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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2




제2장 

논에서 살다

-논의 마음과 벼의 마음, 그것을 느끼는 농민의 마음   우네 유타카宇根豊





벼와 자연의 재정의



벼의 위치


논이 주는 은혜는 '쌀'로 대표되어 왔다. 애초 벼를 재배하기 위하여 논을 조성했기 때문에 그건 당연하다고 대부분의 일본인은 생각한다. 그러나 논이 주는 은혜는 논의 자연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 논의 자연이란 물론 햇빛과 물과 공기와 흙도 포함되지만, 벼 이외의 생물도 포함된다. 그것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농학이 없었던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만큼 논의 자연은 당연한 것처럼, 태고의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해마다 변함없이 삶을 반복해 왔다. 그것을 '자연'이라고 의식할 필요도 없으니 생산의 토대로서 연구할 일도 없었다.



그림2-1 논의 자연(돌이 있는 논)



그런데 논의 자연을 의식해야 하게 된 건, 주어진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자연이 농업의 근대화로 변화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논의 자연을 대표하는 생물이 뚜렷하게 감소해 버린 것, (2) 쌀을 논의 자연이 주는 '은혜'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농업기술로 '생산'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 점이 원인이다. 이 두 가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두 가지 이유가 함께 논의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벼로부터 소외시켰다. 이것은 벼에게도, 인간에게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벼에게 자연을, 인간에게 자연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벼와 자연


벼는 벼만 자라지 않는다. '벼는 벼만 자라면 좋으련만, 쓸모없는 것까지 함께 자라 버린다'는 불평은 근대화된 벼농사 기술의 특징이다. 그러나 벼는 벼만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이 '자연'이 되는 것이며, 그 자연으로부터 영속하는 은혜를 농민이 끌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때문에 논은 근대화되지 않는 가치를 미래에 남기고 있으며, 현대사회는 거기에서 이제야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후쿠오카현에서는 멸종위기종의 약 30%가 논의 생물이다(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현상(1)에 해당). 이들 생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이 발 벗고 나서야 된다. 그를 위해서는 벼와 멸종위기종의 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논에 이들 생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주시하고 확인하는 기술이 현재의 벼농사 기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현상(2)에 해당). 


물론 결코 멸종위기종만이 자연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아직까지도 도처에 살고 있는 생물 역시, 똑같이 이웃해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잊고 싶지 않다. 이 (1)과 (2)를 어떻게 연결하고, 극복할지가 과제이다. 조금 더 샘솟도록 구체적 사례를 들어 보자. 서일본에서는 참개구리가 급감하고 있다. 이는 이앙기의 보급에 의하여, 모를 앞마당이나 밭에서 모판에 마련하기 때문에 참개구리의 산란장소였던 5월의 물못자리가 소멸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참개구리의 감소가 벼에 의하여 어떤 악영향을 받는지 등을 생각하는 일도 없으며,그것보다 참개구리의 감소를 알아차리는 일도 나날이 희박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1)과 (2)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환기하는 '벼농사 세계'를 근대화 기술은 마침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후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늦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연결하면 좋다. 그 방법을 고민해 보자.



재생산에 대한 의심


농업경영과 농업기술에서는 '재생산'할 수 있는지 어떤지가 계속 문제가 되어 왔다. 다만 이 경우의 '재생산'은 경제적으로 비용을 보전補塡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 비용은 쌀의 판매로 마련하는 것이기에, 쌀값이 '생산원가'를 밑돌면 재상산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원가를 밑돌아도 대부분의 농민은 계속 재배하고 있다. 그건 어째서일까? 쌀만 생산물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쌀과 동시에 돈이 안 되는 많은 '자연의 은혜'를 끌어내고,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령 쌀의 생산비용을 보전하지 않아도 그것이 가족의 즐거움이라면, 사는 곳의 자연과 풍경을 지킨다면, 서로 이웃한 논에 필요하다면, 계속 논농사를 짓는 게 당연하다. 이것을 농업정책과 농학은 정당하게, 농農 안에 자리매김하도록 하지 못했다.


재생산이란 벼만이 아니라 논 안의 생물이 삶을 반복하는 일도 포함한다. 이러한 세계야말로 진정한 '벼의 생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20년 전부터 농업생산의 재정의를 주장했는데, 드디어 그것이 지방의 농업정책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즉 넓고 풍부한 '벼의 생산'을 쌀의 판매액만이 아니라 주민의 자연환경에 대한 지출(세금, 행정 예산)로도 보전하는 정책이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면, 쌀은 400kg밖에 거두지 못하지만 고추잠자리는 5천 마리나 살 수 있는 논이 있다고 하자. 논은 쌀의 판매가 적지만 자연이 풍요롭기에, 고추잠자리의 가치를 정책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 경우 (1)쌀의 수확량이 적은 만큼 보전하든지, (2)고추잠자리의 가치를 지불하든지 하는 식으로 발상을 달리한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에서는 어느 쪽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정책을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농민에게도 말할 수 있다. 돈이 되는 생산을 위한 조성금, 보조금 정책만 요구했던 건 근대화 도중의 어쩔 수 없는 체질이었다.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후쿠오카현에서는 2006년부터 (1)이나 (2)가 아닌 '생물 조사'에 몰두하는 농민에게, 일본 최초로 '환경지불'이란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생물 조사를 하면서 고추잠자리를 기르고 있는 농사를 평가하는 이치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이 논은 쌀만 재배하는 장소라는 농업관을 전환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다.



'생기다'에서 '만들다'론으로 재고하기 


그런데 현대 일본인은 농민도 포함하여 '쌀을 만든다'고 표현하는데, '쌀이 생긴다'에서 '쌀을 만든다'로 전환된 건 언제 시작되었을까? 예를 들어 '안전성'을 요구하는 심정은 당연히 '생산이력(traceability)'이란 관리 체제에 이를 것이다. 그것도 끊임없는 현장검사와 내부고발이 없으면 부패한다. 이러한 체제가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계속될까? 애초 근대화의 무엇이 이러한 사태를 불러왔을까?


몇 년 전 이웃의 할머니에게 토마토를 받았다. "당신 밭의 토마토는 올해 일찌감치 시들었네요. 우리 건 아직 달리니까, 가지고 가요."라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농약은 언제 살포하고 분석해 보았나요?" 등이라며 안전성의 생산이력을 파악하려는 정신을 발휘하려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토마토가 달리지 않는 걸 걱정하여 가지고 온 할머니의 염려에 감사하며 고맙게 받는다. 


이 경우의 '받는' 대상은 물론 토마토이지만, 거기에는 할머니의 애정도 있고 천지의 은혜도 있다. 할머니는 토마토를 길러서 토마토가 생긴 것이다, 할머니가 '만든' 것은 아니다 하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만약 할머니가 '만든' 것이라면 안전성의 책임은 할머니에게 있다. 한편 토마토가 '생긴' 것이라면 책임은 자연에게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머니가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 건 결정적인 분수령이 아니지만, 분명히 '생긴다'에서 '만든다'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은 결정적으로 '생긴다'에서 '만든다'로 이행하도록 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유기농업은 '만든다'에 대한 위화감을 계속 가지고 있던 게 아닐까? 물론 유기농업이 모두 '생긴다'는 감각으로 영위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생긴다'라는 입장을 견지하지 않으면 '천지, 자연의 은혜'에서 소원해지고, 천지와 자연이란 '세계 인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만든다'는 건 골치 아픈 일이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손길이 미치지 않고, 눈길이 미치지 않으며, '자연환경에 대한 영향 파악'이 소홀해졌다. 안전성의 확보도 어려워졌다. 결국 농민은 '제조이력과 유통과정의 파악'을 위한 서류 작성에 전념해야 했다. '서류'와 '수치'로 안전을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건 근대화 농업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유기농업까지 '서류'와 '수치'를 요구받아야 하는 것일까? 


소비하는 쪽이 대부분 근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좁고 갑갑한 자연관, 농업관을 전환할 수 있을까?



'자연'의 재정의


사람들에게 여러 번 "논은 자연일까요?"라고 물어 본다. '자연 그것이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모두 머리를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서 그림2-2를 보고서 번호로 답하라 하면 대부분의 농민은 "4"라고 답하고, 대부분의 도시민은 "2"라고 답한다. 하는 김에 소개하자면, '가장 가치 있는 자연은 어디입니까?"라는 물음에는 "1"이라는 답이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대부분이다.



그림2-2 현대의 자연관을 그림으로 표현.





[1]

[2]

[3]

[4]

[5]

합계

이상적인 자연이란어떤 형태인지

92명

1명

0명

0명

0명

93명

당신이 지킬 수 있는 자연은 어떤 것인지

2명

18명

42명

31명

0명

93명

논은 어떤 자연인지(비농가)

0명

28명

41명

19명

4명

92명

논은 어떤 자연인지(농민만)

0명

61명

98명

131명

16명

306명

표2-1

 



이러한 자연관은 과연 일본인의 전통적인 자연관일까? 난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연을 생각하거나 물을 때 '자연'이란 단어와 개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데에서 기인하는 올가미(자연에 대한 선입관을 주는 것)를 대부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림2-2는 당연한 것처럼 자연과 인간을 나누고 있다. 나누고 있기 때문에 '자연'이란 개념이 성립한다는 것을 일본인은 의식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유럽에서 수입된 사상이어서, 일본인의 전통적인 자연관(자칫 이러한 표현이 자가당착에 빠지지만, '자연관'이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태는 심각하다)이란 전혀 다르다. 그것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유럽의 자연관에 물들고, 받아들여 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사태는 뜻밖에도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대의 일본인이라도, 특히 연배가 있는 사람은 이러한 이분법에 어딘가 위화감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앞에 기술한 질문에 간단히 답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다음 난제는 더욱 뿌리가 깊다. 그림2-2 같은 '세계 인식'은 자연에서 작용하는 농업의 구조를 오인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1"의 원생자연이 가장 가치 있는 자연이라는 가치관은 (1)서양에서는 '신이 만든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쉽지만, (2)한편 농업이란 인간이 그 자연을 파괴해 나아가는 형태라는 이해도 낳게 되었다(무엇보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는 농업과 환경의 관계도 일찍부터 추궁해 왔다는 데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지만). (3)그것을 과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는 간단하지 않다. (4)게다가 일본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취급해 오지 않았던 전통이 있기에, 이러한 도식에서는 자연의 풍요는 표현할 수 없다. 즉 '자연'이란 개념을 산출한 적이 없었던 일과 생활이란 평가는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우리 일본인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는 메이지 이후(물론 그 이전도) 본격적으로 문제 삼았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더군다나 농업에서는 자연은 '농업생산의 제한요인'으로 연구대상이 되어 왔지만, 농업에 의하여 풍요로워지거나 일본인이 좋아하는 자연이 된 적은, 즉 일본인의 '자연관'을 형성해 왔던 것에는 연구나 고찰이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자연에서 천지로


나는 '2차적 자연'이란 표현이 싫다. '몸에 가까운 자연'이란 표현이 좋다. '2차적 자연'이란 개념은 '원생자연'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안한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원생자연' 쪽이 원래의 자연이고, 원래의 가치가 있으며, 그 본래의 자연을 개조한 것이 '2차적 자연'이라는 가치판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틀림없다. 여기에는 원래의 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며, 신의 의지가 '자연의 섭리'로서 보존되어 있고, 2차적 자연에는 그것이 숨겨져 있다는 서양 기원의 '자연관'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그건 유럽에서는 정당한 견해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원생자연'을 알지 못하고, 이 두 가지를 1차와 2차로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확실히 '인위'와 '자연'을 나누는 그림2-2 같은 자연의 구조를 어느 새인가 대부분의 일본인은 상상하게 되었다.그러나 그림2-2 같은 자연의 인상은 일찍이 '자연환경'을 지시하는 단어인 '자연'을 가지지 않았던 일본인에게는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나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이란 개념도 생기지 않았다. 즉 자연을 자연의 바깥에서 보는 일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면, 인위와 자연이 융합된 형태야말로 예전의 자연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자연은 인위의 밖에 있다. 그것이 농과 자연을 대립시킨 원흉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현대적인, 농에 뿌리를 내린 자연관을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한다. 인위와 자연을 나누지 않는, 나누어서 생각하더라도 그 관계를 지탱하며 떠받치고 있는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다시 한번 자연관을 백지로 돌려서 '2차적 자연'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서 신변의 자연을 응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도 그 일부인 자연(천지)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몸에 가까운 자연(천지)이다. 그것은 바깥쪽에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원생이라든지 2차적이라는 밖에서 보는 견해와는 관계가 없다. 게다가 그 자연(천지)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가치는 없어도 매우 소중하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 자연(천지)의 안에 벼도 생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천지'라고 부르고 싶다. 자연을 바깥쪽에서볼 때 '자연'이라 명명되듯이, 자연을 안쪽에서만 느낄 때 그것이 자신도 포함된 '천지유정'이라 느끼는 것이다. 이 바깥쪽에서 보는 자연관과 안쪽에서 보는 천지관이 어떻게 대립하고, 어떻게 융합하는지는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다.




기술이 아닌 일을


일에 있고 기술에 없는 것


일에 있고 기술에 없는 건 무엇일까? 많이 있을 것이다. '벼' '전통' '정념' '애정' '경험' '인간관계' '자연관계' '천지유정' '신' '전승' 아이' '제사' '민속' 등등. 거꾸로 기술에 있고 일에 없는 건 무엇일까? 만약 기술이 일에서추출된 것이라면, 모든 일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런데 농업기술 안에는 농사일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그건 '벼' '국가와 국민' '근대화' '과학' '생산성' 등이다. 이건 농을 '기술'이란 체로 쳐서 체 위에 남은 것을 '기술'이라 명명한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새롭게 덧붙인 속성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기술'은 일에 비하면 보편성을 가지고, 과학적이며, 국민과 국가에게도 유용한 것이라는 인상은 당연한 것이며, 그러한 것으로 형성되어 고쳐지고 있다. '아니, 새로운 기술도 그때까지의 경험과 모순되지 않는 것이 많은 건 농사일의 합리성을 흡수하고 살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호의적인 수용은 대부분의 농민에게서 발견되는 것인데,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풍작과 다수확은 다르다. '일이 순조롭게 되다'와 '생산성이 높다'는 건 별개의 사상이다. 제초와 김매기는 언뜻 비슷하나 다른 것이다. 농사일과 농업노동도 서로 겹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 가정의 자급이란 연장선 위에는국가의 식량자급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 상징적인 예를 들어 보자. 논두렁의 풀베기를 할 때 개구리가 앞을 횡단한다. 그때마다 나는 풀베기를 주저하며 멈추어 서게 된다. 이러한 일이 가을이 되면 몇 미터마다 계속된다. 이 주저하여 일이 정체되는 시간을 누계하면, 한나절에 10분이 된다. 과연 이 10분은 나에게, 일본 농업에게, 일본 농정에게, 일본 국민에게, 국가에게 쓸데없는 시간일까? 


현대의 농학에서는 아주 간단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 시간은 쌀의 경제가치에 따라서는 어떤 공헌도 하지 않는 시간이고, 생산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또한 생태학자에게 개구리라는 생물을 지키는 시간이라고 변호해 달라고 사정해도 '주저하지 않아도 300평당 1천 마리 있는 늪개구리를 2-3마리 참살하는 정도라면 개구리의밀도에는 영향이 별로 없다'고 냉정한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내가 주저하는 행위는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건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농사일 속의 애정을 옹호하고, 가치를 매기는 기술론(사상)은 쇠퇴해 왔다.


그러나 다른 시선이 있어도 좋다. 그래서 내가 만약 개구리에 주저하지 않고서 논두렁 풀베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까? 틀림없이 나의 농민으로서 생물의 정감에 반응하는 힘은 옅어져, 생물에 에워싸여 사는 정념은 죽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벼 주변에 미치는 천지유정의 세계와 벼의 관계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관계를 이야기하는 일도 사라진다. 벼의 마음은 농업기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일 속에서 기술은 추출할 수 있을까?


그런데 '기술'은 일 속에서 빼낸다고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고 있다. 공업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하여 기술은 장인의 솜씨에서 매뉴얼화되어 눈부실 만큼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산업계에서 평가가 높은 '셀 방식'의 생산방법이어도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높일 목적이 강한 만큼, 노동시간이 끝나면 일찍 공장을 등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이 끝나고 '막상 돌아가게 되지만, 한번 더 벼의 얼굴을 보고 귀로에 오르자'라는 농사일의 세계는 어느 새인가 이러한 매뉴얼로부터 사라졌다. 아니 나는 공업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빨리 벼의 얼굴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일의 핵심에 버티고 앉은 정감인데, 근대적인 농업기술 안에는 모습도형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건 기술의 주변에 어른거리고 있는 단순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있었기에 근대화 기술에 대한 위화와 혐오를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도록 이끈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일 안에 놔둔 곳을 잊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분실물을 가지러 돌아간다는 이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농업기술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농민의 생각을 공업처럼 잘라 버렸기에 성립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잘라 버렸다는 자각이 있으면 괜찮다. 그러한 자각이 있다면, 버린 것을 '분실물'로 상기하고, 가지로 돌아가는 길을 갈 인간을 바보 취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발견은 그 분실물 안에 농사일의 핵심이 있고, 근대적인 농업기술 안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핵심을 일단 여기에서는 '애정'이라 부르자.


그렇게 말하면, 일찍이 나는 나이 든 농민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지금 젊은 농민은 김매기가 끝나고 기대가 된다든지, 수확량이 줄지 않는다든지, 어째서 자기 일만 이야기하는가? 어째서 벼가 기뻐한다고 느끼지 않는가?"


근대화 정신에서는 제초는 벼가 잘 자라게 하려고 하는 작업이지만, 그 근거를 인간의 이익인 '경제'에서만 찾는다. 벼가 잘 자라는 건 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의하여 수익을 얻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변질이 어디선가 생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을 위해서라고 훈계하는 힘이 벼를 위해서라고 타이르는 힘을 이기게 되었다. 분명히 이러면 벼에 대한 애정은 죽어 갈 것이다.



유기농업 안에 남아 있는 일


나는 이미 20년 정도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근대화된 농업에서는 중요한 것이 소멸되어 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국가가 유기농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법률도 제정되었다.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유기농업도 '근대화 정신'으로 해석되어 지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것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려고 한다. 나의 제안은 두 가지이다.


(1)자연 파악 기술(생물 기술)을 형성한다

근대화 기술이 버려 온 것을 건져 올리려면, 그 건져 올린 것을 측정하는 척도가 필요해지는 게 당연하다. 가장 좋은 건 '자연환경 파악 기술'일 것이다. 그래서 유기농업 기술이어도 환경 파악 기술이 부수되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해 보고 싶다. '유기농업은 환경에 우수한 농법입니다'라는 언설이 정착하고 있는데도 왜 유기농업에는 '환경을 파악하는 기술'을 형성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유기농업 기술을 일 안에서 추출할 때 놔둔 채 잊고 온 것이다. 또는 일 안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정의에서 발안했기 때문이다. 일 안에 놔두고 가버린 최대의 것은 자연(생물, 유정, 풍경)에 대한 "눈길"이다. 이 "눈길"을 기술 안에 한번 더 뜯어서 다시 꿰매는 공부를 '자연환경 파악'이라 부르는 것이다('영향평가'가 아님).


먼저 유기농업 기술의 자연환경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일을 창조하고 싶다. 그 중심은 '생물 조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생물 목록 만들기와 생물 지표 만들기에 기를 쓰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농민이 중심이 되어서 경험이나 전통 및 애정을 동원해, 반드시 종래의 '과학'적인 것으로부터 일탈하는 부분도 많아질 것이다. 이 일탈이야말로 중요하다.


"30년 만에 물장군을 보았다"고 얼굴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농민이 있다. 생물 조사를 끝낸 뒤의 일이다. 특별히 물장군이 있다고 그 논의 생산력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지 모르지만(사실은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알 수 없음) 백성의 눈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기에 새로운 단어가 생겼다. 생물 조사의 목적은 확실히 (A)우리집(우리 마을) 논의 자연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농약 감소와 유기농업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하여, 논의 생물을 지키기 위하여 등이라는 밖으로 열린 의의와 (B)생물의 이름을 배우기 위하여, 아이와 손주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등이라는 자기 내부를 향한다는, 말하자면 '자기 만족'적인 목적이 있다.


(A)는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가 말한다. 성과도 계산하기 쉽고, 이것을 공적으로 지원할 이유도 설명하기 쉽다. 한편 (B)는 확실히 그 사람의 풍부한 경험과 새로운 애정을 가져올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정신적인 충실함이나 성과는 남에게는 알리기 어렵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금 전국에 퍼지고 있는 '생물 조사'는 (A)의 동기로 시작된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지속시키고 깊게 만드는 힘은 (B)에 의하여 생성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과학'이나 '학문'이나 '정치'는 (A)에만 주목한다. 나는 진정한 성과는 참가자의 눈길에 가져온 풍부함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환경 파악 기술이란 (A)와 (B)의 공존에 의하여,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이 된다.


(2)기술을 일 안에 채워 넣다


반복해서 말한다면, '기술'을 '일' 안에 채워 넣고, 한번 더 인간의 '애정'으로 감싸 안는 것이다. 그를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기술의 성과를 일이 끝난 뒤의 '달성감'이나 '경제효과'와 '노동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근대화 척도에 맡기고 있음) 일 한가운데의 '충실'과 '생물이 보이는 방법'과 '작물의 소리'와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리는 즐거움' 등으로 측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곤혹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단어가 있지 않을까? 그러한 단어가 부족했기에 근대화의 군문에 투항하게 되었을 것이다.

② 근대적인 시간을 한번 더 생물의 시간에 맞추어 '노동시간 단축'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은 짧은 쪽이 좋다는 공업의 노동 가치가 농사일과 농업기술에서 풍부함을 빼앗은 최대의 원인이다. 생물(작물이나 동반 생물)의 자람새에 맞추기 때문에 "눈길"도 생물에게 미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청개구리 올챙이의 다리는 부화한 지 30일 만에 나온다'는 과학적 식견은 부화하고 30일 동안은 물을 빼서는 안 된다는 생물기술에 의하여, 생물의 삶의 시간을 기술에 짜 넣어서 노동시간 단축이란 근대화 정신에 대항하는 일로 성장할 수 있다.  

③ 근대적인 척도를 적용시키는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다. 육아나 제사에 효율을 요구하지 않듯이, 일에도 효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상과 '정치' '체제'를 구상하고 싶다. 돈으로 대표되는 '적극적인 가치'가 아니라, 실은 인생이란 돈으로 안 된다는 '소극적인 가치'로 떠받쳐지는 것을 이론화함으로써 달성하고 싶다.

④ 생물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방법을 개발하고 싶다. 곤충과 풀과 벼와 채소에 대한 애정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다. 일의 성과를 '벼가 기뻐하고 있다'라고 표현해 버리는 전통을 이론화할 수는 없을까? 풀에서 자욱한 정감을느끼면서, 즉 풀의 이름을 부르면서 풀베기를 하는 것과 풀의 이름도 모르면서 풀베기를 하는 것은 왜 일의 충실감이 다른지, 애정의 존재 장소를 일 안에서 찾아내고 기술을 감싸고 싶다.



근대화의 척도가 아닌 것


나는 '논두렁 풀베기'는 다분히 가까운 미래에 유기농업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관행농업에서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유기농업이 아니다'라는 반론은 (1)관행농업이 논두렁에 모조리 제초제를 사용하게 되면, 이것도 유기농업이 되기를 용인하게 되고, (2)관행농업에서도 근대화 농업에 대한 저항이 존재하며, 즉 나름대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농민의 정념에 둔감하다는 증거일 것이고, (3)유기농업이 탈근대화 농업이란 점을 시야에 넣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무농약, 무화학비료' 이외의 다양한 탈근대화 시도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 즉 유기농업적 세계를 풍요롭게 확장시키는 것이 농업 근대화에 제동을 걸고, 유기농업의 세계를 넓혀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부분에만 주목한다면, 다른 부분의 근대화는 더욱 가속되어 유기농업과 유기농업적 삶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이 정의도 재검토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탈근대화의 경계 구분이 풍부함에 있다면, 무농약이 아니어도 유기농업에 불러들여도 좋지 않을까?


유기농업을 진척시킨다는 건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부분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 농업에 대한 제동장치를 공유하는 농업을 늘린다는 것이 아닐까? 몹시 오해를 불러오는 표현이기 때문에 강조해 놓고 싶은 건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척도를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기술적이고 자연과학적인, 더구나 지극히 부분적인 척도만으로 유기농업의 정신은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전쟁 이전에는 모두 무농약이었다."라는 발언은 옳지만 "전쟁 이전에는 대부분이 유기농업이었다."는 언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기농업은 탈근대화의 개념이지만 무농약, 무화학비료는 근대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정의'를 떠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유기농업 농민의 '삶의 보람'으로부터 공통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비근대화 척도'를 추출하자. 그리고 그 척도로 모든 농업기술, 농업경영, 농민의 생계, 농사일, 농업정책을 분석하고 다시 해석하며 다시 조직할 수 있다면 맑고 산뜻한 방법이 생긴다.


유기농업을 '탈근대화'의 다채로운 시도를 하는 농업을 전개하는 것이라 다시 정의하고 싶다. 그것은 먼저 (1)근대화 기술을, (2)근대적인 노동관을, (3)근대적인 생활양식을, (4)근대적인 자연관을, (5)근대적인 농업경영관을, (6)근대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농업정책을, (7)근대적인 농업지도 방식을 되묻게 된다. 그를 위하여'비근대화 척도'를 제시해야 한다. 그 한 예를 다음에 나타낸다.


예를 들면 '안전성'을 찾는 소비자의 요구가 어느 새인가 농약의 잔류분석이나 생산이력 관리 강화라는 방향으로나아가, 행정의 통제에 따라 해결되어 간 것은 체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러한 체계에 흡수되어 버릴 정도의 안전성 확보라는 '척도'만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사상이 아니었을까? 거기에는 근대적인 인간의 욕망 달성을 위한 '안전성'만 비대해져 버렸다. 탈근대화의 사상은 희박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의 역량 부족은 충분히 알면서, 몇 가지 분석의 실례를 간단하게 묘사해 두고자 한다. 


(1) [자연] 농업의 토대에 있으면서 그것 때문에 주어진 것(전제)이라 간주되며, 방법론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자연'에 깊숙히 들어간다. '자연'이란 단어는 이미 '세계인식'이란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논밭의 자연환경을 '세계인식'을 목표로 재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과학이며, 생물의 전모 파악과 관계성 파악은 그 단면이 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전통적인 '천지유정'관에는 그러한 전체적인 관점은 없으며, 다만 그 한가운데에 몰입하여 동화되어 가려는 자세가 강하다. 이것을 '학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정념'론의 형성이 빠질 수 없다.

(2) [정념] 마찬가지로, 학문의 토대에 있는 것으로, 학문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생물에게서 느끼는 정감과 그에응하는 인간의 정념에도 깊숙히 들어간다. 그를 위해서는 근대화 정신에 의하여(종래의 일본 농학에 의하여) 일 안에서 노동이 추출되는 동시에 기술이 추출되는 순간에, 일 안의 많은 풍부함이 '학문'으로부터 누락된 것을 재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먼저 ①일의 충실, 기쁨, 자랑을 반영하고 싶다. ②다음으로 일의 대상이 되는 것과 교류하고, 애정을 다시 표현하고 싶다. 나아가 ③기술과 생활이, 경제보다도 그러한 정념에 의하여 떠받쳐지는 구조를 분명하게 하고 싶다.

(3) [생활 방식] 예를 들어, 자신의 논밭에는 어떤 조건이 빠져 있다고 한다(산의 그늘로 일조가 적은, 화산재 토양으로 인산이 충분하지 않은, 아내와 사별하여 혼자 일하고 있는 등). 그것을 보완하든지, 그것을 보완하기보다 떠맡아 살아가든지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근대화는 예외 없이 보완하는 방법론이 융성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떠맡는 방법론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 떠맡는다면 그러한 결함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을 건져 올린다. 


이처럼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분석과 함께 '표현'의 방법론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걸 볼 수 있다. '학문'은 표현의 체계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화 척도

새로운 해석

탈근대화 척도

그 근거 및 내실

노동시간

길어도 좋다

생물

함께 일하는 것이 있는 게 좋다

소득

낮아도 좋다

풍경

풍경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수확량

낮아도 좋다

삶의 보람

돈이 되지 않는 근거

생산비용

많아도 좋다

에너지 수지

투입 에너지가 적음

노임

낮아도 좋다

생계

자연, 인간과 관계성이 깊음

안전성

생물의 관계에 대한 안정과 안전

생물다양성

어떠한 관계인지

이윤의 사용법

자연으로 환원

가족의 참가

노인과 아이가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지

노동강도

즐거우면 좋다

소비자와 연결하기

농을 지지하는 존재

경영확대

지속한다면 좋다

자급

돈이 안 되는 것도 자급한다

환경보전

경영의 중요한 일부

자연

지키는 일

보조금

돈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지원

애정의 근원

표2-2 근대화 척도와 비근대화 척도





세계인식의 문


과학적인 세계인식

 

세계인식 등은 전혀 문제로 삼지도 않고 다만 오로지 좁은 '생산'에 힘쓰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생물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안쪽으로부터의 눈길이 쇠퇴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면, 자연이 중요하지는 않고 자연에 대한 눈길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도 논의 생물 조사가 퍼지고 있다. 참으로 기쁘다. 생물 조사를 한다면, 대부분의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이 생물은 여기에 있는 걸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갈까?' '물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쟁기질하면 어떻게 될까?' '겨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생물에 대한 눈길이 애정으로 깊어져 간다는 증거이다.


다만, 항상 이러한 수준에 머무르고, 여기에서 앞으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고, 오히려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런데 생물 조사를 한 아이들 가운데 '논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생물이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아이가 있다. 이 물음은 '이 논의 세계 전체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라는 세계인식의문을 지금 바로 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어른은 과학자를 포함해도 거의 없다. 그것은 그렇겠고, 신이라도 아닌 한 세계의 모든 생물을 인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을 대신하여 그것을 행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었을까?


'논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전체 목록을 만들어 봅시다. 그렇게 하면 논이란 어떤 세계인지가 분명해질 겁니다.'라고 '과학'이라면 생각하고 싶겠다. 그런데 농학조차 이 문을 활짝 열어놓지 않았다. 가장 잘 연구되고 있는논에서도 생물 전체 종의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단이 없었던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1) 너무나 종류가 많고, 전문성으로 세분화된 연구자가 힘에 겨웠기 때문에. (2)전체 종을 밝히기보다 해충과 날씨 등을 명확히 하는 쪽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애초 전체 종을 밝히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슬슬 이것에 착수해도 좋지 않을까? 왜냐하면 생물 조사 등이라는 세계인식에 대한 접근을 지닌 운동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 농과 자연의 연구소에서는 '논의 생물 전체 종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그림2-3은 5년 전쯤에 내가 발표했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보통 벌레'라는 일본다운 개념인데, 서양의 '생물다양성'과 만나서 세계인식에 눈을 뜬 순간에 발안되었다. 즉 '보통 벌레'라는 개념이 없으면 농민의 눈길은 해충과 익충으로 머물러, '세계인식'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그림2-3 논의 세계인식(당초 '보통 벌레'는 약 700종이라 상정했는데, 현시점에서는 약 1800종이 된다).




이 해충과 익충의 생산관계를 논의 전체로 넓혀 '세계인식'으로 가져 간 것이 '보통 벌레'라는 개념이었다. 



보통 벌레의 발견


'보통 벌레'라는 개념은 1989년에 필자와 히다카 카즈마사日鷹一雅 씨가 제창하여 무엇을 위해 그곳에 있을까 하는 감격을 이끌어내고, 히다카 씨가 '심상치 않은 벌레'라는 것, 즉 관계성의 확대를 발견하고 필자에 의하여 대개의 보통 벌레가 이른바 '자연의 생물'이라는 점 때문에 농업에서 '자연'을 재발견했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이란 개념이 1992년에 제시되기 전에는 그것이 농학적인 세계인식이란 점은 의식되지 않았던 느낌이 든다. 그림2-3에서 보고서야 '보통 벌레' 없이는, 적어도 생물을 통한 세계인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다. 즉, 그림2-3은 두드러지게 바깥쪽에서 이루어지는, 곧 과학적인 세계인식의 접근이었다.


사실 그림2-3을 제시하는 전제로, 논의 생물 '전체 종 목록'이 필요하다. 그림2-3은 2003년에 필자가 묘사한 것인데, 당시 확실한 '전체 종 목록'이 있었을 리는 없다. 따라서 이 표의 수치는 크게 고치려고 한다. 농과 자연의 연고수는 현재 '전체 종 목록'의 작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완성된다.


표2-3에는 이 '전체 종 목록'의 개략적인 수를 표시해 놓았다. 여기에서 '과학'은 큰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이 전체 종을 누가 인식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한 가지 대답은 "이건 특정한 인간이 인식하지는 못한다. 과학이 인식하는 것이다."라는 답이다. 그것으로 끝내려고 한다면 "그런 건 농민과는 관계가 없다."고 잘라 버릴 것이다. 



동물

곤충

거미

양서류

물고기, 조개

새우, 게, 물벼룩 등

지렁이, 선충 등

조류

포유류

1364종

121종

55종

186종

159종

83종

243종

37종

합계 2248종

총합계 3901종

식물

쌍떡잎식물

외떡잎식물

양치류, 이끼

물풀류

균류

971종

401종

85종

148종

48종

합계 1653종

표2-3 기타 원생생물 832종이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농학에서는 세계인식의 관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①자연이 주어진 것으로 자리매김되어, 세계도 또한 당연하다는듯이 그곳에 있으며 농민은 당연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서돌이켜 볼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반은 옳고, 반은 분명히 틀렸다. 확실히 농민에게는 세계인식과 비슷한 건이 있지만, 그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과학적인 세계인식이 아니라 '천지관'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②농학은 세계인식에서 출발할 필요도 없고, 또한 세계인식에 도달할 필요도 없었다는 점이다.그건 일본 농학이 국가의 학문으로, 근대화의 학문으로, 처음부터 지닌 성격이었다. 즉 '천지관'이란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것으로서 국가가 개입할 필요도 없고, 근대화에 의해서 '천지관'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천지관'과 맺는 관계는 그러할지도 모르지만, '세계인식'은 어땠을까? 자연에 작용하는 인간의 학문이라는 농학에 의하여 세계인식에 대한 지향은 전혀 없었을 리 없고, 산업화의 학문으로강하게 자리매김이 됨으로써 사그라든 것이 아닐까?



새로운 농사일


'생물 조사'가 확실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 농과 자연의 연구소도 걱정 없이 해산할 수 있다. 그런데 '생물 조사'는 과학적인 세계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민이 조사하고 있는 건 논에서도 겨우 150종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 종의 실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세계인식으로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 


논의 생물 조사는 생물의 목록 작성(은혜 원부 작성)을 위한 수단인데,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① '농민의 풍부한 눈길'이 부활했다. 그건 농사일이 불러오는 원래의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물장군을 30년 만에 보았다"고 말했던 농민의 말은 물장군의 존재와 함께 30년 동안 부재했던 눈길을 그의 눈에서 열고 있다. 즉, 자연과 함께 일에 대한 눈길이 부활하고 있다.

② '논의 생물 목록'이 자동적으로 생겼다. 그건 종이의 현장수첩이나 보고용지 안에도 있지만, 최고의 소장고는 농민의 가슴 속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물(생물 목록, 즉 세계인식의 장부)을 앞으로는 끌어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③ 논의 "은혜"(다면적 기능)에 대하여 '환경지불'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생각하면, 당연히 '지불 근거'를 분명히 해야 한다. 다음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 이르면 지불한다는 '기준'이 필요해진다. 더구나 그 '수준'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농민이 확인하는(조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 농민의 신청이 타당한지를 점검하는방법이 필요해진다. 



생물 조사의 목적


후쿠오카현에서는 논의 생물 조사에 조성금을 지불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게다가 이 환경 지불에 '주민과 육성하는 농의 은혜 사업"이라고 명명했다. 말할 것도 없이 "농의 은혜"란 돈이 되지 않는 '생산물'인 것이다. 이와 같이일본에서 '환경정책'은 반드시 가치 전환의 준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벼를 떠받쳐 왔던 벼 이외의 '생물'에 대하여 정책의 눈이 닿은 것을 나는 만감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게다가 이 생물 조사에 대한 환경 지불은 뜻밖으로 전개되고 있다. 표2-4는 생물 조사를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 참가자인 농민에게 2년이 지난 뒤에 조사한 결과이다. 참고로 2007년 1월에 미야기현에서 생물 조사를 하고 있는 농민에게 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올린다. (다만 후쿠오카현에서는 한 가지만 회답을 받았는데, 미야기현에서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후쿠오카현 농의 은혜 지구

미야기현의 모임

숫자(명)    비율(%)

숫자(명)    비율(%)

1. 생물의 이름과 생태를 알기 위해

2. 저농약, 유기농업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3. 농산물에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4. 지역의 보물찾기

5. 자신의 줄거움과 공부를 위해

6. 가족과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7. 미래를 위해

8. 환경을 지키기 위해

9. 환경 지불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10. 농업에 대한 견해와 농정을 바꾸기 위해

11. 기타

무효 회답

     15        8.9

     50      29.6

       4        2.4

       5        3.0

       6        3.6

       1        0.6

       6        3.6

     43       25.4

       7        4.1

     11        6.5

       5        3.0

     16        9.5

    12        13.0

    19        20.7

    15        16.3

     -

    11        12.0

     7          7.6

    14        15.2

     -

     2          2.2

    12        13.0

     -

     -

소계

     169     100.0

    92        100.0

표2-4  당신에게 논의 생물 조사를 실시하는 의의는 무엇입니까?


 


(1) 기술에 돌아가는 농민의 본성

확실히 자신의 기술 성과를 생물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두 현의 농민이라도 많다. 즉 농업기술의 연장이라고 취급하고 있다. 기존은 생산성(수확량이나 소득)이란 근대화 척도로 취급해 왔는데, 새로운 확인법과 표현방법을 발견하려 한다. 농약의 잔류분석조사 등의 자료가 아니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지표와 표현을 탐색하려 하고 있다. 이 지표의 최대 특징은 농약잔류나 쌀의 성분 등 같이 쌀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쌀의 외부에우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2) 외부에 대한 눈길

그러니까, 생물의 실태가 '환경을 지키기 위해'라는 지표도 된다. '지역의 보물'이라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행동을 같이하는 일의 본질로서 더욱 생물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고, 좀더 상세하게 생물을 관찰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나와서, 자기만의 것으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지역의 아이들과 '미래를 위해'서도 하려고 한다.


(3) 목적의 확산과 개발

중요한 건 이들 생물 조사는 기존의 조사처럼 미리 결정된 '목적'을 위해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사하면서 목적도 탐색하고,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당초의 목적이었던 '환경 지불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라는 목적이 희박해지고, '농업에 대한 견해와 농정을 바꾸기 위해'라는 목적도 생긴다. 


(4) 생물 인증의 문

주목할 만한 하나의 획기적인 점은 '농산물에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라는 회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무농약, 저농약'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생물 자체를 가치로 표현하고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물 인증'이란 새로운 양식이 생기는 중이다. 쌀의 내부 성분표시(농약잔류도 포함하여)가 아니라, 쌀의 외부 세계를 쌀에 연결한다는 발상이 탄생하고 있다.


(5) 자신을 응시하는 계기

그건 그렇다 치고 '자신의 즐거움과 공부를 위해'라는 농민도 적지 않은 건, 내부에 갇혀 있는 듯한 인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야말로 생물 조사의 최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을 응시한다는 일의 의미가 이만큼 분명해졌던 일은 없을 것이다. 농민은 생물을 이용하려 하기 전에 생물과 마주보고, 주시하며, 교류한다. 물론이처럼 명백하게 의식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영혼의 교류'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듯한 시간을 보냈다. 이체험이 농민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 것이다. 농민이라면 자연을 응시하는 건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벼가 벼만 자라도록 하는 세계를 추구해 온 '근대화 벼농사'에 푹 잠겨 왔던 몸에서는 발견의 연속이었다. 여기에서부터 연달아 단어가 생기고 있다. 가족에게, 지역의 주민에게, 소비자에게, 그 단어는 도달한다. 단어 역시 논의 생산물일지도 모른다.



생물에 대한 눈길을 가지고 있는 것 


사실 '세계인식'의 문은 이렇게 과학적인(자연과 인간을 나누는 견해를 토대로 한 세계인식) 입구만이 아니다. 더욱 매력적이고 심오한 방법도 있다. 농민은 모든 종을 알지 못해도, 논의 일은 잘 알고 있다. 한정된 생물과 단단하고 깊이 행동을 같이하여, 그 생물과 자신의 관계를 토대로 하여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다.


일찍이 농민은 식물이라면 약 400종, 동물도 300종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생물과의 관계는 깊고 넓었다. 그만큼 세계도 넓고 풍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식물 100종, 동물도 80종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생물과 행동을 같이하는,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결정적으로 줄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농촌의 아이들에게도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논밭에는 '이름 없는' 곤충과 풀이 늘어난다. 생물들은 소리를 맞추어 말할 것이다. "이름이 있는데 인간은 불러주지 않네?"라고. 생물과 마주보며, 일과 생계 안에서, 즉 일상 속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이 또 하나의세계인식이었다. 물론 그 이름은 '사투리'였으며, 이름을 부르는 건 그 생물도 자신도 같은 생물, 같은 종류라는 똑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의 표명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세계인식을 중개하는 목적으로 '생물 조사'가 시작된 것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러한 내발적이고 전통적인 세계인식과 바깥쪽에서 보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전체 종 목록'이 어떻게 만날지를 생각해 보자. 한번 더 표2-3을 보자. 곤충이 1364종, 거미가 121종, 식물이 1653종이 논에서 살고 있다. 이외에도 합계하면 4733종이었다. 


먼저 이 목록을 넘기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 때때로 알고 있는 이름을 만나면 안심하며 기뻐할 것이다.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건 분류학자만이 아니다. 농민 또한 필연적으로 이름을 붙여서 불러 왔다. 이름이 없는 생물들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생물은 '생물'이라고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름을부르는 것만이 생물이란 말이다. 


이 목록은 아마 내발적인 세계인식을 돕는 외부의 도구가 될 것이다.



고추잠자리를 과학을 통해 볼까, 정감을 통해 볼까


올여름도 갑자원 야구장에서는 고교 야구 소년과 함께 고추잠자리가 춤추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이 잠자리는 서일본에서는 정령 잠자리라고 부르는 된장잠자리이다). 이 풍경은 해마다 반복된다. 어디에나 있던 '자연현상'이다. 관객도, 고추잠자리가 어느 논에서 태어나 갑자원까지 날아 왔는지 등은 의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한여름에 태어나는 고추잠자리는 약 200억 마리라고 생각한다(농과 자연의 연구소 조사에 의함). 이것은 상당한수가 아닐까? 일본인의 대부분이 고추잠자리를 좋아하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고추잠자리의 99%가 논에서 성충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농민도 예외가 아니다. 마을 안을 무리지어 나는 고추잠자리를 보고 논에서 태어난다든지, 300평에 1천 마리가 태어난다든지, 모내기 이후 산란하여 35일 걸려 성충이 된다든지, 처음에 어느 고추잠자리는 모내기할 때 해마다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온다든지 하는 등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없다. 그저 무리지어 나는 풍경을 만끽하기만 한다.그것이 자연과 일본인이 교제하는 방법이며, 그렇지 않으면 고추잠자리는 '자연의 생물'이 되지도 않았다. 


한편 '생물다양성'이란 과학의 냄새가 나는 개념으로 고추잠자리를 파악하는 일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논에 특화되어 숫자가 많다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논에서는 1평방미터에 10마리를 넘는다) 잠자리의 유충이 꽤 많은 생물을 먹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는 점, 성충이 된 뒤에도 광범위하게 출몰하며 많은 곤충을 먹으면서 3개월 이상 산다는 점 등이 이유이다. 그러나 그 실태는 아직 잘 파악되지 않았다. 최근 동일본의 논에서 태어나고 있는 고추잠자리(주로 고추좀잠자리임)가 격감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종류의 농약이 의심되고 있지만, 잘알 수 없다.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과제가 발견된다. (1)일본인은 고추잠자리를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즉 '고추잠자리'와 '생물다양성'을 연결하는 이론은 일본에서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각각을 따로따로 파악하고 있다.) (2)농업은 고추잠자리의 대부분이 논에서 태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가치라고 자리매김해 놓지 않는다.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고추잠자리를 절취선으로 농업에 생물다양성의 논리를 가지고 오는 건 쉽지가 않다. (물론 나는 고추잠자리로 상징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고, 고추잠자리를 다른 생물로 치환하여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에서 '생물다양성'이란 단어가 이 정도로 급속하게 보급된 것은 어째서일까? 확실히 1992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환경회의'에서 생물 전반의 보전에 관한 포괄적인 협약인 '생물다양성 조약'이 채택되어, 일본도 '생물다양성 국가전략'을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인 경과는 그렇지만, 일본인은 이 생물다양성을 '자연현상'의 대명사로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닐까? 자연은 생물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고,살아 있는 온갖 것 전부를 애지중지해 온 일본인의 전통적인 정감이 생물다양성이란 근대적인 개념을 수용한 토대였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의심도 남는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인 개념과 전통적인 전근대적인 애정이 참으로 융합하여 만날 수 있을까? 또한 서로를 자극하고, 깊게 만들 수 있을까? 일본인의 자연관을 현대적으로 재건하기 위해서도 '농업이 다시 만든 자연에 농업은 자부심을 갖는 동시에 책임도 지닌다.'라는 새로운 절취선을 비과학과 과학은 협동하여절개해 가고 싶은 것이다.




벼와 자연과 밥의 관계 지표


우리는 논의 생물 조사 결과를 그림2-4처럼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올챙이에 한정했는데, 후쿠오카현의 '환경 지불'에서는 지역마다 수십 종의 생물을 어와 같은 포스터로 만들었다. 나는 이 포스터를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물어보고 있다. "모두들 누구를 위해 밥을 먹고 있니?" 하면 "나를 위해서" "내 몸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때로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올챙이를 키우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해 본다면?"이라고 말하면 웃음이 교실 안에 퍼진다. "믿을 수 없어요!" "거짓말!" "바보 같아!"라고 소리를 높인다.



그림2-4 인간과 밥과 생물의 관계(2006년 후쿠오카현 농의 은혜 사업 자료에서)



"그렇네. 어른들은 더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더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논에 나갔을 때 벼주변에서 올챙이가 자라고 있었죠."라고 나는 말을 건다. 어느 새인가 벼는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현대인은 하고 있다. 벼 자신도 자연의 은혜를 받아서 자라고 있다. 이 벼와 자연의 생물과의 관계를 떠받치기위해서 농민만의 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이 벼와 올챙이와의 관계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이 벼를 해마다 따박따박 소비해 주는 인간이 필요하다. 벼는 '밥'이 되고, 인간을 자연과 연결해 준다. 이 관계가 사라졌기에 농과 자연의 관계도 사라졌다. 쌀을 먹는 건 농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소비'가 아니라, '자연보호'라고 부를 수도 있고 '식농교육' '자연관의 도야'라고 불러도 좋다. "만약 너희들이 한 그릇의 밥을 먹지 않는다면, 올챙이 35마리가 죽어 버리지."라고 이야기하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인간은 행복하다.


벼와 자연의 재정의란 이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비자도 포함하여, 인간이 자연과 깊이 행동을 같이하기 때문에 자연은 빛나고, 그곳에서는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포함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은혜가 생겨난다. 그 은혜의 총량을 계량하는 과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만들기 위하여 인간은 생물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벼 한 그루의 주변에서 꼬마물방개가 헤엄칠 것이다. 이 꼬마물방개와 벼의 생산이란 인과관계는 현대의 과학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볼 수 있는 것이다. 후쿠오카현의 많은 논에서는 벼 세 포기와 함께 꼬마물방개 1-3마리가 자라고 있다. 이 관계를 떠받치기 위하여 밥을 먹는 인간이 자라는 것이 논과 벼와 자연을 지키는 일이다.   





논은 천지유정


기능과 서비스가 아니라, 천지의 은혜


(1) 이삭줍기


이삭줍기 풍경을 죄다 보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콤바인으로 수확하여 떨어진 이삭을 줍기 어려워진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보다도 그렇게까지 하여 쌀을 거두지 않아도 된다는 정신이 이삭줍기를 그만두게 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가 요즘 들어 생각이 났다. 


예전의 농민은 쌀이 많이 수확된다면 '천지의 은혜가 컸기 때문이다'라고 자연(천지)에 감사를 드렸다. 현대에는'자신의 보살핌이, 자신이 채용한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을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쌀을 천지에게 받은 '은혜'라고 생각하면, 은혜를 등한시하는 일은 부끄럽다. '황송하다'라고 느낄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삭줍기를 체험하게 하는 건 이것이 목적이다. 


한편, 쌀의 생산을 자기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떨어진 이삭을 주울지 줍지 않을지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황송하다'든지 어떤지는 이삭줍기의 품삯과 수익을 저울질하여 정하게 된다. 2평방미터에 하나의 이삭이 떨어져 있다면, 300평에 500개로 약 1킬로그램이 된다. 쌀의 가격으로 치면, 약 300엔. 이 수확을 위해서 30분 걸린다면, 시급 600엔. (게다가 도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것으로는 할 맘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합리적이겠지만, 중요한 세계를 잃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놀라운 일을 지역의 93세 농민에게서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했다. "떨어진 이삭은 농민 이외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워도 좋다는 관습이었다." 농민은 전혀 줍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 아닐까? "벼베기가 끝나면, 자루를 가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논에서 이삭줍기에 힘쓰고 있었다."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소비자와의 교류'인 것이 아니다. 천지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사상이 건재했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결코 농민이 소비자에게 주는 인심이 아니었다. 


현재의 콤바인 수확에서는 떨어진 알곡이 1평방미터에 약 1000알, 즉 쭉정이나 덜 익은 알이 많기 때문에 약 10그램이니 300평당 약 10킬로그램 정도 된다. 상당한 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은혜'를 기러기나 백조, 학 등의 겨울 철새가 받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싶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먹는 알곡은 하루에 약 100그램이라 하면, 하루에 약 10평방미터의 논이 필요하다. 300평에서 약 100일분의 먹을거리가 기러기를 위하여, 은혜로 제공되고 있다. 


농이 현지에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농이 있었기에 가져오는 '은혜'가 인간 이외에게도 미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알기 쉬운 '떨어진 이삭' '떨어진 알곡'을 예로 들었지만, 그것 말고도 '은혜'는 무진장 많다. 이와 같은 세계의 구조를 이 나라의 농민은 만들어 왔다. (이렇게 하여 생물다양성도 지탱해 왔다.)


어떨까? 안쪽에서 나오는 '세계인식'은 천지의 은혜에 이른다. 그러나 이 '천지'란 '자연'과는 크게 다르다. 근대화된 '생산'에서 이러한 '은혜'가 흘러 떨어지는 것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이 '은혜'를 주워 올려 한번 더 세계로 돌려주는 학문은 없는 것일까?


(2) 다면적 기능을 뛰어넘는 '은혜'


농민에게 '다면적 기능'은 외부에서 찾아온 단어와 개념이다. 자신들의 실감과는 상당히 어긋나 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의식하도록 강요를 당한 것이다. '논에는 홍수방지 기능이 있다.' '논에는 생물 육성 기능이 있다.'라고 말하더라도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으며, 그러한 것이 자기 농사일의 결과로 생기고 있다고 실감하지도 않는다. 여기가 '농'의 대단한 바이나, 이것을 농민이 실감하고 당장 단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이 가치는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물을 뗄 때 생물이 걱정됩니까?'라는 설문조사에 대하여 '논의 생물 조사'를 한 적이 있는 농민 태반은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걱정되지 않는다는 건 10%였다). 이것은 생물의 '생명, 목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과 자신의 물떼기라는 농사일이 농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물 육성 기능'은 물떼기라는 농사일과 연결되어서 '기능'이 아니라 '실감'이 되어 의식된다. 여기에서 남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생긴다면, 그것은 '은혜'가 되어 가족과 지역의 사람이나 국민과 공유할 수 있다.


(3) '표현' '단어'가 가장 중요


각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건 '아직 이렇게 생물이 살아가고 있었나'라며 놀라는 말이다. '참으로 반갑다'라는 말도 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있었나'라는 깊은 반성을 동반하고 있는데, 감동이 과거의 경험과 연결된다는 점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시류 속에서 농민도 생물도 살아왔는데, 둘의 관계는 점점 옅어졌다. 그것은일본 사호의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어느 새인가 모습을 감춘 생물도 적지않았지만, 아직 살아 남아 이렇게 수십 년 만에 얼굴을 내민 생물이 있다. 


이 순간에 감동이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이 감동과 감개를 단어로 바꾼 것이 '전승하고 싶다'는 농민의 전통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물과의 관계를, 체험을 통해 계승해 왔기 때문이다. 생물에 대한 '눈길'은 시류를 넘어서 전해져 온 농의 문화이다. 이것도 '은혜'의 일종일지 모른다. 


자, 여기에서 생기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 단어야말로 '농의 은혜'를 전할 수 있다. 가족을, 주민을, 소비자를, 논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것을 기존의 '농정'은 거의 중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생산'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와서 '먹을거리'나 '자연환경'이나 '생물'이 화제에 오르게 되면, 새로운 현재의, 지역에 맞는 표현이 아니면 실감을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고, 단련하는 장을 제공하는 '농업정책'이 겨우 지방에서 생겼단 건 이미 기술했다.


아마 '생물 조사'의 최대 성과는 농민과 지역주민의 몸속에서 생긴 '실감'과 '단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농민의 원래 풍부한 "시선=세계인식"이었을 것이다. 




생물의 이름을 부르다


(1) 이름이란


벼가 기뻐하고 있을 때, 벼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농민은 벼를 부른다. 물론 "벼야!" 등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정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건 이불 속에 누워 있어도 들려 오는 소리이다. 절대로 이름도 모르는 풀과의 사이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농민은 어떤 농민이라도 일생 동안 수백의 생물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불가사의하지만,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논에서조차 생물 전체 종의 목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농과 자연의 연구소 프로젝트에서 표2-3 같은 개요가 밝혀졌는데, 곤충과 동물이 약 2300종, 식물이 1700종 정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농민으로서 이만큼의 생물 이름도 알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미야자키현 시바椎葉에서 화전을 하고 있던 농민은 실제로 500종류 남짓의 식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풀이 언제 싹이 트고, 언제 열매를 맺으며, 어떤 성질인지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의 이름은 시바의 언어(사투리)인데, 훨씬 예전의 농민이 생물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단 증명이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한 "옛날 사람은 그랬다"고 회피하기만 해도 좋은 것일까?


딱 잘라 말하면, 메이지 이후의 일본 농학에 도입된 '근대화 농업'에서는 생물의 이름을 새롭게 익힐 필요성이 없었다. 오히려 생물과 농민의 관계는 아주 차가워져 버렸다. (그에 대하여 '벌레 보는 판'은 최후의 싸움을 거는 듯한 의도가 있다. 그것을 아이들은 좋아하고, 즐겁게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찾아보는 경험은 농민에게도 자신과 생물의 관계를 문제삼는 일이다. 자신의 기술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계속 퍼지고 있다.)



"현재의 농민 역시 벼의 품종명과 도입된 천적의 이름은 곧바로 압니다"라고 반론하는데, 그것은 비료와 농약과 기계의 이름과 똑같은 차원의 것일 뿐이다. 대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동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토 시즈오伊東靜雄(1906-1953)의 단가를 떠올린다.


"우거진 풀숲 그늘의     이름도 없는 꽃에     이름을 부른,      처음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분은 린네 학자의 후예인 일본의 농학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논의 생물에게 이름을 불렀던 농민의 불가사의에 놀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모든 농민은 이 감상을체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논의 물속을 1밀리미터 정도의 물방개로 보이는 벌레가 한창 헤엄치고 있다. 한 그루에 몇 마리는 있을까? 나에게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게 '알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은 생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라면 머지않아 물방개 전문가를 만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농민이라면 그러한 기회를 만나지 못한 채로 일생을 마칠 것이다.


그보다도 이 작은 물방개를 알아채지 못하는 농민이 대부분이고, 알아채는 농민은 전국에 50명이나 있을까? 아니다, 알아채는 농민이 훨씬 많이 있겠지만 "무엇일까"라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러한 장면에서 '생물다양성'은농민의 등을 떠밀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농민의 등을 떠밀어서 '아, 이것이 꼬마물방개라고 하는 걸까? 정말로 많네. 한 그루에 다섯 마리는 있어."라고 깊이 파고드는 건 농업기술의 역할이다. 그러나 근대화 기술에서는 이러한 동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까 새로운 '환경기술'은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 


(2) 두 가지 이름 붙이는 방법


그래서 다시 한번 돌아보자. 이름을 배운다(개인적인 이름 짓기)는 건 자연의 전모를 인식하는 '과학'(A라고 부름)과 생계와 일 안에서 자연에서(경우에 따라서는 필요에 강요되어) 배운다(이름 붙이기)는(B라고 부름)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건 A와 B의 관계이다. 우리 현대인은 A 쪽이 압도적으로 상세하고정확하며 기재하는 종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 기술한 미야자키현 시바 지방의 농민처럼 '과학'이 등장하기 전에는, 아니 등장했어도 B가 A보다 깊고 상세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대에는 B의 경험자에게서 이름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A로서 교육으로 책과 도감에서 이름을 배운다. B의 대부분은 '사투리'이기 때문에, 좀처럼 전국 공통의 '교육'과 '학문'의 표준이 되지는 않는다. 이러면 B는 

'민속학'이나 '사투리 사전' 등의 안에 보존되어 쇠퇴하게 된다. 


그러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나의 경험으로 말하겠다. 나는 논에서 군무하는 '고추잠자리'의 표준 일본 이름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아이 무렵에도 붙잡고 놀았던 고추잠자리의 통칭은 '정령 잠자리'였다. 지금 사는 곳에서 농민이 되었지만, 이 지역에서 부르는 통칭은 '익잠자리(益トンボ)"이다. 이 잠자리가 도감에는 '된장잠자리'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을 때는 꽤나 감동했다. 왜냐하면 '동일본의 고추좀잠자리에는 없는 걸 인식할수 있고, 이제부터는 일본 전국에서 큐슈의 고추잠자리의 독자성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정령 잠자리라는 호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생시키는 길이다. A는 B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조금 번거롭게 느낄 수도 있지만, 도감은 A와 B가 병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풀이 자라고 있다. 그 풀을 뽑아, 그 제초라는 행위의 전체를 정념을 담아서 남에게 말할 때 '이름'이 생긴다. '어느 작은 풀'로는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표현이 필요해질 때, '이름'이 필요하다. 이러한 토양이 있기에 B가 전해져 왔다. 그러나 제초제가 보급되면 풀의 이름을 배울 여유가 있다면 새롭고 효과 좋은 제초제의 이름을 배우는 쪽이 유효하다. 더구나 그 제초제의 효과로 풀이 적어지면, 이제 풀 이름을 배울 필요성도 멀어진다.


실은 논 안의 잡초 가운데 80%는 벼와 경합하지 않는다. 즉 '해초'가 아니다. 제초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제초제로 죽이고 있다. 그것을 의식하는 일도 없다. 알아채지도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농민도 많을 것이다. 그것으로 '아무 관계도 없다'고 잘라 말할 것인가?


머지않아 논에서 제초제의 효과가 없는 풀이 생기기 시작한다. 풀에도 저항성이 발달하는 일이 분명해져 왔다. 그 풀에 푸르고 큰 가로줄무늬가 들어간 박가시나방 애벌레가 달라붙어 잎을 갉아먹고 있는 걸 청년 농민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흥미를 가지고 '화려한 청벌레'라고 자기 나름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논에서는 노란나비도 생기고 있다'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애벌레의 사진을 보았을 때, '앗, 저 화려한청벌레는 노란나비의 애벌레였을까?'라고 알아챈다. '노란나비'라는 새로운 이름 쪽이 전하기 쉽다. 그건 그것이 A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는 노란나비를 자신이 '화려한 청벌레'라고 불렀던 것도 잊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게다가 그는 두 번이나 이름을 지어 붙였다. 한 번은 B를. 그리고 또 한 번은 A를.


나는 A도 B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자신이 자연과 행동을 같이할 때의 기호이다. 이름의 정확성과 공통성보다 그 이름을 써서 그 대상과의 거리가 줄어들면 좋은 것이다. 그 생물에 대한 정념도 A에 넣어서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한번 더 B의 세계를 복권할 수 없을까 몽상한다. 어느 정도 A가 학회에서 축적되어 가더라도 B의 세계가 쇠퇴한다면 생물과 행동을 같이하는, 생물을 지키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실은 A는 B를 떠받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닐까?



유용성을 극복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벼는 벼만 자라면 좋다는 것을 일부러 벼를 먹는 해충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해충은 천적을 거느리고 있다. 더욱이 '보통 벌레'까지 미치고 있다. 그래서 논밭은 생물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은 생물의 관계망으로 성립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나는 젊은 시절, 퇴거되어 마을을 떠나 논이 사라지면 맨먼저 사라지는 게 참새라고 듣고서 감동했던 일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일은 당연한 것으로서, 해충 등은 동시에 사라진다. 독립하여 고립되어 있는 생물 등은 한 종도 없다. 그런데도 해충을구제하고, 배제하며, 방제한다고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비대화된 것은 마음의 병일지도 모른다. 근대가 생기게 한 정신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농학은 전면적으로 긍정해 왔다.


그것은 벼를 먹는 인간은 전면적으로 긍정되어, 똑같이 벼를 먹는 해충은 그 생존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정신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들이 '공존'이라 말하려면 먼저 해충과의 공생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본디부터 농업은 지향해 온 것이 아니었을까? 결코 인간만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는 것을 지향해 왔을 리가 없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해충의 비애는 우리 인간의 슬픔과 뿌리가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러한 슬픔을 품을 때, 또 생물끼리의 기쁨도 볼 수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서 나는 '농'의 풍부한 가능성을 본다. 인간이 생물로서, 자연 안에서 인간답게 살아 가기 위하여 어떠한 "눈길"이 유효할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농민에게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친다.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부차적이다. 그런데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사랑을 받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는 듯한 분위기이고, 인간으로 살기 힘든 사회가 되고 있다. 벌레를 보는 한에서도 그것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보통 벌레' 등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그 존재 가치를 그래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대부분은 증명하지 못해도 살아 있어서 좋다.


근대화되기 전 옛날 사람은 그점에서는 달랐다. 모든 생물에게는(식물과 산이나 강, 바람에도) 영혼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해, 인간과 동등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비과학적이라고 하여 잘라 버리는 건 간단하다. 그렇지 않고, 그러한 천지유정의 세계에 과학의 정밀한 지식을 '거듭 칠하면' 과학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12월이라는데 논두렁에는 놀라울 만큼 붉은빛의 광대나물이 무성히 피고, 하늘에는 깔따구떼가 이상한 모양을 만들며 춤추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 우리 농민은 살고 있다. 천지는 쭈욱 유정했고, 계속 유정할 것이다. 


전날도 젊은 농민이 쑥도 몰라서 놀라고 있으니 "쑥은 몰라도 농업경영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역습하여, 이것을 논파하느라 땀 깨나 흘렸다. 쑥은 아직 유용성이 조금은 남아 있는데, 이것을 뱀딸기나 곡정초나 꼬마물방개에 바꾸어 놓아 보면 농학 안의 커다란 빈 굴을 알아차릴 것이다.


기존의 농학처럼 경제적 측면에서 유용성의 세계만으로 이 대상과 인간의 관계를 해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유용성도 교환가치 범주에만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 농학의 역사였다. 그래서 농학이 꽉 속박된 채로 되어 있는 유용성에 대치하고, 이것을 넘어가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즉, 정념을 토대로 하면서, 거기에 비경제, 사용가치, 내재적인 가치, 본질적인 가치라는 영역을 중첩해 보는 것이다. 


상징적인 문제를 제출해 보자. 300평당 600킬로그램의 쌀이 나오는데, 고추잠자리는 10마리밖에 없는 논(또는 그러한 사태를 불러온 농사일)과 400킬로그램의 쌀만 나오지만 고추잠자리는 5천 마리나 살고 있는 논(그러한 농사일)에서는 어느 쪽이 가치가 있을까? 교환가치(경제가치)로 판단한다면, 전자 쪽이 훨씬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고추잠자리 한 마리당 10엔의 환경지불이 실시되게 되면, 경제가치에서조차 역전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유용성이 인정되지 않았던 고추잠자리에게 환경지불을 실시해야 할 정도로 유용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정말로 말할 수 있을까?


원래 유용성(내재적 가치)은 있었지만, 경제가치만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그러면 고추잠자리의 유용성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을 계량하는 지표는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쌀이라면 600킬로그램이라 계량할 수 있다. 확실히 고추잠자리도 5천 마리라고 계량할 수 있다. 계량하는 척도가 없을 리 없지만, 계산하는 의미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고추잠자리가 몇 마리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쌀의 수확량을 계량하는 건 그 경제가치를 계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기술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가지치기 숫자나 이삭 숫자와 알곡의 수나 맛을 측정하는 연장에 있다. 이처럼 농학이 유용하다고 인정하고, 경제가치가 뒷받침하는 세계는 치밀한 지표화가 행해져 왔다. 이런 면에 대한 농학의 공헌은 헤아릴 수 없다.


만약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10엔이라면, 지표화가 진행될까? 큰 망설임과 혼란이 농학을 덮칠지도 모른다. 즉, 유용성을 인식하는 감성이 경제가치의 비대에 따라서 쇠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는 공부(사상이나정책)가 부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유용성 등보다 광대한 세계


그럼,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외에도 유용성에 구애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선'이나 '사랑'이나 '정념'이라 부르거나, '영혼'이라 이름을 붙이거나, '외치는 소리'라고 부르거나 하는 것과 마주보는 인생이다. 무심코 예초기로 잘라 버렸던 유혈목이를 위하여, 집에 돌아가 그 장소에 향을 피운 농민을 단지 종교심이 깊은 사람됨이라고 정리하는 것으로 '삶'과 '시간'의 본질에 다가가는 걸 잊고 있지는 않은가? 빗발이 강해졌던 밤에 벼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논에 달려가는 정념을 수확량 감소를 염려한 것이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산업의 하나인 농의 토대에 아직 '생업'인 농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다양한 국면에서 재발견해 나아가지는 않는가?


그래서 또 하나의 대책을 발견할 것이다. 유용성이 없는 걸 풍부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또는 유용성이 없는 것의 풍부함을 표현한다고 해도 좋다. 


그것은 현재는 얼마나 많은 '비근대화 척도'를 제안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유창한 한 예를 후쿠오카현의 '생물 목록 작성'에 대한 '환경 지불'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지방의 정책이 주목되고 있는 건 단순히 저농약이나 저화학비료의 기술에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농민 스스로가 생물을 조사해 생물의 목록을 작성하고 은혜 대장으로 표현하는 이 일련의 행위 전체를 지불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근대화 척도로 가장 유효한 '생물지표'가 태어나 자라고 있다. 


물론 시도 노래도 음악도 모든 예술은 쉽사리 유용성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있다. 언제부터 농학과 예술은 소원해졌을까? 어째서 공학에는 있는데 농학에는 미학이 없는 것일까? 나는 특별히 예술이 아니어도 한층 농민의 개인적인 표현 방법을 제안하는 농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의 농사일 속에서, 생계 안에서 발견하거나, 놀라거나, 깨닫거나, 이야기하거나 하는 것을 입으로도, 문장으로도 표현하는 일의 의미를 찬양하는 것이 아닐까?



보통의 가치


인생의 감촉과 실질은 경제가 아니라, 자신의 안에 흐르는 정념과 생물(인간도 포함)과의 교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지난해의 수확량과 소득은 기억에 확 남아 있다. 그것은 수치화할 수 있으며, 기록으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지난해 7월 20일에 왕잠자리가 우화할 때의 윤이 나고 싱싱함이나, 8월 10일의 시원한 논의 바람은 이미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다. "아, 농민이어서 좋다"라고 왕잠자리를 보면서,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그때는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인생이란 그러한 것이다. 그러한 무수히 작은 충실함과 감동의 집적으로 지탱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소득이나 명예와 자존심 같은 건 이러한 하루하루의 실감 위에 구축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증거로,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모든 걸 잊어먹고 있지 않은가?


'생물로부터 자욱이 끼어 오는 "정념"이 있다'라고 발언하면 으레 '그건 생물에 대한 당신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에 정념 등이 있어서 쌓이는 것인가?'라고 반론한다. 즉, 정념이란 인간의 감정이며 어디까지나 내가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것, 곧 나의 주관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 일체가 되었던 적이 없는 현대인의 망언이다. 생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실감한 적이 없는 인간의 믿음이다. 논 위로 잠자리의 날개가 빛나 그만 시간을 잊고, 나를 잊고 넋을 잃고 보는 수십 초는 생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시간과 장소이다. 이때에 나의 존재는 주관과 객관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이성이 정리하지는 않는다. 대상에서 나온 빛을 나의 눈이 포착하고, 느끼고, 감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고추잠자리로부터 자욱이 끼어 오는 정념이 있어, 나는 몸 전체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좀처럼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기에 실제 체험으로 보여주게 된다. 중학생에게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여름 오후 2시 무렵, 창으로 교실 한가득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창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선풍기의 바람은 어느 쪽이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80%의 아이들이 "자연의 바람 쪽이 기분 좋아요."라고 답했다.


"어째서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기분이 좋지?"라고 물으면 우리 성인은 감성으로 차이를 알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자연의 바람과 똑같은 향기, 똑같은 초록빛 성분, 똑같은 미묘한 흔들림을 가진 바람을 선풍기에서 불어 나오게 하면, 자연과 똑같은 바람이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즉, 완전히과학적으로는 똑같은 바람이라도 자연의 바람에는 정념이 풍부하여 선풍기의 바람에는 그것이 없다. 


"그렇게 어리석은. 어느 정도 성분이 세기가 같아도 선풍기의 바람은 자연의 바람과는 다르다는 선입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라고 당신은 반론할 것이 틀림없다. 그대로이다. 선풍기의 바람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바람이다. 늘 인간의 주관이 느끼고, 객관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세계의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근대적인, 과학적인 인식방법의 세계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의 바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잊고서 바람 속에 안겨 벼린다. 그러한 상태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람을 무심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바람과 일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기분 좋은 것이다. 바람을 인식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어느 새인지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하게 되었다. 그 경향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 자신은 비대화되어 간다. 그리고 인간의 힘에 의하여 분석, 파악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강해지는 만큼, 바람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반대로 쇠퇴해 왔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생각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할 때는 오히려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객관과 주관을 나누어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고, 몸을 맡기고 통째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힘을 되찾으면 생물로부터 자욱이 끼어 오는 정감의 풍부함에 몸을 흠뻑 적실 수 있다.


바람과 일체가 되어 바람에 안길 때, 바람이 기분이 좋은지,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바람으로부터 자욱이 끼는 정감에 자신의 바람에 대한 정념이 반응하고, 혼연일체가 된다. 


그래서 바람을 생물로 바꾸어 놓고 싶다. (예전에는 바람도 생물이었다.) 벼라 해도 좋다. 강의 흐름도 좋다. 하늘을 흐르는 구름이라 해도 좋다. "아, 농민이어서 좋다"고 느끼는 감동에 종종 우리는 휩싸인다. 그러한 감동의 폭풍 안에서 나는 인간이라기보다 생물의 일원으로 완전히 변모한다. 우리 현대인도 아직 완전히 근대화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농민은.


자, 내가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지, 진짜 목표는 보여주었을까? 생물 조사는 생물과 행동을 같이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서 복권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것은 근대화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인생에서 생물과 행동을 같이함을 잃는다면, 농은 농이 아니게 된다. 논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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