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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크게 20가지 정도의 작물을 제외하고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작물 대부분은 모두 먼 길을 거쳐 온 것들이다. 그럼 그러한 작물들은 기원지가 아니기에 절대로 한국의 토종이 될 수 없는가? 아니다. 그것들도 토종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하며 살아왔으면 그만이다. 어느 작물을 토종이냐 아니냐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이다. 그래서 아주 옛날 옛적 고조선 시대부터 이 땅에서 재배되던 것만이 토종이 아니라, 근래에 새로 들어왔어도 한국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면 그걸 토종이라고 한다. 관계자에게 들었는데, 토종연구회에서도 처음 토종이란 개념을 정의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토종을 100년이나 200년 전의 것이라고 시간적으로 정의하면 토종의 범위가 너무 한정이 되기에, 그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을 기준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50년이든 100년이든 어쨌든 한국이란 자연환경에 적응한 것을 토종이라 정의할 수 있어 범위가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생물자원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그만큼 활용할 수 있는 유전자원이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인간 사회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요즘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다. 농촌 지역은 이미 다문화사회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 다양성에 낯선 한국인들은 다문화사회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주민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며, 관련기관에서 이주민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의도보다 그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교육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통일은 하나의 커다란 틀 안에서 다양성이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모두가 똑같아지도록 강요하는 것은 획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획일화되도록 강요를 받고 있다. 다문화사회로 넘어가려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주민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인정을 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생겨 당장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가정하자. 그곳에서 누군가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며 5~6세대가 지난다. 그러면 나의 후손은 아마도 한국말도 잘 못하고, 한국 음식도 입에 안 맞아 잘 먹지 못하고,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생긴 건 한국인과 비슷하지만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동남아의 이주민이 결혼을 하고, 그 자식이 계속 살아가며 5~6세대가 지났다고 하자. 그 후손은 생긴 건 동남아 사람과 비슷해도 한국말도 유창하게 하고, 한국 음식도 잘 먹으며, 한국인과 아무 문제없이 잘 어울려 지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동남아 사람인가, 한국인인가? 굳이 답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이렇듯 작물은 그 작물이 재배되는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했느냐가 토종인지 아닌지 가르는 기준이 되고, 인간의 경우에는 한 사회의 문화에 얼마나 잘 ‘적응’했느냐 아니냐가 그 사람이 토종인지 아닌지 정의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나 자연환경은 절대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토종 씨앗을 고정불변의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토종 씨앗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농부와 함께 자신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며 살아왔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토종 씨앗을 영원불멸의 진리나 한민족의 유일무이한 소중한 자원으로 치환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사랑도 변하듯이 토종 씨앗도 변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한민족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방인들과의 무수한 접촉을 통해 유전형질이 변화해 온 결과물 아닌가. 한민족의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토종 씨앗도 마찬가지로 순수하지 않다. 순수라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토종 씨앗은 그러한 변화에 맞춰 자신도 변화하면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변이, 변종, 돌연변이 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변이, 변종, 잡스러운 것은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며 잡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순수혈통을 강조한 결과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나치의 순혈주의나 귀족들의 근친혼 등이 인간의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또한 이제는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되는 애완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순종을 추구하는 일이 애완견들에게 어떤 일을 일으켰는가? 인간이 순종 강아지를 생산하기 위해 근친교배를 유도하고, 그 결과 태어난 수많은 열성 강아지들이 폐기처분된다고 한다. 또 그렇게 태어난 순종의 강아지는 유전적 취약성 때문에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 쉽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동물에게 자행하는 일종의 유전자변형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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