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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모임에서 조사항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군품과 자리품에 대해 적절히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는데요. 자료를 보던 중 눈에 띄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옮기기로 하겠습니다.

"군품과 자리품은 모두 있는 사람들한테 선돈을 얻어쓰는 것인데, 군품은 쌀 한 말에 셋, 넷씩(삼일, 사일간의 품일) 해주는 것으로 가래질도 해주고 하여튼 해달라는 대로 가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자리품은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씩 모도 내주고 논도 매주고 지게질도 해주고 하는 것이다. 자리품은 보통 명절 때 많이 한다. 장난하느라고 있는 집에 가서 놀고, 그래서 선돈을 쓰고 농사철에 자리품을 팔게 된다."

이 두 용어는 혼용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쪽(주로 자리품)으로 두 관행 모두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도급이라는 것과 혼용되는 경우도 있지요. <<수원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조사 당시 권선구 오목천동 곳집말의 김대영씨(남. 1926년생. 당시 곳집말 노인회장)가 위와 같이 깨끗이 정리를 해주었더군요. 당시 조사일지에는 자리품에 대한 설명 뒤에 물음표를 달았었는데, 이는 아마 "논 한 마지기씩 모도 내주고 논도 매주고 지게질도 해준다"는 표현-특히 지게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탓인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의 용례들에 비추어볼 때도 이와 같은 설명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물론 자리품을 줄 때 '지게질' 즉 벼베기를 빼고 모내기와 논매기만을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야 사실 정하기 나름이겠지요.

즉 군품은 어느 논의(또는 논이 아닌 다른 밭, 산, 집 등) 무슨 일인지를 정하지 않고 단지 일을 해주는 품의 일수日數만을 정한 후 군품미(-米)를 준 사람이 부르면 언제든지 가서 그 일을 해주어야 하는 관행이고, 자리품은 특정 논을 맡아서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지게질)까지 해주기로 하고 마지기 당 한 말씩으로 쳐서 미리 품값을 받고 나중에 일을 해주는 관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꾼 한 명 당 하루 논 한 마지기>를 기준으로 삼는 품삯 계산법과도 들어맞지요.

물론 김매기나 벼베기의 경우 대개 하루 한 마지기 이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리품을 얻는 쪽에서도 이점이 있는 거지요. 즉,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남들과 같이 한데 묶여서 품을 팔러다녀서는 오히려 불리합니다. 자기가 일을 잘 하는 만큼 일을 못하는 사람의 몫까지도 해야하거든요. 그러면 품삯은 똑같이 받고 일을 일대로 더 하고, 완전히 손해 난만입니다. 그러나 자리품으로 일을 하면, 자기가 일을 잘 하는 만큼, 10마지기 논에 대해서 하루 한 마지기 한 말로 계산해서 열 말 품값을 받고 실제로는 5일이나 7일 정도로 끝내버리는 거지요.

이것은 도급과 사실상 같은 개념입니다. 그때문에 군품 대신 자리품이라는 말을 쓰고 자리품 대신 도급이라는 말을 쓰는 용례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리'라는 말이 붙은 이상 어느 한 자리(특정 논)에 대한 품을 파는 것이라는 뜻을 갖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지요.

그렇다면 자리품과 도급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리품은 개인을 기준단위로 삼는데 반해 도급은 집단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일단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이 능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자리품이 갖는 이점은 점차 확연해지고, 그러나 개인이 맡을 수 있는 일의 범위는 한계-끽해야 한 닷 마지기 아니겠습니까-가 있다는 점도 명백해졌을 때, 뭔가 이걸 사업적으로랄지, 좀더 큰 규모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이때 만일 마음이 맞고 모두 한결같이 일손이 날랜 5명이나 10명이 모여 도급작업반을 결성하면, 그만큼 맡을 수 있는 논의 면적도 커지고, 당연히 일꾼들에게 떨어지는 몫도 커질 겁니다. 그렇게 품팔이 일꾼-좀 말이 그렇다면 전문적인 일용농업노동자-이 늘어나고(이 추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월남민의 유입 같은 것이 있겠지요), 경작규모가 커지고 농업의 수익성도 증대되는 과정에 자리품에서 도급으로의 발전이 자리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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