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농담/농-생태계

곡우(穀雨), 바야흐로 본격적인 농번기

by 石基 2009. 9. 11.
반응형

곡우(穀雨), 바야흐로 본격적인 농번기



비는 하지 지나 장마철에 대부분 쏟아지는데 비 우(雨)자가 들어있는 절기는 우수(雨水)와 곡우(穀雨) 뿐이다. 그만큼 이 때의 비가 농사에 있어서는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 때 내리는 비는 겨울 동안 언 땅을 녹여준다. 곡우 때의 비는 말 그대로 곡식을 심을 수 있게 해준다. 비 우자가 들어있지 않지만 춘분 때도 비가 내린다. 이 비도 마찬가지로 곡식을 심게 해주는 비다. 이 세 번의 비는 농사를 시작하게 해주는 고마운 비다. 비가 내려야 온 땅이 촉촉해져서 씨를 심고 싹을 틔울 수 있다. 싹도 틔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름에 많은 비가 쏟아져도 소용이 없다. 봄에 비가 잘 내려 싹을 틔우고 뿌리만 잘 내린다면 여름에 가뭄이 와도 뭔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우수, 춘분, 곡우의 비는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비다. 올해도 다행히 적당히 이들 비가 내려주었다. 4월 20일 곡우 때도 비가 내린다고 하니 올해는 분명 풍년이 될 조짐이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봄비도 있다. 우수, 춘분, 곡우 비가 적당히 내렸는데도 비가 한 번씩 더 오는 경우다. 작년이 그랬다. 가령 우수 전후에서 우수비가 내렸는데 바로 또 비가 오면 녹은 땅이 진땅이 된다. 진땅이 되면 마르면서 땅이 굳는다. 춘분 때 비가 내려 파종을 했는데 또 비가 내리면 싹을 틔우려 애쓰고 있는 씨앗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곡우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문 것에 비하면 이는 배부른 소리다. 올 겨울에 별로 눈이 오질 않아 가뭄이 심한 것에 비하면 아직 올해 봄비는 좀 모자란 느낌이다. 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밭에는 살짝 긁는 괭이질에도 먼지바람이 인다.

 
곡우가 되면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춘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농한기의 여파가 남아있어 농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품이 맴돈다. 청명이 되어 따뜻한 햇살에 막걸리라도 한 대접 목을 추기며 점심을 한 뒤에는 살짝 봄졸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을 지나니 정신이 없다. 감자를 심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얼갈이 심고, 아욱, 시금치, 홍당무, 상추 심고 바로 강낭콩에 완두콩까지 냅다 내달린 기분인데 어제는 고추 심을 준비하느라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직파 고추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모종 고추를 앞으로는 하지 않으려 한다. 작년에 일부 고추를 직파했더니 병해충에도 강하고 무엇보다 지주와 끈을 띄워주지 않아서 좋았다. 당연히 수확량은 대폭 줄었다. 정확히 재지는 않았지만 반도 되질 않았던 것 같다. 키도 크질 않고 고추도 늦게 달리는데다 포기당 달린 양도 적다. 그래서 포기수를 1.5배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니까 200주 심던 것을 300주로 늘려 적은 수확량을 메워보려는 것이다. 작년엔 거름을 많이 주면 키가 커서 자칫 지주를 세워주어야 할 것 같아 거름을 적게 주었으니 올해는 적당히 거름을 주어 제대로 키워보려는 것이다.


겨우내 풀과 음식물과 똥과 오줌을 섞어 만든 완숙 퇴비를 평당 10kg 넘게 주고 제초 덮개로 신문지를 씌워주었다. 신문지는 작년에 풀을 쑤어서 두루마리를 만들어 둔 게 많이 남아 그것으로 덮으니 세 사람이 일사천리로 일을 끝냈다. 농사일은 혼자 하면 쉬엄쉬엄 놀면서 할 수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분업해서 하면 정신이 없다. 일의 효율은 뛰어나지만 내 몸의 바이오리듬은 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 신문지 덮개는 쓸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효과도 뛰어나고 두루마리 만들기도 쉽고 나중에 다 삭아버리니 수거할 필요도 없어 참 좋은 것인데 잘 퍼지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두둑은 좁고 높은 한 줄짜리로 만들지 않고 폭 1미터20센티미터 정도의 두 줄짜리 낮은 두둑을 만들었다. 배수도 잘 되는 편이어서 늘 그렇게 만들어왔다. 모종을 꽂을 때는 두 줄로 했는데 직파를 할 것이라 세 줄로 심을 예정이다. 한 구멍에는 세알씩 넣고 나중에 솎아줄 것이다. 마을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옛날엔 줄뿌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따라 나도 줄뿌림을 해봤는데 풀이 훨씬 빨리 올라와 풀에 치어 버렸다. 내가 게으른 탓이었다. 그래서 작년엔 신문지 덮개를 해서 점뿌림을 했더니 잘 되었다. 신문지 덮개를 쓰면 줄뿌림을 하기가 힘들다. 다만 단점은 북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년엔 북주기를 아예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두고 보고 판단하려 한다.

 

곡우의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다. 서리는 여름 농사에는 가장 큰 장벽이다. 봄 서리가 끝나야 비로소 여름 작물을 파종할 수 있고 가을 서리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봄 서리는 곡우 때 끝나고 가을 서리는 상강 때 시작한다. 곡우 때 서리가 끝난다고 하지만 중부지방에서는 4월말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시중에는 벌써 여름 모종들이 장사진을 펴고 있지만 함부로 사다 심으면 좋지 않다. 온난화 날씨로 점점 서리 기간은 짧아지고 있지만 예년 경험으로 볼 때 변덕 날씨로 별안간 추워지는 때가 있다. 제일 안심인 것은 5월초 입하 직전에 심는 것인데 좀 늦다 싶으면 4월 말쯤에 하는 게 낫다. 된서리는 아닐지라도 찬 기운을 받으면 작물이 타격을 받아 건강이 약해져서 병해충에도 잘 견디지 못하고 열매도 부실하다.


직파를 할 경우는 곡우 전에 한다. 싹을 틔우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곡우 지나 발아가 되게끔 일정을 맞추면 된다. 내가 심을 대화초 고추는 발아하는 데 3주 걸리므로 지금 심으면 좀 늦다.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좀 안정적으로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올해 경험을 잘 살려 내년엔 나답지 않게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