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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 고온다습한 무더위의 절정


올해는 마른 장마라 하지만 적당히 내릴 비는 내린 것 같다. 다만 열대야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것이 이번 더위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열대야가 일찍 찾아오니 또 사람들은 온난화를 걱정한다. 과일나무 북방한계선이 북상하고 동백나무, 차나무가 중부지방에도 월동을 하는 등 심상치 않은 온난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도 또한 자연스런 현상 중에 하나이겠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와 사람 살기에 큰 지장을 가져올 수 있다. 올 봄, 때 아니게 여름 날씨처럼 더운 날이 일찍 오는가 싶더니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늦서리가 5월까지 내려 농부의 마음을 당혹스럽게 한 것도 기후 변동의 징후일 것 같은 우려를 갖게 했다.


다만 안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김석기 씨의 올 초 무자년 날씨 예측을 보며 온난화라 하지 않아도 옛 조상들은 이런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온난화 불안감을 위안하고자 한다.


“무자년은 땅과 하늘에 화기火氣가 강한 해입니다. 천간의 무戊라는 기운과 지지의 자子라는 기운이 모두 화기火氣를 불러옵니다. 그런 만큼 무자년의 기상은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고, 기상 변화가 심해 예측하기 어려운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온도가 높은 만큼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칠 수도 있고, 증발량이 많아 게릴라성 호우 또는 폭설이 잦을지도 모릅니다.”(08년 2월 4일)


이 예측이 있고 나서 숭례문에 불이 나질 않나, 올 해 상반기 내내 촛불로 밤하늘이 밝혀진 것을 보며 그것 참 신통하다 했다. 농담으로 거리에 돗자리 깔아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얘기 나온 김에 잠깐 옆으로 새면, 작년 대선 다음날 한 천문학자가 전혀 정치와 무관하게 주목할만한 천문현상으로 화성이 가장 지구에 근접해 밤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다 했다. 화성(火星)은 글자 그대로 화(火) 기운을 대표하는 불의 별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서양에서도 mars라 하여 동양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신이며 장군의 별이다. 이 별이 가장 근접하여 빛나고 있다니 아무리 봐도 이번 대통령은 화성의 기운을 받은 사람일 것 같아 영 찜찜했다.


아무튼 올 봄 여름처럼 무덥다가 늦게 서리가 내려 고추 같은 여름 작물에 냉해를 입히더니 대서가 지나야 찾아오는 열대야가 소서 때부터 들이닥쳐 여름을 더 힘들게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삼복(三伏) 더위라 한다. 그런데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절기력도 아닌 간지력(60갑자력)이다. 갑자력 10간(干) 중 경(庚) 일이 하지 이후 세 번째 오는 날을 초복, 네 번 째 오는 날을 중복이라 하고 말복은 입추 이후 첫 번째 오는 경일이다. 경(庚)은 오행 중에 금(金)으로 가을을 뜻한다. 말하자면 해는 하지를 지나 가을로 가고 있는데 지구는 복사열로 달궈져 화기운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니까 가을 기운인 경(庚)이 아직 땅에 강하게 남아있는 화 기운이 무서워 숨는다(伏)는 뜻이다.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 붙어 있어 개고기를 먹는 개 복자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숨을 복(伏)자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옛날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충재(蟲災)를 예방코자 개를 잡아 먹었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복날엔 딱히 먹을 고기가 없다. 돼지고기는 여름에 먹어 탈만 나지 않으면 본전이라는 말처럼 잘 상하기 때문에 먹는 것을 꺼렸고, 소고기도 여름엔 풀만 먹었기 때문에 맛이 없어 잡아먹질 않았다. 소고기는 겨울에 콩 깍지와 볏짚 같은 곡물을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요즘엔 옥수수로 만든 곡물 사료를 먹여 항상 맛있게 소고기를 만들고 있지만, 거친 풀을 먹는 소에게 고운 옥수수 사료를 먹여 반추위가 제대로 작동하질 못해 소가 괴롭다고 한다. 반추위에 고운 사료가 들어가 반추가 잘 되질 않으면서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풀 먹을 때 중성 상태이던 반추위가 산성 상태가 되어 새로운 변종 대장균이 발생되었다. 요즘 O-157 대장균이 발생해 리콜 사태가 미국에서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벼는 복날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벼의 꽃대가 하지 지나 초복이 되면 밑둥에서 올라오기 시작해 한 살, 중복 쯤에는 중간쯤 올라와 두 살, 말복 지나면 세 살 먹어 곧 이삭을 패 올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벼와 같은 과(科)인 피가 벼 옆에 딱 붙어서 함께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 놈은 벼와 아주 비슷하게 생겨 농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고 농부도 그놈의 뛰어난 위장술 때문에 가까이 가서 알아 볼 수 있다. 이 놈이 벼와 함께 복날마다 따라서 나이를 먹으니 복날 즈음에 농부는 이놈들 피사리하느라 뙤약볕에 논바닥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반나절만 지내다 보면 절로 진이 빠지니 몸보신을 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딱히 몸보신할 고기가 주변엔 없다. 개 말고.


개는 농경 사회에서는 제일 귀찮은 가축이다. 소는 일도 잘하고 돼지는 거름도 잘 만들고 닭은 달걀도 잘 낳아 참 소중한 가축들인데 개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짓는 일밖에 없다. 먹는 것도 사람하고 똑 같아 부잣집 아니면 똥 밖에 먹일 게 없으니 서민들 집에는 이름도 없는 똥개밖에 없다. 짓는 일도 요즘 같이 인심이 흉흉한 시절엔 중요한 일이겠지만 옆집 숟가락 숫자도 다 아는 공동체 사회에서 개가 짓는 일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뭐든지 좋지 않은 것에는 꼭 개 자를 붙였다. 개떡, 개복숭아, 개xx, 등등.... 우리 마을 아저씨 중에 풀 이름을 잘 아는 분이 있는데 어느 날 별로 예쁘지도 않은 귀찮은 풀이 있어 아저씨에게 무슨 풀인지 여쭤보니 곰곰이 보시다가 하는 말, “개풀이지!” 하고 자리를 피하신다.


그러나 유목, 목축 사회에서 개는 가장 소중한 가축이다. 소나 양을 지켜주고 몰고 다니는 뛰어난 일꾼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를 우리가 개장국으로 잡아먹으니 질겁을 할 수밖에...


더위가 찾아오는 하지 무렵을 서양에도 개날(dog day)이라 했다. 이집트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꼭 떠오르는 별이 있는데 그게 큰개자리 별의 1등성인 시리우스라는 별이다. 이 별이 떠오르면 나일강이 범람한다 하여 이 별이 뜨는 날을 개날(dog day)이라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에서 이 별 이름 또한 천랑성(天狼星)이라 하여 개와 같은 늑대 랑(狼)자를 썼다.

 
대서에는 아직 잡지 못한 풀과 마지막 전쟁을 치르는 철이다. 매년 반드시 장마 전에 꼭 풀을 잡아야지 해 놓고서는 꼭 놓치고 만다. 올해도 소만 망종 때부터 올라오는 풀들을 보면서 “올해는 기어코 너희들을 제압하리라!” 해놓고선 한 이틀 밭을 비웠더니 또 놓치고 말았다. 급한대로 풀에 약한 벼밭은 다 맸고, 들깨밭은 장마 초에 심었는데 벌써 풀과 함께 자라고 있다. 그래도 들깨는 모종을 심은 거라 아직 풀에 치이고 있지는 않아 여유가 좀 있다. 반면 직파한 서리태, 메주콩, 수수는 위태롭다. 콩은 그래도 아슬아슬 풀 속에서 버티고 있지만 수수가 영 괴롭다. 어제부터 수수밭을 매기 시작했는데 꼭 수수를 닮은 피들이 주변에 같이 올라와 햇갈리게 하여 더 신경쓰게 만든다. 지금도 빨리 이 글을 마치고 수수밭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마지막 풀도 아직 잡지 못했는데 가을 김장 농사 준비에 벌써 마음만 바쁘다. 며칠 전 배추밭으로 쓰려고 방치한 풀밭에 오줌을 잔뜩 뿌리고 부직포를 덮으려 했으나 급한 마음에 부직포만 덮어버렸다.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게 똑 같다. 좀 늦더라도 오줌을 뿌려 둘 것을..... 나중에 밑거름을 따로 하다보면 미리 해 두지 않아 몇 배의 힘을 들여야 하니 늘 같은 후회를 하곤 한다. 올해는 배추도 직파할 것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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