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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본격적 수확철

 

 

 

 


추분은 춘분처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때이며 춘분과 달리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때이다. 춘분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면서 기온이 영상의 날씨로 돌아서는 것과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추분에는 반대로 영하의 기온으로 돌아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아직 여름 더위가 남아있기 때문인데 춘분 때보다 대략 10도 정도 기온이 높다.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농사에는 기온보다 해의 길이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식물들은 기온보다 해의 길고 짧음에 더 영향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원래 사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보는데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은 해의 길이보다 기온에 더 민감해졌다. 단열을 우선시 하는 아파트 문화, 에어콘, 난방기 등의 발달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온에 더 민감해지면 오히려 자연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기온 온난화 현상이 날로 뚜렷해져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식물들의 생리 활동은 이어져 간다. 그것은 식물들에게는 기온보다 해의 장단(長短)이 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의 길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기온이기 때문에 온난화로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온난화로 추분이 되었음에도 여름 기운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곡식들은 추분의 때를 알고서 알곡들을 익혀 가고 있다. 해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여름 같아도 마음은 급하다.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씨앗을 맺고 알곡을 튼실히 해야 함을 변함없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시 추분은 추분인 것이다.

추분이 되면 하늘의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으며 겨울 준비를 한다. 가끔 태풍이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날씨는 물이 말라 건조해진다.
들녘의 곡식들도 겨울 준비에 바쁘다. 본격적인 수확철이 다가온 것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니 덩달아 농부들도 바쁘다.
이른 벼 수확하랴, 고추 따서 말리랴, 미리미리 익어 터지는 녹두 팥 따랴, 고구마 줄거리, 호박고지 깻잎 등 묵나물 만들랴 정신없는 가을 농번기가 온 것이다. 얼마 전 잠깐 찾아온 농한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마음이 급해지는 철이다.
논에 심은 자광미는 반은 벌써 익고 반은 아직 이삭이 푸르다. 분명 같은 자광미를 심었는데 확연히 다르다. 일찍 익은 벼는 키도 작고 아직 푸른 벼는 키가 훤출하다. 곰곰 생각해봤더니 하나는 김포에서 얻어온 자광미고 다른 하나는 남쪽 장흥에서 얻어 온 자광미다. 사진을 찍어 토종 박사님께 여쭈었더니 같은 자광미인데 하나는 이른벼, 조생종 같다고 하셨다. 이른벼와 늦벼가 조그만 논에 같이 있으니 그 놈들 보는 맛이 영 껄떡지근하다. 이른 놈을 보면 빨리 거두어야 할 것 같고 늦은 놈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 벼농사 처음 해보는 논 주인인 우리 농장 회원 왈 “저렇게 예쁜 놈을 어떻게 베지요?” 한다.
밭에서 며칠 전 짧은 틈을 내 전어를 구어 먹었다. 우리 농장의 한 회원이 한 턱 내는 자리였다. 전어는 세 번째 먹어 보는데 이제야 그 맛을 알겠다. 처음엔 그렇게 가시 많은 생선이 무에 맛있다고 난리인가 했다. 두 번째는 그럭저럭 소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세 번째는 “이 야, 이 맛이네!” 했다. 그냥 가시도 마구 씹어 먹고 대가리도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전어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더니 그 뜻을 이제야 알겠네요.”
“며느리 친정 집 가면 전어 구워 먹는다는 말도 있어요.”
“하하......”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로 지나면 대충 바쁜 밭일이 끝나 여자들이 잠깐 한가해진 틈을 타 친정집으로 휴가를 가곤 하는데 하필 이 때가 전어철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친정집 간 며느리 자기 빼고 전어 먹을까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려는데, 집에서는 며느리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먹어치우려 했을 것 같다. 아무튼 옛사람들의 풍자와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맛과 얘기다.

추분 즈음에는 보통 추석이 있지만 올해는 추석이 빨라 추분 즈음하니 중양절이 가깝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양의 숫자인 9가 겹쳤다 해서 중양(重陽)이다. 양의 숫자가 겹치는 날을 우리는 길하게 보았다. 따뜻한 양의 기운이 이중으로 들어 있어서다. 그래서 1월 1일은 설날이요, 3월 3일은 삼짇날로 중삼절(重三節), 5월 5일은 단오날로 중오절(重五節), 7월 7일은 칠석날, 그리고 9월 9일 중양절이다.
삼짇날 제비가 강남에서 왔다가 중양절에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지막 양의 계절이 물러가니 제비도 물러가는 것이리라.
올해처럼 추석이 이른 날에는 가난한 농가에선 차례상에 올릴 햇곡식이 없어 중양절에 익은 햇곡식으로 다시 차례를 올리기도 했다. 이를 중구차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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