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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길고 긴 겨울의 시작
입시 추위라는 말은 알아도 소설 추위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대개 대학 입시 치루는 날이 소설 직전인 경우가 많다. 입동과 소설 중간 쯤이거나 소설 바로 못 미쳐 온다. 그러니까 입시 추위는 소설 추위라고 봐야 옳다. 입동이 추운 경우도 있고 따뜻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다. 며칠 전 별안간 찾아온 추위도 소설 추위라고 봐야 한다. 영하 7도씨까지 내려간다 하니 무는 무조건 얼어 죽을 것이고 배추도 끈으로 묶어주었다 해도 불안한 기온이었다. 부랴부랴 텃밭 회원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올리고 나도 전날 배추를 묶어주었지만 불안하여 서울 일 끝내고 급하게 내려와 천막으로 덮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풍도 잘되고 양지 바른 곳의 배추들은 묶어준 덕에 별로 얼지 않았지만 통풍이나 일조량 조건도 좋지 않은데다 습한 곳의 배추들은 바로 동해 피해를 보았다. 배추만이 아니라 식물들은 겨울 나기를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기 몸 속의 수분을 배출하는 것이다. 몸속에 수분을 가득 담고 있으면 추위에 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한 곳인데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급감하니 수분 배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배추는 적당히 얼어도 그냥 놔두면 다시 풀려 제 모습을 찾아오는데 아주 얼어버리면 기온이 풀리면서 녹아내린다.
아무튼 소설 추위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자연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 같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겨울은 아니다. 따뜻한 기운이 약간은 남아있어 평균 기온이 5도씨 정도이다. 그래서 옛날엔 소설을 소춘(小春)이라 할 정도로 그 따뜻한 기운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겨울이 왔음을 또한 분명히 해야 할 터, 갑작스런 소설 추위로 그 경고를 알리는 것이리라.
소설 추위에도 불구하고 다시 평균 기온을 되찾지만 이후에는 급격하게 겨울 기온이 밀려든다. 옛말에 “초순의 홑바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처럼 하루가 다르게 날은 추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소설 전후로는 완벽하게 월동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직 김장을 담그지 못한 사람도 이때를 놓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김장을 담가야 한다. 요즘은 온난화 영향 때문인지 추위가 왔어도 금방 다시 따뜻해졌으니 좀 늦어져도 괜찮을 듯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옛말에 소설 때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입동 때는 따뜻해서 보리 순이 두 갈래로 갈라질 만큼 잘 되었지만 소설 때는 추위가 찾아와 보리가 웃자라지 않고 겨울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어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겨울 준비 중에는 역시 겨우내 먹을 것 챙기는 일이다. 먹을 것에는 대표적인 것이 김장과 메주이지만 그 말고도 중요한 것은 각종 묵나물들이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고, 김장 담고 남은 무로는 무말랭이를 만든다. 무는 이런 묵나물 말고도 중요한 먹을거리가 있다. 동치미아 무짠지가 그것인데 특히 무짠지는 나른한 봄날 군침을 돌게 하는 대표적인 식욕 돋우는 음식이다. 늦가을에 열린 어린 애호박은 된서리 오기 전 썰어서 호박고지 만들고, 고구마 줄거리도 된서리 전 삶았다가 말려 묵나물 만든다. 가지도 서리 오기 전에 남은 것들 따다 길죽하니 찢어서 말리고 토란도 줄거리를 다듬어 살짝 껍질 벗겨 말려둔다. 그 외에 고춧잎, 고사리, 고비 묵나물을 비롯해 산간지방 산나물로 만드는 묵나물까지 더하면 무궁무진한 게 우리네 겨우내 먹을거리들이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농산물이 많아져 겨울에도 따뜻할 때의 채소들을 즐겨 먹는다. 나는 이게 참으로 사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이란 자연의 뭇 기운을 머금고 자라야 하는 것일텐데, 단지 영양학적인 접근으로 외부와 차단하여 강제로 키운 음식이 제대로 된 것일 수 있겠는가? 자연을 배제한 음식을 아무리 유기농 이상 가는 농법으로 키운 것이 과연 우리 몸에 좋을 수는 없다고 본다. 겨울에는 겨울답게 뭐든지 적게 움직여 에너지를 줄이고 겨울다운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겨울에 음식을 먹고 여름에는 겨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삶이겠는가?
건강이란 균형적인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 겨울에 런닝 차림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한 여름에 두꺼운 내복을 입고 살 수 없는 것처럼, 겨울은 겨울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살 때 자연과 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철을 잃어버린 음식은 그 영양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칫 우리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즐겨 먹을 일이 못된다.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오래 동안 중국집을 해온 분이 옛날식 짜장면이라는 것의 허구를 꼬집은 얘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옛날 짜장면은 겨울이 되면 들어가는 채소 재료가 거의 무말랭이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없던 옛날엔 겨울 채소라고 해 봐야 묵나물 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도 여름 채소들이 잔뜩 들어간 요즘 겨울 짜장면을 옛날 짜장면이라고 하면 그것은 허구라는 지적이다.
소설 전에 해야할 겨울 준비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는 채종 준비다. 겨울을 나야 꽃대가 올라오는 작물들은 단단히 월동 준비를 해 주어야 한다. 십자화과 작물들이 대표적이다. 배추, 무가 그것이다.
제일 쉬운 방법은 뿌리를 잘 모아 땅에 묻었다가 봄 되면 꺼내 심는 것이다. 이때 뿌리를 줄기에서 자를 때 뿌리의 살이 많이 도려지면 안된다. 뿌리 윗 부분에 생장점이 몰려 있어 그 부분을 잘라내면 새순이 돋을 수 없다. 살짝만 도려내어 보관했다가 내년 봄 춘분 즈음해서 꺼내보면 윗부분에서 새순이 돋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옮겨 땅에 심으면 꽃대가 올라온다.
다음으로 쉬운 방법은 땅에서 뽑지 말고 적당히 씨 받을 놈을 골라 위부분 줄기만 살짝 도려내고 남은 뿌리가 얼지 말도록 왕겨나 검불들로 덮어주는 것이다. 다음해 춘분 때 살짝 벗겨주면 새순이 돋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배추나 무나 꽃대가 올라오면 씨가 의외로 많이 달린다. 쓰러질 우려가 있으니 지주를 박아 지탱해주면 좋다. 씨 깍지가 몇 개만 누레지면 전체적으로는 파래도 낫으로 베어 양파 망에 담아 거꾸로 매달아둔다.
배추와 달리 무는 씨 깍지가 바싹 말라도 잘 벗겨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무는 베어서 바로 말리지 않고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하루 이틀 정도 덮어두었다가 껍질에 곰팡이를 슬게 한 다음 말린다. 곰팡이가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나중에 씨를 채집하기 쉬워진다. 오래 덮어두면 곰팡이가 씨까지 공격하여 씨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입시 추위라는 말은 알아도 소설 추위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대개 대학 입시 치루는 날이 소설 직전인 경우가 많다. 입동과 소설 중간 쯤이거나 소설 바로 못 미쳐 온다. 그러니까 입시 추위는 소설 추위라고 봐야 옳다. 입동이 추운 경우도 있고 따뜻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다. 며칠 전 별안간 찾아온 추위도 소설 추위라고 봐야 한다. 영하 7도씨까지 내려간다 하니 무는 무조건 얼어 죽을 것이고 배추도 끈으로 묶어주었다 해도 불안한 기온이었다. 부랴부랴 텃밭 회원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올리고 나도 전날 배추를 묶어주었지만 불안하여 서울 일 끝내고 급하게 내려와 천막으로 덮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풍도 잘되고 양지 바른 곳의 배추들은 묶어준 덕에 별로 얼지 않았지만 통풍이나 일조량 조건도 좋지 않은데다 습한 곳의 배추들은 바로 동해 피해를 보았다. 배추만이 아니라 식물들은 겨울 나기를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기 몸 속의 수분을 배출하는 것이다. 몸속에 수분을 가득 담고 있으면 추위에 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한 곳인데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급감하니 수분 배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배추는 적당히 얼어도 그냥 놔두면 다시 풀려 제 모습을 찾아오는데 아주 얼어버리면 기온이 풀리면서 녹아내린다.
아무튼 소설 추위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자연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 같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겨울은 아니다. 따뜻한 기운이 약간은 남아있어 평균 기온이 5도씨 정도이다. 그래서 옛날엔 소설을 소춘(小春)이라 할 정도로 그 따뜻한 기운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겨울이 왔음을 또한 분명히 해야 할 터, 갑작스런 소설 추위로 그 경고를 알리는 것이리라.
소설 추위에도 불구하고 다시 평균 기온을 되찾지만 이후에는 급격하게 겨울 기온이 밀려든다. 옛말에 “초순의 홑바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처럼 하루가 다르게 날은 추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소설 전후로는 완벽하게 월동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직 김장을 담그지 못한 사람도 이때를 놓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김장을 담가야 한다. 요즘은 온난화 영향 때문인지 추위가 왔어도 금방 다시 따뜻해졌으니 좀 늦어져도 괜찮을 듯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옛말에 소설 때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입동 때는 따뜻해서 보리 순이 두 갈래로 갈라질 만큼 잘 되었지만 소설 때는 추위가 찾아와 보리가 웃자라지 않고 겨울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어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겨울 준비 중에는 역시 겨우내 먹을 것 챙기는 일이다. 먹을 것에는 대표적인 것이 김장과 메주이지만 그 말고도 중요한 것은 각종 묵나물들이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고, 김장 담고 남은 무로는 무말랭이를 만든다. 무는 이런 묵나물 말고도 중요한 먹을거리가 있다. 동치미아 무짠지가 그것인데 특히 무짠지는 나른한 봄날 군침을 돌게 하는 대표적인 식욕 돋우는 음식이다. 늦가을에 열린 어린 애호박은 된서리 오기 전 썰어서 호박고지 만들고, 고구마 줄거리도 된서리 전 삶았다가 말려 묵나물 만든다. 가지도 서리 오기 전에 남은 것들 따다 길죽하니 찢어서 말리고 토란도 줄거리를 다듬어 살짝 껍질 벗겨 말려둔다. 그 외에 고춧잎, 고사리, 고비 묵나물을 비롯해 산간지방 산나물로 만드는 묵나물까지 더하면 무궁무진한 게 우리네 겨우내 먹을거리들이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농산물이 많아져 겨울에도 따뜻할 때의 채소들을 즐겨 먹는다. 나는 이게 참으로 사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이란 자연의 뭇 기운을 머금고 자라야 하는 것일텐데, 단지 영양학적인 접근으로 외부와 차단하여 강제로 키운 음식이 제대로 된 것일 수 있겠는가? 자연을 배제한 음식을 아무리 유기농 이상 가는 농법으로 키운 것이 과연 우리 몸에 좋을 수는 없다고 본다. 겨울에는 겨울답게 뭐든지 적게 움직여 에너지를 줄이고 겨울다운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겨울에 음식을 먹고 여름에는 겨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삶이겠는가?
건강이란 균형적인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 겨울에 런닝 차림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한 여름에 두꺼운 내복을 입고 살 수 없는 것처럼, 겨울은 겨울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살 때 자연과 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철을 잃어버린 음식은 그 영양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칫 우리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즐겨 먹을 일이 못된다.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오래 동안 중국집을 해온 분이 옛날식 짜장면이라는 것의 허구를 꼬집은 얘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옛날 짜장면은 겨울이 되면 들어가는 채소 재료가 거의 무말랭이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없던 옛날엔 겨울 채소라고 해 봐야 묵나물 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도 여름 채소들이 잔뜩 들어간 요즘 겨울 짜장면을 옛날 짜장면이라고 하면 그것은 허구라는 지적이다.
소설 전에 해야할 겨울 준비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는 채종 준비다. 겨울을 나야 꽃대가 올라오는 작물들은 단단히 월동 준비를 해 주어야 한다. 십자화과 작물들이 대표적이다. 배추, 무가 그것이다.
제일 쉬운 방법은 뿌리를 잘 모아 땅에 묻었다가 봄 되면 꺼내 심는 것이다. 이때 뿌리를 줄기에서 자를 때 뿌리의 살이 많이 도려지면 안된다. 뿌리 윗 부분에 생장점이 몰려 있어 그 부분을 잘라내면 새순이 돋을 수 없다. 살짝만 도려내어 보관했다가 내년 봄 춘분 즈음해서 꺼내보면 윗부분에서 새순이 돋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옮겨 땅에 심으면 꽃대가 올라온다.
다음으로 쉬운 방법은 땅에서 뽑지 말고 적당히 씨 받을 놈을 골라 위부분 줄기만 살짝 도려내고 남은 뿌리가 얼지 말도록 왕겨나 검불들로 덮어주는 것이다. 다음해 춘분 때 살짝 벗겨주면 새순이 돋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배추나 무나 꽃대가 올라오면 씨가 의외로 많이 달린다. 쓰러질 우려가 있으니 지주를 박아 지탱해주면 좋다. 씨 깍지가 몇 개만 누레지면 전체적으로는 파래도 낫으로 베어 양파 망에 담아 거꾸로 매달아둔다.
배추와 달리 무는 씨 깍지가 바싹 말라도 잘 벗겨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무는 베어서 바로 말리지 않고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하루 이틀 정도 덮어두었다가 껍질에 곰팡이를 슬게 한 다음 말린다. 곰팡이가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나중에 씨를 채집하기 쉬워진다. 오래 덮어두면 곰팡이가 씨까지 공격하여 씨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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