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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배추 심기




지난 주말에는 비가 오는 바람에 밭에도 못가게 되었다. 요즘 하루 걸러 하루 비가 오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그 덕분에 무를 심어야 하는데 계속 차일피일 미루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일기예보를 확인하던 중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는 예보를 확인했다.


목요일은 정말 날씨가 쨍쨍했다. 그래도 어제 비가 왔으니 땅이 마르려면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하고, 금요일에 큰 맘 먹고 여름휴가를 하루 내서 밭으로 갔다. 안철환 선생님은 저번 주말에 무를 심으려고 하시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조금 당겨서 심으셨다고 하셨다. 나도 오늘을 놓치면 이번 주말에 또 비가 온다고 하니 때를 놓칠 것 같아서 휴가까지 내고 밭으로 왔다.


점심은 안철환 선생님께서 준비해오신 국수로 비빔국수를 해 먹고 막걸리를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철환 선생님은 참 재미있으시고 항상 밝으시다. 어떻게 보면 평생 고민 걱정 없이 사셨을 것 같은 분이시다. 설마 그런 것 없는 사람이 있겠냐 만은 안철환 선생님은 특유의 익살과 낙천으로 잘 넘겨오셨을 것이다. 평소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나로서는 안철환 선생님의 그런 면이 참 좋고 부러울 때도 있다.


한담을 나누면서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나서 이제 일을 시작하였다. 저번 주에 와서 김을 매주지 않아서인지 밭에는 풀들이 엄청나게 자라 있었다. 이걸 두 주, 세 주만 놔두면 진짜 손들고 나가 떨어질만 하다. 한 주 사이에 이렇게 무섭게 자라 있는데 그보다 더 지난 후의 풀들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난 농사규모도 작고 이걸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입장도 아니니 그냥 좋게 생각하면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엄청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먼저 무를 심기 위해서 묵혀두었던 밭을 김매기 시작했다. 풀들은 왜 이리 뿌리를 억세게 박고 있는지 한 이랑에 나있는 풀들을 잡아내니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뽑아낸 풀들은 수북히 쌓여서 내 무릎보다 높이 올라와 있다. 징글맞은 놈들, 한켠으로 몰아서 쌓아두고 무를 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농작물이 그렇듯이 무도 한 30Cm 간격으로 해서 서너알씩 심어주면 된다. 한 구멍 한 구멍씩 작업을 하니 얼추 50구멍쯤 됐을까 이제 더 이상 심을 곳이 없다. 더 심을 곳을 찾아보니 이미 작물을 수확해서 거둔 곳과 습해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고추가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해에 첫 고추농사는 완전 대실패이다. 그래도 풋고추 얼마는 거두어 먹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무를 다 심고 나서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무래도 오늘 배추를 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올해 날씨가 궂어서 배추 모종해 둔 것이 벌레한테 많이 당했다면서 여기서 농사짓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스스로 모종 하나는 튼튼히 잘 키운다고 자부하셨는데 올해가 힘든 해이긴 한가보다. 진짜 배추모종들이 힘이 없어 보이고 벌레들이 무참히 폭격해 놓은 것들도 꽤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모종으로 더 놔두어 봤자 벌레들 밥이 되기 딱 좋다면서 그래도 본 밭에 옮겨 심으면 거미 같은 천적들이 있어서 피해를 덜 볼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배추도 심게 되었다.


얼마를 심어야 할지 계산이 안 서서 가만히 있는데, 그때 온 네 사람 몫이면 한 백포기 심으면 될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종이컵 33개를 추려서 들고 가서 본 밭에 옮겨심기로 하였다. 배추를 심기로 생각하고 있던 밭 역시 이미 풀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그냥 풀이라면 어떻게든 쓱 잡고 쑥쑥 뽑아내면 되겠는데 여기는 환삼덩굴들이 난리다. 이놈들은 줄기에 가시가 있어서 장갑을 끼면 거기에 달라붙고 그렇다고 장갑을 벗고 걷어내려면 팔이고 목이고 긁어대서 상처가 나기 일쑤이다. 처음엔 어떻게든 다 걷어내겠다는 생각에 장갑도 안 끼고 달려들었다가 무수한 영광의 상처만 남기고 장갑을 끼고 도전하기로 맘을 바꿔먹었다. 그래도 이놈들의 생명력에는 당할 수가 없어 제거 작전에서 걷어내기 작전으로 다시 맘을 바꿔먹었다. 어떻게 어떻게 낑낑대며 환삼덩굴을 걷어내고 풀들을 제거하고 나니 슬슬 해질녘이 다가왔다. 그래서 급한 맘에 쉴 틈도 없이 배추를 심기 시작했다.


되다 되다 해도 오늘만큼 일이 된 적은 없었다. 한 절반쯤 심었을 때부터는 쪼그리고 있는 무릎이 아파오고 팔도 힘이 빠져서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이 찾아왔다. 겨우 백포기에 쓰러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맘을 다잡고 묵묵히 일을 끝마치자 해는 어느덧 서산 너머로 져버려서 어둠이 깔리고 있는 때였다. 일을 마쳤다는 기쁨보다 이제 다시 쪼그리고 힘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농부님들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다고 할까. 정말 기계 없이 전적으로 사람의 힘만으로 농사 짓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이 들 것 같다.


요즘 들어서 귀농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귀농학교를 다니기 전에 생각했던 귀농, 귀농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했던 귀농, 수료식 이후의 귀농,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귀농, 똑같은 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요즘 들어서는 가장 고민되는 것이 과연 귀농을 해서 먹고 살 수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솔직히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사는 건 자신이 없다. 뭔가 다른 돌파구나 안정적인 소득원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간극장에 나왔던 산골9남매 아버지의 소득원은 양봉이었는데, 나도 그런 것을 마련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몇 달 살지 못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무장해제 당해서 다시 도시로 흘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텃밭 농사이지만 계속해서 나를 자극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히 느껴지는 하루였다.



후기 - 비바람이 엄청 심했나 봅니다. 키큰 옥수수는 전부 쓰러져 버렸습니다. 어떤 것은 아예 꺾여 버렸습니다. 안철환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무경운의 장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땅이 좋으니 선생님 것들은 조금 쓰러지고 난 후 저절로 다시 일어섰다고 하십니다. 내 밭에 심어놓은 가지를 보면서 땅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똑같이 심은 가지인데 안철환 선생님의 가지는 팔뚝만 합니다. 그런데 제 가지는 땅이 축축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손가락 세 개만 합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은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거름을 주지 않으면 어느 정도 멀쩡한 작물을 수확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거름을 만드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실상사에 갔을때 그 분이 왜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퇴비의 중요성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또 강조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날씨가 계속 흐리니 작물들도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작물들을 보는 제 마음도 힘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해준 것인지, 미안스럽고 미안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운도 없고 맘도 축 처집니다. 다음 주에는 쌩쌩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하늘이여 이제 비는 그만, 쨍쨍한 해를 보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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