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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과 관련하여 흔히들 하는 오해 가운데 하나는, 옛날옛적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씨앗이 바로 토종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런 작물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한국이 원산지라고 일컬어지는 작물은 딱 하나를 꼽을 수 있다. 바로 콩이 그것이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김치를 예로 들자면, 김치의 주재료는 다들 알다시피 배추와 고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배추와 고추조차 외국에서 들어온 작물들이다. 배추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와 정착했고, 고추는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에서부터 한국에까지 건너와서 적응한 작물들이다. 그러니 시간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땅에서 나고 자란 것만이 토종이라 정의하면 토종 씨앗이라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는 현실이다.


2016년 6월 발표된 [식량작물의 기원은 세계의 국가들을 연결한다(Origins of food crops connect countries worldwide)]는 논문을 보면, 우리가 먹고 있는 각각의 작물들이 어디에서 기원하여 생산되어 운송되는지를 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에서 기원하는 작물은 크게 20가지이다. 가지, 감, 귤, 레몬, 멜론, 벼, 배, 배추, 복숭아, 사과, 살구, 시나몬, 오이, 자몽, 조, 차, 포도, 콩, 키위, 홉이 그것이다. 시각화 자료에서 보면 일부 작물은 기원지가 여러 곳인 경우도 있고, 일부 국가는 생태지리적 특성이 다양하여 몇 군데의 지역분류에 포함되는 사례도 있다. 아무튼 앞서 열거한 20가지의 작물 이외에 우리가 먹고 있는 여러 농산물은 멀고 먼 바닷길과 육지길을 거쳐 우리의 밥상 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들이란 사실이다. 


1887년에 태어나 190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난 러시아의 니콜라이 바빌로프라는 유명한 육종학자가 있다. 그는 100여 회에 걸쳐 세계 곳곳을 탐사하며 작물의 씨앗을 수집하고 조사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1924년에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를 탐사하여 맥류 17점을 비롯한 여러 작물을 수집해 갔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란 이론을 주장했다. 그 이론에 의하면, 어떠한 작물의 기원 –또는 원산- 은 해당 작물의 야생종과 야생 근연종, 재배종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바빌로프의 이론에 의하면, 콩은 황하 유역이 1차 기원지이며 만주 일대가 근연종과 재배종이 많이 발견되는 2차 기원지로 꼽힌다. 그 영향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콩이 발견된다. 주의할 점은 이때의 콩은 주로 메주콩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강낭콩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기원하여 바닷길과 육지길을 거쳐 한국에 이르렀고, 완두콩은 지중해 연안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산책을 하다가도 야생종이나 근연종 콩을 발견할 수도 있다.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자 농가를 방문하면 재배종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뻥 좀 보태서 집집마다 서로 다른 콩을 재배한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이러한 각각의 콩들은 자기가 재배되는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면서 인간과 함께 공진화를 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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