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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점점 바빠지는 농번기



입하가 되니 이제 냉해에 대한 걱정이 가신다. 이번 곡우에도 영락없이 이상 기후가 찾아왔다. 곡우 전까지만 해도 여름 같은 더운 날씨가 계속 되더니 곡우 지나 내린 곡우 비로 추운 날씨가 닥치고는 영락없이 서리가 내렸다.


원래 곡우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인데 이번엔 거꾸로 마지막 서리를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4월말까지는 절대 냉해를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몇몇 성급한 회원들이 시중에서 고추, 토마토 모종을 갖다 심어 결국엔 피해를 봤다. 참으로 농사는 당해봐야 알고 실패가 참된 스승인 것 같다.


특히 설날이 입춘 뒤에 오는 해의 봄은 입하가 올 때까지 안심해선 안된다. 온난화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온난화란 무조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변덕 날씨가 심해진다고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마을 어르신이 일러주시기를 음력 3월 20일게 쯤 서리가 내리면 반드시 풍년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음력으로 3월 19일인가 20일 쯤에 서리가 내렸으니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올해도 풍년은 들 것 같다. 변덕 날씨만 잘 피하면 말이다. 이때 서리가 오면 활동하기 시작한 벌레들이 뒤통수 맞아 넉아웃되니 풍년들 수밖에....하긴 밀이 예년에 비해 튼실한 이삭을 패고 있어 조짐이 좋기는 하다.


입하가 되면 이젠 밭의 봄나물들, 그러니까 냉이, 씀바귀, 민들레 들은 이제 꽃도 피우고 씨를 맺고 있어 먹을 게 없다. 그렇지만 실망만 할 일이 아니다. 대신에 명아주, 비름, 질경이 들이 그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맛있는 풀이기도 하지만 작물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풀이기도 하다. 이때쯤 되면 봄에 심은 작물들은 이 풀들과 경쟁을 하며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바지런한 농부들은 그저 잡초만 매지 않고 이 풀들도 거두어 맛있는 저녁 나물 반찬을 준비한다.


사실 이때쯤이면 조금씩 먹을 게 많아진다. 시금치, 얼갈이, 열무 들도 솎아 겉절이 무치면 군침이 마구 돈다. 7, 8년 전쯤 상주에서 머우 한포기 얻어다 심은 게 얼마나 번졌는지 좀 따다 삶아서 쌈을 해먹었더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지금이 머우 쌈은 제일 맛이 좋을 때다. 적당히 쌉싸름하면서 그 뒷맛이 참 일품이다. 쌈장으로는 멸치국물에 양념을 다져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몇방울 떨어뜨려 그것으로 싸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농사를 짓고부터는 이놈들 맛에 익숙해져 점점 고기가 멀어진다. 고기는 먹을수록 고기 분해효소가 많아져 더욱 고기를 당기게 한다더니, 반대로 먹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분해효소가 줄어들어 당기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풀 맛의 진가를 맛보면 고기 맛은 진짜로 저리 가라다. 향기와 아삭한 맛, 그리고 남는 입안의 개운함, 어디 그뿐인가, 속편한 뱃속과 마지막 쾌변까지 선사해주니 여러모로 좋기만 하다.


그런데 이 풀들이 무조건 고마운 것은 아니다. 작물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때를 그냥 넘기면 작물은 반드시 잡초에 치여 힘을 쓰지 못한다. 열심히 풀을 매주어야 하는 것이다.


풀만 매주면 안된다. 호미로 흙을 긁으며 북도 주고 더불어 반드시 웃거름도 주어야 한다. 모든 작물은 이 작업, 곧 풀매고 북주고 웃거름 주는 작업을 두세번은 해주어야 한다. 농작업의 제일 중요한 기본 작업이라 보면 된다. 이 때 풀 매는 것을 어려운 말로 중경제초라 하는데 이런 말은 몰라도 농사짓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쨌든 풀을 한번 매주는 것은 거름 다섯 번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다. 북을 주는 것은 흙을 작물 포기 주변으로 모아주어 작물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표토를 긁어서 표토에 형성된 모세관을 끊어주기 때문에 그를 통해 날아가는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웃거름까지 마지막으로 주면 작물을 힘차게 자랄 일만 남았다.


요맘때가 되면 잡초만이 아니라 벌레들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린 잎과 줄기와 뿌리를 갉아먹는 놈들이 많아진다. 또 봄가뭄이 시작되기 때문에 벌레가 더한다. 작물의 액즙을 빨아먹어 갈증과 요기를 해결한다. 진딧물도 많아지고 배추잎 갉아먹는 무잎벌레, 고추모종 잘라먹는 거세미, 땅 속에는 굼벵이와 땅강아지가 많아져 뿌리와 줄기를 갉아 먹는다. 감자잎 좋아하는 28점 무당벌레도 많아져서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막 나타난다.


그러나 어쪄랴? 농약도 칠 수 없고, 유기농자재는 비싸고 참으로 대책이 잘 보이질 않는다. 천상 목초액이나 액비, 식초나 아니면 담배꽁초 우린 물, 우유, 요구르트 등이라도 써봐야지.


나도 여러 가지 써봤지만 제일 좋은 것은 이런 것을 안쓰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안써도 될 정도로 흙을 잘 가꾸면 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권하고 싶은 것은 로타리를 치지 않는 것이다. 섣부르게 무경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400평의 작은 밭이라 어렵지 않게 무경운을 실천하고 있지만 많은 평수에 그런 방식을 적용하기란 만만치 않다. 면적이 넓다면 쟁기질을 권하고 싶다. 쟁기질이든 무경운이든 제일 중요한 핵심은 흙의 떼알구조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흙 속과 표토와 지상부를 관통하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한 종이 우점하는 현상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로타리는 흙을 밀가루처럼 만들어 흙에 형성된 다양한 미생물 집, 지렁이 집, 물구멍, 공기구멍을 다 깨뜨려 균형이 깨진다. 생태계에서 균형이 깨지면 개체수가 많은 놈들이 우점한다. 초식들이 대표적이다. 초식벌레는 다 해충이다. 게다가 유기물을 함께 넣고 로터리를 치면 땅 속 벌레들은 신난다. 그 유기물을 먹으러 마구 달려드니 제 세상 만난 것이다.


며칠 전 봉화에 취재 가서 2천5백평을 무로터리, 무비닐로 농사짓는 선배를 만났다. 흙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병해충 별로 걱정하지 않고 농사짓고 있는 분이었다. 거름도 집에서 나오는 똥오줌과 음식물 등의 자가퇴비로 쓰고 있었다. 그런 흙에서는 병충해만이 아니라 마늘과 양파를 전혀 보온 대책을 취하지 않고 그냥 흙에 심었는데도 겨울을 거뜬히 넘겨 지금은 풍년을 기약하며 힘차게 자라고 있다. 살아있는 비옥한 흙은 추운 겨울의 동해도 막아주는 것이다.

 
입하가 되자 작년에 심은 밀이 본격적으로 이삭을 패고 있다. 나는 입하 전, 그러니까 4월말에 밀 사이에 골을 괭이로 타서 밭벼를 심었다. 이른바 사이짓기다. 골에다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볍씨 2~30알을 점뿌림하고는 완숙된 퇴비로 덮어주었다. 이때쯤이면 봄가뭄이 들어 씨앗이 발아하기 힘들다. 그러나 다 자란 밀 사이는 덜 건조하여 싹 나는 데 유리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은 밀 사이짓기로 밭벼를 직파하고 나머지 반은 200구 짜리 포트에다 모종을 길러 모를 냈는데, 역시 모종 낸 것보다 직파한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이번엔 방식을 바꿔 둘 다 직파를 하되 하나는 4월 말 밀 사이짓기로 직파하고 하나는 장마 직전에 밭에 풀매고 고랑 내어 그냥 심을 계획이다.


이번엔 이웃과 함께 30평 되는 논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종 볍씨를 뿌렸는데 역시 직파 점뿌림을 했다. 토종 벼는 사람 허리 이상으로 커서 꼭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직파를 해서 직근을 깊게 내리게 하여 지상부를 적게 크게 하면 쓰러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줄뿌림이나 흩어뿌림이 아닌 밀식으로 점뿌림을 하면 볍씨들이 서로 부대끼니 뿌리를 밑으로 깊게 내린다. 싹이 나면 한번 풀을 매주고 물을 댈 계획이다. 일종의 건답직파를 하고 무논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이 어느정도 차면 우렁이를 넣어 제초를 맡기려 한다. 제대로 계획대로 될지 자못 기대가 되는 실험이다.


이래저래 입하가 되니 농번기가 참으로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마음이 들떠있어 기분은 좋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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