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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길로 갈 뻔하다

 

 

 

2008년 12월 7일 일요일. 어제 씨드림의 첫 모임이 있던 날이지만, 난 친구 결혼식에 가느라 함께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쩌랴, 친구놈이 전화해서 꼭 가야 하냐고 물으니 말이다. 그 자식 결혼해서 6개월 동안 뉴욕에 간단다. 시기가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되는 일이니 어찌 되겠지.

 

일요일이라 거리는 한산하다. 거기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려 더욱 그렇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8시 30분 집 앞에 있는 식물원 앞에서 안완식 박사님의 차를 타고 강화도로 떠났다. 처음 눈발은 그리 세지 않았는데, 고속도로를 타러 갈수록, 그러니까 바다 쪽으로 갈수록 더 거세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르는 길에서 옆으로 발랑 자빠진 차가 있지 않나, 고속도로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났다. 그렇게 본 것만 모두 4건. 그래서 차들도 거북이 걸음이다. 일찍 가면 갈수록 시간을 아끼는 일이건만, 그래도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안전운전, 조심 또 조심 엉금엉금 강화도로 향했다.

 

집 앞에서 안완식 박사님을 만나기 전에 찍은 사진. 이때만 해도 괜찮았다.

 

 

오늘은 진정한 한 팀인 안완식 박사님, 한영미 위원장님, 나. 이렇게 셋이서 조사에 나서는 날이다. 강화로 갈수록 날은 개고 눈이 덜 와서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한영미 위원장님은 강화터미널에서 10시 조금 넘어 만나, 먼저 하점면으로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11시 점심을 먹으며 일정을 잡고, 계획을 짰다. 그래서 오늘은 하점면을 돌기로 했다.

그런데 도무지 어찌된 일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지난번의 기억이 떠올랐다. 또 모두 교회라도 가신 것인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심을 정도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얼른 집으로 문자를 보내 강화도 장날이 며칠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뿔싸! 강화도는 2, 7장이 아닌가! 이거 저녁 무렵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 구경하기는 틀렸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관광한다는 기분으로 다니자고 하신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멋진 집 한 채를 보았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집인데 뭐가 있을까 대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사람을 찾았다. 마침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시는 게 아닌가. 어찌나 반가운지, 안아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곳은 하점면 부근리 513번지인데, 아저씨는 사업을 하셔서 농사는 그리 많이 짓지 않고, 노는 땅은 다 남에게 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텃밭에 조금 심는다는 수세미오이와 메옥수수(흰색, 10줄) 몇 자루를 얻었다. 

 

 

 

 

하점면 부근리 류광희(44) 아주머니 댁. 정말 여기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좋은 집이다. 

 

 옛날에 쓰던 농기구. 조 같은 곡식을 심고 이걸 굴려서 밟는다. 그렇게 밟는 것과 밟지 않는 씨가 따로 있다. 이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농사는 잘 모른다고 하셔서 어떤 작물을 심을 때 쓰는지 자세히 묻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논 제초기. 당시 줄모를 내도록 권장하며 노동력을 줄이고자 이러한 기계를 들여왔다. 발로 밟는 탈곡기도 그 하나이다.

 

 

다시 한참을 헛탕만 쳤다. 그러다 간신히 하점면 상거리 54번지 소동말에 사시는 문순임(70) 할머니 댁을 찾았다. 집을 잘 고치셨는데, 생각하지도 않게 청서리를 얻었다. 새로 고친 집은, 안완식 박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새로 짓거나 고치면서 옛날 것을 싹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집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청서리는 서리태처럼 밥밑콩으로 쓰는데, 까맣지 않고 푸르다. 물론 서리를 맞아야 거두고, 동글납작하고 눈이 까맣다.

 

안완식 박사님께서 바로 옆집에도 뭐가 있겠다며 거기에 가보라고 하신다. 인적이 없는 듯한 집에 가서 사람을 찾았다. 아무리 불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아 돌아서서 가려는데 하우스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상거리 52번지 사시는 윤인예(79) 할머니가 그분이다. 할머니는 마침 하우스에서 콩을 고르고 계셨다.

 

콩을 고르고 있던 윤인예 할머니.

 

 

텃밭에 배추를 엄청 심었는데 값이 나가지 않아 그대로 썩히고 계셨다. 1000통도 더 되는 것 같았는데... 언제나 농민이 제값 받고 농산물을 낼 수 있을까? 거간꾼을 끼면 편하기는 하지만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졌으니 문제다. 가장 좋은 건 자기가 농사지으며 모자란 걸 서로 거래하는 것일 텐데, 현실적으로 아직 어렵다.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으니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희망한다. 꿈과 희망은 사람을 일어서게 한다. 절망적인 사고의 현장에서도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아 구조되는 것처럼 말이다.

 

 

윤인혜 할머니 댁의 이팥.

 

 

계속 헛탕만 치다가 그래도 할머니 댁에서 많은 걸 얻었다. 천식환자가 약으로 쓰면 좋다는 이팥. 이건 창원에서 15년 전에 구해오셨단다. 밥에 앉혀 먹거나, 삶아 걸러서 물을 약으로 마신단다. 나물태는 물론 오라됐단다. 나물이 잘 되는데, 이거보다 알이 잘면 줄기도 가늘어 별로라고 하신다. 눈이 갈색이다. 또 울타리콩은 연보라에 보라색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강낭콩은 5~6년밖에 안 되었다고 하시는데, 옛날 것보다 맛있단다. 땅콩은 20년 전 보름도에서 아들이 가져온 걸 계속 심으신단다.

 

 나물태

 

 강낭콩

 

 

연세도 많으신데 혼자 사시면서 농사도 엄청 많이 지으신다. 집 옆으로 오줌을 누러 돌아가니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좁은 동굴처럼 닭장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닭이 참 예뻐 이것도 토종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신다. 양계장 같은 곳은 생산성과 효율을 따져야 하니 이런 닭은 키우지 못하겠지. 결국 대규모, 대량 생산보다 소규모, 소량 생산에 희망이 있고, 그래야 토종이며 전통농업이 살아 남지 않을까 한다. 그럴려면 사회 체제가 바꿔야 하니 큰 진통이 있겠지. 하지만 위기가 닥쳐서 바꾸려고 하면 진통이 크겠지만, 미리미리 대비해 조금씩 바꿔 나가면 덜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는 지도층 인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핸드폰하고 자동차, 컴퓨터 같은 걸 팔아서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선진국이란 나라들은 벌써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데, 왜 그리 뒷꽁무니만 좇아가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께는 이번에 맞춰서 가지고 온 수건을 2장 드렸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도 있고, 이렇게 많이 얻었으니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이다. 수건이라도 드리니 참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이제 좀 떳떳하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는 것이 인지상정. 공짜로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상거리 천촌마을이란 곳으로 갔다. 뭐 역시나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간신히 만난 분은 의심이 많으신지 여간해서는 알려주지 않으신다. 씨앗 몇 가지를 얻었으나 이름도 주소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파란콩, 동부, 덩굴콩만 적고 나왔다.

 

다음은 상거리 764번지의 최희숙(45) 아주머니 댁을 찾았다. 조금 몸이 좋지 않은 분이셨다. 집이 너무 낡아 더 마음이 짠했다. 15년 이상 심은 메수수가 있다고 하기에 얻었는데 잘 모르겠다. 다니면서 보니 찰수수에 입맛을 빼앗겨 이제 거의 아무도 메수수는 심지 않던데 이 집에는 어찌된 연유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 집을 나와 들어간 샘골 752번지의 정순덕(76)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그 집 사람 보고도 믿냐고 뭐라고 하신다. 좀 거시기해서 업수이 여김을 당하나 보다. 뭐 그런 것이 인지상정이니 어쩌랴. 요즘 취직하려고 취업성형도 한다는데,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첫인상이 좋으면 반은 넘게 먹고 들어가는 것 같다.

정순덕 할머니는 집에서 친구 분과 수다를 떨고 계셨나 보다. 건너방에서 할아버지는 축구를 보고 계시고, 다른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할머니께 사정을 설명하고 찰옥수수와 둥근호박을 얻었다.

 

정순덕 할머니의 장독대.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정렬해 있는 장독에서 할머니의 살림솜씨를 엿보았다. 

 

 

15시쯤, 안완식 박사님 댁에서 긴급호출이 왔다. 날씨가 추워 하우스의 수도관이 얼어 터졌다고 하신다. 차를 세워 놓고 한참을 전화 통화하시며 일처리를 하고 계셨다. 그 사이 난 잠깐 나왔다. 밖은 시커멓고, 눈발은 눈보라치듯 날리고, 천둥까지 우르릉 쾅, 난리가 아니다.

잠시 차를 세워 놓은 집에서 웬 차가 서 있나 아주머니께서 나와 보셨다. 얼른 달려가 이런 사람들임을 밝히고 종자가 있는지 물었다. 논농사를 크게 지어서 별 게 없으시단다. 그래도 콩이라도 있으면 보여달라고 졸라 광까지 들어갔다. 집을 1층은 주차장에 2층 건물로 잘 올려 집이 참 좋다고 하니, 집을 잘 지었어도 농민이라며 별볼일 없다고 하신다. 토종 씨앗은 진짜 별로 없었다. 메주콩이 조금 특이해 이걸 하나 수집했다.

 

15시 30분. 일단 조사를 완료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더 이상 조사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대신 1차 조사 때 숙제로 남겨 놓은 망월3리를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눈길을 조심조심 달려 망월리 노인정에 도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봉현 할아버지는 이곳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집이 어딘지 여쭈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집에도 계시지 않았다. 어디 자제분들 집에 놀러 가셨나 보다.

 

유봉현 할아버지 댁이 있는 망월3리. 그러나 끝내 할아버지를 만나지는 못했다. 눈이 어찌나 오든지...

 

 

지도로 확인한 길을 따라 숙소를 잡으러 이동했다. 내가면사무소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바로 바닷가라 그런지 그곳에 숙소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엉금엉금 기듯이 고개 입구에 도착하니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체인이 없는 차, 체인이 있어도 위험하다고 넘을 생각을 하지 말란다. 할 수 없이 고갯길이 아니라 들어온 길로 되돌아나가 평지를 빙 둘러서 가는 수밖에 없다. 

차를 돌리고, 네비게이션을 조정했다. 쭉 길을 따라 달리는데, 16시 48분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외친다.

"200m 전방에서 황천길 방면으로 좌회전입니다."

뭐야, 죽으라는 건가? 이 네비게이션이 눈이 오니 미쳤나? 지도를 펴서 확인하니 우리가 지나야 하는 곳이 황청리란다. 차 안에서 한참을 웃었다. 황천길이 어딘지 한 번 가보자.

 

안완식 박사님의 빼어난 운전 솜씨 덕에 무사히 한도모텔이란 곳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길은 얼지 않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황청길로 달려가던 차 안에서. 밤이 되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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