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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춥고 긴 겨울 농한기

동지가 지나고 양력 정월도 찾아왔으니 새해가 된 것이지만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소한, 대한이 있어 새해라고 해 봐야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역시 음력 설날이 되어야 날도 풀리기 시작하니 새해 기분이 든다.

그래도 동지가 지나서인가 아침 해 뜨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기는 한다. “동지 지나면 해가 사슴 꼬리만큼씩 빨리 뜬다.”는 말이 있다. 하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다 동지 근방에 오면 빨리 돈다. 타원으로 돌기 때문인데 반대로 하지 근방에서는 늦게 돈다. 동지에서 입춘까지 59일이 걸리면 하지에서 처서까지는 62일 걸린다. 동지에서 3일이나 빨리 도는 것이다.

날씨가 추우니 마음도 움츠러들고 스산한데 다행히 조금씩 빨라지는 아침 해로 위안을 삼는다.

꿔서라도 오는 소설 추위로 겨울이 본격 시작한다고 했듯이 꿔서라도 반드시 오고야 마는 소한 추위는 겨울의 맹위를 떨치기에 모자람이 없다. 대개는 소한 지나 양력으로 1월 중순 근방에서 큰 추위가 오곤 한다. 말하자면 소한 기간에 큰 추위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소한 추위와 관련한 속담은 참으로 많다.

이름대로 하면 더 추워야 할 대한(大寒)이 소한(小寒)이네 놀러와 죽었다든가,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소한이 대한 네 집에 몸 녹이러 간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이 대한 잡아먹는다, 들의 속담은 다 소한이 대한보다 춥다는 의미에서 온 것들이다.

그래도 역시 소, 대한 추위야 말로 겨울을 대표하는 맹추위의 절기다. 춥기만 한 게 아니라 건조하기도 하여 겨울을 나는 작물들에게 때론 가뭄 피해를 주기도 한다. 고온다습한 여름과 반대로 저온건조한 우리 겨울날씨의 특징이다. 반면 목초가 발달한 유럽이나 유목지대의 겨울은 중온다습이라 할까, 영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비는 자주 오고 습하여 겨우내 목초가 죽지 않고 잘 자란다. 밀, 보리와 가축이 잘 되는 이유다.

우리의 겨울은 눈이 오지 않으면 겨울 가뭄의 피해가 심각하다. 겨울을 나는 보리, 밀, 양파, 마늘 같은 작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물이 모자라 봄 농사에도 치명적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온난화 때문인지 별로 춥지 않은 날은 지속되는데 눈은 별로 오질 않아 겨울 가뭄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다. 겨울만 지나면 주변 저수지의 수면이 밑으로 푹 꺼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튼 겨울을 대표하는 소한, 대한 추위는 꼭 추워야 한다. 그냥 추워서도 안된다. 삼한사온(三寒四溫)처럼 추워야 자연의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추웠다가 따뜻해지길 반복하면 자연은 저절로 청소가 된다. 따뜻해서 잠깐 얼굴을 내민 병해충들이 곧 밀어닥칠 맹추위에 얼어죽는다. 병해충만이 아니라 약한 생명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건강한 놈들만 살아남는다.

또한 삼한사온이 반복되면서 흙도 부드러워진다. 물을 머금은 흙은 얼면 부피가 늘어나는 물의 특성 때문에 흙이 더 잘게 부숴진다. 바위가 흙이 되는 원리다. 만약에 물이 얼음이 되어 부피가 늘지 않고 줄어들었다면 흙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흙만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생명의 지구도 생명이 살지 못하는 다른 모습의 지구가 되었을 일이다. 액체가 얼어서 고체가 될 때 부피가 늘어나는 것은 물 뿐이다. 그게 지구를 생명의 터전으로 만든 것이니 다시 한번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한 겨울 농한기 때는 가을 수확하고 못 다한 갈무리를 한다. 일이 많아 바쁠 때 곡식 같은 경우는 적당히 잘 모아 놨다가 한 겨울 추울 때 사랑방에 앉아 화로에 잉걸불 담아 놓고 갈무리 한다.

곡식을 먹기 좋게 껍질 벗기는 작업을 방아찧는다고 한다. 방아찧는 것에는 쓿기가 있고 빻기가 있고 타기가 있다. 쓿기는 겨를 벗기는 일이고 빻기는 가루를 내는 일이며 타기는 거칠게 가루를 내는 일이다.   

 

 

 

 

 

 

 

 

 

 

 

방아찧는 일은 매우 지루하고 고된 일이라 “저녁 방아는 찧어도 새벽 방아는 못찧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방아찧고 나서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 뉘나 쭉정이를 골라내는 일처럼 참으로 귀찮고 짜증나는 일도 없다. 콩 같은 경우는 큰 쟁반에다 깔고서 기울이면 잘 영글은 콩은 둥글둥글해서 잘 굴러떨어지지만 쭉정이는 잘 구르지 않아 그걸 이용해 골라낸다. 처음엔 나름대로 재미있어 작업을 하지만 좀만 지나면 “왜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지”하고 이내 회의가 든다. 뭉툭하고 거친 손가락으로 그런 걸 고르려 하면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지기까지 한다.   

 

 

 

 

 

 

 

 

 

 

 

밀 같은 경우는 탈곡하면 바로 탈립이 되어 구태여 방아를 찧지 않아도 현미처럼 먹을 수 있어 좋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뉘가 많이 섞여 있다. 돌을 고르기 위해 물에 담가 일르면서 위에 뜨는 가벼운 것들을 골라낼 때 함께 뉘를 걸러내려 해도 이를 완벽하게 골라내기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이도 큰 쟁반에다 깔고서 고르는데 콩에 비해 몇 배나 힘들다. 콩처럼 구르지도 않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는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온 마누라가 도와준다고 나서지만 왠지 미안해 혼자서라도 마저 끝내려 하다보면 참으로 지루하기 그지없다. 노안이 오는 나이가 되어서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고 그 X만한 밀알을 두텁고 거친 손가락으로 골라내려 하면 참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방아찧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섬세하고 잔손질이 많이 가 노인네나 아이들이 도와주곤 했다. 어떻게 보면 노인네에게 그런 일은 거의 PC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알곡들을 골라내다보면 뇌 운동도 되고 시간도 떼울 수 있으니 그만한 재미있는 일도 없다. 그래서 농사는 최소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문화이어야만 제대로 할 수가 있다. 늙은이도 아이도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농사규모가 커서 방아찧을 곡식이 많을 경우는 이웃과 함께 품앗이로 함께 작업하곤 했다. 그래서 방아찧는 노동요가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달했다.

방아찧는 도구들은 나름대로 곡식의 성격과 작업 방식에 따라 나눠진다. 곡식 알갱이끼리 또는 곡식과 연장 사이의 마찰로 쓿거나 빻는 일은 절구, 디딜방아, 물방아, 물레방아가 한다. 이와 달리 서로 다른 반대방향으로 연장이 움직여 그 사이에 곡식을 넣고 빻는 일은 쓿거나 타거나 빻는 작업으로 매통, 맷돌, 연자매(방아)가 했다.

곡식이 적으면 절구나 맷돌로도 충분하지만 양이 많으면 디딜방아나 연장방아를 이용한다.  나락을 현미에서 쌀, 곧 백미로까지 찧으려면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 등이 좋은데 돌확에 넣고 어느 정도 찧은 다음 키질을 해서 덜 벗겨진 놈들은 다시 넣어 찧기를 세 번은 해야 한다. 이를 세벌찧기라 한다. 세벌찧고 나서도 덜 벗겨지면 물로 적셔 찧는데 이를 대낀다고 한다.

소나 말로 끌었던 연자방아는 작업이 빠르고 쉽게 찧어지는 반면 나락이 잘 부서지기 때문에 보리처럼 껍질이 질긴 경우 쓴다. 그렇다 해도 애벌찧기만 하고 두세벌 찧기는 디딜방아나 절구로 한다. 소나 말을 묶어 돌릴 때 짐승들이 어지러워하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 돌린다. 이 일을 보통 아이들을 시켰다.

매통은 맷돌처럼 위아래가 구분되어 있고 사이에 톱니처럼 요철로 홈이 나있어 그곳을 통과하면서 나락의 왕겨가 벗겨지게 되어 있다. 이것들을 다시 모아 물을 적셔가며 한번 더 돌려주면 백미가 나온다. 수수, 보리처럼 겉껍질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경우도 물을 뿌려가며 불려서 찧어야 한다.

메밀은 맷돌로 찧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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