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향하여
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새벽 2시, 알람 소리에 맞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리고 싶은 맘을 꾹 누르고 세수를 하고 가방을 꾸렸다.
새벽 3시, 안철환 선생님을 집 앞에서 만나 화성 봉담의 안완식 박사님 댁으로 출발했다. 안완식 박사님 댁에서 이러저러한 짐을 챙기고, 다시 병점 근처의 박문웅 선생님 댁에 들렀다. 이제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에서 한영미 선생님만 만나면 울릉도에 함께 갈 일행이 모두 모인다.
대전 톨게이트롤 나와 얼마 헤매지 않고 금방 한영미 선생님을 만났다. 그럼 울릉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포항으로 Go! Go! GO!
울릉도에 들어가는 배는 묵호항과 포항항 두 곳에 있다. 그런데 묵호항은 여름 성수기에만 운행을 한다기에 할 수 없이 포항까지 가야 한다. 아무래도 묵호가 더 가깝고 배를 타고 가는 길도 그렇지만, 배가 뜨지 않는다니 할 수 없지 않은가?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도 먹고, 안철환 선생님에서 한영미 선생님으로 운전사가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인간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수행하고...
아침 9시 10분 포항에 도착했다. 포항을 둘러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 그대로 포항항으로 직행. 바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다 냄새나 비린내에 민감한 나, 배멀미를 이길 자신이 없어 집에서 출발할 때 이미 멀미약을 귀 밑에 붙였다.
미리 예약했지만 돈을 지불한 것도 아니고 좀 어설프다. 안철환 선생님은 자신의 차를 가지고 울릉도에 가고자 했으나, 며칠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미 차량 예약을 꽉 차서 어쩔 수 없단다. 할 수 없이 울릉도에 건너가 차를 빌려야 한다. 매표소에서 예약 사항을 확인하고 할인을 받았다. 한영미 선생님만 빼고는 경로우대와 복지할인 혜택을 받는다. 5명 가운데 4명이 할인이라 어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에 가면 그대로 공짜 통과이다.
드디어 배에 올라탔다. 날씨가 흐리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울릉도도 처음이고, 섬에 가려고 배를 타는 것도 처음이라 속이 더 울렁거린다. 멀미약을 붙이길 참 잘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를 타고 갈수록 날은 더 흐려지고 바람까지 불어 배가 출렁인다. 한영미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셨다. 후~ 올 때도 잊지 말고 멀미약을 챙겨야지.
오후 13시 30분, 울릉도에 내리니 갈매가와 거센 바람이 맞아준다. 오늘은 웬지 꼭 비가 오겠다. 내리자마자 항구 근처의 성인봉 모텔을 잡아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차를 빌리러 도동항에 나갔다. OK렌트카라는 곳에서 투싼이란 차를 빌리고 꼼꼼히 구석구석 점검했다. 타이어가 심하게 닳은 것 말고는 겉보기에 큰 이상은 없었다. 바로 계약이 성사되고 바로 옆 식당에 들어가 울릉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난 오징어 내장탕. 어릴 때 외가가 묵호라서 한두 번씩 먹던 그런 국이다. 별 새로울 것이 없군.
오늘부터 조사에 나설 수는 없었다. 시간도 어중띠고, 긴 이동 거리에 피곤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울릉도를 돌기 전에 미리 울릉도의 사정을 알아야 하기에 더 그랬다. 안완식 박사님의 인도로 16시 울릉군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했다. 그러나 토요일이라 대부분의 직원은 출근하지 않고 당직을 서는 사람 몇 명만 출근했다. 아쉬운 대로 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을 붙들고 울릉도의 농업 사정을 들었다.
울릉도에서는 70년대까지 옥수수와 감자가 주식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배도 다니고 특산품도 많아져서 다들 쌀을 먹고 산단다. 하지만 옛날에는 논이 적어 보리나 조금 농사지어 먹었다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짐작이 간다. 울릉도 사람들의 질긴 생존력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 왔으리라.
요즘 울릉도에서는 호박과 더덕의 재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호박은 호박엿 덕에 그렇겠고, 더덕은 울릉도만의 독특한 맛과 향이 있다니 한 번 더덕구이라도 먹어볼 일이다. 그밖에 명이와 고추냉이는 울릉도만의 특산이고, 요즘은 산채가 특히 많이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울릉도를 다니면서 강원도에서 고냉지 채소를 재배하듯 산채를 재배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일천궁과 섬바디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일천궁은 자생은 아니고 육지에서 가져다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토질을 악화시키고 연작 피해로 이제는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고 한다. 섬바디는 워낙 섬에서 많이 자라 그냥 사료로 쓴단다.
울릉도는 다들 알다시피 화산암 토양이다. 그래서 물이 잘 빠지고, 공기도 잘 통한다. 일조량만 적당하다면 기온과 습도도 높아 별 어려움 없이 여러 작물이 잘 자란다. 작은 섬이고 어업이 발달한 곳이기에 농사는 어려울 줄 알았는데, 어업은 요즘 들어서 활발해졌고 농사짓기 좋다니 놀랄 일이다.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교통과 통신 수단만 받쳐주면 이런 곳에 사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울릉도의 생태계에는 뱀과 개구리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요 근래 누군가 개구리를 사육할 목적으로 가지고 들어와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고 있단다. 개구리만이 아니라 꿩과 다람쥐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아주 걱정이 많다. 꿩도 사육 목적으로 들여온 것이 태풍에 사육장이 망가지며 탈출해 이렇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생물이 하나둘이랴? 황소개구리가 그렇고, 베스나 블루길도 그렇고, 흰민들레도 그렇고,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 서로 전혀 교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들어와 천적도 없이 다른 생물에 큰 피해를 끼치는 것이 문제이다. 요즘 날이 따뜻해지고 있는데, 친환경농업에서 많이 쓰고 있는 왕우렁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대부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경험한 것이 있어 영 마음이 놓이진 않는다.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울릉도에 토종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 답은? 이제 곡류는 거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에는 자급을 할 때라 많았겠는데, 이제는 산에나 올라가야 있을까 잘 모르겠다고 한다. 토종의 가치는 아직 울릉도에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뭐 종자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그렇게 답할 것이지만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려고 농업기술센터를 나섰다. 맛있다고 소개해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걱정하던 대로 과연 밤이 되자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쳤다. 설상가상 밤이 깊어지자 비는 눈발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일 조사를 다닐 일이 걱정이다. 울릉도는 비탈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떨지?
농업기술센터에 들렀다가 내려와 잠시 바다를 구경했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넘으면 도동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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