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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생태계

대설, 비로소 농한기

by 石基 2009.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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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비로소 농한기




농한기가 왔다고 자꾸 원고 쓰는 것도 늦어진다. 대설이 지난 지 이틀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긁적인다. 막상 쓰려고 하니 별로 쓸 내용이 없다. 밭 일도 거의 끝나고 할 일도 없으니 글 쓰는 일도 뭉그적거렸나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밭에 할 일이 남아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콩 탈곡을 아직 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낫으로 베어놓고 비닐집에 널어놓고는 토종 수집하러 다닌다고 내 팽개쳐 놓는 게 한달은 지난 것 같다. 많지도 않은 양이지만 꼴에 서리태, 메주콩, 쥐눈이콩 세 종류나 되어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니 원고 빨리 쓰고 밭에 가서 그 놈들을 두들길 참이다.
소설 추위가 지나고 봄 날씨처럼 따뜻하더니 대설이 가까워 오자 영하 10도 이하의 매서운 동장군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이름답게 대설인 12월 7일에는 눈까지 내렸다. 결혼식이 있어 아침에 차 끌고 나가는데 눈이 제법 내려 여기저기 교통사고다. 하지만 대설이라 하기에는 적은 양인데다 그것마저 금방 녹고 말았다. 오후에 밭에 가니 거의 흔적도 없이 말라있다.
대설 때 내리는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 했는데 보리 입장에선 이불 구경만 한 꼴이다. 오히려 더 춥다. 에스키모인들이 눈 집을 만들어 살았듯이 겨울엔 눈이 작물들에게는 보온을 해주는 이불이자 눈은 녹으면 소중한 물이 되어준다.

대설 근방이 되면 농가에선 곳간에 먹을거리들이 그득하다. 곡식 수확도 끝내 갈무리 저장해두었고 김장도 담가 놓았으니 한동안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이런 때에 토종 수집을 다니는 것 또한 적기를 놓치지 않은 것이리라. 토종 박사님과 전통농업 공부하는 바람들이 농장 막내 농부와 함께 강화도로 떠났다.
토종은 수량도 적고 균일하지도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토종이 시장에서 도태되고 농가에서도 외면 받아온 절대적 이유였다. 파는 농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선 토종을 갖고 있다는 게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토종을 잊지 못한다.
다녀보니 토종을 아직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오래된 집, 집 주변에 텃밭이 있는 집, 교통이 좋지 않은 외진 곳, 노동이 가능한 6, 70대 할머니들이다. 특히 노인 부부가 함께 농사짓는 경우라면 더 좋다. 반대로 대로변에 있는 집, 새로 지은 집, 기계로 큰 농사를 짓는 집, 비닐 온실 농사를 짓는 집, 비교적 젊은 농부들과 종자에 별 관심없는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토종을 갖고 있는 분은 거의 없다. 곰곰이 새겨보면 여러 가지를 시사하는 점들이다.
오래된 집일수록 낡고 허름할지라도 오래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산다. 그 중에도 특히 여자들이 종자 관리를 잘한다. 우리의 토종은 여성들이 지켜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자들은 그저 힘쓰는 일이나 잘하지 생명을 가꾸고 아끼는 일에는 영 젬병이다. 또한 토종의 진가는 역시 어르신들이 잘 안다. 그 맛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득을 주목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토종은 귀찮은 존재다. 소득 농사를 하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은 토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농약 친 것은 시장에 내다 팔고 집에서 먹을 것은 농약 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런 토종을 재배하려면 집 주변에 꼭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대량 재배도 안되고 그야말로 다품종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며 집에서 먹는 거라 가까울수록 돌보기 좋은 것이다. 집에서 먹는 것인데 비싼 돈 주고 시장에서 맛도 없는 씨 사다 심을 리 없지만 교통도 불편하다면 더욱 시장에서 씨 사다 심을 리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토종을 많이 갖고 있는 분일수록 농사를 참으로 즐겁게 짓는다는 것이다. 집도 깨끗하고 마음도 너그럽다. 대개 농심이 그랬듯이 불쑥 찾아든 불청객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많은 씨를 빚 받아 가듯 하니 “밭에서 그냥 일하고 있을 걸, 내가 괜히 뛰어 왔네, 이렇게 많이 가져가니 말이요.” 하다가도 챙길 것 다 챙겨 나가려는데 감 먹고 가라 커피 먹고 가라 하며 쉬이 나주질 않는다. 어느 집에는 점심 때라 하며 금새 국수를 말아 오시기도 했다.
거의 농사를 예술처럼 한다 싶은 집에서는 부엌 벽에다 벼의 이삭을 매년 매달아 놓아 어느 해 농사가 잘 되었나 보곤 한다는 분이 있었다. 종자도 다양하게 갖고 있었지만 희귀한 종자도 적지 않다. 이것저것 종자 자랑이 끝이 없다. 종자를 챙겨줄 때마다 그 아줌마 내 뱉는 말이 참으로 재밌다. “종자는 아들 귀하게 여기 듯 해야 되!” 한다. 처음엔 가부장 잔재의 어르신다운 말씀이라 했지만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종자나 이 종자나 다 같은 종자이니 그럴 법도 하여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마지막으로 들른 아주 허름한 고택의 할머니는 토종 신세만큼이나 쓸쓸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 집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도시의 자식들이 도시로 나오라 해도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이런 집 3년도 못가 다 쓰러져요. 늙어빠진 나라도 있어야 집 꼴을 하고 있지.” 하신다. 그런데 그 집이나 우리가 찾고 다니는 토종이나 그것을 죽은 아들 부랄 만지듯 지키고 계신 그 할머니나 다 비슷한 꼴인 것 같기만 하니 귀한 종자 얻어 나오면서도 맘이 편치 않다. 속절없이 스쳐가는 바람처럼 등 돌리고 나가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여느 순진한 농부의 눈빛을 머금고 쓸쓸한 손짓 인사를 건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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