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칩, 개구리 따라 사람도 기지개 켠다



우수가 지나니 한 낮엔 확실히 봄기운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러나 안심해선 안된다. 아침 저녁으로 아직은 찬 겨울 기운이 남아있다. 낮에도 스산한 바람이 따뜻한 햇살 속에 숨어 있어 맘을 놓을 때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 지 여기저기서 감기 걸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의 ‘무자년을 꼽으며’라는 글에서 올해는 화기火氣가 강한 해라 가물고 더우면서도 기상 변화가 심하고 날씨가 고약하다고 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라고 하더니 올 해는 환절기가 유난히 변덕이 심한지라 화재도 많이 나고 감기도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우수 지난 며칠 뒤 취재차 시골에 갔다가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보고 왔다. 같이 간 벗이 잔뜩 감기를 안고 있는데 차 안에서 나도 그 감기를 나눠 갖고 말았다. 미안해하는 그 친구에게 말로는 “감기도 가끔 걸려줘야 건강에 좋아”했지만 올라오는 운전은 좀 힘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전날 밤부터 홀쭉홀쭉 콧물을 흘리던 게 영 찝찝한 차 였다. 차 안의 햇살은 따스한데 한 데의 바람은 아직 매서운 데가 있어 더했다. 힘들어 하며 차에서 내린 친구는 어찌 감기를 다스렸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친구와 헤어지며 감기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아침 찬바람을 탓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 농부의 마음은 본격적으로 바빠질 때다. 어제는 밀밭, 양파, 마늘밭을 가 보았더니 서릿발이 심하지 않았다. 서릿발이 심하면 뿌리가 땅에서 들쳐져 그 틈으로 봄기운이 스며들고 뿌리를 말리기 때문에 뿌리를 밟아 주어야 한다. 아마 서릿발이 심하지 않았던 것은 풀 거름을 많이 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작년 늦가을 밀, 마늘, 양파를 심으면서 흙 대신에 완전히 삭은 풀 거름을 덮어준 것이다. 물론 그 위에다 질소질 거름도 주었다. 경칩도 지났으니 이제는 겨우내 모아둔 오줌거름을 웃거름으로 두세 번 뿌려주면 아주 잘 자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경칩 근방이면 음력으로 2 월 초하루가 있다. 2월 초하루는 머슴날이라 했다. 바야흐로 머슴들이 힘들게 일할 때인 것이다. 양반들은 머슴들을 부리기 위해 이날 떡과 맛있는 음식을 해 주었다. 경칩驚蟄이라는 뜻은 벌레가 놀라 깬다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은 이 날 처음으로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이 소리에 땅 속의 벌레들이 놀라 깬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천둥소리와 무관하게 따뜻해진 날로 벌레들도 깨어나고 개구리도 깨면서 따라서 함께 사람도 머슴도 깨어나 바 쁜 살림살이에 들어가야 한다.


논과 밭에선 보리밟기로 시작하고 집에서는 벽을 바르거나 무너진 담벽을 보수했다. 경칩이 되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흙이 부드러워져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했다. 또한 노래 기를 퇴치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는 봄기운에 깨어난 벌레들 중에서 사람에게 좋지 않은 벌레들을 퇴치하여 위생을 깨끗이 하고자 한 것이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잿물을 만들어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했다.


건강을 위해 개구리 알이나 도룡뇽 알을 생으로 먹는 풍습도 있다. 지금도 이 풍습은 남아있어 자연의 생명을 해치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고전 예기禮記의 월령에는 경칩에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 을 기르고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고 되어 있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이름이니 주변의 꼬물락거리는 생명들을 꼼꼼히 보살필 일이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728x90

'농담 > 농-생태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명, 맑고 화창한 봄날   (0) 2009.09.11
춘분, 뭇 생명이 일제히 소생하는 완연한 봄   (0) 2009.09.11
우수, 비로소 봄이오다   (0) 2009.09.11
입춘, 우리의 설날   (0) 2009.09.11
간지로 보는 기축년   (0) 2009.01.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