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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깊은 겨울밤 떠오르는 새해

 

절기를 알고부터는 왠지 절기 음식을 그냥 넘기기가 찜찜하다. 그렇다고 애절하게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졸지에 외식 차 들른 식당에서 팥죽을 내왔다. 그걸 보고서야 동지임을 반갑게 실감했는데 아직 쓰지 못한 동지 원고를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도 이내 흩어지고 만다.

팥죽은 붉은팥을 물에 불려 갈고 찹쌀을 새알처럼 빚은 새알심을 넣고 죽을 만든 것이다. 새알심은 해를 뜻하고 붉은 팥죽은 검은 밤을 뜻하여 검은 밤에서 새해가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다고 한 것도 깊고 검은 밤 중에 갇혀있는 새알심을 먹어야 새해 곧 새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었으리라.

또한 팥의 붉은 색은 벽사(辟邪)의 기운을 쫓아내는 효험이 있어 음귀(陰鬼)를 쫓는다고 믿었다. 붉은 색은 따뜻한 양의 기운을 대표하니 음이 가득한 겨울의 찬 기운을 밀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팥은 따뜻한 기운을 오래 머금는 능력이 있어 팥을 이용해 찜질하는 민간요법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게다가 부종(浮腫)이나 어혈(瘀血)을 다스리는 데 해독 능력이 뛰어난 팥으로 찜질을 하면 의외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팥에는 해독 능력이 뛰어난 사포닌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아도 익히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동지는 세가지로 나누었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했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했다. 애동지에는 팥이 들어간 시루떡을 해 먹고 노동지에는 팥으로 죽을 쑤어 먹는데 중동지에는 둘 중에 하나를 해 먹는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어서 해가 밤에 갇혀 죽는 날이고 동지가 지나면 죽은 해는 다시 살아나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날엔 동서양 공히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했다. 중국의 고대 국가인 주(周)나라에는 동지를 설날로 삼았고 서양에서는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동지 근방으로 잡아 새해의 기점으로 삼았다. 우리는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날(아세亞歲)이라 하여 정월 설날만큼 동지의 의미를 새겼다.

24절기 중 제일 중요한 절기는 역시 동지다. 방금 소개한 것처럼 동지는 새해의 기점이어서 옛날엔 24절기의 시작을 동지로 삼았다. 지금처럼 입춘을 24절기의 시작으로 삼은 것은 농경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입춘 때 다루도록 하겠다.

달력의 제정은 나라님의 가장 큰 사업이었다. 그래서 어디든 천문과 달력을 연구하는 기관은 임금이 직접 지휘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임금의 직속기관인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지가 되면 새해 달력을 만들어 임금께 바치고 이를 임금이 어새를 찍어 전국 각 지방에 돌렸다고 한다. 지금도 동지가 되면 달력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갖는 풍습은 바로 이런 전통에서 내려온 것이다.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미트라교(Mithfaism)의 동지축제가 매년 행해지고 있었는데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로는 이를 예수의 생일로 삼아 크리리마스 축제로 변형시켰다.

 

동지는 긴긴 겨울의 한 복판이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긴 밤을 지내면 해가 다시 길어지니 해가 부활하고 살아난다 하여 해의 생일이라고도 했다. 이런 동지날의 날씨는 새 해의 날씨와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좌표가 되었다. 동지날이 따뜻하면 이듬해 질병도 많고 농경지에 병해충이 많다고 했다. 추운 겨울날엔 겨울답게 날씨가 추워야 병해충도 얼어 죽을테니 당연히 추워야 한다. 추위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냉정한 청소꾼이다. 조상들 성묘 가서 벌초할 때 말벌에게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많은 해는 지난 겨울이 반드시 따뜻했다. 벌들이 겨울을 잘 견뎌 많이 살아남은 것이다.

동지가 되면 사람들 마음이 바쁘다. 지난 해 바쁜 핑계로 밀어두었던 숙제들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지 이후는 세모(歲暮), 세밑이라 한다. 세모가 되면 그동안 불편하여 소원했던 이웃 간에도 마음을 열어 화합을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준다. 구세군 자선냄비 때문에 우리의 아름다운 세밑 풍속이 서양에서 온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기야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자선 모금에 나서는 것도 이웃을 먼 친척보다 가깝게 여기는 우리의 훈훈한 공동체 문화라 하겠다.

 

길고 긴 동지, 섣달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그런데 꼭 무엇인가 해야 할까? 나는 겨울잠 자는 자연의 동물들을 생각해보았다. 뱀, 곰, 개구리 같은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는 반면 벌레들은 알을 낳아 자신은 겨울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보면 모두 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먹을 것도 귀하고 날씨도 추우니 겨울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자신은 가고 알을 남겨 겨울을 나는 벌레들도 넓게 보면 마찬가지의 겨울나기 전략이다.

반면 겨울을 여름처럼 날 뿐만 아니라 여름도 겨울처럼 시원하게 보내는 인간만은 먹을 게 넘쳐나고 에너지가 넘쳐나서 그러는 걸까. 아무튼 먹을거리와 에너지가 그렇게 넘쳐난다고 해서 맘껏 물 쓰듯 막 쓸 수 있는 것인가? 겨울은 겨울인데, 겨울을 여름처럼, 여름을 겨울처럼 난다면 그 에너지와 먹을거리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먹을거리나 에너지는 영원히 무궁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자연의 다른 생명의 것을 빌려오든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미리 가져다 쓰는 것일텐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자격증은 누가 준 것인가? 그런 자격증이 있다면 유럽 중세 시대 천국 가는 티켓과 비슷하게 황당무계한 것 일뿐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나는 것, 나는 가능하다면 동면하는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는 것도 좋은 겨울나기일 것 같다. 아마 스님들이 동안거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하는 말이 그렇지 겨울잠을 잔다든가 동안거 들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대한 그에 맞게 겨울에는 먹을 것과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지나 온 한 해를 반성하며 새해를 차분하게 맞이하는 것이 건강한 겨울나기가 아닐까 싶다. 망년회로 술에 빠져 세밑을 보내고 취한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러 밭에 나가 미처 손이 가지 못한 곳 청소도 하면서 둘러보고는 집에 들어와 짚신을 꼬며 오랜 전설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 받는 깊은 겨울밤이 참으로 부러운 것은 결코 중년의 나이를 먹은 탓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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