손으로 훑어 거두는 수확 방법

캄족은 이삭 끝부터 알곡을 훑어 거두는 방법으로 수확한다. 벵홋토라고 부르는 작은 바구니를 배 앞에 안고서, 한손으로 벼이삭을 끌어당기고 다른 한쪽 손으로 훑어 넣는다. 벵홋토가 가득차면 양홋토라는 큰 운반용 바구니에 옮기고, 밭의 곳간으로 운반해 들인다. 캄족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수확하는 것에 대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벼쌀 신화를 보면 벼의 혼은 인간이 의례를 하지 않았거나 두드리는 등 난폭하게 훑으면 도망가서 숨어 버린다고 믿고 있으며, 맨손으로 훑는 것이 벼의 혼을 공손하게 훑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훑어 거두는 밭벼의 수확(루앙프라방의 몽싱군 동 마을 캄족)



②이삭 따는 도구를 사용하는 수확 방법

캄족이 맨손으로 훑어 거두는 것에 반하여, 몽족과 야오족, 타일족, 타이뎅족, 타이담족, 라오족 등의 사이에서는 이삭의 머리를 따는 도구로 따서 거두는 방법으로 수확한다. 이 이삭 따는 도구는 민족에 따라서 형태에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몽족은 '비오'라고 부르는 이삭 따는 도구를 사용한다. 반월판 모양의 배 부분에 날을 설치하고, 판에뚫린 구멍에 끈을 꿰어 그 끈을 손등에 걸고 손바닥으로 감싸듯이 하여 쥔다. 벼의 이삭 머리에 날을 대고 중지와 약지로 이삭 머리를 끌어들여 따서 거두는 것이다. 따서 거둔 이삭은 한쪽 손으로 들고, 꽉 차면 묶는다. 


야오족의 이삭 따는 도구는 '짓푸'라고 부르며, 몽족의 반월판 모양에 직각이 되도록 대롱의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손잡이를 다는 방법은 판의 뒤쪽 꼭대기에 가까운 부분에 구멍을 뚫고, 속이 빈 대롱의 측면에 홈을 넣어 판의 구멍 부분과 대롱의 빈 공간을 맞추어서 대나무 꼬치를 꿰어 고정하는 방법이다. 대롱의 손잡이는 판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이 길고 한쪽은 짧다. 긴쪽은 비스듬하게 깎아서 뾰족하게 하고, 그쪽을 위로 하여 세워서 쥐고 중지와 약지로 이삭 머리를 끌어들여 따서 거두는 것이다. 따서 거둔 이삭은 한쪽 손으로 들고 꽉 차면 단으로 묶는다. 손잡이의 뾰족한 부분은 따서 거둔 벼이삭을 단으로 묶을 때 머리카락에 꽂거나 잎에 물거나 한다.


이에 반하여 타이족계의 이삭 따는 도구는 '헤얏푸'라고 부르며, 판의 모양이 새나 물고기, 곤충 등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손잡이의 부착법, 사용방법은 야오족과 변함 없지만, 손잡이의 길이는 손의 너비이고, 양끝이 횡단면으로 잘려 있다. 특히 후아팡과 솅크왕에 사는 타이뎅족과 타이무이족 등의 타이족계 사람들 사이에는 새와 물고기 모양의 것을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면, 타이무이족이 사는 솅크왕 캄군 포시 마을에서는 인간의 악행에 의하여 숲과 하천에 숨은 벼를 새와 물고기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인간의 소원으로 다시인간의 곁에 가져다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신화를 가진다. 그래서 파종 의례에서는 새의 모형을 만들어 바치고, 이삭 따는 도구를 새나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것은 루앙프라방의 남바크군 곳크낭 마을의 타일족이 말하는 숲으로 도망간 벼는 붉은 야생 암탉이, 물가로 도망간 벼는 물고기 암컷이 보관하고, 10만 년 뒤에 인간의 곁에 돌아왔다는 볍씨 부활 신화와 같은 뿌리이다. 모두 벼(또는 벼의 혼)와 새와 물고기의 친근성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신화이다. 새와 물고기 모양의 이삭 다는 도구의 배 부분에 날이 있어, 그곳으로 벼를 끌어들여서 따서 거두는 건 그곳이야말로 벼 또는 벼의 혼이 가장 안심할 수 있다는 상징적 장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타이뎅족이 사는 후아팡의 삼타이군 나라 마을에서는 새 모양의 헤얏푸로 수확하면 하늘을 날듯이 수확이 진행된다고말한다. 이것도 또한 벼농사 신화를 배경으로 하여 구체화된 수확 기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③이삭 따는 도구에서 벼를 베는 낫으로

그러나 이러한 이삭 따는 도구가 서서히 벼를 베는 낫으로 변화해 간다. 그 계기는 탈립성이 큰 품종이 도입된 점과 논벼농사의 도입이다. 예를 들면, 앞의 타이뎅족이 사는 나라 마을에서는 키요라고 부르는 벼를 베는 낫이 도입된 건 1990년부터이다. 그것은 이삭을 세게 내리쳐서 탈곡할 수 있게 되어, 그때 아래에 까는 대나무 깔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받아들였다. 현재는 비닐시트를 구하게 되어서, 키요에 의한 수확이 많아졌다. 또한 사회의 변화로 일찍 베어 거두는 일을 요구하게 된 점도 키요를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


그러나 카오탕이란 품종만은 이삭 끝을 배 모양으로 만든 절구에 넣어 절굿공이로 찧어서 탈곡하지 않으면 왕겨가 떨어지지 않아서 이삭 끝부터 따서 거둘 필요 때문에 이삭 따는 도구를 사용한다. 키요로는 이삭 끝부터 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탈립성이 낮은 품종이 남아 있는 한, 이삭 따는 도구는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새와 물고기에 의한 볍씨 부활 신화와 벼의 혼에 대한 관념도 계속 이야기될 것이다.




새 모양의 헤얏푸 사용법(후아팡의 삼타이군 나라 마을 타이뎅족)


 



화전터에 대한 시선 -숲을 먹고, 숲은 기르는 화전 농경


지금까지 화전의 연구는 작물 재배가 종료하기까지를 그 대상으로 하고, 그 화전터에 대해서는 휴한지라고 하며 결말을 냈다. 그러나 라오스 북부의 화전민에게는 재배가 끝난 뒤에도 그 화전터는 중요한 식량의 채집지이자, 대나무 세공은 물론 자재의 채집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캄크엥족이 사는 루앙남타의 남타군 챠룽슷 마을은 1년 동안 벼를 재배하면 그 이후는 대부분 작물은 심지 않는다. 3년째부터 9년째까지 렝카뇽(젊은 숲)이라 부르고, 재생과정의 숲이라 평가한다. 10년째부터 14년째까지를 렝케(늙은 숲)이라 부른다. 15년 이상인 숲을 카챠라고 부르고, 다시 화전을 할 수 있는 재생된 숲이라 평가한다. 재생 과정인 렝카뇽에서는 대나무의 아이를 시작으로, 5-7월의 시기에는 티모이, 티타왕, 티토룽, 티톳크, 티카 등의 티(버섯) 종류와 랏쿵파이, 쿵팡, 랏쿠링, 라뇨네, 라캉타토 등의 버섯 종류도 채취한다. 그외에는 라(야생 나물)로서 라타우에이, 라풍펫, 라왕 등이채취된다고 하며, 재배 정지 이후 3년째부터 9년째의 숲에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채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곳에는 그들을 먹이로 하는 멧돼지와 사슴 등의 야생동물이 모이고, 인간에 의하여 수렵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로 화전터를 채소의 밭, 수렵장으로 반자연, 반재배의 상태로 관리한다고 해도 좋다.


게다가 화전터의 대나무에 대해서는 '냥눙 풋 포 마(젊을 때·먹는다·함께·밥), 냥타오 싯 포 요(늙었을 때·잔다·함께·사람)이란 속담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재생 과정에서 나오는 대나무의 아이는 먹을거리로 이용한다는 걸 나타내고 있다. 또 젊은 숲만이 아니라 렝케(늙은 숲)에서도 집의 건축자재가 되는 대나무를 채취하는 일도 볼 수 있다. 더구나 퐁사리의 마이송황 마을(라오크족)의 '히야포 시아(벌집은 7일), 야포 시누(밭의 둥지는 7년)'이란 속담은 벌집은 7일 지나면 벌꿀을 채취하고, 야포(3년째의 화전터)는 더 많은 7년이 경과하면, 즉 재배 정지부터 10년 지나면 다시 밭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며, 화전을 위하여 필요한 휴한 기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숲도 대나무가 섞인 숲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 속담은 대나무의 이용 방법을 설명함과 동시에,재생 과정의 숲에 대한 화전민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수확 4개월 뒤의 화전터에서 재생되는 대나무(후아팡의 삼타이군 도앙두 마을 타이뎅족)





이것이야말로 대나무의 강한 재생력을 인식한 '대나무의 화전' 그 자체이다. 이러한 대나무에 대한 인식은 1년째는 아와야마(조의 화전), 2년째는 대나무의 자식밭, 3년 되면 원래의 버섯의 화전, 10년 되면 또 조의 화전이란 전승과 깊이 연결된다. 


즉 작물 재배만이아니라, 화전터에 대한 반관리, 반재배, 반채집이란 화전민의 시선까지 포함하여 '화전'이라 파악하여 이해하는 것으로, 화전이 숲을 먹고, 숲을 길러 재생시키는 지속가능한 농경임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며


이상 라오스 북부에서 행하는 화전 벼농사의 여러 모습을 서술했다. 여기에서는 상세하게 언급할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화전에서 행하는 벼농사 의례와 벼농사 기술이 민족마다 풍부한 변이를 가지고 전승되고 있는거대한 쌀과 하늘을 나는 벼, 도망가 숨고 부활하는 벼, 사체에서 생기는 형태의 볍씨 기원, 도둑질하는 형태의 볍씨 기원, 이삭이 떨어지는 형태의 볍씨 기원 등 벼의 혼과 볍씨의 기원 및 부활을 이야기하는 신화에 지배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즉, 화전지 선정에 하는 의례, 성스러운 밭에서 하는 파종 의례, 생육 촉진 의례, 다중 구조를 지닌 수확 의례와 섞어짓기를 포함한 파종, 제초, 수확 등의 다양한 장면에서 숲의 영혼과 선조의 영혼, 벼의 혼들에 대한 배려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화에 지배된 벼농사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결과 숲의 난벌을 억제하고, 숲의 재생을 촉진하며, 다양한 볍씨를 유지하고, 지속가능하며, 민족마다 풍부한 다양성을 가진 벼농사를 성립시킨 것이다.


또한 라오스 북부의 캄족 사이에서는 벼의 씨를 심기 전에 스로라고 부르는 토란을 심어 모두 벼의 수확 이후에 토란을 수확하여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 선조에게 토란을 드시게 하지 않으면 선조의 영혼이 노하여 벼의 수확을사라지게 하거나, 가족을 죽게 하거나 병에 걸리게 한다는 전승이 존재한다. 그에 기반을 한 덩이뿌리 심기 의례,덩이뿌리의 수확 의례, 덩이뿌리 정월이 행히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화전 벼농사에 선행하여 화전 덩이뿌리 농사가 행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사사키 씨 등이 제창해 온 '조엽수림 문화론'이나 츠보이가 주장한 일본 열도의 '덩이뿌리 정월' 등의 의론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전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러한 동남아시아의 화전 벼농사 민족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축적된 일본 열도의 '벼농사 문화'를 다시 검토함으로써 경직화된 '논벼농사 민족사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민족문화가 혼재하는 다문화적인 일본 열도의 모습을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이 글에서 여러 번 기술한 라오스 북부의 화전 벼농사가 지금에 이르러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재생 과정의 화전터가 모조로 고무나무 숲이 되었다는 문제이다. 그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젊은 숲'이라 부르는 재생 과정의 숲과는 관계 없는, 숲 속 그늘의 풀이 모조리 배제되고, 고무나무만이 생육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영혼이나 신화의 존재 등과 멀리 떨어진 세계이다. 이미 그곳에서는 재생하지 못하는 화전터가 제한도 없이 전개되어 간다.그 앞에 보이는 건 '물 환경의 파괴'이다. 이야말로 '농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때'의 최전선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현상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화전 벼농사 농민'이 축적해 온 지혜의 총체를 배우고, 새롭게 그 다양한 본연의 상태와 지속가능한 환경의 관계하는 방식을 확인하며, 그 유효성을 제시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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