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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했던 눈길을 헤치고

 

 

 

 

2008년 12월 14일 일요일. 아침까지 눈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 괜히 모텔 컴퓨터를 건드렸다가 돈만 물어주게 생겼다. 이 정도면 병이다. 가끔은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벽癖이 보인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그런 상황이 오면 또다시 슬그머니 치밀어오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벽.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8시 30분 아침을 다 먹은 뒤, 안완식 박사님이 울릉도에 매화나무가 있다며 그쪽으로 이동하자고 하신다. 몇 번의 통화 끝에 더듬더듬 찾아갔다. 어제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갈 때 어설피 짐작은 했지만 이건 뭐 바닷가를 벗어나려면 무조건 비탈을 올라야 한다. 도착한 곳은 도동항인데 이곳에서 벗어나려 해도 비탈을 올라야 한다. 도대체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눈이 와 미끌미끌한 길을, 운전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바퀴가 미끄덩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기어 올라가 저동항 쪽으로 내려갔다. 저동항에서 쭉 가다가 가게를 끼고 좌회전해서 쭉 올라가면 된다는 설명만 듣고 무작정 찾아나섰다. 과연 그대로 가니 가게가 나와 그쪽으로 꺾어져 오르다 보니, 마을 사람인데도 이 눈길에 미끄러져 쩔쩔 매고 있다. 차 안에서 잠시 지켜보다 갈 길이 바쁜데 지체할 수 없어 차에서 내려 돌을 날라다 괴어 주고 밀어 주고 힘을 써 차를 뺐다. 그리고 그 차가 빠져 있던 곳을 지나 더 위로 위로...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건가? 울릉도는 뭐 이래... 길에 보호장치도 없고 울릉도 사람이 아니면 운전하기 참 어려운 길이다. 그런 길을 안완식 박사님은 웅웅 잘만 가신다. 옆에 앉아 맘이 조마조마할 뿐이다.

길을 오르니, 그 집으로 의심이 가는 집 몇 채가 눈에 띈다. 부지런히 가서 사람을 찾으니 아무도 없다. 첫 집부터 망치나? 비까지 오는데? 안완식 박사님이 다시 한 번 전화를 거셨다. 다행이다. 바로 아래쪽에 있는 집이란다. 살살 차를 돌려서 그 집 앞에 차를 댔다.

 

처음부터 고생하며 찾았다. 울릉도는 비탈이다. 항구는 바닷길이 열린 얼마 안 된 그때부터 사람이 있었을 뿐. 옛날에는 모두 비탈에 기대어 사람이 살았다. 

 

간신히 찾아온 저동2리 148번지 작은모시개의 배흥식(73) 할아버지 댁. 처음보는 울릉도의 독특한 집 구조에 눈이 먼저 간다. 매화나무는 뒷전이고 집 구석구석을 구경하기에 더 바빴다. 울릉도는 섬이라 그런지 집이 안에 있고 그 겉을 나무를 이용해서 덧대어 바람을 막고 있다. 무엇이든지 안에 들어가 있다. 요즘이야 함석도 나오고 그래서 조금 편해졌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 바람을 막는 일이 참 힘들고 큰일이었겠다. 그래도 그다지 춥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의 남해와 서남해에는 섬이 참 많다. 그런데 북쪽으로는 섬이 별로 없지 않은가? 동해는 한류가 흐르는 곳이 많은데, 그곳은 또 어김없이 바다뿐이지 않은가? 그런게 다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할아버지 댁에서 울릉도의 첫 맛을 보았다. 내가 여기에 관광을 왔다면 여기까지 와 볼 수 있었을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가는 여행의 참맛을 본 듯하여 기뻤다. 관광을 생각하면 참 그렇다. 놀고 먹는 데에만 집중하는 관광이라 싫다. 신혼여행은 푹 쉬는 게 좋다며 다들 관광지에 가서 놀다 오라고 추천했다. 그렇지만 그건 돈도 시간도 아까운 것 같아, 아무튼 전라도 맛기행으로 주제를 잡고 전라도를 돌았다. 결론은 참 좋았다. 푸켓이 어떻고, 거시기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

배흥식 할아버지 댁에서 매화나무 사진도 찍고, 노란옥수수와 마늘을 얻고서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배흥식 할아버지 댁 쥐덫. 울릉도에도 쥐는 많은가?

 

 

배흥식 할아버지 댁을 나와 오늘의 첫 목적지로 잡은 천부동으로 향했다. 

비탈을 조심히 내려와 가는 길에, 저동항을 못 미쳐 옥수수를 걸어 놓은 집을 발견했다. 비가 오지만 그 집을 한 번 들르자고 차를 세웠다. 얼른 뛰어가 사람을 찾으니, 할머니가 나오신다. 저동 91번지 이정숙(70) 할머니 댁이다. 콩대도 발견했는데, 그건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노란옥수수만 얻었다. 할머니는 농사보다 바다일에 더 잔뼈가 굵으신 분이셨다. 이제는 몸이 많이 불편하셨는데, 혹시 모르겠다. 예전 젊었을 때는 물질도 하신 그런 분이시지 않을까? 추측만 하며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어르신들은 누가 찾아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신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서 눌러 앉아 듣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없다. 적당히 이야기를 듣다가 끊고 나오는 것도 일이다.

이제 다시 저동항을 지나 울릉군청을 밑에 두고 본격적으로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여전히 빗줄기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좀 달리다 보니 이거 어제 농업기술센터에 올라간 길 부근에서 사고가 났다.

울릉도의 바위는 비에 깎이길 잘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의 눈비와 바람으로 길이 막혔다. 두둥!!!

굴삭기가 굴러 떨어진 바위를 치우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런 길로 다닐 수 없었겠지. 언제 돌이 떨어져 깔릴지 모르는데 누가 이런 길로 다녔겠는가. 지금이야 찻길이 뚫리고 중장비가 있으니 다니지, 아니면 산길로 하루 걸려 넘어 다녔을 게다.

 

돌이 굴러와 그걸 치우느라 한창이다. 울릉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해안도로가 아니라면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일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이런 것이 아니면, 물론 다니기에는 힘들었겠지만 토종은 더 많지 않았을까? 개발되지 않았을 때 다녔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제 지나다가 돌이 굴러 떨어져도 모른다. 돌에 부딪치면 운명이려니 생각해야지. 차를 타고 달리는데 이건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이런 절경을 본 댓가로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으려나?

척박한 환경이 그런 절경을 만드나 보다. 사람이 다가가기 힘들었을 때의 울릉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뭇 궁금하다.

뱅글뱅글 돌아 오르는 길을 만났다. 이야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네. 자동차를 타고 롤러코스터처럼 길을 오르고 오르니 눈이 살짝 덮인 길... 난감하다. 이거 그냥 돌아가야 하나? 인간 네비게이션을 찾으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데, 등에서는 땀이 쭉... 난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돌아갈까, 아니면 그대로 직진? 난감하다. 주어진 시간도 있고,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를 보니 오르막길이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죽으면 다 함께 죽는다. 가자!

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 기어서 오른다. 기어서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다, 천천히 기어서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린다. 어느 정도 안전한 곳까지 와서는, 휴~... 살았다. 이런 차로, 바퀴가 다 닳아 미끄러지는 이런 차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다행이다. 이제는 한 숨을 내쉬고 해안도로를 따라 목적지로 가자. 

울릉도의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이곳도 물론 말이 나오지 않는 절경이다. 눈길을 벗어나니 모두들 '이야~'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천부동에 올라가는 입구에 도달했다.

 

천부동 입구에서 본 깍새섬.

 

이제 깍새섬이 보이는 천부동 입구까지 도달했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유람선 선착장밖에 없다. 깍새섬은 깍새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깍새는 뭐랄까, 우리나라의 날지 못하는 새라고 할까? 오스트레일리아인가 뉴질랜드에 그런 새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도 그런 새가 있었는데,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배를 타고 건너가 몽둥이로 퍽퍽 잡아다 먹었단다. 깍새는 척박한 울릉도에서 유일한 단백질 보충원이라고 한다. 하여간 그런 사연 때문에 이제는 깍새가 없다고 한다. 깍새는 깍~깍 울어댄다고 깍새라는데, 그런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천부동을 오르는 길에서 차를 세우고 깍새섬을 구경한 다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를 차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안 그래도 여기까지 오려고 고개 하나를 넘으며 목숨을 걸고 왔는데 여기에 올라가다가 이도저도 못할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 네비게이션으로서 책임이 있지 먼저 앞에 뛰어가서 길이 어떤지 보겠다고 자청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먼저 본 배흥식 할아버지 댁과 같은 구조의 집. 울릉도의 집은 원래 이런 구조라는 걸 알게 해 준 집. 사람들은 이 집을 비우고 바로 옆에 신식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먼저 올라가 보니 차가 오를 수도 있겠다. 소리 쳐 천천히 오르라고 인도했다. 그리고는 다시 차에 올라 조심조심 비탈을, 눈이 살짝 깔린 길을 올랐다. 이런 길을 오른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물론 신발에 의존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운전하는 분들은 이런 길을 오른다는 걸 엄청 대단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조심하여 오르고 나니 바닥에는 기온이 오르며 녹은 눈길이 질척거린다. 잠깐 내려서 이런 길을 올랐다는 걸 사진으로 남겼다.

 

 바닥에 난 바퀴자국, 눈비에 젖지 않으려 카메라를 감싼 검은비닐봉지. 이건 사진으로 봐선 모른다. 그날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들 놀랐다.

 

눈이 살짝 쌓인 길을 올라 바라본 바다. 찌뿌둥한 하늘에서는 여전히 가벼운 비를 뿌렸다.

 

 

이제 다시 차에 올라 본격적으로 마을로 들어섰다. 산꼭대기 마을에는 교회가 하나 들어서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차들은 교회 주차장에 몰려 있다. 강화도에서도 그랬지만 일요일과 장날은 피해야 마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 특히 울릉도는 이제 산에서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비탈길을 기어올라 둘러보면 빈 집이 눈에 많이 띈다.

 

울릉도에 가면 모노레일이 많이 보인다. 이제 울릉도 농사는 나물. 비탈인 지형을 고려하여 모노레일을 깔아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몇 년 전 유럽의 유기농을 보며 자동화 시스템으로 한다는 걸 봤는데,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무엇이든 사람이 빠지는 만큼 몰인간성의 댓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역시나 기본은 사람이고, 짐승이며, 생명이다.

 

 

그렇게 이 집 저 집 들락거리다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차로 들어가기는 어려워 길 중간에 세워놓고 걸어서 찾아갔다. 찾은 곳은 북면 천부4리 석포동 2번지, 김원길(72) 김필귀(67) 어르신 댁이다. 눈길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며 일단 들어오라신다. 몇 번을 아니라고 했으나 결국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온몸에 퍼지는 그 짜르르한 온기... 너무 좋다. 들어가니 커피부터 타 오신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토종 이야기가 나오자, 이제 울릉도도 육지 것과 똑같고, 토종은 개량되어서 거의 없다고 하신다. 육지에서 들어온 옥수수가 울릉도의 강한 바람과 만나 거의 섞여 버렸다고 하신다.  그래도 내년에 심으려고 놔두신 것 좀 보자고 하여 함께 광으로 갔다.

 

광 입구에는 옥수수를 매달아 놓으셨다. 울릉도에서는 옥수수를 이렇게 보관하나 보다. 신기한 모습에 사진부터 한 장 찍어 놓았다.

 

 

울릉도의 옥수수 보관 방법. 다른 집에서도 거의 이런 식으로 옥수수를 보관하고 있었다.

 

 

역시 할머니. 할머니는 꼭 뭔가를 꽁꽁 동여매서 한구석에 꿍쳐 놓으신다. 어릴 적 다락문이 열리면 나오던 군것질거리를 보며 할머니는 마술사인 줄 알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밥에 넣어 먹는다는 울콩과 떡고물 하면 참 맛있다는 홑콩과 광 입구의 메와 찰이 섞인 강냉이를 얻었다. 좋은 거 주셔서 고맙고 차도 잘 마셨다고 인사를 드리고 이만 집을 나섰다.

 

다시 차에 올라 이번에는 곡예를 하듯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어제 모텔 주인 아줌마가 현지 사람 아니면 운전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이제야 실감했다. 이건 가드레일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안 되나? 게다가 차까지 그리 좋지 않으니 더 위험하다.

 

이 바위들을 몇 번을 지나쳤는지 모른다. 헌데 이제와 돌이키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여러 각도에서 보면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던 재미가 있었다. 혹시 이 바위가 무슨 바위인지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면 좋겠다.

 

 

다음 목적지는 현포리 옥녀봉이라는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이 올라 눈도 녹았고, 지도를 보니 등고선도 그리 좁지 않으니 더 수월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정도 오르자 여전히 눈이 쌓여 있다. 토종다운 집이 있어 먼저 그 집부터 들렀다.

문이 꼭 닫혀 있는 게 아무도 없는 듯하다. 허나 울타리부터 눈길을 잡아 끈다. 이 울타리는 거센 바닷바람을 막으려고 옥수숫대로 엮어 만든 것이 아닌가! 울릉도 사람들은 옛날에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집이다. 나리 분지에 울릉도 전통 가옥을 지어 놓았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죽은 집이다. 이 집이야말로 살아 있는 집, 그렇지만 관광지로 개발하자고 달려들면 큰일날 일이다. 관광 자가 붙자마자 곧 망가지는 걸 수도 없이 보았다. 아직은 관광=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이다.

 

 

 바닷바람을 막으려는 옥수숫대 울타리 너머로 눈 덮인 송곳산이 보인다. 다시 봐도 절경. 감탄만 나온다. 슥- 구경은 참 잘했다.

 

 

혹시나 하여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나와야지 할아버지가 나오면 꽝이다. 잠시 뒤 부스스한 머리의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시간으로는 딱 나른한 시간을 즐길 때이다. "할머니 옛날부터 심는 씨앗, 토종 있어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물끄러미 보며 생각하신다. 이때다. 있다. 다시 한 번 강하게 묻는다.

"왜, 옥수수 있잖아요?"

"있지."

됐다. 이제 됐다. 이곳은 북면 현포2리 92번지 김용호(75), 김만복(70) 어르신 댁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여기가 토종의 집합소임을.

 

하나하나 씨앗을 꺼내 보여주시는 김만복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이름이 남지 않은 사람들이 토종을 지키고 이어왔다. 할머니도 그러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이시다.

 

 

먼저 다 두드려 뿌렸다는 옥수수를 시작으로, 메주콩 두 종류, 검정콩, 콩나물콩이 줄줄이 나왔다. 거기에 돌아서다 본 호박에 밭에 심은 부지깽이 나물까지... 또 고추는 없냐는 물음에, "고추 있지" 하며 보여주신 광에서는 할머니의 종자 보관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김만복 할머니의 종자 보관법. 

1. 먼저 할아버지가 드신 소주 댓병을 버리지 않는다. 

2. 잘 씻어서 물기가 없도록 싹 말린다.

3. 종류별로 씨앗을 담아 서늘하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놓는다. 이때 입구는 막지 않는다.(다음해 곧장 심을 테니)

 

 

돌아서려 했지만 돌아설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집에서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완식 박사님께서 촬영에 열중이실 때, 난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소를 키운 흔적이며, 소에 메웠던 것이 틀림 없는 후치(여기서는 훌찌라고 한다), 외양간이며, 울타리를 엮은 칡덩굴.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배울거리였다. 아, 시간이여. 언제 다시 여기를 올 수 없을까? 울릉도를 드나들기에는 너무 멀고, 여기서 살자니 집에서 쫓겨날 테다. 누가 나에게 돈을 달라! 그러면 먼저 마누라를 꼬시고, 함께 이곳에서 살며 울릉도 사람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겠으니! ㅋㅋ

 

 

 

외양간의 모습. 구유와 바닥은 신식으로 세멘으로 발랐다. 하지만 소는 보이지 않는 까닭은? 추워서 뒤란에 추위를 피하는 전용 공간에 모시고 있었다. 아직도 소를 고기가 아닌 식구로 대하며 함께 살고 계셨다.

 

집을 들쑤셔 놓고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러 나오는 할머니. 할머니에게는 어쩌다 생긴 재밌는 일이시지 않을까? 언제 다시 찾아가 '저 또 왔어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문득 안완식 박사님께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신 분홍감자 할머니가 생각났다. 

 

 

옥녀봉까지는 힘들어도 내려오면서 다른 집을 들렀다. 현포2리 258번지 최분삼(78) 어르신 댁이다. 솔직히 많이 기억나지 않는다. 배가 고팠나? 밥 먹을 생각밖에 없었나? 그냥 사진에 옥수수만 매달려 있다. 너무 죄송스럽다. 김만복 할머니 댁에서 겪은 일이 너무 강했을까? 이렇게 정리하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그렇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최분삼 할머니 댁 옥수수. 노인네가 참말 대단하다.

 

마찬가지.

 

 

안 그래도 점심을 먹어야지. 매번 끼니 때를 놓치기 일수다. 하지만 덕분에 난 하루 세 끼를 먹고 다닌다. 원래는 하루 두 끼를 먹는데 이번 조사 때문에 세 끼를 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몸이 불고 있다는 걸 느낀다. 원래 이맘때에는 먹은 만큼 안 먹어서 푹 삭히는 시기인데, 그게 되지 않고 있다. 이상하게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지면 자고, 가을에는 먹고 봄에는 안 먹는 그런 삶을 산다. 이번해에 겨울잠은 글렀다.

 

 

점심을 먹은 곳에서 한 장.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가 쉬는 배들이 많다. 어릴 때 묵호항에서 본 바에 따르면, 쉬는 배가 있는 건 바다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날에 나간 배는 뭐야?? ^^

 

점심을 먹고 다시 토종을 찾아 나섰다. 지도에 표기된 곳은 거의 다 찾아가서 표시표시하고,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돌아다녔다.

역시나 농사지을 만한 곳을 빼고 다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이 문장은 한 줄 띄기이지만, 여기에 담긴 큰 의미는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토종과 관련해서...

헤매고 헤매다 마지막으로 잡은 현포항을 조금 지나 다시 도동항으로 가는 길에, 한 집에 등불이 보였다. 경험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깜깜한 어둠에 집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읍면 켜 놓는 백열등 불빛.

그 불빛을 보고 감히 찾아갔다. 가니 할머니 두 분이 재밌게 부엌일을 하고 계셨다. 

예의 할머니에게 말씀을 드리고 씨앗을 얻었다. 김순남(80) 할머니. 호박하고 보리하고 참팥하고 들깨.

 

 

 너희들 왔으면 이거 맛보라면서 주시는 김순남 할머니.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은데...

 

 

울릉도를 다니며 남긴 기록이다.

울릉도는 구나 웃으며 반기는 분위기. 추운데 들어오라는 말은 가장 많이 들은 말. 이방인에게 경계를 품지 않는 건 왜일까? 개마저 사람을 보면 반가워 꼬리치며 좋아한다. 여기에서 사납게 짓는 개는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제 나이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려 보인다. 왜일까?

열린 마음, 따뜻한 시선, 긍정적인 사고의 힘일까? 울릉도 사람의 밝음, 환대는 확실히 도시의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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